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2
박해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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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과 표지 사진을 보면서 한국의 아파트에 관한 내용이란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읽었던 부동산 투기나 아파트 과열 경쟁, 그로 인해 양산되는 하우스푸어와 관련된 내용, 즉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아파트의 정치 · 경제적 문제에 대한 담론일 거란 선입관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목차를 읽어나가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본문을 읽어나가면서는 내 선입관이 완전히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책은 내 생각보다 광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국의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정치 · 경제· 사회· 문화 · 역사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책은 픽션과 팩트라는 각각의 부제를 달고 총 2부로 나뉘어진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픽션을 보면 무척 흥미로운 시각으로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무척 추상적이다, 라는 생각도 들지만 곰곰히 뜯어 살펴보면 매우 구체적인 시각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선의 모험>은 마포 아파트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건설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모더니티란 개념이 처음 정착되기까지의 여정을 훑어보며 설명되고 있다. 처음엔 항공사진으로 시작해서 밀라노의 거리, 경성의 거리를 지나 마포아파트 건축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모더니티란 개념의 도입과 관련이 되어 있다. 한국사회에서의 아파트의 출현이란 종래의 전근대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주거형태의 도입이었기 때문이다. 반발과 수용의 시기, 그것이 바로 마포아파트 시대였고, 한국 사회의 현대적인 주거형태의 첫 정착지가 되었다.

<아파트의 자서전>은 아파트 자체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花樣年華>의 내용과도 맞물리는데 아파트를 처음 경험한 사람들이 아파트를 어떤 방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의 영향을 사람에게 주고 있는지, 아파트 생활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이런 부분은 아파트 문화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주거 공간이 변하면서 함께 변화한 생활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파트가 어떤 식으로 현대적인 계층 사회를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한 것도 이 부분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영웅시대>의 경우에는 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그의 인생을 통해 아파트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아파트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제와 결합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사회 내에서 중산층이라 불리는 계급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팩트는 앞에 나온 이러한 이야기를 사실적인 서술방식으로 보여준다. 픽션의 이야기가 조금은 추상적이었다면 팩트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이다. 내용의 서술방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큰 흐름은 픽션의 것과 같다. 픽션을 읽고 팩트를 읽으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그림으로 그려진달까.

한국사회에 있어서 아파트란 것은 단순히 하나의 주거문화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조국 근대화 사업 방안에 맞춰 탄생한 아파트는 우리의 삶은 크게 바꾸어 놓았다. 예전같으면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말을 썼겠지만, 지금은 내 아파트 마련의 꿈으로 바뀌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이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붐과 맞물려 일반인에게까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꿈을 꾸게 했고, 용케 돈을 번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끝물에 걸려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집을 가진 빈자(하우스푸어)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아파트는 어떤 지역, 어떤 브랜드, 면적 등에 따라 다른 계층을 양산했고, 미래를 저당 잡아 현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단순히 면적을 넓혀 이사하는 재미가 아니라 몇 채의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그것으로 떼돈을 벌려는 투기 심리 또한 그 언저리에 위치해 있다. 지나친 욕심은 미래를 위한 자리를 조금도 남겨 놓지 않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에 전해질 것이다.

이런 자기충족적 욕구는 한국 사회와 정치에 대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만드는 계기도 되었다. 어쩌면 1960년대 마포아파트를 건설하면서 계획했던 정부의 음모가 이제 그 틀을 완벽하게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아파트는 대개 획일화된 구조이기 때문에 각 가구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상품들이 개발되어 왔고, 그것이 또하나의 아파트 문화로 자리잡았다. 또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상권의 발달등으로 이어졌고, 가정의 생활양식 역시 많은 변화가 보였다. 이러한 것들은 한국의 산업 전반에 있어 급속한 발달을 가져온 계기가 되기도 했으나, 반대로 상품회전율이 급속도로 빨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십년이상 쓸 제품을 이젠 채 5년도 쓰지 않고 바꾸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파트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돈을 빨아들여 건설회사의 배를 불리고, 기업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돈주머니로 전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주의 의미가 아니라 소유의 의미로 변질되어 투기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존재, 또다른 계층분화 현상을 심화시키는 존재, 경기를 부양한다면서 건설회사의 배만 불려주는 정부의 경제 정책의 중심이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한국의 아파트. 한국의 아파트는 언제쯤이면 원래의 목적에 근접한 구조물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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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할리의 마차
히로아키 사무라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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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무한의 주인』의 작가로 잘 알려진 사무라 히로아키의 신작이다. 이『브래드 할리의 마차』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꽤나 많은 반감을 사고 있는 듯 해서 읽게 되었는데 -이런 건 궁금해서 못참는다.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성격 (별로 안좋죠)- , 나 역시 읽고 나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떤 면에서 불편했느냐. 이 만화를 그린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 그건 후기를 봐도 마찬가지다 - 이 만화를 보면 일제시대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폭동과 소요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년에 한 번 고아원 출신 여자 아이들을 공급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무기수들의 성적 욕구가 폭력성으로 이어지기 전에 그를 막기 위한 방법이라는데, 도대체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참 궁금하다. 

수십명의 남자들이 고작 열서너 살 된 여자 아이를 집단으로 윤간한다, 라. 게다가 폭력성 정도가 높은 무기수일수록 여자아이에 대해 가하는 폭행의 수위도 높아진다. 이 여자아이들은 고작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약 일주일간 살아 있게 되면 독약으로 살해한 후 암매장한다. 설정을 보면 무척 잔혹한 이야기이다. 여성이란 존재를 물화(物化)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여자 아이들은 단지 수감자들의 성적 요구를 배출할 존재일 뿐이다. 끌려온 여자 아이들은 파스카의 양이라 불리며, 수감자들은 이 일주일간을 파스카의 축제라 부른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그들 중에는 죄책감으로 그 사실에 눈을 돌려버리는 수감자도 있고, 끌려온 아이를 탈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간수도 있다. 또한 파스카의 축제를 기다린 한 수감자가 파스카의 양이 되어 끌려온 자신의 딸을 데리고 탈출하려다 사살되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으로 이 여자아이들의 고통을 무마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이런 행위는 정당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끌려오게 된 것일까. 책 제목에 나와 있는 것처럼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는 것은 대외적으로는 귀족 가문인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된다는 의미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양녀가 아닌 파스카의 양이 되어 죽어간다. 브래드 할리의 양녀가 되어 브래드 할리 성공녀 가극단에 들어가 공연을 할 수있는 자격을 얻는다는 것은 고아가 된 소녀들의 꿈이기도 했지만, 그건 꿈에 불과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꿈을 안고 브래드 할리의 마차를 타기 위해 서로를 해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도 있었고, 브래드 할리家의 양녀가 되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사라진 소녀의 이야기도 있었다. 매년 많은 수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선택되지만 브래드 할리家로 오는 아이들의 수가 턱없이 적어 그것에 의문을 가지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의 내용을 차곡차곡 뜯어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어둠과 악마적 본성을 그리고 있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결말부가 어수선한 데다가, 설정 자체가 불쾌해서 불편한 기분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가 후기를 보면서 또다시 불쾌해진 점은 이 작품의 의도가 "야한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될 수 있는 거지. 집단 윤간이 어떻게 야한 만화가 되는 거지? 도대체 이런 사고방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다음엔 여고생이 마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데, 이 말은 불쾌함의 최고정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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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 슈퍼 루비코믹스 069
아이다 사키 글, 유기 야마다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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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돌아오셨다!!!
오빠도 아니고 웬 형님?? (이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본인은 여자라서 남자에게 형님이란 말은 원래 쓰지 않지요. 원래는! - 야쿠자였던 형님이기 때문에 형님이 돌아오셨다는게 맞는 표현이겠지요)

보고 싶었어요, 사와라기씨. 아이다 사키와 야마다 유기의 환상적인 콤비의 전작『고작 사랑이잖아』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던 사와라기씨가 돌아왔다. 홀아비의 몸으로 마코토를 키우고 있는 이즈미와 형사가 된 신의 사랑이 드디어 이루어지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이즈미를 늘 뒤에서 서포트해주던 형님의 포스를 잊을 수 없었다. 마약관련 사건으로 체포되면서 "재판에도 오지말고, 면회도 오지말고, 출소하면 제일 먼저 찾아갈테니 기다리고 있어"란 말만을 남긴 사와라기씨의 이야기가 더 보고 싶었는데, 이 작품으로 완전 소원 성취한 셈이다.

이야기는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간 사와라기가 교도소에서 만났던 슈야란 청년과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도대체 그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슈야는 부모의 어머니의 학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타인을 믿지 못하는 성향으로 자라왔고, 그것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격으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교도소에서도 역시 그런 생활을 이어져 사와라기와는 다른 야쿠자 조직에 속해 있던 소네의 여자로 살아간다. 출소하면 야쿠자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기로 마음먹은 사와라기는 슈야의 접근을 허락치 않지만 소네에게 폭행당하던 슈야를 구해주고 만다. 이후 사와라기는 먼저 출소, 스낵바를 차린 후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사와라기 앞에 슈야가 호스트로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채 나타난 슈야는 사와라기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지만, 어느 비오는 날 밤 버려진 고양이를 안고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이때부터 두 사람과 한 마리의 동거가 시작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와라기는 슈야와의 거리를 두고 있다. 교도소 시절과 전혀 변함없는 슈야의 태도가 문제였겠지. 슈야는 사와라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조금씩 변화해 나가기 시작하지만, 우연히 출소한 소네와 맞닥뜨리게 되고 마는데...

야쿠자 생활을 깨끗하게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와라기는 이전과 같은 포스는 없어졌지만, 한층 부드러워졌다. 어떻게 보면 약간 초췌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예전의 날선 인상은 많이 없어졌달까. 물론 때때로 예전의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 아마도 어쩔 수 없겠지 - 많이 부드러워졌다. 형님일 때도 좋았지만 역시 이 모습이 더 맘에 든다. 개인적으로는.

슈야를 귀찮아 하면서도 슈야의 변해가는 모습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와라기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그런 둘 앞에 나타난 소네는... 천하제일의 악당이었다. 생긴 것도 기분 나쁘게 생겨서. (쩝)

슈야의 경우 처음엔 이제껏 자신이 타인과 맺어온 관계방식대로 사와라기에게 다가가지만, 그것으로 사와라기의 마음을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받고 싶으면 변해라.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스스로의 손으로 잡아라. 슈야에겐 이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처음엔 슈야란 캐릭터가 참 별로였는데,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자니 조금은(?) 사랑스럽게 느껴지게 되었다. (사와라기씨를 봐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이렇게 변해가는 슈야와 슈야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사와라기 앞에 나타난 소네때문에 결국 슈야는 사와라기의 곁을 떠나고 만다. 슈야가 사와라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단 하나였으니까. 이런 걸 보면 슈야의 삶도 참 파란만장하다. 고작 스물몇살에, 이런 일 저런 일,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다 겪고 마니까.

해피엔딩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그리고 힘들었다. 하지만 쉽게 얻어지는 사랑은 쉽게 식기 마련이고, 쉽게 사라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이 둘 사이에선 이런 일들이 필요했을지도 모르지.

조연으로 등장한 하스미씨. 무척 멋있었습니다. 사와라기를 여전히 잘 보살펴 주고 있기도 하고, 사와라기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고. 이 분도 나름대로 사와라기를 지켜주는 분이었지. 그리고 사람은 아니지만 꼬마란 이름을 얻는 고양이. 아웅, 귀여워. 특히 밥 달라고 양양거리는 거 보면서 깨물어 주고 싶었다. 전편의 주인공인 이즈미와 신은 여전히 알콩달콩 귀엽게 사랑하고 있고, 훌쩍 커버린 마코토는 귀염성이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귀엽다.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게 탈일지도..  

참.. 형님 이야기가 소설로도 나왔단다. 슈야와 사와라기씨의 후일담을 담은 花片雪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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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이해인 지음, 황규백 그림 / 샘터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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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예전에 미니홈피를 운영할 때 랜덤으로 들어간 다른 사람들의 홈피에 인용된 시로 처음 만났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 홈피나 블로그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만날 수가 있었는데, 정작 책으로 읽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고 예쁜 표지를 넘겼다. 

총 여섯개의 장으로 구분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수필, 시, 편지, 기도와 묵상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수록되어 있다. 시는 많이 접했지만 산문은 처음이라 수녀님의 다른 모습을 뵙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와 달리 수필이나 일기에 드러나는 수녀님의 모습은 뭐랄까 소녀적인 감성이 가득했다. 자신의 투병생활에 관한 일, 어머니에 대한 추억, 친구와의 추억 등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애정과 감사함, 그리움은 평범한 단어로 씌어져 있지만 반짝반짝 빛이 난다.

어렵고 난해한 단어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문인도 많지만 난 역시 이렇게 마음속의 경계를 확 풀게 만드는 쉬운 단어로 씌어진 글이 좋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담은 글을 보면서 엄마에게 더 잘해야겠단 생각도 들고, 친구를 떠올리며 쓴 편지 일기를 보면서 난 고작해야 친구와 문자나 주고받을 뿐인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일기도 한참이나 쓰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대학시절까지는 매년 일기장을 사서 조금씩이나마 일기를 썼지만 그후론 일기는 커녕 다이어리에 일정조차 기입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수녀님의 일기에 담겨 있는 소박하지만 정겨운 일상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록처럼 여겨져 괜시리 샘도 났다. 나도 매일매일 비슷비슷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일기로 적어 보면 매순간이 달리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오늘이 가면 어제가 된다. 지금이 가고 나면 과거가 된다.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일상이라도 틀림없이 감사할 일이 있을테고, 화나는 일도 있었을테고, 기뻐했던 일도 있었을테고, 즐겁고 행복한 일도 있었을텐데, 난 그런 순간을 그냥 지나쳐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수녀님의 글을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수녀님의 수녀로서의 삶과 인간으로서의 삶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는 것이다. 일상에 관한 이야기나 어머니, 친구, 지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수녀님의 인간적인 매력이 그대로 묻어나지만, 누군가를 위한 기도나 묵상에 관한 글을 보면 수녀님으로서의 삶이 그대로 묻어난다. 난 수녀님들을 볼 때마다 신에 귀의한 분들로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보면서 그건 나의 선입관이란 걸 깨달았다.

또한 수녀님의 인맥에도 무척 놀랐다. 같은 종교에 귀의하신 분들과는 당연히 친분이 있겠지만, 종교를 넘어선 만남, 문인들이나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비롯해 우리같은 일반인들, 더 나아가서는 죄를 짓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수녀님의 행적을 밟아가다 보면 참 부지런하신 분이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도 많은 책들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메모와 일기, 편지 등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러하기에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선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닐까.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글과 잘 어울리는 그림들도 참 좋았다. 또한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이해인 수녀님의 소녀같은 미소도 참 좋았다. 이렇게 미소가 해맑은 분이라서 글도 이렇게 해맑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평범한 단어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반짝임. 수녀님의 글은 꼭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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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ァインダ-の熱情 初回限定版 (ビ-ボ-イコミックス) [コミック]
야마네 아야노 지음 / リブレ出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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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더 시리즈 6권! 언제 나올까 싶었는데 드디어 나왔다. 물론 번역본 5권이 나온 건 얼마되지 않지만, 원서로 따지면 거의 2년만에 나왔으니 오랜만이지. 눈을 뗄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작화에 스토리도 내 타입이고, 아~~ 볼 때 마다 떨리는 이 기분. (아사미와  페이롱, 완전 좋아. 두 사람 다 넘쳐흐르는 색기는 어쩔!)

특종 사진을 찍으려다 우연히 뒷세계의 아름다운 실력자 아사미 류이치로와 만나게 되어 그의 연인 아닌 연인이 되어 살아 가고 있는 프리랜서 사진기자 타카바 아키히토. 이번엔 어떤 사건이 터지게 될까. 홍콩편이 워낙 스케일이 컸던지라 이번엔 숨고르기 정도가 아닐지.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이야기는 <続・かりそめの楽園 ブラッディマリーの海に溺れて>은 홍콩에서의 감금 생활 및 일본 · 홍콩 · 러시아의 실력자들이 한판 붙었던 그 사건에서 해방된 아키히토가 아사미와 동반 귀국하기 전에 들렀던 휴양지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내용이다. 총격으로 상처를 입은 아사미의 휴양 겸 감금을 당한채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야 했던 아키히토의 트라우마 극복을 목적으로 한 여행에 관한 이야기인데, 알고 보니 아키히토의 회상이었군. 

어쨌거나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온 아키히토는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가려고 아사미로부터 또 도망을 치지만, 역시 아사미는 아키히토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은 존재였으니... 집으로 돌아가면 뭐해. 짐이란 짐은 아사미가 싹 자신의 집으로 옮겨놨는데..뭐. 그러나 저러나 아키히토가 갈 곳이 없어져야 자신에게 돌아올거라 생각하는 아사미도 참 재미있다. 어떻게 보면 아사미답고, 또 어떻게 보면 아사미답지 않달까.  

<エスケイプ アンド ラブ>는 자신과 사는 세상이 너무나도 다른 아사미를 피해 도망다니는 아키히토와 아키히토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관찰(?)하는 아사미의 이야기와 더불어 아키히토가 사진기자로서 특종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이번에는 아이돌의 스토커와 관련한 트러블에 휘말리는 아키히토. 어떻게 보면 아키히토는 트러블을 몰고 다니는 존재다. 아사미도 인정했듯이.

아사미가 그토록 충고해도 귓등으로 흘려듣더니, 결국 위험에 쳐해서 또다시 아사미의 도움을 받고 마는 아키히토였다. 그렇게 보자면 아사미는 아키히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 그를 구해주는 뒷세계의 기사님!? 

뭐, 이 스토커가 알고 보니 아사미의 일과 관련된 인물이어서 아사미가 아키히토를 도와줬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지. 홍콩에서는 자신의 목숨과 거대한 이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아키히토를 구해준 아사미가 아니더냐. 그런 반면 아키히토는 특종이냐, 아사미냐를 두고 고민을 하는데, 그건 이미 정해진 거 아니니, 아키히토. 근데 재미있는 건 아키히토는 죽어라 고민을 하는데, 정작 아사미 본인은 그 일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

도망을 쳐도 결국 아사미에게로 돌아오게 되는 아키히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 왔던 아키히토에게 있어 고급회원제 클럽의 오너 및 무기거래상으로 살아가는 아사미의 생활이란 것이 거북할 뿐이지만, 이미 아사미에게 마음을 허락해 버렸으니, 결국 요요처럼 돌아오고 마는 거지. 아사미는 그런 아키히토가 귀여워 견딜 수 없나 보다. 아사미의 입에서 귀엽다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웬지 답지 않아, 이런 생각도 들지만 그것도 아키히토를 만남으로서 바뀐 아사미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뒤에 수록된 단편은『파인더의 표적』에 실렸던 단편 <사랑하는 식물>로 시작되는 '사랑하는~' 시리즈 이다. 이번에는 수학여행편인데 사진기자 겸 보호자로 아키히토가 함께 동행한다. 난 아키히토가 이 이야기에 왜 나왔냐 싶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교토에서의 수학여행, 아직 10대인 히야마와 미즈노가 보여주는 귀여운 사랑 이야기~~ 더불어 아키히토때문에 교토에 등장한 아사미도 볼 수 있었다. (럭키!)


 
 

초회한정판 부록인 소책자에는 짧은 만화가 실려있다. 페이롱과 아사미가 동시에 등장. (올레!) 오랜만에 눈이 무척 즐거워졌달까. 비록 페이롱의 중국옷을 입은 모습을 못봐서 그게 매우 몹시 아쉽지만, 그래도 페이롱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진짜 만족. 내용으로 봐서는 동인지 내용이다. (냐하하) 그 이상은 비밀. 초회한정판이라 일반 단행본에 비해 가격은 좀 비쌌지만 소책자로 더블 만족이다. 

사진출처 : 초회한정판 부록 소책자 앞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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