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힐 on the hill 1
장어진 글 그림 / 코믹트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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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30대 중반인 나는 남들이 보기엔 참으로 암울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을 그만 둬버려서 백수로 살고 있지, 연애는 커녕 밖에 거의 밖에 나가지도 않는 반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지, 운동은 체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피하고 있고, 시험을 앞두고 있어 일상이 공부가 되어야 할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공부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 나지만! 이런 나지만, 나도 20대 때는 달랐다. 꿈도 많았고 희망도 많았달까. 이십대 때의 나의 목표는 일, 사랑, 공부, 운동, 이 네가지를 모두 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완전 성공이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어느 정도 목표치에 접근한 생활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숨이 헉헉거릴 때였는데 어떻게 네가지를 동시에 했었는지 본인이 생각해도 신기하다. 20대의 열정과 패기란 것이 살아 있었기 때문일까. 그래서 때때로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몸부림치지만, 시간은 꾸준히 앞으로 흘러만 갈 뿐, 거꾸로 흘러주지는 않는다. 아, 야속한 세월이여~~

그래서 그런지 20대들이 나오는 만화를 보면 참 부럽다,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반면 제자리를 못잡고 방황하는 것들(?)을 보면 뒷통수라도 한대 갈기고 싶은 생각도 든다. (우와, 과격! 그래요, 저 과격한 인간입니다)

『온 더 힐』을 읽으면서 난 솔직히 말해 좀 짜증이 났다. 저렇게 좋은 시간을 저따위 것들로 낭비하다니. 뭐 이런 생각이었달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네명의 주인공을 하나씩 살펴 보며 내가 왜 짜증을 내는지 그 이유를 말해 볼까나. 

일단 어린 시절 백돼지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한예슬. 그녀의 성격은 화끈하고 대범, 거기에 플러스해서 누구나 알아주는 주당.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사고(?)를 치고 말았던 것이다. 필름이 확 끊겨 버린 것. 아이쿠야, 나도 20대 때에는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위장에 쏟아 붓던 생활을 해온 건 인정하지만 필름은 늘 집에 가서 끊겼다. 곧 죽어도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줄 놓지 않으려 생쑈를 하면서 집으로 들어가서 필름이 끊겼다. 하지만 멀쩡한 아가씨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모텔에서 눈을 떠!? 솔직히 말해서 난 술을 좋아하는 여자는 싫어하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아무데서나 필름이 끊기는 여자는 질색이다. 그러다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누가 책임질건데? 다행히 이 사고는 무난하게(?) 수습이 되지만, 이 아가씨는 술때문에 나중에 큰 망신 당할 날이 기필코 찾아 오지 싶다. 

한예슬의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이명신(♂)이란 소꿉친구를 아주 자기밥으로 안다. 꼬붕취급도 이젠 그만 하면 안되겠니. 게다가 명신이 게이라는 고백을 하자 박장대소를 하며 친구들에게 소문내기까지.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건 아웃팅이지. 게다가 명신이 친구를 만나는 자리에 나가서 보이는 추태하며... 아, 정말 한예슬 도대체 어쩌면 좋겠니.

두번째는 겉모습도 소녀, 정신연령도 소녀인 김용진(본인은 김세진이라 박박 우긴다). 모태 솔로인 그녀는 미술관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해진이란 사람에게 반한다. 데이트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어라라, 알고 보니 해진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게다가 레즈비언? 미치고 팔짝 뛰고 환장할 일이겠지. 처음으로 반한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니. 뭐 중성적인 매력은 넘치는 캐릭터였지만 그렇다고 아무리 그래도 성인 여성을 남성으로 착각하는 세진의 눈은 뭥미? 세진은 뭐랄까, 몸도 마음도 아직 소녀다. 20대 후반이 되어 용모가 소녀인 것은 분명 축복받을 일이이지만 정신연령이 소녀인 것은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눈을 돌리고 싶은 거 아닌가. 에휴.

세번째는 윤미라는 직딩. 사내연애를 했지만 그 남자가 결혼하는 바람에 솔로가 되었다. 윤미는 성격은 좋지만 눈치없고 입이 가벼운데다 일을 지지리도 못한다. 직장에서 섹시미를 강조하며 대충대충 넘어가는 눈치이지만, 그게 언제까지 먹힐까나. 아니 도대체 직장이란 것의 개념은 있는지.

아, 도대체 왜 이렇게 부실하고 부실한 인간들만 모아서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아마도 아직은 덜 여문 이 아가씨들이 제대로 된 사랑도 하고, 일도 성공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뒷이야기는 뻔한 스토리로 흘러갈 법하다는 예감이 든다. 난 좀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고 그들이 좌절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는 스토리가 좋지 이런 찌질이들이 대략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말해서 별로다. 내 취향은 아닌거지. 요즘 20대 여자애들이 이런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뻔한 캐릭터에 뻔한 이야기는.... 진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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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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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보다 더욱 사실적인 픽션이라고 하면 난 먼저 수용소 문학이 떠오른다. 헤르타 뮐러나 요네하라 마리의 소설을 읽으면서 때로는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 보다 더 지독한 음습함과 절망과 좌절과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걸 보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서 늘 다큐멘터리 형식이나 역사책 형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역사적 사실이라고 해도 그건 사람들의 기억에 남겨진 어떤 것,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온전한 사실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픽션의 형태로 보여지는 것이 떄로는 더욱 직접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작품 속 주인공인 소설가 헨리가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픽션과 논픽션 두가지를 함께 엮여 만든 플립북 출판에 대한 자신의 의지와 그 의지가 출판관계자, 역사학자등에 의해 무참히 깨지는 상황을 통해 잘 보여진다. 헨리는 사람들은 역사적인 사건이라면 무조건 논픽션이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게 정답일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어떤 답도 도출하지 못한 채 헨리는 절필하게 된다. 헨리는 아내와 세계적인 어떤 도시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서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생활에 익숙해져 행복을 느낄 즈음 그는 어떤 독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

소설가 헨리와 박제사

독자가 보낸 편지에는 플로베르의 단편 소설 하나와 희곡이 들어 있었다. 묘한 부분에만 형광펜을 칠해놓은 단편 소설은 동물을 하던 한 남자가 결국 패륜을 저지르고 난 후 종교에 귀의하면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었지만, 헨리의 독자는 유난하게도 동물 학살에 관한 내용에만 관심이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가 보낸 희곡 역시 독특한 매력이 있어 헨리는 그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 나선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박제사. 헨리는 박제사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그의 희곡 내용을 보완해주고 희곡 내용에 대해 토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

헨리와 박제사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정체를 절대 드러내지 않았던 박제사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음습하고 음험한 분위기가 있긴 했지만 설마 그랬을 줄이야. 난 오히려 그가 쓰는 희곡을 보면서 오히려 반대쪽의 인물이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보낸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에서 중요시한 부분이라든지 그가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점점 드러날 수록 역시 엄청난 비밀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은 든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런 희곡을 썼을까.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그가 과거에 대해 엄청난 집착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박제사는 평생을 이 희곡을 써왔다고 하는데 그는 어떤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 아니면 구원? 홀로코스트에 관한 색다른 접근? 박제사를 얼핏 보면 동물에 대해서는 관대해 보이지만 결국 그것도 아니란 것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그가 정말 원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헨리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고통과 공포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즉 헨리만을 위한 홀로코스트이다.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셔츠나라의 등허리 지역에서 쉬고 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이야기는 배에 관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과일 배를 모르는 베아트리스에게 버질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하지만 완벽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결국 말이란 건 모든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듯 보여도 결국 제대로 전해줄 수는 없단 말일까. 그렇게 본다면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무리 많은 이야기가 있어도 단 하나만의 진실은 없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일까.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지독한 배고픔과 공포, 아픔에 시달린다. 이들이 배고픔과 공포, 아픔에 시달리는 이유는 희곡이 점차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당했던 일들, 그들이 목격했던 일들, 그리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닥친 공포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남긴 구스타프를 위한 게임이란 것을 읽으면 미묘한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게임의 내용 역시 홀로코스트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존재하는 빛과 어둠은 차라리 외면해 버리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베아트리스와 버질이 이제껏 겪었던 일은 너무나도 끔찍하지만 서로를 만나게 된 것은 빛의 상징이기도 하다는 걸 떠올려 보면 빛과 어둠은 늘 공존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란 것을 두고 빛과 어둠의 공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하지만 다른 소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홀로코스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알레고리로 존재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읽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고,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것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서술 방법이 홀로코스트란 주제에 과연 효과적이었을까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얀 마텔은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하나의 실험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끔찍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가 아닌 알레고리를 통해 그것을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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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에어 2
박민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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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마법의 원천인 블루에어가 사라지고 다크에어의 시대에 돌입한 페이니아 왕국. 이제껏 마법사들의 힘으로 보호를 받아왔던 페이니어 왕국은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더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지고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마스터 로드 빈센트 자파였다. 이제껏 마법사들이 사용하던 젬스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으나 그가 가진 젬스톤은 다크에어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마법의 원천이 되었다. 결국 페이니아 왕국은 마스터 로드 빈센트 자파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만다. 그는 페이니아 왕국을 돕겠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빈센트 자파의 손에 페이니아의 운명이 걸린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마스터 로드 빈센트 자파 외에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멜로즈란 소년이다. 자파는 멜로즈의 마력을 감지 그를 잡기 위해 용병을 푼다. 그에 대항해 뮤지션 머스테인과 검사 셰난도, 그리고 수인(獸人) 포레스트 프리랜더는 하나의 팀을 이루고 멜로즈를 지키기로 한다. 다크에어 시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될 멜로즈. 그가 죽어버린다면 페이니아 왕국은 정말 빈센트 자파의 것이 되고 말테니까. 

멜로즈는 좀 특이한 인물이다. 굉장히 유악하게 생겨서 여장을 해도 잘 어울리지만 마력만큼은 그랜드 마스터급의 마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모든 마법의 원천인 다크에어도 사라진 지금에도 블루에어를 방출한다. 그가 쓰는 마법은 파이어볼, 아쿠아볼, 윈디, 그리고 플랜티. 아직은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마법을 쓰고 나면 곧잘 쓰러져 버리지만 그의 안에 잠재된 마력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급으로는 마스터 로드급 마법사에 대항할 수 없는데, 설마 멜로즈가 그랜드 마스터급으로 끝나는 건 아니겠지? 멜로즈의 아버지가 만들어준 검에 비밀이 숨어 있을 듯 한데... 아마 이것때문에 멜로즈의 부모가 빈센트 자파에게 살해당했을 것이고. (아직은 짐작이지만, 빈센트 자파가 사용하는 젬스톤은 색다른 젬스톤이란 것과 멜로즈의 검에 사용한 젬스톤 역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니 그런 스토리로 흘러갈 공산이 클 듯)

각 팀의 추격을 받는 멜로즈 수호팀. 그러나 신생팀이다 보니 약점은 있게 마련. 일단 숲에서 만난 슬러터는 멋지게 해치웠지만 팀 무사에게 멜로즈를 빼앗기고 만다. 어허라... 역시 협동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뭉쳐 있으니, 일단은 멜로즈를 구하고 그후 팀워크를 구축하는데 신경을 좀 쓰시오. 안그럼 멜로즈가 또 어떻게 될지... 멜로즈가 그랜드 마스터급 마법사라 해도 아직은 조절을 잘 못하는데다가, 용병 팀 여러명과 맞붙으면 아무래도 불리할텐데... 아, 멜로즈에게 또다시 닥친 위기! 무사해줘, 멜로즈.

이 작품엔 흥미로운 캐릭터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일단 머스테인이나 셰난도를 제외하고 보면 2권에서는 비디치 선생이 제일 재미있는 캐릭터가 아니었을지. 그 영감님 표정이 참.... 멋진 캐릭터는 역시 포레스트 프리랜더. 신비한 숲의 권속인 그의 모습은 외모도 멋지지만 궁수로서의 능력도 참 멋지지... 이들에겐 앞으로 큰 전력이 될 인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당신의 능력을 기대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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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비, 성균관에 들어가다 - 옛날 공부법으로 본 우리 역사 처음읽는 역사동화 2
세계로 지음, 이우창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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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왔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부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보통 우리가 말하는 공부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임하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은 어린이집 - 유아원이나 유치원 - 초등학교 - 중고등학교 - 대학교 - 대학원 등 다양한 단계를 거치면서 공부를 한다. 물론 어린시절에는 놀이와 공부가 병행되는 방법을 쓰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갈 수록 공부를 위주로 하게 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이세로라는 선비를 따라 조선시대의 고등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생활과 옛사람들의 공부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성균관 입학에서 대과 합격까지

부산이 고향인 선비 이세로는 얼마전 성균관에 입학했다. 이곳은 소과에 합격한 사람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수학한 후 대과를 보게 된다. 성균관 생활은 엄격하고 공부는 어렵다. 하지만 입학한 이상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균관 생활을 하면서 세로는 맹윤호라는 유생과 친분을 쌓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된다.

세로와 윤호는 매우 다른 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세로는 호기심도 많고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지만 윤호는 전형적인 모범생 타입이다. 그런 둘이 친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운데 아마도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자신에게 없는 장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어린시절부터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세로는 사고방식 역시 자유로운 편이다. 백성을 위하는 길은 백성들에게 유학의 가름침을 전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백성들을 직접 도울 방법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성균관에서 일을 하는 노비들을 위해 편지를 대필해주거나 그들의 이야기들 들어주는 일도 곧잘 한다. 그런 반면 윤호는 어린시절부터 쭈욱 공부만 해온, 일상이 공부라는 타입인데, 윤호는 무척 똑똑하긴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좁다. 그런 윤호의 세상보는 눈을 넓혀주는 존재가 바로 세로인 것이다. 때로는 사고도 치고, 때로는 잘못도 저지르는 세로였지만 윤호라는 마음 잘 맞는 친구, 그리고 엄격하지만 세로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 스승님 덕분에 무사히 대과에 합격한다.

선비 이세로가 나오는 부분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힌다.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과 성균관에서 배우는 과목들, 성균관의 행사 등 성균관과 관련된 내용이 이야기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성균관 생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

옛 사람들의 공부법

세로가 등장하는 이야기 한꼭지가 끝나면 나오는 것이 옛 사람들의 공부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파트는 세로편과는 달리 약간은 딱딱한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한꼭지 한꼭지가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로 이야기의 정리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세로의 성균관 입학과 관련한 이야기 뒤에 나오는 꼭지는 성균관에서 배우는 학문에 관한 이야기이고, 세로가 다닌 향교와 윤호가 다닌 사부 학당 이야기가 나온 뒤에는 조선을 비롯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학교와 학제에 관한 이야기가 따라온다.

이외에도 독서법, 공부법, 가정교육, 과거제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나온다. 나도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옛사람들의 독서법이란 것에 큰 관심이 갔다. 이이, 이황, 이덕무, 김득신, 정약용 등 우리 조상님들의 실화를 통한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같은 책을 여러번 읽는 독서법은 요즘 사람들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책의 홍수시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한 두번 정도 책을 읽기는 해도 수십번, 수백번을 넘어 수천번 수만번 읽는 책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을 듯 싶다. 하지만 무조건 많이 읽는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많이 읽되 그 뜻을 헤아려 읽지 않는다면 다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옛사람들처럼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 한 번을 읽더라도 그 내용을 충분히 음미하면서 읽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법에서는 암송이란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동시같은 걸 곧잘 암송했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그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일명 빽빽이 공부법을 사용했지만, 지금도 암송이란 것의 매력은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특히 요즘은 외국어 학습도 많이 하는 세상이라 외국어 학습을 할 때만이라도 암송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토론을 즐겨하는 것도 무척 도움이 된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지만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다 보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주입식 교육이 주가 되지만 토론을 통한 사고의 확장은 큰 도움이 된다.

가정교육편을 보면 양반들의 하루 일과가 나오는데 정말 빡빡한 일과로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의 공부뿐 만이 아니라 자녀의 교육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요즘은 외부 교육기관에 아이들을 맡기다 보니 가정교육에 있어 문제점이 많은 세상이 되었다. 기본적인 수양은 가정에서 배우는 것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걸 생각하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독서를 하는 데에도, 공부를 하는 데에도 좋은 요령과 방법이 따로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책을 읽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세로 역시 이에 대해 고민을 한다. 과연 자신은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우리도 늘 그런 고민을 한다. 왜 내가 힘들게 공부를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한다. 중고교 시절엔 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학졸업 무렵엔 좋은 직장을 위해 공부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린 지금은 공부의 목적이란 것 자체가 상실되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공부 자체가 좋아서 공부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하다. 그저 대학 입학이나 좋은 직장, 승진만을 위해 하는 공부가 재미있을리 없다. 물론 요즘 세상에서는 이런 공부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런 공부는 돌아서면 잊어버린다고 할 정도로 무의미해지고 만다. 배움이 주는 기쁨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과거 시험에만 얽매여 하는 공부, 의미도 모르고 외우기도 하는 공부, 이런 공부를 하면서는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없지. 배움이 곧 기쁨이 되고 삶이 되는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일 거야.' (89p)

세로의 말처럼 해야 하니까 하는 공부에서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스스로 배우는 것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한 평생을 공부해도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우리는 공부란 것을 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힘겨운 공부 과정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나서

세로의 성균관 입학에서 성균관 생활, 그리고 대과 시험에 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게 진행되어 쑥쑥 읽혔고, 세로의 모습과 성균관 생활 모습, 그리고 당시 저잣거리 풍경 등에 대한 그림도 무척 재미있게 그려져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또한 각 이야기마다 따라오는 꼭지에서는 좀더 구체적인 설명과 그림이 첨부되어 있어 책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조선시대의 여성들의 배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물론 나 역시 성균관에는 남성들만이 입학할 수 있었고, 과거 시험 역시 양반인 남성들만이 응시할 수 있다는 건 잘 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의 배움에 관한 이야기를 쏙 빼놓는 건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록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미미했을지라도 양갓집 규슈의 경우나 궁녀들의 경우에는 어떤 교육이라도 받았을 것 같은데,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어서 좀 아쉬웠다. 역사와 관련된 책은 대개 남성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책이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동화 형식이지만 역시 좀 그러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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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ra 4 - 러쉬노벨 로맨스 155
Unit Vanilla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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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먼 옛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러 신의 분노를 산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세셴, 아케토 그리고 티티. 세셴과 아케토는 고대 중국, 로마, 중세 유럽, 잉카, 일본의 에도시대에 환생해 재회한다. 비록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도 운명에 이끌리듯 사랑에 빠지는 이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늘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신의 분노는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일까. 티티는 환생이란 것 대신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 수천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이들이 환생할 때마다 환생한 곳을 찾아가 이들의 사랑을 이어주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티티의 바람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셴과 아케토가 이번에 환생한 땅은 역시 일본. 이번에는 시대를 달리 해서 다이쇼 시대에 태어났다. 세셴은 야쿠자의 아들인 류로 태어났고, 아케토는 관동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류에게 구해진 소년쿄스케로 태어났다. 류는 쿄스케를 마치 친동생처럼 돌봐주지만 어느날 쿄스케의 친아버지가 등장하게 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류에 대한 마음이 어느새인가 연심으로 바뀌어 버린 쿄스케는 류와 떨어지려 하지 않지만, 야쿠자로 태어나 야쿠자로 죽을 생각인 류가 그런 쿄스케의 마음을 받아줄리 만무하다. 

이들이 헤어진지 5년, 쿄스케는 이십대의 장성한 청년이 되어 류앞에 다시 나타난다. 류의 입장에선 친동생처럼 돌봐온 쿄스케가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얽히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적대 조직의 우두머리가 류의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는데...

첨엔 도박사라고 해서 세셴이 도박꾼으로 태어난줄 알았더니 다이쇼 시대에는 야쿠자가 도박판도 운영했었구나. 요즘과는 조금 다르군. 흐음... 아, 그렇다고 류가 도박을 하는 건 아니니 도박장 운영을 돕고 있다는 표현이 더 낫겠다. 관동대지진으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쿄스케를 구해 돌봐준 류는 쿨뷰티 타입이랄까. 가느다란 선에 날카로운 눈빛, 그리고 야쿠자로서의 모습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류를 보니 참 보기가 좋구려. 그에 반해 아케토의 환생은... 이거 뭐야. 어리광쟁이가 다 되었잖아. 에도시대엔 세셴의 환생이 고집쟁이 어리광쟁이이더니 이번엔 반대로구나. 아, 이런 성격 별로 안좋아하는데... 뭐 나중엔 쿄스케가 좀 멋있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로 보이더이다. 

조직간의 싸움에서는 일단 둘 다 무사히 살아 남았지만, 이들은 어이없이 죽고 만다. 이 부분 참 싫더라. 차라리 상대편 조직의 우두머리를 처단하는 자리에서 결말이 났으면 더 좋지 않았나. 아, 그 뒤의 이야기가 사족같았어. 뭐 어쩌면 단 몇 년이라도 두 사람은 행복했습니다, 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난 별로였다. 

다이쇼 시대는 이렇게 허무하게(?) 막이 내리고, 이야기는 다시 현생으로 돌아간다. 이집트 여행에 나선 세셴의 환생 렌과 아케토의 환생 고쇼우가 탔던 비행기는 사막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곳은 모든 것이 시작된 땅. 어쩌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도 이들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사막에서 전생의 기억을 하나둘 씩 떠올려가는 두 사람은 드디어 자신의 전생이 세셴과 아케토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단순히 환상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 믿기지 않을 법도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납득하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던 사원으로 향해 돌려놓아야 할 것을 돌려놓고 신으로부터 죄를 사해 받는다. 이것을 돌려놓기 위해 이들은 5,000년동안 환생을 거듭하며 비극적인 운명으로 살아왔나 하는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질~~

어쨌거나 과거의 죄는 씻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자신의 전생을 떠올려 버린 렌과 고쇼우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의 일로 묻어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렌의 태도에 고쇼우는 마음이 좀 상한 모양. 그러고 보면 이 아저씨 어린애같은 모습이 꽤 많이 보인단 말야. 뭐 그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나름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정쩡한 마음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온 렌은 고쇼우의 부탁을 들어주러갔다가 낭패를 당한다. 시련은 끝난게 아니었습니까!? 신에게 용서도 받았는데!? 아하, 렌의 마음이 어정쩡하니까 그게 문제였나?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가는군. 사랑, 이루기 참 힘들구나. 

현생편의 경우 전생편보다 덜 매력적인 건 사실이다. 인물도 전생보다 좀 못해졌고.... 성격도 좀 그렇고...(푸핫) 렌이나 고쇼우가 매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전생의 인물들이 임팩트가 너무 강했던게 그 이유일지도....   

사스라는 신의 노여움을 산 연인들이 환생을 거듭하며 사랑을 이루어나가는 스토리가 매우 매력적이다. 게다가 슬쩍슬쩍 역사적 사실을 끼워넣음으로 해서 판타지이지만 묘하게 현실적이란 느낌이 들었달까. 또한 네 명의 작가의 조금씩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엔진 야미마루의 작화가 이런 분위기에 한 몫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 스토리, 작화 모두 매력적이었던 사스라. 이들 앞에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만이 남아 있기를... (고쇼우땜에 렌이 속썩을 일이 허다해 보이지만, 사랑을 이룬 것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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