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알파 7 - 신장판
아시나노 히토시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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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온 알파를 만나러 온 코코네는 선생님을 통해 자신들보다 한세대전의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과거란, 늘 아련한 그리움을 동반하는 것.

코코네가 살고 있는 무사시노와 달리 알파가 있는 곳은 야트막한 언덕길이나 꼬불꼬불한 숲속길이 존재해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동안 금세 변하는 풍경에 놀라게 된다. 무사시노보다 더 자연에 가까운 곳이라서 그럴까, 그곳에 충만한 농밀한 공기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곳이니 알파가 자신도 모르게 잠들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지. 

알파가 여행을 떠나기전 불어닥친 태풍으로 반파된 카페 알파는 느릿느릿하게 복구중이다. 간간히 손님이 오긴 하지만 카페 모습이 그렇다고 해도 영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카페알파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었을 때도 손님은 별로 없었으니... 그래서 알파는 느긋하게 카페를 보수한다. 반투명재질의 지붕을 얹어보기도 하고, 발을 쳐서 그늘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지나고 있다.

알파의 모습은 그대로이지만 아이였던 마키도 타카히로도 그새 더 많이 자랐다. 타카히로는 이제 알파보다 키도 더 커지고 어른스러워져 남자 어른이 다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운전하는 모습도 멋지고, 알파를 뒤에서 포근히 안아주는 모습도 그렇고. 타카히로도 어른이구나, 이제. 시간의 흐름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주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 흐름이 느껴진다. 만약 알파나 코코네같은 로봇만 있었더라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알파는 주위의 그런 변화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겠지? 

많이 추워졌다 싶더니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알파는 눈을 처음 보는가 보다. 신이 나서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더니 커다란 눈사람도 만들었다. 눈이란 건 금세 쌓이고 금세 사라지는 것. 알파의 기준에서 보자면 인간의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봄이 되었을 때 알파는 수퍼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 쑥쑥 자라 대형 해바라기 꽃을 피워 사람들이 구경하러 온단다. 보통 해바라기보다 훠어어얼씬 더 큰 대형 해바라기. 그러고 보면 여기에 나왔던 감이나 밤도 사람 머리보다 더 큰 게 있던데, 이것도 이 시대만의 특징일지도. 

『카페알파』7권에는 태풍으로 파손된 카페알파 복구 작업을 비롯해, 꼬치고기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아야세도 오랜만에 나왔고, 미사고도 오랜만에 나왔다. 어린 시절의 타카히로를 거쳐 마키앞에도 나타났지만 이젠 마키 앞에도 나타나지 않는 눈치다. 미사고는 아이들 앞에만 나타난다고 했는데, 이제 11살이 된 마키는 더이상 미사고를 볼 수 없는 걸까. 주변을 둘러봐도 더이상 아이는 보이지 않는데, 미사고는 또 한동안 혼자가 되겠구나.

그외에는 비행기를 모는 남자형 로봇 나이가 알파를 보러 잠시 들렀고, 나이와 코코네의 친구인 마루코가 알파를 만나기 위해 잠시 들렀지만 웬일인지 마루코는 알파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다시 무사시노로 돌아간다. 어쩌면 알파가 너무 순진해서 곯려주려는 마음을 바꿨을지도 모르지. 

한편 비행선에서 생활하는 알파 실장은 여전히 밑을 내려다 보고 있다. 아마도 이 알파 실장이 선생님이 말한 알파와 코코네의 언니겠지. 그렇다면 왜 알파 실장은 하늘에서 이들을 내려다 보고만 있는 것일까. 밑에 있었던 시간동안 나쁜 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알파 실장의 이야기는 수수께끼 투성이. 

『카페알파』를 읽으면서 늘 느끼게 되는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느긋하게 살고 있는 듯 보여도 시간은 변함없이 흐른다는 것이다. 봄기운이 살랑살랑 전해지는가 싶으면 금세 더위가 찾아오고, 조금 지나면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고, 또 조금 지나면 봄이 되고 여름이 된다.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빨라 주변은 자꾸만 변해가지만 알파의 모습이 그대로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자칫 신경을 쓰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이 잘 읽혀지지가 않는다. 근데 굳이 이런 시간의 흐름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 작품을 읽는 순간만큼은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고 그 속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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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헤도로 Dorohedoro 12
하야시다 규 지음, 서현아 옮김 / 시공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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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세계는 엔의 죽음으로 대혼란에 빠졌다. 당연히 엔 패밀리도 붕괴 직전.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이와 신은 마법사 터키의 도움을 받아 엔 인형을 제작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엔 인현은 자신의 머리가 있는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십자눈 조직의 보스도 당연히 있을터. 이렇게 신과 노이는 십자눈 조직의 보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편 엔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한 이를 십자눈 조직은 자신들의 보스가 귀환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보스의 아지트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디어 엔의 청소부 신, 노이와 맞딱뜨리게 된다.

엔의 청소부 VS 십자눈 일당
십자눈은 마법사의 연기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나오는지를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곳만을 노리지만 신과 노이는 카스카베 박사가 알려준 자신들의 급소를 방어하며 십자눈 일당을 하나씩 처치한다. 순식간에 십자눈들은 시체더미가 되어 쌓이지만, 그때 나타난 십자눈 조직의 보스.

도대체 이 사람 등장할 때마다 섬뜩하다. 옷도 괴상한 걸 입었지.. 첨엔 몸통 부분에 살과 내장은 다 날아가고 뼈만 남은 줄 알았더니 이거 옷이다. 거참 취향도 괴상망측, 정말 악취미군. 하긴 악취미로 따지자면 마법사들의 본체인 작은 악마를 자신의 몸에 스스로 이식하는 것부터가 악취미 중의 악취미지. 그렇게 힘을 키우고 힘을 키워 엔까지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으니...

엔의 능력까지 흡수해서 버섯 마법까지 사용하게 된 십자눈 보스는 단숨에 신과 노이를 처치한다. 근데 이 두 사람 정말 죽어버린 거야? 아니면 사라진거야? 십자눈 보스 덕분에 시체더미가 된 십자눈 일당은 원상복귀되었지만 엔 패밀리는 완전히 궤멸해버렸다. 엔은 싫었지만 신과 노이, 에비스, 후지타, 키구라케는 좋았는데...(쵸타는.. 역시 별로다)

하여튼 이렇게 천하무적이 된 십자눈 보스를 찾아온 것(?)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리스가 변신한 커스. 커스는 아마도 이 십자눈 보스 카이(壞)와 깊은 원한이 있는 듯. 그렇다면 리스와 아이카와를 그렇게 합체(?)시켜 카이만을 만든 게 바로 카이였나? 허허참. 하여튼 별로 정감가는 얼굴은 아니다. 어쨌거나 이 보스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일단은 기다려야 할 듯.

한편 사라졌던 니카이도는 카와지리에 의해 구조된 후 치료까지 받고 말끔히 나았다. 다행이야, 니카이도. 여기에서 니카이도의 과거가 등장. 어린 시절의 니카이도도 무지 쎘구나. 콩알만한 녀석이 어른 마법사를 무찌르다니. 이러니 카와지리가 아스가 된 후에도 니카이도를 그렇게 돌봐준게지. 하지만, 야쿠모와 관련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그래도 주저앉을 수는 없지. 카이만도 없어진 지금, 십자눈 조직의 보스를 상대할 인물은 역시 시간을 다루는 마법사인 너밖에 없으니까! 힘내, 니카이도.


 

『도로헤도로』12권 표지에 등장한 팝업 캐릭터의 주인공은 카와지리와 어린 니카이도이다. 카와지리는 역시 아스일 때가 더 좋았지만.. 어쩔 수 없지. (치다루마, 나쁜 악마. 아, 악마는 원래 나쁘지?) 어린 시절 무지 귀여웠던 니카이도와 마법사였을 때의 카와지리가 등장해서 그런지 표지도 팝업도 샤방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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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캐러번
쿠사마 사카에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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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면서 드는 위화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분명 예쁜 표지인데, 뭔가 좀 이상하단 말야. 물론 첫번째 드는 위화감이란 평소 BL계에 서식하고 있는 작가 쿠사마 사카에가 남X남이 아닌 남X녀를 표지 인물로 그렸다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더 위화감이 드는 건 두 사람의 모습이다. 백마와 발레리나 - 나중에 보니 발레리나가 아니었습니다 - 와 양복을 입은 남자.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사이지??? 라는 느낌이랄까. 뭐, 할 수 없지. 책을 보고 판단할 수 밖에.

『굿바이 캐러번』은 BL계에서 독특한 작품을 그려내는 작가로 유명한 쿠사마 사카에의 '순정'만화다. 호오라, 요즘 BL계의 거성 작가들이 종종 순정만화를 내놓는데, 쿠사마 사카에 역시!! 근데 이 작품 정말 마음에 든다. 때로 BL 작품을 그리다가 순정을 그려내는 작가들 중에는 원래 서식지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생각되는 작가가 많은데 쿠사마 사카에는 순정쪽도 잘 그린다, 란 생각이 든다. (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작가로는 미즈시로 세토나, 나카무라 아스미코 등이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작품은 히라사카 마을을 배경으로 한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것과 사랑이란 것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구별할 수 있다. (제 맘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일단 히라카사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보면 그 중심에는 하라다 시계방과 그곳에 사는 요괴 고양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다. 귀여운 꼬마애들과 요괴 고양이, 그리고 시계방 주인 아저씨의 이야기가 코믹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요괴 고양이의 활약이 장난이 아니다. 도대체 이 요괴 고양이는 언제부터 여기에 살던 것일까. 이 부분은 나중에 시계방의 비밀과 더불어 밝혀지는데, 이 또한 하나의 재미를 보장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렀던 고양이의 사연에 찡해지다가, 작지만 묘하게 늙어버린 고양이의 등장에 웃음이 빵하고 터져버렸다.

꼬마애들 편에서는 괘종시계때문에 악몽을 꾸던 아이와 그 아이의 친구의 우정에 마음이 따스해졌고, 금봉이를 찾는 꼬맹이와 그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 오빠의 사연도 흥미로웠다. 근데 역시나 마지막은 빵터지게 만드는 작가님의 센스는 최고.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코믹함을 덧붙여 자연스럽게 풀어나간달까. 아, 역시 쿠사마 사카에.

음. 사랑이야기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데 쿠사마 사카에의 사랑이야기는 마음에 쏙 들었다. 삼촌과 조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 <오늘은 일진도 좋고>는 어린 시절의 나를 살짝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역시 나와는 좀 다르다. 외삼촌을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역시나 가족애라고 판명난 나와는 달리 여기에 등장하는 조카는 삼촌을 남자로 좋아한다. 하지만 삼촌의 마음에는 다른 누군가가 깃들어 있었는데... 자칫하면 근친상간물이 될 뻔 했지만, 교묘하게 근친상간의 모든 조건을 빗나가는 설정으로 두 사람의 해피엔드를 약속하는 작품.

<MONEY MONEY MONEY>는 키 큰 여학생과 키 작은 남학생 커플이 등장하는데 언뜻 생각하기엔 부조화스럽겠구나 싶어도 엄청나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여기에 남학생이 짊어지고 살아 가는 가족사의 무게도 가미. 사랑 이야기 + 가족 이야기. 이것도 참 좋았다.


 

뜨아아아~~ 갑자기 호러물로 바뀐 줄 알았다. 이 그림은 <굿바이 캐러번> 속표지인데, 분위기 완전 반전. 남자의 표정도 어떻게 보면 공포에 질린 것 같고, 대체로 여자가 저런 자세로 있는 건 유령일때가 많잖아. 그래서 난 호러물인가 싶었다. 앞에 나온 히라사카 마을 이야기의 경우 괴담 분위기가 많이 났었고.. 근데 알고 보니 서커스단원이어서 이런 자세가 나왔다나 뭐라나. (작가님, 깜짝 놀랐습니다!)

<굿바이 캐러번>은 서커스단원 여고생과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늘 순회공연을 하기 때문에 한 달 정도 다른 학교로 전입하게 된 서커스단 여고생이 마음에 둔 남자애는 다른 여학생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상대 여학생은 눈도 꿈쩍안한다는 거~~ 환상은 아름답지만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때론 환상도 깨줄 필요가 있는 법. 그래야 마음이 훨훨 멀리 날아갈 수 있으니까. (속표지는 좀 무서웠지만 스토리는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아틀란티스로부터>는 작가의 원래 서식지 분위기를 아주 조금 맛볼 수 있는 작품(작가의 BL계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의 경우)이다. 작품속의 아틀란티스가 이런 뜻이었구나... 오래전 츠키오카가 자신의 물음에 대해 답한 것의 의미를 이제서야 깨닫게 된 히노. 이젠 안심하고 눈을 뜨렴, 츠키오카.  

『굿바이 캐러번』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역시 스토리가 탄탄해서 BL이든 순정이든 다 괜찮구나 싶었다. 작화도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지만 역시 스토리의 맛이 최고다. 기담분위기에서 다양한 분위기의 사랑이야기까지. 아, 정말 좋아~~~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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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천녀 2 (완결) - 젊은날의 백일몽과도 같은 환상기담!
요시다 아키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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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하늘에서 천녀가 내려와 신관 남자와 부부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카노家. 
카노家의 손녀 사요코는 마치 천녀가 환생한 듯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녀 주위는 빛보다 어둠이 둘러싸고 있는 듯 보인다.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살아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사요코는 여성들에겐 선망과 질투의 시선을, 남자들에겐 욕망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어 아직 고교생이지만 사요코는 여느 여고생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요코에게 매료되기라도 한듯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한다. 사요코를 괴롭히던 남학생, 사요코를 범하려던 교사. 이들은 각각 사고사와 자살이란 꼬리표를 달고 죽어버렸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카노家의 재산을 노리고 있는 토노 家의 마수가 사요코를 조금씩 압박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노家는 몇백년동안 내려오던 유서깊은 가문으로 신을 모시면서 살았다. 카노家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무녀가 되었고, 그러하기에 철저히 모계중심, 여성우선의 집안이지만, 토노家는 벼락부자 집안으로 피로 범벅된 내분과 갈등을 품고 있으며, 지독할 정도로 남자 중심의 집안이다. 토노家는 카노家의 재산을 손에 넣기 위해 아들 아키라와 카노家의 사요코를 맺어주려 한다. 사촌 료의 약점을 틀어쥐고 집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비열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아키라는 사요코를 손에 넣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뭐, 그렇다고 해서 카노家라고 깨끗하기만 한 건 아니다. 토노家 출신으로 카노家에 시집온 사요코의 숙모는 사요코의 아버지와 불륜 행각을 벌이고, 어머니는 소녀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사요코에게 있어 가족이란 할아버지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카노家의 중심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은 사요코에게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드는데... 이 결심은 사요코의 주변을 비극의 도가니로 더욱 거세게 몰아 붙이기 시작한다.

『길상천녀』2권에는 사요코의 어린 시절의 숨겨진 비밀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사요코가 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있는지 대략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능력은 솔직히 단순히 그것에서만 나온 것이라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어쩌면 정말 사요코에겐 특별한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더 설득력있는 건 역시 과거와 연관된 부분이다. 그것이 사요코를 특별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작품은 사요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여성들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작품이다. 특히 사요코처럼 특별한 경우 그 삶의 질곡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달까. 남들보다 몇배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을 공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니까.

나도 여자인지라 사요코에 대한 또래의 동경이 이해가 된다. 이런 부분은 남자 입장에서 보기엔 이해가 잘 안되겠지. 병원에서 죽은 남학생의 경우 사요코에 대해 집착과도 같은 미움을 보였던 이유가 아마도 여성인 사요코에게 힘으로 제압당한 후 자존심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들은 상대 여성이 자신보다 강하면 찍어 누르고 싶고 콧대를 꺾어주겠다고 결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키라 역시 그런 부류였고.  

사요코의 결심이 무조건 옳다, 라고 하기엔 나도 거리낌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묘한 납득도 간다. 사요코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은 기존의 남성중심의 질서에 편입되든지, 아니면 자신이 만든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 결말을 보면서 사요코를 사랑의 여신 길상천이라 부르긴 힘들지만, 그래도 사요코는 단 하나는 지켜냈다. 어쩌면 사요코에 있어 그것은 모든 비극을 상쇄할 희망의 씨앗으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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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 - 누군가의 이름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단어 이야기
존 베멀먼즈 마르시아노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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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공부를 할 때,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할 때, 책 한 권을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시간만 들여다 보면 지친달까. 내가 하는 공부 역시 일단 시험 대비용이기 때문에 그런 수험서만 들여다 보면 슬슬 좀이 쑤시기 시작한다. 그럴 땐 난 과감하게(?) 책을 덮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택한다. 그럴 경우 택하는 책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이 아니라 - 한 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을 수 없기 때문에 - 외국어 공부와 관련된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

외국어와 관련된 책인데 재미있는 책이 어디 있나고? 잘 찾아 보면 꽤 많다. 수험서처럼 빡빡한 책이 아니라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단어공부를 하거나 그 나라 문화에 대해 배우거나 할 수 있는 책들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의할 것은 그런 책은 교양서 정도로 읽으면 좋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면 안된다. (그런 건 욕심이 지나친 거라 그러지요) 그래도 꽤 도움이 많이 된다.

『샌드위치가 된 샌드위치 백작』은 사람의 이름에서 파생한 영단어에 관한 인문교양 영어단어책이다. 인문교양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단어에 관한 설명에서 그 단어의 어원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짧지만 당시 역사 등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짤막한 토막 상식이지만 단어의 유래에 관한 설명으로는 딱 적당하다고 보여진다. 

이 책의 원제는 Anonyponymous라고 하는데, 딱 봐도 길고 어려운 단어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단어는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니까. 물론 이 단어를 만들면서 조합한 두 단어도 사실 어렵긴 하지만... 이 단어는 익명을 뜻하는 annoymous와 시조를 뜻하는 eponymous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만들어진 Anonyponymous에 '익명의 시조(始祖)'라는 뜻을 붙였다. 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단어의 기원을 찾아 그것과 함께 단어의 뜻을 설명한다는 뜻이다. 책의 제목에 나온 샌드위치 백작에서 먹는 샌드위치가 나왔듯이, 이 책에 수록된 단어도 처음 그 단어가 누구의 이름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럼 누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일까. 여기에 수록된 단어들 중에는 실존 인물의 이름을 따온 것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나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 희곡이나 문학 작품 등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 등 다양한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도 있고, 어라라 이건 처음 보는 것인데 하면서 이런 기원이 있었군 하는 신기한 기분이 드는 단어도 많다. 

나같은 경우 달력에서 월(月)을 뜻하는 단어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이름, 요일을 뜻하는 단어는 게르만 신들에서 따온 이름이란 것이라든지, 입밖으로 꺼내긴 좀 쑥스럽지만 마조히즘이나 새디즘이 실존 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란 건 알고 있다. 또한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처형한 단두대를 만든 기요탱이란 인물 등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하지만 실루엣도 사람 이름에서 따왔다니 깜짝 놀랐다. 그밖에는 개들에게 던져주고 물어 오게 하는 프리스비가 원래는 파이접시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나 견종의 하나인 잭 러셀 테리어나 도베르만 핀셔의 이름이 사람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란 것을 보고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기포가 나오는 욕조를 뜻하는 저쿠지와 관련된 따스한 이야기, 초대형을 뜻하는 점보와 관련된 안타까운 이야기를 비롯해 푸흡하고 웃음이 터질 만한 유래를 가진 단어, 조금은 민망하지만 의외의 수확이었어란 생각을 하게 해준 단어들이 무척 많다. 만약 단어와 발음과 뜻만 설명해 놨으면 정말 지루했을 테지만 저자의 유머러스한 글과 그림이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재미있는 단어 공부를 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연상으로 인한 기억은 기억이 꽤 오래 남는 편인데, 어쩌면 특이한 단어들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겨질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단편 지식으로 다양한 모자의 이름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름, 성서에 등장한 인물과 관련된 단어, 사람의 이름을 딴 요리, 슬랭등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슬랭은 예전에 슬랭만을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역시나 재미있다. 욕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슬랭 속에도 역시 그 문화권만의 고유한 특성이 살아있기 때문에 알아 둬서 나쁠 건 없다. (내가 욕을 할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욕을 할 때 알아 듣긴 해야 하니까 필요하고, 그리고 슬랭이 꼭 욕만을 뜻하는 건 아니라 은어도 많으니 꽤 재미있다) 이런 문화적 특성은 슬랭 뿐만 아니라 그 단어가 만들어진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되어 만들어진 단어는 당대 문화를 반영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쓰이는 단어도 있지만 사멸 직전이나 다시 부활한 단어 역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부록 참조)

누군가의 이름이 기원이 된 단어도 이렇게 많다니!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인상적인 사람이었기에 단어까지 만들어질까 싶은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럴수 밖에 없구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공부를 하다 지쳤을 때, 소설처럼 긴 내용을 읽을 시간이 안나는 자투리 시간 밖에 없을 때, 이럴 때 단어의 기원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단어 사냥도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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