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 신지에서 꽃이 지다 - 뉴 루비코믹스 스폐셜
Renaissance Yoshida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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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접하기 전, 만화인데도 대사량이 엄청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배송을 받고 책을 휘리릭 넘겨본 순간, 난 깜짝 놀랐다. 만화라기 보다는 그림 소설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그림체도 펜터치가 너무도 강해 눈이 아릴 정도였다. 

이 작품은 아카네 신지라고 하는 한 유곽이 늘어선 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등장 인물로는 카이코 쥬우자(혹은 쥬우젠), 후카자와 코조, 하니야 시로가 주요 등장 인물이며, 그외에도 롯카, 나나오, 센 등이 등장한다.

카이코 - 후카자와, 그리고 후카자와 - 하니야로 연결되는 사랑의 행로가 일단 이들 관계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카이코는 유곽의 점장이자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며, 검도부 부장이고, 쥬우자 혹은 쥬우젠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는 어머니와 근친상간 관계를 가졌으며, 후카자와에게는 지배자로, 롯카와는 결혼을 약속했다.

후카자와와 하니야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소꿈친구이자, 검도부 소속이다. 
후카자와는 카이코와의 관계를 위해 카이코의 가게에서 남창으로 일하고, 그후 카이코와 관계를 갖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삼촌과도 관계를 가진듯 하다) 그러나 카이코의 지배 방식은 그를 학대하는 수준에 가깝다. 언제나 어둠의 주변에 있는듯한 그의 속내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 처음엔 도통 알 수가 없었지만, 결국 후반부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후카자와의 경우, 카이코의 지배를 받고, 그와의 관계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치 않았다. 비뚤어진 사랑일까. 그러나 카이코의 버림을 받은 후 그는 무너질대로 무너져 학교에서 마크 X란 별명으로 불리며, 동급생들의 성욕을 배출하는 출구 역할을 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하니야의 경우, 후카자와를 좋아하지만, 그건 후카자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 중에 가장 정상적인 녀석으로 보이지만, 역시 이 녀석도 좀 독특하다. 하니야는 카이코에게 버림받은 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카자와를 구해주고 서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어느새 하니야를 좋아하게 된 후카자와의 고백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런 하니야를 본 후카자와는 몹시 실망하는데....

언뜻 세 사람의 관계를 봐도 심상치 않다. 사랑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행복감 혹은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카이코와 후카자와의 관계는 카이코가 일방적으로 후카자와를 막다른 길로 몰아 넣고, 힘들게 한다. 그러나 후카자와는 그것도 카이코의 사랑이라 믿고 매달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다.

후카자와와 하니야의 관계는 후카자와가 하니야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갖게 되는 순간 흔들리게 된다. 왜, 서로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은 어긋나게 될까. 그렇다고 하니야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건 하니야만의 사랑 방식이었기 때문이니까. 물론 결국 하니야 역시 자신만을 향해 있던 마음을 버리고, 후카자와를 선택한다. 

서로를 바라 보는 것 같아도 미묘하게 어긋난 시선들. 과연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카이코는 결국 사랑이란 걸 몰랐던 게 아닐까. 그가 사랑이란 것 그리고 그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모든 것은 저쪽 편으로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그가 내린 선택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왠지 굉장히 추상적인 느낌의 서평이지만, 책 내용 자체도 굉장히 추상적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많았지만, 사랑 자체가 구체화 할 수 없는 무정형의 것이기 때문에 그 표현 방식이 이렇게 바뀐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 번 읽었을 때는 대사 분량이 많아 어느 것이 누구의 대사인지도 헷갈렸고, 나나오의 대사는 철학적이라든지, 혹은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 많이 두 번을 정독했다. 그러면서, 인물들의 표정이나, 등장하는 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등장하는 꽃의 경우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상세히 밝혀주어 참고하여 본 내용과 접목시켜 생각할 수 있었다.

본 편외에 수록된 네 작품은 번외편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난 은근히 장어 축제가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음울하고 몽상적인 작품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코믹한 부분이 있어 즐겁게 읽은 게 그 이유가 아닌가 한다. 

어긋난 시선들과 어긋난 감정들이 화살처럼 연신 쏘아지는 <아카네신지에서 꽃이 지다>는 내가 둔중한 충격과 감상을 전해준 작품이었고, 그 여운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뭉근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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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네즈 - 제2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전혜성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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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요네즈하면 난 영화 <마요네즈>가 떠오른다. 김혜자씨와 지금은 고인이 된 최진실씨가 모녀로 나왔던 마요네즈. 그곳에서 머리카락에 마요네즈를 바르고 있던 엄마와 엄마와 갈등을 겪는 딸이야기.
바로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이 바로 이것이다.

병자인 엄마가 한동안 딸 아정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는 그닥 매끄럽지 않았던 아정은 엄마가 오신다는 사실 그 자체에 이미 질려하고 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기만 한 그녀.

그렇게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거꾸로 흘러간다.
어린 시절 회상속에서도 엄마와 아정의 관계는 매끄럽지 않았다. 장녀라고 무조건 칭찬하고 잘 되길 바랐던 엄마는 그 반대로 부담감도 안겨주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무뚝뚝한 성미에 술을 마시기만 하면 엄마를 두들겨 팼다.

젊은 시절 한 미모를 자랑하던 엄마였지만, 쉰도 안되어 중풍으로 쓰러졌고, 그후엔 당뇨니 뭐니 해서 지금도 입에 약을 달고 산다. 병으로 쓰러졌을 때 아버지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회복한 엄마는 아버지가 쓰러지자 그대로 방치한다. 그동안의 복수였을까. 아니면, 그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일까. 

아정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괴롭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 온다.
남의 자서전 일을 쓰는 일을 억지로 떠맡은 것도 엄마와 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엄마는 아정의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줄 생각도 못한다. 자신은 병자라면서.

아정과 엄마의 대립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다.
엄마의 철부지같은 행동, 숨막힐 듯한 가족 환경.
비록 다른 가족이야기는 거의 언급이 되지않고, 엄마와의 갈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것으로 다른 가족과의 관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읽는 내내, 가족이란 게 뭘까, 특히 모녀사이란게 뭘까.. 라는 생각을 해 봤다.
우리들 부모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그리고 네가 부모 심정을 알 날은 네가 부모가 되는 날이라고.

난 아직 결혼도 안한지라, 아직 부모님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엄마가 아정의 엄마같았고, 내 집안 환경이 아정의 가정 환경 같았다면 나도 아정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가족이기에 편하고, 기댈 수 있고, 든든하다.
그러나 아정의 경우를 보면 가족이라 그 치부가 더 깊숙이 보이고, 외면하고 싶어한다.
특히나 자신밖에 모르는 것 같은 어머니에 대해서는 정말 한순간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 들어 엄마의 외할머니 이야기와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둘 사이의 단단한 벽은 약간씩 흔들린다. 물론 삼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쌓인 그 앙금이 쉬이 없어질리는 없다. 하지만 계시는 동안 그 껍질을 깨고 하고자 하는 아정의 마음은 마직막 문장에 잘 나와 있다.

가족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 가정에 태어나는 것은 우연일까.
사실 가족이란 고를 수 없다. 물론 결혼이란 수단을 통해 남편을 고를 수는 있지만, 그 나머지 가족은 고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태어난 가정과 가족은 내가 고를 수가 없다. 그런 우연과 필연이 기막히게 조화가 되어 생겨나게 되는 가족..

이 소설은 가족의 해체를 이야기 하면서도, 가족의 새로운 결합을 암시한다.
아정의 표현에 따르자면 자신의 원래가족은 낡은 가족,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새 가족이라 명명된다. 그 사이의 괴리감은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틈이 메꿔질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면, 가족이니까. 
답은 그것 하나다.

뒷페이지에 수록된 심사평에서는 새로운 모성애의 모습이나 새로운 엄마의 모습을 강조한 문구가 많이 눈에 띄었는데, 난 그것보다는 오히려 엄마와 딸의 관계에 더 관심이 갔다. 엄마와 딸은 친구처럼도 지낼 수 있지만, 엇나가면 진짜 불편한 관계도 된다는 것을 나도 예전에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20대에는 엄마와 참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서면서 그 갈등은 조금씩 풀려 나갔고, 지금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꽤나 부드러운 관계가 되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엄마와 나의 관계를 되짚어 보고, 가족이란 게 어떤 것인지 되짚어볼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세상에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한 엄마들이 존재하고, 또한 그만큼 다양한 가족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난 아정과 아정의 엄마를 보면서, 난 그래도 엄마랑 저런 사이는 아닌데, 나와 가족과의 관계는 저렇지는 않은데, 라고 은연중에 비교하며 안도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새삼 엄마와 내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나는, 괜시리 엄마에게 못되게 굴던 어린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엄마, 고마워요.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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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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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부는 사나이>는 제 15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예전부터 문학동네 책을 좋아했었고, 또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작품을 몇 작품 접해본 나로서는 이 책을 선택하는 데에 있어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오히려, 이제는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을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이 책은 200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주인공은 남자 대학생이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극히 적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은 어느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수연은 그보다 2살 연상으로,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수연과는 편안한 관계로 발전해 나가지만, 이 남자에게는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과동기 정현과 하룻밤을 함꼐 보냈다는 것인데, 비록 아무런 일은 없었지만, 대학 1년생이 여학생과 단둘이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유로 그는 과에서 배척을 받는 존재가 되고, 수연이외에는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외에 그가 교류를 하는 사람은 같은 하숙집의 우진이란 학생과 이반이란 사람, 그리고 카페 fragile의 사장 정도랄까. 하지만, 그런 인연을 통해 그는 조금씩 자신의 벽의 깨(fragile) 나간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학교 축제 기간에 우연히 본 타로점에 나타난 점괘. 수연은 자신의 뒤집은 카드인 DEVIL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그후 다시 연락해 온 수연에게 그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일단 주인공 남자의 성장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가 자신의 벽을 깨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점을 찾아 나가는 부분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진과의 만남으로 인해 소설만을 읽던 그가 다른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고, 수연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가 없던 그는 카페 fragile에서 이반이나 개구리 사장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의 폭을 넓혀 나간다.

20대. 그리고 대학 신입생이란 것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삶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에게서 독립을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를 맛보게 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이다. 무절제하고 방종으로 치닫기 쉬운 나이이기도 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설게를 할 나이도 바로 이즈음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신의 사고의 틀, 그리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좀더 성숙하게 되는 게기를 시기를 묘사한 것이므로 성장소설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연의 이상한 행동과 수연이 겪었던 일 - 피리부는 사나이-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 소설은 급격하게 회전한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짐작대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이다. 쥐떼를 피리로 유인해 쥐를 없애 주었지만, 정작 아무 보답도 받지 못한 그가 피리 소리로 아이들을 유혹해 사라져 버린다는 이야기.
바로 그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여기에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 각국의 여성들의 실종과도 관련이 있으며, 수연과도 관련이 있다.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 번 만난 적이 있고, 그후 묘한 일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소설은 무대가 유럽으로 넒어진다. 게다가 재벌의 딸인 이유리를 비롯해, 테러조직과 테러를 막기 위한 조직들이 등장하는데,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있는 이유리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조금씩 미묘해져 간다.

갑자기 무대가 한국의 서울에서 영국의 런던으로 바뀌는데, 순간 나는 주인공이 시공간 타임 리프라도 한 듯 느껴졌다. 왜 평범한 대학생이 갑자기 테러조직을 쫓게 되는 거지?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지? 그가 여성들을 납치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일까...

수많은 궁금증이 책 후반부로 가면서 내 머릿속을 둥실 떠다녔다. 평범한 대학생 이야기가 갑자기 국제적인 테러조직과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난 이 부분에서 아연실색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의 과정이 너무 간단하게 넘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서부터 숲길에 조금씩 빵조각을 떨어 뜨리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약간이 복선이 깔려 있기는 하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런 변화에 미처 내 마음은 이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속시원한 대답을 주지도 않았다. 왜 수연은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가야만 하는지, 피리 부는 사나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은 없다.

다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작품의 주인공이 피리 부는 사나이의 꿈을 꾸고, 다시 길을 나서는 것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란 것일까.

사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테러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러하기에 주인공이 수연과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는 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숙제가 되어버렸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좀더 작게 생각해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세계의 변혁을 가져올 인물이 아니라 개개인을 변화시키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방식은 폭력성을 띄는 것이라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주인공이 자신만의 세상을 박차고 나와 더 큰 세상과 접촉하게 된다는 계기를 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주인공은 착실하게 정신적 성장을 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04년에 일어났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다. 테러, 자연재해, 살인, 실종 사건 등 여러가직 국제적 사건이나 사회적 문제등을 묘사하고 있다. 확실한 이름은 거론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 아,, 이사건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또한 문학, 그림, 음악등 예술등에 관한 토론이나 이야기도 이 책을 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건들과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란 동화, 그리고 대학생 주인공의 이야기를 적절히 접목시켜 김기홍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탄생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일상과 비일상을 교묘히 접목시켜 한 남자의 정신적 성장과 사랑과 우정 등 청춘의 빛나는 시기를 매끄럽게 잘 표현해냈다는 것에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페이지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난 한번도 손을 떼지 않고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설이다.

지금, 당신에게도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 소리가 들려 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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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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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이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조용한 방 가운데 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 소름이 끼쳤다.
이것이 이 책을 읽고난 내 감상의 고백이다.

이 소설은 싱글맘이자 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의 딸 마나미의 죽음으로부터 약 1년간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나미의 죽음은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려지지만, 사실은 그 학교 학생 두 명에 의한 것이었다.

총 6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각 챕터는 이 소설의 주요 등장 인물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성직자는 마나미의 엄마이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가 종업식날 학생들 앞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와 범인에 대한 언급, 그리고 범인에 대해 자신이 내린 단죄를 고백하는 형식이고, 순교자는 모리구치의 반 반장이었던 기타하라 미즈키가 모리구치가 떠난 후 학교에서 벌어진 일들을 문학상 응모작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다. 자애자는 범인 A의 엄마의 일기장에 씌어진 내용이며, 구도자는 시모무라 나오키의 모놀로그이다. 신봉자는 와타나베 슈야의 입장에서 서술되며, 마지막 전도자는 다시 모리구치 유코가 화자가 되어 슈야에게 전화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장마다 서술자를 달리하다 보니, 좀던 심층적으로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를 잘 표현해낸다. 만약 3인칭이나 화자가 한 사람이라면, 관찰하는 식으로 서술되었겠지만, 각각이 1인칭 모놀로그 식으로 서술되다 보니, 똑같은 사건이지만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 보니, 등장 인물 개개인의 삶의 확실히 들여다 볼 수 있고, 각각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떤 식으로 생각해 왔고, 어떤 식으로 상대해 왔는지, 빗장을 채우고 가둬 놓은 마음속 비밀을 들여다 본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다 보니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인간이란 이기심과 자기애만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란 것이었다.

고백은 학교란 곳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크게 보면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흉악 범죄의 저연령화, 인명을 가벼이 여기는 풍조, 자신의 자식이라면 간이고 쓸개고 나 내주는 모친, 집안 일은 나몰라라 하는 부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와 마마 보이,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쉽게 표출하는 요즘 아이들과 자신이 피해자가 되기 실허 급우를 이지메하는 아이들, 자의식 과잉에 휩싸여 날뛰는 교사까지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고백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인물 뿐이다.

게다가 마나미의 엄마이자 중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가 마나미를 죽인 아이들에게 내린 제재 방법은 심리적 압박과 더불어 물리적인 폭력으로까지 확대된다. 그 결과 범인 A는 히키모코리가 되었다가 모친을 살해한 후 감금되었고, 범인 B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게 된다. 하지만, 모리구치 유코에게서 그 어떤 후회나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자기 자식을 죽인 범인들을 용서할 수 없고, 갈갈이 찢어 죽여도 분이 안풀릴 것 같다는 그녀의 말이 영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막을 내린 그녀의 복수극으로 그녀가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는 마나미를 잃고 남편마저 세상을 떠난 후 더이상 세상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런 일을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조용한 교실에서 마지막 훈화처럼 시작되어 무섭고 끔직한 고백으로 전환된 그날부터, 모든 것은 준비되어 있었다. 종업식날 담담한 어조로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범인을 밝힌 후 약 1녀이 지나, 마지막으로 범인 B에게 전화를 했을 때 모리구치 유코는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사람이 사람을 어디까지 단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은 어디까지 악한 것이고, 어디까지 선한 것일까.
또한 절대적 가해자와 절대적 피해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의 아이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의 칼날을 내리 꽂는 모리구치 유코의 행동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1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흉악 범죄를 저질러도 법척 처벌을 받지 않는 현실을 생각하면, 모리구치 유코가 이들에게 복수할 방법은 이런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모든 참극을 빚어 낸 것은 가정과 학교, 그리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방관한 사회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압도적 필력과 스토리 전개 방식, 그리고 주요 등장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이야기구조에 정신없이 파묻혀 책을 읽기는 했지만, 역시 뒷맛이 씁쓰름한 건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는 세상 어디에나 존재할법 하고, 사건의 성격상 알게 모르게 은폐되는 일도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미쳐서 제멋대로 날뛰는 세상 속에 존재하는 어둠을 보게 만든 고백.
고백이란 정적인 제목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어둡고 음울하게 진행되었던 스토리와 결말로 인해 한동안 이 씁쓸한 여운은 쉬이 걷힐 듯 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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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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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대부분 눈치 챈 모양이군요.
효과는 바로 알 수 없습니다. 부디 두세 달 후에 혈액검사를 받아보세요. 효과가 있다면 통상 5년에서 10년이라고 하니 그동안 차분히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실감해 보세요. 두 사람이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마나미에게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절실히 바랍니다. 그리고 학급 교체는 없으니 모두들 결코 두 사람을 몰아내지 말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 주세요. 이 학급에서 경솔하게 죽고 싶다는 메세지를 보내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직접 선택할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게 되면 시한은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일까요? '효과가 없으면?' 그렇군요, 부디 교통사고를 조심하라고 말해두지요.-55쪽

역시 아무리 잔인한 범죄자라도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결코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재는 평범한 세상사람들의 착각과 폭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77쪽

나오키는 불결이라는 갑옷과 함께 남들 이상으로 가지고 있던 상냥한 마음씨도 씻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제가 사랑했던 나오키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잃고, 당당하게 구는 살인자 아들에게 어미인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147 쪽

나는 온몸에서 생명의 증거를 몽땅 벗겨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문득 몇 달전에 보았던 비디오가 떠올랐다.
아아, 그런가. 좀비가 되었구나. 아무리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 더군다나 내 피는 생물 병기다. 그렇다면 온 동네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면 재미있으려나?-195쪽

어머니의 발목을 붙잡는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지만 어린 탓에 그 수단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때 몇 번이고 기도하지 않았던가.
병에 걸리고 싶다, 라고.
그 소원이 뜻하지 않게 이런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다. 예상 밖, 아니, 예상을 초월하는 전개였다. 그것도 대성공이라는 전개. 어머니도 살인범 아들보다는 중병을 앓는 아들을 더 걱정할 테고, 만나러 오기도 편할 것이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그때 나는 돌연 생기가 솟았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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