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헤도로 Dorohedoro 6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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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때문에 도마뱀 머리가 된 사나이 카이만.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마법사의 세계로 잠입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단서를 찾기 쉽지 않다. 한편 엔의 마법때문에 마법사의 세계로 떨어진 니카이도 일행은 드디어 엔과 마주하게 된다. 마법사들이 자신의 파트너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 블루 나이트 기간 동안 엔은 니카이도를 자신의 파트너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도로헤도로』6권은 블루 나이트 뒷 이야기를 비롯해서 엔의 저택에서 일어난 수수께끼의 살인 사건 해결, 엔의 과거사 그리고 좀더 진전된 꿈을 꾸는 카이만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탄바 고기 파이집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리스에 대한 단서를 추저하는 카이만의 꿈은 여전히 미궁을 헤매는 느낌이다. 틀림없이 진전된 것은 맞는데 본인이 기억을 못하니 문제지. 게다가 카이만의 활약... 거의 없다. 도대체 마법사의 세계에 잠입한 이유가 뭐야!!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

한편 실종된 신을 찾아 헤매던 노이는 무사히 신을 되찾아 악마의 집에서 계약을 갱신한다. 그리고 엔은 니카이도와 강제인수합병식의 계약을 맺는다. 으, 마법사들의 계약서는 몸안에 있다고 하지만, 계약방식도 참 엽기적이군. 자신의 몸안에 상대의 계약서를 넣으면 계약 완료라나. 그렇게 되면 상대를 지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엔이 노리는 건 그런 거였어. 그리고 엔이 니카이도와 파트너 관계가 되어 궁극적으로 밝히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드러난다. 이것은 아마도 카이만과 관계있을 듯 싶은데, 정작 카이만은 기억을 못하니. (쯧쯧)

엔의 과거지사를 보면 무척이나 흥미로운 점이 많다. 어린 시절의 엔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마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여튼간에 바람직하지 못한 어른으로 자라난 엔이 패밀리를 조직한 일, 6년전 엔이 일으킨 전설적인 사건과 관련있는 일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쑥쑥 뽑혀나온다. 십자눈 조직의 보스와 맞장을 뜬 엔. 그리고 목없는 시체의 뒷모습. 이렇게 보자면 이 목없는 시체가 카이만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나중에 머리가 자라난 것은 아마도 다른 마법이 작용했을 공산이 크고.
6권을 보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카이만과 엔은 절대적인 악연일 수 밖에 없단 것이랄까. 그 접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고. 뭐, 일단은 좀더 두고 보자구.

아, 맞다. 박사와 존슨을 비롯해 등등등은 엔의 저택에서 고문을 받지만 존슨의 작은 친구(?)의 덕분으로 탈출에 성공. 그리고 노상강도 행위를 하다 노이와 신을 만나게 된다. 일단 박사에게 도움을 받았던 신은 박사를 구해준다. 푸하, 이런 의리도 있군. 역시 신도 좋아.

그리고, 기본적으로 시니컬한 성격에 똥건방이 더해지고, 공짜에 환장하는 성품이 더해진 에비스는 매력이 뚝 떨어졌다가 이번에 회복세를 보인다. 오호라, 은근히 착한 면도 있군. 근데 이번에 변신한 건 진짜 웃겼다, 에비스. (푸하하하핫) 게다가 후지타는 파트너가 생길거라고 좋아했는데 너의 배앓이땜에 파트너쉽을 맺는 게 물건너 갔으니, 후지타는 정말로 비운의 사나이군. 그래도 에비스가 있어서 좀 나아졌을지도. 쵸타는... 엔에게 구박만 받잖아. (끄응)

왠지 초반부에 비해 스피드감은 좀 떨어지는 면이 있어도 여전히 재미는 있다. 숨고르기중인가? 하긴 지금 엔의 파트너가 된 니카이도와 카이만이 딱 마주치면... 솔직히 말해서 좀 걱정된다. 억지 계약이든 뭐든 간에 계약을 맺으면 꼼짝없이 4년동안 파트너가 될 수 밖에 없나??? 가여운 니카이도. 아, 엔이 죽으면 계약이 자연스레 파기가...(쿨럭) 뭐, 이래 잔인한 생각을...


6권 부록인 캐릭터 팝업은 엔 패밀리의 보스 엔과 귀염둥이 키쿠라게. 키쿠라게를 크게, 엔을 작게... 만들 수는 없었나? (笑) 농담이고, 엔의 저 알로에 머리는 머리를 감으면 산발이 된단다. 머리를 풀어헤친 엔, 카리스마는 전혀 없었어. 오히려 웃겼다구. 그러니 이 머리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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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테크 바벨의 도서관 10
윌리엄 벡퍼드 지음, 문은실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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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열번째 책은 윌리엄 벡퍼드의 작품이다. 영국작가이지만 아라비아의 종교와 문화를 모티브로 쓴『바테크』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유일한 장편이다. 다른 작품집의 경우 각 작가의 작품중 거의 접해본 적이 없는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왜 이 책만 장편 소설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윌리엄 백퍼드란 작가의 작품 중 유일한 소설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른 작품중에는 여행기 두 편과 일기와 전기 등이 있지만 소설같은 문학 작품은 없다. 이 작품은 원래 1782년에 프랑스어로 씌어졌지만, 1786년 S.헨리가 영역본으로 나온 것을 벡퍼드가 개정한 것이다.

고딕 소설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아라비아의 아바시데스 족의 아홉 번째 칼리프인 바테크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모험에 나서게 되는 환상적인 모험소설이다. 칼리프는 거대한 부와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군림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바벨의 탑을 쌓아올리기도 하고 세상의 보물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어느날 그는 언월도 하나를 손에 넣게 된다. 그곳에 적혀 있는 글귀는 칼리프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상인의 모습을 하고 왔던 악마는 칼리프에게 이슬람 신앙을 버리고 어둠을 숭배하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칼리프는 지하에 있는 불의 궁전의 문을 열 자격을 얻고 세상의 모든 보물과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부적, 그리고 아담 이전의 술탄의 왕관을 얻게 될 것이라 한다. 탐욕스러운 칼리프가 이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불의 궁전에 다다르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백성들을 짓밟고 육욕에 지배당하는 칼리프는 이미 자신의 백성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두려움과 절망이 넘쳐난다. 신앙을 버리고 백성을 저버린 칼리프는 양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 지니가 보여준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저버리고 불의 궁전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화려한 세상이 아니라 지옥이었다.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곳인 것이다.

그것은 고삐 풀린 정열과 악독한 행위에 대한 징벌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징벌이었다. 그것은 창조주가 인간의 지식에 쳐놓은 울타리를 넘는 눈 먼 야망에 대한 응징이었고, 그들이 받아 마땅한 응징이었다. 순수한 지성에게만 제한된 발견을 노리는 것으로 오만에 도취되어, 인간이란 무지하고 비천하게 생겨먹은 존재임을 알지 못해 스스로 불러들인 응징이었다. (190p)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주인공인 칼리프 뿐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 카라티스는 칼리프보다 더욱 잔혹한 인물이며 칼리프가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어둠을 숭배하고 있던 인물로 나온다.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며,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어머니란 존재이다 보니 칼리프 역시 악마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버린 것이 아닐까.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을 알려고 하고, 제 힘을 넘어서는 것을 짊어지려 애쓰는 경솔한 인간들, 필멸의 자들에게 비탄을 내려라' 라고 씌어진 언월도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있었다면 칼리프가 지옥에 떨어질 일은 없었으리라.

사실 칼리프가 떨어진 지옥의 모습은 그다지 끔찍하지 않았다. 물론 영원히 불타는 심장을 가지고 배회하면서 살아야 하는 형벌은 끔찍함 그 자체이지만. 오히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칼리프가 저지른 악행이 지옥 바로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카라티스가 저지른 짓도 지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는 인간으로 지켜야할 도덕과 윤리와 사회의 규범이 있다. 아무리 왕일지라도 만능은 아니며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어둠을 숭상하며 자신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말로에는 구원이란 영원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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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다스의 노예들 바벨의 도서관 9
잭 런던 지음, 김훈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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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아홉번째 책은 잭 런던의 단편소설집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에 소개된 작가들 중 내가 가장 많은 작품을 접했던 작가가 바로 잭 런던이다. 꿈이란 것을 통해 선사시대 이전의 인간들의 삶을 그려낸『비포 아담』,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한『야성이 부르는 소리』, 그리고 미래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독재우익에 맞서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인『강철 군화』가 바로 그것이다. 다양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였지만, 살아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채 미국 문학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잭 런던. 그의 소설에는 그의 삶이,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황금을 좇아 알래스카로 건너갔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들은 모험소설의 재미뿐만 아니라 혹독한 기후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잘 보여준다. 

이번에 읽은『미다스의 노예들』은 잭 런던이 써낸 다양한 문학적 성향을 두루 훑어볼 수 있는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진주잡이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마푸히의 집>은 백인들이 자신들의 재력과 힘으로 원주민들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무엇이 승리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연의 힘앞에는 권력도 재력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직 살아 남겠다는 의지, 그리고 작은 집이나마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싶다는 희망이 자연의 힘도 물리칠 수 있었다. 백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커다란 진주에 불과했지만 마푸히의 가족에 있어서는 희망 그 자체였던 것이다. 

<삶의 법칙>은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나이가 너무 많아 더이상 부족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짐이 되어 버려지게 된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처음에는 안간힘을 써서 버티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에 순응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나라의 고려장 풍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일본 영화 <나라야마부시코>에서 산에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혹독한 기후앞에서는 부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누군가는 부족 전체를 위협하는 인물이 된다. 만약 인정에 이끌려 가족들이 노인을 이끌고 함께 길을 떠났다면 가족은 혹독한 추위에 몰살당했을지도 모른다. 잔인한 운명, 하지만 그것을 결국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노인의 마지막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가 않는다.  

<잃어버린 체면>은 잔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등장하는 이야기지만 의외로 결말이 유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자신들이 핍박하고 괴롭혔던 원주민들에게 역으로 끔찍한 고문을 받고 죽게될 운명에 처한 한 백인이 기지를 발휘해 잔혹한 고문만큼은 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편안하게 죽고 싶다, 라는 건 그곳에 있던 누구라도 바라던 일이 아니었을까. 사기를 치려면 당당하고 담담하게. 남자가 한 일은 바로 그것이었다.

<미다스의 노예들>은 제목만을 봤을 때는 배금주의로 똘똘 뭉친 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말이 영 틀리지는 않다. 미다스의 노예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이 비밀집단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부유한 자들을 압박해가는 방식은 냉혹하며 철저하다. 부유한 자들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돈을 내어주지는 않는다. 부자들만의 자존심일까. 무고한 사람들이 죽든, 자신이 결국 자살을 택하든 결코 그들과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머릿속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어쨌거나 형태가 어떻게 변화했든지 간에 지금도 이 투쟁은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달라짐으로써 겉모습만 변했을 뿐. 

<그림자와 섬광>은 평생을 라이벌 관계로 살아온 두 친구의 이야기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서로를 적대시하고 라이벌 관계로 여기지 않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관계가 되었다면 이들의 운명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까.  

타히티나 알래스카에서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과 서로의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를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인물(혹은 계급과 계급)을 다룬 소설은 잭 런던이 추구했던 문학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타히티를 배경으로 한 <마푸히의 집>과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하는 <삶의 법칙>은 잔혹한 자연앞에서 인간이 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 작품은 대항, 한 작품은 순응이라는 대조점을 보여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미국 현대문학의 이방인이자 방랑자로 살았던 잭 런던의 작품은 풍부한 자전적 경험과 생존 당시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때로는 에둘러 표현하고 때로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잭 런던의 소설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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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의 눈 바벨의 도서관 8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최재경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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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여덟번째 책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의 작품집이다.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라는 풀네임을 읽으며 내가 아는 작가던가,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는데 작가 소개  부분을 읽으면서 누군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 체스터턴은 사제이자 탐정으로 유명한 브라운 신부를 창조해낸 작가이다. 나도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소설은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게 전부지만 - 그러고 보면 독서량이 참 빈약하다, 나도 - 매우 인상적인 탐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읽었던 브라운 신부 등장 작품은 <푸른 십자가>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집 역시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단편이 네편이나 되지만 다행히 내가 읽어본 작품은 하나도 없다. (이걸 정말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

첫번째 작품인 <계시록의 세 기병>은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 칭하고 싶다. 실제로 줄거리를 요약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 숨겨진 미스터리와 반전은 기가 막혔달까. 만약 책이 아닌 공연이었다면 기립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군인들의 충성심, 그리고 미묘하게 틀어지는 상황. 군인은 로봇이 아닌 인간이다. 그러하기에 이런 틈이 생겼고, 그것이 변수가 되어 결과를 비틀어 놓았다.

이 작품에 관한 보르헤스의 해설 중에 백색의 기다란 길, 흰색 군복의 기병과 백마, 체스 게임등으로 멋지게 장식한 작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두운 밤길, 백마를 타고 흰색 군복을 입고 달려가는 병사를 체스 판에 비유한 것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체스 게임을 염두에 두고 보자면 이 기병들은 폰이다. 그리고 시인은 킹이겠지. 하지만 미묘한 어긋남이 체크메이트를 외치지 못하게 한다. 아, 이 얼마나 멋진 작품인가. 

나머지 네편은 브라운 신부의 추리 수첩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모두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각 작품의 느낌은 조금씩 다르다. <이상한 발소리>는 문밖으로 들리는 발소리로 추측하는 사건의 진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솔직히 브라운 신부의 능력에 대해 놀랐달까. 무슨 소머즈 귀도 아니고 각기 다른 발소리가 나는데도 그것이 한 사람의 발소리였으며, 또한 그 발소리가 달라지는 것으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다니. 하지만 더 흥미로웠던 것은 범인이 그런 발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범인의 기지가 한 몫한 작품이랄까. 또한 스스로를 특별취급하는 부자들에 대한 비판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스라엘 가우의 명예>는 스코틀랜드의 고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고성은 고딕 미스터리의 장치를 소화하기에 훌륭한 장소이다. 그곳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건의 진실은 한 귀족 가문의 가치관을 담고 있었다. <아폴로의 눈>은 고대 신앙과 결부된 미스터리이다. 요즘 추리 소설의 경향으로 보자면 알리바이 트릭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가 적인 범인 두 명. 그들의 두뇌 싸움도 매우 흥미롭다. 마지막 작품인 <이르슈 박사의 결투>는 서로를 부인하는 존재, 서로를 상쇄하는 존재에 관한 미스터리이다. 왜 그들은 절대 만날 수 없게 된 것일까. 알고 읽으면 별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지 몰라도 그 구성이 매우 치밀한 것에 감탄을 느낄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미스터리와 신비주의가 결합된 사건의 진실, 사제이자 탐정인 브라운 신부의 추리 능력은 요즘 이 책을 읽어도 오래된 작품을 읽는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구성이 촘촘하다. 특히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브라운 신부의 말투는 사람 애간장을 타게 하는 면도 있지만, 그게 브라운 신부의 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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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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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일까, 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 운명의 상대고 나발이고가 어디 있어? 그냥 적절한 상대와 만나는 것이지, 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명의 상대? 꿈 같은 이야기야. 아이처럼 아직도 그런 걸 믿어? 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사랑때문에 힘든 일을 겪었거나 헤어나올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는 하긴 하는데 있는 족족 다 깨지고 마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어떨까. 이제껏 남들만큼 연애도 하고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던 나지만, 여전히 운명의 상대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직 못만난 것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번의 연애에서 혹시,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혼자인 걸 봐서는 못만났다고 하는 게 옳다. 난 전생도 믿고 내세도 믿는 사람인지라 지금이 아니면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마도 서른도 훨씬 넘은 나이라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지금이 20대였다면 운명의 짝을 만난 사람들을 보면서 저주라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겠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은 착한 맘씨로 공덕을 쌓아야..(쿨럭) 나도 내 짝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빈곤한 생각에 쩔어..(음) 하여간 그렇다.

이십대에는 제짝을 만나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상대와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적잖이 실망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연애를 잘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시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까. 여전히 난 그 해답을 모른다.

내 친구들 중에는 벌써 오래전에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사는 친구들도 있고, 여전히 나처럼 혼자 사는 친구들도 있다. 내 친구 중에는 십년을 연애하면서 수십번도 더 헤어진다고 하던 친구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찌나 잘 사는지. 또한 정말 이 부부는 서로의 운명의 짝인게야,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친구 커플도 있다. 그들의 외모는 무척 비슷하다. 사랑하면 닮는다지만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두 사람은 턱이 약간 튀어나온 일명 주걱턱인데, 내친구도 내친구의 남편도 턱이 똑닮았다. 이런 걸 보면 정말 두 사람은 운명의 상대가 맞긴 맞나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저 턱이 증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달까. 

하지만 첫눈에 딱 보고 그 사람을 운명의 상대라고 눈치챌 수 있을까. 물론 첫눈에 반했다라는 이야기를 자랑거리로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외모에 끌린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이상적인 타입이랄까. 겉모습에 반하고, 만나면서 속마음에 반한다면 더욱 이상적이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상적인 만남은 많지 않다. 오히려 만나다 보니 좋아졌다, 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의 주인공 아키오는 재벌집의 후계자로 훌륭한 부모님과 훌륭한 형을 두고 있지만, 스스로가 못났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이 늘 부담스러워했다. 그런 그가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나즈사라는 평범한 여성이다. 아키오는 나즈사와 결혼하면 늘 행복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2년만에 깨지고 만다. 나즈사가 예전에 사귀던 신이치란 남자가 이혼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크게 흔들려 버리게 된 것이다. 아키오는 나즈사의 마음이 일시적으로 흔들린 것이라 생각하지만 나즈사의 마음은 이미 신이치에게로 기울어져버렸다.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것이 있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도 쉽게 깨져버리고 만다. 아키오는 나즈사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려 하지만 이미 둘 사이는 너무나도 많이 벌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나즈사의 일로 개인적 상담을 하던 미치코와 가까워진 아키오는 직장 선배로서 의지했던 그녀가 새삼스럽게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에게서만 나는 자신만이 맡을 수 있는 향기. 그것은 아키오가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했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미치코는 향수는 일체 쓰지 않았다고 하니까. 하지만 아키오가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잠시동안이지만 행복했던 미치코와의 결혼 생활이 그를 위로해줄테지만, 이제 더이상 자신의 운명의 상대가 자신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슬퍼할 것이다. 왜 우리들은 항상 너무 늦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일까. 

이 작품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아키오 - 미치코, 나즈사 - 신이치 뿐만이 아니다. 제일 안타까운 건 역시 나기사이다. 아키오의 정혼상대로 정해졌지만 아키오의 형 야스오를 좋아하는 나기사. 하지만 야스오는 형수 마리를 좋아한다.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을 늘 바라보던 나기사의 운명은 갑작스런 사고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서로 마주 봐야 할 두 사람이 제대로 마주 보고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이 세상에는 흔하지 않다. (151p)

이 세상 사람들 각각에게 단 한명의 운명의 상대만 존재한다면, 그 사람만을 사랑하도록 되어 있다면 세상에 슬픈 사랑이란 없을텐데. 하지만 그런 행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다. 이들 역시 그랬다. 그리고 현실의 우리도 그렇다. 어쩌면 그런 슬픔들이 있기에 운명적인 사랑이 운명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지만.  
 
<둘도 없이 소중한 너에게>는 엘리트 약혼자를 둔 미하루가 결혼을 앞두고 옛날 애인과 다시 만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가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결혼 상대자를 두고 누군가를 - 그것도 옛 연인- 을 만난다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하루와 약혼자 세이지의 사이는 조건에 맞추어 결정된 사이라 보는 쪽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미하루의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은 옛 연인 구사키일지도 모른다. 결혼이란 것에 대해 비관적 입장을 가진 미하루, 그리고 그녀에게 얼핏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만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구사키. 미하루는 결혼식 전날 마지막 운을 걸고 한가지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 

이 세상엔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두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정의, 다른 하나는 바로 드라마이다. (224p)

결말부를 보면서 새삼 이 문장이 떠올랐다. 현실에 드라마는 없다. 드라마처럼 보여도 드라마는 아니다. 이 책 역시 가상의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드라마틱한 연출은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 현실적이라 운명적인 사랑의 드라마틱함을 생각했던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결말이라 생각한다. 사랑에는 때가 있다. 미하루는 그 적절한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미하루는 그 사랑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만 스스로 외면해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공허함 뿐일 것이다. 미하루는 어쩌면 자신의 운명의 상대였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눈앞에서 놓쳐버렸으니까.

운명의 상대에 대한 이야기인데 두 편 모두 새드엔딩이다. 아키오는 미치코가 자신의 운명의 상대였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고, 미하루는 운명의 상대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냥 보내버렸으니까.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너무 늦게 깨닫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거나. 그래서 더욱 공감가는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역자 후기를 읽으면서 '사랑은 디테일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사랑은 수많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세부화된다. 나같은 경우 이 말에 공감을 하는 이유가 나도 디테일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조개가 있는 남자면 좋겠다, 손가락이 길고 예쁘면 좋겠다, 쌍꺼풀은 진하지 않지만 눈이 좀 큰 편이면 좋겠다 등등. 물론 그외의 조건 - 학력, 집안, 키 - 등은 여느 사람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가 더 많이 신경쓰는 부분은 행동이나 버릇이다. 아무리 좋은 점이 많을지라도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나 버릇을 가진 사람이면 외면하게 된다. 난 묘하게도 사소한 일에 감동받는 일보다는 사소한 일에 실망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행동이나 버릇은 절대 못고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이기에 아흔아홉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어도 단 한가지 단점이 내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난 그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래서 사랑을 못하는가. (씁쓸)

어쨌거나 사랑이란 것은 그런 것이다.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존재하기에 단 한번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운명이란 것을 깨닫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때로는 그것들이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수도 있다.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인내심이 많은 것이 아니니까. 운명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늘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사람의 인생은, 죽기 직전 마지막 하루라도 좋으니까, 그런 가장 좋은 상대를 발견하면 성공한 거야. 말하고 보니 보물찾기랑 비슷하네. (153p)

앞으로의 인생에서 만날 운명의 상대를 너무 늦게 깨닫거나, 미처 깨닫지 못하는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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