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물러나 주세요
모토 하루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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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하루코라는 작가에 대해선 아예 모르지만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과 표지 그림이 무척 인상적이란 것 두 가지다. BL계에 생식하고 있는 작가가 워낙 많아서 난 좋아하는 몇몇 작가 위주로 작품을 선택하긴 하지만 원하는 때에 늘 그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때때로 이렇게 작가를 무작정 선택해 보는 일이 종종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선택된 이 작품은 내게 어떤 느낌을 남겨주었을까.

타인과 접촉하는 것이 너무나도 고역인 역무원 다나카는 어느 날 우연한 일을 계기로 회사원인 도지마의 관심을 끌게 된다. 서로 간에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 도지마 쪽에서 일방적으로 그를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학창시절 선배가 남긴 마음의 상처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게 된 다나카는 도지마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색하다. 그런 다나카의 반응에는 아랑곳없이 도지마는 조금씩 다나카의 곁으로 다가선다.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도지마를 보는 건 좋다. 필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면서도 허술함이 많다. 다나카는 그런 캐릭터이다. 그런 반면 도지마는 능숙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다나카와의 만남을 리드해 가게 된다. 근데 도지마를 보면서 조금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다나카가 사람들과의 접촉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은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는 것이다. 그랬다가 다나카가 더 멀리 도망가버리면 어쩌려고, 이런 생각이 들었달까.

한 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물러서던 다나카가 조금씩 그 거리를 좁혀오는 도지마에게 곁을 허락하기 시작하게 되지만 다나카의 마음에 심각한 상흔을 남겼던 기억의 주인공이 우연찮게 등장하면서 다나카는 또다시 겁을 집어 먹게 되는데...

뭐랄까, <한 걸음 물러나 주세요>는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두 사람 다 말이 너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랄까. 만화란 것이 말이 없으면 표정이나 행동으로 그 사람의 심리를 표현해 내기에 충분한 메리트가 있는 장르지만 이 작가의 경우 아직 작화 부분이 어색한 점이 많아 눈빛이나 표정, 몸짓만으로 충분한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 데다가 행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달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빈틈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긴 하지만, 그게 또 매력이기도 하달까. 그래서 참 미묘하다.

10년지기 친구 사이에서 싹튼 사랑의 순간을 묘사한 <THINK DRIP> 역시 마찬가지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주세요>와 비슷한 느낌이다. 자신의 감정을 입으로 뱉어내면 그 후에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하는 요시노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해 오해를 사는 다나카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런 반면 미야모토와 도지마는 약간 성급하달까, 그런 면이 닮아 있고. 하여튼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면 애가 타는 건 이쪽이다. (미야모토랑 도지마의 경우처럼)

아직 좀 서투른 스토리와 작화란 생각이 들지만, 따스한 느낌은 충분하다. 앞으로 이 작가가 어떤 작품을 그려낼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대해 보고 싶은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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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4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제목이랑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클릭했더니 스즈야님의 리뷰가!
이번엔 살 작품이 많아서 일단 요건 보류해두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참, 스즈야님이 말한 그 미묘함, 궁금하긴 합니다 ㅋㅋ

스즈야 2011-05-04 23:49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표지랑 제목에 많이 끌리는 편이라 제목이 헐~~ 이런 건 절대 안사요. 부끄러워서.. ㅋㅋㅋ 근데 이건 제목이 시적이라 참 맘에 들었죠.
음.. 그 미묘함... 읽어보시면 납득하실듯. 설명하기 참 미묘한.. (푸핫.. 웬지 말장난같은) 부분이 있거든요.. ^^

2011-05-0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부끄럽다는 말 왤케 공감이 갈까요 ㅋㅋㅋㅋ 정말 너무 자극적인 제목들은 어딘가 콕콕 찔러요 ㅋㅋㅋ

스즈야 2011-05-08 22:02   좋아요 0 | URL
푸핫. 제가 가진 책 중에 가장 그런게 <장교의 젖은 순결>이란 책입니다. 이건 제가 산 건 아니고, BL리뷰 대회 선물이었는데요, 책보자마자 뜨아아아악. 소리가 먼저 나왔다능.
 
남성성과 젠더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3
권김현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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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 무슨 수업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 우리말로 성(性)이란 것을 지칭하는 단어인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차이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 너무 오래전이라서 - 섹스란 것은 일단 신체구조로 봤을 때 나뉘는 성별을 의미하며,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 이성애자), 호모섹슈얼(homosexual, 동성애자),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등에서 볼 수 있듯 사랑하는 대상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신체구조나 성별에 의문이나 위화감을 갖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체적인 부분에 국한되는 성이다라고 대답했고, 젠더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라는 용어에 사용되듯이 자신의 성별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면을 볼 때 이는 정신적인 면이 중시되는 성이라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트랜스젠더가 트랜스섹슈얼로도 쓴다는 걸 몰랐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지만, 사실 이런 정의는 아주 소극적인 정의이며 협소한 정의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남성성을 이야기하기 전에 생물학적인 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볼까.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구별은 어떻게 가능할까. 생물학적 접근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역시 외부성기의 형태일 것이다. 어떤 구조의 외부성기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며 그것이 모호할 경우에는 - 인터섹스의 경우 - 의사의 기준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고 한다. 이럴 경우 생물학적인 성이란 것도 근거가 모호해진다. 우리는 생물학적인 성이라고 하지만 결국 이는 인위적으로 구분된 성이 아닌가 하는 담론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성, 여성이란 꼬리표가 붙게 되고 그 꼬리표에 따라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젠더 규범이란 것 역시도 인위적인 성별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의 성으로 인간을 나누는 것일까. 태고의 인류는 모계사회로 시작했지만 정착을 하게 되면서 부계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그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힘이 더 센 남성쪽으로 기울어져가면서 남성위주의 사회가 되어 왔다는 것이 대체적이고 일반론적인 역사인식이다. 남성은 지배자,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인식이 확고해진 후 그후엔 남성들 사이의 차이와 차별이 생겨났다. 여성은 남성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에 밀려 버려 역사속에서는 거의 묻혀버린 존재로 격하된다. 그렇다 보니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할 때의 이미지는 우열이란 것으로 나뉜다. 대칭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열인 것이다. 결국 남성성이란 각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남성성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할까.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 정신적 형질? 물론 그 의미가 맞긴 하지만 이것이 꼭 남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일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한 때는 남자애로 오인받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다녔는데, 그렇게 보자면 당시에는 나의 성별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진 어떤 남성성이 발현된 결과인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남성성이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난 고작 삼십여년을 살았지만 그 기간동안에도 - 남자와 여자의 차이랄까,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등을 자각할 수 있게 된 후로 - 사회가 원하는 남성상과 남성성이 아주 빠른 변화를 보였다는 걸 보면 남성성이란 불변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한해서 볼 때도 이럴진대, 범위를 더 넓혀 보면 남성성이란 것은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나라와 국적, 인종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는 성질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들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정의처럼 내려져 있는데, 그에 딱 부합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보면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 남성성이란 것은 남자들은 이래야 한다는 대략적인 범위를 정해놓고 그 범주에 들어가면 남성적이고, 그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면 여성적이란 말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대를 상정해 놓고 보자면 시대에 따라 남성성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양반계층이 남성성의 일반적 모습이었을 것이다. 문을 숭상하고 무를 배격하는 이미지의 남성이 조선시대 남성성이었다면 일제시대의 경우에는 폐병쟁이이 허여멀건 얼굴의 남성들이 그 시대 남성들을 대표하는 남성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허약한 남성보다는 나를 지키고 부강하게 하는 무력을 숭상하는 남성성이 한동안 그 시대를 대표했을 것이고,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바람이 불어오면서부터 또다른 이미지의 남성성이 시대를 대표해 왔을 것이다. 요즘은 무슨무슨남이라 붙은 신조어가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는데 이는 예전과 달리 지금은 다양한 남성상과 남성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남성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이렇게 바뀌어 왔다면 소수자들은 어떤 식으로 분류해야 할까. 사실 분류한다는 의미가 저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미리 깔아놓고 하는 생각이지만, 딱히 분류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되려나. 그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라고. 

남장여자, 동성애자, 트랜스남성. 이들은 우리사회의 소수자들이다. 이들은 어디에 속하는 걸까. 일단 동성애자를 보면 게이이든 레즈비언이든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화감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각각 남성에 속하고 여성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장여자는 남성에 속하는 것일까 여성에 속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사람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에 따라 갈린다. 본문에 나와 있듯 <방림한전>의 남장여성은 남자로서 살았고 남자로 죽었다. 딱히 성전환을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정신적으로 남성이었다. 이를 여성의 남성성이라 봐야 할까? 정신적으로 남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남성성이 발현되었다고 봐야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이렇게 보자면 트랜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신체적 성과 정신적인 성이 불일치해서 고통을 받아왔고, 성전환등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성과 신체적 성을 맞추었다. 이들은 남성인가 여성인가. 앞서도 말했듯 정신적인 면을 우선으로 놓고 보자면 이들은 남성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남성이라 부르지 않고 꼭 다른 수식어를 붙인다. 사회규범의 허용범위를 넘는다는 뜻이겠지.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소수자가 아닌 다수의 남성들 역시 자신의 남성성을 시험받고 있다. 마지막 담론인 신자유주의 이후의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부와 권력밖으로 밀려난 남성들은 루저가 되든지 사이버마초가 된다. 이 담론은 앞에 나온 여타의 담론과 달리 내게 큰 거부감을 주었는데, 특히 초식남과 사이버마초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쓴웃음이 지어졌다. 초식남은 먹는 입만 남은 동물적 입이고, 사이버마초들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데, 내가 보기엔 사이버마초들은 근육뇌와 배설할 입만 달린 머리에 여성을 소유물정도로 생각하는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사이버공간에서만 기를 펴는 불쌍한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성적)소수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이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배설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걸 떠나서 생각해 봐도 난 이들의 생각에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앞서 나온 다른 담론들에는 대개 수긍을 할 수 있었지만, 이 담론에 있어서만은 '돈'으로 인생이 갈린 남성들의 이야기에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난 우리나라 남자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고 싶을 때 하는 말이 정력과 군대라는 두마디면 다 정의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정력보강을 위해 해외에 나가거나 이 음식을 먹으면 정력이 좋아진다고 하는 등 이상하게 정력이란 것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난 티비를 보면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남자들을 보면서 얼마나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이 없으면 정력에만 자신의 남성성을 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겼다. 도대체 이런 발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상적인 남성성이라든지 이상적인 남성상의 변화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거의 불변하지 않는 법칙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자면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남성성은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군입대 문제로 이슈가 되는 연예인들은 우리나라의 또다른 남성성인 '군대'의 남성성을 외면했기 때문에 성토의 대상이 된다. 징병제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군대에 일단 다녀오거나 군대에 갈 예정인 사람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매장하는 분위기이다. 대신 스스로 군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입장을 보인다. 지난 3월에 해병대에 입대한 배우 현빈이 여전히 국민적 영웅처럼 대접받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로 여심을 잡았다면 해병대 입대로 남심을 장악했달까.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현빈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것 역시 자신들의 실추된 남성성을 그가 보상해주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데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젠더 규범과 남성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리고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내가 여성의 젠더 규범에 따라 성장해왔기 때문에 자칫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다양한 이면들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진다. 그리고 각각의 젠더규범에 맞춰서 성장한다. 하지만 각각의 젠더규범이란 - 이 책에서는 특히 남성성이란 것으로 말해지지만 - 유일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아주 먼 미래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말 자체가 없어지고 각 개체가 가진 인간성만으로 개인을 판단하는 세상이 오지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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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어 8 - B애+코믹스 172
시노자키 히토요 지음, 코우사카 토오루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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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만화 단행본은 빠르면 6개월에 한 권, 늦어도 대개 1년에 한 권은 나온다. 근데 이건 뭐, 2년 반만에 한 권이 나왔다. 잊고 살만 하면 나오는 게 아니라 잊고 살다 보면 나오는 격이랄까. 그건 일본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듯. 너무너무너무 기다려지고 기대하고 있는 책이 아니니 참을만 하다. 게다가 내용은 조금씩 바뀔 뿐 거의 똑같은 걸 무한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새 책이 나와도 참신하단 생각은 안든다. 근데 왜 보는 거지?? 글쎄, 나도 알 수 없다. 단지 끊을 수 없어서!? (푸하~~)

사실 난 아야세도 싫고 카노도 싫다. 쿠바 형제가 좋다. 형인 호마레는 겉으로 보기엔 좀 무섭지만 나름대로 다정한 면이 있어서 좋고 미사오는 나사 하나 빠진 듯한 모습이 좋다. 세상에 무심하달까, 그래도 일은 잘하니...

『돈이 없어』8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아야세와 카노가 아니라, 아야세와 쿠바 호마레의 이야기이다. 카노 소무쿠는 어찌된 인간이 날로 변태기질이 더해가고 있다. 돈으로 아야세를 구출해준 건 좋은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고집만 부리면서 아야세를 아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든달까. 자신 나름대로의 애정이고 사랑이라 할지라도 내가 보기엔 그건 사육에 불과하다. 특히 새로운 휴대전화를 사주고 삐리리를 시키는 모습이라뉘. 토나온다. 이런 건. 도S가 아니고 미친S. 아야세는 이런 카노가 무서우면서도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허락해 가고 있는데, 이건 아마도 스톡홀름 신드롬이지 싶다.

어쨌거나 카노 소무쿠는 그렇다 치고. 호마레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 버린 작은 새, 아야세를 향한 호마레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간다. 때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흘러넘치지만 허벅지를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삼키며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있다. 물론 이 마음이 사장 카노한테 들켰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후 도쿄만에 수장될지도 모르지만, 그게 두려워서는 아니다. 가뜩이나 잔뜩 주눅들어 있는 아야세를 곤란하게 만들기 싫어서이다. 카노는 분명 쿠바 형제에게 있어 은인이나 다름없겠지만 그건 그거고.

더불어 쿠바 형제의 과거 이야기도 등장한다. 예전에 그런 일을 했었구나, 쿠바 형제는. 지금이야 그쪽에선 손씻고 더 나쁜 일에 발을 담그긴 했지만.... 아야세를 지키고 싶은 호마레의 마음, 그리고 자신을 잘 돌봐주는 호마레를 돕고 싶은 아야세의 마음. 비록 아야세의 마음은 사랑은 아닐지라도 호마레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아야세, 너도 꽤 괜찮은 일을 할 때가 있구나. (쓰담쓰담)

근데 이건 매번 비슷한 이야기의 반복이고 더이상 진전이 없는데 - 진전이 있긴 하지만 너무 느리다 -  언제 완결이 될 것이며, 카노와 아야세가 연결되긴 연결되려나? 내 마음같아선 쿠바 호마레와 아야세를 연결시켜주고 싶은데... 말이지. 아, 그럼 둘 다 카노에게 살해당할지도!? (윽. 또다시 이런 잔인한 생각을... 근데 카노 성격을 보면 그럴수도 있지 않나. 내가 가지지 못하면 너도 가질 수 없어.. 뭐 이런) 뭐 그럴 일은 없겠지.

그건 그렇고, 9권은 또 언제 나오려나?
잊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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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 컷 러브 short cut love - B애+코믹스 181
슈 카오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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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보니 리맨물에 표지 그림도 멋져멋져. 슈 카오리나 미나세 마사라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작가이지만 일단 도전을 해봤다. 하아~~~, 근데 멋진 건 표지의 수트 간지뿐이었더냐.  

삽십대에 접어든 광고 디렉터 아키노는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에 매진해 왔던 탓인지 근래에 들어서는 과거의 정열은 깡그리 잊어버린 듯한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연하의 크리에이터 쿠라다와 함께 일을 하게 된다. 자신만만함을 넘어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쿠라다의 모습에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아키노. 아키노는 그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한 잔 하러 갔다가 작은 소란을 일으키게 된다. 근데 어라라? 그곳에 떠억 하니 나타난 쿠라다.

작가 후기에 씌어 있듯이 이 작품은 자신의 일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연상과 오만불손한 연하의 이야기이다. 함께 일을 하면서 사사건건 다투기도 하지만 아키노의 경우 그건 연하의 후배가 자신을 치고 올라올 것이란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잃어버린 정열을 고스란히 간직한 쿠라다에 대한 질투와 동경이 반반 섞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미묘한 상태는 쿠라다의 과한(?) 정열로 인해 하나의 선을 넘어버리게 되는 계기가 된다. 

콘티를 짤 때 강제 -실외 - 하드 - 러브러브의 4단계로 구성했다는데 이 두사람의 관계는 딱 그렇게 진행된다. 솔직히 말해서 광고계에 일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참 좋았지만 역시 난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는 시점이 굉장히 마음에 안들었다. 강제라뉘! 그것도 자신의 상사를. 아마도 이게 현실이었다면 경찰에 연행될 상황이 되겠지만 이건 아무래도 '이야기'이다 보니 그것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부쩍 가까워지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런 설정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싫어하는 설정이므로 두 사람의 러브러브 모드는 과감히 무시, 광고 관련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읽었더니 그나마 좀 낫더라. 

그래도 자신의 기획이 각하당했다고 빼쳐서 고집부리는 쿠라다의 모습을 보는 거나, 그런 쿠라다에게 사정을 하는 아키노를 보는 건 역시 짜증이 치밀었다. 도대체 일을 뭘로 보는 거냐, 쿠라다 꼬맹이. 너 그러고도 27살이냐! 난 일을 못하는 남자도 싫지만,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남자도 되게 밥맛없다. 쿠라다가 딱 그 모양. 생긴 건 참 멋지지만, 성격이 그 모냥이라서..(쩝)

난 그래서 두 주인공보다 오히려 조연격인 사카키바라 쪽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수트 간지 좔좔 나지, 게다가 멋지게 기른 턱수염하며, 쿨한 성격에 일에 있어서는 맺고 끊음이 확실한 성격. 왜 이 남자가 조연인거냐! 아쉽다, 아쉬워. 분명히 멋진 공이 되었을텐데.....

작화면을 보자면 몇몇 장면에선 마마하라 엘리 분위기가 나긴 하지만 그건 몇몇 장면일뿐이고~~ 나머지는 인체비례가 잘 안맞다거나 신체의 곡선이나 그런 것이 깔끔하지 못해 조금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름대로 괜찮은 작화고 캐릭터의 성격을 잘 표현해낸 그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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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A 테라 : 광포한 지구, 인간의 도전 - 인류의 역사를 바꾼 4대 재난의 기록
리처드 험블린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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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일본 동북부 지방에 진도 9.0의 강력한 지진과 더불어 처오름 10m의 쓰나미가 덮쳐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 · 실종되었고, 원전폭발사고 등 그 여파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게 한 자연의 힘은 거대했다. 만약 그 지진이 오후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고베대지진처럼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을 때 발생했던 것이라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나마 낮시간이라 대피할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이번 지진은 근해 지진으로 지진이 일어난 후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쓰나미가 덮쳐왔다. 그래서 오후에 일어난 지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 지진대비책이 여느 나라보다 확실한 일본이 대지진과 쓰나미 앞에 속수무책 스러져가는 걸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다. 내가 기억하는 지진만 해도 한신대지진을 비롯해 이란 밤시 지진, 인도네시아 지진, 파키스탄 지진, 아이티 지진, 중국 쓰촨성 지진 등이 있는데. 이 모든 지진이 불과 십몇년 안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 피해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지진의 경우 최악의 쓰나미로 인해 수십만명이 사망하고 10개국이 비상사태에 들어가는 등 최악의 강진 및 쓰나미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힘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무력하기만 하다. 특히 지진은 지금의 과학기술로는 언제 발생할지 진단조차 불가해 그 피해규모는 엄청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이런 자연의 힘을 재앙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며, 자연이 악의를 가지고 인간세상을 공격한 것은 아니다. 이는 지구의 지각변동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 신의 시험 또한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일어나는 이런 일에 대해 고스란히 당할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재해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화산이나 쓰나미 발생 감시 시스템을 만들고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진, 기상이변, 화산, 쓰나미 피해와 관련한 사례를 보여주고 그후 지질학과 기상학 등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재난방지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1755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불과 몇분간의 진동으로 수많은 건물이 무너져내렸고, 곧이어 닥친 쓰나미와 화재에 피해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리스본은 원래 지진이 많이 일어나기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지진대책이란 것이 없었다. 석조 건물들은 붕괴되면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고, 목재건물들은 불이 붙으면서 대화재를 일으켰다. 이 지진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이자 황금의 도시라 불렸던 리스본은 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당시의 왕은 리스본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지만 폼발 후작이 왕대신 나서서 지진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리스본 재건에 나섰다. 건물은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건축설계로 지었고, 건물이 무너져도 대피통로가 생길수 있도록 도시 구획을 나누는 등 당시 사회로서는 혁신적인 계획을 수행했다. 

1783년 여름, 유럽에 이상 기상현상이 발생했다. 안개, 폭풍우, 낙뢰, 지진, 화산, 광견병에 걸린 개들, 흑열병의 유행 등을 비롯해 유성의 폭발까지, 세계 종말의 전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상한 현상들이 많이 관찰되었다. 이 현상은 아이슬란드의 라카기가르 분화가 8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분출하는 화산재가 대기를 덮어 여름에는 짙은 안개가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요즘의 온난화와는 달리 지구냉각화 현상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분화시에도 발생하기도 했다. 

이 기상이변은 지질학과 기상학 분야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피뢰침과 기구 등도 이 사건을 계기로 발명되었다. 예전에는 이런 현상들이 신의 징벌이라 여겨졌지만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정확히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었겠지만, 이런 현상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근현대 과학 기술의 발달에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순다해협에 있는 크라카타우 화산섬이 3개월에 걸쳐 폭발, 결국 화산섬 자체가 사라지는 대폭발로 이어졌다. 화산 폭발은 화산재와 낙석 뿐만 아니라 쓰나미까지 일으켜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크라카타우 화산섬은 폭발로 사라졌지만 대신 아낙 크라카타우 화산섬이 솟아 올라 매년 급속도의 성장을 보이고 있다. 또다시 분화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946년의 하와이 힐로 쓰나미에 관해서는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 적이 있다. 쓰나미의 전조현상인 바닷물이 급속도로 후퇴하는 현상이 보였지만 사람들은 신기하게만 생각할 뿐 대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첫번째 두번째 해일은 비교적 파고가 낮아 사람들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뒤에 밀려온 쓰나미는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힐로 쓰나미는 하와이에 쓰나미 경보시스템을 마련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후 대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쓰나미 경보가 울려 사람들은 점점 그 경보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번 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역시 하와이에 쓰나미 경보가 울렸지만 의외로 파고가 낮아 피해는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사람들은 힐로 쓰나미 이후 몇 번 정도는 대피를 했지만 그후에는 쓰나미 경보가 울려도 대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구경을 하러 나가는 등 태연자약하게 대처했지만, 1960년 다시 힐로에 대형 쓰나미가 밀려와 수많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냈다. 

리스본 대지진의 경우 대지진 이전에도 수많은 지진 피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지진 이전까지 별다른 지진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힐로 쓰나미의 경우 쓰나미 경보 시스템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경보때문에 사람들이 경계심이 약해져 또다시 큰 피해를 냈다. 인도네시아 대지진과 쓰나미의 경우 쓰나미 경보시스템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더욱더 큰 피해를 가져왔다. 이번에 있었던 일본 대지진의 경우 근해 쓰나미라서 지진 발생 후 1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쓰나미가 덮쳐 많은 사상사를 냈지만, 인도네시아 쓰나미의 경우 몇시간의 피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보시스템 자체가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런 경우는 자연의 파괴력 + 인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미국 뉴올리언스 허리케인 피해처럼 말이다.  

인간은 수많은 자연재해를 경험하면서 나름대로의 지식을 축적해 왔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세워왔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금세 잊어 버린다. 인도네시아나 포르투갈의 리스본처럼 지각판이 만나는 곳은 잦은 지진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지진이나 쓰나미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었다. 자연의 힘에 파괴된 도시를 수복하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다음 번에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가 닥쳤을 때 또다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뿐이다.

위에서 본 네가지 사례를 보면 단 한가지만 일어난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진과 쓰나미, 화산 분화와 쓰나미, 화산 분화와 기상이변 등 하나의 재해가 발생하면 부수적으로 다른 재해 역시 함께 발생한다. 물론 내륙에서 발생한 지진의 경우 쓰나미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지만, 고베한신대지진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기도 한다. 이번 일본 동북지방 대지진 역시 겟센누마시의 경우 대화재로 거의 다 타버렸다. 가스누출과 전기누전등에 의한 것이다. 일본인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가스와 전기를 차단하도록 배운다지만 그토록 강력한 지진앞에서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을 것 같다. 또한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원전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다.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원전 사고는 자연재해로 발생한 사고는 아니지만, 여전히 죽음의 도시로 남아있다. 일본 후쿠시마 지방 역시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도쿄전력의 잘못된 판단으로 사태의 심각성이 더해진 경우인데, 이렇듯 발달된 문명은 자연의 파괴력을 더욱 가중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자연의 파괴적인 힘 + 인재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를 정복했다고 여겨왔다. 하지만 자연의 파괴적인 힘앞에선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자연의 힘앞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재해는 지질학 및 기상학 등 자연재해와 관련한 다양한 학문을 발전시켰고,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해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의 가공할 힘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 버린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살고 있는지도 쉽게 잊어 버린다. 물론 늘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근심 걱정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늘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은 자연의 힘은 너무나도 거대하다는 것과 역사에 기록된 대규모 자연재해 사건들이 준 뼈아픈 교훈을 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자연에 대항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재해에 대비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기도 하다. 비록 지진의 경우 아직 대책이 없긴 하지만 화산 분화나 쓰나미의 경우,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책을 세우고 대비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결론이지만 인간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할 피해의 규모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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