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인간
아베 고보 지음, 송인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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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이란 것은 익명의 기부자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좋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마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블로그에서 쓰는 닉네임은 내 이름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이름이다. 이 닉네임을 통해 난 또다른 사람으로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 네트워크 상에서 만나는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가 없다. 상대도 나에 대해 잘 모르고 나도 상대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쓰는 글에는 나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있는 글들이 포함되긴 하지만 그것으로 나에 대해 전부 알 수는 없다. 물론 일부러 숨기는 것도 많지만. 꼭 필요한 정도만 공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익명으로 또다른 세상에서 살아갈까. 어쩌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딪히는 현실과는 다른 편리한 점이 많아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어찌보면 얄팍한 관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정도로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처음부터 선을 긋고 시작한다는 느낌이랄까. 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꼭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첨단기술로 무장한 시대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더 작은 존재가 되어 간다. 사람과 사람이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몸을 숨기고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다.『상자인간』에 등장하는 남자가 상자속에 몸을 숨긴 것처럼 철저한 익명성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와 우리가 다른 것은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숨기려 한다는 것이고 우리는 컴퓨터 뒤에 숨어 있긴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네트워크에 연결한다는 점이다. 숨긴다는 것은 같지만, 아예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숨기는 것과 존재는 드러내지만 다른 얼굴로 드러낸다는 차이점이랄까.

책을 읽으면서 무척 혼란스러웠다. 화자는 남자임이 분명한데 이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연결되는지가 헷갈렸다고 할까.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싶어서 상자인간이 된 한 남자. 그는 상자안에서 모든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게 그는 상자속에서 밖을 엿보는 것이다. 완전한 고립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의 세계에서 고립시킨다고 할까.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보는 자이다. 그것도 엿보는 자이다. 그는 어느날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상자속에 들어가 살아가기 시작한다. 자신을 모두 버리고 세상에서 부유하는 존재랄까. 하지만 세상은 그를 보지 않는다. 보이지만 보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는 세상이 복잡해져서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것과 함께 하는 것이다. 요즘 세상은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다. 그래서 이 상자인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베 고보의 다른 작품인『타인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을 잃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본 뜬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면『상자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철저하게 숨기고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두 편의 작품 모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한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한 사람은 철저히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어찌 보면 두 인간형 모두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즉, 네트워크 상에서 철저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고도로 발달된 사회 그리고 사람의 존재가 작아진 사회에서 자신을 열외인간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일그러진 부분이자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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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신의 카르테 1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작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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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병원도 싫고 의사도 싫다. 어릴 때부터 자주 병원신세를 져야 했으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병원에만 가면 더 아픈 느낌이 든다. 온통 아픈 사람밖에 없어서 그렇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의사들의 냉담한 태도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몇년 전 하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간 적이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종합병원이 있어 일단 그곳에서 진찰받았지만 더 많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도 2~3시간을 기다려 3분 진료받았다. 질의응답이 전부, 나머지는 검사, 검사, 검사. 지리한 검사가 이어지고 며칠을 기다려 검사 결과를 받았다. 근막통증증후군이란 생소한 병명. 되게 거한 병같지만 알고 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를 받자고 피검사에 소변검사, X-레이 촬영에, MRI까지 찍었다. 사실 이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데 치료방법은 약물, 주사, 재활치료등 정도다. 그러니 그다지 심각할 건 없는데 괜히 사람 겁주고 있어, 이런 느낌이었달까. 

검사비는 둘째치고 제일 기분이 안좋은 건 역시 의사의 태도였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환자를 봐야 하는 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환자를 단지 케이스로만 보는 게 제일 싫었다. 의사 입장에선 내가 인간으로 보이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달까. 이런 건 수없이 경험해 봤다. 문진으로 잘 모르겠으면 무조건 검사. 그리고 주사나 약처방. 병원을 다닐 때마다 늘 이런 점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병원도 의사도 싫다. 물론 그들이 그냥 의사가 된 건 아니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건 실력이 좋은 의사는 많지만, 좋은 의사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신의 카르테』는 지방의 한 병원에 일하는 의사의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구리하라 이치토. 이 병원에서 5년 근무한 의사로 결혼은 1년전에 했다. 이정도 설정만 보면 대충 그렇고 그런 의학 소설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근데 이거 첫페이지부터 묘하다. 조금 더 읽으면 어디가 묘한지 알게 된다. 책 본문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이 의사 말투가 올드하달까.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고 그의 소설『풀베개』를 무척 좋아해서 소설 전문을 달달 외울 정도라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게다가 그가 다른 의사들에게 붙인 별명인 늙은 너구리, 늙은 여우, 자약 선생 등을 비롯해 그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인 온타케소의 거주민인 남작님과 학사님등을 봐도 나쓰메 소세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것이다. 별명을 붙인 걸 보면『도련님』이 떠오른다. 그건 그렇고.

구리하라는 내과를 담당하는 의사이지만 근무하는 병원에는 인력이 부족해서 응급실 담당도 하고 있는데, 구리하라가 근무하는 날이면 환자들이 더욱더 많다는 미스터리한 의사이기도 하다. 며칠 밤새는 건 기본이지만 나름대로 이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구리하라. 그가 대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노령의 환자들로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 기억나는 환자는 노령의 암환자인 아즈미씨. 남편과 사별한 후 외롭게 살아온 할머니인데 대학병원에서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구리하라가 일하는 병원에 재입원한 환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 할머니를 방문하는 노신사와의 일화와 구리하라가 아즈미씨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생일을 챙겨주던 장면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고이더니 결국 아즈미씨가 천국에서 보낸 편지를 읽는 순간, 으흑하는 신음과 함께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꽤나 유머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편이지만 환자와 의사와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울었던 이유는 아즈미씨의 죽음때문이 아니었다. 노신사와 아즈미씨의 오래된 인연과 그들의 사연, 구리하라의 생일 선물, 그리고 천국에서 보낸 편지가 내 눈물샘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단순히 신파극이었다면 눈물이 이토록 나오지 않았으리라. 

또한 학사님과의 일화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학사님의 사연을 듣는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남작님이 학사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그토록 힘든 시간을 보낸 학사님의 앞날을 위한 축복이 담긴 선물이랄까. 이런 선물은 세상 어떤 선물보다 값지리라. 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고, 멈추지 않는 비도 없다는 구리하라의 말처럼, 사람의 인생은 늘 양지와 음지가 함께 존재한다. 음지의 시간이 길었다 해도 언젠가 해가 뜨는 양지의 시간이 오게 마련이니까.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 남작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책을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무심하게 말하는 듯한 구리하라의 말투에 웃다가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마음이 먹먹해지다 눈물을 터뜨리게 만드는『신의 카르테』. 의사 출신 작가라서 그런지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은 무척이나 세심하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오마주랄까 그런 면도 많이 보인다. 직접 책제목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지만, 등장인물에 별명을 붙이는 것이나 문체등에서 그런 것을 많이 느낄 수 있달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요즘 책을 읽으면서 뭉클한 적은 있었어도 으흐흑, 하는 신음 소리를 내면서 울었던 책은 거의 없다.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의 사연이 등장함에도 신파조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또한 나름대로 고충을 앉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같은 느낌도 좋았다.

의술은 단순한 고도의 기술이 아니라 인술이라 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구리하라의 장점이자 환자들이 구리하라를 신뢰하는 점이다. 물론 구리하라는 실력도 좋은 편이라는 건 따로 덧붙이지 않아도 되겠지. 구리하라같은 의사들이 좀더 늘어난다면, 환자를 단순히 케이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봐주고 그들의 속내도 들여다 봐주는 의사가 있다면 환자들은 덜 고독해질지도 모르겠다. 아즈미씨의 말처럼 아프다는 것은 고독한 일이다. 내가 얼마만큼 아픈지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덜 외롭지 않을까. 세상이 덜 원망스럽지 않을까. 

살아있는 듯한 캐릭터는 소설의 맛을 더하고, 유머러스함과 눈물콧물 쏙 빼게 만드는 사람들의 사연은 감동을 더한다. 2010년에『신의 카르테』2권도 발간되었다고 하는데, 2권도 얼른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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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黑薔薇アリス 5
                                                水城 せとな (著) / 秋田書店 (2011)
                                                                 ★★★★★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가수로 활약하던 디미트리는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은 후 뱀파이어가 된다. 그후 그가 부르는 노래는 죽음의 노래가 되었고, 사랑하는 여인 아니에스카마저 죽게 만든다. 그후 일본으로 건너와 살게 된 디미트리는 교통사고로 빈사의 상태에 빠진 코우야를 살려준다는 조건으로 아즈사의 영혼을 아니에스카에 몸에 옮긴다. 아즈사는 아니에스카의 몸에 적응을 하는 한편 앨리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앨리스가 된 아즈사가 해야 할 일은 디미트리와 함께 살고 있는 뱀파이어 중 한 명을 택해 번식을 하는 것. 하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선택을 하지 못한채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앨리스가 연주하는「죽은 왕녀을 위한 파반느」를 들은 코우야가 찾아오게 된다. 2년만에 만난 코우야는 너무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앨리스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지만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다. 하지만 무슨 연유일까. 코우야는 그날 이후 앨리스를 계속 찾아오게 된다. 앨리스는 코우야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결국 코우야가 다니던 학교를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고 코우야는 앨리스가 아즈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되는데...

아후, 5권을 읽으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랬더니 결국 일이 터지는구나. 2년전 고교생이었던 코우야는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그토록 밝고 명랑했던 소년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음울한 모습만 간직한 코우야. 그때 아즈사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아즈사가 죽을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자책과 죄책감으로 살아온 2년. 그 2년이 코우야에겐 지옥이었다. 아즈사는 자신의 희생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그의 행복을 위한 결정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코우야를 망치게 되었다니. 에휴. 솔직히 말해서 요즘 앨리스가 좀 마음에 안들었는데 이런 걸 보니 마음이 짠했달까.

결국 앨리스는 그날 외박을 하고야 만다. 다음날 집에 돌아가 거짓말을 하고 마는 앨리스. 하지만, 뱀파이어는 사람과는 다른 능력자들이었으니. 즉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었단 말이다. 자신이 사랑한 코우야에게 지옥을 안겨 줬고, 지금 자신과 함께 사는 뱀파이어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안겨주게 된 앨리스. 진짜 심정이 복잡미묘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코우야는 이들의 집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데. 진짜 코우야 너무 변했다. 어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 아즈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정말이지. 지옥같은 2년을 보냈다고 해서 동정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게다가 디미트리는 앨리스에게 코우야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하고 홋카이도로 떠나버리지 않나, 쌍둥이 형제 중 레이지가 전생의 기억을 조금씩 되찾게 되면서 카이를 증오하게 되지를 않나. 참으로 파란만장한 5권이다. 기억을 되찾는 장면을 보니 왜 카이가 레이지에게 앨리스를 양보했는지를 알게 되었달까. 이 쌍둥이의 과거도 정말 험하고 어두웠구만. 불쌍하게스리. 그치만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설명이 없다. 그건 6권에 나올듯. 

그리고 앨리스, 넌 정말 디미트리의 마음을 모르겠냐? 디미트리가 진짜 좋아하는 게 누군지 모르겠냐구!!!! 으.... 정말이지. 디미트리가 얼마나 괴로웠으면 홋카이도로 떠나버리겠냐구, 이 어메이징한 아가씨야! 

코우야의 난동, 디미트리의 가출(?)에 더불어 쌍둥이의 비밀까지.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는 5권이었다. 디미트리가 없는 상태에서 이 저택은 어떤 어둠에 휩싸일지, 정말 걱정이다. 디미트리 얼른 돌아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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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1 - 드라마 소설
강이을 지음 / 뮤진트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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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크릿 가든 방송 소식을 들었을 땐,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원래 드라마를 꼭꼭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니고, 한 번 보면 뒤가 궁금해서 계속 봐야 하는 것도 싫어서 그냥 무시했었다. 그치만 여기저기서 시크릿 가든 이야기가 나오고, 우연히 재방송을 봤다가 나도 영락없이 시가 폐인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종방 3주 정도를 남기고 시청을 시작했던지라 나머지 부분은 재방송으로 찾아 보곤 했지만 전부 볼 수는 없어서 처음 시작이 어땠는지를 비롯해서 중간중간 필름 끊기듯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러던 차에 만난 드라마 소설. 물론 드라마처럼 영상도 소리도 없지만 그래도 못본 아쉬움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재벌 2세 남자와 가난한 스턴트 우먼 여자. 딱 봐도 신데렐라 스토리의 설정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빠지면 남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마가 신데렐라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신 신데렐라 스토리랄까.

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김주원. 그는 백화점 사장이다. 사랑이나 연애엔 관심도 없으니 결혼 역시 자기와 비슷한 수준 - 학벌, 집안, 외모 등등등 - 의 사람을 만나서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랬던 그가, 길라임이란 여자를 만나면서 확! 달라지게 된다. 첫만남은 사촌형 오스카의 뒷처리 문제로 만났지만 여느 여자와는 너무나도 다른 길라임의 존재가 그의 마음 한자리를 크게 차지한 것이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 정도였지만, 자꾸만 생각나고, 자꾸만 만나고 싶고. 스스로도 자신이 왜 그런지에 대해 당혹해한다. 

길라임 역시 처음엔 돈많은 부잣집 아들 김주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몸에 밴 친절, 자연스러운 배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주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상위 1%, 사회지도층 운운하는 모습이 오히려 너무 뻔뻔스러워서 밉지 않은 김주원이었다고 할까. 길라임에게 있어 김주원은 아무리 세게 던져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부메랑같은 존재였다.

이렇듯 캐릭터부터 정형화된 캐릭터를 벗어던진 시크릿 가든. 시크릿 가든의 가장 큰 매력은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에 있다. 멋지고 근사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재벌 2세, 눈물 질질 짜는 가난한 여자 캐릭터를 벗어나 일이나 여자 관계에 있어서는 쿨했지만 진짜 사랑을 알게 된 후 자신의 감정을 어쩔줄 몰라 아이처럼 굴기도 하는 빈틈 있는 재벌 2세와 자신의 일에 있어 모든 열정을 쏟고, 남자 앞에서 굽히지 않는 강인한 매력의 여자 캐릭터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실력은 눈씻고 찾아 보려야 볼 수 없는 한류스타 오스카와 그의 첫사랑 CF 감독 윤슬, 액션스쿨 감독 임종수를 비롯해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죄다 괜찮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윤슬이 아직은 오스카 괴롭히기에 매진하고 있긴 해도 말이지.

스토리를 보자면 판타지 성향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다. 내가 보기엔 로맨틱보다는 코미디 쪽이 우세하달까. 말장난같기도 한 이들의 대사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특히 주원앞에서 염장지르듯 주고받는 오스카와 라임의 이야기라든지, 주원과 라임의 입씨름이라든지. 그리고 몸이 바뀌어 서로 당황해하는 두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웃음이 더 많이 나온다. 

아직은 밀고 당기기 중. 그리고 바뀐 몸에 적응 중인 두 사람. 여기에 주원의 엄마 문분홍 여사의 등장은 두 사람의 앞으로의 관계에 대파란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직은 그다지 큰 트러블은 안나온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엔딩이 어떤식으로 나왔는지는 다 알지만 그래도 재미있는건, 시크릿 가든만이 가진 통통 튀는 매력이랄까.  

참, 소설을 읽다 보니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설정이 보였고, 몇 장면 정도는 빠진 것도 눈에 띄었다. 완전 똑같을 줄 알았는데 의외였달까. 그래도 전체 스토리 흐름에 있어서는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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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사이의 거짓말 - 카렌 코믹스 026
미사사기 후리 지음 / 대명종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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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기 히사야는 누나가 연예기획사 사장이란 이유만으로 인기 아이돌 야기하시 코쥬의 매니저를 떠맡게 된다. 티비를 볼 때도 뉴스 이외엔 보지 않았던 데다가, 예전에 하던 일도 이런 연예계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아니 아예 상관도 없다는 게 맞다. 어떤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두고 이혼까지 한 상태의 동생을 누나 입장에서는 그냥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매니저라니. 아마기 히사야는 처음엔 이 일에 대해 고개를 휘휘 내젓지만 자신이 담당한 코쥬와 가까워지면서 나름대로 이 일에 적응해 나가는데... 
 
아이돌 X 매니저 아저씨 커플링이라. 나쁘진 않다. 뭐 나름 괜찮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커플링이 괜찮다 해도 이야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 게다가 코쥬나 히사야나 딱히 드러나는 성격이 없다.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코쥬는 어린 시절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을 닫고 지내는지라 겉으로 보긴엔 쌀쌀맞은 성격이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을 그리워한다. 또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면 그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면도 있고, 어린 나이에 연예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순진무구, 천진난만 캐릭터랄까.

그에 비하면 히사야는 겉으로 보기엔 유한 사람이지만 실제로는 쿨한 사람. 다른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늘 선을 긋고 산다. 하긴 이혼에 아이와도 헤여져야 했으니 그후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있어서는 그럴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히사야를 보면서 귀축 카츠야 캐릭터가 자꾸 생각나서 첨엔 엄청 적응이 안되었다. 귀축 카츠야 얼굴에 성격은 데레데레? 사실 나중엔 좀 다른 성향도 나오긴 하지만 말이지. 어쩄거나 히사야가 데레데레면, 코쥬가 츤데레라거나 여왕수 캐릭이면 더 좋았을지도. 둘다 밍밍한 성격에 코쥬는 완전 아이 수준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몰입이 안되었달까. 게다가 나중에 나온 그 아자씨는 뭐냐구욧!

작화를 맡았던 미사사기 후리는 그림만 좋은 작가였더냐, 하는 생각이 마구마구 든다. 밍밍한 캐릭터에 이도저도 아닌 스토리. 꽂힐 부분이 하나도 없는 그런 작품이었다. 음,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면서 허걱!했던 건 작가는 이 작품에 만족한다는 것.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래도 독자의 만족도도 좀 생각을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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