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헤도로 Dorohedoro 5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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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들때문에 판타스틱하게 음울한 도시 홀. 그곳에는 마법사의 마법에 걸려 기억은 몽땅 날아가고 머리는 도마뱀이 된 사나이 카이만이 있다. 그리고 카이만의 베프이자 상당한 능력을 가진 마법사 겸 만두가게집 아가씨 니카이도는  그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가 원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은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고, 결국 카이만은 혼자서 마법사의 세계로 잠입한다.

원래 방독면을 쓴데다가 방독면을 벗어도 도마뱀 얼굴이라 딱히 마법사들도 카이만의 존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하다. 하지만 어딜 가나 돈이 문제. 일단 카이만은 마법사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 숙식제공 알바자리를 얻게 된다. 그곳은 니카이도의 만두가게와 비슷한 탄바의 고기파이 가게. 하여간 카이만은 먹을 복은 있나 보다. 카이만은 그곳에서 일하며 행동개시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

마법사의 세계는 지금 축제 분위기. 4년마다 돌아오는 파트너 갱신기간이기 때문이다. 일명 블루 나이트. 엔 패밀리는 블루 나이트를 위해 새옷을 맞추는등 분주하기만 하다. 여기서 주목할 것. 노이와 신의 첫만남과 두 사람이 어떻게 파트너가 되었는지의 이야기는 무척 신선한(?) 모습의 신과 노이를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앳된 모습의 두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노이는, 어릴적 진짜 귀여운 소녀였구나. 게다가 악마 수행을 했었다니. 오, 놀라워라. 이 에피소드를 보면 그들의 인연이 꽤나 깊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신과 노이를 각각 파트너로 삼고자 하는 야쿠와 바쿠는 또다시 음모를 꾸미는데... 어떤 방법을 취한든 상관없이 두 사람의 서명만 있으면 되는 파트너 갱신. 신과 노이는 서로의 파트너로 남을 수 있을까?

한편 엔은 마법연기상 살해사건을 조사하다 니카이도가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라는 것을 알게 되고 홀에 있는 니카이도에 마수를 뻗친다. 그바람에 니카이도 일행은 몽땅 마법사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들의 운명은?

『도로헤도로』5권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엔과 노이는 사촌이었다. 헉, 그랬군. 그래서 노이의 무지 쎈 발언에도 불구하고 엔이 노이를 버섯으로 만들지 않았군. 기억을 찾은 에비스는 과시욕이 상당하고 공짜를 무지 밝히는 아이였다. 아, 왠지 예전의 나사 하나 빠진 에비스가 그립다. 참, 리스는 우연히 노이의 회복 마법의 은총을 받아 제 몸을 되찾았다. 리스는 도대체 어떤 놈이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녀석.

그러고 보니 5권은 그나마 차분하게 진행된 편이랄까. 1~4권까지는 동시다발적으로 하도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나와 정신이 없었다면 5권은 주로 마법세계와 관련된 이야기라 그다지 복잡한 사건은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으로 보건대 6권은 꽤나 복잡한 일이 많이 터질듯한 예감이다.  


5권 부록인 캐릭터 팝업은 귀여운 얼굴에 섹시한 바디를 전투복 속에 감춘 노이다. 노이는 뭘 먹고 컸길래 이렇게 잘 자란거지? 내가 보기엔 왠만한 남자들보다 키도 더 크고 근육질에 전투능력도 굉장하다. 니카이도도 좋지만 노이도 무척 마음에 드는 캐릭터. 근데 이렇게 봐서는 그냥 남자같잖아! (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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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 얼굴 바벨의 도서관 7
너다니엘 호손 지음, 고정아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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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일곱번째 책에는 우리에게『주홍글씨』로 잘 알려진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 다섯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난『주홍글씨』를 읽었던 적이 있었던가. 영화를 본 기억은 나는데. 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 <세 언덕 사이의 분지>란 작품과 교과서에 수록된 <큰바위 얼굴>을 읽은 적이 있다. 그외의 작품은 거의 접해보지 못한 내게 있어 이 단편집은 너무나도 근사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첫 작품인 <대지의 번제>는 인간들이 이제껏 쌓아온 문명에 관한 것을 모두 불태우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은 인간을 구속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혁명을 꾀했다. 그것은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화염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태초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없앤다고 해서 인간의 정신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순간, 인간들은 이제껏 자신들이 쌓아왔던 것을 다시 기억하고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바로 '인간의 심장'이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저들이 그 음험한 동굴을 정화할 방법을 못 찾는다면, 이렇게 엄청난 수고를 다해 태운 모든 잘못과 불행이 그 동굴에서 다시 나올 거야. 예전과 똑같거나 더 나쁜 형태로. (46p)

그렇다. 인간이란 존재자체가, 인간의 정신자체가 말살되지 않는 이상, 인간은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란 존재이다. 인간의 역사는 겉으로 보기엔 시대에 따라 달라진 양상을 보이겠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이다. 결국 속은 그대로인 것이다.

<히긴보텀 씨의 참사>는 제목과는 달리 꽤 유쾌한 작품이다. 도미니커스 파이크란 젊은 행상이 히긴보텀씨가 살해당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그러나 이 소문이란 것이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리 퍼져있고, 또한 히긴보텀씨는 아직 건재하다는 이야기가 나와 도미니커스가 가져온 이야기를 반박하기를 거듭한다. 도대체 히긴보텀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어떻게 '미래의 일'이 '과거에 그림자를 드리웠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돌고 도는 소문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 때로는 과거가 미래를 앞서 미래의 일을 새롭게 재편할 수도 있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섬뜩한 느낌을 주는 단편이다. 하지만 섬뜩한 것은 겉모습일 뿐. 목사의 검은 베일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우리는 흔히 자신만의 마스크를 쓰고 상대를 대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솔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본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느날 갑자기 두겹의 검은 베일을 두르고 나타난 목사의 기행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검은 베일은 그저 검은 베일일 뿐이다. 사람들은 검은 베일이 뜻하는 것을 무심결에 깨달았기에 그것을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렇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우리가 늘 얼굴 위에 쓰고 있는 마스크를 형상화한 것이다. 난 절대 마스크같은 것은 쓰고 있지 않아,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마스크가 자기 자신의 얼굴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웨이크필드>는 한순간의 객기로 일으킨 장난으로 인해 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아주 멀게 만든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일주일을 생각했지만, 그것이 이십년이란 세월이 되었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그런 순간 순식간에 우리는 미아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큰바위 얼굴>은 교과서에도 수록된 작품이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 싶다. 나도 언제, 어느 교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교과서에서 읽은 적이 있다. 작은 산골마을에 사는 어니스트는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얼굴과 똑같은 사람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훌륭하게 이끌 것이란 이야기를 듣는다. 어니스트는 매일매일 큰바위 얼굴을 보며 조용한 삶을 살았다. 때때로 큰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부자, 군인, 정치가 등이 차례차례 나타났지만 그들에게는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큰바위 얼굴과 같다고 생각해도 어니스트에겐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날 찾아온 시인은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니스트가 가진 장점들을 꿰뚫어 보게 된다. 시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외친다. 어니스트야 말로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어니스트는 그말을 믿지 않고 큰바위 얼굴을 하고 있는 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어니스트가 찾는 큰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부자, 군인, 정치가에게서는 무엇인가가 빠져있었다. 원래부터 사람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산다. 시인이 어니스트를 보면서 느낀 점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꾸준한 자기 성찰과 부단한 노력, 이런 것이야 말로 이상적인 인간상을 만들어가는 주요한 요소일테니까. '이 소박한 사람이 살아있어 세상은 매일 조금씩 좋아졌다'는 본문의 글처럼 말이다.  

다섯편의 이야기는 철학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기도 하고, 코믹한 미스터리로 유쾌함을 전해주기도 하며, 인간의 본성과 인간이 보이는 모습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도 한다. 또한 자신이 파놓은 함정때문에 미아가 되어버리는 사람의 이야기도 꺼내고, 진정으로 이상적인 인간상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해서 무겁거나 딱딱한 이야기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알레고리를 이용한 작품의 경우 순간적으로는 그의 이야기의 저변에 숨겨져 있는 의미에 대한 파악이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결말부에 등장하는 명쾌한 결론은 이야기의 핵심을 꿰뚫고 있기에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알레고리의 의미를 찾아내는 지적 탐험의 즐거움에 탐닉할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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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세계 바벨의 도서관 6
찰스 하워드 힌턴 지음, 이한음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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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물리학을 씨실과 날실로 엮어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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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한 조각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8
마리아투 카마라.수전 맥클리랜드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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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차서 말이 안나올 정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 사람의 인생은, 길지도 않은 인생은 왜 이렇게 말도 안될 정도로 꼬이고 꼬이는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한 구석을 맴돌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마리아투가 겪은 한 가지 일만으로도 미쳐버리거나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고통, 절망, 상실감. 마리아투는 이 모든 걸 어떻게 견뎌낸 것일까.

시에라리온.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오랜 기간 식민지배를 받았고, 그후 11년간의 내전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기대수명 40세. 평균 수명 80세를 바라보는 나라에서 살며 현재 서른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나로서는 기대수명 40세란 말이 실감나지 않는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하달 정도로 국력도 경제력도 갖추지 못한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마리아투의 어린 시절은 비교적 행복했다. 비록 부모님이 아닌 고모의 가족과 함께 살았을지라도, 그 지역의 풍습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었기에 마리아투는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위화감이 없었다.

하지만 열네살이 되던 해 고모부의 친구인 살라우란 남자가 마리아투를 두번째 아내로 맞으려 했고, 그 남자에게 강간당한 후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마리아투의 시련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정부군과 대치하던 반군들이 마리아투가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와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마리아투와 사촌 오빠들은 살아 남았지만 두 손을 잘렸다. 프리타운의 수용소에서 살면서 마리아투는 구걸을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원치 않는 임신, 두 손이 없는 장애. 아이가 태어났지만 마리아투는 아이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고, 결국 아이는 열달만에 영양실조로 죽고 만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마리아투는 자신이 임신한 것도 몰랐다. 또한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자신의 사연을 듣고 살라우가 자신을 임신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손을 자른 반군 소년은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못하도록'이란 이유를 댔지만, 마리아투는 대통령이란 말도 투표란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마리아투에게 있어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투가 그런 시련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은 가족들이었다. 수용소 사람들 중에는 장애를 입었다고 자신의 가족을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리아투의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 가족의 연대감이 그녀를 지탱시켰다.

그리고 수용소에서의 연극은 마라아투의 울분과 절망감을 표출시키는 역할을 했다.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함으로써 마음은 조금씩 치유되어갔다. 또한 마리아투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져준 영국인 데이비드와 캐나다인 빌의 도움으로 마리아투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은 힘들었다. 기후도 맞지 않았고, 의수는 마리아투에게 있어 큰 족쇄였다. 그후 캐나다로 건너가 또다른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마리아투의 생활은 크게 변하게된다. 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키워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군 소년병을 만난 마리아투는 용서와 화해란 것을 배우게 된다.

마리아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낼 결심을 하면서 떠올렸던 생각중에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자신의 이야기가 '시에라리온에서는 늘상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그런 일은 우리같은 사람은 평생 겪지 않을 이야기인데, 그곳에서는 일상적인 이야기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전에 희생되었고 깊은 절망과 상실과 아픔을 겪었는지 그 말 한마디로 보여주는 듯 하다. 하긴 마리아투의 몇 안되는 가족도 그렇게 많이 희생되었으니,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이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겪는 힘겨운 일을 보면서 내심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야, 라는 안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리아투의 이야기는 그런 것을 넘어선다. 그건 아마도 마리아투가 사는 곳의 풍습이 우리와 달라서, 우리는 내전같은 것은 겪어본 적이 없기에, 내 조국은 사람의 목숨을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쉽게 없앨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리아투가 겪었던 일은 내가 평생을 통해서도 겪을 일이 아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하기에 마리아투의 이야기는 이기적인 안도감 대신 절망의 바닥에서도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인간의 강한 정신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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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케 2 - 사모하는 행수님께 샤바케 2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 손안의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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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에도의 상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나가사키야의 도련님 이치타로는 삼천살 먹은 요괴의 손자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건강한 날보다 앓아 누워지내는 일이 더 많다. 요괴를 보는 능력은 있지만 특별히 요괴의 손자다운 능력은 없다. 그렇지만 인정많고 머리가 좋은 도련님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이부자리에 누워 해결하는 이부자리 명탐정이다. 물론 직접 조사하는 것은 힘든 일인지라 주위의 요괴들의 도움을 받지만, 그래도 인간들과 다른 감각을 지닌 요괴들의 말을 듣기만 하고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것을 보면 참 난 인물은 난 인물이다.

부모님이나 요괴들이나 이치타로를 대하는 것은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할 정도로 과보호.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한 후계자인데다가 반혼술로 되살린 존재이다 보니 수시로 쓰러져 자리보전하는 이치타로를 과보호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도련님은 비뚤어지지도 않고 바른 생활 청년으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뭐, 따지고 보면 비뚤어질테다! 라고 선언을 해도 주변의 요괴들이 가만히 있을 위인들이 아니기에 그럴 수도 없겠지만.

시리즈 1권인 에도시대 약재상 연속살인 사건은 장편이었다면 2권인 사모하는 행수님께는 단편 연작이다. 총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수수께끼같은 사건 풀이도 있지만 니치키의 옛날 이야기같은 것도 나와 무척 흥미로웠다.

<사모하는 행수님께>란 제목을 보고 난 푸핫하고 웃어버렸다. 물론 여기에서의 행수란 일꾼들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이지만 내가 사는 곳 - 경상도- 에서는 행수님이란 단어가 형수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형님을 행님이라고 하는 것처럼 형수님을 행수님이라고 발음한다. 난 이상하게 묘한데서 웃음이 터진단 말이지. 어쨌거나 그건 그렇고. 이 단편은 니키치에게 연문을 보낸 한 낭자의 수수께끼 같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도 시대의 건물은 목재로 지어진 것이 많다. 특히 나가야는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라 불이 나면 번지기도 쉽고 타기도 쉬웠다. 그래서 샤바케 시리즈에는 특히 화재와 관련한 이야기가 많다. 화재와 살인사건. 그 사이의 연관성을 푸는 가운데 드러나는 슬픈 사연. 비록 사람을 죽인 이라고 하나 범인이 그런 행동을 했던 것에는 묘하게 납득이 간다.

<에이키치의 과자>는 이치타로의 소꿉친구인 에이키치의 과자를 먹고 죽은 남자의 사건과 관련된 미스터리이다. 에이키치가 만드는 과자는 맛이 없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규베에는 늘 에이키치의 만주를 사던 사람이다. 고독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규베에의 사연은 가슴 한구석을 짠하게 만든다. 그가 유일한 위안을 얻었던 시간은 과자를 사러 왔을 때 에이키치와 담소를 나누던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던 위인이었지만, 에이키치에겐 좋은 말동무였고, 자신의 과자를 서슴없이 사주던 사람이었기에 에이키치가 보는 규베에의 죽음은 슬플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시대나 지금이나 돈을 둘러싼 사람들의 욕심과 관련된 부분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달까. 돈은 사람을 풍족하게도 만들지만 고독하게도 만든다. 

<하늘빛 유리>는 통가게인 아즈마야에서 일하던 마츠노스케 - 이치타로의 이복형 - 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아즈마야에서 일어나는 괴사건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들의 추악한 욕망. 정말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인간보다 더 무서운 건 세상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마츠노스케의 이야기를 보면 에도 시대가 얼마나 신분구별이 철저한 사회였는지를 잘 알게 된다. 이복형제이지만 한 명은 도련님, 한 명은 고용일꾼 신세.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이라 마츠노스케의 이야기가 나오면 마음이 좀 불편해진다.

새로 맞춘 이불에서 밤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넉장짜리 이불>. 진심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사는 집이나 만지는 물건에는 많든 적든 간에 인간의 기가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엄격한 이불집 주인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고용일꾼들. 그들의 눈물과 한숨이 이불을 만드는 방안에 쌓이고 쌓여 그들이 만드는 이불에도 흘러 들어간다, 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교감하지 못하는 이불집 주인의 맘보를 고쳐주는 부분도 유쾌했다.

이 작품집에는 니치키의 이야기가 두 편이 들어가 있는데, <니치키의 연인>이 바로 그 두번째 이야기이다. 앞에 나온 <사모하는 행수님께>는 니키치를 짝사랑하는 여인의 연문과 그 여인의 죽음과 관련한 미스터리라면 <니키치의 연인>은 순수한 사랑이야기이다. 천년이 넘도록 한 요괴 여인을 사모하는 니키치의 이야기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그가 죽고 새로 태어나는 몇 백년의 시간을 홀로 기다리는 요괴 여인. 인간들은 고작 백년 남짓 사는 삶에서 수없이 많은 사랑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인간과 요괴의 시간 관념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천년이란 시간은 요괴에게 있어서 아주 긴 시간임에 틀림없다. 니키치의 이야기와 인간을 사랑한 요괴 오요시의 사랑이야기. 아름다우면서도 절절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반전은 오요시의 정체. 

마지막 작품인 <무지개를 보다>는 꿈인듯 현실인듯 환상인듯, 솔직히 헷갈리는 작품.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치타로가 얼마나 요괴들을 신뢰하고 의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요괴들만의 도련님 길들이기(?)도 흥미로웠다. 사람들이나 요괴들의 과보호를 싫어하면서도 그것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를 깨닫는 도련님. 도련님의 성장은 앞으로도 주~~욱 이어질 듯 하다.

2권『사모하는 행수님께』는 살인 사건과 같은 미스터리와 더불어 요괴들의 사랑 이야기같은 이야기도 실려있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또한 겉모습과 속이 너무나도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 특히 그들이 가진 추악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역시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금이나 그때나 별반 다른 게 없지 싶어서 말이다.

작가 특유의 유머코드가 곳곳에서 웃음을 터지게 하는 샤바케 시리즈는 에도 시대의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요괴와 인간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간과 다른 감각이랄까. 때론 그런 것이 섬뜩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인 성향 차이이지 근본이 악랄하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은 악랄해지기 때문에 섬뜩하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랄까. 권수를 더해갈 수록 더욱 흥미를 더해가는 샤바케 시리즈. 3권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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