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신을 죽일 때
혼마 아키라 지음, 이주희 옮김 / 인디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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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게 되면 당사자에게 어느 정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간에. 하지만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난 그런 사랑을 보면서 조금은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자신의 신념, 가치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버리면서까지 사랑을 지키고 싶은 것은 분명히 멋져 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영원히 그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그런 것이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랑이 이루어졌습니다'로 끝나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을 때는 확실히 그런 결론이 편하긴 하다.

뉴욕 여행을 떠난 타케루는 도착하자마자 날치기를 당해 다운타운에서 헤매다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때 눈에 띄인 한 남자에게 타케루는 도움을 처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레이. 훌륭한 외모와 차림새를 보아서는 성공한 사업가처럼 보이지만, 그는 실제로는 뒷세계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타케루는 아무것도 모른채 레이에게 푹 빠져들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조차 몰랐다.

마피아 간부인 레이는 타케루를 보면서 예전 보스의 여자를 떠올린다. 그녀는 레이가 짝사랑했던 인물로 아이를 가진 후 보스의 곁을 떠나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조차 알 수 없다. 총기 사건으로 중태에 빠진 보스, 흔들리는 레이의 조직. 게다가 타케루가 레이의 정체까지 알게 되어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마피아 X 순수 청년이라. 일단 이런 커플링을 두고 생각하자면 스토리는 뻔해진다. 순수 청년쪽이 마피아를 밀어내고 거절하다고 튕기다가 결국 순정을 받아주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피아를 야쿠자로 놓고 생각해도 마찬가지) 그치만 역시 혼마 아키라랄까. 오히려 순수 청년쪽이 마피아인 레이에게 끌리고, 먼저 다가선다. 레이의 경우 첫사랑 그녀와 닮은 타케루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놓고 보자면 레이는 이미 그녀에 대한 마음을 접은 상태이다. 아, 깔끔해. 옛날의 그녀란 것은 로맨스에서 빠지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 작품은 그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다.
 
게다가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버린 타케루를 처리하는 장면. 이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압권이 아닐까 싶다. 또한 조연 역시 멋지구려, 라는 감탄이 나왔는데.. 체스터, 정말 멋진 캐릭터이다. 레이와 타케루가 가진 비밀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사실이 조직에서 들통이 나면 체스터 역시 죽을 목숨이 되겠지만, 그 모든 걸 걸고 레이를 지켜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물론 체스터에게 있어 레이의 존재는 남다른 존재이겠지만, 그부분 역시 질질 끌거나 찌질한 부분이 전혀 없다. 너무 깔끔한 스토리랄까. 그래서 그런지 긴장감은 별로 없다는 게 약간의 흠?

타케루는... 살짝 찌질할 뻔 했다. 레이가 하지 말란 것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게 된다면 레이는 영원히 마피아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타케루는 또다른 운명에 처해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이들의 이야기에 있어서는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지도.

뒤에 수록된 편애의 의학은 단편인데, 앞에 나온 사랑이 신을 죽일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어린 시절의 두 친구 이야기인데, 좀 빤한 이야기랄까. 아츠시나 슈이치나 어릴 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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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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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시리즈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시리즈 첫번째 책인『우부메의 여름』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몇년전 영화로 봤을 때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작품이란 것도, 교고쿠 나츠히코란 작가도 몰랐었다. 그후 항설백물어나 망량의 상자는 애니메이션으로 봤고, 책은『광골의 꿈』으로 처음 접했다. (항설백물어가 먼저였나?) 하여간에 책보다는 다른 장르로 먼저 접했던 셈인데, 책을 읽고 나니 역시 책이 제일 좋다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부메의 여름 영화 내용은 간단하게만 기억이 난달까. 아마도 러닝타임이란 게 있으니 많이 축약되었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접하는 작품처럼 신선했다.

1950년대의 일본 도쿄. 유서깊은 산부인과 의원인 구온지 의원의 사위가 밀실에서 사라지고, 그 딸은 20개월째 임신중이다. 흉흉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구온지 의원의 또다른 딸인 료코가 이 사건을 에노키즈의 탐정사무소에 의뢰하게 된다. 세키구치는 에노키즈와 함께 구온지 의원을 찾지만, 에노키즈는 이 사건은 경찰에 넘기면 된다는 수수께끼같은 말만 하고 사라진다. 료코에게 기묘한 감정을 느끼는 세키구치는 고집을 부려 스스로 수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조사를 할수록 더욱 수수께끼 같은 상황과 마주치게 되는 세키구치는 결국 자신이 스스로 봉인해두었던 과거와도 마주치게 되는데... 과연 구온지 의원에서 벌어진 기이한 사건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부메의 여름은 구온지家라는 특수한 가문이 가진 엄청난 비밀을 그 중심으로 하는 소설이다. 산부인과를 운영하기전 그들이 해왔던 일과 구온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비극이 현재의 참극을 만들어 내게 된다. 가계의 특수한 유전이 만들어낸 비극이랄까. 어쩌면 그 상황에 무지했기에 비극을 끊어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주가 걸린 집안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태어나는 아이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 왔을 것이고 그것은 과거의 망령처럼 이 집안을 따라 다녔다. 또한 소녀에게 가해진 끔찍한 일들은 소녀가 응당 믿고 의지해야할 어른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소녀를 크게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또한 데릴 사위로 들어온 마키오 역시 그 참극의 방아쇠를 당긴 인물이었다. 십몇년 전의 사소한 실수가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줄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전쟁에 참가했다 큰 부상을 당한 후 그가 겪었을 좌절감은 그의 사고방식을 위험할 정도로 바꿔 놓았다. 교코와의 결혼 생활이 엉망이었던 것도 그것에 연유한다.

모든 일들은 따로따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모든 사건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된 비극으로 시작했으며, 그 비극을 끊어내지 못하고 질질 끌어온 자들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료코가 했던 일은 분명 비도덕적인 일임에 분명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그녀의 다른 인격에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만 했던 료코의 행동 뒤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게 된 아픔과 절망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교코 역시 남편에 대한 애증으로 인해 그렇게 변해 버려 너무나도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얼마나 간절히 바랐으면 그런 상태에 이르렀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이런 진실을 꿰뚫고 있던 교고쿠도가 처음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비밀이 햇빛속에서 드러나게 되었을지라도, 이런 비극으로 끝나게 되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서점 주인이자 신관인 추젠지 아키히코(통칭 교고쿠도), 소설가 세키구치 다츠미, 탐정 에노키즈, 형사 기바 슈타로는 교고쿠도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인물이다. 그외에도 형사 아오키라든가 검시관이라든가 하는 사람도 종종 등장하지만 일단은 이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수수께끼같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교고쿠도 시리즈이다. 따지고 들자면 결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은 교고쿠도이지만.
 
이들은 상당히 강한 개성의 소유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세키구치 다츠미의 입장에서 서술되는데, 세키구치는 이들 중 가장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독자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세키구치를 위한 것이란 (혹은 독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에노키즈의 경우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사람인데다, 다른 사람의 기억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 보니 교고쿠도가 굳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모든 진상을 꿰뚫어 볼 줄 알기 때문이다. 기바의 경우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고 자기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세키구치가 들을 장광설이 필요 없는 경우로 보인다. 그래서 교고쿠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렇지만 교고쿠도가 그렇게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세키구치의 의문이 해소가 되지 않으므로(그건 나도 마찬가지) 장광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교고쿠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모르는 세상을 들여다 보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건 아마도 세키구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 들게 된다. 그게 교고쿠도의 첫번째 매력이다.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교고쿠도의 두번째 매력이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교고쿠도는 세상일에 대해 무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 세키구치를 울증의 늪에서 건져 올린 사연만 봐도 그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세키구치가 친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친구가 되기 전 먼저 다가온 쪽이 교고쿠도란 것을 생각해 본다면 교고쿠도는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말로는 세키구치를 무시하는 듯 해도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거나 속으로 세키구치의 마음이 다칠까 걱정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달까. 이러한 부분은 이 작품이 교고쿠도 시리즈 1권이기 때문에 자세히 드러난다.

이렇듯 인간적인 매력과 풍부한 지식, 제령사로서의 출중한 능력을 골고루 갖춘 교고쿠도와 세속의 소용돌이에 자주 휩쓸리는 평범한 사람 세키구치, 다른 별에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로 별난 에노키즈, 무뚝뚝하지만 우직한 형사 기바의 이야기에 기묘하고 기이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미스터리의 절묘한 조화는 작가의 데뷔작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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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발바닥 일가 1
타지마 타지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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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젤리라고 생각하면 디저트나 간식으로 먹는 젤리를 생각한다. (쁘*첼같은 것. 나의 경우에는 제*뽀 세대다. (푸하)) 그러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젤리란 말을 들으면! 그렇지, 육구를 생각한다. 그렇다면 육구(肉球)란 무엇이냐. 개나 고양이의 발바닥의 볼록한 부분을 말한다. 즉, 말랑하고 볼록한 고양이 발바닥 부분을 젤리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분홍색 발바닥은 딸기 젤리, 검정색 발바닥은 포도 젤리라고 부른다. 참고로 우리 티거는 포도 젤리, 우리 보리는 딸기 젤리와 포도 젤리가 적절하게 섞여 있다.

『젤리발바닥 일가』는 네코지마家의 가족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로 아빠 니케, 엄마 타마, 딸 치로, 집 나갔다 돌아온 오빠 곤이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곤은 뒷부분에 등장하기 시작) 이들은 사람들처럼 산다. 그러나, 사람은 전혀 나오지 않는 만화이며, 등장하는 고양이와 개들은 사람처럼 회사에 가고, 학교에 가고, 시장을 보고 문화 생활을 하지만, 하는 행동 하나하나는 고양이의 행동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그루밍이나, 꾹꾹이를 비롯해 상자만 보면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감추지 못한다거나,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잡고 싶어 안달하는 행위들, 고타츠만 보면 들어가고 싶은 욕구에 시달리는 것들. 그러한 것들이 이 고양이가족의 생활 속 곳곳에 등장한다.

작품은 초겨울무렵부터 시작해 네코지마家와 그 주변 개와 고양이들의 1년간의 다사다난한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특유의 명절로는 히나마츠리, 칠석, 설날 등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그외의 행사로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크리스마스, 타마의 친구의 결혼식 등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다. 치로의 학교 생활편으로는 운동회를 비롯해 소풍이야기도 있고, 이 가족들의 문화 생활로는 도예 교실, 뜨개질 교실 이야기도 있다.


이 장면은 히나마츠리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이다. 치로를 위해 치로의 할아버지가 마련해 주신 무려 7단짜리 히나제단. 할아버지의 급방문에 당황한 엄마가 히나 제단을 차리다가 그만 히나 인형의 목을 부러트리게 되었고,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엄마는 히나 네코로 변신한다나 뭐라나. 이 장면을 보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이렇듯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이 책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빠의 고달픈 사회(및 가족) 생활이나 엄마의 주부로서의 이야기 등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엄마도 여자이다 보니 자신의 통통한 몸매에 대해 느끼는 점이라든지, 식사 준비에 있어서의 고단함이라든지는 고양이 가족을 넘어 사람 가족의 이야기도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다양한 고양이 및 개들의 등장도 즐길거리 중의 하나이다. 특히 견종마다의 특유한 모습을 잘 표현한 개들의 모습은 잔재미를 더해준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들은.... 그냥 고양이들이구나. 하여간 그렇다.


이렇듯 고양이 특유의 행동을 묘사한 부분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그들의 삶을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고, 우리 고양이들을 생각하면서 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젤리발바닥 일가』. 2권도 얼른 나와줬으면 좋겠다. 기다리고 있겠다냥!

사진 출처 : 책 본문 106p, 책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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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도 지금 이거 읽고 있는데요. 깨알같은 일상 에피소드들이 너무 웃긴겁니다. 정말 고양이만 잔뜩! 이렇게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만을 위한 이야기는 처음이예요. :)

스즈야 2011-01-22 01:23   좋아요 0 | URL
그쵸.... 짤막한 이야기 속에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지... 게다가 엄마 고양이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여자의 마음에서 빵 터졌다능... ㅋㅋㅋ
 
로마에서 말하다 -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이야기
시오노 나나미.안토니오 시모네 지음, 김난주 옮김 / 한길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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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극장에 다녀왔다. 한국 영화였는데,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였다.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웃기며, 적당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엄마와 극장을 나오면서 둘이 나눈 대화는 "재미있네." , "응, 그러게." 가 전부였다. 거짓말 하나 안보탠 실화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함께 극장을 가본 게 얼마만이던가. 작년에 한번, 그전에는... 거의 십년전?

그러고 보니 아버지랑 극장에 가서 봤던 첫 영화가 생각난다. 벤허였다. 긴 러닝타임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그 이야기의 배경을 이해조차 하지 못할 나이였다. 그 영화를 보고 기억나는 장면은 마차 경주 장면이었다. 한바퀴를 돌 때마다 물고기 조각을 한마리씩 올리던가, 내리던가. 그때의 기억은 그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후에 벤허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곤 한다. (오해없으시길, 아버지는 지금도 곁에 계신다. 그저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처음 극장에 갔던 날이 유난히 생각에 오래 남아서이다.)

『로마에서 말하다』는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작가 시오노 나나미와 그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가 나눈 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들인 안토니오 시모네는 영화 감독을 꿈꾸는 사람으로 이 책이 씌어질 당시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 대한 지식이나 영화판에 대한 지식이 깊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 대한 비판이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책 표지를 보면 총 네편의 영화의 한 장면이 나와 있다. 왼쪽 위는 로미오와 줄리엣, 오른쪽 위는 스파이더맨, 왼쪽 아래는 사브리나, 오른쪽 아래는 시네마 천국이다. 모두 내가 재미있게 봤고 좋아하는 영화라 참 반갑다.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할을 맡은 올리비아 핫세는 내게 있어 영원한 줄리엣이다. 줄리엣하면 올리비아 핫세, 올리비아 핫세라고 하면 줄리엣. 나에게 다른 줄리엣은 필요없달까. 그리고 흑백영화라고 하면 오드리 햅번이다. 난 고전을 꽤 좋아해서 오드리 햅번이 등장하는 영화는 거의 다 봤고, 그중에서 로마의 휴일은 여러 번 봤다. (로마의 휴일을 좋아하는 팬들은 정말 많을 것이다) 이런, 표지 이야기만 하다가 날 새겠다. 

본문은 총 31개의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340페이지의 분량인 것을 감안한다면, 각각의 꼭지에서 다루는 내용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각 꼭지들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른 꼭지들과 연관되어 있는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난 책을 읽으면서 총 네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이 책을 정리해 봤다. 

이탈리아 영화 · 미국 영화 · 일본 영화 · 독일영화

시오노 나나미의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는 이탈리아인이다. 이탈리아인으로서 외국인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영화가 10편 소개되어 있는데, 그 형식은 네오리얼리즘, 희비극, 희극, 코스튬 대작등으로 나뉘어 지지만 그 속내용은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이탈리아인들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만들어진 영화가 많은데, 객관적이면서도 진실한 내용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미국 영화에 관해서는 78회 아카데미상 수상식에서 상을 받은 <크래쉬>, <앙코르>, <카포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는 꼭지와 미국적인 영화를 소개하는 꼭지로 나뉘어 진다. 미국적인 영화로는 스파르타인들을 다룬 <300>이 거론되는데, 역사는 무시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성들의 전투란 것을 멋지게 잘 표현했다는 글이 참 재미있다. 그외의 미국적인 영화로는 <스팅>타입의 영화다. 이런 영화는 "질 좋은 악이 머리를 써서 질 나쁜 악을 섬멸한다"는 줄거리를 가진다. 악당이 악당을 쳐부시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악당이 있고 나쁜 악당이 존재한다. 이런 영화는 단순히 총을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영화가 아니라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촘촘한 복선이 깔린 영화랄까. 나도 이런 영화, 아주 좋아한다. 

일본 영화는 큐트한 <훌라 걸스>, 퍼니한 <선거>, 그리고 리스펙트할 수 있는 <굿바이> 세편이 소개된다. 모두 일본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특히 선거의 경우에는 일본 선거 시스템과 이탈리아의 선거 시스템을 비교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 영화의 경우 <타인의 삶>이란 영화가 소개되어 있다. 공산국가 시절 다른 사람의 삶을 감시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에 관한 내용인데, 무척 흥미로웠다. 언젠가 꼭 한 번 보고싶은 영화다. 

그외의 영화 이야기중에는 다 식은 후에 제공되는 요리같은 복수를 다룬 복수 영화, 과거는 현재에도 반복될 것이다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들과 안토니오 시모네가 정의하는 B급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안토니오 시모네의 B급 영화에 대한 정의가 무척 흥미롭다. 첫째로 예술작품을 지향하지 않아 유명영화제에서는 절대로 상을 받지 못하는 영화들, 둘째로 평론가들에게는 무시당해도 관객 동원에는 성공하는 영화들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B급 영화란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의 B급 영화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그중 <람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는데, 나같은 경우 그저 액션영화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안에는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귀환병의 아픈 이야기가 숨어있었다고나 할까.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내가 영화를 볼 때 얼마나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참, 잊지 마시길.
각 꼭지의 뒷부분에는 그 꼭지에서 거론된 영화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다. 그 페이지들을 보면서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도 즐거울 듯.

영화 감독들

이 책의 수많은 꼭지들 중 영화 감독과 그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총 9개이다. 엘레강스한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평해지는 루키노 비스콘티, 시칠리아 출신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날카로운 아이러니와 인간성에 대한 조롱을 담은 영화를 만든 로버트 앨트먼, 카메라와 렌즈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명감독 스탠리 큐브릭,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영화로 담아낸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해 시드니 루엣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비교 분석, 마틴 스콜세지, 시드니 폴락,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의 영화에 대한 철학과 그들이 만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영화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들 감독의 모든 작품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은 각 꼭지의 주제에 맞는 영화와 두 모자가 좋아하는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내겐 낯선 영화도 많았고, 나는 좋아하는 영화인데 언급되지 않아 약간은 서운한 부분도 있었다. 

여기에 거론되는 감독중 주세페 토르타토레 감독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다수 만들었다. 자신이 시칠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특히 모니카 벨루치가 주연을 맡은 <말레나>라는 작품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영화 배우들

영화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는 총 7개 꼭지에 등장한다. 첫 테이프는 감독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보여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로 시작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스트론조와 필리오 디 푸타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는 뒤에 나올 아이스 레이디 이야기와 비슷한 전개를 보여주는데 일단 스트론조와 필리오 디 푸타나 이야기를 해보자. 내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낀 스토론조는 나쁜 남자, 육식남 이미지라고 할까. 숀 코너리가 그런 남자라니, 난 숀 코너리 참 좋아하는데 말이지. 내가 모르는 숀 코너리를 만난 느낌이었달까.

무드남, 초식남으로 여겨지는 필리오 디 푸타나는 앞서 언급된 마르첼로 마스트로 얀니, 조지 클루니 그리고 대니 드비토. 앞에 나온 둘은 이해가 되는데, 대니 드비토라구??? 나도 놀랐다. 하지만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되었달까.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아이스 레이디로 칭해지는 여성 배우들은 어떤 배우들일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은 여성들이다. 그 배우들로는 마돈나, 안젤리나 졸리, 조디 포스터. 이들은 사랑보다 일을 더 중시하는 내면이 차가운 여성들이라 묘사된다. 뭐, 사람 나름의 생각이긴 하겠지만, 난 이 말에 반쯤 동의한다. 근데 더 재미있는 것은 안토니오 시모네의 이들 여성에 대한 생각이다. 피곤한 여성 타입이라고 하던가. 하긴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쿨하고 멋지겠지만, 남자들 입장에서는 감당이 안되니 피곤하게 여겨질 수도. 

이외에도 래퍼 출신 배우들, 요절한 배우들, 조연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래퍼 출신 배우들은 이 책에서 언급된 배우들 외에도 꽤 많다. 근데 이 책에서 언급된 배우가 아닌 아이스 큐브가 연기하는 것을 보면 문득 대사치는 것이 랩하고 있는 듯하달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요절한 배우들에 이름을 올린 배우들은 히스 레저, 리버 피닉스, 브래드 랜프로. 그들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들을 압박해 죽음으로 몰고간 영화계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브래드 랜프로는 누군가 했더니,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에 나왔던 배우였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영화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영화는 주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난 조연 배우들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여기에서 언급된 배우들 중 채즈 팔민테리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이다. 무척 강한 인상을 주는 배우라 조연으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기막히게 조연을 연기하는 배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조연 배우들이 주역 배우들 보다 연기를 더 능숙하게 한다고. 요즘 영화판은 90%이상이 그렇지 않을까?

영화판 뒷담화

안토니오 시모네는 영화 감독을 꿈꾸며 지금은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다. 그런 그가 들려주는 영화판의 이야기는 일반인인 내가 보기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는데 이탈리아와 미국 영화 제작에 모두 참가한 경험이 있기에 두 나라 간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무척 흥미롭다. 그가 보는 미국 영화는 상업이고, 이탈리아는 예술을 지향한다. 두 나라는 영화 제작 준비기간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 미국은 2년, 이탈리아는 겨우 2달이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미국 영화의 장점만을 말하는 것 같지만 두 나라의 장단점을 골고루 비교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시칠리아 섬에서 촬영을 할 때 마피아가 용역업체로 참가한다는 것이다. 마피아 이야기를 다뤄도 아무렇지도 않게 참가하는, 즉 돈만 되면 뭐든 하는 시칠리아 마피아의 철저한 현실주의적인 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게 이탈리아 영화판의 흥미로운 점이랄까.

이외에도 의상담당에서의 독보적인 존재인 밀레나 카로네로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스탠리 큐브릭이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작업을 해 왔던 그녀의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에 대한 평가와 함께 인간적인 부분을 함께 다뤘다고나 할까.

로마에서 말하고, 한국에서 듣다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영화계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와 안토니오 시모네가 관심을 가고 있는 영화 감독들과 그들이 만든 영화, 좋아하는 배우들과 그들이 출연한 영화, 그리고 영화 제작 현장의 뒷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감정이 담뿍 묻어나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비평가처럼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느끼는 바를 편안하게 풀어 놓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만약 이들이 아들과 어머니 사이가 아니라면 이렇게 편안한 어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그래서 더 친근감있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시오노 나나미의 인간의 삶에 대한 넓은 시각과 안토니오 시모네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의 눈길이 합쳐져 탄생한『로마에서 말하다』는 아무 페이지나 펼치고 읽어도 재미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내용이 아니기에 책을 잡으면 한자리에서 다 읽어야 할 부담도 없다. 하지만, 내 장담하리라. 이 책을 읽다 보면 둘의 대화에 푹 빠져서 한자리에서 다 읽게 될 거란 것을.

사진 출처 : 책 표지

덧>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조금 어색한 부분 몇 가지에 대한 언급

본문 중에 '고급한 술'이나 '고급한 프로'라는 표현이 있는데, 우리말로 보자면 꽤나 어색한 표현이다. 고급 술이나, 고급스러운 술 혹은 고급스러운 프로라는 표현이 우리말로 더 잘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표현은 일본어를 직역한 듯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리고 일본식 표현이 또 있다. 소녀만화란 것이 바로 그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순정만화라고 한다. 소녀만화를 주로 읽는 층은 여성들기에 소녀만화란 표현을 쓴다. 소녀가 등장한다고 소녀만화는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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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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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을 받고 책 상태를 확인하며 이리뒤적 저리뒤적 하다가 sida A, side B라는 표현을 보고 문득 테이프와 LP판을 떠올렸다. 요즘 나오는 CD는 한쪽면 밖에 없지만, 테입이나 LP판은 A, B면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테이프는 지금도 나오긴 하지만 LP판은 오래전에 단종되었다. 무척 아쉬운 일이다. 예전에 음악을 들을 때는 LP판으로 들었던 적이 많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스크래치에도 바늘이 튀는 일이 생겨 보물 다루듯 다뤘던 LP판. 게다가 큼지막한 쟈켓 사이즈는 얼마나 멋졌던지. 내가 모으던 건 헤비 메탈 그룹 쪽이었던지라 쟈켓 사진을 보면서 흐뭇해한 적도 많았다. 감히 CD나 테이프 사이즈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으니까. 그런 것이 참 그립다.

 
side A의 표지 인물은 푸른색 마스크에 검은색 옷, 푸른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왠지 차갑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뒷배경까지 그런 느낌이다. 문득 상상을 해본다. 차갑고 절제된 이야기일까, 하는. 그러나 첫번째 작품을 읽으면서, 살짝 놀라게 되었다. 왠지 내가 이제껏 읽었던 작가의 작품 성향과 다른 느낌이었달까. 차분하다. 고요하다, 라는 느낌. 이 느낌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뒤로 넘어가면서 작가 특유의 이야기 느낌으로 점차 바뀌었다. 오히려 이게 더 익숙해달까. 어쨌거나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로 나누어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이렇게 산다

우린 이렇게 산다, 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은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근처>와 <누런 강 배 한 척>은 중년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근처>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남자의 이야기이고 <누런 강 배 한 척>은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둔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간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국 곁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삶에 대한 씁쓸한 자괴감과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었다. <굿바이 제플린>은 젊은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빽도 없고 돈도 없지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산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다. 돈을 벌기도 힘들고 사랑을 지키기도 힘들다. 그래도 끝까지 사랑을 지키려하는 이 남자, 이 남자는 딸기우유처럼 달콤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라는 소제목을 붙인 것은 과거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타지 성향을 띄든, SF성향을 띄든 상관없다. 그저 옛날 이야기라 생각된 것을 이렇게 구분했다. 사실 구분하기 좀 애매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양을 만드신 그분께서 당신도 만드셨을까?>란 작품이었다. 길을 걷다 갑자기 낯선 장소로 이동한 고와 도란 사람의 이야기인데, 그들은 작은 공간안에서 일정 시간만 되면 습격해오는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들이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 와서 그곳에 모자란 것을 채워놓고 간다. 갇힌 공간안에서 생각마저 갇혀버린 두 사람은 꿈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돌아 보게 한다. 우리는 과거의 삶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그리고 현재 자신을 둘러싼 것의 구속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까.

<크로만, 운>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부터 이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곤 했었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멸망과 창조로 이루어진게 아닐까, 하는. 그도 그럴 것이 세계의 불가사의한 유물을 볼 때, 저건 외계인이 만든 게 아니고 현대인들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혹은 정말 평행우주란 것이 있어서 그 우주들이 일시적으로 겹칠때 생겨난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간간히 하곤 한다. 증거는 없지만. 그리고 또다른 생각 하나. 거대한 세상속에는 자신만의 세상이 존재한다. 거대한 우주가 존재하고 그 속에 각 개인들의 작은 우주가 무수히 존재하는 것처럼.

<축구도 잘해요>는 마릴린 먼로가 자신의 전생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가장 작가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랄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앞의 설정에 따라 본다면 이건 미래의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SF물은 아니다. <깊>은 지구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안의 액체와 조직을 다른 물질로 바꿈으로써 그 압력에 견디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그것은 새롭게 창조된 또 하나의 자신일까, 아니면... 몸은 바뀌었어도 의식이 그대로라면 자기자신이 아닐까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이들은 그게 과연 자기자신일까,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건 정말 누구일까. 나는 하나의 자아로만 이루어져 있는 존재일까, 수많은 자아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일까.  <굿 모닝 존 웨인>은 냉동인간이 되었다가 몇천년 후에 깨어난 사람들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거 참, 웃지 못할 이야기로군. 우리의 미래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side B의 남자는 은색 마스크에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다. A면의 남자보다는 캐주얼한 차림이랄까. 왠지 차갑고도 뜨거운 걸 연상하게 되는 사진이다.

우린 이렇게 산다

첫번째 작품인 <낮잠>은 side A의 시작과 느낌이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라면 중년이 아니라 노년의 남성이 주인공이다. 이 남자는 현재 양로원에서 생활한다. 아내는 몇년 전 죽었고, 자식들은 나이든 아버지를 모시려 하지 않는다. 이 남자는 이곳에서 첫사랑을 만난다. 그녀는 그러나 이미 치매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 남자는 행복하기만 하다. 노년의 얼마남지 않은 생, 일장춘몽이 아니라 달디단 낮잠처럼 곱게 곱게 이어지길....  

<루디>는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한남자가 알래스카 여행 중에 어떤 남자의 공격을 받게 된다. 무차별 공격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목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의 시야는 너무도 좁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사룡(四龍)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龍+龍+龍+龍은 무림의 고수였던 네명의 사람들이 현대에까지 살아 남아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오랜 시간을 살아왔건만 인간 세상은 변함이 없구나.

<비치 보이스>는 군입대를 앞둔 네명의 청춘들 이야기이다. 그들의 엉뚱한 바다 여행이야기, 그 결말은?   

<별>은 제목은 참 예쁜데, 내용은 참 아프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서 (삑) 적금 깨고, 카드 긁고, 회사돈까지 횡령해서 모시던 여자친구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감옥에 갔다가 지금은 대리 운전을 하는 남자, 그 남자가 그때 그 여자를 다시 만났다. 배신하면 잘 살기나 하지, 그래야 복수라도 해줄텐데, 아쉽게도 그녀는 이혼할 위기에 애까지 뺏길 위기란다. 그래서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갈 정도로 술을 퍼마셨겠지. 그런 그녀를 보는 그 남자의 심리 변화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

<아치>는 자살을 하기 위해 다리 아치에 오르는 사람을 구하는 순경의 이야기이다. 그들을 설득하면서 자신의 삶을 문득문득 돌아보는 순경은 조금씩 자괴감에 빠져 자신도 뛰어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왜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가진 것 없고, 가질 수 없는 건 더 많고.

이렇게 살았을지도 몰라

슬(膝)은 선사시대를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또다른 빙하시대의 도래, 그러나 남자는 공동체와 함께 길을 나설 수 없다. 그의 아내는 열이 펄펄 끓고 새로 낳은 아이는 엄마의 젖이 없어 쫄쫄 굶는다. 어떻게든 먹이를 구해야지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그는 사냥을 나서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죽어가는 매머드. 하지만 매머드 역시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진 상태라 사냥은 불가능했고, 오히려 남자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굶어 죽어가는 가족을 보면서 자기 살이라도 뜯어 먹이고 싶은 남자의 마음. 그것이 슬(膝)이다. 지금의 우리 아버지들도 이렇지 않을까.

이렇게 될지도 몰라

<아스피린>은 갑자기 한국의 상공에 나타난 괴비행체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이다. 처음엔 모두들 두려워하지만, 결국 일상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의 정체가 뭣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러고 보면 아무리 큰 충격을 주는 일이 발생해도 결국 그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천부적인 적응력을 타고 났는지도.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는 중년의 자동차 영업맨의 이야기이다.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나고 지금은 실적도 제대로 못올리고 있다. 게다가 계약직. 이렇다 보니 집안 형편은 불보듯 뻔하다. 아들은 겨우 지방대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비싸 전세금을 빼서 등록금을 마련한다. 돈 나올 구멍은 없고, 돈 빠지는 구멍은 점점 커지고. 결국 화성에 차를 팔러 가는 남자. 그곳에서라도 고수입을 올리시길. 근데 화성에 차를 팔러 갈 정도가 되면 미래의 이야기인 듯 한데, 미래에도 우리의 삶은 이런 거야? 암울하군.

그러고 보면...

작가의 책은 모던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이다. SF나 판타지의 겉모습을 취하고 있어도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그 대상은 사람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라고 할까. 자신의 존재가 어떤 것인지 열심히 갈구해도 그 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런 것 때문에 무너지기도 한다. 어떤 작품은 엽기적인 유머를 동반하고 있지만 그 속은 결핍감으로 가득하다. 지금 상황이 어떻든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가여운 존재들. 그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치않을 것 같다. 과거보다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그 궁핍함은 여전하며, 그것은 미래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핍은 돈이나 그런 것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메말라가는 감정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신적 결핍이 훨씬 크다. 물론 둘 다에 해당되는 게 지금의 삶이지만. 그래서 웃을 수 없다. 그렇다고 울 수도 없다. 우리는 가면을 뒤집어 쓰고 현재의 역할을 잘 연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견딜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LP판을 보면 속지가 한장 꼭 들어 있었다. 지금 나오는 CD는 책처럼 꾸며져 있지만, LP판의 경우 워낙 얇아서 속지 한 장으로 앨범을 설명했었다. 쟈켓만큼 큰 속지였던 기억이 난다. 이 더블 아트북은 LP판의 속지라기 보다는 CD의 미니북같은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더블은 LP판으로 탄생하지 못했으니,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겠지.

이 아트북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헌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각 작품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가 수록되어 있었다. 코멘트를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책을 읽고 느낀 것과 작가의 의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어질. 이거 어쩌면 좋지? 이제껏 내가 쓴 이 글을 처음부터 수정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것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어쩌면 작가가 살아온 시간과 내가 살아온 시간의 길이가 달라서 일수도 있고, 작가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세상을 보는 눈의 폭과 너비와 깊이가 나와 다르기 때문 일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실려 있는 18편의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그중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역시 가장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왜냐하면 그외의 사람들은 내가 일방적으로 아는 사람이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는 그 단어만으로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자식들은 부모님의 사랑의 발끝에도 못미친다고. 그래서 그런지 여기에 등장하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자식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끝내 하고야 말게 되었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나는... 못난 자식일 뿐이다.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겠지.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가끔은 반성을 하면서.

사진 출처 : 더블 set, 더블 1권 표지, 더블 2권 표지, 더블 아트북, 더블 아트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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