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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ㅣ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평점 :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잘 녹아든 소설이다. 작가는 잠과 꿈에 대한 궁금증이 많아지면서 어제와 오늘 사이의 신비로운 틈새를, 기분 좋은 상상으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이 책은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되어 큰 인기를 모아 다시 종이책으로 재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기대된다.
이 책은 잠이 들어 꿈을 꾸어야만 입장이 가능한 신비롭고 몽환적인 마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가 이승과 저승의 중간 지점에서 살고 있는 땅에 발을 들여놓는 것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상점가 마을, 잠든 이들을 사로잡는 흥미로운 장소들, 잠이 솔솔 오도록 도와주는 주전부리를 파는 푸드트럭, 옷을 훌렁훌렁 벗고 자는 손님들에게 정신없이 가운을 입혀주는 투덜이 녹틸루카들, 후미진 골목 끝에서 악몽을 만드는 막심의 제작소, 만년 설산의 오두막에서 일하며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베일에 싸인 꿈 제작자, 태몽을 만드는 아가냅 코코, 하늘을 나는 꿈을 만드는 레프라혼 요정의 작업실... 와우~ 상상만으로도 멋진 이야기가 기대된다.
너무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 일어나길 반복하다 보면 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었다가 깨는 경우가 있다. 꿈에서 뭘 했다거나 무엇을 봤다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난 꿈속에서 봤던 장면이나 만났던 사람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잠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의 내용이 더 궁금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작가는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층마다 특별한 장르의 꿈들을 구비하고 있고, 저마다 개성 있께 포장된 꿈 상자들이 진열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곳으로 떠나보자.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젊은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일자리였다. 높은 연봉에 이 도시의 랜드마크쯤 되는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에서 일하고, 각종 인센티브에 기념일에는 고가의 꿈을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 혜택까지. 달러구트와 일대일 면접을 통과하게 되면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꿈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다.
페니는 '꿈 백화점'으로부터 서류 심사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단골 카페 2층에 앉아서 면접 때 나올 질문에 대비해 인터뷰 요령에 관한 책부터 질문 대비 책까지 잔뜩 쌓아 놓고 어떤 문제가 나올까 고심하면서 문제를 풀어 보고 있었다. 페니가 사는 이 도시는 먼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수면에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면서 발달해왔는데, 지금은 대도시가 됐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페니에겐 잠옷 차림의 외부 손님들과 섞여 지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중 녹틸루카 중 하나인 아쌈이 페니가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달러구트는 꿈에 대해 알쏭달쏭 한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한다며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 책을 건네준다. 이 책은 이 도시의 어린아이들에게 필수 권장도서로, 아쌈은 달러구트가 이 책에 실린 이야기에 대해 질문을 할 것이라고 귀띔해 준다.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에는 먼 옛날, 시간을 다스리던 시간의 신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세 제자에게 과거, 현재, 미래 중에 하나씩 골라서 시간을 다스리라고 이야기한다. 첫째는 미래를 고르고, 둘째는 과거를 고르지만 셋째는 찰나의 시간인 현재를 모두에게 나누어주라며 자신은 모두가 잠든 시간을 고른다. 나라면 과거, 미래, 현재, 그리고 잠든 시간 중에서 무엇을 골랐을까?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에는 이 넓은 상점가의 시작, 이 도시의 탄생, 달러구트와 백화점의 기원이 모두 담겨 있다. 달러구트가 역사를 중요시한다면 아주 높은 확률의 답이 이 책에 있을 것으로 보고, 페니는 책을 자세히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면접 당일까지 며칠 동안 읽고 또 읽어서 이야기를 통째로 외울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매일 밤 꿈을 꾸고, 먼 옛날 세 번째 제자가 세운 '꿈 백화점', 그리고 대대로 그의 가게를 물려받은 후손들과 지금의 달러구트까지 이 모든 것들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믿고 산다. 면접일이 되어 꿈 백화점에 도착한 페니는 1층의 허름하고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달러구트를 만나 그가 건넨 쿠키를 한 입 베어 물고 면접을 본다.
페니는 지원서에 '아무리 좋아봐야 꿈은 꿈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별다른 스펙이 없었던 페니는 이력에 달러구트를 도발해 보고 싶은 생각에 이런 문구를 적었다. 난 맘에 들었다. 내 생각도 같기 때문이다. 달러구트도 이 문구가 인상적이며 압권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니 양이 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을 자유롭게 듣고 싶군"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페니라면 뭐라고 했을까? 그녀는 "현실에서 겪지 못할 일들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꿈은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어요!"라며 "아무리 좋은 꿈을 꾼들, 깨어나면 그뿐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페니는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를 꺼내서 말하며 세 번째 제자가 '잠든 시간'을 다스리겠다고 말한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엔 나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과거로부터의 배움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중요하지만 잠든 시간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 그녀는 자극적인 꿈을 파는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다른 꿈 상점 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사실은 급여가 많아서 지원하게 됐다는 말 대신, 시간이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랐던 것처럼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적당한 꿈의 다스림을 제공하고 있어서라고 말한다.
이 말이 달러구트를 움직여 첫 직장을 얻는데 성공한다. 개인적으로는 페니가 면접을 보는 과정 속에서 했던 말이 이 소설 속에서 잠과 꿈에 대해 하고 싶었던 핵심이란 생각이 든다. 어찌 됐건, 페니는 첫 출근길부터 헐레벌떡 뛰어 다행히 지각은 면한다. 5층까지 둘러본 후 1층 매니저인 베테랑 웨더 아주머니가 일하고 있는 1층 프런트에서 일하게 된 페니. 하지만 그녀는 출근 첫 주에 가장 비싼 꿈 값을 도둑맞는 위기에 처하고...
꿈 백화점의 매니저들과 꿈 제작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손님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조금씩 성장해 가는 페니의 성장 과정이 색다른 꿈을 파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주된 이야기로 펼쳐진다. 꿈속에서 매일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사는 여자가 나오는데,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꿈을 산 것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한다. 꿈꾸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날은 환자복을 입은 손님 찾아와 침울한 표정으로 달러구트에게 꿈 주문 제작을 한다.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에게 보내는 꿈이다. 마치 영상 편지를 쓰는 것처럼 이 책에는 꿈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이 한 편의 영화처럼 필름이 돌아간다. 코로나19로 소소한 일상이 사라진 요즘, 꿈속에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가게 된다면 영화 <빽 투더 퓨처>처럼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갔던 소풍을 떠나보고 싶다. 또, 코로나19가 끝나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은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도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