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의 개
쿠사마 사카에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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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가 작품을 오랜만에 읽긴 했나 보다. 쿠니에다 사이카와 헷갈렸으니. 표지 그림을 언뜻 보고는 쿠니에다 사이카라고 착각을 했던 거다. 근데 책을 받아 보니 쿠사마 사카에. 호오라, 이거 횡재한 기분이었달까.『꿈꾸는 성좌』나『육식 동물의 테이블 매너』를 보면서 푹 빠진 작가였는데, 너무 오랜만이어서 잠시 헷갈린 것 뿐. 어쨌거나, 반가워요. 작가님!

제목에 '개'라는 표현이 있어서, 혹시나 성격이 개차반인 캐릭터가 등장하는가 하고 살짝 긴장했는데, 의외로 무척 따스한 느낌이었달까. 아흐.. 이러니 내가 BL을 못끊어. (물론 끊을 생각은 전혀 없다. 기복이 좀 심할 뿐) 중년의 샐러리맨 아저씨와 골동품 가게를 하는 총각의 이야기가 아주 포근포근했다.

목차를 보면 단편집인가 싶지만 장편이다. 중년의 샐러리맨(이혼했음) 아저씨인 시노다와 담배가게 겸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아사쿠라의 첫만남은 조금 기묘했다. 어쩌면 그날 시노다가 안경을 착용한 채로 길을 걸었더라면 둘은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시노다 우연히 걸어 들어간 골목 끝에 있던 골동품 가게는 그날 이후 맨정신에는 찾기 힘들었으니까. 이런 것도 인연이지요.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시노다는 아사쿠라의 가게의 편안함에 끌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음도 잘 맞아 시노다는 아사쿠라의 가게에 빈번히 들리게 된다. 때로는 도시락도 싸오는 등 참으로 다정한 사람이랄까. 하지만 이런 다정함과 깊은 배려가 대학시절의 이별과 지금의 이혼이란 상황을 만들었으니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아사쿠사 역시 못만나게 되었을테니, 조금은 멀리 돌아오는 길이지만 진짜 인연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원래 노말인 시노다가 게이인 아사쿠라의 마음을 눈치챈 후, 두 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겨버린다. 만약 시노다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했더라면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은 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흘러갔겠지. 그렇다는 건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이고. 어차피 두 사람 사이에 그런 차이가 처음부터 존재했으니 한 번은 겪어야만 할 일이었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 두사람에게 있어 커다란 갈등은 낳지 못한다. 오히려 잔잔하고 편안하게 이 일을 풀어나간달까.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어 간다.

공수 모두 안경캐릭터. 우와아.. 이거 참... 좋다. 난 안경캐릭터 오덕은 아니지만, 이 작품은 둘 다 안경캐릭터인 게 참 잘 어울렸달까. 그래도 좀 불편하시겠어요, 두 분 다. 작가 후기를 보면 공이 소녀풍의 좀 짜증나는 이미지일지도 모른다고 씌어 있는데, 절대 아니. 난 이 캐릭터 참 마음에 들었다. 조심스럽고 다정다감하며 귀여운 이미지도 있지만, 자기 의사 표현은 확실한 걸. 아, 그렇다고 선을 넘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의사 표현은 확실하다랄까. 특히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때, 그리고 옛 연인을 만났을 때 그런 모습이 보였었지. 이런 남자라면 든든할 것 같아.

음. 그리고 시노다씨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긴 한 상태였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거나 억지를 부리거나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조심스럽게 마음을 문을 열고 다가간달까, 그런 느낌이 팍팍 들어서 한 눈에 반했소이다. 게다가, 요리를 잘 하는 남자라니. 난 요리 잘 하는 남자도 좋아해서... (아, 이건 사적인 건데.. 참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또다시 한 걸음. 우연한 만남에서 사랑이란 감정으로 변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연인으로서 행복해진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마음이 따스해지고 충만해져가는 느낌이었다. 요즘 꽃샘추위로 많이 추웠는데, 이 작품 하나로 포근포근한 느낌이 가득이다. 따스한 작품을 원하는 사람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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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쿠니에다 사이카랑 헤깔려요. 저는 그냥 이름이 이상하게 헷갈린다고 해야하나요.:)
요건 앞서 봤던 성냥팔이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그 작품이군요. 따스한 이야기도 좋아하는데.. 이번에 쿠사마 사카에님 작품 잔뜩 사게 될지도 모르겠네요.ㅎㅎ

스즈야 2011-04-11 01:30   좋아요 0 | URL
오오, 교님도?? ㅎㅎㅎ
이건 엄청 따스해요. 공이 좀 소녀공인데... ㅋㅋ 그게 또 나름 귀엽다능..
 
세계 BL 망상동화
앤솔로지 지음, 최수정 옮김 / 인디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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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자(腐女子)의 망상은 끝이 없다. 올레!

세계명작동화에서나 읽었음직한 동화들이 BL의 탈을 쓰고 재탄생. 푸하. 설정만으로 두근두근 하는구려. 사실 나도 망상을 즐겨하긴 하지만, 동화를 가지고 망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물론 현실의 사람들을 두고도 망상은 하지 않고 주로 게임 캐릭터를 두고 이런저런 망상을 해봤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동화를 모티브로 부녀자의 망상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책이 나왔다니!

『세계BL망상동화』에는 총 7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모모타로와 아기 여우 곤의 경우 일본 동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모모타로의 원래 이야기에서는 복숭아 속에 있던 건 남자아기였지만, 이 만화에서는 장성한 청년이 벌거벗고 튀어나오더이다. 푸핫. 깜짝 놀랐네, 그려. 할머니의 기가 막힌 가리기 솜씨랄까, 첨엔 그것때문에 빵빵 터졌다. 어쨌거나 요괴를 퇴치하러 가면서 개, 꿩, 원숭이를 부하로 삼는다는 얼개는 기본이지만, 거기에 BL 망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지요. 게다가, 할머니의 동인녀 수준이 아주 상급이셨다능... 거기서 또한번 빵터지고 말았나이다. 

두번째 이야기는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한 <인어왕자>. 다행히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사실 인어공주를 읽으면서 자신을 구해준 인어공주를 몰라 보고 다른 여성과 결혼한 왕자에게 얼마나 분노했던가. 그러나 여기에 등장하는 왕자님은 자신의 은인을 결코 잊지 않았달까. 게다가 약혼녀 역시 동인녀!! 동인녀의 힘은 세다, 역시. 

음.. 그러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하멜른의 행복한 가족계획>은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쇼타삘이 나서 뭐 그랬고.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한 <백설공주의 달콤한 함정>은 귀축 백설왕자였다나. 불쌍한 일곱난장이들. 계모의 독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왕자를 보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기뻐했는데, 그넘의 얼빠진 왕자가 백설왕자를 구하는 바람에... 쩝.

아기 여우 곤을 모티브로 한 <불타는 여우>는 악! 소리 나오게 귀여웠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작화도 제일 귀여웠고. 햐~~ 지금 생각해도 얼굴 빨개진 곤을 떠올리니 몸서리쳐지게 귀엽다. 

이솝우화인 북풍과 태양을 모티브로 한 <북풍과 태양의 두근두근 대작전>은 제목은 좀 촌스럽지만, 나름대로 재미있었음. 근데 마지막 그림 말이죠. 실루엣 뿐이지만, 그게 통과가 되었다니. 음.. 

늑대와 빨간 모자에 나오는 빨간 모자는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도S가 될 싹을 보였고, 사냥꾼은 한 술 더뜨시더이다. 자신의 본분은 싸그리 잊은 채로 늑대 괴롭히기에 돌입한 사냥꾼. 절도범이었던 늑대는 그렇게 사냥꾼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엄지공주를 모티브로 한 엄지왕자는 뭐랄까, 그림의 균형이 안맞아서 거기서 웃음이 팍. 원작에서는 모두 동물로 표현되는 두꺼비, 풍뎅이, 들쥐, 제비 모두가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사람이니 더 그럴듯 하두만요. 스토리는 뭐 그닥 새로운 게 없었음. 기본 얼개에 BL삘을 약간 더한 정도?

마지막 작품인 성냥팔이 소녀를 모티브로 한 <성냥팔이 안경>은 안경캐릭터 소년이 등장. 안경 캐릭터인데.. 왜 난 별로 끌리지 않았지? 으음...... 

사실 수록된 작품 모두가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도 좋지만, 때론 이런 작품도 기분 전환용으로는 딱이다 싶다. 일본에서는 3권까지 발매가 되었는데, 전부 정발본으로 나오려나?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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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3-2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데요~ 신선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스즈야 2011-03-29 20:3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봄도 되었고, 신선한 자극이 여러모로 필요한 때죠.. ^^

2011-04-1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선한 자극이라 ㅎㅎㅎ
소재자체는 굉장히 흥미로워서 구매욕 가득인데 말이죠. ㅎㅎ
요것도 기회되면 한번 봐야겠네요!

스즈야 2011-04-11 0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예쁜 동화가 푸하핫... 이거 시리즈로 3권까지 있던데 모두 정발되면 좋겠어요.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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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고 나서 책장에 모셔 놓은지 꽤나 오래되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늘 읽고 싶어하면서도 쉽게 손을 들지 못하는 그런 책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있는 얀 마텔의 모든 책은 그런 취급을 받고 있다.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역시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는 상태이니까. 그럼 오랫동안 방치상태에 두었다가 이제서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얼마 전에 출간된『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읽고 싶어서 그 전작인『파이 이야기』를 손에 들게 되었다. 읽고 나서는 왜 진작 안읽었지, 라는 후회를 곧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런 이유라도 읽게 되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인도 소년 파이네 집은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동물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나날들은 평화롭고 안락했다. 학교 생활은 즐거웠고, 종교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성당, 이슬람 사원, 힌두교 사원을 찾아 다니며 성직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즐기기도 하는 등 파이의 하루하루는 늘 즐거웠다. 다정하고 배려심 많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좀 짓궂긴 하지만 좋은 형을 둔 파이의 가정도 평온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인도 내의 상황이 불안해지자, 아버지는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하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동물들을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기로 하고 캐나다행 화물선에 몸을 실은 파이네 가족.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던 중 화물선이 침몰하게 되고, 파이는 혼자 살아 남게 된다.

파이가 몸을 의지하고 있는 작은 구명보트 안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 마리, 그리고 오랑우탄 한 마리가 있었다. 얼룩말로 오랑우탄도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고, 파이는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때 나타난 건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 리처드 파커는 하이에나를 잡아 먹고 결국 배 위에는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이 남게 된다. 

언제 구조될지도 모르는 태평양 한가운데, 바닷속에는 상어가 헤엄치고, 배 위에는 호랑이가 있다. 파이는 절망을 느끼지만, 살아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살아 남을 길은 리처드 파커를 조련시키는 수 밖에 없다.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생존에는 물과 음식이 필수이다. 리처드 파커의 배를 곯리지 않기 위해 파이는 물고기, 바다 거북, 상어 등을 사냥한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인 파이가 물고기를 잡고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생존이란 것 앞에서 그런 것은 사치일 뿐이었다. 

227일동안 태평양을 떠다니며 벵골 호랑이와 생존 게임을 벌여야만 했던 소년 파이. 파이는 회상한다. 만약 리처드 파커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일찌감치 죽고 말았을 것이라고. 가족을 모두 잃고 아무도 없이 바다를 떠도는 존재가 되었더라면 살고 싶은 의지조차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면 참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리처드 파커라는 벵골 호랑이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이 오히려 생존 의지를 북돋아주었다는 것이.

절망과 희망은 늘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보자면 늘 같은 곳에 있는 것 같다. 사람은 힘들고 아프고 괴로운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에는 좀 둔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늘 사람들은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희망과 절망은 늘 같은 곳에 존재한다. 절망이 없다면 희망의 개념도 없을 것이고, 희망이 없다면 절망의 개념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극한의 순간에 달해서야 희망과 절망은 늘 함께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파이에게 있어 리처드 파커의 존재는 절망이자 희망이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충격적이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감동을 안겨준다. 파이 이야기의 경우 충격적인 이야기보다는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듯 보이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너무 깊어 바닥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내는 이야기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파이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망도 희망도 신(神)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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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저 아직까지 파이 이야기 모셔두고 있습니다.
표지도 다를 정도입니다. 언제 사다둔것일까요. 흠.
리뷰 읽으니 얼른 읽고 이번에 나온 후속작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즈야 2011-04-11 01:32   좋아요 0 | URL
ㅋㅋ 그러시군요. 전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읽기전에 급하게 읽었어요. 왜 안읽었을까 하고 후회했죠. 교님도 얼른 읽으시길....
 
인형의 무덤
마자린 팽조 지음, 함유선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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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껄끄러운 소재를 다룬 소설을 읽는다는 건, 그 속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을 알고 싶다는 생각보다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말초적인 호기심이 앞서서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뉴스를 시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아살해사건은 요즘은 그다지 드물게 들리는 뉴스는 아니지만, 서래마을 영야살해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충격을 받은 사람이 꽤 많았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피로 이어진 자식을 제 손으로 죽이고 냉장고에 보관한 부모들의 엽기적인 행각에? 아니면 프랑스 사람인 주제에 우리나라에 와서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기 때문에? 어떤 이유가 되었든 사람들은 사건의 엽기성 자체에 더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한 보도 역시 사람들의 호기심 충족에 걸맞을 정도로의 보도만 했으니. 아니 호기심에 불을 붙이는 보도였다고 해야 하나?

나 역시 이 소설을 접하면서 약간의 호기심이란 불충한 의도가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런 생각을 했던 독자들의 콧대를 가볍게 눌러주고 싶었을까. 이 소설은 영아살해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건을 저지른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해줄 뿐이다. 그녀의 어린시절, 연애와 결혼, 두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살아가던 시간들 등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서간체 형식이라 그런지 지나치게 주관적인 이야기로 진행된다. 이게 내 진심이예요, 이게 내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예요. 믿어주세요. 뭐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기분이 굉장히 나빠진다. 이 사건에 있어 철저히 자신을 타자화하고 있단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나'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자기모멸감을 숨기지 않는 자기비하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타인들의 탓이다. 어머니의 탓이요, 남편의 탓이다.

그러한 점은 당신의 집, 당신의 가족 등 당신의 무엇무엇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 것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나와는 관계없다는 태도랄까. 이는 또다른 면에서 볼 때 그러한 것들은 모두 당신의 것이지만, 내가 혼자 낳아 살해한 후 유기한 한 아이만은 나만의 것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생각도 든다. 도대체 이 여자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 있는 것일까. 이런 것도 사랑이란 것일까. 세상에는 많은 사랑의 형태가 존재하고 그중에는 분명 왜곡된 사랑의 형태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난 이런 건 정말 용서하지 못하겠다. 자기만족을 위해 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여자가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난 용납하지 못하겠다.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남편은 자신에게 일종의 공포를 심어준 존재이다. 그러함에도 그들을 벗어나지 못한다. 두 사람에 대한 생각은 애증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인형을 고문하고 죽이고 매장했었다. 이는 어머니에 대한 애증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에 대한 애증때문인 것일까. 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이런 결과로 나온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여자는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원래 자기비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누구보다 강한 자기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살해하고 냉장고에 유기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작가는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여자의 말이 거짓투성이처럼만 느껴진다. 진심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악마적인 면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그런 부분에 자신의 행위를 떠넘기는 것 아닌가 하는 불쾌한 기분도 든다.

이 책을 통해 그런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 경우를 말하라면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 여자는 내게 있어 세상의 다른 살인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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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츠키 5
타카야마 시노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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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츠키』1~4권은 오에도말 막부 순환전에서 야행과 누에의 공격을 받아 에도시대로 건너가 버린 토키의 에도시대 적응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5권은 그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원수처럼 지내게 된 본텐과 긴슈의 첫만남에서 우정을 키워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녀 공주 긴슈의 비밀도 드러나는 등 매우 흥미진진했던 과거편.

사가미 신사의 무녀 공주 긴슈는 어느 날 우연히 신사 결계를 깨뜨린 요괴와 만나게 된다. 아직 어린 요괴로 무녀를 죽이러 왔다는 꼬마는 지금의 본텐이었다. 당시 본텐의 이름은 히와(검은머리 방울새)로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우정을 쌓아가지만 그건 원래는 허락되지 않던 일. 몰래 만나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고 있는 덕분에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긴슈는 사실 무녀가 아니었다. 이 또한 둘의 우정이 지켜진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 무녀는 긴슈의 여동생으로 살고 있는 신슈로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라고 한다. 무녀 공주는 대대로 바뀌어 왔는데 그건 바로 신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언젠가는 도깨비들이 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란 것이란 신슈의 예언은 언젠가 꼭 일어날 일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요괴를 퇴치하고 있군. 근데 이것 참 아이러니하다. 만약 그런 이유로 요괴를 퇴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과 요괴 사이는 아슬아슬한 평화라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려 미리 비극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당시 히와를 돌보고 있던 건 뱌쿠로쿠라는 뱀 요괴로 천년을 살아온 나무 요괴를 주인으로 삼고 있다. 오랜 기간 동안 살아온 나무 요괴는 수명이 다해 꺾꽂이로 다시 태어나는데 아마도 이 요괴가 크면 우츠부시가 되려나? 겉모습이 무척 많이 닮았던데... 그건 나중에 밝혀질테고...

하여튼 요괴보다는 인간인 긴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던 히와가 요괴들에게 곱게 보일리가 없다. 거미 요괴에게 날개를 뜯기고 죽을 운명에 처한 히와. 하지만 그때 나타난 긴슈의 도움으로 되살아나게 된다. 히와와 긴슈의 만남은 뱌쿠로쿠에게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고, 뱌쿠로쿠는 긴슈를 만나 인간과 요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인간과 요괴의 차이점은 무엇이죠'라는 긴슈의 질문에 답하는 뱌쿠로쿠. 긴슈는 그날 밤 요괴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강한 요괴일수록 인간형에 가깝다. 그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는데 그게 다 밝혀졌달까. 인간의 사념과 원념이 뭉쳐져 힘을 얻게 되면 요괴가 된다는 말은 인간이나 요괴에게나 그다지 달갑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서로 증오하고 배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요괴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는 것이겠지. 결국 자기 자신의 다른 모습인데도 말이다. 

그리고 5권에서는 젊은 샤몬과 젊은 사사키 타다지로도 등장. 타다지로는 이때는 눈이 멀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타다지로를 돕고 있는 세명과의 거래를 통해 시력을 잃어버린 것인가. 베니와, 또 누구더라. 하여간에 그쪽이 음양료를 돕는 이유가 따로 있었구만. 이들 역시 심상치 않은 인물인 듯 한데, 도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이지? 전부터 이들을 보면서 든 위화감은 눈에 흰자위가 없이 눈동자만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너무나도 섬뜩해서 혹시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엔 그런 것이었나.

음양료와 신사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를 없애고자 한다. 하지만 정말 인간은 요괴를 없애고 인간만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뱌쿠로쿠가 말한대로 인간의 또다른 모습이 요괴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인간과 요괴의 공존은 필수일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아직 과거 이야기가 다 끝난 것 같지는 않으니 일단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 

 한편, 현세의 인간세계 이야기도 뒷부분에 수록되어 있었는데, 이 이야기 역시 과거의 이야기였구나. 난 토키가 에도시대로 건너간 후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토키가 멀쩡하게 등장해서 깜짝 놀랐달까. 이렇게 되니 좀더 복잡해졌다. 혹시 그들이 조사하고 있는 센사이 그룹과 관련된 문제때문에 토키가 그쪽 세계로 넘어 갔던 것일까. 이것도 아직은 좀 더 지켜볼 문제.

5권은 긴슈의 비밀에 대해서도 나오고 본텐과 긴슈의 과거지사도 나와서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어린 본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니. 어릴때도 꽤 건방진 꼬마였군. 근데 정말 귀엽긴 하다. 긴슈의 경우, 이제껏 정말 싫었는데 왠지 안쓰러웠다고 할까. 결국 언젠가 대체될 말에 불과했군. 진짜 무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를 보호하는 역할이니까. 

본텐과 긴슈의 과거 이야기가 나오니 토키나 콘의 이야기는 궁금해지지도 않았다. 이걸 어째. (푸하) 다음권에서도 이들의 과거 이야기가 좀 더 나와주려나, 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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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5권까지 리뷰 다 하셨네요. 저는 아직 1권 랩핑도 안 뜯었어요.ㅎㅎ

스즈야 2011-04-11 01:32   좋아요 0 | URL
전 만화는 뒤가 궁금해서 오면 제일 먼저 읽어요.. 이거 점점 흥미진진. 얼른 랩핑 뜯고 읽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