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 청소년소설집 푸른도서관 39
김인해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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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청소년기의 성장은 몸이 성장하는 속도를 마음이 따라잡지 못해 힘겨워하는 경우도 많이 생긴다. 물론 어른이 되었다고 완전한 성장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성장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장이란 것에는 여러가지 것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기쁨, 즐거움같은 긍정적 감정을 비롯해 슬픔, 아픔, 우울함등의 부정적 감정등. 어떤 성장을 이루느냐에 따라 긍정적 감정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고 부정적 감정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장에는 아픔이란 것이 따른다. 여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떤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갈까.

난 외톨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 외톨이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시욱이는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으로 샤프라는 별명이 생겼다. 시욱이 처음 사귄 친구는 키다리란 별명의 재민. 재민이는 여느 또래 아이보다 성숙한 발언을 많이 해서 그런지 추종자들이 여럿이었다. 처음엔 시욱과 잘지내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시욱을 따돌리는 재민. 그런 재민에게 시욱은 화가 나기 시작하고 결국 주먹을 휘두르고 만다. 시욱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재민을 보면서 반 아이들은 재민을 놀리고, 재민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하며 재민을 따돌리기 시작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사귄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서로 잘 통한다고, 단짝친구라고 여겼던 친구가 자신을 왕따시키는 기분이 든다면 정말 참기 힘들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폭력은 친구에 대한 의리나 우정을 저버리게 했다. 시욱과 재민을 둘러싼 아이들은 둘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둘 사이에 싸움을 붙이기 위해 못된 짓까지 서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추켜세워주는 것에 즐거움을 느껴 단짝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욱을 보면서, 시욱의 만화를 그렸던 손이 폭력을 휘두루는 손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뉴타운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부모의 직업과 가정환경에 따라 동급생에게 차별대우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넘어 집단 따돌림과 폭력까지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의 비뚤어진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보게 된다. 시욱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로잡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시욱은 모든 걸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아니면 다시 주먹 뒤로 숨어 버리게 될까.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 캐모마일 차 마실래?

석이는 학교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장애우들이 있는 시설로 간다. 처음에는 봉사활동 시간만 채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석이가 그곳에 있는 장애우들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따스했던 작품이다. 왕재수라는 별명을 가진 지연과 처음에는 사사건건 티격태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심으로 그곳 사람들을 대하는 석이의 모습에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석이가 처음에 시설에 갔을 때 망설여졌던 이유를 나도 잘 알수 있을 것 같다. 난 이미 어른이지만 장애우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잘 모르는데, 아직 어린 석이에겐 그것이 더 어렵게 느껴졌을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몸이 좀 불편할 뿐,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며 살아간다. 상대의 진정한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을 누구나 알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음악이란 것으로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아이들. 그들의 합주는 세상 누구의 연주보다 더 아름다운 음색을 냈으리라.

우린 가족입니다 - 한파주의보

중학교 2학년인 진오의 아버지는 얼마전 재혼을 했다. 진오는 행복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이젠 돌아가신 엄마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는 듯 해서 속상하다. 설연휴를 시골에서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 진오와 새엄마. 아직은 어색하고 거리감이 있어 진오는 새엄마와 둘만 있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다가 수도가 얼어서 물까지 나오지 않는데...

단 며칠이지만 새엄마와 함께 보내야하는 시간에 눈앞이 깜깜했을 진오는 처음엔 데면데면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통해 새엄마에게 도움을 받게 되고, 새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새엄마를 달리 보게 된다. 진오의 가슴에 머물렀던 한파주의보가 해제된 순간이 온 것이다.

사춘기에 새엄마가 생긴다는 것은 힘겨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새로온 가족을 거부한다. 진오 역시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조금씩 드러나기도 했지만 새엄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마음을 열게 된 것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서로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마음이 통하는 것, 그것은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새엄마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오 역시 새로운 가족으로 새엄마를 받아들이겠다는 한걸음을 내딛은 것은 커다란 한걸음이 아닐 수 없다.

집단 따돌림과 폭력, 장애우들 이야기, 재혼가정 이야기 등 여기에 실린 세편의 소설은 모두 남자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로 사춘기 남학생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작중 인물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다. 특히 <외톨이>에서 시욱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누군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 장롱속으로 숨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캐모마일 차 마실래?>에서는 사고로 가족을 잃고 마음을 꽁꽁닫아 버린 지연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그리고 <한파주의보>의 경우 국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는 두 사람의 변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첫번째 수록된 작품은 요즘 청소년의 어두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어 안타까운 면이 많았지만 나머지 두 작품은 따스함이 전해져 오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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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뒷간 이야기 파랑새 풍속 여행 2
이이화 원작, 김진섭 지음, 심가인 그림 / 파랑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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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있어 배설과 관련된 부분은 아주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배변활동이란 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존재하는 것인데다가 배설물이 더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역사책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이며 우리문화의 독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에 한번쯤은 제대로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역사책에서 뒷간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역사서는 <삼국유사>로 여기에는 측청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뒷간, 측간, 정랑, 통시, 해우소, 변소 등 뒷간을 뜻하는 용어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즉 뒷간과 관련된 것이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이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뒷간이라 불렸을까. 지금과 달리 옛날 화장실들은 수세식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름이 되면 냄새도 심하고 파리같은 해충이 꼬이기도 쉬웠던지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뒷간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뒤란 것은 북쪽을 뜻하는 말이기도 해서 주로 뒷간은 북쪽에 위치한다.

뒷간의 형태는 발을 디디고 볼 일을 볼 수 있게 만든 부춛돌을 사용한 것이 가장 오래된 형태이지만 지역에 따라서 뒷간의 형태가 달라지기도 했다. 남쪽지방의 경우 볕이 잘 들지 않는 북쪽에 위치한 경우가 많았지만, 북쪽의 추운 지방같은 경우 집안의 외양간옆을 뒷간으로 이용했다. 외양간에서 나오는 두엄더미와 사람의 배설물을 섞어 거름을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산간지방의 경우 산짐승의 습격을 막기 위해 2층으로 뒷간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 뒷간을 위치시키는 경우는 남쪽에서도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제주도이다. 제주 똥돼지를 키우는 방법을 떠올리면, 아하, 하고 느낌이 올 듯.


위 사진은 신라시대의 변기이다. 자세히 보면 뒷쪽에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수동식 수세변기라고나 할까. 물을 부으면 저 뒤에 있는 구멍으로 배설물이 흘러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요즘의 수세식 변기와도 모양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변기는 앞쪽으로 배설물이 내려가지만 말이다.


절에서는 뒷간에 드나드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총 다섯단계의 입측오주를 외우는데, 이 입측오주는 '뒷간에 들어가서 빌어야할 다섯가지'쯤으로 보면 된다. 이를 외우는 이유는 수행과 더불어 뒷간에 있는 측신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동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측간에 사는 신은 성격이 예민하여 신경질적이라 노여움을 사면 동티를 입게 된다. 그러하기에 측간에 들어가기 전에 헛기침을 하고 들어가는 것도 측간신이 자리를 비켜주게 하기 위함이다. 안그러면 자신의 머리카락을 세고 있다 놀라서 뒷간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머리카락을 뒤집어 씌워 시름시름 앓게 하다가 죽게 한다고 한다.


위에 보이는 것은 매우틀 혹은 매화틀이라고 하는 것으로 임금님이 사용하던 이동식 변기이다. 나무틀에 비단을 덧씌운 형태로 임금님이 볼 일을 보면 의원이 그 배설물을 보고 임금님의 건강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임금님의 뒷처리는 비단으로 했다고.


호자는 남성용 이동변기로 소변용이다. 호랑이 모양이라고 해서 호자인데,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호자를 보면서 난 요즘 병원에서 쓰는 이동용 소변기를 떠올렸다. 병원용과 모양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꽤 비슷하달까. 완전히 다른 점이라면 호자의 경우 실용성과 장식성을 고루 갖춘 반면, 병원의 소변용기같은 경우 실용성만이 있다고 하는 점이랄까.


여성용 이동변기이다. 난 이동변기라고 하면 요강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이런 것도 있다니 놀라웠달까. 약시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려있고, 내용물을 비우기 쉽게 한쪽이 뽀족하다. 거름더미위에 붓기 용이한 형태이다.

이외에도 요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과거급제자 행렬뒤에 요강을 지고 따라가는 하인이라든지, 요강만을 전담한 하인들 이야기라든지. 아무래도 양반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리하기 싫었던지라 아랫사람을 시켜 이 모든 것을 처리하도록 했달까.

이동용말고 집에서 사용하는 측간은 양반의 경우 갓걸이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푸핫하는 웃음이. 양반들은 뒷간에 갈 때도 갓을 쓰고 갔구나. 아이쿠야.


서민들의 경우 뒷처리를 할 때 뒷간 근처에 새끼줄을 매놓고 앉은걸음으로 몇 걸음을 걸어 뒷처리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단체로 뒷처리를 하지는 않았게지만, 가족을 비롯해 손님도 이걸 썼다고 한다. 이외에도 풀이나 짚 등을 이용해 뒷처리를 했다. 아무래도 서민들이 종이로 뒷처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뒷간과 관련된 도구라고 하면 역시 똥장군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똥장군은 지게 위에 올려져 있는 원통같은 것인데 어릴적에 이와 비슷한 걸 봤던 기억이 난다. 빨간 고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은 좀 가물가물하다.

시골 할머니댁은 내가 초등학교다닐 당시 양옥으로 집을 새로 짓기전까지는 한옥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뒷간이 바깥에 위치했는데 밤에는 여기에 가는 게 정말 무서웠다. 흙벽돌로 막아놓은 뒷간은 밑에 다 들여다 보이는 위에 널판지 몇장이 깔린 게 전부였으니까. 거기 앉아 있으면 빨간 휴지줄까, 파란 휴지 줄까하면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았고, 잘못 발을 디디면 밑으로 빠질까 두려웠다. 그래서 동생이나 엄마와 함께 가서 문밖에서 지키라고 매번 부탁을 했다. 거기 있나, 응, 있다. 라는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일 뿐이지만.

배설물은 사람의 건강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것이었으며, 농경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거름으로 사용되는 아주 귀중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냄새나고 더러운 것이라며 쉬쉬하지만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수세식 화장실은 드물었고, 뒷간에서 나온 배설물을 발효시켜 거름으로 이용했던 걸 생각해 보면 요즘은 이 배설물과 화장실을 너무 소홀히 대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배설행위와 뒷간문화는 우리가 살아있는 평생동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뒷간과 배설물에 관한 이야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뒷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풍속에 대해 잘 알려주는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16p, 58p, 67p, 78p, 80p, 87p, 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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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戀ショコラティエ 3 (フラワ-コミックスアルファ) (コミック)
미즈시로 세토나 / 小學館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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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하는 여인 사에코를 위해 쇼콜라티에가 된 소타. 소타와 사에코의 만남은 5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두달동안 만남을 지속했지만 사에코는 소타를 뻥! 차버렸고 소타는 그 충격으로 폐인으로 살다 프랑스로 건너가 쇼콜라티에가 된다. 그 모든 것은 초콜렛을 좋아하는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가상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에코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버린다. 여전히 짝사랑 진행중인 소타는 사에코가 유부녀라 해도, 소악마라해도 상관없단다. 좋아하니까!

3권에서도 여전히 짝사랑으로 아파하고 고민하는 청춘들의 나날들이 이어지는 건 변함없지만 그들 관계에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소타는 올리비에의 조언으로 나쁜 남자가 되어 사에코를 살짝 무시하기도 하고, 짝사랑 동료인 에리니와 관계를 가지기도 한다. 이랬더니 사에코에게서 변화가!? 근데 딱히 이 일때문에 사에코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부부 관계는 별로 좋지 않은데다가,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깨달아가는 중으로 보이니까. 사실 결혼한 상대가 자신의 운명의 짝인지 아닌지는 속단할 수 없다. 살다 보면 진짜 운명의 상대도 만나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특히 이런 부분은 소타와 사에코의 가상 데이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소타와의 만남을 위해 정성스럽게 자신을 치장하는 사에코를 보면서 여자 마음이란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든달까. 또한 자신을 위해 예쁘게 꾸미고 나온 사에코를 보면서 갈등하고 번민하는 소타의 모습 역시 사랑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늘 변죽만 두드리고 있는 두 사람. 이 둘 사이에 과연 변화가 찾아 오긴 할까?

초콜렛 왕자이자 미소녀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올리비에 역시 짝사랑 중. 그 상대는 소타의 여동생 마츠리. 마츠리는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는 공교롭게도 자기 친구의 남자친구. 여기도 참 복잡하다. 마츠리의 고민을 들어주는 쿨한 캐릭터로 있다가 흐트러진 마츠리의 모습에 본심을 드러내고만 올리비에. 이런 올리비에의 태도가 마츠리는 부담스럽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올리비에가 휴가를 떠난 동안 마츠리 역시 심경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 둘도 잘되었으면 좋겠구만. 마츠리, 양다리 걸친 남자는 최악이라구, 최악!

짝사랑으로 열병을 앓고 있는 또 한사람은 소타의 가게에서 일하는 카오루코. 카오루코의 짝사랑 상대는 바로 소타다. 소타가 에리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건 동병상련의 동지로서이니 서로에 대한 감정은 친구이상은 아니다. 근데 친구이상도 아닌데 그런 관계를 맺는단 말야? (나로선 좀 이해불가) 어쨌거나 소타를 좋아하는 카오루코의 입장에서 사에코를 마음 편히 대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름대로 처신을 잘 하고 있는 카오루코에게 리쿠도의 가게에서 일하는 세키야가 같이 식사를 하자는 청을 해오지만 당황한 카오루코는 거절하고 만다. 이 둘도 잘 됐으면 좋겠구만. 내가 보기엔 소타와 카오루코가 연결된 확률은 사에코, 에리나, 카오루코 순이기 때문에 거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오늘도 짝사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청춘들.
도대체 어찌하면 좋습니까.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상대의 마음은 오죽할까.
사랑은 오늘도 이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한다.

사랑, 참 아프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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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 영능력 수사반 1
사다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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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 이런 이야기 완전 좋아하는데. 만화 신간을 검색하다『특영반』을 봤을 때 내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온 말이 바로 이것. 이 만화가 원래 한 포털사이트에서 연재된 웹툰이라고 하는데 컴퓨터를 오래 들여다 보면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는 1人인지라 웹툰은 보지도 않아서 난 단행본으로 보는 것이 이 작품과의 첫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특영반은 특수 영능력 수사반의 줄임말이다. 즉,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적 근거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이시문은 경찰로 어느날부터 갑자기 귀신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린 시절 봉인해뒀던 기억이 되살아나게 된다. 능력있는 무속인이었던 할머니의 피를 물려받은 시문이 왜 갑자기 귀신을 보게 된 것인지 그 이유는 아직 나오지 않지만 어쩌면 돌아가신 할머니의 힘이 그때까지 시문을 보호해주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내 생각)

시문이 이번에 맡은 사건은 세모녀 참살사건. 범인은 살해후 방화까지 한 인물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이 가정의 가장이다.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씁쓸했던 것은 이런 일이 요즘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에 의한 범행. 죽은 자에게 그 원망은 오죽할까. 가족이 해체되고 무너져 이런 끔찍한 범행까지 이르는 걸 보면서 범인에게 아무리 어떤 사정이 있다 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녀 참살 사건과 더불어 원망을 안고 죽어간 원혼의 복수, 그리고 자신의 영적 능력에 눈을 뜨게 된 시문의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거침없이 진행된다. 근데 좀 궁금한 것은 아무리 큰 원한을 품고 죽었다고 해서 죽은 자가 그렇게 강력한 물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걸까, 하는 것이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란 것이 존재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파괴적인 힘을 낼 수가 있는 걸까. 어쩌면 이것은 설정으로 죽은자의 원망과 원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경찰에서 퇴마사 겸 경찰이 된 이시문, 독일계 일본인으로 역시 퇴마사인 텐카의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이다. 특히 텐카의 비주얼이 압도적이랄까. 들고 다니는 칼도 그렇고 의상도 간지나고. (푸핫) 또 다른 캐릭터로는 여성 캐릭터가 둘이 더 등장할 모양인데 아직은 살짝 보이는 것뿐인지라 이들은 또 어떤 인물일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세상에 수상쩍은 일은 많다.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큼 복잡하고 알기 힘든 것도 없다. 아무쪼록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만화가 아닌 인간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작품으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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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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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구에 처음 출현했을 때는 그들에게 생존본능만이 있었다. 하지만 정착을 하고 필요에 의해 도구를 발명하면서 인간은 점점 발달된 존재가 되어 갔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인간은 점점 문명화되기 시작했고, 문명의 발달과 함께 기술도 발달되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은 문화적인 면보다는 좀 더 늦게 발달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발달하기 시작한 기술의 진화는 점점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단기간에도 놀랄만큼의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풍족함과 편리함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도 많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기계가 대신하면서 그 기능이 점차 쇠퇴해가게 된 것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 신체의 퇴화를 가져온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기술에 대한 맹신의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기계나 기술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기술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DNA 검사를 통해 범인을 찾는 기술이란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DNA가 발견되고 DNA를 검사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십 년에 불과하지만 소설의 설정상 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DNA만으로 범인을 프로파일링할 수 있고 몽타주까지 그려낼 수 있다면? 검거율은 당연히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하지만 DNA 해석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NOT FOUND」라고 해석 결과가 뜨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연쇄살인 사건으로 처음엔 젊은 여자들을 노린 사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DNA 해석 시스템을 개발한 개발자 두 명마저 살해당하게 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 아직 DNA 등록자가 완벽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시스템상의 문제일까.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의 가구라 류헤이는 개발자 남매에게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DNA를 해석한 결과에 경악하게 된다. 가구라 류헤이 적합률 99.9%. 자신이 그들을 죽일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가 죽인 것일까. 가구라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류라는 다른 인격을 만들어냈다. 가구라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기술을 신봉하는 사람이지만, 다른 인격인 류는 감성적이며 심리적이고 그림을 그리는 등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좋아한다. 즉 둘은 극과 극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가구라는 1주일에 한번씩 자신의 다른 인격을 출현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정신을 잃었을 때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다. 이렇다 보니 혹시 자신의 다른 인격인 류가 사건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가구라는 자신이 용의자란 생각을 하고 이 사건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해 도주한다. 도주 중 가구라는 류의 여자친구라는 스즈랑을 만나게 되고 류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대체 스즈랑은 누구일까. 스즈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대충 눈치를 챘지만 정확히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막바지에 이르러 알게 되었는데, 이 스즈랑의 존재가 류 뿐만 아니라 가구라에게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된다. 류만이 볼 수 있었던 스즈랑을 가구라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두 인격의 골이 메워지고 있단 증거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본다면 모든 일이 끝난후 류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것에 납득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크든 적든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성과 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감각과 심리적인 면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다. 좀 다른 말로 하자면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의 구분이랄까. 하지만 우리의 경우 그것이 어느 것에 좀더 치우쳐 있을 뿐 가구라와 류처럼 완전히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일부러 두 인격을 완전히 상반되게 그려놓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는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현재의 우리가 무엇을 더 중시하고 있으며 무엇에 더 의지하고 살아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균형과 조화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가구라와 류가 서로의 접점을 찾게 되면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형이 어떤 인간형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또다른 계급분화란 문제이다. 분명히 지금 시대에는 계급이란 것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에 있어서 그 계급의 상층부에 있는 사람들은 기술을 지배하고 관리하는 사람이고, 하층부에 있는 사람은 지배당하고 관리를 받는 사람이라 나온다. 즉 지배와 관리가 가능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이 이 세상의 룰을 만들고 유지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기술의 발달도 상위계층을 위한 것이며 계급사회를 존속시키고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의견이 비약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책 내용만으로 볼 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 그럴 것이란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 작품은 인류문명이 생산해낸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쇠퇴하기 시작한 인간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추구해야할 인간상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케 만든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될 수록 그 구성원들은 시스템의 일부가 되고 부품이 되어 간다. 이 작품은 이런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DNA 해석, 다중인격이라는 소재를 통한 미스터리 추적극이자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고, 지양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는『플래티나 데이터』는 논리적이자 감성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 역시 과학기술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이야기하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본질이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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