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배트 3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빌리 배트』3권은 덴쇼년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앞서 2권에 나왔던 이야기가 여기로 연결된다는 느낌이랄까. 이는 다 노부나가가 생존해 있을 당시의 이야기로 오다 노부나가도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박쥐가 그려진 문서를 노리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 문서를 노리는 것은 한 두명이 아니다. 이 문서만 있으면 세상을 손에 거머쥘 수 있다는 이야기에 모두 이 문서를 탐내는 것이다. 이 덴쇼년간은 센코쿠시대에 속하기 때문에 아마도 이때는 일본을 통일하고자 하는 염원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가 모모치의 닌자 칸베에는 이 문서를 기이에 무사히 가져다 주라는 명을 이행중이다. 이가에는 여러 가문이 있는데 다른 이가의 가문들은 이 문서를 없애도록 결의했지만 모모치는 이 문서의 힘을 이용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이 운반 과정에서 칸베에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인 닌자들을 차례차례 죽이게 된다. 이가의 다른 가문에 소속된 자들이기에 어린 시절 우정을 나눴던 친구라 할지라도 이 순간만큼은 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칸베에의 어린 시절과 현재가 교차되며 묘사된다.

주인의 명을 따라 그림자처럼 행동하는 닌자. 주인의 명에는 절대 복종하는 자들인 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어린 시절의 친구에게 칼을 겨누어야 했을까. 그래서 그런지 3권은 다른 것에 비해 안타까움이 많았달까. 또한 1, 2권은 시대와 장소가 자주 바뀌는 통에 정신이 없었다면 3권은 덴쇼년간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어 이야기 흐름이 좀 매끄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3권까지 읽으면서도 여전히 박쥐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단순히 선과 악이란 것일까. 아니면 좀더 큰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3권을 읽으면서 박쥐는 인간이 다른 것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이 뭉쳐져서 나타난 하나의 형상과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양심이 형상화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이 다른 대상을 지배하고자 한 욕망은 문자가 발달되기 전부터 있어온 것이다. 아주 아득한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다른 대상을 지배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지구를 지배하고, 이제는 우주를 지배하려 한다. 이런 인간의 지배에 대한 욕망이 두루마기라는 것으로 형상화 된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에 반해 인간의 욕망을 억누르려하는 양심이 대응해 왔겠고. 어쨌거나 아직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이니... 그저 생각만 그럴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會者定離(회자정리). 만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봤을 때 우리는 수없이 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다. 우리는 만남에 기뻐하고 헤어짐에 아쉬움을 표한다. 하지만 헤어짐에 있어 쉬움만 남긴다면 또다른 만남을 준비할 수 없다. 인생이란 큰 틀에서 봤을 때 만남과 헤어짐은 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수없이 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이별 리뷰』는 큰 틀안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이 아닌 좀더 작은 범위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사랑과 이별이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단어인가. 하지만 모든 사랑이 완벽하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루어지는 사랑보다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더 많다. 나 역시 서른 몇 해를 살아오면서 사랑과 이별을 거듭한 후, 지금은 혼자다. 나란 사람을 두고 봤을 때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전부라고 할 수 있으니 세상 사람들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집계하면 이루어진 사랑보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할 때는 모든 것이 행복으로 넘쳐나는 듯 보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여겨진달까. 사랑 이야기를 담은 유행가를 들으면 꼭 내 이야기인듯 싶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내가 더 행복할 거라 느낀다. 그런데, 이별을 겪으면 꼭 이 반대가 된다. 세상은 불행으로 넘쳐나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된 것 같으며, 이별 이야기를 담은 유행가를 들으면 꼭 내 이야기인듯 싶고, 가슴 아픈 이별을 하는 연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나도 저렇게 아픈 이별을 했다고 통곡을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별은 몰래 찾아오는 손님이 아니다. 분명 어떤 전조가 있지만 무시하고 부정하다 막상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면 큰 망치로 머리를 맞은듯 어리둥절해 하다가 분노하다가 결국 수긍하게 되는 과정을 거친다. 사람마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극복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다르겠지만, 꼭같은 것 하나는 너무나도 아프다는 것이다. 이 아픔이 너무나도 커서 다음엔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테다, 라고 결심하거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지, 하면서 또다른 사람에 금세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서둘러서 좋을 것은 없다. 또한 지레 포기할 필요도 없다. 이별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별이 새로운 희망에 대한 믿음이란 것으로 재생되는 시간이 올테니까.

『이별 리뷰』는 이별의 단계를 제시하고, 이별을 완성시키고 희망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책이다. 시나 소설, 영화 등에 나오는 연인들, 부부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이별의 과정을 제대로 거칠수 있도록,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일종의 비블리오테라피라고도 할 수 있다.

근데, 이별하고 정신없는 사람에게 무슨 독서야,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물론 나 역시 이별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라면 이 책을 펼쳐들 용기가 생겼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가정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시간 전에 마지막 이별을 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래전에 이별한 나같은 사람에겐 무용지물일까. 그런 건 아니다. 내가 이별의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차근차근 돌아보게 해주었으니까.

이별의 전조가 보이고 진짜 이별이 닥쳐온 후, 쓰디쓴 소주 한 잔에 마음을 풀어 보려 하기도 했고, 긴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리기도 했으며, 오지도 않을 전화를 바라보며 혹시 배터리가 나간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자꾸만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기도 했고, 결국 이것이 소용없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널 위해 설정해 두었던 컬러링이며 벨소리도 모두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전화번호, 이메일, 사진 삭제삭제삭제... 울며 화를 내며 사랑의 흔적을 지워갔다. 그리고 일에 정신을 쏟아 붓고 그걸로 잊으려고 하기도 했다. 어쩄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아련한 추억 정도로도 남아 있지 않은 그 오래전의 사랑은 이미 정리되었다. 아마도 그땐 시간이 약이었겠지.

보통 이별을 겪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과정을 반복해 오지 않았을까.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들의 말도 다 위선처럼 들리고, 모든 것이 다 귀찮아서 칩거해 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겠지. 하지만 자신의 껍질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상대를 원망하고 이별이란 것 자체를 원망만 해서는 절대로 앞으로 나갈 수 없다. 이것이 이 세상의 마지막 사랑도 아니고 - 물론 하나의 사랑이 끝나버리면 절대 사랑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 그 사람이 마지막 사람도 아니니까.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라 생각하고, 잘 내려놓고 잘 떠나보내고, 자신을 잘 추스리고, 잘 다독여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못내 쓰라리고 힘겨울지라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지나간 일에 대해 두고두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회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테니까. 

이야기 속의 사랑과 이별은 비록 픽션일지는 몰라도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극한의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이들의 이별과 새로운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이별을 겪은 나에 대한 순간적인 위로로 삼지 말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별을 잘 완성하는 계기로 만든다면 부쩍 성장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순간이 분명히 오게되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망량의 상자 5 - 완결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시미즈 아키 그림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950년대 초반의 일본. 전후 복구상황의 어수선함 속에서 도저히 인간의 상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다. 무사시노 토막 연쇄살인 사건을 비롯해 유명 여배우의 딸인 유즈키 가나코의 철도사고 및 유괴 미수사건과 유괴사건, 심비의 온바코님 사건, 그리고 스즈키 살해사건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소설가 세키구치, 탐정 에노키즈, 형사 기바 등은 나름대로 수사에 나서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결과는 도대체 뭐가 뭔지, 하는 느낌 뿐이다. 하지만 거듭된 수사로 결국 무사시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의 윤곽이 좁혀지고, 교고쿠도는 드디어 직접 행동에 나선다.

모든 사건에 조금씩 연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유즈키 가나코가 치료를 받다 사라진 미마사카 근대의학연구소. 이곳은 거대한 상자모양의 건물로 이곳에 모든 비밀이 집결되어 있었다. 하나하나 드러나는 진실에 경악하는 사람들. 그러나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은 진실도 있는 법이었으니. 기바가 중간에 참견을 하지 않았더라면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될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테고, 깔끔한 사건 해결만이 남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망량의 상자는, 아니 교고쿠 나츠히코의 소설 내용은 간략하게 간추린 이야기로 정리되지 않는다. 영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관계가 심하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망량의 상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이 결국 미마사카 근대의학연구소란 곳으로 집결되기 때문이다. 이곳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고, 모든 일의 끝인 셈인데,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곳이란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5권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역시 미마사카의 최후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이 인간으로서는 결코 넘봐서는 안될 피안의 세계를 엿보게 했고, 그것에 홀려 피안의 세계로 넘어간 사람들. 어찌 보면 우리 인간들은 아슬아슬한 경계점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그 경계를 넘는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세계로 가버리게 되는 것이다. 쿠보 슌코나 미마사카 박사나 그런 면에서 보면 경계의 유혹에 넘어가 경계를 넘어버린 사람들이다. 교고쿠도는 망량에 경계라는 표현을 쓴다. 빛과 어둠 사이에 있는 엷은 선같은 경계. 이 경계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은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망량의 상자』만화 시리즈는 책 내용에 비교해 보면 간략화된 부분이 많지만, 주요 사건 전개와 미스터리의 해결, 그리고 교고쿠도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대로 담겨 있다고 생각이 된다. 책 내용이 좀 복잡해서 다 읽고 나서도 뭔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거나, 책을 다 읽은 후 다이제스트 판으로 다시 읽고 싶을 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태어나 처음에는 부모의 선택에 좌우되지만 자아가 발달해 나가면서 스스로 선택권을 가지게 된다. 선택의 폭은 점점 넓어져 부모로부터 독립할 즈음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선택지가 실은 최악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인생의 궤도를 급격하게 비틀어 놓을 수도 있다. 또한 그것이 청춘의 무모함과 열정, 격정이나 분노등과 결합되면 예상치도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간의 생은 무수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다. 필립 로스의『울분』은 한 청년의 잘못된 선택과 청춘의 무모함, 뒤틀린 열정, 분노와 격정이 그의 인생을 비극으로 이끄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초의 미국, 유태계 백인인 마커스는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부모로부터 독립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마커스의 일상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전까지는 너무나도 다정했던 아버지였건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태도 변화에 마커스는 답답함과 염증을 느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으로 편입하게 된다. 

하지만 새로 편입한 학교에서도 마커스를 압박하는 문제들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문제꺼리가 더 늘어나기만 한다. 기숙사에서 배정받은 방에는 총 네명의 학생이 기거했고, 그중 한 학생은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 낸다. 공부와 일을 병행해야만 했던 마커스는 결국 방을 옮기게 된다. 새로 만난 룸메이트는 조용한 성격에 공부만 하는 학생이라 처음에는 마음이 편했지만 마커스의 입장에서는 뭔가 모르게 답답하다. 마커스는 좋아하는 여학생과 첫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후 룸메이트에게 데이트 보고를 하지만 그의 밋밋한 반응에 실망한다. 사실 그 여학생에게 보였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가 달랐던 것에 대해서도 무척 실망했기 때문에 더 그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룸메이트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결국 마커스가 데이트를 했던 여학생에 대한 룸메이트의 발언때문에 완전히 박살나고 마커스는 새로운 방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편입 몇 주만에 방을 벌써 세번째 옮기는 마커스는 대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속에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과장의 말에 따박따박 대꾸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치던 마커스는 급기야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구토하게 되고 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원생활은 나쁘지 않았고, 데이트 상대인 그녀가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마커스에게 또다른 불행이 찾아온다. 

마커스는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줄 알았다. 나 역시 대학에 입학할 때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다르다. 자신의 의지를 통한 선택의 폭도 좁고, 전통이란 규율을 강조하는 대학의 행정은 마커스를 숨막히게 했다. 마커스는 스스로를 아주 똑똑하다고 여긴 학생이었고, 그래서 교수들의 강의는 들을 만한 수준이라는 평을 할 정도였으니 과장과의 대담에서 자신의 논지를 꿋꿋하게 펼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의 논리는 여전히 그 폭이 좁았고 일방적이었다. 대학이란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혼자만의 공간은 아니다. 마커스는 스스로의 주위에 커다란 바리케이트를 세웠고 그 공간안에 누군가 침입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런 그의 성향은 주위와의 경계를 더욱 크게 만들었고, 결국 더욱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된다. 

만약 마커스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간섭이 아니라 사랑이라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난 마커스의 아버지가 마커스를 걱정하는 이유를 알 듯 했다. 마커스의 사촌들이 전쟁에서 죽어간 걸 알았기에 마커스마저 전쟁에 동원되어 무의미한 죽음을 당하는 걸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커스가 대학에 잘 적응을 했고 학과과정을 잘 마쳤더라면 그는 그의 바람대로 변호사가 되었을 것이고 결국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마커스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 강했고, 대학생활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만 취하려했다. 그러한 것들이 마커스의 인생 진로를 조금씩 틀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커스가 그렇게 된 연유를 보면 마커스의 일방적인 잘못이 아니란 것도 짐작해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의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근 50년동안 전쟁에 참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커스의 사촌들이 전쟁에 나가서 죽었다는 것만 봐도 그 당시 전쟁이 일상적인 일이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내의 젊은이들은 전통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차츰 갖추어 나가고 있었으며 그것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다. 단적인 예이지만 마커스의 두번째 룸메이트가 자동차 폭주 사고로 사망한 것이나,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칩입한 후 폭동을 일으켰던 것은 가슴속의 격정과 분노를 표출할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마커스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비극적인 삶의 진로를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청춘이란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창조의 에너지와 파괴의 에너지란 표현을 써도 좋겠다. 하지만 여전히 미숙한 점이 많아 잘못된 길로 들어서 파괴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경우도 많다. 마커스가 살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젊은이들을 폭주하게 만들었고, 파괴의 에너지를 방출하도록 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인 선택이란 것은 고스란히 마커스의 몫이었으니, 스스로 기름을 짊어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보여 무척 안타깝기만 하다. 마커스가 조금 다른 선택을 했으면 그의 인생은 180도 변했을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셜록 1
권교정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셜록 홈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권교정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의 출간이 무척 반갑지 않았을까? 나 역시 홈즈를 좋아하는 1人인지라 신간 만화를 검색하면서 이 작품을 봤을 때 앞뒤 재지 않고 바로 주문을 넣었을 정도이니까.

표지에 보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 뒤에 보이는 깊은 눈매의 사나이, 홈즈. 홈즈가 키가 크고 깡마른 체격에 매부리코를 가졌다는 건 홈즈를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듯. 사실 그냥 책이 아니라 만화일 경우 캐릭터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 여기에서는 외모 묘사 -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게 마련인데, 권교정님의 작화는 홈즈를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 홈즈는 현대적으로 약간 각색이 되었기 때문에 클래식한 면과 현대적인 면이 잘 조화되어 있다. 아, 그렇다고 배경을 완전히 현대로 만든 것은 아니고 사용하는 말이나 표정같은 것이 그렇달까.

이런 점은 책 첫장을 펼치자마자 등장해서 독자를 깜짝 놀라게 한다. 세상에 홈즈 입에서 '헐~'이란 말이 나올줄 누가 상상했으랴. 이런 깨알같은 반전의 재미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작품 본연의 이미지를 파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한 의상과 배경에 이런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신선함을 더했으니까.

『셜록』1권의 에피소드는 <귀족 독신남>편이다. 한 귀족의 신부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사라진 사건으로 유력한 용의자는 이 귀족이 만나던 발레리나 아가씨이다. 이 귀족신랑과 신부는 작위와 재산의 결합이라는 일종의 정략결혼 형태를 취한다. 작위는 있지만 가난한 귀족,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작위가 욕심난 미국인의 결합이랄까. 이렇게 서로가 윈-윈하자는 취지의 결혼에서 신부가 결혼식을 마치자마자 사라져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수수께끼같은 사건이라면서 고개를 휘휘 내젓지만 홈즈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 사건을 해결한다. 사실 나도 이 에피소드의 결말을 알고 있어서 어렵지 않은 수수께끼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만화로 만나니 무척 신선했달까.

근데 이 작품에서 에피소드보다 더욱 내 흥미를 끈 것은 홈즈와 왓슨의 관계였다. 왓슨이 모스턴양과 결혼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좀 삐친 듯한 홈즈의 모습과 사건해결후 왓슨의 무릎을 베고 편안하게 눕는 장면을 보고 내 머릿속은 BL적 상상으로 내달렸달까. 물론 두 사람이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란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BL팬인 나로서는 이런 상상도 즐겁기만 하다.

2권에서는 홈즈와 왓슨의 첫만남편이 나올듯. 그때는 콧수염이 있었던 왓슨의 모습을 만나겠네.
또 만나요, 홈즈씨, 왓슨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