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 카페 1
엔죠지 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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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난 순정 만화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그다지 흥미가 없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고교시절까지는 순정 만화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였지만, 어느샌가 늘 변함없는 여자 캐릭터들에 질려 버렸다. 조금만 안되면 남자에게 매달리고, 의지하고, 자신의 의지라고는 안보이며, 마치 눈물은 여성의 무기라는 양 진상을 떠는 모습이 무척이나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여자 캐릭터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왜 그런 여자들이 남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지에 대한 시기 어린 질투가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순정만화를 보면 여성 캐릭터들이 좀 달라졌다는 걸 느끼게 된다. 미드나이트 카페에 나오는 히나도 그런 캐릭터라고 할까. 생긴 건 예쁘고 여성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억척스러우며 대식가에 술고래에, 주사까지!? 같은 여자 입장에서 봐도 무척이나 귀엽단 생각이 든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배나 많은 남자와 결혼했지만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그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는 걸 알고 있는 히나. 그런 히나가 유산으로 남겨진 카페의 여주인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미드나이트 카페의 남자 주인공들.. 표지만 봐도 입이 헤벌쭉 벌어질 만큼 근사한 미청년들이다. 표지 소개글처럼 샤방샤방한 그들. 역시 이런 순정만화는 작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笑)

하지만 이들에겐 각각 숨겨진 사연들이 있는 듯하다. 난조 노조무는 도쿄대 법학부에 다니는 수재이지만 대인 관계가 극도로 서툴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쌀쌀맞은 타입이랄까. 유키무라 요시즈미는 왠지 돈에 집착하는 느낌이 있는데, 아직 확실한 감은 못잡겠다. 마지막으로 사와타리 소시는 프로 테니스 선수였다. 그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히나와 마찬가지로 그의 과거에는 무엇인가 깊은 사연이 있는 듯 하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히나를 노리고(?) 있는 변호사 토도는 비록 표지엔 없지만, 멋진 캐릭터이다. 원래 메가네 캐릭터는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토도는 처음 본 순간 뽕~~ 갈만큼 멋진 모습이랄까. 그러나 가끔씩 망가지는 듯한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고, 특히나 히나를 두고 망상을 할 때는 풋하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이렇게 멋진 남성 캐릭터가 잔뜩 등장하는 데다가, 달콤한 로맨스에 코믹한 요소까지 갖춰져 있어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직 로맨스의 시작의 '시'도 시작되지 않은 느낌이긴 하지만, 소시는 점점 히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고, 토도는 적극적인 공세중이다. 게다가 여성 캐릭터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니 읽는 내내 즐거운 건 당연한 듯 하다. 

일본에서는 3권까지 출간된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 이 남자들이 가진 비밀과 히나에게 카페를 상속한 이유, 그리고 연애전선의 행방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멋진 남성들과 향긋한 차의 향기가 감도는 그 곳....
이 카페, 잇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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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구매할 때 구매를 확정 짓게 만든 요소는 일단 더글러스 애덤스의 책이란 것.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흥미를 끄는 제목. 그리고 책 띠지에 씌어 있는 '가장 훌륭하게 정신 나간 추리 소설!'이란 문구였다.

오호라.. 더글러스 애덤스가 추리 소설을!?
이제껏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이라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 1~5권을 본 기억밖에 없기에, 굉장한 흥미가 생겨났다.

안내서 시리즈를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말 정신 사나우면서 한편으로는 연이은 폭소에 때로는 삐딱한 풍자까지 있어 읽는 내내 지겨울 틈이 없는 소설이다. 물론 코드가 절대적으로 맞아야 재미있는 소설이긴 하지만, 본인의 코드와 잘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책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신줄 살짝 놓고 읽는 게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안내서 시리즈에 비하자면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은 지극히 정상적인 책으로 보인다. 물론 더글러스 애덤스의 톡톡 튀는 어휘 구사력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건 전개 등은 훌륭히 남아 있지만, 안내서 시리즈에 비하면 평범할 정도이다. 게다가 고맙게도 안내서 시리즈에 나오는 헉소리 나올 정도의 숫자도 나오지 않는다. (본인이 숫자에 약하므로...)

어쨌거나 전체적인 느낌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했고, 즐거웠다. 마무리가 조금 약하단 게 흠이랄까. 하긴 워낙 사건을 방대하게 만들어 작가 자신도 수습하기가 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笑)

공항에서의 여직원 실종 사건, 그리고 목이 잘린 채 발견된 사체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추리 소설인가 싶지만, 역시 평범한 추리 소설이 갖는 진중함보다는 약간 가벼운 느낌은 든다. 게다가 갑자기 난데 없이 등장하는 북유럽의 신들!!! 어라라, 역시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이 맞구나 하고 드디어 수긍이 간다.

오딘과 토르의 등장으로 추리 소설 + 판타지 + SF의 독특한 설정이 완전하게 갖추어 졌다.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괴이쩍고 수상쩍은 사건들은 하나의 연결점을 가지고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탐정 더크 젠틀리의 능력(?)도 한 몫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타의 추리 소설처럼 탐정이 사건을 끝내주게 해결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신들의 문제에 인간이 개입한 것처럼 보이며, 결국 해결도 신이 하게 되는 것이다.

더크 젠틀리가 한 일은 의뢰인과의 약속에 늦어 의뢰인 살해 당하게 만들기를 비롯해서 코뼈 부러지기, 독수리에게 쫓기기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상황을 연이어 마주하게 된 것뿐? 물론 그가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이야기해 주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좀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은 든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북유럽의 신들과 연결되어 있던 만큼, 역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은 불멸의 존재였지만, 그건 오래전 이야기. 이 소설에 나오는 신들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날라치면 신을 먼저 찾고, 신이 내리는 벌이라 생각했지만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해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자연재해임을 알고 있다. 즉, 현대 사회에서는 신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신은 신이라는 자리를 버리고 은퇴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이란 사람의 믿음이 있는 곳에 존재하는 법이니까.

한 여성의 실종 사건과 한 남자의 살인 사건이라는 추리 소설의 요소에 북유럽의 신인 오딘과 토르를 등장시켜 신화와 결부시키고, 그것에다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특기인 SF적 요소를 적절히 혼합시켜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 한 권 등장했다. 수식어 하나를 사용해도 더글러스 애덤스 표라고 특허를 내도 될 만큼 톡톡 튀는 어휘 구사력은 안내서 시리즈 만큼은 아니더라도 독자에게 허를 찔린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살해당한 남자의 집에 있던 꼬마의 정체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고, 엔딩 역시 두루뭉술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점은 역시 좀 아쉽다. 게다가 탐정의 역할이 시원찮았다는 것도 좀 아쉽다고나 할까. 하지만 역시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의 백미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일이 나중엔 퍼즐 조각처럼 착착 제자리를 찾아 들어간다는 것이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하고,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현대 사회를 비스듬히 꼬집고 있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영혼의 길고 암울한 티타임. 이 책이 더크 젠틀리 시리즈의 2탄이라고 하는데, 아직 1편인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를 읽어 보지 못해서 무척이나 아쉽다. 과연 1편에서는 더크 젠틀리가 탐정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인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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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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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를 읽은 후 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가 그려 내는 세계의 매력에 푹 빠져 들었다. 작화는 비록 거친듯 하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심오함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만화였다는 느낌이었다. <마녀>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한 여자의 이야기나, 토착 신앙과 현대 문명의 대립,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눈에 보인다는 교훈을 준 이야기, 예로부터 내려온 자연에 대한 믿음과 그걸 부정하는 종교등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룬 책이었다.

단편집인 <영혼> 역시 다소 기묘하고 기괴한 등장 인물과 설정은 그로테스크함을 느끼게 하는 면도 있지만, 그런 것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작품을 바라볼 때의 호불호를 결정짓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면이 이가라시 다이스케다운 면이라고 강하게 느낄 뿐.

<영혼>은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만큼 보여주는 세계도 다양하다. 다소 기괴한 세계를 보여주는 단편도 있지만 따스한 인간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는 단편도 실려 있어 한 권의 책에서 여러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향토신은 올컬러로 되어 있지만 분량은 매우 적다. 왠지 우리 나라 전래 동화를 떠올리게 한 작품이었달까. 위험에 빠진 곰인지 호랑이인지를 구해준 청년에게 보답하는 동물이 떠올랐다. 물론 여기서는 위험에 빠진 향토신을 구해주는 설정은 아니지만, 그 고장의 토산품이 어떻게 유래되었나를 재미있게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영혼은 빙의란 것을 소재로 삼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녀가 어느 날 무심코 부엉이 새끼를 밟아 죽인 후 머리에 깃털이 생겨난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영혼이 빙의되어 자신을 잃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린 쉽게 들을 수 있다. 다만 그 형태가 보이지 않는 것 뿐이지만, 영혼에서는 빙의된 영혼으로 변화된 사람의 모습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구현해 놓았다. 딸을 남기고 죽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를 보내야하는 걸 알고 있는 딸의 마음이 무척이나 기특하고 안타까웠던 단편이었다.

곰잡이 신도둑 타로의 눈물은 제목을 보고선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졌다. 신도둑?? 신이 처음엔 신발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神)을 뜻하는 것인지 헷갈렸는데, 내용을 보니 후자의 신(神)이었다. 어느 한 마을의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바쳐지는 소녀의 인신 공양과 비록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생명을 해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타로의 힘. 타로는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소녀는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고 타로는 기억을 잃게 된다. 누군가를 구하는 데 힘을 쓰고 싶었던 소년 타로의 눈물.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자신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도 무거웠다.

모래여자는 처음으로 학교를 땡땡이 친 소녀가 만난 화가와 몸에서 모래가 나오는 여자와의 따스한 생활을 그리고 있다. 몸에서 모래가 나오는 특이 체질. 그러한 체질때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반년도 안되어 죽어 버렸다. 그러한 자신의 체질에 두려움과 역겨움을 가진 그녀였지만 그녀의 특이 체질은 사고로 죽을 뻔한 이토를 구하게 된다. 모래 자체로는 쓸모가 없지만, 아름다운 유리의 재료가 되는 것도 또한 모래.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 그녀에게 저주였다고 생각한 것이 행복을 가져오게 되었을지도...

 le pain et le chat는 이 단편집 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소녀는 외눈박이 새끼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비록 도둑질을 하면서 살아갈지만 그 집에서 어머니가 돌아 오기를 기다리는 소녀와 제빵일을 하지만 어느 새 삶의 보람을 잃어버린 베이커리 기술자의 만남. 비록 어리지만 작은 생명을 소중히 하는 소녀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의 빵이 맛있다고 하는 소녀를 보면서 그는 예전에 가졌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린다. 소중한 건 늘 가까이 있고, 소중한 것은 자신이 직접 지켜야 한다는 느낌이었달까.

여전히 겨울은 겨울산에 봄이 오는 과정을 다소 독특한 표현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사오히메란 여성이 등장하는데, 아마도 이건 일본 특유의 이야기인듯. 특히 동물들이나 식물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다.

거친 듯 하면서도 섬세하고, 그로테스크한 듯 하면서도 따스하다. 여기에 실린 단편 6개는 절망이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동시에 희망이나 행복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동시에 담고 있다. 또한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원히 하나의 길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영혼은 마녀에 비해서는 좀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인데, 한 작가가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은 틀림없이 작가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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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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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을 처음으로 읽었던 건 초등학교때였다. X, Y, Z로 시작하는 드루리 레인 시리즈를 세 권 다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당시엔 문고본처럼 작은 책으로 2권으로 분권되어 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에 읽은 지라 요번에 읽었을 때는 처음으로 읽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사실 당시에는 초등학생이 이해하긴 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지만...(笑) 그래서 애거서 크리스티보다는 좀 재미가 없다, 이렇게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새로 읽으니 너무나도 근사한 추리소설이었다. 세계 3대 추리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유를 알았다고나 할까.

Y의 비극은 해터家를 배경으로 해터家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은퇴한 연극 배우 드루리 레인이 사건 해결을 하는데, 드루리 레인 역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처럼 확증을 잡기 전까지는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경향이 보여 둘을 비교하면서 혼자 미소 짓기도 했다.

해터家의 가장 요크 해터의 변사체가 바다에서 발견된 이후, 해터家에서는 독살 미수 사건을 비롯해 살인 사건, 방화 등 기묘한 사건이 자꾸만 발생한다. 첫번째로 노려진 건 장녀 루이자로 그녀를 노리는 독살 미수 사건. 그후 해터家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해터 부인이 밤중에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사건의 목격자는 함께 방을 쓰던 루이자. 그러나 그녀는 시각, 청각 장애인이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루이자는 그러나 후각과 촉각을 통한 증언을 한다. 

시각 장애인이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꽤 있으나 청각, 시각을 모두 상실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건 처음으로 보는 설정인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게다가 해터家 사람들의 기행이랄까, 도무지 제정신으로 보이는 등장 인물이 없다. 어른부터 아이까지...
여기에선 해터家의 핏줄에 즉, 유전적인 문제를 언급한다. 해터 부인의 몸속에 흐르는 나쁜 피가 그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지면서 기묘한 가족을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선 해터 부인의 병이 매독이라고 나온다. 실제로 매독이 진행되면 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도 살인자로 만들수 있다는 이야기는 미드에서 본 적이 있다. 물론 여기에선 매독때문에 정신이 나가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악한 핏줄이 따로 있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주위 환경, 즉 가정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점은 인정한다. 해터家는 해터 부인의 병으로 인해 가족들이 영향을 받긴 했지만, 해터家 자체의 분위기도 가족들의 기행에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은 드러나나, 설마하는 마음이 앞섰다. 내가 생각한 사람이 범인으로 드러났을 땐 순간 내가 범인을 맞췄나 하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난 것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쓴웃음을...

어쨌거나 범인의 정체는 굉장히 충격적이며, 그 범행 동기도 무척이나 독특하다. 과연 이 사건, 이 비극에서의 범인은 과연 '그' 하나만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책임은 해터家 사람들 모두에게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이 비극의 발단은 벌써 오래전에 씨앗을 뿌리고 발아할 준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다만, 좀 아쉬웠던 건 루이자를 노린 마지막 독살 사건에서 드루리 레인이 극약을 우유로 바꿔놓은 장면이 있는데, 우유는 하루만에도 부패하는데, 그것을 2주일이나 놔두었다는 건 좀 앞뒤가 맞지 않나 싶다. 틀림없이 2주가 지난 우유는 부패할대로 부패했을텐데... 그리고 오자가 좀 눈에 띄었다. 교정에도 좀더 신경을 써줬으면 무척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1930년대에 나온 추리 소설의 고전, Y의 비극. 
지금의 추리 소설에 비해서도 트릭이나 범행 방식, 동기면에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명작이라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지금도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 속에 100년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히 읽히는 책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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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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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은 늘 흥미롭다. 무려 반세기나 전에 씌어진 추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설정이라든지 트릭, 범인의 동기등은 현재 속속 출간되는 추리 소설의 설정에도 전혀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시대적 상황이나 그 시대의 인습등도 함께 볼 수 있어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귀수촌.
귀수촌(鬼首村)이라. 이름부터 무척이나 섬뜩한 느낌을 준다.
내가 읽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전작 중에도 옥문도나 팔묘촌 같은 경우에도 일단 지명부터 강한 포스를 내뿜었는데, 악마의 공놀이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의 화자는 이소카와 경부로 주인공인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여러 사건을 해결했던 인물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소카와 경부가 화자가 된 것은 이게 처음인 듯 하다. 어쨌거나 귀수촌에 휴양차 내려간 긴다이치 코스케가 맞딱드린 사건. 그것은 이십여년전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맞닿아 있었다.

수십년전의 사건으로 인해 그 후대가 희생되는 건 옥문도나 팔묘촌의 설정과 비슷하다. 또한 고립된 지역이란 특성, 마을의 중심이 되는 두 일가의 대립이란 것도 그 두 작품과 비슷하며, 특히 공놀이 노래라는 구전 노래(혹은 마더 구즈)가 쓰인다는 설정은 옥문도와도 비슷한 면이 분명 있다. 물론 같은 작가의 작품이고 워낙 많은 작품을 쓴 작가이다 보니 어느 정도 겹치는 설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읽어 보면 역시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은 우리를 뜨악하게 만드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발언. 이미 범인을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란 것. 물론 심증뿐이니 그걸 끝에서야 밝히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긴다이치 코스케가 귀뜸만 해줬으면 더이상의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하지만 이미 운명의 바퀴는 이십여년전에 돌아 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종말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으니 사람이 중간에 개입해도 별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 부분은 범인과 긴다이치 코스케가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게 되는 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공놀이 노래를 듣게 된 것이 사건이 어느 정도 발생한 후란 걸 생각해 보면 긴다이치 코스케가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역시 탐정은 사건을 막는 역할이 아니라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에서만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笑)

이건 여담인데,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나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건의 범인은 동정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 다수를 차지한다. 요즘 추리 소설과는 다른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분인데, 요즘의 악랄한 범인과는 달리 슬픈 사연을 가진 범인이 다수 등장하는 것이 좀 특이할 만한 점이다. 물론 죄를 지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십여년전에 발생한 한 남자의 수수께끼같은 죽음과 그 남자에 얽힌 비밀, 그리고 윗세대의 잘못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후세들. 인과(因果)로 인한 댓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댓가이지만, 그러한 면이 또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의 흥미로운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반세기 전에 씌어진 작품인데다가 범인의 트릭도 요즘처럼 세련되지 못해 고리타분하다거나 낡았다는 표현을 듣게 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내게 있어서는 늘 새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들로 보인다. 물론 개인적 취향일 수도 있겠으나, 악랄한 범인이나 사이코패스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요즘 추리 소설에서는 느낄수 없는 멋이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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