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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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라는 달콤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성과 달리 호러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H.P. 러브크래프트의 책은 몇년전 앤솔로지 형식의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당시 읽었던 작품은 <아웃사이더>라는 작품이었다. 이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언젠가 꼭 전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새로운 번역으로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 이 책말고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다섯권으로 번역한 책이 있지만 번역 오류가 심하다는 말에 발만 동동 구르며 새 번역 재출간을 기다렸는데, 오래 기다리지 않게 되어 무척이나 기쁘다. 사정상 이제서야 러브크래프트를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역시 그 오랜 기다림은 허무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첫번째 작품인 <데이곤>은 바다에서 표류하던 한 남자가 마주치게 된 끔찍한 광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언덕과 그곳에 존재하는 정체불명의 존재. 그는 구조된 후에도 그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환각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실 바다에서 표류하다 보면 수분 섭취나 음식 섭취가 불가능해져서 환각을 보거나 망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망상이나 환각이 그토록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남겨 지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환상이 아니었다면, 나의 자취를 쫓아 언제든 나를 낚아채 암흑속으로 밀어넣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니알라토텝>은 이집트에서 온 외계의 신으로 절대적 혼돈과 어둠의 중심을 의미하는 매우 음산한 존재이다. 잔혹하며 냉혹한 니알라토텝과 그가 거느리는 괴물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인간들. 그들은 죽어가면서 본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있기나 했을까.

<그 집에 있는 그림>은 비를 피해 낡고 오래된 집으로 들어간 한 남자가 그 집 주인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끔찍한 공포에 관한 것이다. 오랜 시간 한가지에 몰두해 그것만 생각한다면, 사람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자신이 늘 보고 있는 그림이 현실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집 주인의 뒤로 보이는 열린 문틈 사이에 있던 것은 과연....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공간인 미스캐토닉 계곡이 처음으로 언급된 작품.

<에리히 잔의 선율>은 주인공 '나'가 오제이유가라는 곳에서 하숙을 하던 당시 들었던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이야기로 오랜 시간이 흐른뒤에도 여전히 그 소리에 관한 기억을 마음속에서 놓지 못하는 화자의 회고이다. 에리히 잔이 살고 있던 5층 창문 너머에 존재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조각의 빛도 스며들지 못할 어둠, 그 뒤에 숨어 있던 것은 과연 누구였을까.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에 관한 연작 소설이다. 대학 동기인 '나'와 허버트 웨스트가 17년전 아컴 소재의 미스캐토닉 대학에서 연구했던 것, 그리고 그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종될 때까지 허버트 웨스트가 집착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연구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누덕누덕 기워 이름없는 괴물을 창조했다면, 허버트 웨스트는 시체를 되살리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뇌까지 죽어버린 시체가 살아난다 해도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란 기대는 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 좀비를 만들어낸 두 사람. 연구에 대한 집착은 끝내 파멸을 불러왔을지니.
이 작품이 섬뜩한 이유에는 죽은 자를 되살리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그치지 않는 허버트 웨스트란 사람의 인간성이란 것도 있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되살아난 존재가 완벽히 소멸되지 않고 사라진 경우이다. 때로는 그들 앞에 나타난 적도 있지만, 다른 괴물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머리만 되살려낸 크램패리 대령의 등장은 숨이 막힐 정도의 공포를 가져다 준다.

<벽속의 쥐>는 한 남자가 선조의 영지에서 뼈대만 남은 건물을 복원한 후 겪는 공포에 관한 것이었다. 집의 지하에 숨겨져 있던 것. 그것은 고대의 광기 어린 신앙의 현장이었고, 자신의 몸속에 흐르는 피가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준 공간이었다.

<크툴루의 부름>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신화의 세계의 존재 크툴루에 관한 이야기이다. 깊고 깊은 숲 속에서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비밀 의식을 치루고 있다. 그들이 숭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이계의 존재이다. 크툴루는 절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크툴루의 도시가 다시 세상으로 떠오를 날까지 비밀 의식을 진행하며 그의 부활을 기다릴테니까. 크툴루의 부활은, 그 때가 언제이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겠지.

책 뒷쪽에 크툴루 일러스트가 실려 있는데, 이 일러스트를 보면서 문득 영화 <딥 라이징>의 괴물이 떠올랐다. 나만 그런가?

<픽맨의 모델>은 픽맨이라는 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그의 그림은 너무나도 기괴하고 공포스러워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지만, 사실적 묘사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이다. 그가 그려내는 것은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일까. 인간의 시야는 좁다. 자신이 본 것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인간은 어떤 공포와 직면하게 될까.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에 나오는 네크로노미콘은 압둘 할하즈레드라는 사람이 쓴 금서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러브크래프트의 창조물이다.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다수 언급되는 책이라 사실성을 가미하기 위해 씌어졌는데, 이 작품으로 네크로노미콘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생길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 났다. 나같은 경우 일본 만화 <가방도서관>이란 작품에서 네크로노미콘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는데, 그 책에도 러브크래프트의 이 작품이 소개되어 있다.

<더니치 호러>는 네크로노미콘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으로 더니치에 사는 윌버란 남자가 실은 인간의 아들이 아니라 요그- 소토스라는 외계의 신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는 설정으로 씌어져 있다. 오랜 시간전부터 마법을 익혀온 휘틀리가의 비극이랄까. 휘틀러가 2층에 갇힌 존재는 광기와 난폭함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이다. 가축이 피가 몽땅 빨린 채 죽어가는 사건을 보면 츄파카브라라는 괴물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것은 더욱 사악하고 거대한 암흑의 존재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윌버가 죽기전 괴상한 모습으로 변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변태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물의 습격은 그자체로도 사람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거대한 발자국만 남겨지는 걸 보는 걸 상상해보라. 차라리 눈에 보이는 괴물이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인스머스라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하는 공포물로 이방인인 '나'가 그곳에서 겪는 극한 공포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부 사람들과 고립된 삶을 사는 인스머스의 사람들. 그들의 모습은 기형이라고만 하기엔 그 수가 너무 많다. 술주정뱅이 영감에게 들은 인스머스의 비밀은 사실이라고 믿기엔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날 밤 호텔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오는 존재들. 그는 그들을 피해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바다속에 사는 미지의 존재들과의 교배로 태어난 인스머스의 후예들. 그들은 언젠가 바다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곳에서 무사히 탈출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진실은 더욱 깊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관한 깨달음이랄까. 자신의 혈통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때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이다.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죽음으로 밖에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람과 개구리의 모습을 반반씩 가진 디프원. 비릿한 냄새와 바다쪽에서 떼거지로 몰려나오는 그들의 존재를 상상하면...

<현관 앞에 있는 것>은 문이 열렸을 때 그앞에 있는 존재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가질 때 발생할 수 있는 공포를 그리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가?

마지막 작품인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는 로버트 블록에게 바쳐진 작품으로 이 작품의 주인공의 이름은 로버트 블레이크이다. 마을에 버려져 있는 오래된 교회. 그곳은 이단의 교회였다. 그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그곳은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 곳이 되었다. 건드리기라도 하면 깊고 깊은 어둠 속에숨어 있는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자연스럽게 무너질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폭풍우로 전력이 끊어진 밤, 그곳의 어둠에 숨어 있던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인간은 예로부터 어둠을 두려워했다. 현대는 전기란 것이 있기 때문에 한 밤중이라도 두려울 정도로 캄캄한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불의 발명으로 어둠을 극복했다고 믿는 사람들. 하지만 그것은 어둠을 한층 더 짙게 만들고, 불이 없을 경우의 어둠을 한층 더 두렵게 만들었을 뿐.

『러브크래프트 전집 1- 크툴루 신화』에는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되어 있다. 사실 크툴루 신화란 것에 대해서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었다.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읽어 나가면서 왜 스티븐 킹이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할까. 스티븐 킹의 저작에서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를 들어 '문'이란 장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작가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문'이란 것은 현실 공간의 문이란 뜻도 있지만, 현실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장치로서의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문을 열기 전까지는 그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간의 공포는 문을 열어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그 문을 열기 전까지 문 뒤에 있는 것을 상상하는 동안 극대화된다. 이는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고대의 신 니알라토텝, 크툴루 신화, 그레이트 올드원, 가상의 책이지만 그 진위 여부를 두고 뜨겁게 논쟁이 벌어지는 금서 네크로노미콘까지 그의 손끝에서 창조된 미지의 존재들은 여전히 그 몸을 문 뒤에 숨기고 언제든 우리를 덮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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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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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나온 이 작품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하긴 읽으려고 하면 신간이 나오고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긴 했지만. 제목은 시적이고 일러스트는 아름답기 그지 없다. 하지만 먼저 읽은 분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 책이 아주 놀랍다는데,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발표하는 책마다 독특한 느낌의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라 당연히 내 기대치도 높았다.

나루세 마사토라는 경비, 컴퓨터 강사, 영화 엑스트라 출연 등을 하는 프리터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독신남이다. 현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으며 스테디로 사귀는 여자는 없다. 때로 여자가 그리우면 돈을 주고 여자를 사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어서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진정한 사랑은 찾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느날 지하철 역에서 자살을 하려던 한 여자를 구해주는 일이 생긴다. 처음엔 관심밖이었지만, 그녀로부터 연락이 오게 되면서 가끔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가 된다.

한편 같은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후배 기요시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자인 아이코의 할아버지의 뺑소니 사건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나루세에게 사건에 대해 의뢰하게 된다. 그 사건에 관련되어 보이는 것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호라이 클럽. 예전에 탐정사무소에서 일하던 경험이 있던 나루세는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결국 그 일을 수락하게 된다. 호라이 클럽,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일까.

호라이 클럽은 우리나라로 치면 약장수 같은 집단이랄까. 작은 시골 마을에 천막을 치고 노인들을 모셔 놓고 만병통치약이라면서 권하는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들의 수법은 훨씬 더 사악하고 잔인하다. 노인들의 연금을 야금야금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몰래 보험까지 들어 놓고 사망 후 보험금을 수령하는 보험사기 행각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이는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조작된 죽음을 통한 것이었다. 이 일에 이용되는 것은 역시 호라이 클럽의 먹이가 된 노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점점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호라이 클럽 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하고 있다.

노인을 공경하지는 못할 망정,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고 결국 사고사로 보이게 살인까지 저지르는 무자비한 집단, 호라이 클럽을 조사하는 나루세는 몇 번의 고비에 봉착하게 된다. 잠입 수사라고나 할까. 한 번은 여동생과 함께 한 번은 기요시와 함께, 마지막은 혼자서. 아무리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고 해도, 탐정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해도 무모해보일 정도로 이 일에 매달리는 나루세를 보면서 감탄스럽기도 하고, 철 좀 들어야겠군 이라는 생각도 했달까. 호라이 클럽에 대한 조사를 하면서 중간중간 탐정 사무소에서 의뢰받은 일로 한동안 야쿠자 똘마니로 살았던 일이나 컴퓨터 강사를 할 때 한 노인의 딸을 찾는 일을 했던 일 등 나루세의 과거지사도 종종 등장해 그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재미만 더한 것이 아니고 그 모든 것이 복선이었을 줄이야.

이 책의 트릭은 끝에 가서야 겨우 눈치채게 된다. 눈치 챈 순간은 누가 뒷통수라도 세게 갈긴 것 처럼 순간 멍해진다. 그리고 미친듯이 앞페이지를 넘기면서 복선들을 확인하게 된다. 헉, 이게 이런 의미였어, 라고 중얼거려봤자 이미 늦었다. 이미 작가의 귀신같은 트릭에 속아 넘어가 버렸으니까. 반전도 이런 반전이 숨어 있다니, 정말 우타노 쇼고 서술 트릭의 최고점이다. 서술 트릭 작품은 늘 이렇게 놀라운 반전을 가져 온다. 정말 교묘한 복선과 복선이 깔려 있었다는 건 책의 결말부분에 가서야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공갈, 협박 및 보험 사기라는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과 한 개인의 싸움은 사회파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인들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만들게 한다. 젊은 사람들은 노인은 그저 한없이 늙어가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젊은 시절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무성한 잎을 달고 있었다 해도 지금은 고목일 뿐이라 생각하는 노인의 삶. 나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노인들이 사기에 쉽게 넘어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보면서 우리는 노인들의 삶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또 하나의 이유도 있지만, 그건 스포일러가 되므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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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골목
마마하라 엘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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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와 첫사랑이라. 난 어린 시절 살던 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때 이사하는 바람에 소꿉친구는 없다. 그래서 한동네에 오래 살면서 소꿉친구로 지낸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 때론 참 부럽기도 하다. 게다가 난 첫사랑인가 아닌가 하며 가물가물 넘어가는 바람에 첫사랑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다. 사실 첫사랑이란게 보통 그런게 아니던가. 물론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서 첫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조금은 융통성이 없어 보여 답답하기도 하달까.

술도가 쿠로다의 후계자 슈스케는 6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온 소꿉친구이자 아츠시가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츠시는 슈스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던 아츠시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버렸다. 게다가 유학에 관해서는 슈스케와 단 한번도 상의한 적이 없어 슈스케는 문자 그대로 고백 한 번 해보지 못한채 실연을 당했던 것.

다시 돌아온 아츠시를 보자 슈스케는 예전 감정이 다시 떠올라 어쩔줄을 몰라 한다. 슈스케는 원래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였지만 사정으로 인해 축구를 그만두게 되고 한동안은 방탕한 생활도 했었다. 여전히 그런 기미가 좀 남아 있었지만 아츠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순간, 슈스케는 모든 관계를 정리한다. 그러면서도 언제 아츠시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지 몰라 전전긍긍. 그러나 결정적으로 고백을 할 순간이 다가오게되 는데...

아, 이 얼마나 서툰 남자들인가. 하긴 잘못 고백했다가 소꿉친구 관계마저 와르르 무너진다면 본전도 못찾는 꼴이니 슈스케가 발만 동동 구르는 이유가 이해된다. 특히 아츠시가 미팅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팬더 복장으로 그곳을 찾아가 서툰 고백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된다. 오랫동안 간직해온 사랑인데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두려운 건 당연하니까. (그치만 사실 팬더 분장을 하고 나타난 슈스케, 많이 웃겼다. 아니 많이 귀여웠다.)

중간에 서툰 남자 슈스케가 아츠시에게 살짝 잘못하기도 하지만 미수로 끝나 다행이다. 안그랬으면 관계가 어그러졌을걸. 아츠시 역시 슈스케를 좋아했고, 슈스케의 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해도 아츠시 성격에 그런 건 상처가 되었을 테니까. 서툴지만 착실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두 남자의 사랑이야기. 예쁘다, 예뻐!

이 작품에는 정말 멋진 조연들이 많다. 특히 아츠시의 조카 쌍둥이인 미미와 모모. 유치원생인데도 은근히 조숙하지만 너무 귀엽고 깜찍하다. 삼촌과 삼촌 친구의 사랑에 의도하지 않는 태클을 걸 때가 있지만 모르고 하는 일인걸. 아우, 귀여워. 게다가 슈스케의 동생 신이 형을 생각해주는 마음, 요부분도 참 좋았다. 형제의 우정이여! 신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단 이야기?? (푸핫)

가느다랗고 여리여리한 선에 조막만한 얼굴. 실제로 이런 사람들은 없겠지만 마마하라 엘리의 작화는 만화의 장점을 최대로 살렸다. 그게 또 멋지고 말이지. 오래된 책이긴 해도 이런 이야기,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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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백서 2 - 뉴 루비코믹스 1014
오우기 유즈하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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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알 수 없는 재벌 후계자 신교지와 어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돈에만 집착을 보이는 오드 아이의 호스트 아야의 이야기로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레오파드 백서 1권. 2권은 1권에서 중간중간 등장했던 고교생 호스트 린카의 이야기이다. 아야와는 달리 상대를 별로 가리지 않고 호스트 일에 전념해왔던 린카는 열아홉살이란 나이에 호스트일에 물려 버린다. 고교 졸업 문제도 있고 하여 시간이나 죽일 겸 나갔던 보충 수업에서 토끼처럼 순해 보이는 교사 야쿠시지가 남자 애인과 통화를 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한번 놀려볼까 하는 생각에 야쿠시지를 도발하는 린카, 그러나 린카의 예상과는 다른 반응이 돌아오게 된다.

고교생 호스트와 학교 교사 커플링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좋은 커플링은 아니다. 차라리 꼬맹이 둘이 낫지. 어른과 아이는 아무래도 좀 그렇긴 하지만, 린카가 순진한 학생도 아니고 유급으로 인해 이미 졸업했을 나이인지라 조금은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내 맘이지!)

남자 애인과 통화할 때는 매달려서 울고 불고 하던 야쿠시지가 린카의 도발에는 주먹이 앞선다. 오호라, 이거 토끼탈을 쓴 맹수였구만. 린카도 집안이 격투기를 하는 집안이라 주먹에는 일가견이 있다. 결국 손이 나가고 발이 나가고, 쌈질로 시작하는 둘의 관계. 에휴, 다 큰 것들이 쌈질이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자란 원래 다 커도 애가 아니던가. 푸핫.

근데 이 야쿠시지란 캐릭터가 참 흥미롭다. 대학원 시절의 교수를 연정의 상대로 품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의 손바닥 위에서 놀림을 받는 분위기란 말이지. 호스트로서 남녀관계를 비롯 남남관계에도 빠삭한 린카가 보기에 야쿠시지는 그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 연연하는 야쿠시지를 보면 화도 나고 가지고 싶기도 했겠지.

둘 다 연애나 사랑에는 꼴통이고, 퍼뜩하면 주먹이나 발이 먼저 나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또 이 두사람에겐 그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법이란다. 폭력과 강요와 꼴통을 싫어하는 나지만, 뭐 그닥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가 그림, 왜 이렇게 느끼해졌냐. 코가 점점 얇아져서 종잇장이라도 베겠소. 게다가 턱이 길고 뾰족해져서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1권 그림보다는 그림이 충실하지 못하달까. 하여간 작화도 스토리도 캐릭터도 그다지 내 타입은 아니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나쁘지는 않았다. 3권도 나올 예정이라는데, 3권은 린카와 야쿠시지의 연애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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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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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시된 부분은 생존이란 것이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시기가 지나면서 사회는 계급 사회가 되어가고 신분제 사회의 상층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밥이라도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인 시대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물론 그외의 욕구도 조금씩 상승했다. 그런 시대를 지나 현대 사회가 되면서 신분제는 없어지고 한때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인해 가난이란 것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속사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왕족과 귀족으로 나뉘는 신분제 사회는 무너졌지만, 지금은 새로운 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해낸 신귀족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들의 부는 평범한 사람들로서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한국이 자본주의란 것을 도입하고 몇십년간은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였지만, 1990년대 말부터 대한민국 경제는 무너져내리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빈민층이 아니라 이제는 평범한 서민가정들마저 빈민층으로 추락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재개발 아파트등의 부동산투기등의 여파로 인해 중산층마저 빈민층으로 추락해가고 있다.

『비즈니스』의 주인공 '나'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이다. 연애결혼을 했고 지금은 슬하에 중학생 아이를 하나 두고 있다. 남편은 10년간 고시를 준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지금은 말라버린 고목처럼 살아간다. '나'는 아들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신들처럼 평범한 집안의 아이는 공부를 못하면 출세길도 완전히 막혀버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월급은 고작 100만원 남짓. 이 돈은 세식구 생활비로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비즈니스'라 생각하고 있다. 

'나'가 살고 있는 곳은 서해안에 인접한 도시. 그곳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뉘어져 있다. 시장은 스스로를 '비즈니스맨'이라 칭하며 신도시 개발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당연히 구시가지는 외면되고, 신도시의 폐기물 처리장으로 변해버렸다. 구시가지는 개발 뒷편에 밀려 잊혀진 곳이 되었다. 또한 해안도로때문에 갯벌은 망가져 횟집들은 모두 망해버렸고, 구시가지 주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신도시로 가서 파출부나 용역일꾼등이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비즈니스 상대로 만난 한 남자와 가까워지게 된다. 그는 해안가에서 횟집을 하던 사람으로 지금은 경매에 넘어간 횟집 건물에서 자폐아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가 구시가지에 와서 횟집을 할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신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바닷길은 막히고 그의 생활줄도 막혀버린 것이다. 아내는 급사했고, 아들은 자폐증. 그는 세상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울 뿐이다. 

'나'에게는 주리란 친구가 있다. 그녀는 어린시절의 가난이 죽도록 싫어서 사랑도 비즈니스라 생각하며 살아온 여자이다. 그래서 결혼도 그렇게 했다. 현재는 돈도 풍족하고 젊은 애인도 두며 자유롭게 살아가지만 시댁에서의 그녀는 여전히 하류계급이다. 그런 것이 지긋지긋한 그녀는 젊은 애인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을 하려 한다. 첫사랑일까. 사랑도 비즈니스라던 여자가 진짜 사랑을 하다 보니 신중하지 못했다. 결국 시집의 계략과 젊은 애인의 배신이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어쩌면 첫사랑의 배신이 가장 큰 상처가 되었으리라.

이에 비하면 '나'는 사랑해서 결혼한 케이스다. 그렇다고 주리보다 행복할까. 주리보다 가난하지만 주리보다 행복하지도 않다. 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런 '나'에게 변화를 가져온 것은 횟집을 하던 남자와 그의 아들 여름이었다. 오전에는 자신의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여름이네 집에 가서 지내는 두집 살림을 하던 '나'는 문득문득 행복을 느끼게 된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와 생활은 이젠 결코 행복하달 수 없었고, 아들을 위해서는 몸을 팔아서 과외비를 마련해야했던 '나'는 여자로서의 행복도 엄마로서의 행복도 모조리 빼앗긴채 살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지속될리가 없다.

횟집 남자는 시장을 납치했다가 중태에 빠뜨리게 되고 그간 저질러 왔던 범죄도 들통난다. 이 남자의 범죄는 부유한 사람들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행동이 사회 전체를 상대로 한다고 보긴 힘들다. 그가 도둑질을 한 이유는 단지 자신의 집을 경매에서 낙찰받기 위함이었으니까. 시장을 납치했던 이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단지 시장의 사과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처지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사회운동이나 사회적 관심을 끌어올 여력이 없었던 건 아닐까. 모두에게 잊혀진 포구 마을, 신도시의 쓰레기 하치장이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린 구도시는 사람들의 관심밖이었으니까.

'나' 역시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횟집 남자가 바다에서 사라진 후 '나'는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까지 잃게 된 후 결국 여름이와 함께 살게 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언제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피붙이도 아닌 남인데다 자폐증까지 앓고 있는 아이를 언제까지 돌볼 수 있을까.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런 미래의 일은 상상할수 조차 없는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미래가 어디 있고, 꿈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지금 …… 참 좋아." 라고. 지금이란 단어가 눈에 아프게 박히는 것은 '나'의 처지를 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될 수록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더 커져간다. 하지만 부는 항상 상위를 점하는 몇 퍼센트에 편중되게 된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점점 비대해져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본주의 시스템에 희생되어 가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전같으면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었을 가정도 이제는 점점 그 시스템 아래에서 짜부라져 간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이 투자의 원칙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토목건설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4대강 사업, 각종 댐 건설을 비롯해 미분양 아파트가 차고 넘치는데도 신규 아파트를 짓고 있고, 재개발 사업이랍시고 원주민들을 도시빈민으로 만들어 간다. 평범한 중산층은 간신히 버티고 있는 중이지만 언제 발판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지경에 몰려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재개발 아파트니 뭐니 해서 은행빚을 얻어 부동산 투기 끝물 시장에 합세했다가 은행빚에 몰려 시름이 끊이지 않는 집도 너무나 많다.

아이들 교육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 시절부터 학원 몇개씩 다니는 것으로 시작해 중학생만 되면 입시학원과 과외를 받기 위해 밤늦도록 공부를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미래는 얼마나 보장되어 있을까. 대학만 가면 끝일줄 알았는데 등록금은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해도 취업은 보장되지 않는다. 부유한 집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시절부터 유학을 떠나니 경쟁이 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겉으로 보기엔 그냥 자본주의 사회일지는 몰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계급 사회가 형성되어 버린 나라다. 우리의 미래와 행복은 이미 자본에 저당잡혀 버렸다. 이제 우리는 모든 것을 비즈니스적 삶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이상 발 붙일 곳도 숨쉴 수도 없는 것 아닐까. 우리에게 행복한 내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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