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사냥감에게 길든다 - 러쉬노벨 로맨스 195
에다 유우리 지음, 시미즈 유키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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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다 유우리 X 시미즈 유키의 Pet Lovers 시리즈 제 2탄!
전작이 개였다면 이번은 백수의 왕 사자?
보아하니 요번은 사자가 공이로구나. 하긴 사자가 수라는 것도 웃길 것 같다.

호흡기 내과 의사 우즈라이 치아키. 29세.
여리여리해 보이는 얼굴에 여리여리한 체격.
그러나 그에게는 남에게 알리지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회원제 데이트 클럽『PET LOVERS』의 비스트 계 라이온 자오우지 신. 26세.
혼혈인 탓에 큰 신장과 금발머리, 그리고 멋진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사자가 사람으로 변신하면 저런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초식계 가젤인 치아키와 육식계 라이온 신의 만남은 치아키의 의붓형인 후가미의 계략이었다. 과거에 있던 사건을 빌미로 그동안 치아키에게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가해온 치아키의 의붓형. 치아키는 자신의 잘못인데다가, 자신의 여동생 마호에게 그 폭력이 전해질까 두려워 고스란히 형의 폭력을 견대내고 있다.
어휴.. 처음부터 뭐랄까, 어두운 성격의 주인공 등장에다가 폭력을 행사하는 의붓형까지... 어질어질하다.

원래 폭력을 싫어하는지라 이런 장면이 나오면 욕지끼가 먼저 치밀어 오른다. 그래 놓고 야쿠자물은 좋아하는 주제에. 야쿠자물은 원래 조폭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쳐도 일반인이 이렇게 일방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걸 보면 역시 견디기 힘들다.

이 책은 의붓형 후카미가 치아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무척이나 많다. 처음에는 단순한 물리적 폭력이었다가 성적 폭력으로 변해가는데, 어휴.. 후카미의 비인간적인 모습에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게다가 치아키의 음울한 성격이란...... 이제껏 본 BL물중에서 이렇게 불쌍한 수 캐릭터는 처음 봤다. 게다가 나이도 먹을대로 먹은 어른이....하지만 폭력이라는 게 그것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견디는 사람이나 결국 익숙해져가게 되는 것이던가. 처음 지배자에게 무릎을 꿇는 순간 게임 오버. 결말은 좀체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의 등장 분량도 많긴 하지만, 후카미가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등장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BL물을 읽다 보면 꼴보기 싫은 캐릭터들이 가끔 등장하긴 했지만, 이런 추접한 인간은 처음이었다고나 할까. 하여간 끝까지 비겁하고 추접했다.

이렇다 보니 신과 치아키의 이야기의 이야기가 주는 임팩트가 낮아져 버렸다. 두 사람의 만남, 그리고 서로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시간들, 사랑하는 시간들. 이런 게 눈에 덜 들어왔다고 해야할까. 어차피 후카미가 없어져야 치아키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니.....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수페이지에 걸쳐, 수차례에 걸쳐 묘사된 후카미의 치아키에 대한 폭력 행사 장면때문에 다 읽고 나서도 뒷맛이 굉장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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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눈동자는 폭탄 - 뉴 루비코믹스 827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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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옷.. 샤방샤방~~
야마시타 토모코의 만화를 이제까지 8권인가 9권인가를 읽었는데, 이렇게 샤방샤방한 표지는 처음이었다. 대부분 핼쑥하고 퀭한 인물들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고, 밝은 색조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호~~ 내용도 샤방샤방할까? 하는 기대를 가득 품고 책을 펼쳤지만, 처음부터 마음을 꾸욱 짓눌러 오는 이 압박감은 뭘까나. 하긴, 귀여운 이야기 + 어두운 이야기 혹은 슬픈 이야기가 반반 정도인 야마시타 토모코의 전작들을 생각해 보면 표지만 보고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아야 했었다.   

<the turquioise morning>은 야마시타 토코코의 작품중 처음으로 보는 아랍물이다. 다른 작가들의 아랍물을 보면 대부분 대부호, 사막의 왕자님이 대부분이었지만, 야마시타 토모코의 아랍물은 그런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무슬림 전사와 종군 사진기자의 조합이었다. 911테러에 관한 이야기도 살짝 언급되었고....

사랑하지만 고백은 할 수 없는 사랑. 그 영혼만이라도 손에 넣고 싶은 그는 마신과 거래를 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 바람이 너무나도 커 마신이 그의 소원을 살짝 들어주었던 것일까.

<작별의 시간입니다>는 무척이나 섬뜩했다. 이별을 통고하는 한 사람과 그 이별 멘트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한 사람.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의 눈물은 어떤 걸 의미할까. 아마도 압축해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올테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 난 무서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러브하다>는 사랑 고백 후 기다림의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 고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남긴 체취만을 기억하며 보내는 시간들. 휴대 전화 전원은 꺼버리고, 전화 번호는 안가르쳐 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안타까움. 고백이 받아들여지든 받아들여지지 않든 간에 그 기다림의 시간은 여느 시간보다 더디고 느리게 흐른다.

<바람둥이!> 는 읽으면서 뭐 이런 녀석이 다있나.. 싶었다. 자신의 이상형은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이라고? 이기주의자!!!!!
그러면서도 그런 녀석을 좋아하는 넌 바보? 귀여운 바보들의 이야기.
근데, 그 로션의 정체와 그 잔량의 비밀은 도대체 뭐였지?

<장미의 눈동자는 폭탄>은 보면서 키득키득거리다가 결국 쓰러지게 웃었다. 처음으로 보는 샤방샤방한 주인공 등장. 그가 나타나면 모든 사람은 다 쓰러진다. 특히 화살이 피융피융 날아가 퍽퍽퍽 꽂히는 장면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근데 작가님의 책을 보면 권 당 한 편씩 꼭 M캐릭이나 S캐릭이 나온다. 여기 등장한 건 M 캐릭. 아무래도 M캐릭을 더 좋아하시는듯.

<아아 보이프렌드>도 읽다가 웃음이 마구 터져버렸다. 망상 폭주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 바보같으면서도 순수하고, 또 은근히 밝히는 것 같으면서도 입밖으로는 말을 하지 못한채 망상만 폭주 작렬하는 캐릭이랄까. 정말 그대가 사토라레였다면 삶이 어질어질했겠소....

<절망의 정원>은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 비해 대사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특히 주인공의 모놀로그 분량이 많았다고 할까. 그런데, 그게 너무 애절하고 가슴 아파서 읽고 또 읽고...

이번 단편집은 기복이 심한 그런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나 할까.
슬프고 애절하고 무섭고, 또 한편으로는 귀엽고 발랄하고 바보같고 웃기고.
그런 후에 왠지 로맨틱.
롤러 코스터를 탄 듯 어질어질한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고나 할까.
다양한 소재들도 무척이나 좋았느데, 특히 아랍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단편집은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울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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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실 기담문학 고딕총서 7
이즈미 교카 지음, 심정명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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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즈미 교카의 외과실은 총 네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외과실과 띠가 난 들판은 단편이며, 고야성과 눈썹 없는 혼령은 중편 정도로 보면 되지 않나 싶다. 귀신이나 유령등을 소재로 한 환상 문학을 주로 쓴 이즈미 교카는 300편여편의 소설을 발표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번역 발간된 작품은 딱 이것 하나이다.

작가의 이름을 딴 이즈미 교카상을 받은 작가로는 요시모토 바나나, 유미리, 기리노 나쓰오 등이 있지만, 이들 작가의 작품이 다수 번역 발간되는데 반해, 정작 상의 이름의 주인공인 이즈미 교카의 작품은 딱 한 권 밖에 번역 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아이러니로 느껴질 정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난감했던 부분은 근대에 씌어진 작품이라 그런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문체랄까, 혹은 작가의 독특한 문장 서술 방식이랄까. 뭐 그런 것이었다. 한 번 읽은 것으로는 도저히 감이 안와서 며칠 텀을 두고 두 번을 읽었는데, 두 번째에 이르러서야 문장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 왔다. 원래 문장이 알기 어렵게 씌어졌는지 아니면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앞뒤 연결구조가 잘 들어 맞지 않은 문장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안그래도 익숙치 않은 문장들인데 그런 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니 더욱더 읽기 힘든 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그래도 비슷한 시기에 저술 활동을 한 나쓰메 소세키는 그다지 읽기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즈미 교카는 은근히 읽기가 까다로웠다.

각설하고 책 본문에 대해 잠깐 살펴 보자.
<고야성>은 우연히 동행을 하게 된 승려의 옛날 이야기를 주인공이 듣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조로, 중간중간 현재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조금 헷갈렸던 부분이 생기기도 했다.

마쓰모토로 가는 길에 만난 약장수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지름길로 향하자 승려도 그의 뒤를 좇아 지름길로 향한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마자 기이한 일들이 발생하지만, 일단 그 길로 들어섰기에 계속 나아가기로 한다. 풀밭을 지나자 어두컴컴한 숲이 나오는데, 그곳이 또한 기겁할 정도로 무서운 곳이었다. 하늘에서 거머리가 비처럼 떨어지는 숲. 생각만 해도 소름이 쫘악 끼치는 기분이랄까. 먹잇감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머리들의 무리라니... 한 마리만 있어도 신경이 바짝 오그라들 정도인데 말이다. 힘들게 숲을 빠져 나가니 산중의 외딴 집이 보인다. 그곳에서 만난 건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사람의 영감.
하룻밤 묵어가자는 승려의 말에 흔쾌히 그것을 허락하는 여자. 그리하여 승려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청하게 된다.

그곳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또 그곳에 있었던 과거의 일, 고야성은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또 나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연 그 여인의 비밀은 무엇일까. 일명 '마신님'이라 불리는 그녀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다. 굳이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아도 그녀는 왠지 사람들에게 배척받는 동시에 경외시되었던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과학보다 미신이 더 뿌리 깊게 내려졌던 사회에서 그녀의 존재는 이질적이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복수랄까, 그런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외과실>은 표제작인데도 분량은 굉장히 짧았다. 백작 부인과 의사 사이에 감춰져 있던 비밀. 그것은 수술하던 날 조심스레 드러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봤을 때, 화족이란 신분과 일반인의 신분은 감히 섞이지 못할 존재였을 것이다. 죽음을 통해 이룬 사랑이랄까, 굉장히 안타깝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눈썹 없는 혼령>은 말 그대로 유령 이야기이다. 나라이의 한 여관에서 묵게 된 사카이가 경험한 이야기를 화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형식인데, 이 역시 이야기안에 몇 개의 이야기가 동시 서술된다.

이 이야기는 특히나 그 시대 상황 속의 여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잘 보여 준다. 지금보다 더 가부장적인 현실 아래 고통받고 신음하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특히 지고지순한 며느리나 상대 집안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 그 곳을 찾아가는 기생과 며느리를 잡아 먹으려는 시어머니나 바람 핀 걸 들킨 후 본처의 치맛폭에 숨어버린 남자들의 대조는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불의의 죽음으로 여전히 그곳을 떠돌고 있는 오츠야님은 여전히 초롱을 들고 그곳을 배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띠가 난 들판>은 어느 여름날 밤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된 남녀의 이야기이다. 이 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여인이 겪었던 일에 대한 일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 왠지 우부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출산을 하지 못하고 죽은 여인의 요괴가 바로 우부메이다. 기본적인 우부메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여인이 출산을 하던 당시 보였던 여인의 모습은 저승사자 같기도 하고, 우부메처럼 슬픈 요괴인것 같기도 하다. 출산과 관련되어서 그런 것일까. 그런 생각이 문득 떠오른 단편이었다. 

읽는 건 좀 난해한 편이었지만, 이즈미 교카의 소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을 느꼈던 작품집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우키요에가 이 책의 맛을 더욱더 잘 살려주었다고나 할까. 작가의 다른 작품도 우리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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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의 죽음
야마구치 마사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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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먼저 떠올린 건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영화였다. 제목 자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하나 더 연상되는 건 <새벽의 저주>나 <28일 후> 같은 좀비 영화였다. 보통 좀비라고 하면 시체가 부활한 것을 의미하며, 그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징후는 모두 사라진채 동물적 본능(특히 식욕)만이 남아 있다. 게다가 비틀비틀 걸으며 제대로 죽이지 않으면 죽지도 않는 그런 이미지랄까.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살아 있는 시체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좀비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고 능력도 정신 능력도 살아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지 않다. 다만 시체인지라 몸이 썩어 들어가지만, 생전의 육체적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 준다.

솔직히 말해서 시체가 살아 나서 돌아다니는 것도 무서운데,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니 이건 기절초풍할 일이다. 게다가 본인이 숨기면 주위 사람은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 죽은 자의 부활이란 설정을 갖고 있지만, 기존의 좀비와는 다른 살아 있는 시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소설은 좀비 퇴치라는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면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솔직히 이 책의 도입부는 좀 지겨운 편이었다. 이런 저런 설명이 계속 이어져 도대체 언제쯤 본문에 들어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하지만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도 전에 주인공이 죽어 버렸다!? 그리고 부활했다. 살아 있는 시체로.

그리고 시작되는 의문의 사건들.
장례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발리콘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범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리고 그 속에 깊숙히 감춰져 있던 진실은?

이 소설은 살아 있는 시체가 탐정이 되어 이 사건을 풀어 나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형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형사는 오히려 우왕좌왕하는 캐릭터로 이 소설에 있어서는 양념과 같은 캐릭터이다.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어 주는.

이정도로 보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시체가 살아 나고, 그 살아난 시체가 탐정이 된다는 설정도 이상한데, 코믹한 요소까지 겹쳤다!?

사실, 죽음이나 살인과 같은 것은 무겁고 음침한 소재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죽음 뒤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만, 사람은 불멸의 존재도 불사의 존재도 아닌다. 따라서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소설은 그러한 죽음의 무겁고 억압된 이미지를 벗어나 죽음 자체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책이다. 코믹한 요소가 뒤섞였다고 해서 죽음 자체를 가벼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본문의 소제목은 책이나 음악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구절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죽음에 관한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크림슨 크림의 <에피타프>란 노래의 가사가 나와 오랜만에 참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또한 본문 내용 중에는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 살인 사건> 이야기가 에둘러 표현되기도 하고. 영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도 언급된다. 여기서는 제임스의 죽은 쌍둥이 동생 제이슨이 할로윈에 살아나 살인극을 벌이는 것처럼 소문이 퍼져 있지만...(아름이 똑같다)
여기까지는 '음...이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주문 많은 요리점>의 제목을 패러디한 <주문 많은 장의점 - 동부편>을 보고는 뒤집어지게 웃었다.

또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량 추격전 장면에서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체가 운전하는 영구차와 또 다른 시체가 운전하는 핑크색 영구차, 그것을 뒤쫓는 경찰과 폭주족이라... 왠지 시체가 운전하는 영구차라 생각하면 무척 섬뜩할 것 같지만,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하면 엄청 코믹한 요소가 된다.

이런 코믹한 요소와 더불어 발리콘 일족에게 닥친 죽음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 적절하게 혼재되어 비록 700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일지라도 금세 읽힌다. (물론 도입부는 좀 지겹다) 게다가 사상 유례없는 살아 있는 시체 탐정이라니! 이런 특수성이 있기에 무척 즐겁게 읽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같기도 하지만, 그 저변에는 죽음이란 것에 대한 고찰과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과 숨겨진 두려움이 바탕으로 깔려 있다. 가벼운 터치로 진행되는 듯 보여도 절대 가벼울 수 없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코믹함  + 추리라는 장르로 절묘하게 엮어낸 저자의 필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저자가 참고했을 방대한 양의 자료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이것이 저자의 데뷔작이란 것이었다.

데뷔작답지 않은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강한 인물들, 그리고 독특한 설정은 이 책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란 것은 또다시 새로운 생과 이어지는 순환을 반복하며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는 살아 있으면서도 삶의 의욕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살아 있는 시체들이 많다. 죽어서도 삶에 집착하는 진짜 살아 있는 시체들과 살아 있으면서도 삶에 의욕을 갖지 않는 살아 있는 시체들, 당신은 어느 쪽의 살아 있는 시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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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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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 날에만 나타나는 그녀.
처음엔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시로와 토라의 이상한 행동으로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게 된 남자.
그녀는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전혀 없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와 소파에 앉을때 살짝 꺼지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처음에 책 표지와 책 띠지를 보면서 문득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떠올랐다. 장마때 비가 몹시도 쏟아지기 시작할 무렵 돌아온 죽은 아내와의 행복하고도 애틋한 나날을 그린 그 소설이. 하지만 조금더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흐름이 급격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유령인 치나미는 자살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실제로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처음엔 유령의 존재가 두려웠던 누마노 와타루는 그녀와의 이야기에서 호기심을 느끼기도 하고, 또한 그녀를 얼른 성불시키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처음엔 평범한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곧이어 유령이 등장하고, 그 유령은 자신이 살해되었다고 하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로 흘러간다. 그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나타나지도 않고, 비가 오는 날이라도 맨션의 거실 공간을 한정해서 움직임이 가능한 치나미는 와타루 이외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하긴 유령이 거실에 나타난다면 누구든 혼비백산하지 않을까. 하지만 와타루의 경우, 공포보다는 호기심이 앞선지라 그녀의 말을 찬찬히 들어 준다.

와타루는 그녀의 고백을 토대로 당시 사건에 관련있던 사람들을 하나씩 만나 그날의 일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유력한 용의자부터 시작해 그녀와 관련있던 사람들까지. 하지만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게속 내용물이 나오는 양파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하나의 의혹이 사라질 때마다 그녀도 변신을 한다.

처음엔 무릎 아래쪽의 두 다리가, 두번째는 허리 아래의 하반신이, 그리고 세번째는 목이 없는 전체 모습이.....
솔직히 말해서 첫번째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난 순간, 난 기겁을 했다. 세상에 거실에 다리만이 돌아다니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심 그녀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길 바랐다.

와타루도 처음엔 나와 같은 반응을 보이나 그녀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드러날 수록 그녀의 전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혹이 하나씩 해결될 수록 오히려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애시당초 그녀를 죽이고 싶은 인물이 있었을까. 그녀 주위의 인물들은 오히려 결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반대로 와타루는 유령인 치나미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살아 있던 동안에도 무척이나 외로웠을 그녀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생각때문에 성불하지도 못하고 이승을 떠돌고 있다. 죽어서는 유령이 되어 사람들에게 더욱더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되었을테니, 그 외로움은 더욱더 커졌으리라.

의혹의 해명과 더불어 조금씩 윤곽을 갖추어가는 치나미의 모습은 와타루에 대한 마음의 성장과 상당 부분 통하지 않을까.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일을 조사해주는 그에게 고마움과 더불어 사랑이 자라지 않았을까. 

마지막 진실이 밝혀진 후,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 치나미. 
치나미는 마지막 밤을 와타루와 함께 보낸 후 영원히 피안의 땅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 묘사된 그들의 마지막은 무척이나 가슴이 저렸다. 아마도 와타루는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으리라. 그녀가 죽으면서 남긴 미련이나 의혹이 모두 사라진 상태이니 그녀가 성불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와타루.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알려 주고, 그녀와의 접점을 만들어준 두마리의 고양이 시로와 토라 역시도 그녀가 떠나는 것을 따뜻한 눈으로 배웅할 수 밖에 없었으리라. 

책 내용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치나미의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나는 것, 결국 그것은 떠나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의혹이 풀릴 때마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는 대신 그녀의 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그건 준비된 이별의 순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여주고 떠나게 된다는 것. 아마도 와타루는 그녀의 얼굴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면 치나미는 와타루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역시 이승에 둔 미련이 사라진 지금은 그녀가 사라질 수 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이 크다. 비가 내려준 기적. 한 사람은 사랑을 안고 떠났고, 한 사람은 사랑을 가슴에 품은채로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모두 예고되어 있던 일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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