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살해당했다 - 전편
우메타로우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우메타로의 책은 나미히라 X 치즈루 커플 시리즈로 시작했다. 리맨물이긴 한데, 왠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지라, 애인은 살해당했다를 펼치면서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전작(발행된 것은 이 책이 먼저이지만)에서 주위에 마구 휘둘리던 수(나미히라)를 보면서, 좀 짜증이 나기도 했던 건 사실이다. 난 좀 공같은 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하여간, 일단은 눈 질끈 감고 도전해 보자. 이런 생각이었다.  

애인은 살해당했다.
BL물에서 늘상 접하는 제목과는 좀 다르다는 게 내 주의를 끌기도 한 이 만화는 학원물로, 원래 난 학원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책 제목이 독특해서 이 책을 고르게 된 건 사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크게 3명으로 압축된다.
고교 1년생인 이토 히카리. 그는 입학 시험을 보던 날, 눈 속에 서있던 키자키에게 반해 그를 짝사랑하는 중이다. 언제나 밝게 웃고 있지만, 동성의 선배를 좋아하는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한다.
키자키는 연상의 여자와 교제를 해왔지만, 그녀가 결혼을 하게 되어 헤어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다.
하이자와는 생물 선생으로, 히카리에게 묘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히카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고 있는 그의 속마음은?

전편을 다 읽고 난 후에 드는 느낌은 이게 뻔한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었다. 물론 삼각 관계로 이어지는 듯한 설정이나, 강제로 당하고(?) 자신의 진짜 감정에 혼란스러움을 겪는 수의 입장은 뭐 다른 BL물이나 비슷한 것 같지만, 일단 주인공들이 무척 평범한 사람들이란 게 마음에 든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회적 입장에서 보자면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이 평범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것은 BL물이므로 일단 그런 편견을 접고 볼 때, 평범하다는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요, 특별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멋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히카리의 가정 생활이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안타까운 느낌이 든것도 사실이다. 전전긍긍하고 공인 하이자와에게 휘둘리는 듯한 히카리의 모습은 뭐랄까 처음엔 좀 짜증이 난 것도 사실이지만, 히카리가 안고 있는 고민을 알게 되면서 히카리의 마음이 이해되었다고나 할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꼈던 키자키, 자신을 억지로 안아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한 하이자와. 어느 쪽이 진짜 사랑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건 히카리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게다가 자신의 가정 환경으로 사랑에 대해 일그러진 견해를 가져 왔던 히카리의 입장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히카리가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그에 대해 돌아오는 하이자와의 반응은 역으로 싸늘해지는데....
전편은 솔직히 말해, 하이자와란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대폭으로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냉정하면서도 다정하고, 그리고 아픈 과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과 어른들때문에 상처를 받아 사랑이란 감정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년. 이 두사람의 이야기는 후편에서 어떻게 풀려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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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바이올린
조셉 젤리네크 지음, 고인경 옮김 / 세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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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클래식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에 있던 클래식 테이프들을 들었고, 고교시절에는 가끔 학교로 날아오는 티켓을 구입해서 몇 번 음악회에 가본 것이 전부일 정도이고, 그후로는 다른 음악들에 푹 빠져 클래식이란 것은 제대로 듣지 않았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기억나는 것은 몇몇 유명한 음악가의 몇몇 유명한 곡들 뿐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선택할때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클래식 팩션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얼마만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탐사하는 기분에 설레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의 제목인 악마의 바이올린.
난 악마와 바이올린이란 단어를 보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바로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이라는 곡인데, 이 곡은 타르티니가 꿈속에서 악마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잠에서 깬 후, 그 곡을 직접 연주해보고 악보로 옮겼다고 하는 것으로 바이올리니스트 사이에서도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으로 정평이 나있다. 내가 왜 이 곡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냐면, 사실 이 악마의 트릴은 다른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쪽에서 접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도 악마의 트릴이 두어번 언급되긴 하지만, 실제로 이 소설의 소재가 된 것은 파가니니의 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하면 가장 이상적인 바이올린으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소장하기를 꿈꾸는 바이올린이며, 그 진품의 수량은 극히 적어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록하고 있는 바이올린이기도 하다.
 
파가니니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그의 기행과 뛰어난 연주 실력은 속인들에게 악마와 거래한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미지를 주었고, 실제로 그가 죽은후 5년이 지나서야 교회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바로 파가니니가 소장하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소장했던 바이올린은 그 소유자 혹은 그 바이올린을 직접 만졌던 사람들에게 차례차례 죽음이나 사고를 불러 왔다. 물론 이것이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의 상상력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소설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오디토리움의 심포니 홀에서 연주하던  아네 라라사발이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가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그녀의 몸에 그려진 문자는 아랍어로 "악마"를 뜻하는 문자였다. 왜 그녀는 살해당했고, 그녀가 소유하고 있던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디로 사라졌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비단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비틀즈의 음악과 같은 팝 음악, 향수와 조향사 이야기등이 소재로 사용되어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특히 향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향사가 파트 부분이 굉장히 즐거웠다.  또한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이야기라든지, 바이올린 장인인 루티에르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추리 소설로서는 조금 아쉬운 점이 많다. 특히 오라토리움에서 갑자기 등장한 개는 도대체 어찌된 것이며, 아네 라라사발의 스트라디바리우스에 악마의 얼굴을 조각해준 루티에르 루폿의 죽음도 석연치 않다. 아네 라라사발이 연주 중 바이올린을 떨어뜨린 사건은 분명한 이유가 밝혀졌지만, 개와 루폿의 죽음은 정말 바이올린에 씌인 악마가 벌인 일일까.

소설에 등장하는 아네 라라사발이 소유한 스타라디바리우스는 책의 설명을 따르자면 지네트 느뵈가 소유했던 스타라디바리우스로 지네트 느뵈는 실존 인물로 비행기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것이 책의 주인공인 아네에게로 건너 왔다는 설정인데, 책을 읽다가 보면 어디까지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고, 어디부터가 픽션의 영역인지 모호하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이 책이 주는 매력이라 생각한다.

다만, 범인의 정체와 범인을 추적할 마지막 단서인 악보에 담긴 의미가 너무나도 어이없이 드러난 게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후반부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지만, 결말에 다다라서 그 끈이 툭 끊어져버려 맥이 빠져버렸다.

그래도 이 책에 높은 별점을 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클래식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스토리텔링, 실제 있었던 사건과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적절히 조화시켜 부드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 것때문이리라.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나온 음악들을 직접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길만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자의 지식은 해박하다. 실제 작가 조셉 젤리네크도 피아니스트이며 작곡가라고 하니, 왠지 질투가 날만큼 부럽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셉 젤리네크의 첫번째 소설인 베토벤의 교향곡을 소재론 한『10번 교향곡』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악마의 바이올린』은추리 소설로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클래식이란 것을 소재로하여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다시 손에 잡을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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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의 개들 - 제11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이상운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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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을 1회부터 주욱 읽어 오고 있는데, 분위기가 어느새 많이 바뀐 걸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가족 이야기나 삶의 묵직함등 조금은 묵직한 주제였다면, 어느 순간부터 블랙 코미디나 풍자를 빌어 쓴 소설들이 눈에 띈다.

내 머릿속의 개들 역시 블랙 코미디이며 풍자극이라 볼 수 있다. 마치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이 겪어온 일들과 심정을 토로하듯이 씌어진 이 소설은 왠지 무성 영화의 변사가 재치좋은 입담으로 그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듯 하다.
시종일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작가의 청산유수같은 언변술에 이리 취하고 저리 취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껄껄대며 웃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묘하게 마음속이 가라앉았다. 효용과 가치 창출로만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현대 사회나 자본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 미의 기준이 일률적인 잣대로만 매겨지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어이없을 정도로 과장된 단어를 사용해서 드러 낸다.

사람은 실업자 상태인 A와 언젠가 실업자가 될 B로 나누어 생각하는 주인공 나 고달수는 어느 날 미국 물 먹고 자칭 팝 아트 예술가가 되어 나타난 마동수에게 한가지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를 유혹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만들어 달라는 것. 친구의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혼을 위해서? 고달수는 처음엔 도덕적 양심이란 것으로 마동수의 제안을 거부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백수 주제에 그걸 거부할 양심은 곧바로 우주 멀리 날려버리고 마동수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자, 작전 개시!
그런데, 막상 고달수의 아내 말희를 만나보니 은근히 말도 잘 통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돈을 받았으니, 착착 작업을 진행시키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계절이 두 계절이나 지났다. 그 무렵 말희의 예전 사진을 보게 된 고달수는 말희에게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고달수의 말에 따르면 대리석에서 비너스를 발견하는 것이라나?

호오라.. 알고 보니 고달수도 쭉쭉빵빵한 여자가 좋은 천상 남자로구나. 역시 말이 통한다는 정신적 교류와 몸은 달리 반응하는 고달수는 역시 평범한 남자, 보잘 것 없는 그릇을 가진 남자였다. 어쨌거나 일단 말희는 고달수의 사랑고백(?)에 넘어가 다이어트를 하지만, 그녀의 몸은 단 것을 원했고, 모든 것은 도로아미타불이로다.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 고달수는 말희에게 마동수가 제안했던 이야기를 던지고 그녀 곁을 떠나버린다. 그후 다시 실직자 상태로 지내던 고달수는 말희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막상 그녀가 곁에서 없어진 후에야 정신을 차린 고달수는 그녀를 위해 피둥피둥 살을 찌운다.

아아.. 이 무슨 멍청함이란 말인가.
뚱뚱한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은 그녀를 날씬쟁이로 만드는 것도 아니요, 자신이 뚱뚱해져서 그녀와 비슷한 몸매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 것이 사랑이 아니더냐. 하여간 뚱뚱한 고달수는 뚱뚱한 말희를 찾아 나서지만,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읽으면서 큭큭대고 웃었다.
현란한 말솜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적절한 비유에 맞장구쳤다.
그러나 결국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 모든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자, 즉 효용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를 한껏 비꼬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희는 마동수에게 돈줄이기도 했지만, 결혼 당시에는 그럭저럭 봐줄만한 통통함이었다. 그러나 도미행 이후 말희는 설탕중독자가 되었고, 마동수는 성공한 팝아티스트가 되어 마누라를 버릴 음모를 꾸민다. 굳이 사회 전체를 들먹이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결합하고 필요에 따라 버리기도 하는 현대 사회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마동수의 마지막에 묘한 쾌감이 생겨났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이유는.

사람은 죽으면 다 똑같다.
하지만, 살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고 있다.
웃으면서 이 책을 읽어도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은 결국 이 사회를 비꼬거나 비웃어줄 수는 있을지언정 바꿀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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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 우키요에를 따라 일본 에도 시대를 거닐다
이연식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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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우키요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냈다.
그러던 중 우키요에에 관한 책이 신간으로 등장한 것을 보고, 얼른 구입했다.

사실, 난 우키요에에 대해 아는 것은 전무하다.
단지 에도 시대 풍속화의 일종이며, 유명한 화가로는 호쿠사이 정도를 아는 게 다였다.
그리고 그 시대 판화를 일컬어 우키요에라고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우키요에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준다.
우키요에의 발생부터 그 마지막까지를 담고 있으며,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서술함으로써 우키요에에 대한 접근을 한층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

예술이란 것은 그 시대 상황과 동떨어질 수가 없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그림만 가지고 설명을 해봤자 이해가 안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함께 이야기한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그에 맞는 우키요에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도 시대, 막부 말기의 상황에서 성행했던 우키요에.
그것은 민초들이 그림과 같은 예술에 한층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고, 그 시대 소식을 전하는 파수꾼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처음에는 배우나 유녀의 그림을 시작으로 해서, 민중들의 생활상, 풍경화까지 다양한 소재로 그림이 그려지고 판화가 찍혀졌다.
이 흐름은 막부의 지배 상황과 상당히 일치한다. 막부의 지배력이 강했을 때는 막부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우키요에는 만들어질 수가 없었지만, 막부의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막부와 정치를 비판하는 우키요에도 등장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흐름에 맞춘 우키요에의 발전상 이외에도 이 책에는 우키요에의 세부 장르에 대한 파트도 있다. 미인화, 춘화, 풍경화, 기담을 바탕으로 한 무서운 그림까지 볼 수 있다.
당대의 유명한 아름다운 유녀들의 그림을 보면 대체로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저자가 말했듯이 그 당시 미인화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울이란 소재를 사용한 우타마로의 그림은 그런 정형화된 포즈나 모습에서 벗어나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 준다.

일본의 춘화는 농염하면서도 절제미가 있다. 보일듯 보이지 않는 숨겨진 농염함이랄까. 조금 놀라웠던 것은 수간같은 것을 표현한 춘화였는데, 징그럽다는 느낌보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민중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우키요에는 그 시대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시에는 사진이란 것이 없었기에, 당시 풍속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림이다. 그러나 고급 화가가 그린 그림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귀족의 생활상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민화처럼 우키요에는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 내고 있다.

풍경화같은 경우에는 요즘 말로 하면 시리즈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아낸 우키요에는 당시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로망을 이루어주는 매개체였음에 틀림없다.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여행에서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다. 여행지의 사진을 보며, 그곳에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우리나 에도 시대 우키요에 풍경화를 보면서 그 아쉬움을 달래는 그당시 사람들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난 특히 요괴 그림에 관심이 많다.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신도 요괴도 종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깨비도 사실은 일본에서 건너온 '오니'를 바탕으로 만들졌을 만큼, 우리나라는 요괴의 종류도 귀신의 종류도 그다지 많지 않아, 난 자연스레 일본 요괴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책 분량때문에 도판 목록이 많지 않아 아쉬운 점은 많았으나. 이렇게나마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책 후반부에는 서양미술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와 서양 미술에 영향을 받은 우키요에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상파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외에도 모네나 드가 같은 화가들 역시 우키요에에서 받은 느낌을 자신만의 그림으로 그려낸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예술이란 건 역시 국경과 시대를 초월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키요에의 탄생에서 소멸, 그리고 그것이 끼친 영향을 비롯해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씌어진 책이다. 따라서 한 작가와 그의 작품만을 다룬 책같은 것에 비해서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처럼 우키요에에 대해 거의 모르는 초보자들에게는 우키요에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전체적인 흐름의 파악을 한 후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작가를 찾아내고, 그 작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은 우키요에에 대한 길나잡이 역할을 하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아직은 우리에게 낯선 그림인 우키요에. 하지만 그 그림들이 주는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언젠가는 꼭 도쿄 하라주쿠에 있는 오타 기념 미술관을 찾아가 우키요에를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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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의 사각 - 201호실의 여자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2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에는 제목을 보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역시나 우리말도 동음이의어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원서 제목을 보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도착은 到着(목적지에 다다름)이 아니라 倒錯(본능 감정 및 덕성의 이상으로 사회도덕에 어그러진 행동을 보이는 일)이란 의미였고, 사각은 四角(네모)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死角(눈길이나 영향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나 범위)를 뜻했다.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到錯) 시리즈 두 번째 소설인 도착의 사각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이다. 이게 시리즈물인줄 모르고, 일단 제목과 책 표지에 이끌려 구입했는데, 첫번째 시리즈물인 도착의 론도를 먼저 읽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이 책이므로 천천히 책을 살펴 보기 시작했다.

책 뒷표지의 큰 글씨가 먼저 들어왔다.
"그냥 속았습니다. 아주 유쾌하게...."
이 글씨를 보고 나서 든 처음 생각은 '이 책은 분명히 허를 찌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난 절대 속지 않을 거야. 꼭 그 비밀을 내가 먼저 알아 내고야 말겠어.' 란 것이었다.
결과는?
작가가 설정한 상황 중 두 어가지는 짐작대로 였지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무참한 나의 패배였다.
그러나 분하지는 않았다.
작가의 트릭은 적당한 눈속임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었으므로.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은 여럿이지만, 중심 인물은 세명으로 압축된다.
알콜의존증 환자이자 번역가미며 관찰하는 남자 오사와 요시오, 관찰 당하는 여자 시미즈 마유미, 요시오와 마유미를 관찰하는 남자 소네 신키치.

요시오와 마유미의 경우 일기라는 형식을 도입해 화자는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다. 신키치를 포함한 나머지 인물들은 3인칭 서술, 즉 작가 시점에서 서술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액자형 소설이라고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마지막 장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이정도로)

반년전 요시오는 자기의 맞은편 맨션에 사는 한 여자가 죽은 것을 본 후 알콜의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 신세를 진다. 퇴원후, 그는 다시 번역일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 곳에 새로운 여자가 입주한다. 그의 병적인 엿보기 취미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후 요시오의 삶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닫는다.

요시오가 살고 있는 집 맞은편 맨션에 새로 들어온 여자 마유미, 그녀는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시선을 느낀다. 눈을 들어 보니 맞은편 집에 사는 남자다. 그녀는 그를 애써 무시하고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꺼림칙한 일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신키치는 요시오와 함께 병원 생활을 같이 했다. 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하고 절도를 일삼던 그는 요시오가 마유미를 엿보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에게 적당한 복수를 하기 위해 마유미와 요시오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언뜻 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등장 인물들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반감이 교차되고 부딪히면서 주변의 상황이 꼬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점점 어둠이 세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읽으면서 한 자도 빼놓지 않으려 정독했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작가의 트릭에 절대 속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혼자서 추리를 하고, 상황를 판단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를 감싸는 위화감. 그러나 그게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지?

그러다가 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과 맞딱드렸다.
그리고 적잖이 당황했다. 
책 후반부 8장이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추리 소설을 뒷쪽부터 읽는 사람은 없다. 물론 나는 결론이 궁금하고 트릭이 궁금해도 참으면서 찬찬히 읽어 가는 편이라, 막상 봉인된 부분을 만났을때 움찔했다.
도대체 얼마나 큰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일부러 봉인을 했을까.
칼을 들어 천천히 한장씩 개봉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비밀이자, 이 책에 사용된 트릭의 결정적 비밀을 알게 되고, 난 아연실색했다. 물론 내가 추리한 것 중에 일치하는 것도 두어가지 있었지만, 그건 별게 아니었다. 이 봉인된 부분이야 말로 작가가 400페이지 정도의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배치해두었던 복선과 모든 수수께끼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이 부분을 위한 것이었던가. 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동시에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책.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머리를 굴려도 작가가 궁극적으로 지켜내려 했던 트릭에는 접근 불가!
항간에 이런 말이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책에서는 트릭을 풀지 못하겠으면 그냥 작가의 트릭에 속아라!
정도로 바꾸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시야는 생각외로 꽤 좁다. 그래서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한다.
당신은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해 놓은 트릭의 사각 지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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