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 버린 기억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4
샬레인 해리스 지음, 송경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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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도 벌써 네 권째.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남부 뱀파이어란 독특한 소재를 내세운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뱀파이어 물을 표방하지만, 수키는 텔레파시 능력자이고, 그외에도 변신능력자(개, 스라소니, 여우 등등으로 변신 가능), 늑대 인간 등등이 등장했다.
게다가 요번에는 표범 인간에다가 요정, 마녀까지 등장한다.
이거 왜 이래, 등장하는 수상한 인물이 너무 많잖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뱀파이어란 애초에 초자연적인 존재. 따라서 다른 초자연적인 존재 역시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자연스레 납득이 된다. 그리고 다음엔 또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할지 무척 기대가 되기도 한다.

시리즈 첫번째 책인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뱀파이어 빌과 텔레파시 능력자 수키의 만남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와 소소한 사건 몇 가지, 두번째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은 연인 빌과 함께 댈러스로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다. 세번째인 <죽은자 클럽>은 빌의 배신과 죽다 살아난 수키의 이야기와 늑대 인간 알시드와 뱀파이어 에릭의 끊임없는 구애등등 여러가지 재미거리가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빌의 배신으로 가슴이 아픈 수키는 빌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초대를 취소해 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뱀파이어는 초대를 받지 못하면 타인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

<죽어 버린 기억>에서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 아니, 오히려 더 관계가 더 틀어진- 수키와 빌. 빌은 여왕의 명령으로 페루에 날아가 버리고, 수키는 아픈 마음을 위로하며 꿋꿋하게 일을 해 나간다. 그런데, 수키에게 평안한 날은 영영 찾아 오지 않으려나? 이번엔 에릭이 기억을 잃은 채로 발견된다.

평소의 뻔뻔하다 못해 오만한 캐릭터였던 에릭은 어디가고, 순한 양, 착한 강아지 캐릭터가 되어 나타난 에릭. 수키는 에릭의 밑에 있는 팸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에릭을 보호하기로 한다. 빌과의 사이는 틀어졌지, 늑대 인간 알시드는 변신 인간 데비 펠트와 수키 사이에서 방황하는 판이니, 평소에 자신에게 구애를 해오던 에릭에게 마음이 기울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에릭은 빌보다 오히려 더 좋아했던 캐릭터였고(내가), 또한 에릭이 수키와 맺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계속 가졌던 난 이런 전개 모드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다정하고 섬세한 에릭이라.. 왠지 처음엔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워낙에 멋진 캐릭터인지라 금세 그러한 에릭에 적응하고 사랑을 느낀 수키(그리고 나).

죽어 버린 기억은 에릭과 수키의 로맨스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사실상 책 내용은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랑을 하는데는 그다지 짧은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평소와는 다른 에릭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물론 평소의 잘난 척 좀 하고, 뻔뻔하게 굴긴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에릭도 무척이나 좋았지만, 역시 다정함은 여자를 녹이나 보다.

에릭을 노리고 에릭에게 마법을 건 마녀인 할로와 그 수하의 마녀들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점점 더 긴박해져가고, 수키의 오빠 제이슨은 행방 불명이 되는 등 수키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여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또 들었다.

마녀 코븐과 뱀파이어 + 늑대 인간 동맹의 싸움은 의외로 쉽게 끝나버려, 전편에 비해 액션씬이랄까 그러한 것이 분량은 적은 편이지만 내가 원하던 에릭과 수키의 로맨스가 진행되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또한 색다른 모습의 에릭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달까. 비록 나중에 마법이 풀려 평소의 뻔빤하고 잘난 척하는 에릭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게다가 마법에 걸렸을 때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 버린 에릭. 에릭과 보낸 며칠은 수키에게는 한여름밤의 꿈같은 짧고도 달콤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수키에게 제발 제대로 된 남자를!!)

참, 또 하나. 요번엔 수키의 오빠 제이슨의 행방 불명 사건과 연관되어 표범 인간도 등장한다. 보통 늑대 인간에게 물린 자는 반늑대 인간이 된다고 하는데, 표범 인간에게 물린 제이슨은 보름에 어떤 식으로 변화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그런데... 마운틴 라이온(mountain lion)이라고 써놓고 왜 그걸 표범으로 번역한 것이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원서를 못봐서(볼 능력도 안되지만) 내가 알기로 마운틴 라이온(산사자)는 퓨마를 뜻한다. (퓨마는 쿠거, 팬서라고도 불린다) 아니면 미국 남부에서는 마운틴 라이온을 표범이라고 하나? 하여간 좀 이상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의 숨고르기 작품이랄까, 그러한 느낌이 든 죽어 버린 기억. 3, 4권은 빌의 등장 분량이 압도적으로 적고, 에릭의 등장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에릭이 어떻게든 잃어 버린 기억을 찾아 수키에게 행복을 선사해줬으면 좋겠는데, 과연 그게 내 바람대로 이루어질까? 또한 표범 인간에게 사정없이 물렸던 수키의 오빠 제이슨은 과연 보름에 어떤 변신을 하게 될까. 이래저래 궁금한 것 투성이로 막을 내린 죽어 버린 기억. 다음은 또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와 어떤 이야기가 새로이 펼쳐질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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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붉은 강가 2 - 애장판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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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갈 기회를 얻었지만, 자신에게 남겨진 사명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고대의 세계에 남게 된 유리. 그녀는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란 이름으로 불리며 그쪽 세상에 꽤나 잘 적응해가고 있다. 

솔직히 말해 제물로 고대 세계에 끌려가 목숨의 위협을 받지만 멋진 남자에게 사랑받고, 또한 그 세계에 잘 적응해 나가는 유리를 보면서 일단은 한숨을 돌릴까 했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위협에 모함에 목숨이 열두개라도 살아 남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순간의 기지와 노력으로 꿋꿋하게 또한 힘차게 살아 남는 유리를 보면서 역시 강한 여성의 캐릭터가 느껴진다.

물론 그곳에 간지 얼마되지 않아 벌써 아마조네스처럼 보이는 유리를 보면서 위기란 인간을 정말 강인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첫사랑을 하던 고교생 소녀에서 고대왕국의 제물로, 그것에서 카일 황자의 비로, 이슈타르로 칭송되는 유리. 

황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또한 유리를 노리는 위협도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니 앞으로도 유리의 삶은 고달픔 그자체일 것 같다. 하지만 위기는 인간을 강하게 만들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 앞으로 유리가 어떤 식으로 성장해 나가고, 또한 얼마나 멋진 사랑을 해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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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붉은 강가 1 - 애장판
시노하라 치에 글.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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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하라 치에는 <안개숲 호텔>을 시작으로 <물에 깃든 꽃>을 거쳐 <하늘은 붉은 강가>를 읽게 되었다. 발행 순으로 보자면 난 완벽하게 거꾸로 읽는 셈이지만...(笑)
워낙 유명한 만화라고도 하고, 또 시노하라 치에의 이런 저런 작품을 읽다 보니 애장판으로 나온 이 작품을 읽고 싶어지게 된 건 당연한 듯 하다. 

꽤나 오래된 만화라서 그런지 요즘 나온 책에 비해 캐릭터의 얼굴이 좀 부자연스럽다. 지나치게 뾰족해서 찔릴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또한 의상이 조금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 일본의 모습보다는 고대 왕국의 모습의 의상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 곧 그러한 위화감음 없어졌다.

물이란 소재라..
일본에서 물이란 것, 특히 우물이나 연못 같은 건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로 묘사되는 게 많은 듯 하다. 아마도 섬나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 저런 만화나 영화, 서설을 보다가 물을 소재로 사용한 것이 눈에 많이 띄기도 했던 걸 지금도 기억한다.

저주의 제물로 바쳐질 소녀로 선택되어 고대 - 그것도 기원전 14세기- 로 끌려 가게 된 후 그 곳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간다. 게다가 무모한 용기와 객기로 인해 다른 사람을 상처입히고 결국 죽게 만든 여주인공인 유리를 보면서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요즘은 뭐랄까, 워낙 수퍼 우먼 이미지의 여성 캐릭터가 많다 보니 순간 순정 만화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것을 완전히 잊어 버린 상태로 이 만화를 봤다고 할까. 하여간, 순정만화의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유리가 사실상 무척이나 마음에 안들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 일과 도움이 되지 않을 일 따위는 구별도 못하고, 혼자 어떻게 해보려는 건, 취지는 훌륭하지만 어쨌거나 남에게 폐를 끼치게 되니까. 

그래서 그런지 처음엔 유리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마저 느꼈다. 물론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고대로 끌려갔으니 무척이나 불쌍하기도 했지만, 1권을 봐서는 불쌍하단 것보다는 얼른 정신이나 차려라.. 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달까.. (아무래도 난 너무 과격한 듯 하다)(笑)

하지만 조금씩 변하고자 노력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그 세계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1권 후반부터 나와 유리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호의적으로 변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인 카일과 조금씩 마음이 통하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드디어 로맨스가 개시되는 구나 하는 두근거림도 느꼈다. 역시 로맨스물은 로맨스가 빠지면 안되지.. 이런 느낌이랄까. 

수시로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운과 재치에 의해 슬기롭게 그 위기를 헤쳐가는 유리. 과연 2권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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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마법과 쿠페 빵
모리 에토 지음, 박미옥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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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리 에토의 소설은 나오키상 수상작인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 시트>로 시작했다. 처음엔 제목이 뭐가 이래 촌스러~~라고 생각했지만, 그 책에 실린 단편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져 오는 것을 느꼈고, 결국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책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모리 에토란 작가에 관심을 갖게 된 후, 그녀의 첫 어른 소설인 <검은 마법과 쿠페빵>을 집어 들게 되었다. 원래부터 어린이 책 작가라서 그런지 어린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무척이나 섬세했고, 또한 사춘기 소녀의 심리 묘사 등 한 여자 아이가 소녀가 되고, 또한 한 사람의 여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무척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노리코가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10살 무렵부터 18살까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고, 에필로그에는 현재 노리코의 생활에 대해 짧게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앞의 이야기들이 노리코의 회상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다.
제 1장에서 3장까지는 초등학교 시절의 노리코, 제 4장에서 6장은 중학시절, 제 7장에서 9장까지는 고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 해 한 해 한가지 사건에 집중해서 그 당시 노리코의 심리와 주변 상황, 노리코가 겪었던 일에 대해 묘사가 되고 있다.

영원의 출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친구의 생일과 더불어 알게 된 깨달음과 언니가 늘 강조하는 "영원"이란 것에 대한 생각의 전환 등을 보여 준다. 더불어 아이들의 순진함이나 순수함에서 나온 잔인함이 어른의 그것보다 더욱 가혹했다는 것 또한...

검은 마법과 쿠페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이야기로 엄격한 교사와 그에 짓눌렸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도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는데, 정말 이런 교사는 한 학교에 꼭 하나씩 있었지.. 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성적 지향주의와 더불어 학생간 상호 경쟁을 부추기는 그런 선생. 물론 학교측이나 학부모에겐 유능하단 소리를 듣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런 압박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른에 대한 특히 교사에 대한 믿음보다는 공포가 더 컸던 그 시절. 하지만 결국 그런 것도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되곤 한다.

그외에도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 사이에 찾아 오는 쓸쓸한 감정이나 친구들과의 헤어짐에서 비롯되는 아픔 등을 담은 봄날의 고백, 자신의 부모는 완전무결한 존재였다는 믿음이 깨어지게 되는 동시에 사춘기의 방황을 시작하게 되는 부분을 담은 DREAD RED WINE과 먼 눈동자 등은 나의 사춘기 시절을 뒤돌아 보게 만들었다.
물론 난 노리코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화려한(?) 사춘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는지라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그때는 얼마나 어렸던가.. 그리고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하는 생각에.

그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노리코의 모습은 첫 사회 생활에 대한 경험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첫사랑의 이야기는 서투른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우리 나라 고교생들은 입시다 뭐다 해서 아르바이트는 커녕 친구와 놀러 다닐 시간조차도 없지만, 일본의 고교생들은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훨씬 빠르게 사회 경험을 쌓는 듯 하다. 내가 고교에 다닐 때만 해도 - 물론 난 인문계였지만 - 수능시험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기억이 난다. 그후 대학에 갔기에 사회 경험이란 대학시절 처음 해 본 아르바이트가 처음이었다. 

첫사랑은 이상하게 잘 안이루어진다. 첫사랑을 시작하는 나이는 보통 이리저리 휘둘리기 쉬운 나이이고,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나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학교안에서는 대단해 보였던 존재가 졸업하고 나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수했던 만큼 더 열정적이고, 그러하기에 더 아플수도 있다는 건 나도 경험상으로 잘 안다. 하지만 이별이란 건 늘 아프다는 것도 기정 사실이다.

노리코가 보냈던 시간을 자신에게 투영해 보자면 무척이나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물론 똑같은 경험은 하나도 없을지 몰라도, 비슷한 나이에는 비슷한 고민을 하게 마련이고, 또 그런 아픈 과정을 통해서 인간은 성숙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더이상 성장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늘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고, 좀더 앞의 미래에는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영원이란 말도 없지만 절대란 것도 없다. 때로는 과거를 돌아보면 추억하고, 반성하며 현재를 열심히 살고, 미래를 기다리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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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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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 사회는 고도 자본주의 사회로 우리는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신적으로는 매우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명 빵빵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을 보고 부러워한다. 돈만 있으면 사람의 영혼빼고는 다 살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이다.
또한 현대 사회는 돈이 있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금전이란 것으로 거래되며, 심지어 결혼 상대도 적어도 자신과 비슷한 급, 희망은 자신보다 부유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돈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세상이니까.

그렇다 보니 자신과 주변을 비교하게 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직장에 사는 사람이 부러워지게 마련이다. 그럴때 일시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얇은 플라스틱에 마그네틱 선이 부착된 신용 카드.
신용 카드는 비록 당장 현금이 없어도 모든 계산을 가능하게 해준다. 비록 개개인마다의 한도 차이는 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을 구입하기엔(현금이 없다 해도) 더없이 적절하다. 

나도 신용 카드를 발급받고 사용한지 거의 10년 정도가 되었다. 내가 처음 발급받을 당시만 해도 거리에서 회원 모집을 하는 등 신용 카드 발급받는 건 거리에 떨어진 동전 줍기보다 훨 씬 쉬웠다. 요즘은 카드 발급 기준이 좀 까다로워진 면은 있지만 여전히 신용 카드 발급 받기는 쉬운 편이라 생각한다.

처음엔 신용카드를 발급받고도 사용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쓰게 되면서 그 재미가 생겨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던 때라 다음달 결제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독립을 하게 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혔다. 첫직장인데, 월급이 안나오는 것이었다. 일단은 필요한 것은 카드로 계산하며 근근히 버텼지만, 몇달치 월급이 밀리니 갚을 길이 없었다. 첫직장에다 중소도시에서 자란 나였기에 월급 달란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까딱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릴뻔 한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 노동부에 신고해서 밀린 월급을 다 받긴 했지만.

그후, 신용 카드는 규모를 정해 놓고 그 기준안에서 쓰는 편이다. 아무래도 현금보다 지니기 쉽고, 외국에 나갈 때도 편리하게 쓸 수 있었던 점, 그리고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으로 하는 편이라 신용 카드는 내게 무한의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차는 바로 이러한 신용 카드와 대출이란 문제가 인간을 얼마나 나락으로 몰아가느냐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는 비단 일본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고 대서양 건너 있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용 카드는 무한의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그건 공짜가 아니다. 반드시 갚아야 할 돈인 것이다. 그러나 쓸 때만큼은 공짜란 생각이 먼저 들어 일단 물건을 구입해 놓고 나중에 그 돈을 갚지 못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홈리스가 되는 사람을 우린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때로는 사채에까지 손을 대 폭력을 당하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난다.

화차에 나오는 여성 둘. 그 여성들이 겪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던 여자 신조 교쿄. 그녀는 세키네 쇼코란 여성이 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하지만, 세키네 쇼코가 개인 파산을 신청한 것을 알게 된 후 사라진다.
신조 교코는 아버지가 새 집을 마련하면서 빌어 쓴 돈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고, 세키네 쇼코는 신용 카드 빚으로 궁지에 몰려 개인파산 신청을 한 경력이 있다.

그녀들이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일들, 특히 사채와 관련된 경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특히 신조 교코는 자신의 아버지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경우이니 그 고통은 얼마나 심했을까. 사실 우리나라도 모기지론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경기가 좋을때는 장기간 돈을 갚아나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불경기로 경기가 돌아서고 직장을 잃게 되면 모기지론은 그야말로 목줄을 죄어 오는 것이다.

신용 사회. 신용으로 이루어진 사회.
이것은 이상일 뿐일지도 모른다. 신용 카드란 것에는 물론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소설을 읽거나, 내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신용카드란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언제까지나 자신을 쫓아오는 사채업자를 피해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던 여자 신조 교쿄. 그녀가 저지른 짓은 비록 천벌을 받을만한 것이었다 해도, 그녀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피해자인 세키네 쇼코도 마찬가지이다. 그녀 역시 개인 파산 신청후 새로운 삶을 준비하려 했지만 채 결실도 맺기 전에 죽임을 당했다.

세키네 쇼코란 여성의 행방 불명이란 것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 추리 형식을 띄고 있으나 사회 고발 소설이라 봐도 무관할 것이다. 세키네 쇼코란 여성을 추적하면서 밝혀지게 되는 사실들. 그리고 그것에 감춰져 있던 비밀들과 아픈 사연들. 그녀들이 구제받을 수 있었던 길은 과연 없었을까.

웃으면서 돈을 빌려주고 빌려준 돈을 돌려 받을 때는 칼을 드는 신용 사회. 우리는 양날의 검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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