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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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철저한 모계집단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대장 암컷코끼리는 무리 중 가장 연장자로 무리를 통솔하는 의무를 가진다. 코끼리의 경우 이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에 물웅덩이가 있는 곳, 먹을 곳이 풍부한 곳, 위험이 적은 곳 등 수많은 시간을 살아오며 얻은 지혜가 꼭 필요하다. 그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두머리 암컷 코끼리이다. 이렇다 보니 상아를 얻기 위해 인간이 나이든 코끼리를 죽일 경우, 무리는 대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 것들만이 남아 무리 자체가 존속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그 무리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나이든 코끼리는 코끼리 무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다면 인간사회는 어떠할까. 예전만 해도 노인은 우리 사회에서 존경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노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의학의 발달과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년층 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반대로 출산율은 감소하게 되어 인구성장모형은 역피라미드형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출산율은 높지만 영유아 사망률이 높고 평균수명도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정체된 인구성장모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이후 베이붐 세대가 태어났고, 그들은 현재 60대 초반이 되었다. 베이비붐 세대의 특징은 형제자매가 많다는 것이다. 참고로 우리 아부지쪽은 7남매, 엄마쪽은 5남매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무렵 -1970년대 -에는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홍보사업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수명이 점차 연장되어 그런지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구수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사람들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대신 평균수명의 급속한 증가로 출생률과 사망률이 동시에 떨어져 어린 인구는 적어지고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일본 역시 2차세계대전 이후의 베이비붐 세대로 인해 폭발적인 인구성장을 이루었고, 원래 장수국가였던지라 평균수명 역시 꽤 높은 편이다. 그렇다 보니 국민연금은 바닥을 드러내게 되고, 젊은이 하나당 노인을 7명 책임져야 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정규직보다는 파견직이나 프리터를 하는 인구 비율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부담은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놀고 먹으면서 제 권리 다 찾는 노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인구조절구역』은 이러한 현대 사회의 노인문제와 관련한 소설이다. 노인들의 수가 급증하자 정부는 70대이상의 노인들의 살인을 종용하는 <노인상호처벌제도>라는 것을 도입한다. 이는 지정된 지역의 70대 노인들에게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다. '실버 배틀'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30일동안의 배틀에서 단 한 명의 생존자를 남기게 한다. 만약 기한을 넘기거나 생존자가 둘 이상이면 남아있는 모든 사람은 정부에 의해 처형당하게 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된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몇가지 없다. 죽임을 당하는 것이 싫으면 상대를 죽이고 살아남거나, 자살을 하거나, 아는 사람에게 죽여달라고 부탁하거나.

거동이 가능하고 아직 기력이 충분한 노인들은 총기류 같은 무기를 구입하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있는 날붙이 등을 이용해 서로를 죽이기 시작한다. 장소에 따라 노인들이 적은 곳도 있고 많은 곳도 있지만 이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미야와키쵸는 60명가량의 노인들이 있다. 그들은 한때는 이웃이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적이다. 죽고 죽이는 배틀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들의 자식들은 손을 놓고만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배틀을 방해하는 사람 역시 처형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해줘. 그러기 위해서 너희 노인들이 죽어줘. (151p)

개중에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치매나 오랜 병으로 가족들이 고통받는 경우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오랜 병에 효자없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다. 같은 핏줄이요 나를 낳아준 부모지만 이들은 그저 살육을 지켜볼 뿐이다. 때로는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의 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배틀 대상인 사람을 찾아가 자신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잔혹한 학살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그 장면이 너무 잔혹해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코믹함이 잔혹함을 배가시키기도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는 특유의 코믹함과 스피디한 전개로 잔혹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런 장면은 인간말종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죽음에서 최고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보자면, 이들의 죽음은 개죽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부의 시책에 따라 잉여 인간으로 취급되어 도살당하는 것 뿐이다. 정부는 자신의 손을 더럽히기 싫어 노인들이 스스로 그 일에 나서게 만드는 최악의 집단일 뿐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노인에게 휠체어를 제공하여 걷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자기 손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노인에게 밥을 지어줘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없도록 해버렸구요. 결국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노인들이 범람하게 된 거지요. 일사(一事)가 만사(萬事)라는 양식이야말로 이 배틀의 간접 원인이라고요. (242p)

정부는 복지제도를 만들어 노인을 우대해오는 정책를 펴왔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을 조르자 이번에는 노인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인가. 

현대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다. 게다가 치매나 노환으로 오는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 가족의 부양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까. 이 소설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등골이 찌르르한 느낌을 받게 한다. 어쩌면 이런 것이 근미래의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70대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이 소설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소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70대의 노인이 본 현대 사회, 그리고 그가 상상하는 근미래사회. 츠츠이 야스타카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고, 노년의 작가이기에 쓸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노인들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쉽게 죽을 수 있는 존재이며, 도덕도 양심도 생존이란 단 하나의 문제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노인들은 더이상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존재,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인류의 지혜를 전달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쓸모없는 존재, 죽어주는 것이 마땅한 잉여인간으로 치부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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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홈즈걸 2 : 출장 편 - 명탐정 홈즈걸의 사라진 원고지 명탐정 홈즈걸 2
오사키 고즈에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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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20대 어성 두명의 활약을 다룬 코지 미스터리 명탐정 홈즈걸 제 2권. 어쩌다 보니 - 어쩌다 보니? 2권만 달랑 샀잖아! (ε= 퍽) - 2권부터 읽게 되었다. 서점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라니, 서점이란 공간자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반가웠달까. 지금이야 대부분의 책을 (삑) 모든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서점에 가는 것을 즐겼던 사람중의 하나이니 당연한 것일지도.

내가 사는 곳은 지방의 중소도시로 예전에는 그런대로 큰 서점들이 몇군데나 있어서 돌아다니면서 책구경을 했지만, 어느 샌가 서점은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는 서점도 확장이 아니라 대폭 축소된 공간에서 제한된 책들만 판매한다. 주로 참고서와 잡지류를 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사는 도시는 학교가 꽤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만화류는 거의 들어오지도 않고, 소설도 베스트셀러류만 들어온다. 그렇다보니 자연히 서점에 발을 끊게 되었달까.

그렇다해도 난 몇달에 한 번씩 서울에 가는 길에 대형서점에 들르곤 한다. 넓고 넓은 매장을 둘러보는 것만 해도 즐거움이 넘쳐나는 곳. 하지만 대형서점들 대부분의 특징은 잘 보이는 곳에는 베스트셀러들만이 산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고, 베스트셀러는 회전율이 빨라 금세 다른 책으로 바뀐다는 특징을 가진다. 하지만 작은 서점에서는 구할수 없는 희귀본이나 비싼 책들도 있고, 원서 종류도 다양해서 몇시간이고 지루하지않게 시간을 보낼수 있기도 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너무 많이 산만하고, 작은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정겨움은 없다는 것이 단점일 것이다.

교코는 지방에 있는 세이후란 서점의 직원이다. 대형서점은 아니지만 단골 고객도 많고 책종류도 다양한 편이라 교코는 세이후에서 일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코앞으로 예전 동료였던 미호가 보낸 편지가 한 통 도착한다. 미호는 지금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의 유서깊은 서점인 마루우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미호의 편지에는 마루우도에 유령소동이 일어나 서점이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었다. 교코는 처음엔 별로 내켜하진 않지만 결국 동료직원이자 명탐정인 다에와 함께 신슈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둘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전혀 예상밖의 사건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 유령이 27년전 유명 작가를 죽인 작가의 제자의 유령란 것이었다. 그 사건에 대해 당시 사건 관련자를 탐문하면서 하나씩 밝혀지는 27년전 사건의 비밀. 인터뷰 대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건을 아키오가 일으킨 것이 아니라 믿고 있었다. 다른 범인이 있다는 확신과 사라진 원고가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것일까.

일단 세이후와 관련한 알리바이 미스터리로 가볍게 시작하는 이 소설은 신슈로 공간이 바뀌면서 오래전의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란 다소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간다. 관련자들을 탐문하면서 보여주는 다에의 모습은 다소 엉뚱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명확하고 빈틈이 없다. 법학부 학생이라 뛰어난 추리력을 가지고 있지만 손재주라곤 전혀 없는 다에의 모습은 무거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가볍게 느끼게 해준다. 또한 전문탐정이 아니기에 때로는 허점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조차 매력적이다. 사실 다에가 스케치북에 그리고 적은 것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인데, 이런 것을 보면 때때로 똑똑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엉뚱하기 그지없다.

이 사건에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질투, 그리고 의심이란 것이 얽혀있었다. 인기 작가의 문하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대필을 해야 했고,자신있게 쓴 자신의 작품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데뷔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도 이런 시스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수업이란 것은 정말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죽은 글일 것이다. 또한 재능이 별로 없을 경우 노력만으로 되지 않을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부분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살해당한 스승이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제자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았는데, 그것이 그의 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픔이 좋은 글의 토대가 될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자의적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타인이 간섭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명탐정 홈즈걸 2 : 출장편』은 현재 일어난 유령 소동과 27년 전 사건 미스터리한 관계를 풀어가는 부분도 재미있지만, 서점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대형서점과 중형서점, 그리고 지방의 소형서점에 대한 출판사들의 차별대우를 비롯해, 독서가들의 감소와 온라인 서점들의 증가로 인해 점점 입지가 좁아져가는 오프라인 서점들의 아픈 현실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서점이 내는 분위기가 다른 이유를 비롯해 현대 사회에서 서점이 살아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홈즈걸의 다른 시리즈도 무척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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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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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혼자서 귀를 파지만 어린 시절에는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엄마가 귀청소롤 대신해주셨다. 움직이면 큰일난다, 라는 말에 꼼짝도 않고 귀를 대고 누워 귓속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을 듣는 순간은 시원하면서도 무서운 그런 복잡미묘한 기분을 가지게 하는 시간이었다. 귓속으로 귀이개가 들락날락 할 때마다 뭐랄까, 간지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옛날에 엄마 무릎을 베고 귀청소를 하던 생각이 문득문득 났달까.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의 손님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로 저마다의 고민도 있고, 저마다의 사정도 있는 사람들이다.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령층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이 느끼는 귀청소를 하는 시간에 대한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듯 하다. 

한 소년은 할아버지가 귀를 파는 것을 마지막으로 임종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할아버지가 행복해하며 돌아가신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한다. 사춘기적 호기심이 더해진 작품인데, 첫장면은 임종이란 다소 무거운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이 에피소드의 끝장면은 풋하고 웃음이 터져버린다.

긴머리 남자는 첫사랑 여인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의 딸이 그에게 찾아와 전하는 이야기는 아련함을 남긴다.

동선동 일기는 귀 파주는 가게 근처에서 귀청소를 할때 사람들이 내는 소리를 은밀하게 엿듣는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인데, 변태적이라기 보다는 노년의 비밀스러움을 즐기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엿볼수 있었다.

검을 잘 다루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인 달인은 대사가 하나도 없지만 그림만으로 충분히 그 내용을 전한다. 검의 명수이지만 작은 생명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남자. 그는 짚단 베기를 할 때 잠자리가 앉아 있는 곳을 피해 벤다거나, 그를 찾아온 길고양이 가족에게 자신이 먹을 밥을 선뜻 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겪고 있는 문제는 모기가 귓속에 들어가 앵앵댄다는 것. 물론 죽여서 꺼낼수도 있겠지만 그는 굳이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를 찾아간다. 살아서 앵~~하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던 모기의 운명은 그후 비극이 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따스함을 안겨 준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남자는 권고퇴직당한 후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후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떠돌이 개와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중 소소한 행운도 만나고, 불운도 만나게 되는 남자는 야마모토 귀파주는 가게에서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귀청소일 뿐인데 불면증은 싹 사라지고 달디 단 잠을 잘 수 있었던 남자. 이런 걸 보면 행복은 정말 소소한 데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레온나, 즉 비를 부르는 여자는 이혼녀이자 싱글맘이다. 그녀가 뭐만 하려 하면 비가 온다나. 그런 사람이 있다. 소풍을 가려하면 비가 오고, 생일만 되면 비가 오고, 결혼식날도 비가 오고, 결국 이혼까지 했다. 그녀의 인생은 불운으로 점철되어 보이지만, 귀파주는 가게를 다녀온 그녀의 운명은 180도 변했다. 이는 귀파주는 가게의 작은 마법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들 부부와 아이가 만들어낸 삶의 작은 마법이 아니었을까.

이외에도 불감증에 시달리는 여자, 어린 시절 시원하게 귀를 파주던 감각을 잊지 못하는 여자, 출산의 두려움을 가진 여자 등 각 에피소드는 다양한 연령대와 다양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편 한편마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달까. 또한 작화 자체는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 어렵지만 각 인물들의 개성을 잘 담아 내고 있다. 또한 귀를 파는 순간에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담긴 손끝, 발끝의 모습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야마모토 귀 파주는 가게』에 수록된 총 9편의 에피소드들은 짧은 분량이지만 그나름의 완결성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때로는 풋하고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때로는 미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한 작품들은 우리 삶의 긴 시간에서 찰나를 점하고 있는 귀청소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시간 중에서 극히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 그 시간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에게 꼭 어울리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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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단편집 바벨의 도서관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외 지음, 연진희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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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은 유럽 문학에서 커다란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러시아 문학에 관심을 기울인 적이 거의 없다. 일종의 편견이란 것이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는 러시아 문학은 난해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것인데 러시아인들의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도 어려워서 책을 읽다 보면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일도 많다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러시아 문학을 접했던 것은 고교시절인데,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알레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었다. 내 책은 아니었고 아버지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골라서 읽었는데, 당시 고교생이던 나에게는 무겁고 어려웠었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 하긴 그때도 가벼운 소설을 읽는 것을 즐겼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후 러시아 작품을 읽게 된 것은 바로 몇 년전으로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과 스뚜르가츠키 형제의 작품이었는데, 흥미롭게 읽었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도 큰 걱정없이 손에 잡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악어>이다. 악어를 구경하러 갔던 이반 마트베이치가 악어에게 먹혀버리고 마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풍자소설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사나이가 악어 뱃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악어 주인인 독일인은 그 사실을 몰랐을 때도 그 사나이를 위해 악어를 죽일 수 없다고 했을 정도이니 악어 뱃속에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것으로 더욱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반 마트베이치의 친구인 나는 이 문제를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만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은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며, 러시아 경제를 위해서는 악어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게다가 이반 마트베이치의 아내는 악어 뱃속에 들어간 남편과 이혼할 궁리를 한다. 하지만 제일 가관인 것은 악어 뱃속에 들어간 이반 마트베이치다. 그는 자신이 유명해질 것이라며 '나'를 비서로 삼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계획하고 떠들어댄다. 이 모든 등장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를 가져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단편이지만 한편의 군상극이자 풍자소설인 이 작품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악어>는 배금사상, 물질만능주의, 관료정치의 비판과 더불어 지식인층과 여론지도층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두 편의 신문 기사는 이 풍자극의 정점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이 작품이 미완성 원고라고는 하지만 난 이 작품 자체로도 훌륭한 완결성을 가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두번째 작품인 <라자로>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작품이다. 사실 난 이 작가의 이름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최근에 그의 작품 세편이 출간된 것으로 보아 그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가 싶기도 하다.

이 작품은 병사한 라자로라는 남자가 예수에 의해 사흘뒤 부활한 뒤의 삶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마을 사람들은 라자로가 부활해서 돌아왔을 때 그의 부활을 기뻐하고 환영했다. 하지만 라자로는 아무것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공허함과 음울함만이 그의 주변을 떠돌고 있는 분위기랄까. 죽음이란 것을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공포와 공허함은 라자로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부질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비탄과 두려움이 그대로 담겨있는 그의 눈빛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고 그를 기피하게 만든다.

만약 내가 라자로와 같은 경우라면 난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때때로 죽음의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들은 제 2의 삶이라 하며 모든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라자로와 그들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라자로는 확실한 죽음을 경험했고, 다른 이들은 죽음의 기운만을 느꼈기 때문일까. 결국 비탄과 두려움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삶을 선택한 라자로의 모습은 완전한 죽음 이후의 부활이 기꺼운 것만은 아니란 생각을 하게 한다.

마지막 작품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역시 안드레예프의 <라자로>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것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른 작품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그의 삶 전반을 다룬다. 물론 어린시절의 삶이나 청소년기의 삶에 대해서는 훑듯이 스치고 지나가고, 성인이 된 후의 삶에 대해서 주로 다루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부유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고상하며 경쾌한 삶을 살았다. 직장 문제에 있어서도 탄탄대로였고, 사랑스런 여성과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후의 삶은 급격히 달라진다. 아내는 임신한 후부터 그에게 짜증을 내고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는 등 그의 결혼 생활은 오랫동안 삐걱거렸다. 또한 승진문제에 있어서도 밀리는 등 그는 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또 올라가는 길이 나오듯 미끄러져 내리던 그의 삶이 다시 행복의 궤도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 생활도 오래지않아 그는 병을 앓게 되고 그것은 그의 삶을 급격히 추락시킨다. 원인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 병과의 싸움에서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하루하루 말라붙어간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된 태도로 그를 대한다고 생각하게 되니, 어찌 하루하루가 편하랴.
하지만 이것이 이반 일리치의 망상만이 아니란 것은 글을 읽으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장례식에 참가한 지인들은 얼른 돌아가 카드 게임을 즐길 생각을 하고, 아내는 좀더 많은 돈을 정부로 받아내길 바란는 첫장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평소 그의 아내는 그를 배려하는 듯한 말을 하면서도 그를 끊임없이 깎아내렸고, 딸은 엄마를 닮아 다른데에 온통 정신이 팔렸으니, 이런 상황의 이반 일리치를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던 이반 일리치는 죽기 얼마전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 보게 된다. 자신의 삶이 어땠는지를 돌아보던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죽기 몇 시간 전에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비록 삶은 고통스러웠을지라도 죽은 후의 얼굴이 편안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구원을 받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에게 때이른 죽음이 찾아온 것을 보면 그를 가엽게 여기면서도 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반 일리치 역시 죽음은 자신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자신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더욱큰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하지만 죽음이 완전한 끝은 아니라 생각한다. 비록 끝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또다른 곳에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테니.

러시아 단편집에는 도스토옙스키, 안드레예프, 톨스토이의 작품이 한 편씩 실려 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잘 알려진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은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몇몇 작품의 이름은 댈수 있는 작가이고, 톨스토이 역시 <바보 이반>이나 <안나 카레니나>등의 작품은 읽어본 사람들이 많은 유명한 작가이다. 나 역시 이 두 작품은 읽은 적이 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줄거리 전체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안드레예프의 이름은 솔직히 처음 들어 봤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낯선 안드레예프가 이 책에 실려 있는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달까. 작품 전반에 흐르는 공허함과 음울함은 왠지 러시아 작가가 아니면 쓰기 힘든 분위기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 작품의 분위기는 모두 달랐지만, 각 작품은 특유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무척 흥미로웠다. 앞으로는 다양한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좀 더 많이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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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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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사는 곳은 인구가 20만이 채 안되는 작은 지방도시이다. 20년전에도 17만 정도라고 했으니 인구의 변화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 중심을 제외한 주변의 땅에는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시내쪽은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아파트 단지마다 조그마한 수퍼가 있고, 그 근처로는 재래시장이 섰지만 이제 재래시장은 큰 것 두개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고, 아파트도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대형 평수가 많은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섰다. 또한 예전의 중심지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하여 한때 주택지로 인기가 높았던 곳은 사양화를 걷고 있고, 예전에는 허허벌판이던 곳이 개발이 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주택지가 새로 조성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은 공무원, 학생, 그리고 농민을 빼면 다른 직장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만큼 다른 면에서는 낙후되어 있다. 좋은 말로 양반의 도시이자 학문의 도시이지 그것빼면 시체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는 인구수에 비해 꽤 많은 편인데, 그 이유는 시외쪽의 시골에서 시내로 통학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울 아부지가 다니시던 초등학교는 이젠 분교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 시외 인구는 줄어들어 버린 상태다. 그래도 국립대학을 비롯해 대학도 몇 군데나 되어 그쪽으로 진학하는 학생도 꽤 많지만 대부분은 서울같은 대도시쪽으로 진학하는 편이다. 고교생들까지는 많은데, 20대 이후의 젊은층이 별로 없달까. 그나마 학생들이 많아서 그렇지 안그러면 진즉에 고령화되고도 남을 도시다. 이는 단일시로서는 면적이 제일 넓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스울 정도로 우울한 일일지도.

유메노 역시 그런 도시이다. 인구 12만의 작은 지방 도시. 주변의 작은 도시 3개가 합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퍽도 적다. 하지만 역시 이곳도 개발의 바람이 불어와 신시가지는 발전하는 한편 구시가지는 날로 몰락해간다. 거대한 마트와 전자 상가는 개인 수퍼와 상점들을 문닫게 했고, 젊은층이 점점 줄어들면서 도시 자체가 고령화되어 간다.

이 소설은 다섯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몰락해가는 한 지방도시의 실상을 때로는 유머스럽게 때로는 잔혹하고 진중하게 묘사하고 있다. 30대 초반의 아이하라 도모노리는 시청공무원으로 생활보호대상자를 관리하는 케이스워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의 보조만 받으려는 사람들을 물색해 그들의 보조를 끊고, 더이상 보호대상자가 늘지 않도록 조사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아이하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일본의 생활보호대상자는 정말 돈을 많이 받는구나, 그리고 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도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달까. 우리나라의 경우 심사기준이 까다로운데다가 정작 나오는 돈은 얼마 되지도 않아 보조금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돈데, 유메노의 경우 수십만엔, 우리돈으로 수백만원이 넘는 돈이 생활보호보조금으로 지급된다. 이러니 사람들은 일을 안하고 보조금을 타서 놀고 먹으려는 케이스가 많아졌지만.. 특히 싱글맘에게도 보조금이 이렇게 지급된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여기도 재정이 불안해지자 보조금받는 대상을 줄이고 심사기준을 높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하라는 언젠가 현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지만 뜻하지 않은 계기가 그의 삶을 180도 바꿔놓고 만다. 그가 우연히 파칭코 주차장에서 목격한 것은 주부원조교제였다. 한 여인에게 꽂힌 그는 그 주부를 스토킹하기도 하고 다른 여자를 사기도 한다. 이혼한 상태인 그로서는 별로 꺼릴 것이 없지만, 문득 그는 이 주부들을 보면서 자신의 전처도 그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범한 공무원에서 갑자기 일탈 노선을 타게 된 아이하라는 일을 대충대충하다가 한 생활보호대상자 대상에게 찍히고 만다. 사회부적응자인 그에게 목숨의 위협까지 당하게 되는 아이하라는 어떻게서든 그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구보 후미에는 고교 2학년 학생으로 이곳의 정체된 삶이 싫어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한다. 짝사랑하는 남학생역시 도교대 시험을 볼 예정이라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성적은 아슬아슬하다. 벌써 도쿄 지역의 대학생이 된 듯 자기 주변의 고교생을 깔보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구보 후미에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는 개뿔. 학원에서 돌아오다 덜컥 납치를 당하고 마는데...

후미에를 납치한 것은 게임 오타쿠. 그의 집 별채에 갇혀 하루하루 눈물 마를 날이 없는 후미에는 조금씩 감금생활에 적응해 간다. 이 오타쿠는 완전히 게임에 빠져 그녀를 메일린이라 부르고 자신을 루크라고 할 정도이다. 부모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 상태로 부모를 상대로 잦은 폭력과 폭언을 구사한다. 후미에는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탈출하려 하지만 감금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또다른 걱정이 생긴다. 무사히 돌아간다고 해도 이미 납치 및 감금 사건에 연루된 것이 세상에 다 알려졌을 것이고 그 뒤에 나올 이야기가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퍼진 소문은 솜방망이가 쇠방망이가 되고, 티끌만한 것이 태산이 되어버리니까.

가토 유야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전직 폭주족 출신이다. 지금은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직장이란 것이 폭주족 출신들이 만든 회사이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이혼, 아이는 전처가 기르고 있다. 정당하게 돈을 벌어야 하지만 배운 것 없고, 기술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노인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일 뿐. 같은 폭주족 출신 후배들은 브라질인들과 싸움을 하지를 않나, 생활보호대상자에서 밀려난 전처는 아이를 그에게 덜컥 맡겨버리고, 그의 선배는 사장때문에 속상해하다가 사고를 쳐버리는데...

호리베 다에코는 40대 후반의 여성으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으로 일한다. 식품매장에서의 좀도둑을 잡는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만 가족관계가 좋지 않아 고독한 삶을 살고 있다. 동기간인 오빠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이고, 자식들은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아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신흥종교에 빠져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신흥종교집단의 표적이 되어 직장에서 쫓겨난 다에코는 어머니 입원문제때문에 속상해하다 경증 치매에 거동까지 불편한 어머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돈도 없지 직장에선 해고되었지, 신흥종교집단에는 매달 돈을 바쳐야지.

다에코를 보면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달 회비로 2만엔(우리돈으로 20만원이 넘는다)을 납부해야하고, 출가하려면 전재산을 바쳐야 하는데, 왜 교주가 돈욕심이 없다고 할까. 아마도 말빨에 속아서, 자신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는 것에 속아서 그렇지 싶다. 현세에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생각하고 내세를 위해 산다니. 그런 교주가 성형수술에 고급 가구에 명품쇼핑을 하나? 거참.

야마모토 준이치는 40대 초반의 시의원으로 현의원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대부터 정치을 해 온 집안이라 이 지방 유지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부동산 회사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야쿠자와도 손을 잡고 있다.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쳐져 입후보만 하면 당선이 되던 것도 옛날 말. 지금은 은퇴한 정치인의 무리한 요구와 시민단체의 압력으로 골치가 썩어난다. 게다가 마누라는 집을 수리할 계획에 돈을 퍼붓지를 않나 명품 쇼핑에 돈을 들이붓지를 않나, 아들은 아버지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딸은 벌써부터 엄마를 닮아 쇼핑에 맛을 들였다. 현의원으로 출세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였지만, 어느샌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큰 일을 내고야 마는데...

이들을 보면 10대부터 40대까지의 인물들이다. 즉 각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하겠다. 10대를 대표하는 후미에는 지방 대학보다는 도교쪽의 대학을 선호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은 여느 지방을 가도 똑같다. 하지만 그 꿈은 납치 및 감금이란 것으로 산산히 부서진다. 20대를 대표하는 유야는 10대 시절의 불량소년, 지금은 노인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일을 한다. 이른 결혼의 실패로 이혼한 상태에 아들까지 기르게 된 상황. 그의 선배 시바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사장과 시비가 붙어 사고를 친 후 인생 종치게 된 상황에 몰렸다. 30대의 아이하라는 공무원생화을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괜히 우쭐해서 생활보호대상자 선정에 혹독한 칼날을 휘둘렀다 자신이 그 칼을 맞게 생겼고, 거기다가 전처을 묘한 곳에서 만나게 되어버렸다. 40대 초반의 시의원 야마모토는 현의원으로 출마할 꿈을 가지고 있지만, 은퇴한 정치인과 알력싸움에서 큰 일을 저지르고, 야쿠자와 험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즉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에 몰렸다. 다에코는 신흥종교가 자신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줬다고 믿었지만, 그게 다 거짓이란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이외에도 부모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히키코모리 게임 오타쿠, 이민 노동자로 사회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브라질인들(디뉴), 공부에는 관심없고 어른들의 말은 그냥 생으로 씹어버리는 고교생들, 폭력과 공갈과 협박이 최선의 해결책이라 믿는 야쿠자, 주부 원조 교제단 등은 유메노란 작은 소도시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을 묘사한듯 하기도 하다. 하긴 유메노를 세상의 축소판이라 보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몰락해가는 지방 소도시의 정체와 우울,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대조적인 모습을 비롯해 젊은층이 대도시로 빠져나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혼 가구의 급증 등은 사양길에 접어든 중소도시의 씁쓸한 이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유메노라는 도시에 사는 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꿈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어쩌면 이들이 불순한 꿈을 꿨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한 유메노의 사정이 이들의 발목을 붙잡아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 결말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들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마 죄를 지은 자는 죄를 지은 자대로 벌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그머니 빠져나갈 인간도 틀림없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일을 계기로 완전한 다른 삶을 꿈꿀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꿈은 꿈이기에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반쯤 부서진 꿈을 이들은 다시 온전한 꿈으로, 온전한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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