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의 관계 심리학
오카다 다카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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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사는 게 힘들까?』​​

오카다 다카시 (지음) | 김해용 (옮김) | 동양북스 (펴냄)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산다는 것은 일상을 영위하는 일이다. 자고, 먹고, 소화하고, 사랑하고, 또 일하고 등등... 그 일상이 무너지면 우리는 사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건가? 삶이 고통스럽다면 인간은 왜 태어난 걸까? 하는 것 등등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져서 망상이 된다. 예전에는 이런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다. 교회에서부터 나온 노래... 바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이 노래만큼 태어난 의미를 명확하게 그것도 기쁘게 정의한 가사말을 그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난 도대체 왜 태어난 거야? 하는 질문에 그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라니... 얼마나 달콤하고 안심되는 말인가? 현실은 사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가 하는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지만 말이다.

저자는 사는 것이 그저 힘든 사람, 그리고 뭔가 삶을 지탱하기 자신만 유독 힘든 것 같은데, 딱히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회색 유형의 인간, 즉 그레이존으로 분류한다. 이 책은 그런 그레이존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레이존의 정의는 회색 지대 혹은 경계 영역, 어느 영역에도 속하는 않는 중간 지대를 의미한다.)

책은 총 9장의 목차로 이루어진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너무 힘든 사람부터 시작해서 산만하고 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 남들보다 몇 배 더 예민한 성격에 힘든 사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 몸의 움직임이 어색한 사람 등등을 정의해서 사례를 수집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책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말 그대로 문제로 인식하는 태도도 아니다. 그저 여러 사례의 나열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심지어 아주 어린 시절까지 들여다보게 만든다.)

다양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세대의 층간이 더 세밀해진 지금은 성격유형검사 즉 MBTI를 통해 사람들은 미리 진단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재미 삼아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모임에서도 미리 상대방의 성격유형을 묻고, 스스로와 통? 하는 사람을 발견하면 동조하고 미리 마음을 연다. 반면 스스로의 성향과 대비되는 유형을 접하다가 서로 의견이 안 맞고, 조율이 안된다면 MBTI가 안 맞아서 그런 것이라고 쉽게 성격 탓을 한다. 하지만 성격 유형 검사는 스스로의 컨디션이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다고 하니 맹신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단순하게 사용될 지표임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이들 중 그레이존 유형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카프카,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까지 말이다. 그리고 저자가 마지막에 언급한 애착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공감을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기억이다. 그 기억 중 중요한 것은 대개가 무의식에 숨어있다. 어린 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시절이 무의식의 영역에 상당히 기여하기 때문이다. 애착 장애에 대한 고통의 순간을 스스로의 노력과 발견의 결과로 오히려 삶의 에너지로 바꿔서 살아간 사례들은 삶의 소중한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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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 (올컬러 에디션) - 세상을 다르게 보는 니체의 인생수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송동윤 엮음, 강동호 그림 / 스타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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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 송동윤 (옮김) | 강동호 (그림) | 스타북스 (펴냄)

제목은 [나는 왜 니체를 읽는가]이지만 이 글을 읽으면서 왜 이 시대에는 다시 니체를 호출하고, 그를 원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저마다 스스로에게 다가오는 니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정의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니체라는 철학가는 이 한 마디에 너무나 유명해졌다. 바로 신은 죽었다는 말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여 신의 죽음을 허무주의로, 무신론으로 말하고 퍼뜨렸지만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바로 교회의 죽음이었다. 스스로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라는 니체의 가르침을 뒤로하고 사람들은 뒤에서 그의 언변과 행동을 수군거리기에만 바빴다. 그렇다면 니체의 가르침은 그 시대에만 유효했던 것일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비판했던 것일까? 지금 시대에 모두들 니체라는 철학자를 다시금 호출하고 그의 사상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위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총체적인 위기 상황이다. 다만 그 위기가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오는지 모를 뿐이다. 오히려 더 위험한 것 아닌가?

니체의 글 중에서 고통에서 느끼는 환희라는 것이 있다. 고통에서도 환희를 느끼는 인간, 그리고 그 고통이 다가올 때 그것을 준비하는 것... 자신의 몸가짐을 바로 하고, 씀씀이에 주의를 기울이며 신경을 바싹 세우고 경계하는 것... 왜 고통인가? 우리는 고통이 올 때 비로소 배우기 때문이다. 고통이 올 때 아픔을 느끼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무통의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고통이 없음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병들었음을 알 지 못한다. 온몸이 썩어들어가고, 악취가 나는 대도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모른다. 자신은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얼마나 병 들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주의의 사람들만 애탈 뿐이다. 실제적인 무통의 고통과 비견해서 영혼의 불감증을 느끼는 사람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라는 니체의 가르침,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현실을 돌아보라는 그의 말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들이다.

니체는 초인을 강조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항해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자가 초인이다. 자기 혁명, 의지의 인간인 것이다. 초인은 죽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또한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적극적 인간으로 초인의 삶이란 필수적으로 고통이 수반되는 삶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니체에 대한 글 중 저자 자신이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한 번쯤 읽어야 할 내용을 뽑아서 정리한 책이다.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그날 그날 상황에 따라서 원하는 페이지를 하나씩 읽어가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니체의 열정적인 문장들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성경의 잠언 혹은 전도서가 생각난다. 하지만 물론 그것과는 다르다. 니체의 철학은 너무나 인간적이니까 말이다. 또한 이 책 곳곳에 들어가 있는 그림들은 책을 볼만한 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니체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책인 것같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왠지 더 니체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과연 나에게 니체는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의 니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더 갖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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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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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닮았다』​​

칼 짐머 (지음) |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유전학에 대한 모든 정보가 망라되어 있는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이다. 사실 표지 속 인물들의 얼굴 모습으로 제목을 짐작했다. 하지만 아마 중의적인 표현이 있으리라... 지은이 칼 짐머는 30대 이후로 아이를 출산하면서 의사로부터 유전병에 대한 경고 아닌 경고를 들어야 했고, 후에 아내에게서 나는 듯한 웃음소리를 딸 샬럿에게 들었다고 한다. 웃음이 웃음소리였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표지 속 두 인물은 미소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닮은 듯도 하다.

책의 내용이 얼마 전에 무척이나 잘 읽었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속의 내용도 떠오르게 하고, [총, 균, 쇠] 같은 벽돌 책이 떠오르기도 하다. [사피엔스]나 다윈은 말해 무엇하랴... 아마 이 책이 유전학에 대한 모든 내용을 방대하게 또한 세밀하고도 친근하게 다른 이유에서 일 것이다.

가장 유전학에 대해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비극이다. 특히 홀로코스트로 대변되는 유대인들의 처형은 우월한 코카서스 인종을 키우고 열등한 민족을 없애려는 우생학에서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인종이 사실 우수하다는 말인가? 형질의 유전은 실로 광범위하고 세포 마디 마디에 포개어진 수조개의 세포들은 각기 서로 다른 가계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들이 유전이 될지 인간들이 어찌 알 수 있는가? 히틀러는 사실 볼품없는 인물이었음에도 그가 독일의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언변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대중을 다스릴 줄 아는 그 기술, 말솜씨... (아, 그에게 그러한 언변술이 없었다면 무척 좋았을 것이다.)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자식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나 때도 저랬는데... 아, 나 닮으면 어떡하지? 혹은 하나도 안 닮았네, 저런 녀석은 어디서 난 거야? 아니면 내 속 이런 유전자가 있었다니, 천재 아닌가? 등등...

아마 모두들 자식으로 대물림되는 그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쉽게 말해 대물림된다. 그 자체가 유전이 아닌가? 하지만 그 대물림이라는 것은 정말로 어떤 형질이 내려올지 모르고, 조상의 조상까지 거슬러올라가야하는 실로 방대한 여정이다. 그래서 아마도 사람들은 그렇게 퍼센트에 민감한가 보다. 확률, 퍼센트.... 그리고 그 속에는 또 나만 아니면 돼... 아니면 설마 내 상황이 저렇게 되겠어? 하는 기대와 망상이 뒤섞인 바램이 존재할 것이다.

책 속에 나온 모든 예시들이 흡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잘 읽히고 흥미로웠다. 저능아에 대한 연구 [칼리카크 가족]의 이야기, 익히 아는 펄 벅에 관한 이야기, 네안데르탈인의 DNA의 비밀, 키메라에 대한 이야기 등등이 유전에 얽힌 사례들로 나와있다. 또 유전이라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달되는 유전자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만들어내는 가계도에도 존재하고, 몸속에서 우글거리는 미생물의 진화, 또한 과학기술 역사 등등 역시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갱신되는 유전의 정의들에 포함된다.

사이코패스를 연구했던 한 과학자가 자신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그 자신이 바로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모두 지닌 놀랄만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과학자가 사이코패스로 성장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 그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사랑했던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그 축이 없었다면 그는 자신도 희대의 사이코패스가 됐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사례는 아마 많을 것이다. 일례로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어느 백인이 자신의 유전자를 검사했다. 그러자 그 자신의 조상이 무려 80퍼센트 흑인의 핏줄에서 왔음을 알게 된 사례 역시 흥미로운 부분이고 말이다..

유전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 순간 나의 피로 흐르는 유전자의 서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끊임없이 갱신할 유전자의 미래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그때는 분명 지금과 같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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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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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소설은 첫 장면부터 매혹적인 상황으로 독자를 이끈다. 만일 당신이 알몸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만 프랑, 우리나라 돈으로 천오백만 원 정도 누군가에 의해 주워지는 제안을 받았다면 어찌할 것인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말이다. 그깟 돈 없으면 그만, 벌면 되지 하겠지만... 소시민에게 그런 제안은 솔깃하기 마련이다. 루이즈가 굳이 누드모델의 지인을 예를 들지 않아도 그것은 한 번의 모델이 되어주면 그뿐인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가엾은 루이즈는 단골손님이었던 의사 티리옹을 그만 믿어버렸다.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덕분에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알몸으로 호텔을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고, 티리옹은 반쪽 얼굴이 날아간 채 호텔 객실 바닥을 어지럽혔다. 후에 둘의 관계의 비밀이 밝혀지지만 초반에 읽어서는 도대체 티리옹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루이스 앞에서 그런 결정을 내려야 했는지...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한 이후 루이스가 맞닥뜨려야 할 고통에 대해서는 왜 생각할 수 없었는지 말이다.

소설은 여러 가지 인물들의 시선에 의해 구성된다. 루이스의 시점이 있고, 우연히 탈영병으로 인연을 맺게 된 전혀 성향이 다른 가브리엘과 라울 병장에 의한 시점 및 페르낭의 비밀스러운 일에 관련된 것, 마지막으로 공보국에서 가짜 뉴스를 사람들의 입맛대로 주무르고 퍼나르는 데지레의 시점에서 이루어져 있다. 모두들 전쟁의 참상들이 만들어낸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다. 각기 다른 위치에서 시작되지만 소설 중후반부터 이들이 하나로 모아지는 장면은 소설의 백미 중의 백미였다.

이 글에서 놀라운 부분은 전쟁통에서 천여 명이나 되는 죄수들을 이동시킨 일이 바로 실화라는 점이다. 바로 [수감자 집단 이감]이라는 에피소드가 실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반란, 탈출 시도, 행군 거부의 죄목 등으로 죄수들은 사살되었고, 파리를 출발할 때는 1865명이었던 수감자 중 귀르스 기지에 도착한 인원은 무려 43프로에 달하는 845명이 빠져있었다는 점이다. 그 많은 죄수들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 한 가지 더하자면 라디오 방송에서 데지레가 전하는 소식은 물론 대국민 선동 가짜 뉴스였지만 간혹 상당수가 괴상하게 느껴진 실제 사건들이라는 점 역시 놀라운 점이다.

루이즈의 임신에 대한 갈망 부분을 묘사한 대목은 왠지 계속 되짚어보게 된다. 루이즈는 임신을 하지 못한다면 결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원하지만 그 사람의 아이를 갖지 못할 경우 다른 사람과의 잠자리도 서슴치 않는다. 단, 이것은 그저 임신하기 위한 성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마지막 루이즈가 자신의 나팔관 이상을 알고 더 이상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스스로의 여성성을 부각시키지 않으려고 머리를 짧게 깎은 부분들... (아이러니하게도 짧은 머리는 루이즈의 외모를 오히려 더 빛나게 해주었지만) 이러한 루이즈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화두들이 있다. 아이를 낳지 않고 산다면 왜 결혼을 하는 걸까? 그냥 그저 둘이 살아도 좋지 않으려나... 결혼으로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고 싶지않다면 그냥 사는 것으로, 보다 법적인 구속력으로 가지고 인간관계까지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면 결혼제도를 택하는 것도 있겠다. 더 나아가 과연 결혼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까지도 생각은 뻗어 나간다. (과연 무엇일까? 현대 사회의 가족제도에 대한 생각까지... 아, 머리가 복잡해지는군)

이 소설은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를 그린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우리 슬픔의 거울]을 통해서 피에르 르메트르를 알았다. 그를 알고 나니 그의 나머지 두 소설 역시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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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세기 - 사회들의 기원에 대하여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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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세기』​​

에드워드 윌슨 (지음) | 데비 코터 카스파리 (그림) | 김성한 (옮김) | 사이언스북스 (펴냄)

당신은 진화론인가? 창조론인가? 다윈의 혁명적인 등장 이후 지속된 과학적 발달로 왜 인지 이런 논의 자체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아담과 이브에 의해서 이뤄졌든지, 유인원에서 나왔던지 말해봐야 그저 해묵은 논쟁거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에드워드 윌슨은 명백하게 책에서 밝히고 있다. 다윈이 제시한 혁명적인 이론, 유인원을 통한 인류 진화는 이제는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진화는 바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말이다. (어떤 것을 믿을지는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일 따름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이것은 믿음의 영역을 넘었다고 보는 듯하다.)

어떤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냐가 바로 당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는 서문에 총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한다. 그중 두 가지를 전제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마지막 하나를 답변할 수 있다고 윌슨은 말한다. 첫 번째 질문은 우리는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는 가이다. 두 번째 질문은 무엇이 우리를 창조했는가?이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위 두 가지 질문에 답한다는 전제하에서) 미래에 인류는 어떤 존재가 되고자 하는가이다. 인류가 언제까지 지구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바로 마지막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리라...... .

책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선택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한 대목이었다. 침팬지들 집단에서 보이는 참혹할 만한 폭력성이 어떤 인류학자는 인간 행동을 따라서 모방한 결과라고 말하고, 다른 인류학자는 모방과는 별개로 나름 진화론적 학습이라는 것이다. 폭력을 써서 한 집단이 우세하면 그 집단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번식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인류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인류의 폭발적인 성장은 바로 수렵, 채집에서 벗어나서 작물을 재배하고 짐승을 길들여서 가축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아마 인류는 혈연적, 지리적으로 한 밴드 내에서 묶여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밴드를 지키고자 나름 폭력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사는 인류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이나 마야 문명을 멸망시킬 수 있던 것도 단연코 정착하여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조직력이 그것이다. 조직이 잘 갖추어진 동물 집단들은 영구적으로 이어질 잠재력의 소유자들이다. 초보적인 사회들은 멸망한다. 아마도 엄청난 숫자의 사회들이 그 명을 다했을 것이다.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저자는 이것을 바로 진사회성 사회라고 일컫는다. 진사회성은 진화에서 희귀하게 나타나는 것일 수 있고, 이런 사회에서 이타성과 복잡성이 나타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집단이 개미집단과 인간들이다.

한쪽 눈은 실명하고, 소리까지 들리지 않게 된 저자의 생태학, 생물 다양성 연구에 대한 업적은 실로 놀랍다. 저자가 아마 한곳을 오로지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신체적 한계가 한 역할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하게 된다. 곤충들의 페로몬 소통을 밝혀내고, 자연 선택이 사회성을 발달시켜서 진화를 일으킨다는 것, 진 사회성 집단이 아주 일부에만 나타난다는 점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이 책을 통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번 읽고 덮었던 적이 있었는데 [새로운 창세기]를 읽으니 [사피엔스]와 통하는 점이 무척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창세기가 다시 쓰인다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 매듭지어져야 할까? 그리고 그곳에서 인류의 역할은 어떻게 다시 부여받아야 하는가?

다수의 과학자들은 지구에 남은 시간이 얼마들 없다고 한다. 그 시간이 다 가기 전에 인류의 역할을 다시 규정지어야 할 것 같다. 지구의 마지막 파괴자로서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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