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본격추리 2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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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全단편집 2 - 본격추리 2는 딱 7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1권에는 22편이나 실려 있던 것에 비해 편수가 확 줄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1권보다 2권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1권의 경우 조금 납득하기 힘들다거나 조금 유치한 듯한 작품도 있었지만 2권에는 본격추리 작품의 정수만 모아 놓은 느낌이랄까. 그 정도로 수록된 모든 작품에 매력이 풀풀 넘쳤다. 아주 짧은 단편보단 이런 중편정도의 길이가 더 매력적이었다.

첫번째 작품인 <호반정 사건>은 엿보기를 좋아하는 한 남자가 목격한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백이란 형식으로 서술되는 작품인데, 이는 이 남자 역시 이 사건에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엿보기 거울로 사건 현장을 목격했지만, 그 사각의 트릭에 꼼짝없이 속아 넘어 간달까. 사람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게 마련이다. 그것이 함정일거란 생각은 못하는 것이지. 근데, 난 이 작품의 결말부의 고백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외국에 나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아직 공개할 때가 되지 않았다는 화자의 말. 도대체가 왜? 자신의 이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텐데... (이게 일본인의 하나의 특성인가? 나라를 위해서라면 잠시 묻어 둬도 괜찮습니다?!)

<악귀>는 역시 트릭면에서 압권인 작품. 에도가와 란포는 여기에 사용한 트릭을 아서 코넌 도일의 작품에서 차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로 역시 압권이다.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트릭이랄까. 당대에만 존재할 수 있는 트릭이지만 기발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얼굴없는 사체, 저주의 짚 인형 등이 등장하지만 오컬트적인 작품은 아니고, 이 작품 역시 사람이 저지른 일은 맞다. 하지만 악귀같은 사람이 저지른 일이긴 하지.

<지붕 속 산책자>는 예전에 읽었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에 대한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온갖 유희를 즐기다가 결국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고 마는 코우다라는 남자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케치 코고로의 탐정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

<그는 누구인가?>는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가 제일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보면 의외의 범인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남녀간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빗나간 애정이 불러온 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로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기묘한 탐정의 정체를 알고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사건의 피해자가 그토록 씹었던 그 '인물'이 그였을 줄이야. 탐정 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온갖 추리를 다 늘어 놓더니, 결국 큰 거 한방 먹었구나. 통쾌하다, 통쾌해.

<달과 장갑>은 범인과 공범이 사건을 조작 ·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낸 트릭이 무척 흥미로운 작품이다. 인간이란 자신이 죄를 저지르면 마음이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아케치 코고로는 여기에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인과 공범에게 교묘하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법으로 죄를 실토하게 한다. 1권에 나왔던 심리시험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인데, 그보다 더 매력적이다.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는 범인이 오래전에 저지른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위한 서간체 형식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트릭이 기발한데, 요즘 같으면 이런 트릭은 절대 사용하지 못할 듯 싶다. 하지만 기발하단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지금보다 옛날 트릭이 더 기발하다면 기발하달까. 

<음울한 짐승>은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역시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 본인의 작품 제목을 약간 변형시켜 등장시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이 작품의 화자가 탐정소설 작가이기 때문일텐데,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부부의 비밀과 그 사이에 끼어든 한 탐정소설가.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결국 명료하지 않다는 점에서 끝까지 수수께끼를 남기고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의외의 범인이 많이 등장한다. 또한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긴 추악함과 어둠이 그들을 어떤 식으로 잠식해 나가는가를 관찰하는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또한 아케치 코고로의 활약 역시 1권의 작품보다 더 탐정다웠달까. 직접 등장해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고, 때로는 직접 등장하지 않고 심리적인 압박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 등 아케치 코고로의 다양한 면면을 보게 된 것도 무척 좋았다. 에도가와 란포 全단편집중 남은 것은 3권인 괴기환상 편인데,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들이 수록된 책이라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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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코드
나츠메 이사쿠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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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메 이사쿠의 작품은 오랜만인듯.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반짝반짝 다이얼이었으니.. 그동안 잊고 살았나 보다. BL만화 검색하다가 눈에 띄었으니. 허허참. 개인적으로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가였는데, 너무 많은 작가들이 작품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게다가 한동안 BL에 좀 질렸던 것도 있었으니 당연한 건가. 하여튼간에, 간만에 나츠메 이사쿠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만나니 기분 업! 업!

표지를 보고 헉, 저 남자 내 스타일인데... 라는 외침이. 정말 모에롭습니다. (푸핫) 근데근데, 이건 한때의 이미지일뿐이었어? 틀림없이 저런 메가네 타입이라면 츤데레나 귀축이나 뭐 이런 캐릭을 상상했는데, 의외로 데레데레이더이다. 그것도 한숨 푹푹 나올 정도의 데레데레랄까. 솔직히 말해서 한텐입고 고타츠 안에 엎어져서 얼굴에 다다미 자국을 내놓은 걸 보고, 헐~~~ 했다. 이게 아키라가 처음 만났을 때 봤던 그 날쌔고 용감하며 쿨하게 생긴 그 남자란 말야?!

보통 때는 널부러져서 방바닥과 하루종일 친구하자는 남자이지만, 실제로 이 남자 오오도이는 야쿠자의 아들이다. 본인 말로는 야쿠자가 싫어서 이러고 사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니요? 길거리에서 봉변당하고 있는 아저씨를 구해준 모습에 반해서(?) 당신을 주워온 아키라의 심정도 좀 생각하셔야지, 오오도이씨. 양복을 입을 때와 평상복을 입고 지낼 때의 격차가 이렇게 커서야. 남자들 연애 초기에는 무지 신경쓰고 나오다가 어느 정도 사귀기 시작하며 겉모습 별로 신경 안쓰고 여자친구 앞에 떠억 나타나는 거랑 비슷하잖아, 이건. 에휴. 뭐, 그래도 아키라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주워준 것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모든 일을 쓱쓱 해결해 주는 오오도이를 보면 멋지긴 하다. 하지만 평소 이미지가 너무 구려. (흑) 

『슈거코드』는 디자이너 겸 아파트 관리인인 아키라가 길에서 한 남자를 주우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처음엔 엄청 멋졌던 남자가 평소에는 소탈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지내다가 아키라에게 무슨 일만 생기면 바람같이 나타나 구해준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이야기는 그보다 좀더 복잡하다. 오오도이는 아키라에게 얹혀 살면서도 때로 오오도이 파, 즉 자기 집안 일도 해결해야 하는 등 여러모로 바쁜 사람이랄까.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근데 솔직히 말해서 난 아무일도 안하는 남자는 너무 싫다. 가끔 힘든 일을 해결하긴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일은 해야하지 않나. 야쿠자 일이 싫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난 오오도이 마코토보다 그의 동생 코지가 더 멋있더이다. 코지가 처음 등장해 선글라스를 벗는 순간, 올레! 하고 외쳤다오. 우와아앗, 진짜 잘 생겼다. 게다가 성격도 화끈하고 남자답다. 물론 야쿠자이긴 하지만. (만화니까 납득할 수 있다) 또한 자신과 핏줄이 이어지지 않은 형을 위해 결단을 내리는 장면에서는 새삼 반해버렸다. (꺄~~)

표지부터 핑크핑크, 제목도 슈거가 들어가서 엄청 달달하긴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아서 오글오글하지는 않다. 이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참 힘든데 작가는 그 선을 잘 지켜서 웃기면서도 달달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게다가 오오도이의 애정표현이, 아흑, 넘 좋아. 고런 애정표현을 하는 남자는 나도 참 좋다. 역시 일을 하기 싫어하는 것에서 무지 걸리지만 개를 좋아한다는 것에서 조금 용서를... (개인의 취향)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살인미소를 가진 남자이지만 평소에는 구리구리, 애정표현도 달달해서 부러울 정도지만 때로는 너무 서툴러서 그 갭이 귀여운 남자 오오도이와 사람 좋기로 말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순진무구 귀염댕이 아키라의 러브♥러브, 즐겁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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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정말 재밌게 봤어요! 역시 나츠메 이사쿠님이라면서 웃었습니다.
정말 표지만으로도 훅 한다니까요. ㅋㅋ
근데 데레데레는 뭔가요? 귀축은 대충 감을 잡았건만 아직 다른 여타 단어들은 아리쏭합니다. ㅎㅎ

스즈야 2011-04-11 01:22   좋아요 0 | URL
ㅋㅋ 근데 이게 나츠메 이사쿠의 다른 작품에 비해 별로라는 분도 많이 계시더군요. 솔직히 저도 다른 작품보다는 좀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나름 재미있게는 읽었습니다.
데레데레는 우리말로 하면 헤실헤실 풀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마코토가 뭘 해도 빙글빙글 웃기만 하고,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스토리콜렉터 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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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이라면 우리는 먼저 어떤 것을 떠올릴까.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아픔은 반으로 기쁨과 행복은 배로 만드는 곳이란 것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아파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세상, 그리고 이웃이라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많은 세상이라면 작은 마을에서 이웃들과 정답게 지내는 것이 꿈인 사람도 많을 듯 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가족만큼이나 잘 아는 분위기란 것이 늘 좋을수 만은 없다. 어떻게 보면 서로의 약점을 쥐고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독일의 작은 마을 알텐하인. 이곳은 강한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수백년전부터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모인 곳인 만큼 이웃집 밥숟가락이 몇개인지, 저녁 반찬은 뭐였는지를 다 알고 지낼 만큼 사람들 사이가 가깝다. 하지만 이곳에서 벌어진 11년전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이곳에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자토리우스 일가는 하루아침에 풍비박산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여고생을 죽인 범인이 자토리우스 집안의 토비아스란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10년 형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토비. 하지만 이제 그곳은 더이상 그가 예전에 알던 곳이 아니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이 토비를 적대시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묘하게도 토비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한 사건들이 연속해서 발생하기 시작한다.

돌아온 토비에 관심을 갖게 된 여고생 아멜리는 토비 사건에 대해 몰래 조사하기 시작하고, 11년전 사건의 희생자의 한 사람인 로라의 유골 발견, 토비 어머니에 대한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하면서 경찰 역시 다시 이 사건의 재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과연 11년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이 마을은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이런 말이 진부하긴 하지만 정말 책을 읽는 내내 손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달까. 중간에 읽다가 내려 놓는다면 아마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잠도 오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얽히고 설킨 관계인지, 등장인물 수가 하도 많아서 첨엔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지나자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일단 등장인물 대부분은 알텐하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고, 알텐하인 주민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다. 작은 마을의 특수성 때문인지 외부인인 경찰관계자들에 대해 적대적이고 진실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진범에 대해서는 종잡을 수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인물 전부가 사건관계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에 얽혔는지, 그 배경은 무엇이며 동기는 무엇인지도 꽤나 복잡했다. 이런 미스터리 작품에서 중요한 건 범인과 동기인데, 사실 이것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배배 꼬여 있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접하는 정보를 종합해서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진실에 조금씩 근접할수록,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그리고 그 동기가 드러날수록 점점 놀라움은 커진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복잡한 동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건은 사건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얽힌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숨기는 과정도 복잡해지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까지 깔끔하게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데도 깔끔한 구성으로 미스터리 작품을 쓴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 아닐까 싶다. 또한 여느 미스터리 소설처럼 사건의 해결이 단 몇 십 페이지로 압축되지 않는 것도 특징인데 수백 페이지에 걸친 해결 과정은 그 자체로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제나 저제나 해결되려나 아니려나 하고 전전긍긍하게 만든달까. 탐정이 나오는 경우 한 번에 샤악 해결하는 결말이 많지만 여기에는 경찰이 등장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과정에 따른 해결방식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간다. 그래서 좀 더딘 면은 있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무척 흥미롭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졌던 것은 역시 경찰인 보덴슈타인 형사이다. 이 보덴슈타인 형사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던 자신의 가족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다. 다른 집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내 집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보덴슈타인의 심리 변화도 무척 흥미롭다. 좀 마음에 안들었던 건 역시 토비의 성격이다. 11년전 만취상태에서 기억을 잃었던 그가 이번에 또다시 만취해서 범인으로 몰리게 되니까. 10년동안 감옥에서 충분히 그 일에 대해 반성을 했어야지. 바보같긴, 이런 생각이 들었달까. 여성캐릭터의 경우 강인한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아멜리도 그렇지만, 형사 피아, 카트린도 그렇고 나디야의 캐릭터도 무척 흥미롭다. 여성 작가라서 그런지 여성 캐릭터의 심리묘사도 뛰어나다. 여성들의 미묘한 심리랄까, 그런 게 잘 반영되어 있다.

작은 마을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촘촘하게 얽힌 인간관계, 각각의 가족이 감추고 있는 비밀, 사건에 대한 은폐와 조작, 그리고 당시 독일의 사회문제 등이 결합된 미스터리인『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워낙 동기도 복잡하고 사건에 얽혀 있는 게 너무 많아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책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선택했을 때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책이란 것.

난 독일문학하면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자주 읽지는 않았고, 독일 미스터리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독일이란 나라가 주는 이미지와 미스터리가 주는 이미지가 매치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독일에서 나온 미스터리는 미스터리라도 철학적일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달까. 그걸 완전히, 완벽하게 깨뜨려준 것이 바로 이 작품『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다. 단 한 권으로 단정내리긴 너무나도 조심스럽지만, 그녀의 책이라면 앞으로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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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 뉴 루비코믹스 1042
토지츠키 하지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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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묵직한 느낌을 주는 제목에 표지그림도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이 책을 읽을까 말까 했는데 읽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 올레! (요즘 올레! 남발이로군요) 근데 정말 괜찮은 작품이라서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작화는 뭐랄까, 소년만화 풍이지만 감성이 아주 풍부한 작품들이었다. 아, 단편집입니다. 이런이런.. (笑)

좋아한다는 게 뭘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기도하는 말>은 순수한 한 청년과 섹스중독자 남자 사이의 이야기인데, 사실은 나도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의하라는 말을 들으면 말끝을 흐려버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좋아한다는 건 상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하는 타네와 자신은 좋아한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겠다고 말하는 켄지.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해는 오해의 전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말도 공감이 간다. 하지만 상대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이 전해졌으면 하는 진심이 바로 좋아한다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간절한 기도의 말처럼.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인 나나쿠보와 하치야는 <나나하치>란 별명으로 불렸다. 나나쿠보에게 있어 하치야는 함께 있으면 즐겁고 늘 함께 하고픈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치는 나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후 숨어 버렸다. 몇 년 후 동창회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아, 이런 느낌 참 좋다. 사실 동성에게 고백받고 금세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껄렁껄렁해 보이는 나나의 마음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까를 가만히 생각하면 이 관계는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 오는 산길의 오두막>에서는 제일 웃겼던 에피소드였다. 제자를 짝사랑하던 한 선생님이 눈오는 날 산에 올랐다가 산장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선생님 입장에선 처절한 고백이었겠지만, 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묘지의 키타로 같은 머리형하며...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애같은 면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봤던 작품. 

<슈거 프리>는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끈적하지도 애절하지도 않은 슈거 프리 커피처럼 담백함이 좋았던 작품. 

표제작인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올 뻔 했다. 중간중간 유머코드에 웃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 찡한 작품이었달까.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은 유키오가 자신의 친구가 살아가는 모습을 평생 지켜보는 설정인데, 이미 죽은 사람인지라 자신을 잊어달라고 기도하는 유키오와 평생 유키오를 마음에 담은 채 살아가는 신고를 보면서 울컥울컥했다. 정말.

마지막 작품인 <사이언스 오브 고스트의 로망>은 미묘한 시간축의 겹침으로 인한 인연의 시작을 담고 있는데, 이 또한 꽤나 독특한 작품. 

여섯편의 단편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마음에 들었지만 역시 제일 마음에 든 건 표제작인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였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정말이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감성이 풍부한 작품들인데, 야마시타 토모코의 초기 작품을 보는 느낌도 들었달까. (요즘 이분은 순정쪽으로 돌아섰는지 예전 느낌이 별로 안나서..) 또 한가지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캐릭터가 힙합 캐릭터란 거. (여성이나 꼬맹이도 마찬가지) 그래서 혹시 남성 작가인가 하는 생각도 했는데 아직 확인이 안되고 있음.

이 작가. 진짜 마음에 든다. 다른 작품도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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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야마시타 토모코님 초기 작품의 느낌입니까?!
위에서 쭉쭉 리뷰 읽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설렜는데 야마시타 토모코님의 이름까지!
방금 장바구니 비우고 왔는데 스즈야님 서재 들렀다가 비울 걸 그랬어요 ㅠ ㅠ
그런데 힙합 캐릭터라니.. 이거참 ㅋㅋ

스즈야 2011-04-11 01:23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꼈습니다. 다른 분은 콘노 케이코의 초기작같다고도 하지만요.. ^^ 이거 개인적으로 강추하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작화가 소년만화풍이긴 하지만.. 뭐 스토리가 받쳐줍니다. ^^
 
꽃은 피는가 2 - 코믹 라르고 Comic Largo
히다카 쇼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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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대 중반의 광고기획사 직원 사쿠라이 카즈아키는 어느 날 퇴근길에 한 남자와 부딪힌다. 그는 미대생으로 이름은 미나가와 요우이치, 불손하고 무뚝뚝하며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이 없는 듯한 청년이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이들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우는 사쿠라이에게만은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뭐 관심이라고 해도 불퉁하게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지만, 요우와 함께 살고 있는 사촌들인 쇼타와 타케는 요우의 그런 변화도 반가운 모양이다.

사실 요우는 그 나이또래 답지 않게 애늙은이 같다. 감정 표현도 거의 없고 말도 없으며 세상과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컸던 탓인지, 요우는 아버지의 그늘, 어쩌면 아버지의 망령을 등에 업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카시와기나 하숙집 일을 돌봐주는 요시토미 역시 자신들이 요우의 세상을 너무 좁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다.

사쿠라이는 요우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져만 간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에 대해 혼란스럽기만 하다. 왜 아니겠는가. 서른 중반이 넘도록 노말로 살아왔던 그가 자신보다 약 스무살은 어린 남자에게 끌리게 되었으니.『꽃은 피는가』2권은 요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어쩔줄 몰라하는 사쿠라이와 스스로는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 사쿠라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차츰 깨닫게 되는 요우의 심리 변화가 매우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사쿠라이와 요우를 따스하게 바라봐 주는 쇼타나 타케, 그리고 주변 어른들의 모습도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 준다.

이 작품은 진행이 좀 느린 편인데, 이게 오히려 사쿠라이와 요우라는 캐릭터의 성격에 딱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메말랐던 마음, 주변에 담을 쌓고 살았던 나날들이 그리 쉽게 무너지겠는가. 또한 사쿠라이 역시 울컥 하는 성격은 있지만 몹시도 조심스러운 사람이라서 요우에게 다가가는 것을 많이 망설인다는 게 티가 난다. 마음가는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요우가 아직 모든 면에 미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고 해도 될 요우니까. 그래도 때때로 보이는 요우의 어린애같은 모습 - 정확히 말하면 그 나이또래의 모습 - 에 미소가 지어지긴 해도 역시 요우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몹시 조심스럽게 대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음... 몹시도 소심한 사쿠라이와 요우 사이에 불청객이 하나 끼어들었다. 후지모토라는 청년으로 요우와 같은 과의 학생인데, 이 녀석은 방해꾼까지는 되지는 못할 운명인듯. 그도 그럴 것이 후지모토가 요우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요우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사쿠라이나 요우나 자신의 마음속에서 한발짝도 더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거니까. 허파에 바람이 약간 든 녀석이긴 해도 내가 보기엔 사쿠라이와 요우를 이어주는 끈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뭐 내 바람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은 메마른 땅에 봄비가 내리는 정도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랄까. 하지만 보슬비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속까지 적신다. 두 사람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작가 후기를 보니 3권에서는 좀더 진전이 있을 거라는 데, 그렇다면 3권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겠군요, 작가님. 이런 페이스의 작품도 느낌이 좋아서 괜찮지만, 1년에 한 권 씩이란 말에 좌절을 좀... 그래도 어쩌랴, 그렇게 된다니 그냥 기다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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