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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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가족이라구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에 이 문장이 붕붕 떠다녔다. 세상에나,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막장 가족에 대해서는 많이 들었지만, 그보다 더한 가족이 있다니. 책 제목에도 불량가족이란 말이 나와 있긴 하지만, 이건 완전히 불량을 넘어선 가족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이 집안의 막내딸 권여울로 현재 고교생.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은 팔순을 넘긴 할매로 이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꼬장꼬장한 성격인지라 여울이에겐 늘 잔소리만 하는 잔소리꾼 할매다. 여울의 아버지는 채권 추심일을 하고 있는데, 불곰이란 별명답게 욱하는 성격에 주먹이 먼저 나오는 때때로 폭력적인 아버지이다. 삼촌은 아버지의 동생으로 예전에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뇌경색 후유증으로 몸이 좀 불편해서 일은 안하고, 집에서 주식만 하고 있는 주식 폐인이다. 여울에게는 오빠 한 명과 언니 한 명이 있는데, 모두 이복형제다. 즉, 여울의 아빠는 세 여자를 만나서 각기 자식 한 명씩을 만든 것인데, 오빠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으며 언니는 여울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 욕쟁이이다.

허허참. 도대체가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네. 이런 말이 먼저 나올 정도다. 그래도 그들의 속사정을 조금 들여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할매는 지금은 집을 나가고 없는 할배의 세번째 신부였는데 할매는 그런 것도 모르고 속아서 결혼했다. 장남인 여울의 아빠 역시 여자 세명에게서 자식 세명을 봤으니, 참 물려 받는 것도 좋은 것만 물려 받을 것이지 할배의 나쁜 점만 쏙쏙 닮은 게 여울의 아빠다. 또한 심각한 일이 닥쳐도 대충 모른척 넘기고, 그저 잘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통에 없는 돈 있는 돈 다 까먹고, 지금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00만원 짜리 집에 살면서 월세를 못내 보증금까지 까먹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아빠다 보니 제대로 된 결혼도 못했고, 결국 엄마없는 아이 셋을 떠안게 되었다. 삼촌은 한때 잘 나갔지만 지금은 건강도 안좋고 재산도 부인이 다 가지고 미국으로 잠적한 상태인지라 돈도 없고, 아이들 소식도 예전에 끊겨 버렸다.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어서 주식으로 대박을 노린단다.
 
이런 환경에서 살다 보니 여울이는 언젠가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울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는 불량 학생이다. 학교 식권을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팔지를 않나, 집에서는 아빠 지갑과 할머니 지갑에서 몰래 돈을 빼내기도 한다. 여울이의 유일한 즐거움은 코스프레 하는 것이다. 코스프레를 통해 잠시나마 다른 인물이 되어 자신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다. 여울의 친구로는 류은이와 참새가 있는데, 둘 다 집안 환경이 넉넉한 편이라 여울이와는 비교되는 부분이 많지만, 여울이는 무난하게 이 친구들과 사귀고 있다. 여울이는 첫사랑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코스프레에서 만난 세바스찬(캐릭터명, 혹시 흑집사 세바스찬인가. 연미복을 입었다고 하니)이다.

집에만 들어가면 숨통이 턱턱 막히지만, 그래도 여울이는 발랄한 여고생이다. 짝사랑이지만 틀림없이 사랑도 하고 있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니가 생모를 만나러 가는 걸 보면서 자신의 엄마를 보고 싶어하는 아이이기도 하다. 근데 왠일인지 집에서는 여울이의 생모에 대해 절대 이야기를 안한다. 그래서 여울이는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으면서 살고 있는 여울이네. 드디어 일이 차례차례 터지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폭력에 언니와 오빠가 차례차례 가출. 밥버러지 취급을 받는 삼촌마저 가출. 게다가 아버지 일이 꼬여 가난한 살림에 차압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져 정신을 차릴 틈이 없다. 도대체 이 집안에 평화와 안정은 찾아 오기나 할까.

이 집의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결국 모든 것이 돈과 가부장적 권위만 내세우는 무능한 아버지때문이다. 오빠의 다발성경화증은 돈이 없어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심각해졌고, 지금은 치료비가 많이 나올까 전전긍긍. 언니는 미술을 배우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학원비는 커녕 무급으로 부려먹기나 한다. 언니가 가출한 후에는 이 일을 여울이에게 시켜서 여울이는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게다가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니 누가 더 버틸 수 있으랴. 갈 곳 없어서 뭉쳐 있는 무늬만의 가족이 쉽사리 헤채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가 한 몫한다.

언니와 오빠, 삼촌은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탈출했다. 어떻게 보면 가족의 위기기 불평불만만을 입에 달고 살던 가족들의 독립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독립은 불가피했으니까. 결국 스스로 한사람 몫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해체가 오히려 이 가족 구성원들이 정신을 차리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비록 가족이 완전히 붕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이는 어쩌면 이 가족에게 필수적인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여울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한 언니, 오빠, 삼촌이지만, 여울이와 할머니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그들이 다시 돌아와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한솥밥을 먹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한,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 한, 이 가족의 붕괴와 해체는 겉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겪어 다시 하나의 가족이 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결속력을 가진 가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보통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씌어진 이야기는 가족의 붕괴와 해체의 과정을 거쳐 불량가족이 우량가족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많은데, 이 작품은 결말이 전형적이지 않아 좋았다.

여고생의 눈으로 본 천하제일의 불량가족의 모습은 살아있는 듯 그 캐릭터가 생생하다. 게다가 요즘 여고생들이 쓸 법한 말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그러한 장점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생각한다. 여울이의 성격을 잘 담아낸 말투에 몇 번이나 웃음이 터지기도 했는데, 조금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여울이가 보는 어른들 세상은 부조리하고 불공평한 게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친구들과 꺄르르거리며 웃고 떠들고 지낼 나이에 벌써 가난에 찌부러져 허덕거리는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여울이가 코스프레에 빠진다거나, 그곳에서 만난 아주머니의 정에서 엄마의 정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여울이지만, 여울이는 절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여울이는 처음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콩가루 집안의 불량 가족 레시피에 희망이란 양념을 더하면 언젠가는 튼튼한 콩나무 가족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족의 해체를 계기로 부쩍 성장한 여울이. 이런 아픔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여울이의 처지가 가엽기도 하지만, 여울이의 처지를 안쓰럽게만 생각하면 이건 여울이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그래서 난, 여울이를 응원하련다. 권여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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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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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몇 년전에 두 권을 읽었었다. 그중 하나가『달려라 메로스』였고, 또다른 하나가 바로『인간실격 · 사양』이었다. 이미 읽은 작품을 왜 또 읽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 실린 작품 중 인간실격을 제외하고는 내가 처음 읽는 단편들이라 그 내용이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실격>을 몇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그때와는 또다른 느낌을 받기도 했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느껴지는 감정은 여전히 이런 사소설을 읽는 건 조금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단 것이다. 사소설은 일본 문학의 한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작가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자기자신을 내세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인간실격>은 사소설의 두가지 경향 중 '고백소설'에 속하는 작품으로 '인간실격'이란 단어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자기 비하적인 경향이 강한 소설이다.

<인간실격>은 어느 광인의 수필을 원문 그대로 옮긴 형식으로 진행된다. 머리말은 이 수필을 쓴 광인의 사진을 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자기자신에 대한 비하로 가득하다. 찡그린 원숭이 같은 아이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라든지, 감정이 전혀 없는 얼굴로 웃고 있는 청년의 사진, 배경은 생각나는데 인물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백발의 남자 사진이라든지의 발언은 어찌되었든 자신의 사진, 혹은 자신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첫부분부터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수필은 총 세편으로 나뉘어 진다. 첫번째 수필은 요조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딱딱한 집안 분위기와 근엄한 아버지에 대해 숨막혀하면서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광대짓을 하는 요조의 어린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두번째 수필은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중학시절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서 그의 광대짓이 일부러 그러는 것이라는 것을 들키게 된 후 큰 충격을 받는 요조의 모습과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 도쿄에서 살면서 만난 호리키라는 미술학도와 보낸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호리키 마사오와의 관계는 거짓우정에 불과했다. 호리키 마사오는 부잣집 아들인 요조의 돈을 이용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편 공산주의 독서회에 가입하는 등 요조는 다양한 생활을 즐기는 듯 보여도 결국에는 여전히 가면을 쓴 채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만난 카페 여급과 동반자살을 하려다 여자만 죽고 요조만 혼자 살아 남는데, 이 정사(情死) 사건으로 아버지와의 연이 끊어지고 병원에서 요양을 하게 된다.

요양을 마친 요조는 다시 도쿄로 돌아와 넙치라는 별명을 가진 시바타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지만 결국 그곳에서의 생활도 버티지 못하게 된다. 무작정 넙치의 집에서 나온 요조는 친구 호리키를 찾아가지만 돈이 없는 요조를 푸대접한다. 요조는 드디어 호리키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그후 시즈코란 여자와 동거, 스탠드바 여주인과의 동거를 거쳐 요시코란 아가씨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요조의 불행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요시코가 다른 남자에게 강간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요시코를 구해주지도 못했다는 마음은 요조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폐병이 깊어진 요조는 결국 모르핀에 손을 대고 약물중독이 되어간다. 약물중독에 시달리던 요조는 결국 정신병원에 수감, 그후에는 시골의 마을에서 요양을 했다, 라고 이 수필을 끝이 난다.
 
요조란 인물을 보면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 가족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모두 한 두가지의 가면을 쓰긴 하지만 요조처럼 부러 광대짓을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조의 광대짓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이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관계라든지 자신에 대해 유독 자신감이 없던 요조는 결국 남에게 이용당하기도 하고, 마음을 잡지 못한채 여자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기도 하고, 정사사건을 일으키거나 약물중독에 시달리는 등 급속도로 피폐해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실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어머니는 병약했기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 대신 그가 만나는 여자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들에게 물질적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그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기둥서방 노릇이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그들을 통해 받고 싶어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모든 행동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때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어도 다섯째 아들이었고, 엄격한 아버지와 형들때문에 숨막혀 했다. 또한 자신의 집안이 벼락부자란 것에 대해서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든 본인이 잘 헤쳐나가면 될 텐데, 왜 이럴까 하는 의문이 책을 읽는 내내 드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힐난, 자학은 평범한 고백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자신이 이렇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고칠 수는 없었던 것일까.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나약함을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자살이란 것으로 자신의 삶을 끝내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아무리 사소설이라고 해도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작가에 대해서는 가여운 마음과 더불어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뒤에 실린 단편 중 <물고기 비늘옷>은 약간의 판타지적 경향이 묻어나는데, 여기에서도 자살이란 소재가 등장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늘 자살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았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로마네스크>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인데, 세명의 남자 주인공을 등장시켜 각각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준다. 선술의 달인 다로, 싸움의 달인 지로베, 거짓말의 달인 사부로가 바로 그들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 중 시대물은 이 소설 하나로 작품의 분위기 또한 여느 작품과는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새잎 돋은 벚나무와 휘파람새>는 O. 헨리의 <마지막 잎새>가 떠오르기도 하는 작품이다. 죽음을 앞둔 동생을 위해 쓴 언니의 편지와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에게 선사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다자이 오사무식 반전이랄까.

<개>는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개를 기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개의 본성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싫은 점을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만 보고 있달까. 자신과 닮은 점이 많아 개가 더욱 싫다는 화자가 나중에는 마음이 바뀌어 자신의 개를 받아 들이게 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마지막 작품인 <화폐>는 돈이 화자이다. 새돈으로 태어나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돈의 이야기는 돈이 보는 인간 세상에 대한 풍자소설이다.

표제작인 <인간실격>을 비롯해 총 여섯편의 작품이 실린 이 소설집은 다자이 오사무의 다양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론 사소설인 <인간실격>을 읽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머지 단편들도 비슷한 시기에 씌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도 있지만, 우울함보다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책 뒷편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오쿠노 다케오의 해설이 실려있는데, 이 부분은 다자이 오사무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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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고 무비스토리북
고어 버빈스키.존 로건 외 지음, 위문숙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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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랭고』영화 예고를 보면서 무척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원래부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다, 조니 뎁이 랭고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아직 개봉전이라 영화가 궁금하던 참에 무비스토리북이 나온 것을 보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주인공 랭고는 카멜레온으로 사람에게 사육되고 있었다. 유리 사육장 안에 갇혀 늘 혼자였던 랭고는 스스로 연극을 만들어 공연하지만 그것을 봐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늘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던 어느날 랭고의 사육장이 실린 자동차가 무언가와 충돌하면서 랭고는 차창밖으로 떨어지게 된다. 랭고가 정신을 차렸을 무렵 차는 이미 멀리 사라진 뒤였고, 랭고는 자신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늘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왔던 랭고가 야생의 세계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랭고의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랭고는 물을 찾아 흙먼지 마을이란 곳으로 가려고 하지만 독수리의 공격을 받거나 하는 등의 시련을 겪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흙먼지 마을에 도착한 랭고는 그곳에 있는 바에서 허풍을 떨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랭고의 용기를 높이 사 그를 보안관으로 임명한다. 랭고는 보안관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까?

랭고의 세상은 유리 사육장에서 야생의 세계란 곳으로 갑자기 엄청나게 넓어졌다. 유리 사육장안은 안락했을지는 몰라도 자유는 없었다. 랭고는 처음 맛본 자유의 공기에 취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신이 엄청나게 대단한 카멜레온인 것처럼 허풍을 떤다. 그렇게 보안관 생활을 시작한 랭고는 몰래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비록 처음엔 허풍으로 시작했어도 용기있게 그 일을 수행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이런 랭고의 용기는 때론 엉뚱한 상황을 초래하긴 하지만 랭고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간다.

랭고가 보안관으로 일하게 된 흙먼지 마을은 말그대로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건조한 사막 마을이다. 사막 마을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물이 공급되어 왔기에 마을이 유지되었지만, 갑자기 마을의 물이 사라져 버리는 등 물부족 현상이 심해진다. 랭고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을 훔쳐간 프레리독 일당을 혼내주러 간다. 그러나 프레리 독들은 물을 훔친게 아니라 물이 들어 있는 물병을 사막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즉 범인은 따로 있는 것이다.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하고 추적을 해나가던 중 랭고 일행은 시장인 거북이 악당 도마뱀 빌과 함께 골프를 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을 본 랭고 일행은 시장이 범인이란 확신을 하게 된다.

사막은 물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사막에 사는 동물들은 적은 물을 가지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지만 아예 물이 없다면 생존은 보장받을 수 없다. 흙먼지 마을 역시 마찬가지로 물이 없다면 마을이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골프를 친다니. 사실 사막에 골프장이 있다면 그곳의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물을 끌어 올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모하비 사막에 골프장이 있는데 다른 곳은 모두 모래로 덮여 있지만 그곳만은 푸른색을 띈다. 고작 골프를 치겠다고 다른 동물을 목숨을 위협하는 시장은 사막에 골프장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즐기는 일부 부자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닮아 있다. 또한 골프장의 잔디를 파릇파릇하게 유지하게 만들기 위해 뿌려대는 농약은 지하수에 스며들어 2차 오염을 발생시킨다. 안그래도 살기 척박한 환경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랭고는 전에는 적이었던 프레리 독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아르마딜로에게 사막의 지혜를 배우는 등 마을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만약 랭고가 허풍쟁이로만 살았더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랭고의 이야기는 용기와 책임감, 도전정신과 협동심 등 아이들이 배워야 할 덕목들을 카멜레온 랭고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현대사회의 문제 중 하나인 물부족이란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사막에 위치한 골프장 이야기나 사막 위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이야기를 슬쩍 끼워 넣어 이것들이 물이 부족한 곳의 물을 더욱 부족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곁들이고 있다. 권선징악, 평범하고 별 볼일 없던 자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는 진부하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사막에 사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물부족에 관한 이야기를 잘 결합시켜 재미있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역시 다양한 동물 캐릭터란 것에 있다. 위의 그림은 실제 애니메니션에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등장동물 캐릭터 스케치이다. 다양한 동물들이 등장하므로 이 동물들이 어떤 동물인지, 또한 어떤 습성을 가지고 사는 동물인지에 대해 공부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실제 애니메이션 삽입 장면의 경우 색상도 선명하고, 비늘 하나 털 하나가 살아 있는 듯한 생동감을 주며, 동물 캐릭터 중에 좀 특이한 태릭터가 등장할 때는 스타워즈를 보는 기분이 들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희화한 모습이긴 해도 각 동물이 가지는 특징까지 무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유아용 책이라서 그런지 이야기 전개가 너무 빠르고, 때로는 앞뒤 이야기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줄거리 파악으로는 좋겠지만, 랭고 이야기의 진정한 맛은 많이 못느낄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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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한쪽 눈을 뜨다 문학동네 청소년 7
은이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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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여중 두 개, 여고 하나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많은데 특히 방과 후에 내려오는 아이들을 보면 재잘재잘 조잘조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쉴새없이 떠든다. 보통 적게는 2~3명, 많게는 대여섯명이 한 그룹으로 수다를 떨며 지나가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나의 중고교 시절이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저렇게 떠들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서점에 가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 나 역시 중고교 시절엔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 다니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거나 제과점에 햄버거를 먹으러 가거나 했으니까 말이지. 떡볶이나 햄버거 등 간식거리를 먹으면서 선생님 흉도 보고, 시험 걱정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조잘조잘 떠들다 보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즐거웠던 기억들.

근데, 이렇게 무리를 지어 내려오는 아이들 가운데에 가끔 혼자서 내려오는 아이가 눈에 띄곤 한다. 예전 같으면 뭔가 바쁜 일이 있어어 서두르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요즘은 혹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몇년 간 집단 따돌림 문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에 나왔던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한 여학생의 이야기였는데, 그때 당시에 가장 큰 이슈가 된 것은 역시 성적비관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성적비관 문제에다 집단 따돌림 문제, 교내 폭력 문제까지 겹쳐서 큰 이슈가 되곤 한다. 도대체 아이들을 이렇게 몰아넣은 건 누구일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문제는 아이들이 중심에 있긴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가 원해서 만든 건 아니란 것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남자 중학교의 한 반을 중심으로 요즘 아이들이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또래 집단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학습부진아 영섭, 반장이지만 자기 주변에 무관심한 태준, 그리고 자신의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선생님들을 각각 화자로 내세워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섭은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체형에다 말이나 행동도 굼뜬 구석이 있어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특히 정진과 하태석이란 아이가 중심이 되어 영섭을 괴롭히는데, 영섭은 자신이 속한 교실을 정글이 아닌 사바나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괴롭힐 때마다, 혹은 괴롭히기 전에 어떤 동물로 자신을 변신시킨다. 물론 진짜 변신은 아니고, 그런 동물이 되어 스스로를 숨기고 싶어하는 것이다. 영섭이는 스스로는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말처럼 되겠는가. 처음에는 소소한 학용품 정도를 빼앗기다가 돈도 뺴앗기고, 때론 맞기도 하고, 기절놀이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등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이렇게 늘 괴롭힘을 당하는 영섭이지만 나중에는 조금씩 반격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정진 옆을 지나가면서 방귀를 뀌는 정도이지만, 나중에는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거나 교실에 소변을 보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영섭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각서를 쓰게 된 이후에는 좀더 공격적으로 변해가게 된다. 영섭의 마음속 괴물이 한쪽 눈을 뜬 것이다.

태준은 반장자리는 맡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반장이 되었고, 문제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영섭을 돌봐줘야 하는 처지까지 되어버린다. 자기 일도 신경 쓸게 많은데 반장으로서 해야할 일도 늘어나고, 영섭이 일까지 돌봐 줘야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태준은 그런 스트레스를 야동을 보는 것으로 해소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지나칠 때가 생겨 스스로도 고민중이다.
 
반장이라는 스트레스와 야동반장이라 놀려대는 정진에 대한 짜증, 야동을 끊고 싶어하면서도 성적 호기심에 야동을 끊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감 등은 태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러간다. 하지만 태준의 성격상 꾹 눌러 참고 있어 언제 폭발할지는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준은 전에 학원 친구에게 주먹을 휘둘러 코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자면 태준의 마음 속 괴물은 늘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건지도 모른다.

담임 선생님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 선생님으로 반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예의 주시한다. 특히 영섭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신경을 많이 쓰려한다. 하지만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는 깊고 넓은 틈이 존재한다. 선생님에게 말해도 별 소용 없을 것이란 생각 혹은 선생님은 자신들에 대해, 자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는 생각이랄까. 선생님은 아이들의 문제를 파악하고 자신이 해결하려고도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선생님으로서의 고민 역시 많은 것이다.

이렇듯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가득한 반에서 언제 일이 터질지 늘 가슴이 조마조마한 것은 역시 반장인 태준과 선생님이다. 태준은 영섭에게 아무리 충고를 해줘도 귓등으로 흘려듣는 듯한 태도에 짜증이 난다. 영섭 입장에서는 태준이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같은 또래 집단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아이들은 왜 영섭을 괴롭히는 것일까. 단순히 놀리기 쉬운 상대라서? 룰에 얽매인 학교 생활,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듣는 부모님의 공부 타령,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아직 어려서 할 수 없다는 짜증과 분노 등이 잘못된 곳으로 분출된 것이 아닐까.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대들 수가 없어서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장 취약한 아이를 공격하는 건 아닐까. 물론 이런 이유가 있다 해도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을 도저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 수가 없는 것이다. 

어른들의 사회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그리고 승자독식의 정글자본주의 사회이다. 정글은 나무가 우거져 몸을 숨길 수가 있지만, 아이들이 사는 곳은 관목과 풀만 있는 사바나다. 영섭이 몸을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고, 어떻게든 몇 년을 그곳에서 버텨야 한다. 사바나에서 자라서 정글로 들어가야 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영섭이나 태준의 마음 속에 있는 괴물은 이제 겨우 한쪽 눈을 떴을 뿐이다. 그래서 그 괴물이 두쪽 눈을 다 뜨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사람들의 마음에는 모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사람이 더 많을 뿐이라 생각한다. 나같은 경우에도 살다보면 때때로 괴물이 한쪽 눈을 뜨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금세 그 눈을 감도록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괴물이 눈을 감고 있도록 하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두쪽 눈을 다 뜬 괴물을 가진 사람도 있다. 그러하기에 괴물이 한쪽 눈을 뜨려하는 순간, 혹은 한쪽 눈을 떴다 해도 그것을 금세 감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영섭과 태준이 자신의 마음속 괴물의 눈을 다 감도록 하든, 다 뜨게 만들든 결국 그건 자신들의 몫이지만, 아직 아이들이기 때문에 어른들의 올바른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요즘은 아이들은 너무 극한으로 몰아붙여지고 있다. 어른들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다. 무조건 공부를 강요하고,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은 눌러 덮어야 하며, 어른들이 만든 룰안에서만 살아가야 하고, 어른들의 판단에만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어른들은 '알아서 잘 하라'는 말만을 할 뿐이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를 쉽게 잊어버리고,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 틈바구니가 너무나도 깊어서 서로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한다. 이 책은 집단따돌림 문제뿐만 아니라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성적 호기심을 비롯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의 입장과 어른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서로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상황에서는 어떤 대화도 나눌 수 없다. 어른들은 자신을 무조건 우위에만 놓지 말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영섭의 어머니나 태준의 어머니처럼 무조건 몰아붙인다면 아이들은 입을 다물 뿐이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이 어른들의 세상과는 다른 룰이 있다는 걸, 그리고 아이들의 세상에서만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속 괴물을 더욱 크게 키우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속 괴물이 두눈을 다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이 세상에는 괴물같은 어른들이 많지만, 아이들마저 괴물로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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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책이야! - 2024 개정 초등 1-2 국어 국정교과서 수록 도서
레인 스미스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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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참 좋겠다~~ 어른이 되어가지고 애들을 질투하는 건 모양이 좀 빠지는 일이긴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나 어린 시절엔 놀이라고 해봤자 동네에 나가서 나무타고, 바위타고, 겨울이면 집에서 만든 썰매를 타거나 비료포대에 짚을 넣고 눈썰매를 타곤 했는데 말이지. 하지만 요즘은 집집마다 비디오가 다 있으니 어린이용으로 나온 교육용 비디오 시청도 할 수 있지, 집에서 게임도 할 수 있지, 컴퓨터도 있으니 언제든 컴퓨터로 이런 저런 걸 할 수 있지... 정말 세어도 세어도 끝이 없겠다. 나 어린 시절엔 집에 티비가 있긴 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별로 없었지, 비디오도 없었지, 컴퓨터는 두 말 하면 잔소리. 게임을 하려고 하면 오락실에 몰래 가거나 문방구 앞에 놓인 소형 게임기 정도만 가지고 놀 수 있었다. 그 뿐이랴, 나 어린 시절엔 책도 귀해서 겉표지가 나달나달해지고 속지가 덜렁덜렁할 정도로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요즘에는 애들이 있는 집이면 전집이 넘쳐난다. 와, 사실 난 그게 제일 부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자주 아파 입원도 몇 번 하곤 했던 나는 밖에서 놀 수 없을 땐 책을 읽었다. 똑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도 읽어서 집에 있는 책 중에는 멀쩡한 책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린 시절 - 초등학교 때까지 - 의 일이고 중학생 이후에는 책을 읽어도 그정도로 열정적으로 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계속 책을 읽지만 한 두번 보고 책꽂이에 주르륵 꽂아놓는 게 전부다. 그래도 요즘 사람들 치고는 독서량이 좀더 많다는 게 내게 있어 단 하나의 자부심이긴 하지만...

요즘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안 읽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나오는 동키처럼 다른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꾸미기도 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것을 통해 정보도 교환하고, 손으로 직접 쓴 편지 대신 이메일로 안부를 전하고, 와이파이를 통해 어디에서나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는 등 책보다는 기계와 친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휴대전화로도 인터넷이 가능하고, 게임도 가능하다 보니 요즘 아이들을 보면 손에서 휴대전화가 떨어질 시간이 없다. 수시로 문자 넣고, 게임하고, 인터넷하고. 혼자만의 세상에 콕 박혀서 나오지를 않는다. 또한 텔레비전 역시 책을 멀리하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수동적인 행위이다. 그냥 틀어 놓고 보기만 하면 되니까.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다 보니 책 보다는 좀더 자극적인 매체를 원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당나귀 동키는 전형적인 현대인이다. 컴퓨터가 곁에 없으면 불안해 하고, 컴퓨터로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숭이 몽키는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을 즐긴다. 동키가 책으로 스크롤, 블로그, 트위터, 메일 보내기, 와이파이가 되냐고 묻지만 몽키는 그런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대답대신 "이건 책이야"라는 대답을 할 뿐이다. 그리고 책이 얼마나 좋은지 어떤 점에서 유익한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책을 동키에게 보여줄 뿐이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누가 강요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귀에 딱지가 않도록 "책 좀 읽어라, 책 좀 읽어라"해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책의 중요성이나 유용성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에게는 책을 읽고 싶은 동기가 없는 것이다. 동키는 몽키와의 대화를 통해 책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보인다. 자연스러운 관심, 그리고 독서의 실행.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서나 어른들에게 있어서나 세상은 신기하고 놀라운 것으로 가득하다. 그런 세상에서 책에만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매체 안에 독서란 것을 집어 넣는 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하지만 페이스북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이메일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면서 매일 매일을 살아간다. 그 시간들 중에 책 읽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많은 시간을 배분하고 있다. 물론 내 방법이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지만, 현대 사회의 기술발달과 여러 매체의 발달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것들을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음. 또 한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전자책 이야기이다. 요즘 전자책이 부쩍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가격이 싼 편이라 자꾸만 전자책에 시선이 가고 있다. 하지만 안구건조증 등이 있는 나로서는 전자책을 택하기가 어렵고, 그래서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 종이책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좋다고나 할까. 책 표지의 아름다움, 새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 잉크 냄새, 그리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길 때의 기분 좋은 바스락거림. 종이책 애호가인 나이지만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그 형태만 다를 뿐, 책을 읽는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어떤 식으로든 책을 읽는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전자책을 읽는 게 더 좋고 편하다는 사람이나, 종이책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이나 책이란 것을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걸 우선에 두고 생각할 때이다. 물론 내 입장에선 전자책 가격이 저렴해서 배아플 때도 많지만, 이런 아름다운 그림책의 경우 전자책으로 본다면 그 아름다움이 감해질 듯 해서 그럴 땐 또 배가 안아프다. 종이책도 책, 전자책도 책. 컨텐츠면에서는 동일하지만, 역시 종이책만이 가진 장점은 전자책이 결코 따라오지 못할 걸~~비록 기술의 발달로 전자책이란 것까지 등장해 종이책에게 위협을 가하지만, 종이책을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할 것이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샌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결국 이 책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란 것이다. 책의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은,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은 반드시 외치게 되어 있다. 그래, 책이야! 맞아 맞아,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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