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헤도로 Dorohedoro 11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의 억지 파트너가 된 니카이도와 도피 중인 카이만. 둘은 이제껏 용케 엔의 추적을 잘 피해왔지만 절체절명의 순간 니카이도가 마법을 쓰는 바람에 엔이 이들이 도피한 곳을 찾아냈다. 감히 자신의 파트너를 납치한 카이만에 대한 분노때문에 엔은 그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고 카이만은 도마뱀 머리만 남긴 채 용암속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때, 카이만의 몸에서 분리된 형체, 그것은 바로 리스였다.

엔은 니카이도를 저택으로 데려오지만 니카이도는 엔의 파트너가 되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회복 마법도 전혀 듣지 않은채 나날이 쇠약해져만 가고 있다. 한편 용암속으로 떨어지는 카이만을 구해낸 카와지리(악마였을 때의 이름은 아스)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평범한 인간이었다. 자신은 카이만이 아니라고 하는 이 남자, 그렇다면 이 사람은? 역시나 그랬군. 역시나 그였어. 그렇다면 카이만의 마법 학교 기억과 리스에 대한 기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리고 카이만의 도마뱀 머리안에 리스의 망령이 존재했던 이유도 이와 결부해서 자연스럽게 밝혀진다. 어쨌거나 카이만의 도마뱀 머리가 떨어지면서 분리된 리스의 망령은 리스의 본체와 결합해 기괴한 모습의 이형의 존재를 만들어 낸다. 그의 이름은 커스. 생김새도 기괴하기 그지 없지만 그 능력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다. 도쿠가가 왜 그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는지 자알 알 것 같다. 그런 놈은 건드려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한편 거의 두 동강이 난 에비스는 여차여차해서 부활! 그런데 이번에는 쵸타의 머리핀때문에 예전보다 더 이상한 아이로 거듭난 에비스. 얘의 운명은 도대체... 에비스, 너도 참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고 있구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드디어 십자눈 조직의 보스가 등장했다. 6년전 엔의 대결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십자눈의 보스와 엔의 대결. 이번엔 얄짤없이 엔이 너덜너덜. 솔직히 엔이 정말 싫었지만 그렇게 된 걸 보니 좀 불쌍하더구만. 그래도 그 덕분에(?) 쵸타의 마법도 풀리고, 버섯 도시로 변해버린 도시도 정상화되는 등 엔의 마법이 발동된 곳이 정상화되긴 하지만 엔이란 중심축이 없어져버린 마법사의 도시는 곧 일대 혼란에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엔 패밀리는 분열, 십자눈 조직의 부활이 될 듯.

이 십자눈 보스의 정체는 아직도 불분명하지만 카스카베 박사의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아이가 십자눈 보스일 가능성이 크다. 십자눈 보스의 가공할 능력은 아마도 마법사들에게 심어진 작은 악마를 스스로의 몸에 이식함으로서 생겨난 것이라 짐작되는데, 이번엔 엔을 먹어치웠으니(?) 버섯 마법도 십자눈 보스의 소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렇게 프랑켄슈타인 마법사가 된 부작용은 없으려나. 엔마저 처치한 솜씨를 보건대 앞으로 이 십자눈 보스에 대적할 마법사는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인 니카이도밖에 없을지도.

그러고 보니 니카이도 어디로 간거지? 그 몸을 해가지고!! 일단 엔이 죽어버렸으니 계약은 파기되었을 테지만 몸이 그 꼴이라서 어디가서 쓰러지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도마뱀 머리 카이만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 아니 마법사란 표현이 맞겠지 - 그는 기억을 되찾지 못한 상태이고, 하여튼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아, 불안해.

 

이번 팝업 캐릭터는 아이카와. 리스의 마법학교 동기인데 이 아이카와가 앞으로 커다란 역할을 할 듯. 아무래도 리스를 도마뱀 머리 안에 들어간 것도 아이카와의 마법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아무리 생각하면 뭐해. 본인이 기억을 전혀 못하는구만. 아이카와, 얼른 기억을 되찾아줘. 니카이도가 너무 슬퍼하기 전에! 여자를 울리는 남자는 못쓰는 법이야, 알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1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받고 그 볼륨에 깜짝 놀랐다. 보통 만화는 150~200페이지 정도인데, 이 작품은 두배 정도인 400페이지나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욱 놀란 건 대당편만 10권이란 것. 400페이지로 잡아도 무려 4,000페이지나 된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대단한 작가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서유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어린 시절 책으로 먼저 접했던 기억이 있다. 그후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으로 서유기가 각색되어 나왔고, 일본 만화중 서유기를 기본 얼개로 한 또다른 판타지 작품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작품이라 만화책은 물론 애니메이션도 챙겨 봤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서유기란 작품은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좀 다른 점이라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과 일본 판타지 만화의 경우 엔터테인먼트적인 경향이 강했다면 이 작품은 꽤나 진중하고 무거운 편이다. 그러나 가독성이 정말 좋아 지루함은 전혀 없다. 오히려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들 정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서유기의 손오공과는 달리 인간의 자식이다. 화과산 기슭에 있는 마을에 사는 손오공은 출생부터 남다르다. 국원에 의해 납치된 어머니가 낳은 자식이 바로 오공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출생은 남달랐지만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오공은 어느날 화과산에 들어갔다가 스스로를 제천대성이라 칭하는 무지기의 부름을 받는다. 거대한 원숭이 요괴인 무지기는 오공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을 자라고 하지만 오공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어머니를 보고 복수심에 금환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오공과 무지기를 연결시키는 연결점이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이 너무 심해 모든 기억을 잃고 떠돌이가 되어 살아가다 인간들에게 잡힌 오공은 지나가던 현장법사의 기도로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 압송당하던 중에 만난 홍해아와 길동무가 되어 당에 맞서기로 한 오공은 유흑달을 찾아 가던 길에 용아녀를 만나 유흑달이 당에 패하고 도망하는 중이란 말을 듣는다. 오공은 홍해아와 잠시 헤어져 용아녀와 함께 백운동에 들어가 그곳에 적혀 있는 비문에 적힌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수말당초. 수나라가 망하고 군웅할거의 시대에 들어간 중국을 당태조의 아들들이 하나씩 병합해 가는 중이다.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백성들, 그리고 각각 황제가 될 꿈을 안고 일어선 군웅들의 싸움에 백성들의 고통은 점점 더해가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도적떼까지 설치는 판이니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가 야인이 되거나 전쟁에 휘말려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오공 역시 자신을 돌봐주던 가족이 죽고 야녀가 된 어머니마저 살해당하는 등 어린 시절엔 많은 고통을 당하지만 용아녀를 만난 후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문에 적힌 자신의 운명이라든지 스스로의 힘으로 금고봉을 뽑아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반발하기도 한다. 내가 왜 그런 운명에 따라야 하냐는 뜻이겠지. 당연히 소년 오공의 입장에선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남다른 출생과 몰살당한 가족, 자신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각지에서 일어나 전쟁을 일으키는 군웅들을 보며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무지기란 요괴의 뒤를 이어야 한다니, 그것만큼 오공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일이 더 있을까. 그러나 그것이 오공이 걸어 가야 할 운명이었으니, 그저 피한다고 될 일만은 아닌듯 하다. 그러니 아마도 앞으로의 전개에 오공의 성장이란 요소가 맞물려 돌아갈 건 분명해 보인다.

「서유요원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유기에 중국사와 판타지와 기담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정말 작품 구상부터 스토리와 작화부분의 세세한 묘사까지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아니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그가 아니라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작품이 아닌가 하는 감탄이 책을 읽는 내내 나오고 만다. 정말 필생의 역작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상천녀 1 - 젊은날의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기담!
요시다 아키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처음에 표지만 보고서는 판타지나 고전물일줄 알았다. 근데 첫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이거 뭐야? 하는 말이 튀어 나오고 말았다. 현대물이군. 생각과는 좀 다른데... 그래도 요시다 아키미니까, 기대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카노 사요코는 절세의 미모를 가진 17세의 소녀로 양녀로 다른 곳에 보내졌다가 본가로 돌아왔다. 전학생인 사요코에게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 마저 동경의 눈길을 보낸다. 물론 사요코의 미모에 남자친구를 뺏길까 싶어 사요코를 견제하려는 불량 여학생 무리나 사요코에게 웬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는 토노 료가 있긴 했지만. 

사요코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학교내에서 빛을 발하지만 그 나이 또래의 소녀답지 않은 어둠도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랄까. 사요코는 유이코와 마리 등 반친구들도 사귀 게 되는 등 나름대로 즐거운 학교 생활을 보내지만 늘 그녀를 노리는 사나운 눈빛들이 존재한다. 특히 료와 사귀는 여학생 그룹은 사요코를 손봐주려 하지만 역으로 사요코에게 호되게 당할 뿐이다. 

하지만 사요코를 노리는 건 이들뿐 만이 아니다. 사요코를 손봐주려다 실패하고 자존심 상한 남학생을 비롯해 학교 선생까지, 사요코에게 손을 대려한 자는 사고사를 당하거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도대체 그녀에겐 어떤 힘이 숨어 있기에 이런 어둡고 음험한 일들만 벌어지는 것일까.

미모와 재력. 이 두가지는 사요코의 발을 묶는 존재일 뿐이다. 그토록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부잣집의 딸이 아니었다면 여자애들의 질투때문에, 자신의 집안의 재산을 노리는 토노 아키라의 음험한 흉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테지. 그런 사요코가 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남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칠수 있는 사요코의 어둠이 무서웠다. 

카노가와 토노가 사이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사정. 그리고 사요코를 노리는 음험한 손길들.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요코의 영역을 침범한 자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가. 

작화를 볼 때는 이게 오래된 작품이란 걸 감안해야 한다. 솔직히 절세의 미녀라고 하기엔 사요코의 미모가 좀 아니다 싶긴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토리 하나만큼은 무척 매력적이란 걸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을 묶어 놓은 운명과 시시각각 자신을 조여오는 덫을 헤쳐나가는 여성의 이야기이니까. (개인적으로 이런 강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90년대 말, 중국에 간 적이 있었다. 심양에서 내려 연변 - 백두산 - 북경에 이르는 코스였는데, 그때 조선족을 처음 만났다. 조선족의 말투도 그렇고 북한과 인접한 곳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가이드나 한식당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서 그런지 그들의 생활은 우리와 별반 다름없이 느껴졌었다. 오히려 중국과 북한 국경 근처에서 아릿아릿한 아픔이 생겨났고, 그것은 두만강 근처에서 손을 씻고 있는 북한주민을 보면서 더욱 심해졌다. 결국 두만강 푸른물에~~하는 노랫가락에 눈물을 줄줄 쏟았던 적이 있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만날 수 없었던 북한주민이었을지라도 내 동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1박을 할 때 식사 시간에 맞춰 조선족이 공연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이 굉장히 불편해졌다. (솔직히 말해 난 개인적으로 관광지에서 누가 공연하는 걸 보면서 밥 먹는 것을 꽤 불편하게 생각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가운데 나를 포함한 관광객들은 갓 잡은 송아지 고기를 구워먹으며 파티아닌 파티를 하는데 그들은 그 비를 쫄딱 맞으면서 공연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몹시도 불편했다. 그랬다. 그당시 조선족은 내게 있어 딱 그정도의 존재였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몇 년이 지나면서 난 조선족들을 한국땅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대부분 여성으로 식당에서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난 남자 조선족을 중국에서밖에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말을 섞지 않는 이상 조선족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별반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무심하게 지나쳤다.
 
난 조선족은 한국인이라는 생각보다는 한국에 나와있는 북한 사람처럼 느끼게 된달까. 아마도 그건 그들의 말투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 하나 살기도 힘든 세상이었기에 뉴스에서 조선족에 관한 안타까운 뉴스가 나와도 뉴스를 볼 당시에만 안타까워하고 또 금세 잊어버렸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 올해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 나온 조선족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어떤 대접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때때로 뉴스를 통해 듣게 되지만 조선족 부모들이 중국땅에 두고온 아이들과 나머지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일이 없는듯 하다. 어떤 예능프로그램에서 조선족 특집이 나왔을 때 부모를 10년이나 못봤다는 이야기를 스쳐듣긴 했지만 그건 특수한 경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만주에 사는 조선족의 수는 200만. 그중 40만이나 되는 사람이 한국에 와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네 쌍에 한 쌍 꼴로 이혼을 했다. 그들은 각각 재혼을 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고 그후엔 아예 한국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돈을 악착같이 벌어 다시 만주로 돌아가는 사람이 극히 드물며 돌아간다 해도 이혼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그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은 한국땅으로 돈을 벌러간 부모들에게 방임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3~4년은 기본이고 10년정도나 부모와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은 조선족 학교에서 너무나도 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고 커야 할 아이들이 도대체 무슨 죄가 있기에 일이 이런 사태까지 가버린 것일까. 아이들의 부모는 대개 3~40대로 그들의 아이들은 취학전 어린 아동에서 고교생까지의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3, 4살 무렵에 부모와 떨어져 십대가 되어 부모를 만나는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의 존재감이란 얼마나 될까. 그래도 돌아와주면 다행이다. 어느날 갑자가 연락이 뚝 끊기고 송금까지 끊기면 아이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기대야 하는 것일까. 

한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이 고생이라면, 이곳에 남은 자녀들은 고통이지요. (27p)

우리 가족 한 번 잘 살아보겠다고 택한 한국행. 그것이 설마 비수가 되어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꽂힐 거라 생각하고 떠난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막상 한국에 나가보니 중국에 살 때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취해 핏줄로 이어진 자식을 끊어내 버리는 부모가 너무 많다고 한다. 이렇다 보니 남은 아이들은 사춘기를 일찍 겪고 너무나도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다. 부모가 모두 한국으로 떠나버린 경우 의지할 친지가 없으면 - 친지들 역시 한국으로 떠난 사람이 대부분이다 - 할 수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곳의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다. 남겨진 아이들은 다각도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속출하고 있으며, 한족에게 의지하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안그래도 조선족 문화가 한국 문화에 휩쓸려 휘청휘청하고 있는데 이젠 한족의 문화까지 그 자리를 넘본다. 학교에서도 조선어보다 중국어를 배우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조선어를 할 줄 아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신의 문화를 꿋꿋이 지키며 존재해 온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면서부터 조선족들이 백 년 넘게 지켜 온 고유의 문화, 가족 윤리, 성 윤리가 일거에 망가졌다. (200p)

몹쓸 한국병은 한국에 돈 벌러 간 부모를 변화시켰고 조선족 사회의 독특한 문화 유산을 흔들어 놓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면서도 증오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한국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국 사회를 싫어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바람만 아니었으면, 부모와 헤어져 살 일도 없을테고, 부모가 이혼해서 버림받는 일도 없었을테니까. 또한 한국에 불어닥쳤던 부동산 투기 바람이 이젠 만주에까지 불어닥친단다. 한국에 들어와 돈을 벌어간 사람은 어김없이 아파트를 산단다. 그래야 돈을 번다고. 한국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불순물만 가득 싣고 가는 바람이고, 한국병은 그냥 병이 아니라 속부터 먹어 들어가 결국 조선족 문화와 조선족 사회의 기반까지 침식하는 암이 되어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눈에서 더 큰 원망의 눈물이 터져 나오기 전에 부모님들께서는 하루빨리 돌아와 달라는 겁네다. 그 고생을 하러 가서 가정마저 깨져 버린다면 한국 취업은 희망보다 절망이 더 크지 않겠습네까? (65~66p)

앞으로 10년 뒤 우리 학생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가족에 대해 뭘 좀 알아야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거 아닌가요? (82p)  

좀 더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학비를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간 조선족 부모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희생시킨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이런 문제때문에 희생된 가정과 남겨진 아이들이다. 가정과 아이들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지만 그것이 역으로 가정을 산산히 부서뜨리고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변했다면 이것이야 말로 본말전도가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아픔이, 눈물이, 고통이 부디 자식들을 만주땅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건너온 부모들의 가슴에 가닿았으면 좋겠다. 제발 남겨진 아이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면 좋겠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 나오면서 어떤 결심을 하고 나왔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가난해도 좋으니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따뜻한 밥을 먹고 정담을 나누고 싶다는 아이들의 바람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스우드 2
안성호 지음 / 누룩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나무가 사라지고 콘크리트로 뒤덮여버린 도시에 나무가 가득한 집이 한 채 있었다. 그집에 사는 건 설씨란 사람으로 유일한 가족인 조카는 그의 나무사랑에 넌더리를 내면서 다른 도시로 가버렸다. 그후 그의 집에서 불이 나고 설씨는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이곳이 아닌 저 먼곳으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설씨가 눈을 뜬 곳은 도시에서 사라진 나무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땅, 언덕. 언덕의 지배자는 무아라는 소녀이다.

설씨앞에 나타난 로우라는 소녀는 무아를 피해 설씨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라며 다섯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설씨는 로우의 말에 따라 언덕을 빠져나가기 위해 길을 나서고 아본이란 청년과 주밤이란 소년을 만나 동행하게 되지만 무아가 호락호락 그들을 내보내줄리 없었다. 결국 무아의 손에 잡힌 세사람. 이들은 로우의 도움으로 무아의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언덕은 너무나도 넓었다. 도대체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 있을까 라고 생각될 만큼.

『키스우드』2권은 아본과 헤어지게 된 설씨와 주밤이 저쪽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향해 가는 과정과 무아와 로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마와 토르래강까지의 동행, 그후로는 설씨와 주밤 둘이서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저쪽 세상에서 나무를 사랑했던 설씨를 알아보는 것인지 나무들은 설씨에게 길을 만들어주고, 길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아가 만든 지옥이 이들 앞에 나타나면서 이들에게 큰 위협이 닥치게 된다.

한편 무아를 막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로우. 자신의 언덕에 저쪽 세상에서 죽어버린 나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무를 미워한 무아와 무아가 언덕의 지배자로 살아가게 된 과정이 설명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 것은 무아의 존재이다. 도대체 무아는 누구일까. 무아의 힘의 원천을 생각해 본다면 무아 역시 버려진 어떤 것을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로우의 소멸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무아의 폭주로 인해 설씨와 주밤은 더욱더 큰 위기에 몰리고 그 영향은 저쪽 세상까지 퍼져나간다. 이렇게 언덕은 또다시 소멸해 버리는 것일까.  

또한 설씨의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의 정체 역시 밝혀지는데 그 방화범의 정체를 알고 약간 충격을 받았으나 이내 그 이유가 이해되었다. 나무를 사랑하며 나무를 위해 살아왔던 설씨가 자신이 사랑하는 나무에 불을 지른 이유, 그 이유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이었다. 사랑하는 조카와의 관계까지 산산히 무너뜨리면서 지내왔던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의 의미도 분명 깃들었겠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처럼 사랑한 나무에 스스로 불을 지른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나무에 불을 질렀던 설씨, 그리고 그때문에 언덕으로 오게 된 설씨. 하지만 언덕의 나무들은 설씨를 완전히 내치지 않았다. 평생 그가 돌봐왔던 나무들 중에도 상당수가 언덕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리라. 숲이 설씨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건 아마도 나무를 평생 돌봐왔던 사람에게만 허용된 것이겠지. 나무와 설씨의 대화는 무아와 로우의 대화는, 그리고 로우와 설씨의 대화는 호수에 일어난 잔잔한 파문처럼 마을을 적신다.

1, 2권을 읽으면서 나무가 없어지고 숲이 사라지는 지구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왜 우리는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함께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지구 최대의 숲 공존 역시 인간들의 손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저질렀던 일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때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콘크리트 숲속에서 아름답게 살아 숨쉬던 설씨의 정원을. 작은 목소리지만 설씨에게 말을 걸어오던 나무의 목소리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