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의 저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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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인『명탐정의 저주』는『명탐정의 규칙』과는 달리 장편으로『명탐정의 규칙』보다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파고든다.『명탐정의 규칙』 은 추리소설의 트릭을 중심으로 그 트릭을 해부하는 면에 치중했다면,『명탐정의 저주』는 트릭보다는 추리소설, 특히 본격추리 소설이란 장르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은 추리소설에도 다양한 개념과 장르가 존재하지만 역시 원류는 본격추리소설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본격추리는 올드한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물론 본격추리소설을 계승하는 신본격추리소설 작가들이 등장해 본격추리 소설의 재미를 재음미하게 만들어주고 있지만, 정작 본격추리소설의 원류인 작가들은 현대에 있어 독자들에게 무시되어 오는 경향이 있다. 물론 본격추리라는 장르 자체도 마찬가지지만. 

본격추리소설은 범인의 정체와 동기를 중심으로 밝히는 장르로 수수께끼 풀이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동기보다는 트릭이 얼마나 절묘하고 멋진가에 중심을 둔 소설들이 더욱 인기가 많다. 사람 죽이는데 이유가 있어? 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요즘 현실을 돌아보면 이유없이 사람을 죽이는 무차별살인자가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사이코패스가 아닌 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트릭과 범인의 동기가 멋지게 조화되어야 더 멋진 추리소설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의 미학'이라고 말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추리소설에 있어서는 추리소설만의 미학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트릭에 중점을 두는 소설이 싫다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추리소설의 원류인 본격추리소설이란 장르를 올드하다는 이유로 배제하거나 무시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트릭과 동기, 그리고 탄탄한 짜임새등 세부적인 것들이 제대로 충족되어야 한다. 이건 시리즈 1권인『명탐정의 규칙』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진부함에 대한 칼날같은 비판이었으니까.

이 책의 프롤로그를 보면 요즘 본격추리소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잘 나온다.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는 미스터리 소설가로 본격추리소설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내리고 있는 사람이다. 그가 도서관에 갔다가 그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들어간 수수께끼의 마을. 그곳에서 작가는 탐정 덴카이치가 되어 그곳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을 해결하게 된다. 이 마을 자체가 수수께끼인데 읽다 보면 대충 감이 온다. 그리고 이곳이 어떤 세계인지도 감이 온다. 이 세계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데, 약간은 판타지 풍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과 그 사건의 트릭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치고는 트릭이 평이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는데 역시 이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트릭이 조잡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본격추리 트릭의 기본에 아주 충실하다. 밀실, 인간소실 등 트릭도 재미있지만, 살인사건의 원인 즉 모든 사건의 동기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런 동기는 다른 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을 듯 하다. 하여튼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다. '무언가가 결여된 마을'의 비밀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덴카이치가 해결하는 연쇄살인사건과 마을에 숨겨진 비밀은 미스터리 독자들이 잊고 사는 어떤 것에 관한 것이다, 라고도 할 수 있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사회파 추리소설 등의 매력과는 다른 본격추리소설만의 매력이랄까. 이 작품 속에서는 사회파 추리소설을 언급하면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이야기라 말해진다. 인간 본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때문에 발생하는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사람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회적 병폐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은 당연히 사회적 문제에 초점이 맞춰질 수 밖에 없고, 개인의 존재와 개인의 고통은 어느 정도 묻힐 수 밖에 없다.

그런 반면 본격추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범행 동기가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다르게 말하면 사람을 향한 미스터리라고 할까. 즉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가 주로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 범인을 추리해내기가 어렵다. 개인적인 동기인데 공감이 갈까, 하는 생각도 들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본격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범인의 감성에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범인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달까. 아, 그렇다고 이 작품이 사회파 미스터리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의도로 집필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런 소설이 있으니 사람의 내면을 다룬 소설도 필요하다고 느끼게 만든달까.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세부 장르는 각각의 매력이 존재한다. 무엇이 월등하고 무엇이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나 역시 반성을 하게 된다. 미스터리 팬이라고 하면서 기막힌 트릭에만 초점을 맞춰 책을 읽어온 것은 아닐까 하는. 각각의 장르의 특성에 맞는 장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에 맞춰 책을 읽고 평을 내린 건 아닌가 하는. 어쩌면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란 작가의 개인적인 반성과 차후의 작품구상에 대한 각오, 그리고 본격추리장르를 무시하는 독자와 본격추리장르를 올드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소수의 작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전작인『명탐정의 규칙』은 어느 정도 유쾌한 느낌이 있었으나,『명탐정의 저주』는 읽으면서 아찔한 생각마저 들게 된 작품이다. 본격추리가 없는 세상,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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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로 가자 3
츠다 마사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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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막부가 세워진지 405년이 지난 에도시대. 하타모토인 사쿠라이 키오우는 아버지의 유언으로 배다른 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소우비. 처음에는 그냥 도와주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의 소우비를 에도로 데려오게 된다. 소우비의 에도 생활도 어느덧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나름대로 에도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가며 친구들도 많이 사귄 소우비. 그중 고산케 미토가의 후계자 미치사토와는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에도로 가자』3권에는 총 다섯편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첫번째 에피소드는 일본의 국기인 스모와 관련된 내용으로 외국인 스모 선수 니콜라이가 등장한다. 스모 훈련이 고되어 도망치고만 니콜라이와 그를 훈련시키는 스모선수 덴로의 이야기는 짤막하지만 일본인들이 스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스모 선수의 등급과 스모 경기장에 관한 내용도 토막지식으로 실려있다. 나같은 경우 일본인이 아니다 보니 스모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것을 통해 조금이나마 스모에 대해 알게 되었달까. 그래도... 역시 스모는 별로 안좋아하지만.

두번째 이야기는 꽃보다 남자 에도판(?)이라고 해야 하나. 도련님 미치사토를 동경하는 아가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미치사토와 소우비가 어리기 때문에 서로 좋아한다, 뭐다 하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거나 사와가 소우비의 라이벌이 될 공산이 커진 것이다. 평소에는 그냥 친구처럼 지내는 도련님이었지만 사와의 등장으로 소우비의 색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달까.


 

바로 이 장면!!! 3권에서 가장 두근두근 하면서 지켜봤던 장면이다. 이 부분은 미치사토가 사와와 친하게 지내자 소우비가 미치사토에게 사와와 함께 가지 말라고 붙잡는 장면인데, 내가 왜 두근거려야 하냐구! 뭐랄까. 그림상으로 보기엔 남자애가 여자애를 붙잡는 듯 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머리 짧은 미소년 타입이 소녀인 소우비이고, 머리가 긴 미소녀 타입이 도련님인 미치사토. 사실 내가 이 장면을 보면서 두근거린 이유는 나도 소우비처럼 미소년에게 저러고 싶어서!? (푸핫, 또다시 망상을. 사실 이 작품이 곳곳에서 BL삘이 좀 나잖우~~~)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미치사토는 소우비에게 약간 겁을 먹었다나 뭐라나. 미치사토, 역시 아이였구나. (그래도 어쨌거나 소우비는 미치사토에게 약간은 마음이 있다는 게 드러난 증거처럼 보여서 흐뭇하기만 한 독자입니다) 근데 둘은 신분이 달라서.. 에휴... 그래도 뭐 벌써부터 걱정할 일은 없나.

세번째 에피소드는 학교 체육대회 이야기이다. 농민반, 무사반, 상민반 클래스로 나위어지는 학제. 소우비와 미치사토를 비롯 그외의 아이들은 모두 무반이다. 무사의 후예이기 때문. 다양한 스포츠와 장기 자랑으로 즐거운 체육대회!

네번째 에피소드는 2권에도 나왔던 붉은 까마귀 뒷이야기이다. 세상에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무사의 집을 습격, 그들을 망신주던 일이 점점 더 커져 살인행각까지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들을 잡기 위한 마치부교의 작전과 소우비와 슈로의 우정도 예뻤던 에피소드. 이 에피소드에서 키오우의 멋진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역시 일하는 남자는 멋지다! (촌마게만 빼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파리에서 온 미치사토의 친구 이야기이다. 백작 에르네스트와 그를 모시는 플로랑스가 등장하자마자 또 웃음이. 아, 이 작품은 대체로 여성 캐릭터가 늠름하구나. 소우비를 비롯 사와도 그렇고  플로랑스까지. 너무 늠름해. 뭐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미치사토가 너무 예쁘니까 다른 여성 캐릭터는 늠름할 수 밖에 없나? 난 미치사토의 늠름해진 모습도 얼른 보고 싶은데. 얼른 커주길 바래, 미치사토 도련님. 간만에 여장(?)을 한 소우비의 모습도 볼 수 있었던 에피소드. 소우비도 얼른 커야 미모가 빛을 발할텐데, 아직은 미소년 타입이라 쬐끔 아쉽고나.

짤막짤막한 에피소드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에도로 가자!』3권은 늠름한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이 무척 흥미로웠다. 소우비는 늠름보다는 예쁘게 커줬으면 하고, 오히려 미치사토가 늠름해졌으면 좋겠는데, 어찌될지... 중간중간 BL삘이 나는 장면이 있어 흐뭇하기도 했던 3권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54~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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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 2 - 도쿄 나이트메어(절판 예정)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진수 옮김, 카키노우치 나루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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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집안, 학벌. 뭐하나 빠지지 않는 여성경찰관료 야쿠시지 료코 경시. 그녀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방약무인, 안면몰수, 안하무인이란 나쁜 성격이겠지만 그것을 스스로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으니 주위 사람이 아무리 성격이 나쁘다고 우겨도 소 귀에 경읽기나 다름없다. 경찰이란 권력을 남용해서 수사할 권리를 갖는 것이고, 그녀보다 높은 곳에 있는 상사들은 그녀가 저지른 짓을 수습하고 덤터기를 쓰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 뿐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야쿠시지 료코를 거스를 자는 아무도 없다. 오죽하면 드라큘라도 피해간다는 말의 준말인 '드라피해 료코'란 별명도 있을까. 내가 보기엔 드라큘라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추종하는게 맞을지도. 료코에겐 마성(魔性)이 있으니까.  

각설하고. 본편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행복가득한 결혼식장이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하늘에서 시체가 뚝하고 떨어진 것이니. 그리고 하늘에는 수상쩍은 그림자가... 야쿠시지 료코와 그녀의 충실한 종복(?)인 수상한 그림자를 쫓는다. 하지만 수사에 제대로 착수하기도 전에 경찰 조직 내에서 압력이 들어온다. 물론, 야쿠시지 료코는 그런 것에 신경쓸 사람이 아니다. 일단 수사하고 싶으면 한다는 주의니까. 야쿠시지 료코는 자신의 아버지 회사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사건 수사에 나서는데...

이 에피소드에서 재미있는 건 역시 료코와 유키코의 연합이다. 서로 앙숙일대로 앙숙인 사이가 이번 만큼은 협력체제에 돌입한다. 극과 극인 성격의 두 여성을 한번에 보는 것도 또하나의 재미였달까. 게다가 물에 폭삭 젖어서 기묘한 분장까지 해야했던 유키코를 생각하면, 솔직히 안되기도 했지만 웃음부터 난다. 그런 똑부러지는 여성이 망사스타킹에 등등등이라니. 이번 에피소드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을 유키코의 모습이다. 또한 재키라는 여장남자의 존재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 역시 고급관료였다니. 도대체 료코의 마수(?)는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일까. 정말 마성의 소유자야.

도쿄 나이트메어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 환수들이 대거 등장한다. 히드라, 에키드나, 고르곤, 미노타우로스까지. 어허참, 도쿄 어느 구석에 숨어 계시었소, 다들. 어쨌거나 2권 토쿄 나이트메어는 수상쩍은 재무성 미타 분실의 비밀을 캐내는 동시에 그곳에 몰래 침입해 진실을 파헤치자는 료코의 주장대로 료코, 이즈미다, 유키코, 레오콤 네명은 재무성 미타 분실 통칭 판데모니움으로 들어가 벌이는 이야기이다.

근데 환수가 등장한다는 건 그걸 부리는 사람이 달리 존재한다는 것. 즉 흑마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등장한다. 일본인 흑마법사라는 게 좀 비디오상으로 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대충 납득했소. 근데 도대체 그런걸 다 꿰뚫어보는 야쿠시지 료코가 난 더한 마법사로 보이니... 그랜드 마스터급 마법사? (푸힛, 별 생각을 다하는군, 나도)

여전히 료코의 성격은 변함없고 -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신념이 있어, 암만 - 이즈미다 경부보가 고생하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분위기 좋은 그런 모습도 보이기도. 특히 인간의자로 이즈미다를 활용하는 걸 보면서 혹시 료코가 이즈미다를 남성으로 마음에 들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지만, 료코의 성격상 절대 그럴리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져 본다. (그럼 이즈미다는 더욱더 고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경찰이 등장하는 노벨이다 보니 일본 경찰을 잘근잘근 씹어주시는 전개도 역시 변함없다. 오히려 이것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같은 밥을 먹고 사는 동료일테지만 파벌과 소속으로 나뉘어 으르렁대는 꼴이라니. 일본 경찰의 능력에 비해 검거율이 떨어지는 것이나 미해결 사건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란다. 하긴 1편 마천루편도 보면 고급 경찰 간부라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는 회의주의자로 나왔으니 말 다했으려나. 그래도 이렇게 통쾌하게 씹히는 걸 보니 기분은 참 좋더이다.
다음 이야기는 파리가 배경인 모양인데, 야쿠시지 료코가 파리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인가? 그럼 혹시 이즈미다는 안나오는겨? 난 이즈미다 무척 맘에 들던데.... 하여튼 3권도 기대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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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의 책 없는 방학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66
힐러리 매케이 지음, 지혜연 옮김, 김영미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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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몹시 자주 아팠던 나는 6살 때 두 번의 입원을 해야만 했다. 그때 외삼촌들에게 선물받은 건 책과 마론 인형이었는데, 그후로부터 난 그 두가지에 집착을 했었다. 바깥에서 잘 놀지 못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입학도 한달이나 늦게 하는 바람에 친구들을 사귀지도 못했고 - 원래 누군가와 잘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 - 그런 이유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했다. 여자아이가 집에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론 인형을 가지고 논다거나 책 읽는 것 밖에 없었다. 그래서 때때로 시골 할머니 댁에 가야 할 때면 굉장히 싫었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었고, 컴퓨터는 커녕 티비도 잘 안나오는 깡촌에서 내가 즐겁게 놀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가용이란 개념도 없었을 때라 한시간 정도에 한 번 오는 복작복작한 버스를 타고 시골집 근처에 내려서 또다시 20분정도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이니 인형이나 책같은 건 가지고 갈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다.

결국 난 시골에 갈 때마다 툴툴거렸지만, 어느 정도 적응을 한 후에는 시골에서 즐겁게 놀곤 했다. 모험이랍시고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타거나 바위에 올라가거나, 잠자리나 개구리를 잡거나 등이 전부였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그 추억들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라면 어느 정도 시골에서 지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맨발로 흙도 밟아 보고, 봄여름에는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들을 보고 곤충도 관찰하고 처마밑에 둥지를 지어놓은 제비도 구경하고, 논에 낳아 놓은 개구리알도 구경하고 올챙이도 구경하고, 때로는 우렁이도 잡고 강가에 가서 피래미 낚시도 하고. 가을이면 누렇게 여물어가는 곡식을 보기도 하고 빨갛에 익어가는 사과며 감, 그리고 툭툭 떨어지는 밤을 줍고, 겨울이면 비료포대에 짚을 가득 넣고 뒷동산에서 눈썰매도 타고. 짤막짤막한 시골행이었지만 그 시간을 난 엄청 즐겁게 보냈다. 요즘은 이런 것들이 좀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자연과 시골의 자연그대로의 자연 풍경은 전혀 다르다. 

루스, 나오미, 레이첼 그리고 피비와 네자매와 이들이 여름방학을 보낼 곳에 계신 왕할머니는 이 책의 주인공이다. 책벌레에다 하나같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건방지며 반항적인 네자매는 어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애들이다. 어른이 한 마디를 하면 열마디로 대꾸하지를 않나, 예의도 없고, 사고치는 데는 일등이다. 여자애들인데 이거 남자애들이나 마찬가지 아냐, 싶을 정도다.

이런 네자매가 여름방학동안 왕할머니(실제로는 외할머니) 댁에 가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 네자매에게 비상이 걸렸다. 어떻게든 안가려고 버티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으로 간 네자매는 왕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기만 하다. 게다가 그곳엔 네자매가 좋아하는 책이 한 권도 없다니! 도대체 6주나 되는 긴긴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내란 말인지.

처음엔 불만으로 가득 차 뭐든 시큰둥했던 네자매는 등산, 바닷가에서의 수영, 동굴탐험 등 자연을 가까이 하는 모험을 하면서, 그리고 그곳에 있는 또래 소년과 어울리고 티타임 파티에 초대받는 등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점점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동물뼈 모으기를 좋아했던 루스는 자신이 케이크 만드는 데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늘 구석진 곳에 숨어서 책읽기만 즐기던 나오미는 밭을 갈고 채소를 가꾸는 일을 통해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배운다. 레이첼과 피비 역시 야외활동을 통해 활동적인 또래 아이로 변하게 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분명 권장할 만한 일이고 책에서 배우는 것도 무척이나 많다는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분명 있게 마련이고, 직접 자연을 접한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네자매는 분명 책읽기는 좋아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 예의, 그리고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것은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6주동안의 여름방학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을 익혀나갔다. 물론 처음엔 왕할머니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고, 빈번하게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사고를 치던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을 수 있는 일을 했다는 것이 가장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또한 이 네자매가 나중에는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싫을 정도로 시골 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에는 가기 싫어했던 할머니댁이고 만나기 싫었던 할머니지만 할머니와 손녀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미운정 고운정이 폭폭 쌓여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또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네자매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하지만 역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자신들밖에 모르던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이 책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이랄까.

네 자매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많이 떠올려봤다. 물론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추억들은 행복했던 시절이란 꼬리표를 달고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그건 아마 이 네자매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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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장미빛이다
혼마 아키라 지음, 손해정 옮김 / 인디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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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표지만 봐도 답 나온다. 리맨물! 내가 좋아하는 리맨무울~~~ (유후~)
음.. 그러고 보면 이제껏 읽은 혼마 아키라의 작품 중에 평범한 회사원이 등장하는 건 이게 유일할지도!? 전작에서는 각각 마피아, 야쿠자, 의사, 검사 등등이 나왔다. 의사나 검사도 봉급쟁이들이긴 하지만 전문직에 속하니까 살짝 제외하면 정말이지 진짜 일반인, 회사원은 첨이다. 두근두근두근~

거대 보험 회사 영업부 직원인 미야모토는 상관인 히무로 부장을 짝사랑하지만 드러낼 수도 없는 처지. 그도 그럴 것이 우연히 회사 사장이 히무로의 전(前) 애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를 못잊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그 첫번째 이유고, 두번째 이유는 아무래도 실적같은 면에서 성과를 잘 올리지 못하는 불량 사원이기 때문이기도 하렷다. 리맨이라면 역시 일 잘하는 리맨이 최곤데, 쩝. 그런 면에서 미야모토는 좀 자격이 부실하달까. 그래도 꽤나 성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지만 회사는 아무래도 성과가 중요하니까.

불타는 짝사랑의 나날을 보내는 미야모토는 외국에 나가있던 사장이 잠시 귀국해 히무로를 미국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미야모토에 라이벌 의식을 살짝 느끼고 있는 사장은 히무로와 있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어필한다. 그 모습에 충격받고 몸져 누운 미야모토. (근데 미야모토군, 당신의 유일한 무기는 강철체력이 아니었소?) 미야모토를 문병 온 히무로는 열에 달뜬 미야모토에게 자신의 마음에 담아둔 마음을 고백하지만 미야모토는 그게 모두 꿈인줄 안다. 그렇게 아차! 하는 순간에 사장에게 히무로를 빼앗길 뻔한 미야모토였지만, 진상을 알게 된 후 히무로를 붙잡는데 성공, 둘은 그후로 비공식(?) 연인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도 얻었겠다, 순풍만범의 나날을 보낼 줄 알았던 미야모토. 하지만 히무로를 노리는 사람이 또 있었을 줄이야. 일과 사랑에 있어서의 새로운 라이벌 등장은 미야모토에게 큰 압박을 준다. 게다가 커다란 일거리를 맡겨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라는 히무로. 미야모토는 제풀에 사표를 던지려고 하지만 히무로의 말에 마음을 돌린 후 자신의 능력을 히무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음험한 라이벌의 꿍꿍이에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인생은 장미빛이다』는 토끼 남자, 호랑이 남자 풍의 코믹한 작품이다. 물론 그것보다 덜 웃기고, 미야모토의 성공이 운이 너무나도 많이 따랐다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꽤나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히무로만 보면 헤실헤실 정신줄 놓고 사는 바보같은 미야모토를 보는 건 좀 고역이었지만, 나름대로 귀엽긴 했다. 또한 차가운 유리인형같은 히무로는 전형적인 쿨뷰티 타입이랄까. 히무로가 마음에 든 이유는 딱 하나다. 미야모토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 그리고 약속을 믿는다는 것. 물론 미야모토가 핀치에 몰렸을 때는 돌아서려고 갈등하긴 하지만 대체로 심성이 곧은 남자라서... 약해 보여도 꽤 강하단 말이지, 이런 타입은. 어쨌거나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만 성공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기회와 운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미야모토만의 능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캐릭으론...아, 그 영감님 참 멋졌어. 게다가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서 열쇠까지 준비해주시는 센스~~ (푸하하하핫) 그리고 미야모토의 동기 사원인 그 남자. 이름이 안나왔던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도 꽤 괜찮은 캐릭이었지. 영감님의 비서도 괜찮았고... 딱 하나 아오키만 재수없었지. 사장도 나름 괜찮았으니.

매력적인 캐릭터와 중간중간 빵빵 터지게 만드는 유머 코드. 스토리 자체는 좀 올드한 편이지만 가벼운 기분으로 읽는 데에는 아주 적합한 만화였다. 아, 근데 궁금한 거 하나. 혼마 아키라의 캐릭터는 앞머리가 눈을 죄다 가리거나 이마를 훌떡 까거나 둘 중 하나인가... 이마를 훤하게 드러낸 미야모토, 적응이 좀 안됐다나 뭐라나. 하여튼, 귀엽고 즐겁고 유쾌한 사랑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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