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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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라는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디즈니 동화인 아기 코끼리 덤보였다.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세세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이건 기억한다. 귀가 다른 코끼리보다 훨씬 더 큰 덤보는 따돌림을 당하다가 자신의 큰 귀를 이용해서 날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덤보가 날 수 있었던 건 날개덕분이 아니라 큰 귀 덕분이었던 것인데, 나도 상상력 참 빈곤하다. 여기에서 생각이 딱 멈췄으니.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달까.

이외수 작가님의 책은 소설 외에는 읽어본 기억이 없다. 그것도 한참 전의 일이지만. 하지만 작가님의 책에서 따온 주옥같은 문장들이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 자주 인용되는 걸 보면서 막연하게 언젠가는 에세이를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역시 막연하게만 생각하면 곧 잊고 만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내 독서 취향을 이야기하라면 난 논리적이고 결말이 명확한 책들의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꽤 건조한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성적인 책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연애 소설도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 어떤 식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뿐이다. 그러니 에세이류는 당연히 좋아한다. 근데 요건 조금 다른 에세이랄까.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 서적의 느낌도 난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라는 딱딱한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우화나 일화, 사자성어와 관련된 이야기, 작가님의 생각등이 맛있게 버무려져 있어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달까.

그 과정을 통해 난 이 이야기에 이런 생각을 덧붙이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육지에 사는 포유류중에 가장 무거운 동물인 코끼리에게 날개를 달아 자유를 선사해 주듯 내게도 나의 사고방식에 다른 사고를 덧붙일 수있는 날개가 달린 것이다.

목표점을 향해 끊이없이 걸어가기만 하는 인생은 쉽사리 지친다. 때로는 무언가를 충전해 주어야 더 오래 걸을 수 있다. 생각이나 사고방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늘 똑같은 것만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것,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면서 새로운 연료를 채워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연료는 바로 감성이란 것이다.

요즘 세상에 감성 따윈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하나를 잃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원래 균형과 조화를 맞추어 살아야 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만 해서도 안되고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것에 치우쳐서도 안된다. 요즘 세상은 아무래도 논리적이면서 이성적인 면만 중시되다 보니 일부러라도 이렇게 감성을 충전해 줄 필요도 생기는 것이다.

자, 한 숨 돌리고 편안히 앉아서 나즉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아직은 작고 여리지만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는 소리가 들려 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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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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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죽음에 대해 가끔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후에는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렵기만 하다. 물론 죽으면 어떻게 어떻게 됩니다, 라는 이야기들은 있지만 실제로 그곳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분히 상상이란 것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반대로 그게 완전한 상상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죽음 후의 세계를 다룬 영화나 책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은 서양의 죽음과 사후 세계에 관한 것이라 무척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러하기에 이 책이 더 반가웠다. 동양적 모티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죽으면 저승에 간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안다. 그리고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불교는 윤회를 이야기한다. 나도 윤회를 믿는 사람인지라 내가 지난 생에서 어느 정도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전생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났다고도 믿는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즉 내가 너무 협소하게 알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리고 그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달까. 물론 이 책이 인간의 사후에 대해 모든 것을 답해주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책의 목적을 말할 수 없다. 이 책은 사후세계가 어떤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현세의 삶을 얼마나 더 잘 가꾸고 바르게 살아가야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 책 내용에 대해 짚어 보자. 주인공 김자홍은 계속되는 접대로 인한 음주로 건강을 해쳐 마흔이 되기도 전에 사망했다. 사후 3일, 저승삼차사가 김자홍을 데리러 오게 되고, 그들과 함께 김자홍은 저승입구인 초군문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만난 진기한 변호사. 진기한 변호사는 김자홍이 저승에서 저승시왕을 앞에 두고 총 7번의 재판을 받을 동안 그를 변호할 인물이다. 초임인 진기한 변호사에 대해 걱정이 앞서는 김자홍이었지만, 저승시왕 7명을 차례차례 만나 변호를 받는 동안 진기한에 대해 무한 신뢰를 쏟게 된다. (역시 저승이나 이승이나 상대에 대한 신뢰가 최고다)

첫번째 시왕인 진광대왕은 도산지옥을 다스리는데 말 그대로 이곳은 칼산이다. 이곳에서 죄가 확정된 죄인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칼날을 계속 걸어야만 한다. 이곳에서는 전생에 공덕을 얼마나 많이 쌓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두번째 시왕인 초강대왕은 화탕지옥을 다스리는데 이곳에서는 주기보다 받기만을 원하는 자를 처벌한다. 이곳에서 죄가 확정되면 똥물, 용암, 염산 등에서 튀겨지는 형벌을 받는다. 도산지옥에서 화탕지옥에 이르는 길에는 삼도천이 있다. 삼도천 강가에는 두 노인이 있는데 이 두노인이 피고들의 옷의 무게를 달아 죄의 무게를 재고 배를 내어준다. 세번째 시왕인 송제대왕은 한빙지옥을 다스리는데 이곳에서는 불효를 심사한다. 그런데 요즘 불효를 저지르는 자가 어찌나 많은지 한빙지옥은 증축을 거듭해도 죄인을 수용할 곳이 모자랄 정도라고 한다. 이는 이승의 세태가 어떤지를 콕 집어서 보여준달까. 이곳에서 심사하는 방법은 부모님 가슴에 못을 얼마나 많이 박았나를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울컥하기도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달까. 난 도대체 우리 부모님께 얼마나 많은 못을 막으면서 살았을까. 나중에 그 보상을 한다 해도 일단 못이 박혔던 자리는 못을 뽑아도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네번째 시왕인 오관대왕은 검수지옥을 다스리는데 검수지옥은 칼날숲으로 죄가 확정된 죄인은 이 칼날숲을 영원히 헤매야한다. 검수지옥에 이르는 길에는 업강이 있다. 이 업강은 강철로 된 물고기가 서식하는 곳으로 물을 펄펄 끓는 물이다. 검수지옥에서는 총 다섯가지 죄를 다스린다. 여기에서는 업칭이라는 천칭을 이용해 다섯가지 죄의 무게를 재는 것이 특징이다. 다섯번째 시왕은 우리에게도 무척 익숙한 염라대왕이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지옥은 발설지옥으로 말로 지은 죄를 다스리는 곳이다. 염라대왕은 피고의 죄를 업경에 비춰본다. 만약 죄가 드러나면 혀를 뽑아 그것을 망치로 두드린후 소가 밭을 간다고 한다. 여섯번째 시왕은 유일한 여성시왕으로 변성대왕이다. 이곳에서는 죄를 감해주는 곳인데 여기를 지나지 못하면 독사지옥에 빠지게 된다. 이곳의 특징은 연좌제 심판이란 것인데, 내가 공덕을 많이 쌓으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요, 내가 업을 많이 쌓는다면 그들의 죄가 더 무거워지게 된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내가 저지르는 잘못이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일이구나 하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는 이승이나 저승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독사지옥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쇳덩어리가 굴러다니는 철환소를 지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일곱번째 시왕은 태산대왕으로 거해지옥을 다스린다. 이곳에서는 죄가 확정되면 거대한 톱으로 몸이 반이 갈리는 형벌을 당한다. 하지만 이곳을 무사히 통과하면 환생의 문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의 무게에 따라 육도환생의 문이 결정된다. 우리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이 인간문을 통해 환생한 것이다. 

이렇듯 총 일곱명의 저승시왕 앞에서 심판을 받은 김자홍과 그를 변호하는 진기한의 이야기는 코믹한 면도 많지만, 지옥에서의 죄의 심판과정과 그로 인해 받게 되는 끔찍한 형벌은 평소 이승에서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사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만든다. 그러나 이 책은 저승에서 끔찍한 벌을 피하기 위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착하게 살며 공덕을 쌓는 일이 결과적으로 지옥에서의 끔찍한 형벌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사후의 이야기를 통해 이승의 삶에 더 집중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편 저승삼차사와 관련된 말년휴가를 앞두고 살해된 병장 유성연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가슴 아프다. 군대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이라 했던가. 억울하게 죽어 암매장 당한 뒤 구천을 떠돌게 된 유성연은 저승차사를 피해 도망다니게 된다. 혹시 원념이 깊어서 그런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모두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휴가 나온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뚝 끊긴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다. 군대에서는 의문사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나라가 모병제도 아닌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개죽음 당하게 만드냐고! 소대장의 이마에 찍힌 낙인을 보니 속이 후련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죽은 이가 안타깝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가슴 아프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한 것이다. 저승차사는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이미지로 많이 알고 있지만 탱화에 남겨진 그들의 복색은 무척이나 화려하다. 또한 지옥도의 모습을 그린 탱화를 봐도 색감이 무척 화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곳에서 형벌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끔찍하다 해도 말이다. 또한 염라대왕밖에 몰랐던 저승시왕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를 통해 공부하게 되었다. 그외에도 저승에 있는 삼도천, 의령수, 할락궁이 등을 비롯한 저승의 다양한 장소와 인물들도 등장하니 눈여겨 보자.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현세의 삶에 대해 충실하라 말하는『신과 함께 - 저승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리가 무심코 저지르는 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내가 하는 행동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되는 건 아닌지. 살면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다른 이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나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금뱃지 달고 계신 그쪽 아자씨들, 저승에 가면 발설지옥의 형벌이 기다릴 것이요! 

우리는 공덕과 업을 함께 쌓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하기에 이승에서는 더더욱 공덕을 많이 쌓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공덕을 쌓고 계십니까, 아니면 업을 쌓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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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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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역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자주 읽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역사소설도 그러할 진대, 하물며 일본 소설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시대물은 즐겨 읽는데 아무래도 역사소설보다 조금 편안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완전한 픽션이라는 것도 한몫하지만. 일본 시대물 중 가장 좋아하는 시대는 역시 에도 시대이지만, 헤이안 시대나 센코쿠 시대 이야기도 좋아하는 편이다. 에도 시대물은 꽤 많이 나와 있어 많이 접했지만, 헤이안 시대의 이야기는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야기나 겐지 이야기 정도를 접했고, 센코쿠 시대는 드라마『풍림화산』을 봤거나 세키가하라 전투가 등장하는 만화『사무라이디퍼 쿄우』정도를 읽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일단 한 권이라 부담이 없기도 했고, 내가 좋아하는 센코쿠 시대 이야기니까.

센코쿠 시대는 약 100년간 지속된 난세였다. 센코쿠 시대 말기를 대표하는 명장을 떠올리라면 역시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먼저 떠오른다.『노보우의 성』은 센코쿠시대 말기로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한 후 히에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면서 마지막으로 함락한 오시 성 이야기와 관련된 내용이다. 즉, 센코쿠 시대 전반이 아니라, 또한 히데요시가 함락하고 통일한 일본 전체 성 이야기가 아니라 부슈의 오시 성과 관련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 권으로 완결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시 성의 당주 나리타 우지나가의 사촌 나리타 나가치카는 이름보다는 노보우님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남자다. 거대한 덩치에 못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행동도 굼뜨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남자이지만, 성주민들에게 무척 인기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사무라이의 아들이지만 무예란 것과 거리가 멀고 오히려 성의 농민들의 일을 도우는 걸 더 좋아하지만, 농사일도 망치기 일쑤라 농민들은 노보우를 좋아하면서도 일을 도와준다고 하면 극구 말릴 정도이다. 이렇듯 평온하게만 보이는 오시 성이지만, 히데요시가 간사이 지방의 호조 가문을 친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당주인 나리타 우지나가는 히데요시에 맞서 봤자 성의 사무라이를 비롯해 농민들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호조 가문에 협력하는 척 하면서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기로 한다. 우지나가가 오다와라 성으로 간 사이 히데요시 진영의 이시다 미쓰나리가 오시 성을 함락하기 위해 오시 성으로 다가온다. 미쓰나리는 사자로 마사이에를 보내지만 거만한 마시이에는 오시 성의 사무라이와 현재 성주인 노보우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게 된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사람을 발로 걷어찬다.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조롱하고 있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그렇다면 난 싫어. 그런 건 받아 들이지 못하겠어!!" (158p)

오시 성은 처음에는 히데요시에 항복의사를 표하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보우는 마사이에의 말을 듣고 전투를 결심한다. 2만 3쳔의 병사를 가진 미쓰나리의 군대와 남녀노소 다 모아봤자 4천정도의 오시성. 누가 봐도 뻔한 결말이 나올 듯 하다. 하지만, 사태는 예상밖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농민들은 오시 성의 가로들인 마사키 단바, 사카마키 유키에, 시바사키 이즈미가 찾아와 전쟁동원령을 내렸을 때는 눈도 꿈쩍하지 않더니 나가치카가 그렇게 하기로 했다고 했더니 군말 없이 전투에 참가하기로 한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눈에 갓난아이처럼 보이는 노보우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자면 노보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나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단순히 노보우가 아이같기만 하다면 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려하겠는가. 오히려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은 항복이란 수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노보우가 여기에서 하는 일은 극히 적다. 전투에도 직접 참가하는 것도 없고 전략을 세우는 것도 없다. 그래서 존재감이 희미해 보이지만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계략을 세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전투는 마사키 단바, 유키에, 이즈미가 주로 담당하는데 이들은 각각 개성이 강해 누군가의 명을 받기 보다는 스스로 전략을 세워 싸우는 것을 택했다. 나가치카가 규율이란 것에만 얽매여 자신이 모든 것을 다 통솔하려는 욕심을 부렸다면 첫 전투에서 패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노보우의 강점은 인간적이란 것이고, 성주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인물이란 것이다. 즉, 자신을 믿고 따라오게 만든 인물이었다.

특히 나가치카가 미쓰나리의 수공에 맞서 홀로 배를 타고 나가 배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에선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얼마나 대담한 장수인가. 2만도 넘는 적병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 보통 사람의 배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리라. 하지만 이 행동의 속뜻에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단지 자신의 죽음을 성주민들에게 보임으로써 수공으로 인해 침체된 오시 성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시 성 밖에 있는 백성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려 했다는 것이 더욱 더 놀라운 것이다. 무장의 춤이 아닌 풍작을 기원하는 춤. 어쩔 수 없이 전투를 치르고 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화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 노보우의 춤은 바로 그 평화를 기원하는 것에 다름없었다. 이 노보우의 행동이 상당히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음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이것이 수공을 무너뜨리는 계책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명장이란 사람 좋고, 어수룩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편안하게 대하지만, 평범한 이들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계락을 지난 자를 일컫는 말이 아니던가. (303p)

뭐하나 잘하는 것 없는 나가치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움직이는 능력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경지라 생각한다. 이런 마음이 성의 사무라이들과 농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미쓰나리의 대군에 맞서 승리하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미쓰나리가 데리고 있는 군사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군사들일 뿐, 오시 성의 군사나 백성들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군사가 아니었다. 비록 숫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시다 미쓰나리의 잘못된 판단과 억지스러운 전술 등이 오시 성에 역으로 운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미쓰나리는 스스로를 히데요시의 제자라고 생각했다. 스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 히데요시를 자신과 능력을 견주는 경쟁상대로 여기기도 했다. (280p)

히데요시가 성공한 수공을 자신도 성공하겠다든지, 히데요시의 수하로 오랜 시간을 지냈지만 처음으로 맡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로 싶어 무리수를 둔 것은 미쓰나리에게 있어 패배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사이다 보니 전공을 세우고 싶어했던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지략의 천재라 불리는 미쓰나리가 이렇게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도 역사의 흥미로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들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서에 기록된 것을 바탕으로 가져온 것이긴 하지만 사서에 기록된 것은 극히 일부이기에 디테일한 부분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것이다. 이는 어느 역사 소설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어쨌거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노보우 나가치카를 비롯해 오시 성의 가로들이나 승려 묘료, 농민 다베에와 치요, 치도리 등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롭다. 또한 가이히메와 다마도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인데, 가이와 다마는 정말 여장부라 할 수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성처럼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연악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의 몸은 자기가 지킬 정도의 담대함을 가진 캐릭터라고 할까. 하긴 이런 난세에 남자에게만 의존하는 건 문제가 있겠지. 그래서 이런 여성 캐릭터가 정말 마음에 들 수 밖에 없다. 

또한 전투의 미학이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무슨 죽고 죽이는 전쟁에 미학이야? 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마사키 단바와 적장의 일대일 대결 등 대장들이 결투를 할 때는 모두 손을 놓고 그들을 지켜 본다. 어쩌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쓸데없는 부상자나 사앙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가치카가 배를 타고 춤을 추며 나갔을 때도 처음에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이 시대의 전투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이 시대 사무라이들은 에도 시대 사무라이와 달라 더욱 의리있고 자긍심이 높았다는 것도 본문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 시대의 전쟁과 비교해 보면 이 시대의 전쟁은 분명 미학이란 것이 존재한다. 요즘 시대의 전쟁은 겉으로는 평화와 정의를 내세우지만 속을 보면 철저한 자본의 논리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무조건 죽고 죽이지만, 이 시대는 분명히 요즘과 달랐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시 성은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더이상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최후의 수단이었으니까. 히데요시는 이 오시 성 함락으로 드디어 일본통일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히데요시가 죽고 다시 혼란이 찾아오고 세키가하라 전투를 거치면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전국 통일, 그리고 드디어 바쿠후시대를 열게 된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한 여러가지 이야기는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어 따로 센코쿠 시대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실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노보우의 성』은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나온 특별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기본 역사 소설보다 덜 딱딱하고 더 재미있다. 또한 곳곳에 시대적 배경과 관련한 설명들이 덧붙여져 있어 센코쿠 시대에 대한 제반지식이 하나도 없다 해도 읽는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또한 히데요시가 좋아했던 일본 다도의 거성, 센 리큐의 이름도 거론되기도 한다. (요런 건 깨알같은 재미?)

『노보우의 성』은 선명한 캐릭터, 생생한 전투장면, 기발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진정한 지도자는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까지, 어느 것 하나 빼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참, 표지 이야기 하나더.
그림이 눈에 많이 익다 했더니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만화가 오노 나츠메가 표지 그림을 그렸다. 납치사 고요 그림 풍이랄까. 비록 표지 그림뿐이지만 노보우 나리카 나가치카의 특색을 잘 살린 그림이라 무척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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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고 너는 손을 흔들었다 - 뉴 루비코믹스 954
코노하라 나리세 지음, 후카이 유키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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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노하라 나리세의 작품은 읽기전 무지무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뭐랄까 작품마다 성향이 많이, 아주 많이 달라서 호불호가 극심해지는 작가랄까. 대부분은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읽었던 프래절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정도였달까.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표지부터 예뻐서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표지를 보면 뒤에 보이는 것이 히미 케이스케, 앞에 보이는 것이 아시야 세이치다. 두 사람은 고교 시절 이후 10년만에 재회한다. 10년전 여름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세이치 입장에서는 케이스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케이스케는 변함없는 얼굴과 미소로 세이치를 대한다. 약간의 안심을 하지만 촌스럽기 짝이 없는 케이스케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싫은 세이치는 방을 구하는 것까지만 돌봐 주고 더이상 케이스케를 만나려 하지 않지만 다시금 10년전의 감정이 떠오르게 된다.

세이치는 뭐랄까. 나쁜 남자 보다 더 나쁜 남자, 내 기준으로는 쓰레기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케이스케를 이용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까지 요구하니까. 니가 그러니까 마리같은 여자한테 걸려 다 뜯기는 거라구. 정말이지. 세이치가 케이스케를 대하는 걸 보고서 - 특히 여장한 케이스케에게 한 행동이나 마리에게 거부당하고 호텔에서 케이스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 - 완전히 열받아서 5번 척추, 6번 되도록 패주고 싶었달까. 이기적인 놈. 쓰레기같은 놈. 너같은 건 케이스케의 사랑은 커녕 위로도 받으면 안돼! 라고 말하고 싶지만 평면에 사는 놈이라 속으로만 욕을 퍼부었다. 쳇.

근데 이해안되는 건 케이스케 쪽도 마찬가지. 이건 뭐 바보 멍텅구리도 아니고 세이치가 하는대로 놔누니... 넌 입이 없냐, 하고 싶은 말을 왜 못해!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만 그게 사랑이라니 어쩌랴. 사실 처음엔 이해가 안되지만 나중에 세이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케이스케를 보면 한번에 이해가 된다. 아,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했구나, 랄까.

사랑을 할 때 누구나 영원을 생각하며 사랑을 한다.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고 시작하는 사랑은 없다. 계약연애같은 것이라면 끝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겠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니 제외하자. 일반적으로 순수한 사랑을 할 때 사람들은 끝을 생각하기 싫어한다. 케이스케의 경우에는 좀 특별한 케이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케이스케의 판단이 절대로 옳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보통 BL물의 경우 한 집안의 대가 끊기는 설정이 많지만,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노선을 걸었다는 것. 그게 가장 크다. 쓰레기같은 캐릭터는 널리고 널렸고, 순정 캐릭터나 순애 캐릭터도 널리고 널렸으니까. 스토리 자체는 그다지 특이점이 없지만 결론부가 완전 마음에 들었다. 암 그래야지, 이게 맞지. 세이치하고는 절대로 안되는 거야. 사랑이 전부는 아니지. 사랑한다고 전부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한다고 늘 영원을 맹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케이스케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중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했다. 즉, 세이치는 최선이 아니었단 것. 혼자 기차를 타고 가며 쓸쓸해하는 세이치를 보면서 난 좀 후련했달까.

결론을 말하자면.
케이스케는 사랑을 보내고, 추억을 남겼다.
세이치는 사랑이 떠나고, 후회만 남았다.
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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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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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시리즈가 나왔을 때 나도 그 책을 읽으면서 열광했던 한 사람이다. 그후로 부자되기에 관한 책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더니 요 몇년전부터는 가난을 주제로 한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몇 권을 읽어 봤는데, 그 느낌이란, "니들이 가난을 알아?"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난 이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어, 그래서 이젠 가난이 무섭지 않아, 라고 주장하는 그 책들을 보며 조금 심기가 불편해졌다. '난 이정도로 가난해 봤지만 넌 그런거 모르지', 라고 선을 긋는 느낌이었달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 사람이 그런 생활을 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넌 도저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아서 마음이 미묘하게 불편해졌다. 또한 그걸 보면서 또하나 느낀 점은 난 이렇게는 안살아서 다행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하는 것 뿐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도 별반 기대는 없었다. 역시 "니들이 가난을 알아?"라고 선을 긋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머리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 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된 얘기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이란 말이지, 잠깐 일을 쉬거나 몇 년쯤 아무짓도 안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이라구. […] 그런데 우리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 어떻게 되지? 백발백중 눈 깜짝할 새 돈이 떨어져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 거란 말이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11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번쩍 하는 섬광을 본 기분이었달까. 그렇다. 진짜 '우등반'은 사회 몇 퍼센트 안에 드는 상위계급일 뿐, 뼈 빠지게 일하고도 이것저것 계산하면 몇 푼 남지 않는 우리는 모두 가난한 층에 속하는 것이다. 나도 일할 때는 월급을 받고 나면 카드값에 이런저런 세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얼마 없었다. 그래서 그당시에는 백수 한량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달까. 뭐 지금은 자의적 백수로 생활하긴 하지만 돈이 넉넉해서 그런 건 아니란 말씀. 어쨌거나 하루라도 일을 안하면, 아니 일년 내내 열심히 일을 해도 갈 길이 먼 우리는 모두 여기에서 말하는 가난뱅이 층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의 가난이란 게 끼니 걱정할 수준을 보고 가난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와 같은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리 벌어도 제자리 걸음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36개월 할부로 차 사고, 몇 개월 할부로 전자제품 사놓고 다음달에 나온 카드 명세서를 보면서 한숨 푹푹 쉬는 게 우리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 하에서 가난뱅이로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서민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일단 개인의 삶에서 가난하지만 빈곤하게 살지 않는 법이 맨 첫째장에 나온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법인데, 일단 제일 중요한 집문제를 시작으로 밥 먹는 것, 그리고 옷 해결하는 법 등에 대해 저자가 직접 시도해 본 방법들이 열거되고 있다.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이 좀 다른 면이 있기는 하지만 - 이를테면 사례금이나 전세는 없고 월세만 있는 것 -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문제 때문에 골치를 썩인다는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없는 돈으로 생활할 수 있는 집 찾기라든지 여차할 때 필요한 노숙의 기술도 이곳에서 설명된다. 나같은 경우 여자인지라 노숙은 절대로 금물이겠지만, 남자들의 경우 여행지같은 데에서 피치못할 사정으로 노숙을 해야할 경우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식사 같은 경우를 보면 나처럼 혼자 사는 입장에서는 거하게 차려먹을 일이 없으면 때론 사먹는 게 더 저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식비를 아껴야 할 경우 일단 쌀이라도 집에 구비해놓으면 걱정이 하나 줄어든달까. 간장을 비벼먹든 고추장을 비벼먹든 - 본인이 대학다닐 때 돈떨어지면 자주 쓰던 방법임 - 쌀이 있으면 일단 배는 채울 수 있으니까. 

물론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이 우리나라 사정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돈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좀더 절약해서 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게 과연 될까, 싶은 것도 있지만 저자는 이미 실행에 옮겨본 것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점에서는 신뢰해도 될 듯. 

하지만 저자는 가난한 삶이라고 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금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멋대로 살아가기'라는 이 책의 기본 원칙을 생각하면, 다른 사람한테 신세만 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37p) 라는 말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자립을 원칙으로 한다. 나라가 갑자기 망할 일은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IMF사태를 겪으면서 국가 경제가 무너진 적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이런 삶의 기술을 익혀 놓는 것도 기본 생존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두번째로 나오는 이야기는 지역 공동체의 삶이다. 개인사업자들의 대부분은 대부분 영세하다. 그런 영세한 개인사업자들이 각개전투를 할 것이 아니라 서로 뭉쳐서 큰 기업의 횡포에 맞선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을 제시한다. 

우리 가난뱅이, 얼간이, 오합지졸은 이제까지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결탁해서 무언가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동네를 둘러보면 여기저기 가난뱅이 천지인데도 왠지 한 사람 한 사람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시시껄렁하게 뼛골 빼먹는 직장에서 일만 죽도록 하거나 중류 계급인척 하면서 번화한 중심가로 놀러 가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뱅이 제군! 이제 그런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자. 바가지 씌우려고 눈이 벌건 놈들이나 부자들이 덫을 쳐둔 장소에 갈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짱 좋은 것을 만들어 보자구. (95p)

지역 공동체 운동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재활용품 가게 내기와 공방 만들기, 인쇄물 제작하기 등 공동체 내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을 창출해내어 연대감을 만드는 일이었다. 뭉쳐야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보면 부자들은 잘 뭉치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라면! 하지만 여유롭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하는 핑계를 대며 공동체 조직에 들어가기를 꺼린다. 그래놓고 혼자 투덜거린다. 그런 면에서 마쓰모토 하지메는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연대감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정말 기발한 방법으로!

세번째 이야기는 대학 시절 교내 운동과 사회 운동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마쓰모토 하지메, 대학시절부터 날리셨군요. 그러고 보면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중반에는 우리나라 역시 학생운동이 살아있던 시기였다. 물론 끝물에 해당하긴 해도. 하지만 대부분 학생운동은 학내 문제보다 정치나 사회문제같은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 시기가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긴 하지만. 게다가 좀 과격한 면이 없지 않았달까. 내가 다닌 학교 역시 사립대로 재단비리때문에 학교가 무척 시끄러워서 그 문제로는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였지만, 대부분의 운동권 학생들이 여는 집회는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된 부분이 많아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것을 회피했다. 물론 마당극이나 풍물놀이를 곁들여 사회나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건 한 순간의 일일 뿐, 지속적인 효과는 내지 못했달까. 그후엔 IMF 사태로 인해 대학이 공무원 양성소가 되어 버렸지만.

마쓰모토 하지메가 다닌 호세 대학에서는 학교 식당 분쇄 투쟁, 찌게 투쟁, 난로 투쟁, 술 투쟁 등 학생들 복지와 관련한 문제에 대한 투쟁이 많았달까. 학생 식당 앞에서 350인분의 카레를 팔았다는 것을 보면 이 사람 참 대단하다 싶다. 

사회에 나가서도 이런 투쟁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특히 '내 자전거 돌려줘' 데모는 방치 자건거 철거 문제와 관련한 것인데, 환승하기 위해 자전거를 역근처에 두었다고 모조리 실어가는 건 서민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데모를 열 수 밖에.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외제차는 견인도 하지 않는 주제에 - 견인하다 긁히기라도 하면 돈 몇백 후두둑이 무서워서 - 서민들의 차인 중소형이나 경차는 잘도 싣고 간다. 쳇.

또하나 흥미로운 것은 구 가전제품을 폐기하도록 하는 악법인 반PES데모였다. 구 가전체품을 재활용할 수 없게 만들어 대기업의 배나 불리자는 수작인 PES법. 이 데모는 큰 파급력이 있었고, 결국 PES법 철폐라는 쾌거를 거둔 것이다. 이는 서민들의 생활과도 관련이 있기에 아주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같은 서민들이 완전 얼리어답터족이 되는 건 힘들잖아? 그쵸?

 사회운동의 정점은 역시 선거운동이 아닐까 싶다. 선거기간 동안만이라도 역 앞을 답답한 규제나 억압을 풀어버린 해방의 공간, 즉 '혁명 후의 세계'로 멋대로 만들자고 생각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선거운동은 당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기간동안 현재 일본 내의 정치를 비판하고 선거제도를 비판하는 취지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말로만 백날 떠들어 봤자 선거 운동 하는 패거리나 똑같으니 색다른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했달까. 정말 기발하달 수 밖에 없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든 지역 공동체 의식의 활성화와 연대감 창출, 그리고 사회운동이든 간에 신바람 나게 저지르는 마쓰모토 하지메의 행동력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유쾌상쾌통쾌하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뭉쳐야 한다'라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난뱅이란 말이 좀 귀에 거슬리긴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위 몇 퍼센트만이 부를 점하고 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덫에 걸려 허덕이며 신음하며 살아간다.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을 예로 들어봤을 때 강남 3구의 투표율이 가장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과 기득권을 지켜줄 후보에게 절대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떻지? 사회 비판, 정피 비판을 하면서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그들의 막강한 가드에 잇자국 하나 낼 수 없다. 

자, 우리도 똘똘 뭉쳐 걸판지고 신명나게 뒤집어 보세!!! 
유쾌하게 신나게 놀아 보세!!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도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 가지 않을까?
부를 점한 것은 상위 몇 퍼센트일지라도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건 역시 우리 서민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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