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 MW 1
테츠카 오사무 글 그림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데즈카 오사무라고 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바로 우주소년 아톰(원제 : 철완 아톰)이다. 귀엽고 똘망똘망한 로봇 소년 아톰이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적들을 쳐부수는 애니메이션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애니메이션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란 이야기도 회자되고 있다.
아톰은 일본, 아톰과 싸우는 거대한 적들은 바로 미국을 상징한다고 이야기되어 진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측면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 데즈카 오사무가 우주소년 아톰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 기술문명의 급속한 발달이 가져온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즉, 인간의 편의와 이기를 위해 발달해온 과학 기술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위협하고, 인간이 발딛고 살아가는 지구를 파괴해 가는 것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

왜 아톰 이야기를 먼저 꺼냈냐면,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속에는 과학기술문명 발달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고, 인간의 악한 본성을 나무라는 것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다.

뮤 역시 그러한 면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아톰을 보는 대상이 조금 어린 연령층이라면 뮤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만화이다. 뮤라는 가공의 생화학무기가 가져온 비극과 그것이 십수년이 지난 후에도 악몽처럼 남아 한 인간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십육년전 오키나와 근처에 있는 작은 섬 오키노마 후네지마에서 발생한 참극. 그것은 한 외국의 군사 시설에서 흘러나온 뮤라는 치명적 생화학 무기로 인한 것이있다. 그것으로 인해 섬 주민 800명을 비롯, 섬에 머무르던 모든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가 몰살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용하게 처리되어 지금 그 참극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 사건 관련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섬에 생존자 두 명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둘은 현재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유키 미치오와 신부인 가라이다.

유키는 뮤에 중독된 후유증으로 뇌와 심장이 공격당했고, 현재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단 몸의 고통뿐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말살된 학살의 현장을 본 목격자라면 그 정신적 충격은 이루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키는 자신을 망가뜨린 뮤를 찾아내 전세계에 퍼뜨리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생각으로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한다. 그 와중에 아이도, 어른도, 남자도 여자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이용하며, 살인도 불사한다.
신부 가라이는 유키를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같은 참사를 겪었던 동료이자 유키에 대한 애정으로 늘 마음이 흔들린다.

뮤에서는 유키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자를 강간하거나, 수단이나 도구로 여자들을 성적으로 이용하고, 결혼을 빙자해 이용하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지만, 유키와 가라이의 동성애 묘사 장면도 많다. 하지만, 동성애물이라고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그것은 동병상련을 겪는 두 사람의 상처 핥아주기 정도로 생각하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주욱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연 유키의 행위들이 정당하냐는 것이었다. 유키의 반사회적이고 악마적인 행동은 과연 뮤에 중독된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유키가 원래 자신의 내면에 품고 있던 악함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떤 이유이든 간에, 그가 저지른 행위는 악행임에는 틀림없다.

수단과 방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아니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 주변의 것을 모두 파괴하고 싶은 충동뿐이었을까.
나는 결국 유키는 악에 가깝다고 판단내렸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은 더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물론 가라이가 했던 방식이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십 수년 전 은폐되었던 사건이 지금 드러난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정치가는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군중들은 군중심리에 이끌려 뮤와 뮤에 의해 벌어진 참극에 대한 진실을 까발리라 하지만, 어느새 그것은 잊혀지고 말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아직 미국의 영향이 남아있던 시기(오키나와는 미군 점령지였다), 일본의 주권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를 외치던 검사를 보며, 난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렸다.

아직도 정치적 군사적으로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우리는 미군들이 일으킨 범죄나 미군 군사 시설로 인해 생기는 피해에 대해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겉모습은 독립국가이지만, 속으로는 미국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 통감한다.
더불어, 어느 나라에나 있는 정치의 부패와 더불어 은폐된 사건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조금 이야기가 엇나간 것 같지만, 뮤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하였다. 폭력, 살인, 테러, 강간을 비롯해 돈으로 움직이는 정치, 권력으로 움직이는 국가 등 여러가지 사회악을 유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폭넓게 묘사하고 있는 뮤는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만화 이상의 만화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없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선에 가까운, 또한 한없이 악에 가까운 것만이 존재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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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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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은 독일의 사랑 나무 이야기란 민담으로 시작한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에는 정령이 깃들어 있어, 그 나무에 편지를 넣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 이야기처럼 소설의 주인공 쇼타가 살고 있는 쇼난의 히로마치 숲에도 오래된 벚나무가 편지를 전해주는 사랑 나무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이용하는 사람은 없고 지금은 쇼타가 아르바이트하는 아다치 교수와 어떤 소녀와의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왠지 동화같다.... 처음엔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인 쇼타는 중학교 2년생인데다가, 이런 이야기로 먼저 시작을 하니 말이다.
사실, 동화같은 이야기도 맞고, 성장 소설도 맞다.
그리고 약간의 미스터리가 섞여 있기도 하다.
왠지 장르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복잡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설의 전반부는 쇼타가 일하는 사스케도 심부름 센터가 해결하는 일을 주로 보여 준다. 도난당한 돈을 찾아주고, 도난범을 찾는다든지, 호텔에서 없어진 아이를 찾는 등...
그러나 중반부로 넘어 가면서 사스케도 심부름센터의 딸 케이의 진짜 아빠 찾기가 시작된다. 도대체 케이의 진짜 아빠는 누굴까.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케이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 간다. 케이의 엄마인 구미씨와 함께 사진을 찍은 도시히코란 남자, 그리고 치과의사인 요코씨, 케이의 지금 아빠 사스케씨는 옛날엔 어떤 관계였을까.
게다가 아다치 선생의 손녀이자 도시히코의 딸 마리까지 등장함으로써 수수께끼는 더욱 더 커진다. 설마 케이와 마리가 이복 자매?

그 이야기는 옛날 도시히코가 고교 시절엔에 쓴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이야기로 연결되며 궁금증을 더한다. 그 이야기는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가 우주를 삼십만년동안 여행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별을 닦아 주는 이야기로, 별닦이 토끼가 별을 닦아주고 그 별이 빛나면 사랑이 이루어진 것이고, 별이 빛이 나지 않으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란다.

결국 도시히코와 요코가 닦아 달라고 했던 별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구미씨와 사스케씨의 별이 빛나게 되었던 모양이다. 즉, 케이의 진짜 아빠는 사스케씨였다. 그 먼 옛날 독일 여행에서의 오해로 모든 것이 어긋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케이의 현재 고민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독일 민담과 창작 이야기가 적절히 뒤섞여 동화 같은 분위기를 내면서도, 가족의 비밀을 푸는 미스터리 형식과 쇼타와 케이의 첫사랑 이야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난삽하게 뒤죽박죽된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어울려 매끄럽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스다 준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다. 그래서 굉장히 흥미가 갔고, 제목 또한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따뜻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 지금은 어른이 된 우리들이 거쳐왔을 케이와 쇼타의 이야기, 그리고 케이와 쇼타가 커가면서 격을 지금 우리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고, 절대 단절되지 않는다. 그 연결고리가 이 소설속에 고스란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곧 다가올 어른들의 시간을, 어른들에게는 지나버린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일억백만광년 머너에 사는 토끼.

왠지 어디선가 나만의 별을 닦아 줄 별닦이 토끼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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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야기를 하고싶어 - 뉴 루비코믹스 770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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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는 지금껏 읽었던 야마시타 토모코의 작품 중(그래봤자 이제 네권째이지만) 젤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단편집에는 총 4편이 실려 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달라 더욱더 즐겁게 읽었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는 우연히 고백했다가 그 사랑이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아니 오히려 거절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남자, 미나리. 그는 이제껏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했고, 연애를 한다손 쳐도 상처를 받아 진지한 관계가 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러나 노말인 신카와가 의외로 미나리의 고백을 순순히 받아 들인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미나리. 미나리는 신카와의 적극적인 대시에 움츠러 들지만, 신카와는 꿋꿋하다.

보통 게이였던 남자쪽이 적극성을 가지고 노말인 남자를 그쪽 세계로 끌어들이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엔 노말이라 생각한 남자쪽이 더 적극적이다. 색다른 전개 방식에 오호라, 이거 흥미로운데... 라는 생각이 이 단편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 둘을 보면서, 고백에서 시작해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덩달아 내 마음도 이 둘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뭐랄까, 난 보통 BL물을 보면서도 주인공에게 반한다거나, 그들의 사랑을 동경해 본 적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 그만큼 순수하고 알콩달콩 귀엽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래서 서로 좋아하게 되면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러한 과정을 코믹한 요소를 섞어 달콤하게 잘 표현했다. 특히나, 미나리의 감정적 변화가 눈에 많이 눈에 띈다. 불안해하지만 그래서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공개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헤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픈 기억이 언젠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건 원래 그런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헤어짐이 아파 사랑을 못한다면 그건 바보다. 사랑은 함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 어차피.

두번째 작품인 <RE : hello>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고생인 조카의 눈으로 본 삼촌의 이야기인데, 애절한 느낌이 강한 단편이었다.

식기도 두 벌씩, 핸드폰도 두 개, 삼촌이 피는 담배와 그 누군가가 피웠을 담배.
삼촌의 집엔 모든 것이 두 개씩이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삼촌은 어차피 택배일거야라고 하면서도 급하게 뛰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의 낡은 핸드폰속에서 발견한 건, 차마 보내지 못한 문자들.. 그건 벌써 4년분이나 쌓여 있었다.

굉장히 애절한 단편이었는데, 미송신된 문자를 보고 나도 조카와 함께 울컥했다.. 조카는 엉엉 울었지만, 난 가슴이 아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이제는 더이상 오지 않을 사람을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한 남자. 그의 시간을 공유할 누군가가 얼른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February messanger>는 두 번째 단편을 읽고, 한껏 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나를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게 만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사리 고백하지 못하는 친구 사이의 이야기인데, 어찌나 귀엽던지... 읽는 내내 큭큭댔다.

특히나, 산타 모자를 쓰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봉변당하는 순간, 나타는 친구..
헬멧을 내밀고 얼른 타라고 했는데....
밑의 그림을 보니 자전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플정도였다. 정말이지 귀엽고 발랄한 단편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Spank Swank!>는 게이이지만 취향은 노말인 남자와 헤테로 섹슈얼이지만 취향은 M인 남자의 이야기이다. 서로 자신의 성벽이나 취향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이야기인데, 코믹하면서도 세상의 편견때문에 상처받았던 남자의 이야기이다. 은근히 웃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네 편 모두, 소재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두근거림을 주는 작품도 있었고, 애절한 작품도 있다. 귀엽고 발랄하면서 웃음 폭탄을 안겨주기도 했고, 은근한 웃음을 준 작품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없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야마시타 토모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좋아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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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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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제목부터 눈길을 확 잡아 끈다.
나를 파괴할 권리.
나를 스스로 죽일 권리.
내 목숨을 스스로 끊을 권리.
즉 자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내용은 음울하고 어둡고 차갑다.

책장을 넘기면 우리는 세장의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1>, 마지막은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다. 이 세 가지 그림은 모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 누군가를 죽인 사람, 학살의 현장 등 모든 그림은 죽음과 관련되어 섬뜩하고 기묘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클림트의 <유디트 1>의 경우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후 그 머리를 손에 든 유디트의 표정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내가 그림에 대해 먼저 언급한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소제목들이 이 그림들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거나 등장인물의 별명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등장 인물은 많은 편은 아니다.
일단 책 해설에서 언급된 명칭인 '자살안내자' 혹은 '자살 청부업자'라 일컬어지는 나와 형제인 K와 C, 형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여자 유디트(세연), 그리고 형인 C와 미묘한 접점을 가졌던 여자 미미, 그리고 자살 안내자인 <나>다 유럽에서 만난 홍콩 여자가 전부다.

그리고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로 소설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자살 안내인인 <나>가 <나>의 앞에서 자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처럼 작성한 것으로 이런 것은 액자형 소설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구조는 단 이중 구조일뿐이라 복잡하지는 않다. 오히려, 본 이야기와 본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소설이 교차되어 나오는 것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마라의 죽음>은 소설의 화자인 <나>란 존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객을 찾는 방법, 그리고 그 고객을 완전한 자살로 이끄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유디트>의 경우 형제인 K와 C 사이에 머물던 여자 유디트(세연)에 대한 이야기로, 그녀는 원래 동생K의 여자였지만, 결국 C를 택한다. 그녀가 C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 자신만이 알겠지만, 그녀는 C에게 구원을 원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이기주의자인 C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한다.

<에비앙>에서는 유디트(세연)의 이야기와 홍콩여자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반복된다. 여기에서는 유디트(세연)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녀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를 누렸다. 

<미미>의 경우 행위예술가로 이름을 날리는 한 여자와 C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C에게 어떤 구원을 바랐다. 그러나 C는 미미 역시 외면하고, 자신이 작업한 화면속의 미미에게만 푹 빠져있다. 그에게 있어서 실체보다 그런 영상속의 존재가 훨씬 더 가치가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이기적이며 나르시시스트인 C. 그에게 구원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르다나팔의 죽음>은 미미의 마지막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그녀도 아무런 구원을 받지 못한채 스스로를 파괴해 버렸다. 그것만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누릴수 있는 권리인양.

자살을 도와주는 사람과 자살하는 사람.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타인들에게 자살에 대한 환상을 주고 부추김을 하며, 자살의 길로 이끄는 사람이다. 하지만, C는 결국 세연과 미미라는 두 여자가 자살을 마음 먹게끔 만든 장본인이다. 물론, 그가 그녀들에게 자살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방관자이지만, 그 방관이 그녀들의 자살에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작품을 읽으며 내내 우울했던 건, 왜 그녀들이 하필이면 C와 같은 사람에게서 구원받기를 원했냐는 것이다. 그녀들이 좀더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녀들은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아닌 자신을 지킬 권리를 누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중 화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아니면 환상속에서 속삭이는 악마인지 분간이 잘 안간다. 실제로 여행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집에 머물렀던 흔적을 지우고, 사람들이 자신을 파괴하는 순간을 지켜보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실존하는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 그가 인간이든 악마의 하수인이든- 그녀들의 마음속에는 이미 밝은 희망의 빛이라곤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스로 구원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서 구원을 바라는 마음 속에서 이미 그 희망의 빛은 싸그리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그리고 그는 그러한 사람들을 찾아 죽음의 길로 종용하는 것이다. 마치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처럼. 그리고 사냥꾼이 한번 점찍은 사냥감은 결코 그 손아귀를 빠져 나가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냥꾼이 아무리 눈빛을 번득이고 있다 해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그의 화려한 언변도 우리들이 품고 있는 한가닥 희망의 불씨마저는 꺼뜨리지 못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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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 2 - 두 번째 방문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0
이종호 외 8인 지음 / 황금가지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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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공포문학 단편선 2권은 1권에 비해 편수는 한 편이 적지만 분량은 더 많다. 1권은 짤막짤막한 단편이 몇 편 실려 있었고, 대부분 스플래터였다면, 2권은 좀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2권은 현대의 여러 가지 사회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공포물이 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인 공포와 관련된 작품도 몇 작품 있지만, 결국 그것도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인간 내면 심리에서 기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작품인 <벽>의 경우 층간소음을 소재로 삼고 있다. 요즘은 단독 주택보다는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같은 공동 생활 공간에서 사는 가구가 늘다 보니, 층간 소음 문제가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 단편에서는 층간 소음과 관련해 초자연적 현상까지 끌여 들여 그 공포의 폭을 확대시켰다는 점이 눈에 띈다.

<캠코더>는 병원을 배경으로하고 있는 단편으로, 늘 죽음의 공포가 지배하는 병원의 음울한 분위기를 담아 낸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캠코더에만 보이는 어떤 존재, 그것은 저승사자인가, 아니면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환상인가.

<길 위의 여자>는 공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할 법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게 된 남자가 납치 감금되어 무서운 일을 겪는다. 어떤 기이한 생명체의 장난감으로 농락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까지 몰리는 남자. 그에게 남은 선택은 어떤 것이 있을까.

<드림머신>의 경우 연인이나 친구인 두사람이 서로의 꿈을 공유하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꿈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 만큼, 이 이야기는 현실성보다 허구성이 짙은 작품이다.

<통증>은 아내의 실종 후 신체적 변화를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자신의입속에 새로운 치아들이 돋아 나고, 손가락이 더 생겨나는 등 기묘한 일들이 생겨 난다. 결국 자신이 죽인 아내의 몸이 남편의 몸에서 되살아난다는 줄거리인데, 과연 이것은 과연 이 남자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아내의 원한 때문인 것일까. 그러나 더이상의 언급은 없으며, 전적으로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고 있다.

<레드 크리스마스>는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을 소재로 그려진 단편이다. 요즘 한국 사회는 분양 받는 아파트냐 임대 아파트냐에 따라 일종의 계급이 나뉘어진다. 바로 그런 문제를 소재로 삼고 있는데,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주는 고통은 처절했고, 결국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벌을 내리는 방식은 처참했다. 부의 유무만으로 인격이 판단되고 대접받는 이 세상. 그러나, 근본적인 대책이 없는 한 이런 일은 지속되리라.

<압박>은 왠지 어디서 읽었다거나 본 느낌이 강한 소설이었다. 전신마비의 남자의 집의 벽이 점차 안으로 밀려 들어와 그 공포로 남자가 서서히 죽어간다는 내용인데, 대충 스토리는 짐작이 가능할 정도로 심플하다. 하지만, 스플래터가 아닌 심리적 공포를 그리고 있다는데 점수를 조금 주고 싶다. 
이 벽이 움직이는 현상은 인간의 공포를 자극하는 실험극인데, 왜 이런 실험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유가 언급되지 않았다는게 좀 실망스러웠다.

<벽곰팡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간 한국인들이 백인들에게 받는 인종차별문제를 그리고 있다. 소재는 좋았으나 마무리가 약한 것이 좀 아쉬웠다.

<폭설>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속의 한 산장에서 벌어진 참극을 다루고 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그 참극은 과연 그 산장에서 죽은 원귀의 소행일까, 인간들의 어두운 그늘에서 나온 집단 학살일까. 

1편에 비해서는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다는 점과 스플래터만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감춰진 욕망과 어두움이 만들어 낸 공포, 그리고 현대 사회의 문제등을 다루었다는 점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단편 속에 나오는 주인공중 남자들은 가부장적 남성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젊은 작가들이 다수인데도), 불필요하게 욕설을 남용하는 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호러 소설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이렇듯 다양한 소재의 소설들이 나왔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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