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3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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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소설가의 이야기, 소설의 힘, 이야기의 이야기... 그 속으로 안내하는 속죄, 그리고 영화 어톤먼트....

[속죄]를 떠올리면 영화 [어톤먼트] 속의 글 쓰는 브라이어니가 먼저 떠오른다. 거대한 의자 위에 앉아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던 소녀 브라이어니...그리고 그녀 뒤로 보이는 일렬로 늘어선 인형의 집과 인형들... 그 속에 있던 브라이어니는 흡사 신과 같았다. 그녀 자신의이 홀로 주무르는 세상, 모든 것을 그녀 식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자신감들....

브라이어니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녀는 로비를 사랑했나? 아마도 그녀는 로비에게서 초기에는 호감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그 느낌이 언니에 대한 질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브라이어니는 세실리아를 어떤 부분에서는 구원을 해주기를 원했던 것 아니었을까? 통제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언니 세실리아가 누군가에게 당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대상이었던 로비에 대해서 뭔가 껄끄러움을 느꼈을까?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치명적이었다. 로비에 대한 거짓말을 하기 전에 브라이어니는 언니와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언니에게 로비에 대한 마음을 물어야 했다. 그녀 스스로 독단에 빠지기 전에 말이다.

로비에게 무슨 잘못이 있었나? 왜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맺어지지 못하고 오랜 세월 고통 속에서 지내야 했을까? 그것도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으면서 말이다. 로비에게 잘못은 단 하나이다. 브라이어니에게 세실리아를 위해 쓴 편지를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 편지는 본인 스스로 줬어야지... 그는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을까? 브라이어니가 그 편지를 뜯어볼 것을 말이다. 아마 맑은 눈의 로비는 한 톨의 의심도 하지 않았겠지... 의심하지 않음이 바로 그의 약점이었다. 결국 로비는 사랑하는 세실리아를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

슬프다. [속죄]는 왠지 속으로 울게 되는 책인듯하다. 그 연인들이 결코 돌아올 수 없음이... 그 찬란한 사랑의 시절이 다시 반복될 수 없음이... 거짓말 하나로 참혹한 인생을 살게 된 모든 이들의 삶이... 그리고 가해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속죄? 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이...

브라이어니의 속죄는 과연 이루어졌을까? 아마 그녀의 속죄는 평생 계속되었을 것 같다. 소설가가 된 브라이어니가 과연 속죄를 완성할 수 있을까? 아니 더 나아가서 소설가가 과연 속죄할 수 있을까? 소설의 결말을 바꾼다고 한들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소설가는 스스로의 왕국에서 모든 것을 주무른다. 속죄할 필요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언 매큐언은 자신의 책 [속죄]가 소설가와 소설가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라는 데, 아직 정확하게 이해는 안 되지만, 왠지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다는 생각이다. 매해 읽을수록 새로운 느낌인 책 [속죄]... 영화적으로도 무척 훌륭했다. 이언 매큐언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많은 부분이 소설의 원작에 충실했다고 하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꼭 추천한다. 책을 먼저 읽어도, 영화를 먼저 보아도 아마 모두들 만족할 것이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찾아보았다. 역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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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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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소리를 듣다』​​

우사미 마코토 (지음) |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 (펴냄)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그 일을 누군가가 했거나 관여했다면 어찌 됐든 결과는 바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눈으로 본 일을 믿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인가? 믿는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일 뿐인가? 어떤 식으로 모든 것은 관계가 되어있다.

소설 [밤의 소리를 듣다]는 세상에 스스로의 의지 없이 태어났지만 어찌 됐건 살려는 아이들의 고분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어릴 적 자신을 어찌 됐든 스스로의 방식으로 학대를 한 엄마의 충격에서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료타... 료타의 엄마 역시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고 스스로의 도움을 외부에서 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아들에게 침묵의 공범자 역할을 맡기면서 스스로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할 수 없는 부모도 존재하는가? 사건 사고의 뉴스에 귀 기울이다 보면 아쉽게도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료타가 그때 공원에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소녀인 유리코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 그에게 과연 미래가 있었을까? 그는 그곳에서 소녀를 만났고, 그녀에게 공감했으며 후에 그녀를 따라서 하루노부 고등학교 야간부 과정에 다니게 된다. 책을 둘러싼 띠지에서의 글처럼 [모든 일은 그곳에 네가 있었기 때문에 일어났단다]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아마 그 일이 없었더라면 료타가 너무도 사랑하는 친구 다이고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

료타는 유리코를 따라서 학교에 가고 그곳에서 다이고를 만나게 된다. 불과 일 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너무도 가까워진 료타와 다이고... 아마도 다이고의 밝은 성격이 그 한몫을 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아무에게도 그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 비밀의 이야기가 말이다.

료타는 다이고가 숙식을 해결하는 일명 [달나라]라는 재활용품 매장이자 심부름센터에 새가 방앗간을 드나드는 것처럼 들리게 되고 그곳에서 11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가족 살인 사건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과연 그 비밀에 관계된 이야기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건의 진범은 과연 누구인가?

소설은 처음에는 평이하게 흘러가더니 중반 이후부터는 무섭게 휘몰아친다. 하지만 결국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은 어떤 따스함이다. 미스터리 장르에서 이러한 따스한 울림은 아마 작가 우사미 마코토가 지닌 본연의 감정선에 있을 것이다. 세상이 험하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할 수 없는 것, 살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작은 따스함, 애정 어린 시선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흡사 주인이 여러 번 바뀌지만 꿋꿋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내는 개 요사쿠와 같다. 그래도 된다는 것이다.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을 료타의 엄마는 잔인한 방식으로 거부했지만...... . 다이고가 혼자 지낼 것을 걱정해서 달나라에 요사쿠를 남겨둔 료타의 마음과 얼마나 대비되는지...

지금도 어디선가 분명히 존재할 또 다른 하루노부 고등학교 야간부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곳에는 학생들의 일이라면 불도저처럼 돌진하는 또 다른 이사미 선생님이 있을 것이다. 유일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곳, 쉴 수 있는 오티움... 세상의 모든 갈 곳 없는 영혼들이 저마다의 오티움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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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7주년 기념 개정판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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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 (펴냄)

오래전부터 나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나는 왜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람을 싫어할까? 하는...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이유없이 짜증을 부리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고,(그래서 나는 결혼전에는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생각함) 직장 생활로 통근을 해야 해서 만원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는데 언제나 초밀집으로 꾸역 꾸역 밀려오는 사람들의 숨냄새는 정말이지 참기 어려웠다. 결국 힘들게 들어간 직장을 제 발로 나오고야 말았다. 정말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는 인간 알레르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고민들이 넘쳐났던 시기였다. 그때 나의 경험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간간이 이어지고 있는 환절기성 인간 알레르기들... 미처 원인을 알지 못했고 그저 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여겼는데 책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는 그 증상의 원인과 치료법을 유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려 이 책은 7주년 기념 개정판이라고 하니 무려 나는 이 알레르기 증상의 치료법을 7년이나 간과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ㅎㅎ

저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철학을 공부하고 다시 의과대학에 들어가 정신과 의사가 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였을까? 철학과 의학의 절묘한 뽕짝 내지는 환상의 비빔밥의 향연을 우리는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책마다 적절한 예시가 들어가 있어서 쿡 쿡 웃고, 공감하면서 옆 사람을 간혹 찔러가면서(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보게 되는 책이다. 설마 자신의 증상이 인간 알레르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조차 이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의 질병을 저절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이다.

왜 사람은 백번 잘해주다가도 한번 잘못하면 삐끗하는지, 왜 잘생긴 사람도 자주 보면 식상해지는지, 왜 사람에게서 간혹 아나팔락시스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생겨나는지 ㅎㅎ 하나같이 촌철살인의 위트가 넘치는 문장과 예시들이 가득 찬 책이다.

처음부터 읽어나가다 보면 약간 답답한 면도 있다. 아니, 알레르기라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면 치료법은 없는 걸까? 이렇게 모두 늘어놓고만 있다가는 인간 혐오가 더 생길 것같은데... 이런저런 궁금증을 갖고 있다 보면 해결책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제5장 [나는 나를 조종할 수 있다] 편으로 대망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을 추천한 가족치료 전문가인 이남옥 레지나님에 따르면 (성미가 급한 나 같은 독자를 위해 코멘트하신 것 같다.) 알레르기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5장에 나오니 1장에서 4장까지 잘 읽으라는 것이었다. ㅎㅎ (역시 )

가장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인간에 대한 알레르기를 일으킬 때 그것이 사실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존본능이라는 점이다. 일명 혐오를 느끼는 증상이 예민할수록 위험에 더 잘 대처하게 된다는 것... ㅎㅎ 이와 비교해서 고통도 그러하다. 누구나 경험하기 싫은 것이지만 고통이 없다면 위험도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자신이 치료받고자 원한다면 인간 알레르기는 누구나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투머치토커의 대명사인 야구선수 박찬호님이 생각난다. 그도 엄청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인간 알레르기를 지닌 자들이여, 더 이상 스스로의 괴로움으로 방치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해결책을 받아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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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존 맥스웰 A Year of Quotes 시리즈 3
존 C. 맥스웰 지음, 이혜경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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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존 맥스웰』​​

존 C. 맥스웰 (지음) | 이혜경 (옮김) | 니케북스 (펴냄)

한때는 자기 계발서를 아주 열심히 읽은 때가 있었어요. 십 대 때는 십 대만이 해야 할 일, 이십 대에는 이십 대에만이 할 일 등등 삼십이 넘어가고... 세월에 지치고 사십이 또 넘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왠지 모르게 자기 계발서라는 허울에 갇힌 것만 같았죠. 다 뻔한 이야기를 길고 거창하게 늘어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그런 유의 책들은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문학, 인문 서적 등이 채웠죠. 정말 다시는 자기 계발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세상이 변하지 않듯 너도 나도 변하기 힘들다. 우리는 그저 변할 것이라는 믿음만으로 위로받을 뿐이다. 뭐, 그런 나름대로의 생각을 했던 거죠.

하지만 정말 자기 계발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세월이 가르쳐 준 현명함이겠지요. 단 너무 거기에 기대지는 말고, 삶의 사소한 꿀팁만 얻어 가자.... 등등의 생각도 하게 되고요.

존 맥스웰 작가는 리더십 부분에서 최고의 리더죠. 여러 세계 기업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작가이기도 하고요. 매일 하루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니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부담이 조금 덜해져요. 그저 일상을 살아가다가 아! 하고 느낌이 오거나 스스로 변화가 필요할 때 오늘 스쳐간 말들을 부담없이 생각해 보는 거죠.

삶에서 많은 키워드들을 우리는 자기 계발의 명분으로 만나죠. 그릿이라거나 넛지, 신념, 내면의지, 미라클 모닝 등등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저 그곳에 있을 뿐이죠. 스스로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는 지식은 죽은 지식에 지나지 않아요. 문학 작품에서는 어떤 특정 행동을 유도하지 않고 그저 있는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지만 자기 계발의 키워드의 책들은 현상에 대한 이해만으로는 부족하죠. 행동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말들을 끊임없니 속삭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 당위성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은 작심삼일이다. 뭐다 해서 또 이내 스스로가 세운 야심만만 한 프로젝트에서 멀어지게 마련이고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은 또 다른 뭔가를 결심하기 어렵게 만들죠.

존 맥스웰의 주옥같은 말들을 매일 읽어가는 법은 새로운 자기 계발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해요. 물론 이것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어떤 특정 집단에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경우가 있어요. 스스로가 의도했든, 의도치 않든 말이죠. 그럴 때 이런 조언들은 필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어쩌면 자기 계발서의 핵심은 행동 뿐만 아니라 위로도 있는 듯해요. 스스로가 뭔가 해야 할 일을 어려워하고, 집단에서 좋은 사람으로 서고자 노력을 하긴 하는데 그것이 힘이 들 때 분명 이런 유의 글들은 위로가 되는 듯합니다.

어쩌면 매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죠. 매일 읽고 매일 쓰고, 매일 좋은 생각을 유지하는 것 말이죠. 뻔한 자기 계발서에 지친 모든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만나봐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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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헤르만 헤세 A Year of Quotes 시리즈 2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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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는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지음) | 폴커 미헬스 (엮) | 유영미 (옮김) | 니케북스 (펴냄)

요즘 개인적이지 않은 개인적인 일(가깝기는 하나 직접적이지는 않는)들로 마음이 많이 어지러웠다. 게다가 감기 기운까지 겹쳐서 컨디션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사는 일이 참 재미없다고나 할까... 언제 재미가 있었냐 싶게 지난날의 호기심과 설렘은 머나먼 일이 되었고 하루하루 해치워야 하는 일들과 내일도 어제와 같은 것이라는 기대 없는 푸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사실 아무 일도 없는 일이 기대할 하루라는 것... 크나큰 일들이 닥치고 나서야 우리들은 깨닫는 법이다.

헤르만 헤세는 이럴 때 큰 위로가 되었다. 그는 글에서 이야기한다. 글쓰기와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고민들과 오해들을 한번 써 내려간다면 그것을 이해하게 될 거라고... 그렇다. 헤세는 나에게, 그리고 무언가를 고민하면서 하루하루 사는 사람들에게 처방전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의 일기들에서, 편지글에서, 소설과 시에서 그 처방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들과 그의 그림들을 책 속에서나마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위안이었다. 하루하루는 그저 평범한 시간들이라도 할지라도 그 사이에 인간은 성장한다. 아이들은 자라고 있으며 꽃들은 다시 시들고 여름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만히 있는 것이 없었다. 다들 열심히 움직이면서 한 뼘의 거리라도 좁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 한 뼘이다. 한 발자국이 힘들다면 한 뼘이다. 그렇게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오늘이 좌절스럽다고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로 멈춰있는 것이 되지만 단 한 뼘 나아가면 그것은 나아가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기대할 것을 좁히고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헤세의 글도 첫 단어, 첫 음절이 시작이었고, 위대한 그림 역시 한 점 붓 획이 시작점이었던 것처럼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다. 그 작은 기적들이 하루를 만들고,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들은 말이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 애쓸 필요 없다는 말이다. 매 순간 나를 위로하는 것들을 감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살면 된다는 것... 누군가는 언제나 세상은 앞서나가는 듯 보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 오히려 앞서는 자가 뒤따라오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 순간만이 영원한 것... 등등....

그래, 헤세를 읽는 하루, 그 짧은 순간의 위로, 그것으로 된 것이다. 오늘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한 것처럼 내일은 다른 괴로움이 올 텐데 미리 걱정을 싸매며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순간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랜덤 행복을 즐기자. 헤세가 글과 그림에서 삶의 위로를 찾은 것처럼 스스로를 돌아볼 무언가를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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