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안질려 2
유메지 코우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우연히 길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를 입양한 작가샘은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입양보내려 하다가 결국 그 고양이에게 로즈란 이름을 붙이고 키우게 된다. 돼지코에다가 알러지로 인해 눈물에 눈꼽에 털도 숭숭 빠져 새끼 고양이의 귀여움보다는 그냥 못난이처럼 보였던 로즈가 귀여워 보이게 되고 이사와 더불어 새로운 고양이 스우쉬를 입양한 이야기까지가『고양이는 안 질려』1권의 내용이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어 시간의 흐름이나 이런 건 일정하지 않지만 그런게 대수겠소. 깨알같은 재미가 가득한데...

2권은 로즈와 스우쉬의 똥꼬발랄한 해피 라이프와 작가가 십여년을 기르다 다른 곳으로 입양시킨 키비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두가지 이야기가 좀 분위기가 다르니 따로 나눠서 이야기를 해 볼까나.

로즈와 스우쉬의 똥꼬발랄 해피라이프

로즈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 커서 그런지 다른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스우쉬가 장난을 걸어와도 밥을 뺏아 먹어도 그다지 불평은 없었다. 하지만 좀 불만인 것은 자신의 놀이 시간이 줄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우쉬와 함께 뒹굴거리며 노는 재미에 푹 빠진 로즈였다.

2권 에피소드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사고치는 두 녀석에 관한 것이 제일 많다. 둘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갇혀버리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장난을 치다 욕조에 빠져버린 스우쉬의 이야기하며... 정말이지 고양이는 두 마리만 되면 집안이 시끌벅적이다. 물론 혼자서 열마리 노릇을 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대개는 놀이 상대가 있으면 더욱 시끌시끌해진다. 로즈보다는 스우쉬가 사고를 많이 치는 편인데 파리 끈끈이에 붙지를 않나 발밑에서 알짱대다가 부엌칼이 떨어져 큰일 날뻔 하지를 않나, 작가샘이 계단에서 내려오다 미끄러져 다치게 하지를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즐거운 한사람과 두마리였습니다.

하지만 스우쉬는 생각외로 소심해서 새로운 인물이 보이면 쌩~~하니 숨어버리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자리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해 애를 태우기도 한단다. 우리 티거는 완전 투명고양이 증후군이 있는 녀석이라 내가 좀 알지. (푸힛)

근데 보면서 살짝 무서워졌던 에피소드는, 고양이 스팟이란 것. 첨엔 로즈가 집안의 한 구석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중엔 스우쉬까지 합세! 도대체 뭘 보고 있었던 거니? 로즈, 스우쉬! 지진같은 건 감지도 못하는 주제에 혹시~~~. 음, 그러고 보니 우리 강쥐들이 가끔 베란다 창을 보고 짖는 경우가 떠올랐다. (제가 사는 곳은 8층입니다) 도대체 뭘 보고 짖는건지, 밤에 묘하게 짖으면 묘하게 무섭다능. (설마~~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다만 개들이 많으면 '그것'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해서 나름대로 안심하고 살고 있습니다)

안녕, 키비

키비는 일명 요물고양이라 불리는 23살의 노묘. 원래는 작가샘이 기르던 고양이였지만 잦은 이사로 인해 고생을 많이 하는 것이 안스러워 어시스턴트의 집으로 입양을 보낸 고양이다. 2kg정도밖에 안나가는 작은 녀석인데 신장병으로 고생을 하다보니 털도 까칠해지고 살도 많이 빠진 모습이 안쓰러운 녀석. 어시스턴트가 작가샘의 집에 와서 작업을 하는 동안 키비를 데리고 오자 로즈와 스우쉬는 급관심을. 하지만 사람에게도 까칠한 키비인지라 고양이는 더욱 용납을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하악질 덕분인지 배변도 혼자 할만큼 상태가 좋아지기도 했단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있어 신장병은 치명적이다. 어쨌든 고생을 좀 덜하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작가샘과 어시스턴트의 대화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잘 먹고, 잘 싸다가, 잘 죽었으면 좋곘다는 바람일 것이다. (여기서 잘 죽는다는 말은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는 말입니다) "키비가 죽으면 축하해주자, 애썼다고. 승천 기념 만주도 돌리고." (102p) 라는 작가샘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우리 강쥐들을 돌아보게 된다. (강쥐들 평균 연령이 10세가 넘고 제일 나이 많은 녀석이 19살. 고양이는 아직 9살정도입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만약 20살 넘어까지 살지는 못해도 아프지 않고 편하게 지내다 떠나길 바라기 떄문이다. 나도 이럴진대 오랫동안 신장병을 앓고 있던 키비를 보는 두 사람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또한 키비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하던 작가샘이 핸드폰 사진을 보고 심장이 욱신거린다는 표현에 난 우리 가을이가 생각났다. 가을이는 올해 5월이 되면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2년이 된다. 녀석은 18살의 나이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가을이는 다행히 떠나기 전날까지 밥도 잘 먹고 우유까지 먹고 떠났었지만(사람으로 치면 호상이겠죠), 막상 그후 몇주간은 난 집에도 들어오는 것조차 망설여질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이야기도 입으로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가을이란 이름의 '가'자만 꺼내도 꺼이꺼이하고 울음이 터져버렸으니까. 비록 다른집에 양녀로 보낸 키비였지만 십년이 넘는 시간을 키워왔던만큼 그런 작가샘의 마음이 이해된다.
 
행복 오라를 내뿜으며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 로즈와 스우쉬의 이야기에 키득거리면서 웃다가도, 오랜기간 투병생활을 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키비의 이야기에 가슴이 찡해지고 코끝이 시큰거렸다. 키비, 넌 오래전에 이미 하늘로 떠났지만 이렇게 널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너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사람이 많단다.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겠지? 언젠가 다시 만날 엄마를 기다리면서말야. 잘 지내렴 키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ot Simple
오노 나츠메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이안. 그의 삶은 정말 꾸며낸 이야기라 해도 믿을 정도로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친아버지와 친누나 사이에서 태어난 이안은 출생부터 환영받지 못했다. 생모를 누나라고 알고 커온 이안은 알콜중독자 어머니와 가정에 관심이 없는 아버지 사이에서 컸다. 어린 나이에 이안을 낳았던 누나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이안을 키우기 위해 도둑질을 하다 감옥에 갇혔다. 그후 부모의 이혼, 호주에서 영국으로 이사한 이안은 더욱 불행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이안은 고작 13살의 나이에 엄마의 술값을 벌기 위해 남자를 상대로 매춘을 해야했고, 누나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지만 누나는 다시 이안을 아버지에게로 보낸다. 때가 되면 꼭 데리러 갈게, 라며 이안이 달리기 기록을 달성하는 날 데리러 온다는 누나의 말에 이안은 열심히 달린다. 하지만 그후 이안은 누나가 미국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나를 찾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안은 다시는 누나를 만날 수 없었다. 누나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 그리고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이안. 무슨 악연인지, 도대체 하필이면 그 사람이 누나의 애인이었을줄이야. 세상의 희망이었던 누나가 죽은 후 이안의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약속, 마지막 희망을 찾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가지만, 그곳에서 이안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이안은 태어나자부터 거부당하는 존재였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누나와는 제대로된 행복한 생활을 누려보지도 못했다. 누나의 죽음 이후, 이안은 부모에게마저 완전히 버려졌다. 하지만 이안의 삶이 완전히 불행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다. 짐이란 좋은 친구도 만났고, 다시 희망을 안겨준 사람도 만났지만 결국 이안의 마지막 희망마저 이루지 못했다. 아주 사소한 거짓말이 결국 이안의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간 것이다.

스스로의 삶은 이렇게 불행했고, 남들은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이안은 타인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이란 걸 전해주었다. 정작 자신은 가족의 온기도 제대로 못받았는데, 짐과 그녀에겐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이게 이안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이안의 말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걷고 있으면 친절한 사람들과 자주 만나게 돼.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건 그 사람들 덕분인지도 몰라. 따뜻한 사람들이야. 하지만... 정말로 내가 원한 건 좀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온정이었는데." (239~240p)

그랬다. 이안은 누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따스한 호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안의 진짜 목적은 가족을 만나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평범한 행복을 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바람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감사할 줄 모르며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너무나도 당연한 듯히 존재하기에 그 소중함을 잊기 쉽지만, 가족이 정작 없어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이안에겐 그 소중한 가족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누나와의 약속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 그를 지탱시켜 주었지만, 이안에겐 결국 그 희망마저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누나와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하늘에선 다시 만났겠지? 이젠 무조건 행복해지길 바랄게, 이안.

이안의 생은 너무나 짧았고, 너무나도 불행했다. 하지만 이안은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일러주었다. 바로 가족의 소중함이란 것이다. 『not simple』이 담고 있는 이런 메세지는 오노 나츠메의 간략화된 단순한 그림이 품고 있는 감성을 통해 슬픔과 아픔,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존재하는 희망에서 배어나오는 따스함을 배가시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 3 - 파리 요도변(절판 예정)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진수 옮김, 카키노우치 나루미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외모, 집안, 학벌 어느 것 하나도 빠지지 않는 여성이지만 유일한 단점이라면 성격이 최악이란 것. 오죽하면 드라큘라도 피해가는 료코의 줄임말인 '드라피해 료코'가 별명으로 붙었을꼬. 게다가 재앙의 여왕답게 그녀가 가는 곳마다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을 가도 한 번도 못만날 괴물들이지만 야쿠시지 료코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나타난다. 그녀에겐 괴물을 끌어들이는 페로몬이라도 있는 건지.

야쿠시지 료코가 이번엔 파리에 떴다. 물론 그녀의 충실한 시종 이즈미다 준이치로 경부보도 강제동행했다. 불쌍한 이즈미다. 단 2주만이라도 료코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어이없이 끌려가고 말았다. 덕분에 일본에 있는 경찰관료들은 2주나마 발 뻗고 자겠군. (笑)

료코가 가는 곳에 반드시 나타난다, 괴생명체. 이건 아무래도 정식으로 등록해 두어야 할 발언일 듯. 파리 드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터억 하니 나타나신 괴물은 다람쥐같이 생긴 동물로 사람의 뇌를 빨아먹는 괴물이었다. 아, 사람의 뇌를 빨아먹는이란 표현에서 토나올 뻔했다. 난 다른 건 그래도 참아줄 수 있는데 이건 정말 못참겠다. 이건 아마도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영향일 듯. 거대한 곤충이 사람의 뇌를 빨아먹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었지. 그후론 그에 대한 묘사만 있어도 토나올 것 같다. 여기에 등장하는 괴물은 쬐끄만 다람쥐같은 녀석이긴 하지만 하는 짓은 똑같다. 

미스터리한 사건의 예감! 여기가 일본이면 어떻고 파리면 어떠랴. 료코에겐 국경도 필요 없고, 평화외교도 필요 없다. 그런 건 이미 사건이 발생한 순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을테니. 허허참, 이런 걸 보는 부하입장에선 간이 쪼그라들만한 일이겠지만 료코의 악행(?)을 수없이 지켜본, 그리고 그것에 가담하기까지 한 이즈미다 경부보인지라 웬만한 사람보다 간은 수십배나 커졌을 듯. 이렇게 공항에 도착하자자 벌어진 괴사건에 료코는 희희낙락하며 사건수사를 시작한다. 그래도 아무래도 남의 나라이다 보니 좀 걸리는 건 있지만 료코에겐 료코만의 무기가 있지. 뻔뻔함, 방약무인함, 경찰권력의 남용 등이랄까. 

이번 이야기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외국에 진출해 있는 거대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콕집어 말하건대 기업보다는 그 기업이 후원하고 있는 사람의 문제이겠지만, 뭐 일단은 그렇다고 치자. 재미있는 건 네오나치즘 추종자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 사람이 또한 미친 과학자란 거. 연금술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것을 통해 일본을 최강의 국가로 만들어 세계를 지배할 꿈을 꾼다. 연금술이란 것이 원소의 속성을 바꾸어 다른 원소로 만드는 것이 기본인데,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랄까. 근데 괴물은 왜 만드냐고. 

물론 이 괴물을 만드는 기술은 연금술 발달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긴 하지만 웬지 괴물이라거나 이 괴물을 만드는 법이라거나를 보면 마녀가 할 일이지 과학자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하여튼 이 비법을 '조시모스의 비법'이라고 한단다. 하여튼 미친 과학자에 씌인 네오나치즘의 망령이 불러온 그릇된 야망이랄까. 이걸 깨부수는 료코의 활약은 역시나 통쾌하다. 근데 이런 료코의 활약을 보면 역시 료코 자체가 마성이 깃든 게 아닌가 싶다. 도대체 한계가 없어 보이니.
 
거리에서 결투가 벌어지면 가게를 통째로 산다는 선언을 하지 않나, 자신의 소유인 아파트가 괴물에게 먹히면 새로 지으면 된다고 하지 않나,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야쿠시지 료코의 활약. 그리고 이즈미다 경부보의 활약이 멋진 파리 요도변. 

참, 근데 료코는 이즈미다에게 어떤 감정일까. 저번엔 인간의자로 활용하더니 이번엔 좀더 친근한 행동을!? 그나저나 이즈미다 경부, 당신 참 큰일났소. 이런 료코와 자꾸 함께 있다 보닌 여자 보는 눈이 쓸데 없이 이상한 쪽으로만 높아지잖아! 료코를 감당할 남자는 이 세상에 이즈미다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가다간 이즈미다 경부보마저 료코밖에 안보이게 될지도!? 둘의 미묘한 러브라인(?)을 상상해 보는 것도 또하나의 재미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달님, 달님.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난 보름달이 휘영청 뜬 밤,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었다.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처럼 특별한 달이 뜨는 날은 어려운 소원을, 보통의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가벼운 소원을. 물론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자체에 대한 집착은 없었지만 그게 어느새 일종의 일상이 되었더랬다.

내가 어린 시절에 빌었던 소원은 -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습지만 - 단 1년이라도 개근상을 받고 싶어요(초등학교부터 고교졸업까지 개근상은 한 번도 못받았다. 매년 며칠씩 아파서 결석을 했기 때문에), 잘 생기고 공부 잘하는 남자 아이가 짝이 되게 해주세요라든가, 쪽지 시험에 내가 아는 것만 나오게 해주세요라든가 하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유기동물들의 숫자가 줄었으면 좋겠어요나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의 숫자가 줄게 해주세요 같은 소원부터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등의 다소 욕심이 넘치는 소원을 빌었지만, 그래도 그냥 소원을 비는 건데 어때, 하는 마음이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의 소원이 달님에게 부담스럽지는 않을거라 생각했다. 보름달에 소원을 빈 이유는 보름달은 둥그래서 어떤 소원을 빌어도 받아줄 것 같아서이고, 밤에만 소원을 비는 이유는 소원이란 건 원래 몰래 빌어야 더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다.

어쨌거나 소원이란 것은 자신의 소망인 것이기도 한데, 아이때와는 달리 어른이 되면서는 스스로가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애를 쓴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속에 소원이나 소망을 품고 살아간다. 나 역시 평범하다면 평범한 삶을 살아왔기에 빌었던 소원도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절망스럽고 화나고 분노할 때는 못된 소원을 빌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소원은 저주나 다름없어서 자신에게 꼭 돌아온다는 말에 슬며시 그런 소원은 빌지 않은 셈치기도 했지만.

『달과 게』에 나오는 세명의 아이들에겐 각자의 고민과 짐이 있다. 어린아이가 지기엔 조금은 무거운 짐이랄까. 신이치는 전학생으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뿐더러 1년전 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후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신이치의 엄마는 요즘 남자를 만나는 눈치라, 신이치의 마음이 더욱 불편해지고 있다. 하루야는 경제적 어려움과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고통받는 소년이며, 신이치와 마찬가지로 전학생이라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나루미의 경우 10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사고는 신이치의 할아버지의 배를 탔다가 일어난 사고라서 그것때문에 한참을 고민했고, 지금은 아버지가 재혼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서로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은 누구하나 자신의 아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꾹꾹 누르고 있기만 했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산속에 있는 바위틈에 소라게를 키우면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처음엔 그저 소라게를 키우는 재미였지만, 그것이 시들해지자 신이치와 하루야는 소라게를 이용해 자신들만의 의식을 치룬다. 소라게를 소라검님이라 부르면서 자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처음 소원은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 소원은 점점 잔혹하게 변해갔다. 소라게를 소라검님이라고 신격화하지만 결국 소라게를 제물로 바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의식에 나루미가 끼어들게 되면서 신이치와 하루야 사이는 미묘하게 변해간다. 나루미를 마음에 두고 있던 신이치는 나루미가 하루야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질투때문에 우정이 무너지는 건 삽시간이었다. 미묘한 균형이 깨져버린 것이다. 원래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털어 놓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의식행위가 그것을 묶어주었는데 그것마저 틀어져버린 것이다. 이후, 아이들 사이는 급격하게 틀어져버리고, 소원의 강도도 점점 세져서 신이치의 경우 엄마가 만나는 남자가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하게 된다. 

뱃속에 이상한 것을 키우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신이치는 자신의 마음 속에 괴물을 키워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또다른 모습, 괴물같은 모습이었고 그것을 통해 신이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괴물이 폭주하는 것을 일단 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후의 신이치의 변화는 별로 없다. 나루미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과 말이 달랐던 걸 인정하는 걸로 바뀌게 되지만 더이상의 변화는 없다. 성장했다고 말하기엔 뭔가 미묘하게 결여되어 있달까. 신이치네가 이사가서 다행이란 나루미의 말에, 솔직히 말해 소름이 끼쳤다.

신이치와 나루미의 공통점은 자신의 엄마와 아빠의 애정이 다른 곳으로 향하게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은 아이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를 받아야 하고 사랑도 독차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신이치가 만약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더라면, 나루미가 만약 아빠의 마음을 헤야렸더라면 그런 소원을 빌고, 그런 말을 하며 해맑게 웃을 수 있었을까. 이 아이들은 결국 껍질밖으로 나오지 못한채 자신을 둘러싼 껍질, 덧붙이자면 신이치는 엄마와의 결속, 나루미는 아빠와의 결속이라는 껍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어른들도 자신처럼 약하다는 걸 깨닫게 될까. 어른들 역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는 존재란 걸 깨닫게 될까. 그때가 되면 지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라고만 치부하기엔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워진다. 오히려 이 작품속에서 부쩍 성장한 것은 하루야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맞선 하루야가 깨달은 것은 '어른들도 약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어린아이기 때문에 약하지만 강해보였던 어른들도 약하더라는 하루야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작품은 주로 신이치의 행동과 심리 변화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그렇다 보니 나루미나 하루야의 문제점이나 그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서는 서술이 적은 편이라 좀 많이 아쉬웠다. 특히 아동학대와 관련된 하루야의 이야기가 하루야가 상처입은 모습이 밥을 굶고 온 모습등으로만 묘사되기만 할 뿐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하루야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여겨졌는데 말이다. 신이치나 나루미의 겨우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재혼을 할거란 두려움이 일단은 제일 큰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초등학생인 신이치나 나루미의 경우 자신만에게 향했으면 바라는 애정이 타인에게로 옮겨가는 것이 못내 두려웠겠지만, 그게 하루야의 문제보다 더 심각했을까. 하루야의 문제를 좀더 다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하루야의 문제는 결말부에서 잠깐 언급되고 끝나버렸다.   
 
『달과 게』는 이제껏 미치오 슈스케가 내놓은 다른 작품들과는 차이가 확연하게 존재한다. 물론 전작에서도 아이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이 중심 인물이 되는 소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오컬트적 요소가 존재했었고, 그것으로 인해 결말부가 미진하게 끝나버리는 것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 작품은 결말부는 깔끔하게 맺어진 듯 하지만 그래도 뭔가 가슴속에 응어리가 남는 기분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나이에 비춰 이들이 이야기를 읽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어른들을 너무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미치오 슈스케가 오컬트적인 미스터리나 추리 형식을 탈피해 순문학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할지라도 아직은 첫걸음에 불과하니 그정도는 눈감아 주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앙의 안내인 - 뉴 루비코믹스 579
쿠사마 사카에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아, 뭔가 표지를 볼 때부터 위화감이 좀 들더니 그것의 정체가 바로... 본문 작화였다. 이것이 참.. 요즘의 작화와는 무척이나 다르다. 전체적으론 요즘 그림 느낌이 나긴하지만 뭐랄까, 딱 잘라 말하자면 미국 카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느낌이었달까. 으하하핫... 올드한 그림. 옛날 그림체는 이랬군요. 음, 일본유저들 리뷰를 봤더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이게 복각판(복간만화)였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그림체를 보였던 것이군. 근데 도대체 언제 데뷔하셨음??? 찾아 보려다 귀찮아서 관뒀다. 봄이 되니 나른하니 만사가 다 귀찮은...(쿨럭)

각설하고. 이야기나 해볼까나.
일단 표제작인 <재앙의 안내인>를 포함 <안내인 정리>까지는 4부로 이어지는 연작이다. 안내인 시리즈라 해도 무관할 듯. 이혼한 중년의 소설가와 고등학생의 이야기인데, 좀 갑작스런 전개가 이어져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런 느낌은 여기에 수록된 단편 모두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듯 싶다. 어쨌거나 이 두사람은 화재현장에서 처음 만나고 그후로 사귀기 시작한다. 미묘하게 아이같은 어른과 미묘하게 어른같은 아이의 조합이랄까. 특히 고교생인 유키히로가 방화 사건 용의자로 몰리는 분위기가 나자 짐 싸들고 유키히로를 데리고 떠나려는 소설가 아저씨를 보면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소설가 아저씨인 히라오는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던 거지. 사랑에 대한 트라우마가 존재한달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못해 아내와도 이혼을 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 유키히로마저 잃어버릴까 겁이 났던 게지.

캐릭터를 보자면 이 둘의 캐릭터도 흥미롭지만 더욱더 흥미로운 캐릭터는 역시 유키히로의 형이 아닐까 싶다. 히라오의 팬이라며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주고 두 사람이 잘 이어지도록 연결해주는 사람인데, 아주 독특했다. 이것도 이 단행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공통점이지만... 하여튼, 유키히로의 형이 젤로 독특한 듯. 

<이발창가>는 3대째 이발업을 해오고 있는 이발소의 이발사와 회사원 사이의 이야기이다. 으음, 요즘은 남자들도 대부분 미용실을 이용하지만 이발소란 건 은근히 섹시한 이미지를 준다니까. 특히 거품 솔솔 내서 거품 면도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아, 이 작품 안에서 거품 면도 장면은 없습니다) 여튼간에 독특한 이발사와 툴툴거리면서도 늘 이 이발사를 찾아오는 회사원의 이야기도 독특하기 그지 없었지. 특히 회사원의 경우 이발사가 보고 싶으면서도 도망가는 사람이었달까. 나중에 확 잡아채이긴 하지만. (푸핫)

<핀업스타>는 고교생들이 등장하는 학원물인데, 형과 자신의 친구를 엿보는 동생의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이다. 어째보면 형은 세이치를 좀 괴롭히고 있다는 느낌도 드는데, 어쩌면 이건 세이치가 자신의 동생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한 자격지심일지도. 나름대로 필사적인 건가, 형도? 확 받아들이기엔 뭔가 좀 위화감이 남아 있긴 하지만, 결말부를 보면서 나름 납득을....

<비 온뒤 개임, 곳에 따라 눈>은 노말과 사귀고 있는 게이들의 고민이랄까, 그런 내용을 담고 있는데 겉보기엔 바람 피우는 거 아닌지... 아, 역시 이건 좀 받아들이기가....

작화도 옛날 작화고 스토리도 요즘같은 스토리가 아니라 직격으로 꽂히는 게 많아서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작풍을 엿볼 수 있어서 나름대로 즐거웠습니다. (나름대로는 뭐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