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 1 - 마천루(절판 예정)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진수 옮김, 카키노우치 나루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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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나카 요시키의 노벨은『창룡전』을 읽은 후 무려 10년도 더 지나 읽게 되었구나. 사실 노벨류는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서 멀리 했는데, 최근 다나카 요시키의 작품이 실린 미스터리 앤솔로지를 읽으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달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해서 그쪽을 많이 읽는 편인데 가끔은 가벼운 느낌의 책도 읽고 싶달까. 그럴 때 읽으면 딱인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에는 <마천루>라는 장편과 <여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마천루>는 도쿄만에 위치한 '베이 시티 플라자'에서 일어난 괴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찰청 고위간부들이 잔뜩 모인 이곳에서 갑자기 수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기기오작동이라고만 생각했으나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희생자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마천루>는 대리석 속에 산다는 요충(妖蟲) 발레오로자키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발레오로 뭐시기란 요충은 돌 속에 살면서 기괴한 일을 일으키는데 포악하기 그지없는 일을 벌인다. 이 요충을 박멸(?)하기 위한 야쿠시지 료코의 고군분투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물론 더 고생하는 건 료코의 부하 직원인 이즈미다 준이치로이지만. 그래도 료코의 박식함이 없었더라면 범인(?)의 정체파악도 힘들었을 것 같으니 어쩌겠어, 그대가 참아야지. 

근데 궁금한 게 있다. 내가 대충 읽고 지나쳐서 잊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빌딩 벽에 '미나고로시'를 쓴 건 누구지? 설마 발레오로 뭐시기? 그런 요충이 사람 말도 할 줄 아는 건 아니겠지. 결국 약간 찜찜함이 남아 버렸다.

<여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료코의 집안 이야기 -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 이야기 - 와 관련된 이야기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고 가느다랗게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하여튼 이번엔 마법의 물감이라는 육식성 미생물이 등장한다. 역시 이 또한 료코의 박식함이 빛을 발휘하는 에피소드.  

예전같으면 -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 - 료코같은 캐릭터가 진짜 싫었을 것 같다. 뭐랄까, 질투랄까. 멋지고 잘난 남자는 좋은데 멋지고 잘난 여자는 눈꼴시다,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내가 딱 그 짝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여성 캐릭터가 아주 마음에 든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경찰조직이란 건 관료사회의 정형을 보여주잖아. 특히 굳어버린 머리의 영감들이 좌지우지하는 조직은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회의에 또 회의다. 회의주의자들! 경찰이 그렇게 바글바글 모여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일을 수행할 인물은 별로 없다니. 일본 경찰들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달까. 이런 남성중심의 관료사회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야쿠시지 료코란 인물이다. 물론 실제로는 이런 캐릭터가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달까.

캐리어와 일반 경찰로 나뉘는 일본 경찰 조직은 매우 흥미롭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경찰조직은 독특한 면이 많은 듯. 그래서 경찰 관련 이야기가 많은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떤 장르이든 장르 불문 경찰 이야기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이런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면 더 재미있고. 하여튼 안하무인이지만 뛰어난 머리와 상황판단능력으로 사건을 쾌속으로 해결하는 야쿠시지 료코를 보면서 통쾌했다. 물론 거기엔 일본 특유의 유머 감각도 빠지지 않는다. 예전엔 일본 특유의 유머랄까, 그런게 참 낯설었는데 이게 적응되면 의외로 아주 재미있단 말이지. 호홋.

오컬트 분위기의 괴사건과 더불어 전례없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 흥미로운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일단 입수되는 대로 주욱 읽을 계획. 이미 절판된 것도 많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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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남자들
사가와 미쿠 지음, 이주희 옮김 / 인디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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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와 미쿠는 처음 접하는 작가라 걱정이 좀 많았지만, 이거 의외로 내 타입인걸~~ 물론 책 소개나 책 표지를 보고 고르긴 해도 읽기 전까지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지만, 그렇게 고른 책이 딱 자신의 취향이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책 내용은 비슷비슷한 게 많기 때문에 내용보다는 작화를 보고 고르는 편이긴 한데, 작화가 딱 내 타입이다. 뭔가 좀 거친 느낌이 팍팍 나잖아~~ 남자 느낌이 물씬~~ BL물 중에는 정말 여자 캐릭터도 울고 갈 정도로 곱게 생긴 캐릭터들이 많긴 한데, 난 이런 수컷 냄새가 풀풀 나는 캐릭터가 좋단 말이지. 그리고 딱 보기에도 공수 캐릭터의 체격 차이도 크지 않을 것 같고 말이지. (취향 다 드러나는구나~~)

『상처투성이 남자들』에는 표제작인 <상처투성이 남자>들을 포함 총 네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책 설명을 보면 장편같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상처투성이 남자들>은 딱 보기에도 야쿠자물이다. 그렇다면 야쿠자와 일반인이냐, 야쿠자들의 이야기냐가 관건인데, 이 작품은 야쿠자들의 이야기이다. 흐음, 아주 마음에 들었어. 나의 경우 실제로 조직폭력배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 작품속에 등장하는 야쿠자들'만' 좋아한다. (다들 그렇겠지만)

턱에 수염난 녀석의 이름은 미시마 켄조. 간사이 조직에 몸담고 있었으나 쫓겨나 도쿄로 흘러들어 온 남자다. 그를 거두어 준 건 진보파의 부두목 세가와 에이지이다. 연인사이 비슷하지만 세가와의 마음을 확실히 몰라 불안한 미시마는 세가와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아카이게를 만난 후 더욱 불안해진다. 다른 조직과의 불화, 세가와에 대한 마음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 미시마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세가와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캐릭터인 미시마가 어떻게 세가와와 연결되는지 참 궁금하다. 뭐, 그건 세가와 마음이겠지만... 근데 이 남자 포커 페이스를 하고 있는 듯 해도 은근히 질투도 하고 미시마를 걱정하기도 하고, 의외로 귀엽다. 사실 미시마도 좀 귀엽긴 하지.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남자, 내 취향이거든. 물론 원서가 아니라 번역본인 관계로 간사이 사투리가 경상도 사투리가 되었지만 그래도 간사이벤을 상상하면... 좋구나. 근데 간사이벤은 왜 번역하면 모조리 경상도 사투리가 되어 버리는 거지? 난 경상도 사람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무뚝뚝하다고 생각하지 전혀 귀엽지 않은데.. 

하여튼 조직간에 벌어지는 일들과 더불어 남자들의 찐한 의리와 사랑 이야기가 믹스된 <상처투성이 남자들>, 딱 내 취향이다. 게다가 재미있게도 형님이 수다. 형님수. 형님은 보통 공인데, 이 작품은 그게 뒤바뀌었달까. 첨엔 그냥 무심코 넘겼는데, 작가 후기를 보다 빵 터져버린 거지.

<과묵한 커피와 겁쟁이 호두>는 커피 전문점 사장과 재택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이야기이다. 커피 전문점 사장은 말은 없지만 은근히 프로그래머를 마음에 두고 있는 눈치. 그러나 프로그래머는 대인기피증 비슷한 것이 있어 다른 사람과 눈도 안마주치는 사람이다. 말없는 사람과 다른 사람과 눈도 안마주치는 사람이 연결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근데 재택 프로그래머인 이 남자, 알고 보니 진보파 두목의 아들이더이다. (책 속표지에 진보파 관계도가 나옴)

<매의 포로>는 배경이 어디려나. 영국인가 싶은 생각이. 의사와 반왕당파 남작 사이의 이야기인데 딱히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 패스.

<천일야화 광상곡>은 오랜만에 보는 아랍물. 이거 은근 내 취향이더이다. 도망간 여동생을 대신해 시집(?)을 가게 된 대상인의 셋째아들 이스하크와 거래처의 셋째아들 죠안의 이야기인데 이 둘 엄청 귀엽다. 성인 남자의 상징인 수염까지 깎이고 시집(?)을 가야 했던 건장한 이스하크에게 이 결혼은 비극으로 시작되었지만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죠안 덕분에 행복해진다는 이야기인데, 수록작 중 제일 웃겼던 작품이다. 이스하크의 두 형이 첫날밤 찾아와 여동생 야스민을 찾지 못했다는 몸짓을 하는 장면이 왠지 테트리스의 춤추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거든. 푸핫,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물론 스토리 자체도 재미있었고. 게다가, 이 작품도 크로스 캐릭터랄까. 신부가 공이야, 신부공! 

야쿠자 이야기, 극소심한 남자들 이야기, 귀족과 의사 이야기, 아랍물까지 다양한 작품이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는『상처투성이 남자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기대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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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리뷰 보면서 웃었습니다.
야쿠자 이야기 좋죠. 저도 은근 이쪽 취향 타는지도 모릅니다. 노리카즈님 작품도 좋아했고. :)
저도 경상도 사람이지만, 경상도 사투리는 저도 귀엽다고는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대부분 간사이 사투리는 경상도가 되버리더군요. 개인적으로 전라도쪽 사투리도 한번 보고 싶은데, 이건 희망사항이 되려나요ㅎㅎ
요것도 일단 담아둬야 겠어요.

스즈야 2011-04-11 01:24   좋아요 0 | URL
ㅋㅋ 저도 현실에선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는 부류가 야쿠자이지만 2차원에선 꽤 좋아합니다.

오오, 교님도 경상도! 이거 무지 반갑네요.. ㅎㅎ 그쵸 경상도 사투리를 다른 지방 사람들은 귀엽다고 느끼던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안해요. 근데 간사이벤을 전라도 사투리로 바꿔도 무지 웃길듯한... ㅋㅋㅋ
 
심판 받는 자
혼마 아키라 지음, 이주희 옮김 / 인디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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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이 책 표지 느무느무느무 멋지다. 모노크롬이라... 원래 화려한 것 보다는 이렇게 흑백이나 단색조로 그려진 그런 그림을 좋아하는데, 표지를 보고 확 반해버렸다. 게다가 인물 구도도 멋지잖아. 혼마 아키라의 작품 중 표지가 제일 멋진 듯. 그렇다면 내용은 어떠려나~~

『심판받는 자』는 표지에 등장하는 커플을 포함해 총 세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일단 <심판받는 자>의 토도 타츠키와 스기우라 쿄의 이야기부터. 현재 정치인으로 활약하는 타츠키와 현직 검사인 쿄는 어린 시절 시설에서 함께 자란 친구로 깊은 우정을 나눠왔다. 하지만 어느날 쿄의 어머니가 나타나 쿄를 데리고 가게 되고, 혼자 남겨진 타츠키는 쿄를 원망했다. 타츠키는 그후 어느 거물 정치가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고 그의 뒤를 이어 정치가가 되었다.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쿄에 집착하는 타츠키. 그리고 그런 타츠키를 두려워하는 쿄. 사실 쿄의 감정을 보면 타츠키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망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 만나야 하니까 다시 만났던 게 아닐까, 두 사람은. 어린 시절 함께 자라왔던 시설로 돌아가 그 시절의 악몽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두 사람에겐 이젠 거리낄 게 없다. 여동생도 용서해 줬잖아.

한편 타츠키를 짝사랑하던 비서 카스가는 타츠키에 대한 집착이 심해져 결국 그를 칼로 찔러 큰 상처를 입힌다. 교도소 수감 뒤 그를 맡은 검사 시노다는 카스가를 매일 찾아간다. 카스가는 그의 심중이 의심스러우면서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그가 싫지만은 않다. 거물 정치가의 비서답게 고위층의 비리를 꿰고 있는 카스가에 대한 두려움일까, 그를 노리는 마수가 카스가에게 뻗어온다. 시노다는 카스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데...

사실 타츠키 X 쿄 커플보다 난 시노다 X 카스가 커플이 더 좋았다. 딱히 로맨틱한 장면이나 그런 건 없었지만 오히려 이쪽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으니까. 특히 중년의 시노다가 테루테루보즈처럼 생긴 인형으로 카스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 봐"라는 시노다의 말. 이 말은 정말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카스가, 너도 이젠 행복해질 수 있단다.

마지막 이야기는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미모의 천재외과의사 스자키와 나사가 반쯤 풀린 듯한 마츠다의 이야기인데, 여기에서의 스자키 역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스자키를 이용하는 나쁜 놈 하나 등장해 주시고. 많이 볼 수 있는 설정이긴 한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끌리는 요소는 없었지 아마. 머리를 묶은 남자가 등장하는데도 왜 안끌렸을까. 그도 그럴게 마츠다 자체가 내 타입이 아니라서 그랬는지도. (푸핫)

심판받는 자를 보면 그림이 무척 옛날 그림같다. 원래 혼마 아키라의 작화가 고전적이긴 하지만 이건 더하다고 할까. 섬세한 면이 좀 떨어지는 점은 있는데, 그것도 뭐 나쁘지는 않더이다. 풋풋하고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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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표지 예쁘네요! 저도 이런 스타일 좋아합니다!
이야기야 많이 새로울 건 없지만, 테루테루보즈 인형으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꼭 보고 싶은걸요. 사실 저도 뚜렷한 장면 없이 서로 묘하게 떠보는 듯한 그런 이야기를 더 좋아해서:)
도대체 묘하게 떠보는 건 어떤 건지 참 말로 하기 힘드네요 ㅎㅎ
혼마 아키라님 작품 오랜만인 것 같아요. 작화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

스즈야 2011-04-11 01:25   좋아요 0 | URL
그쵸... 표지가 가장 멋진 작품인듯 싶어요. 내용은 초창기 작품이라 좀 올드합니다. 뭐 원래 이 작가의 스토리가 올드한 면이 많긴 합니다만...

ㅎㅎ 테루테루보즈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거는 검사, 중년이십니다. 푸힛.. 근데 은근 잘 어울리신다능... 꽤 멋진 캐릭이었어요.

2011-04-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보기로 봤는데, 우와아아아아~ 이런 겁니다. 바로 장바구니를 클릭해버렸어요 ㅎㅎ

스즈야 2011-04-11 01:25   좋아요 0 | URL
ㅎㅎ 결국 지르셨군요. 혼마 아키라의 작품은 기본이 잘 다져져 있어 후회안하실듯.
 
新 일본어능력시험 일본어문형 630
友松 悅子.宮本 淳.和栗 雅子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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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시험이란 것을 무척이나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사실은 시험자체보다는 떨어진다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혹시 시험을 쳐봤는데 똑 떨어지면 완전히 좌절해서 의기소침해진 다음 두문불출할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큰 것이다. 그래서 몇년동안 일본어를 공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시험은 쳐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공부가 될만한 것들 - 시험교재, 드라마 CD, 애니메이션, 원서로 된 만화, 에세이나 소설류 등 - 을 듣거나 보면서 완벽해질 때를 기다려야 해 하면서 스스로를 속박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시험을 쳐보고 싶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다른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는 新JLPT와 JPT시험 두 가지를 다 보기로 결심, 좋은 책을 찾아 나서던 중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음, 그래 난 청해는 자신이 있는데 문법이 좀 자신이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까. 문형사전이란 용어가 꼭 마음에 들었다.

일본어는 처음에 시작할 때는 우리말과 비슷한듯 해서 신나게 공부하지만 조금 지나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좌절을 하게 된다. 그중 가장 많은 좌절감을 안겨주는 건 역시 문법이다. 문법이란 것은 언어의 고유한 특징이기 때문에 아무리 트집을 잡아도 절대 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암기와 이해가 필수적으로 따라온다. 나 역시 처음에는 동사변형에서 좌절 한 번, 그다음엔 사역형, 사역 수동형에서 좌절 두 번 등등등을 거쳤고, 그다음에는 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는 문형때문에 커다란 좌절을 겪은 적이 많다. 즉, 문법이 고급으로 올라갈수록 좌절할 일이 두루두루 많이 생긴다는 뜻이다.

책의 특징과 장단점

이 책은 제도가 바뀐 新JLPT시험용으로 나온 문형정리사전이다. N1~N5까지의 문형 630개가 각 행별로 나뉘어져 수록되어 있다. 등급별로 나뉜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문형옆에 등급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자신이 필요한 등급만을 골라 공부할 수 있다. 新 JLPT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N1 시험을 볼 때까지 유용하게 쓸 수 있다. 뒤에 수록되어 있는 50음순 색인은 사전처럼 활용하기 편하게 되어 있고, 의미· 기능별 리스트는 비슷한 의미와 기능을 가진 문형들을 묶어 놓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재빨리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의 경우 일본인 친구와 메일을 주고 받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를 할 때 필요한 문형들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을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이 부분을 참고하고 있는데, 이럴 때도 아주 유용하다.

각문형에 대한 설명은 그 뜻과 접속방법, 그리고 비슷한 문형을 함께 실어 놓았다. 밑에 있는 예문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직 초급단계라도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다. 또한 어려운 한자대신 많은 단어가 히라가나로 표기되어 있는데, 역시 초급단계의 사람에게는 보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  N1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단어가 너무 평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의 수도 적은 게 약간은 불만이고. 또한 체크문제는 본문에 수록된 예문을 그대로 가져와 암기실력만을 살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왕이면 예문과 다른 문제를 수록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역시 책이 두꺼운만큼 무거운 건 감수해야 한다.

나의 공부방법

① 처음부터 끝까지 표제어를 훑어 보며 내가 아는 것을 미리 체크해 둔다. 그럼 내가 어느 레벨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②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것은 같지만, 이번에는 예문을 함께 읽어 둔다.
③ 한 행식 나누어 예문을 자세히 공부한다. 조사나 부사, 숙어 같은 것도 함께 체크해 둔다. 접속방법도 머릿속에 잘 집어 넣는다.
④ 문제풀이, 그리고 각 문형을 이용해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본다. 노트를 따로 구비해 두면 좋다.

이상이 나의 공부 방법인데, 다들 이런 비슷한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나 싶다. 나의 경우 작문을 해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같은 예문만 보면 좀 질려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접속방법을 무조건 암기하는 것보다 문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속방법을 암기하는 것이 머리속에 더 오래 남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가지 문장으로 만드는 연습을 하면 실전 - 나의 경우 일본인 친구와의 전화나 채팅- 에서 빠르게 적용시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험에서도 - 사실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라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 어떤 예문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면을 단련하는 용도이기도 하다. 

끝으로

공부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는 법이 없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지만 공부에 있어서 과유불급이란 없는 듯 하다. 시험을 볼 때 낭패를 보는 경우는 딱 하나다.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과신할 경우가 바로 그것인데, 알고 있는 것 같은 게 아니라 똑바로 알고 있어야 문제를 풀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대충대충 좀 이런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 문형들을 체크해 보면서 나의 실수를 좀 많이 깨달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독하게 마음먹고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물론 문법만 시험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청해나 독해도 따로 공부해야겠지만, 일단 문법정리는 이 책으로 충분할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스스로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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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4번째 방법 좋은데요.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보는 것.
저는 지금 보고 있는 책도 사두고만 있습니다. 매번 이런 식입니다(씁쓸)
이번 7월 시험은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ㅠ_ㅠ

스즈야 2011-04-11 01:26   좋아요 0 | URL
처음에 일본어 공부할때부터 고수하던 방법입니다. 시험만 보려고 공부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이렇게 해두면 의외로 나중에 써먹기 쉽더라구요.. ^^

음... 전 7월에 일단 무조건 보려구요. 너무 미뤘더니... 어질어질합니다. 사실 2년전에 봤어야 하는뎅...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 에휴.
서로서로 화이팅입니다!
 
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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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항시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존재이다. 기본적인 생존욕구가 충족되면 인간은 더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좀더 넓은 영토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싶다는 욕망, 더많은 재화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 등은 집착으로 번지기도 한다. 인간의 이런 욕망은 분명 인간 세상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키기도 했지만, 서로에게 칼을 들이대는 추접한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끝없이 어딘가를 침탈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번성해 왔다고.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전쟁은 비단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다. 작은 나라안에서도 작은 도시 안에서도 언제든 벌어진다.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은 권력의 욕망에 휩싸여서.

장원두는 '마사오'의 부고를 듣고 5년 만에 고향마을을 찾는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부분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도 그러한 분위기는 변함이 없다. 마사오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인물로 원래 이름은 정부(正夫)이지만 '마사오'로 계속 불렸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집에 태어난 '마사오'는 주먹과 의리 하나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신화와 전설처럼 각색되고 채색되었지만, 누구하나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있어 왕이었고, 어른들에게 있어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영웅의 말로는 비참했다. 텅빈 장레식장. 흩뿌리는 비는 그 쓸쓸함을 더한다.

장원두는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오랜 노장들을 만난다. '마사오'를 따랐던 인물들은 이제 늙수그레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 쓸쓸한 분위기에 한몫을 더한다. 장원두는 그들을 보며 '마사오'를 추억한다.

'마사오'는 스스로 권력을 지향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때때로 싸움을 즐기던 사람이었다. 그의 일화는 자연스럽게 각색되고 미화되어 하나의 영웅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그것 역시 '마사오'가 스스로 추구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영웅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런 바람에 딱들어 맞았던 인물로 '마사오'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마사오'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영웅으로 존재해왔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마사오'를 따르는 인물도 생겼을 것이고, 이것이 점점 하나의 조직처럼 변해갔을 것이다.

이런 '마사오'를 동경해 왔던 사람들 중 한사람인 조창용는 '마사오'가 되고 싶어했다. 몇년 간 외지에 나갔다가 돌아온 조창용은 서서히 '마사오'를 압박해 나가기 시작한다. 자신이 이 도시에서 1인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사오'를 언젠가 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조창용은 술집과 도박장을 경영하며 자신의 입지를 넓히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빨 빠진 호랑이, 이름만 남은 영웅 '마사오'를 완전히 짓밟기로 한다. 일종의 쿠데타였다. 하지만 그 벌이었을까. 조창용은 의문의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저 세상으로 가고 만다.

그후 늘 2인자로 존재하며 자신의 안위만 살피던 박재천과 1인자가 되기를 꿈꾸는 황포가 대립하기 시작한다. '마사오'의 존재가 희미해진 지금 황포는 대경과 손잡고 바깥 세력을 끌여들여 이곳을 완전히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박재천의 세력은 미미하지만, 여전히 '마사오'를 추종하는 인물들을 포섭하여 외부로부터 안을 지킨다는 것을 내세워 황포의 계획을 무산시킨다. 재천이 한 일은 자신의 특기인 '소문내기'와 폐쇄적인 마을 분위기를 잘 융합시킨 것이었다. 즉, 2인자이자 참모꾼으로서 살아 온 이력이 그 힘을 톡톡히 발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황포의 경우 새로운 세대를 영입하고 외부의 돈과 힘을 끌어들이려 했다 거꾸로 재천에게 당해버렸다. 이는 여전히 이 도시에 남아있는 '마사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재천은 '마사오'를 넘어서려고도 하지 않았고, '마사오'를 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마사오'를 대신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조창용과 황포가 박재천에 패배한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것에 있지 않을까.

하지만 조창용이 몰락했듯, 황포가 뒷통수를 맞고 나자빠졌듯, 박재천의 입지 역시 단단하지는 않다. 그가 지금 이름을 빌어 규합한 세력들은 이미 은퇴할 나이가 가까웠고, 박재천의 인물됨됨이나 그릇 또한 1인자가 되기에는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박재천 역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쫓겨나게 될 것이다. 권력이란 그러한 게 아니던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특히 이런 비열한 수로 권력을 잡은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마사오'의 경우에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오랫동안 전설적 존재가 되어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런 영웅의 시대는 가버렸다. 이제는 비열한 자들이 권력을 잡고 남용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낭만의 시대는 가버렸다. 하지만 의문이 솟는다. 정말 '마사오'는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까. 우리는 각색되고 미화된 '마사오' 영웅담을 알고 있을 뿐 '마사오'가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늘 과거를 추억하며 산다. 그 과거에 덧칠하고 채색하며 살아간다. '마사오' 뒤에 나타난 조창용이 그렇게 비열한 술수를 쓰지 않았다면 조창용은 또다른 '마사오'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남자들이 중심이 되어 권력을 쟁탈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중 세희란 인물은 여성임에도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로 보인다. 장원두의 첫사랑이지만 박재천의 아내가 된 세희. 세희는 조창용과도 관련이 있는 인물로 등장하는데, 조창용의 교통사고 당시 세희도 그 옆에 있었지만 조창용만 죽고 세희만이 살아 남은 것으로 나온다. 그후 세희는 박재천의 여자가 된다. 어쩌면 세희는 스스로 권력을 잡을 수 없어 재천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그녀가 원두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원두가 소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원두는 말한다. 자신은 역사가라고. 정사가 아닌 야사를 쓰는 역사가라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장원두가 들었던 '마사오'에 대한 전설적 일화며, 조창용의 이야기, 박재천의 이야기 등은 모두 나름대로 각색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사오'가 죽었고, 조창용이 죽었고, 이제 그 뒤를 이어 박재천이 새로운 권력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진실로 위장한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갈 뿐. 그리고 그 추억에는 늘 '마사오'가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원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배하며 살아갈 것이다.  

장원두의 회상이나 그가 가진 기억, 그가 들은 이야기와는 별개로 난 이 책에서 한국 현대사를 얼핏 엿보았다. 장원두는 1950년대 말즈음 태어난 것으로 보이며, 유신정권시대, 5공시대, 그리고 문민정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책 속에서는 4공화국이니 5공화국이니 하는 표현은 없지만, 막걸리를 좋아한 대통령이나 계엄령등의 표현을 통해 짐작을 해 볼 뿐이다. 그런 이야기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 사이에 슬며시 삽입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작가의 재치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중에서 유신정권시대의 박정희와 5공시대의 전두환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자 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무너져내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도 권력싸움은 존재했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암살이나 무력동원같은 무자비한 방법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권모술수의 시대가 되었다.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지 몰라 불안할지라도 인간은 영원히 권력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달콤한 독인지를 잘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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