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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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을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숙하고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현재 지구에 몇종의 생물이 얼마나 많이 분포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들의 생태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었고 지구를 정복했다는 믿음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은 감기 바이러스조차도 정복하지 못했다.

『천사의 속삭임』은 아마존 원정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상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건에 감춰진 커다란 비밀과 그것이 가진 끔찍한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직접 저지르게 된 것일까. 정신과 의사 기타지마 사나에의 연인이자 작가인 다카나시는 병적일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마존 원정대에 다녀온 이후 그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변화를 보인다. 식욕의 증가, 성적 욕구의 증가를 비롯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에 대해 찬미하고 매료된 듯한 태도를 보이다 자살하고 만다. 그는 죽기전에 천사의 날개짓 소리가 들린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남겼다. 도대체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외에도 고양이과 동물을 두려워하던 한 남자는 사파리 파크안에서 호랑이에게 스스로 다가가 물려 죽고, 영유아 돌연사망증후군으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자신의 딸과 함께 지하철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탐험대 조사원 다섯명 중 세명은 사망, 두명은 실종. 그러나 실종된 듯 보였던 두 사람은 <가이아의 자식들>이란 웹사이트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치유를 해나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 역시 이상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둘 씩 기묘한 자살 방법으로 - 그들의 가장 두려워한 것들에 의한 - 죽어 간다. 사나에는 다카나시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요다와 함께 그 사건들과 관련된 비밀을 파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할 만한 단서를 잡게 된다.  

천사의 날개짓 소리,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 등 어떻게 보면 오컬트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호러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인간들에게 내려진 것은 단순히 그곳 원주민들이 이야기하는 저주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그 일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저주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원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영화 <아웃브레이크> 등에 등장하는 신종 바이러스는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간다. 예전 같으면 인간의 행동반경이 아주 협소했기 때문에 번지지 않았을 질병도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몇년 전 크게 유행했던 사스 역시 마찬가지이고, 신종플루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금 다르지만 구제역 역시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짐으로 인해 퍼지게 된 질병인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의 습격으로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 그것은 커다란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미개하다고만 생각한 그 존재가 실은 아주 조직적으로 인간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커다란 공포이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것이 낫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인간을 잠식해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공포를 쾌락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그 작은 존재. 그것이 인간을 파멸로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 존재가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번식 프로그램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더 끔찍하다. 인간을 살아 있는 배양기로 삼은 그 존재들. 특히나 끔찍했던 장면은 연수원의 공동 목욕탕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비위가 강해 웬만한 장면에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내가 그 장면에선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그 장면 자체가 끔찍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그 존재 자체가 끔찍해서이다. 그런게 온몸을 잠식하고 다른 숙주가 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 작품은 의학, 생물학 등 과학적인 부분을 비롯해, 신화와 전설, 컴퓨터 게임과 오타쿠, 환경오염, 바둑이나 장기같은 취미생활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취재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관련 서적을 읽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혈액보관 시스템의 관리 소홀로 인한 에이즈 2차 감염 문제를 비롯해 후생성에 대한 비판과 언론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종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호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제껏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던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섣불리 발을 디디고 정복했다고 믿지만, 역으로 인간이 다른 생명들에게 정복당할 수도 있다. 인간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다. 도구와 장치로 자신을 부풀려 놓았지만 맨몸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연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 봐야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미지의 것들이 인간 세상을 잠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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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캐스트
마마하라 엘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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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도 연예계 이야기란 감이 팍 온다. 마마하라 엘리의 그림은 죄다 연예인삘이 나니 그림체가 잘 맞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렇다. 조막만한 얼굴에 길쭉길쭉한 팔다리, 일반인도 연예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림체랄까. 보는 나로서는 눈이 즐겁기만 하다. 그렇다면 스토리는... 어떨까. 스토리는 미즈하시 타카나라고 하는데 이 역시 그림만 그린 건가? 하긴 마마하라 엘리는 그림은 예쁜데 스토리가 약간 딸리는 느낌이 있긴 하지. (에휴)

어쨌거나. 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야마무로 유키는 그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는 수려한 외모와 재능을 겸비한 데뷔 10년차 배우이다. 현재그는 뮤지컬에 출연중이며 사와키 미츠루란 신인 배우와 더블 캐스팅된 상태이다. 자신의 연인이자 프로듀서인 오타키가 그에게 주목하자 유키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에게 접근하지만, 이거 왠일. 순한 양인줄 알았는데 은근히 유키를 휘두를 줄 아는 재능까지 지녔다. 게다가 티비 드라마에서도 더블 캐스팅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미츠루와 함께 연기를 하면서 유키는 미츠루의 재능에 압도되기 시작한다. 유키는 신인배우 미츠루에게 밀려났다는 자괴감때문에 조금씩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더욱 자신감을 잃게 되는 유키. 그는 묻혀있는 자신의 재능을 끌어내고 미츠루와 동등한 자리에 설 수 있을까. 

『더블 캐스트』는 연예계의 전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기 보다는 유키란 한 사람의 배우를 집중적으로 보여 준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혼란, 상대 배우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라는 감정 등에 집중한다. 재능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 화려하지만 철저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연예계에서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유키의 모습은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미츠루가 배우는 노, 우타이, 시마이 연습 장면도 흥미로웠다. 이런 부분은 일본 특유의 문화이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좀더 자세하게 나오지 않아 아쉬웠달까. 

캐릭터 면에서 보자면 미츠루는 전형적인 수타입이고, 유키는 공수 모두 가능한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뒤집어져서 푸핫하고 웃음이... 역시 양의 탈을 쓴 늑대였어, 미츠루는...

일과 사랑, 두마리의 토끼를 쫓는 두 남자의 이야기. 완전 멋져, 완전 재미있어, 정도의 작품은 아니지만 역할에 따른 다양한 분장과 캐릭터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만큼은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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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2 러브크래프트 전집 2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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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 전집 2권의 부제는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이다. 우주란 단어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우주선이 등장하거나 다른 은하계 혹은 다른 행성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배경은 전부 지구이며, 외계인의 직접적인 등장도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다른 유명 SF 작품처럼 화려한 맛은 없다. 하지만 읽다 보면 등줄기가 써늘해지는 느낌이 든다. 현실성이 강하달까. 이런 것이 다른 SF작품과 다른 러브크래프트의 SF 작품만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2권에는 총 7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첫번째 작품인 <저 너머에서>는 익숙한 공간이 극한의 공포를 주는 공간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것만 실재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무런 사물이 없는 공간은 그냥 빈 공간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이 빈공간이 아니라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바글바글대는 공간이었다면? 차라리 유령이나 귀신이 보이는 것이 고마워질지도 모른다.

<금단의 저택>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한다. 러브크래프트의 뱀파이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뱀파이어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연기같은 모습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다른 뱀파이어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러브크래프트의 뱀파이어는 균류로 덮여있다. 이런 균류는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괴물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인데, 매끈한 피부보다는 균류로 덮여 있는 뱀파이어는 더욱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냉기>는 1권에 나온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와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훨씬 더 진보된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 작품이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보다 뒤에 씌어진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앞선 작품에서 되살아난 존재는 식욕이란 본능을 가진 좀비에 가깝지만, 이 작품에서 되살아난 존재는 지능같은 것이  그대로 남아 있기에 겉보기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사실 좀비는 겉으로 보기에 구별이나 되지, 이런 존재가 내 곁에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리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을 ?를 생각하면 오히려 좀비보다 더 오싹하지 않을까. 

<우주에서 온 색채>는 한 농장 인근에 운석이 떨어진 이후 변해가는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서히 자신의 주변을 침식해가는 어떤 존재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다.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결국 모두를 파멸시킨 색으로만 이루어진 존재. 거대한 우주에 비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우주는 인간에게 어떤 동정심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는 외계인들이 인간사이에 숨어 살고 있다는 설정을 가진다. 영화 <맨 인 블랙>의 경우 그 존재들이 인간과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외계인들은 깊은 산 속에서 숨어서 지낸다. 그들은 흔적을 남기긴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자신들을 알아봐 주기를 원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들이 그들에 대해 궁금하면 일종의 응징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목적은 인간과 지구를 관찰하는 것이지 인간과 어울리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

<광기의 산맥>은 여기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남극에서 발견된 고대의 외계 종족과 그들이 만든 건축물을 탐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이야기의 반복이 심해 좀 장황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장치는 "당신들은 절대 내 말을 못믿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화자의 심정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인류가 나타나기전 지구를 지배하던 존재들인 올드원과 그들이 창조했지만 그들을 파멸로 몰고간 쇼고스의 역사는 인간이 절대로 들여다보지 말아야 할 어둠이 아니었을까.

<시간의 그림자>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외계 종족이 등장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그들의 존재가 직접 드러나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의 꿈과 유적을 통해 드러난다. 외계종족인 그레이트 종족은 러브크래프트의 다른 작품에 나오는 미지의 존재나 외계 종족과는 달리 인간과 인간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그들은 특정 인간들의 몸을 빌려 인간 세상을 관찰하며 살아온 존재이다. 주인공 남자가 바로 그 대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개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은 소멸하지만 이 남자만큼은 꿈을 통해 그 시간을 기억해낸다. 꿈속의 기억을 더듬어 그들의 남긴 유적으로 향한 이 남자는 그곳에서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SF 장르답게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과학자같은 학자들이 화자가 되거나 등장인물로 나오는 작품이 많다. 또한 1권에서 자주 나오는 미지의 존재나 수수께끼의 혈통보다는 고대에 인류가 출현하기 전부터 지구에 살고 있던 고대 외계 종족이 등장하거나 운석같은 것을 통해 지구에 도착한 외계의 존재와 오래전부터 인간의 주변에 살고 있는 외계의 존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과학적인 서술이 많다는 것도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SF적인 느낌만을 주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적인 공포와 결합된 SF라고 할까. 게다가 그들은 인류가 출현하기 전에 지구에 왔고 높은 문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다.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시 부활할 날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들이 더욱 현실성있고, 더욱 오싹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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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술맛은 안녕하세요? 1 - 막걸리 이야기
박기홍 지음, 최미르 그림, 박록담 감수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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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처음 마셔본 것은... 고교 2학년때였던가? 그냥 호기심에 누가 주는 걸 마셔본 기억이 있다. 그때 마신 막걸리는 일명 막사(막걸리 + 사이다를 혼합한 것)라 불리는 것이었는데 달착지근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참으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에 막걸리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입학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서 4년동안 주야장천 마셨다고 해야하나. 물론 맥주나 소주를 먹기도 했지만 가난한 학생 신분에 막걸리만큼 싼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리 공연이나 체육대회, 축제 때는 막걸리를 박스로 쌓아놓고 마시던 기억이 난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대구에 있던 학교라 팔공산 불* 막걸리가 주종목이었달까. 거기에 고갈비(고등어에 양념을 해서 구운 것)만 있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었더랬다. 물론 많이 마신 다음날은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감수해야 했었지만 말이다.  

막걸리를 제대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입학때부터였지만 막걸리와 처음 만나본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이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드셨는데 그 술은 젯상에도 오르고, 할아버지의 반주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손주들 간식용으로 만드시는 찐빵을 발효시키는 역할도 했지. 그때의 기억이 확실하게 나는 건 아니지만 누룩을 보면서 딱딱하게 굳은 빵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기포가 뽀글뽀글 생기는 독안을 들여다 보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할머니가 만드신 막걸리를 먹어 본 기억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술을 공식적(?)으로 마실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할머니께선 막걸리를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막걸리란 술은 집집마다 만들어 먹을 정도로 흔하고 익숙한 술이었다. 특히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새참으로 막걸리 한사발씩을 드시면서 일을 했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막걸리는 싸구려 술, 돈 없는 사람이나 먹는 술 등으로 전락하기 시작해 한때는 막걸리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술도가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유명한 술도가나 그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언젠가 봤던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그런 것들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막걸리를 대량으로 주문하는 사람이 없어서 소량 주문이라도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배달한다는 주인장의 모습에 가슴이 아파 왔다.

우리와 친근한 술, 집집마다 만들어 먹던 술이 왜 지금은 이렇게 천대를 받는 것일까. 막걸리 맛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약간의 단맛, 알싸한 맛, 쏘는 맛, 텁텁한 맛 등 내가 기억하는 막걸리 맛만 해도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은 막걸리는 뒤끝이 안좋다는 것. 즉 숙취가 심한 술이란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막걸리는 좋은 소주처럼 뒤끝이 없다. 안동 소주 45도짜리를 마셔본 사람은 안다. 마실 때는 목이 타는듯 뜨겁지만 의외로 다음날 가뿐하게 일어날 수 있다. (물론 떡이 되도록 마시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오늘 술맛은 안녕하세요?』는 서른 살의 공무원 공희주를 중심으로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할머니가 만들던 막걸리, 할머니가 만든 막걸리를 좋아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할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우리 할머니가 만드신 막걸리는 유명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맛은 아니었을지라도 우리 집안의 조상님들을 위해 바치는 술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공희주는 할머니의 막걸리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 부산으로 떠난다. 부산에 있는 산성도가에서 듣게 되는 할머니 이야기. 어쩌면 공희주의 할머니는 우리 모두의 할머니 모습과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게 있어 막걸리는 추억이 담긴 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에서의 추억은 지나간 일에 대한 그리움, 지금은 우리 곁에 있지 않은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란 의미다. 우리에게 잊혀진 것을 되새기게 해주는 그런 것이란 의미다.

공희주가 할머니의 자취를 더듬어 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막걸리가 어떤 술인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볼 수 있다. 또한 희주의 친구가 차린 와인바와 막걸리 도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 우리 전통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와인은 종류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와인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비싼 와인이나 희귀한 와인이 많다. 하지만 막걸리는 서민의 술, 마시면 뒤끝이 좋지 않은 술로 낙인 찍혀 쓸쓸히 사양길을 걸어 왔다. 이 책은 그런 막걸리의 전통을 끊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전통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전통주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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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의 축제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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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5년만에 도미니카를 찾아온 우라니아. 그녀는 14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스스로의 힘으로 이제껏 자신의 삶을 일구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의 편지에도 절대 응하지 않았던 그녀가 수십년의 세월이 지나 자신의 조국을 찾아온 이유, 그녀가 고국인 도미니카로부터 등을 돌렸던 이유는 무엇이고 자신의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던 이유, 그리고 아버지를 증오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2권에서 밝혀진다.

2권의 구성은 초반부는 1권과 비슷하다. 우라니아, 트루히요, 그리고 암살자들의 시점에서 돌아가면서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도미니카에 몰아닥친 정치 사회적 혼란과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는 도미니카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암살에 가담한 대통령과 로만 장군의 상반되는 대처능력이다. 허수아비 대통령이지만 자신이 염소의 사망 이후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도미니카 공화국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싹을 틔워 튼튼한 뿌리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발라게르의 활약은 자못 흥미롭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점은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달까. 

발라게르와 달리 로만은 염소의 죽음 이후에도 그의 지배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비록 총통이 몸은 죽었을지라도 그의 영혼이나 정신 같은 것이 계속해서 그를 지배하고 있다고 느꼈다. (226p) 그는 생전의 염소가 걸어 놓은 최면상태이자 마취상태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로만 장군은 이성을 잃고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파멸을 맞는다. 로만 장군을 비롯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과 친척들은 트루히요의 죽음으로 광기에 물든 아들 람피스에 의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숨을 거둔다.  트루히요의 유족들은 그들이 도미니카에서 떠나는 날까지 그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그 고문 장면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져 소름이 끼친다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트루히요의 집권 31년동안 이런 일은 비일비재했을 것이지만 집권을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뿐이라고.

이런 생각도 해본다. 물론 역사에서 있어서 가정은 금물이라지만... 만약 로만이 이성적으로 대처했더라면, 람피스가 돌아오기 전 군대를 장악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랬더라면 람피스와 트루히요의 형제들의 광기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미국의 개입 요소가 더 적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미 역사는 그렇게 씌어져 버렸으니까.

그렇다면 우라니아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이 날까. 우라니아는 도미니카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났다. 오래전에 일어났던 일을 추궁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대답없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우라니아는 아버지와의 사이에 생긴 골을 메꾸지 못할 것이다. 대신 우라니아는 고모와 사촌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해서 희생한 게 아니에요, 고모. 날 사려고 했던 거예요. 자기의 죄의식을 씻어버리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게 하등의 쓸모도 없으며,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비열하고 사악한 인간이라고 느끼면서 평생을 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44p)

나는 아빠가 살아 있지만 죽은 몸으로 평생 고통 속에 살길 원해요. (138p)

위 두 문장은 우라니아가 아버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1권의 내용으로 볼 때 우라니아를 미국으로 피신시킨 것은 우라니아의 아버지 카브랄로 보여졌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 발라게르와 총통 트루히요의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일 뿐 진실은 달랐다. 카브랄은 자신에 대한 총애를 거둔 트루히요의 생각을 두려워 했고, 결국 자신의 딸을 트루히요에게 제물로 선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입지를 되찾기 위해 딸을 희생한 아버지를 우리니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트라우마는 남자에 대한 불신, 어른에 대한 불신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우라니아는 어떤 남자도 받아들일 수 없다.

어쩌면 우라니아는 자신을 강간한 트루히요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악마앞에 선뜻 내놓다니. 우라니아가 겪은 고통, 상처, 절망, 분노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잔인하고 참혹한 말을 들려주는 건 바로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예요. 이제 이 이야기는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이미 끝난 일이니까요. 이미 지난 일이고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아마도 다른 여자였다면 그런 충격을 극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어요. (364p)

그녀는 미국에서 엘리트층에 속할 정도로 성공했지만 그녀의 일부분은 열네살의 소녀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로 남았다. 오랜 기간동안 그녀를 잠식했던 비밀. 그녀는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써 자신이 그 일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볼 때 우라니아가 그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 하더라도 고국과의 인연을 아예 끊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장을 통해 그녀는 치유의 길을 향해 한 발을 내딛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남성중심의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고통받아 온 여성, 공포정치로 31년동안 장기 집권을 한 총통, 그리고 그를 죽이고 도미니카에 자유를 가져오려 했던 암살자들의 이야기로 대변되는 도미니카의 잔혹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도미니카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오랜 기간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를 받다 독립했지만 잇다른 독재정권의 집권으로 몸살을 앓아온 라틴아메리카 전체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빼앗긴 채 공포에 마비되어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공포는 사람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트루히요같은 독재자가 오랜 기간 장기집권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마비 효과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마비상태로 남아있는 것도, 영원히 한자리에 머무르는 것도 없다. 다른 누구보다 앞서 그 감각에서 해방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들의 희생으로 또다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환희가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트루히요 신봉자들이었던 이들에게 트루히요의 죽음 이후 달라진 정치 사회적 상황은 그들에게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만을 자극할 뿐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박통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이런 부류일 것이라 생각한다. 트루히요 신봉자들이 공포정치는 잊었듯, 우리나라 사람들이 박통의 유신체제를 잊고 경제발전 같은 신화에만 집중하듯 말이다. 또한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히 그 시대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우라니아같은 사람도 있다. 앞으로는 부디 우라니아가 여전히 자신을 좀먹고 있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염소의 시대에서 벗어나 밝은 빛속으로 걸어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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