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런 Born to Run - 신비의 원시부족이 가르쳐준 행복의 비밀
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민영진 옮김 / 페이퍼로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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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날 달리기를 잘못한다. 가을 운동회때 열심히 달려서 상을 타본 적도 없고, 중고교시절엔 체력장 때문에 억지로 달렸다. 생각해보면 가장 열심히 달려야 할 나이인 초등입학전에도 병으로 입원을 여러번 한 나로서는 어린애다운 달리기 조차도 못하고 지금껏 나이를 먹어 왔다.

티비에서 보여주는 육상 경기.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지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머릿속엔 '우승 ' 그리고 상금과 명예 등 부차적인 문제가 꽉 차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단거리 선수들의 모습도 그렇지만 특히 마라토너들을 보는 건 고통스러웠다. 난 단지 관람을 할 뿐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42.195km라는 거리를 뛰면서 죽을 것같은 표정으로 뛰고 있다. 정말이지 우승이란 목표를 빼면 그들이 달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티비 다큐멘터리에서 오지에 사는 한 부족이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험한 산길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채 즐겁게 뛰는 사람들. 그들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펄럭펄럭 날리는 화려한 색깔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발이 다보이는 샌들을 신고 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즐거운 듯이. 달리기는 고통이라고 생각해 온 내게 그 장면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본 투 런 이라는 책을 통해서.
여기에 등장하는 신비의 원시 부족이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코퍼 캐니언이란 험준한 오지에 사는 타라우마라 인디언이며,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살고 있다고 한다.
왜 그들은 조용히 숨어 살게 된 것일까.
그리고 책 제목인 본 투 런(달리기 위해 태어났다)란 의미는 무엇일까.

본 투 런은 크게 몇 가지 파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체 흐름은 타라우마라 족과 세계의 울트라 러너들과의 달리기 경주에 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세부적으로 보면 타라우마라 족의 역사와 그들의 생활, 울트라 러너들의 삶과 도전, 기묘한 방랑자 카바요 블랑코 이야기, 저자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고질적 문제와 그에 대한 극복, 왜 인간은 달리기 위해서 태어났는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등이 매우 흥미롭게 서술되고 있다.

특히 타라우마라 족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도 흥미로웠다. 그들은 특별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채 협곡과 언덕을 뛰어 다닌다. 그것도 하루에 몇 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수 있고, 심지어 뛰어가면서 담소를 나누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걸어서도 다니기 힘든 길을 뛰어가면서도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부족이기에 몸을 숨기려면 재빠른 발이 필요했던 건 당연하고, 또 인간의 능력은 무한해서 그 잠재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보면 타라우마라 족이 잘 뛸 수 있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울트라 러너들. 일명 익스트림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태어나고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루에 100km 가까운 거리를 뛴다. 잘 다져진 육상 트랙이나 마라톤 코스를 거부하고 힘든 지형을 택해서 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완주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게 되는 것일까.

타라우마라 족과 울트라 러너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즐겁게 달린다. 상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달리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중간에 닥쳐오는 피로마저도 달콤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떻게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어떤 계기로 시작을 했든 시작을 했기에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게 아닐까. 그 해답은 인류의 조상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뒷부분쯤에 나오는 문화인류학적인 접근 방식은 인류의 체형이 생존 방식을 결정지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직립 보행을 하면서 걷는 체형에서 뛰는 체형으로 인간의 체형은 바뀌게 되었다는 것. 인간은 뛰기위해서 태어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의 부시맨들과 함께 살면서 '사슴의 발굽이 닳을 때까지' 추격한 경험을 한 사람의 이야기도 나와 있다. 
이 부분을 보면 인류는 달리기에 적합한 존재로 진화를 거듭해 왔지만, 인간의 두뇌는 효율성의 추구를 목적으로 발달해 더이상 달리지 않고도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변화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달리기를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기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달리기를 위해서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 고급 러닝슈즈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편안한 신발은 달리기를 도와주고 부상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신발 회사의 농간이었다니!
타라우마라족은 맨발에 가까운 샌들을 신고 달리고, 울트라 러너들 가운데는 진짜 맨발로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거의 부상을 입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운동화가 운동중 부상을 더 많이 유발한다는 글을 읽고 충격까지 받았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인간의 발은 수많은 뼈와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는 극히 예민한 기관으로 발이 건강해야 온몸이 건강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인류가 처음 지구에 나타나고 오랜기간동안은 맨발로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다 문명화 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신발이란 것을 신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신발이 발을 변형시키고 외부 자극을 차단함으로서 발이 느껴야할 자극을 느끼지 못하기에 부상을 자주 입을 수 밖에 없다면? 물론 우리들의 발은 이미 신발에 길들여져 신을 신지 않고서는 외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바깥은 맨발을 상처낼 수 있는 흉기로 가득한 이상 신을 신지 않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달리기를 하면서 신을 신은 비싸고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닥이 얇은 신이 좋다고 한다.
인간의 발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신발 회사의 돈벌이 수단으로 천정부지로 값이 뛰어오른 운동화들. 그것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았을 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동화가 생각이 났다. 원숭이와 꽃신이란 제목이었는데, 맨발로 산으로 들로 뛰어 다니던 원숭이가 어느날 너구리가 가져온 꽃신을 신게 된후, 그 안락함에 이끌려 너구리에게 계속 꽃신을 받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 좋은 얼굴로 꽃신을 무상 공급했던 너구리는 어느 순간 돌변해서 원숭이에게 꽃신 값을 요구하게 된다. 조금씩 조금씩 원하는 게 많아지는 너구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던 원숭이는 꽃신을 벗으려 했지만, 이미 말랑말랑해진 발바닥은 자갈이나 바위를 걸을 때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젠 울며 겨자먹기로 너구리에게 꽃신을 사야 하는 원숭이. 현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 원숭이와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너구리는 세계 유명 상표의 운동화 브랜드일지도 모르겠다.

타라우마라 인디언들과 울트라 러너들의 경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는 마치 한 편의 스포츠 소설을 읽는 듯 벅찬 감동이 밀려왔고, 타라우마라 인디언의 아픈 역사와 그들의 삶의 모습, 그리고 그들이 달리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충격과 경외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인류가 어떤 식으로 진화해 왔고, 왜 달리기에 적합한 존재인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과 설명은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가장 좋은 운동화가 부상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사실과 운동화가 오히려 달리기를 방해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비록 우리들은 타라우마라 인디언이나 울트라 러너들과 같은 달리기는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르게 달리는 것만큼은 즐거운 일도 없는 것 같다. 단지 자신의 신체만 있으면 가능한 달리기. 달림으로써 인간은 속에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번민을 날릴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신체 건강의 척도가 되는 달리기는 발을 자극함으로써 인간에게 발생할 수 있는 병의 발생 확률을 낮춰줄 뿐 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도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차나 오토바이로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력을 내면서 달리는 행위는 우리의 발로 달릴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하지 못했기에 대체 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수단 - 그것도 살상 흉기가 될 수 있는 운송 수단 -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훌륭하게 사용하려는 지혜 역시 우린 타라우마라 족에게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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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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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원이란 것을 무척이나 동경한다.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게 정원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원은 커녕 마당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라는 것이 내 꿈이 되어 버렸을 정도이다. 아파트는 편리하지만 흙을 밟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타샤가 사는 집도 집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내가 밖으로 나가야 흙을 밟을 수 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도 화단이 조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건 나의 정원도 아니요, 내가 가꿀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정원을 가꾸기 좋아하는 걸로는 일본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무척이나 아기자기하고 정성들였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일본 정원이나 유럽의 성이나 대저택에서 볼 수 있는 나무 미로 정원, 분수 정원은 보기엔 정말 화려하고 근사하지만 왠지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는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름답지만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타샤의 정원은 달랐다.
버몬트의 시골. 부지 30만평에 이르는 넓은 땅.
그곳에 타샤 투더는 자신만의 정원을 꾸몄다. 솔직히 30만평이라면 난 상상조차 되지 않을 넓이이다. 뭐, 한국인이라면 다들 그럴 것이겠지만.
그 넓은 땅에 나무를 심고 화초를 심는다는 것 그건 정말 보통일이 아닐 듯하다. 하지만 그 땅들이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가득하다면.... 상상만해도 너무나도 부러울 지경이다.



타샤가 살았던 집은 나무에 둘러 싸이고 집 앞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증손녀와 함께 서있는 타샤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아 보인다. 흐드러지게 핀 작약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마치 작약의 향기가 그대로 내게 전해질 듯한 저 풍성한 아름다움. 식물은 잘 가꿀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이 정답인 듯 하다.



작은 화단에 팬지를 심고 있는 타샤의 모습. 소중하게 한포기씩 옮겨 심는 모습에서 꽃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다루는지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작은 키의 팬지,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한 것으로 아는데, 난 팬지를 보면 초등학교때가 기억난다. 학교 화단 꾸미기에 팬지는 필수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르는 코기와의 즐거운 한 때. 언뜻 보기엔 정리가 되지 않아 보이는 정원의 모습이지만 타샤는 계획적으로 꽃을 심는다고 한다. 각각의 개화 시기에 맞추고 꽃들이 함께 폈을때의 색상을 맞춰 심는다. 정성은 가득 들어가 있지만 인위적이지 않고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가을에는 내년을 위한 구근을 심는다고 한다. 그것도 한개씩 심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씩 함께 심어서 꽃이 무리지어 피도록 만든다. 무리지어 피어난 수선화나 튤립.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지경이다.



타샤가 살고 있는 버몬트는 겨울이 길고 다른 계절이 짧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원이 휴식기에 들어가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는 화분에 꽃을 심어 집안을 장식한다고 한다. 또한 작은 온실이 있어 겨우내 그곳에서 꽃을 가꾼다. 화분에 꽃을 옮겨 심는 타샤의 손길은 어린 아기를 만지듯 조심스러워 보인다. 거칠고 투박한 손에서 따스함이 묻어 난다.

타샤 튜더는 어린이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이며, 원예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정원에서는 계절마다 수많은 꽃들이 피어난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쓰는 정성이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 보다는 쉬운 일이기에...

꽃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며,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삶, 자연을 사랑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간 타샤 튜더. 그러하기에 타샤의 정원은 그 마음에 보답해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20~21P, 86~87P, 146~147P, 214~215P, 6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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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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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에게 이런저런 것을 간섭받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지침을 받는 것을 질색하는 인간이다. 우리 어머니 말씀으로는 '청개구리 삼신'이 씌였다 할 정도로 다른 사람 말을 잘 안듣는 편이다. 그래서 책 제목중에 "~~해야 한다" 라던가 "~~해라" 등의 말이 들어가 있는 책, 또 "꼭 ~~해야 할" 이라는 단어나 "반드시 ~~해야 할" 등의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도 극구 피하고 있다.

마야 안젤루의 책은 제목부터 무척이나 끌렸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라...
나 역시 여자이기에, 또한 어머니의 딸이기에....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엄마에게 편지를 몇 번 받았었다. 편지란 것은 말로 하기에 어려운 것들을 완곡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기에 말로 듣는 것 보다는 훨씬 더 수용하기 쉬운 매체라고 생각한다. 말로 들으면 반발심이 생길 것도, 편지란 형식을 통하면 부드럽게 마음에 스며든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저자 마야 안젤루가 경험하고 느낀 것, 그리고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방식들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랬다라고 이야기를 해 줄 뿐이다. 즉, 난 이렇게 했고 이런 교훈을 얻었으니 너도 이렇게 해라 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독자 자신이 그것을 걸러 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만 수용하도록 배려한 흔적이 눈에 띈다.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울고 싶을 정도로 절망하고, 남을 미워하고 싶을 정도로 아프기도 할 때가 꼭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절망과 아픔과 고독에 몸부림칠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엔 인간의 인생은 너무나 짧기 때문이다.

고교생때 임신을 하고 미혼모로 살게 된 마야 안젤루는 어느 경우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미혼모로 살아 간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당당히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드을 축복이며 그때를 계시라고 여겼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에는 모두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한다. 그녀는 긍정적인 면을 보도록 노력했고, 또한 그렇게 지금도 살아 가는 듯 하다.

또한 이 책에는 인간이라면 한번씩 맞딱드리게 될 상황들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그것을 자신은 어떻게 받아 들였느냐를 이야기를 들려주듯 이야기한다. 자신이 받았던 타인에게 받은 사랑, 고마움, 배려 등과 더불어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후회를 담아서 들려주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인생 역정은 다 다르다.
하지만 굴곡없이 평탄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굴곡의 고저차이가 있을 뿐.
엄마의 편지를 읽었을 때 처럼 따스하게 마음을 스미는 이야기들은 내 마음에 편안하게 와닿았다. 강요도 지침도 없는 이야기같은 형식.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역시 강요가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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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와 장갑 - 밤의 여신 닉스의 초대 1 : 사랑과 복수편 밤의 여신 닉스의 초대 1
루스 렌들 외 25명 지음, 리처드 댈비 엮음, 이경희 박주연 옮김 / 책세상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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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그중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유령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공포와 두려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매혹시키기도 한다. 물론 원한만을 가진채 무작정 인간을 괴롭히는 유령도 있지만, 애절하고 애달픈 사연을 가진 유령들도 많이 존재한다.

밤의 여신 닉스의 초대 시리즈 제 1권인 달팽이와 장갑은 유령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여성 작가들을 중심으로 씌어진 공포 소설인데, 그러하기에 섬세한 면들이 엿보인다. 또한 재미있는 건 조금 오래된 소설들이란 것이다. 작가중에는 180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작가도 있었다. 물론 그보다 100년 늦게 태어난 작가도 있지만...

유령 이야기는 오래된 것일수록 그 매력을 더한다. 사실 현대 사회처럼 밤이 낮처럼 밝은 곳에서는 유령들도 활동하기 어렵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어슴푸레한 달빛, 삐그덕 거리는 계단, 조용한 가운데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 이러한 것은 아무래도 현대 시대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또한 현대 사회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유령커플은 어쩌다 보니 한 부부가 유령들에게 중매를 서주게 된 이야기랄까, 무섭다기 보다는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작품이었다. 모텔 미녀들의 꿈은 남편에게 살해당한 여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숄리 목사관의 유령은 정말이지 섬뜩했다. 밤마다 보이는 유령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우연과 우연이 딱 맞아 떨어졌을때 발생한 사건. 그 집은 그 사건을 일으키기에 딱 맞는 모델을 고르고 있었던 것일까.

누가 내 차 안에 앉아 있었을까?는 제목만 봐도 짐작이 되듯, 차와 관련한 유령이야기이다. 혼자서 움직이는 차. 그리고 그 차에는 늘 담배 꽁초가 가득 남아 있다. 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령이 붙어 있는 차. 그리고 그 차의 유령은 또다시 사건을 일으키려 한다. 죽은 자의 집착은 무섭도록 끈질기다.

캘러고의 유령들은 금광 붐과 관련한 유령 이야기인 듯 하다. 혼자 죽기 싫어서 친구까지 데려가려는 사악한 유령들의 이야기랄까. 역시 친구는 잘 가려 사귀어야 하는 법.

전주곡은 죽은 남편의 집착이랄까. 왜 사람들은 죽을 때 가진 미련을 다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죽을 때 만큼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 미련을 버린다면 한결 편히 눈을 감을텐데....

모모의 복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 등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 모모가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주인공의 바람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까.

로절린드는 사회적 약자 입장에 있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성에게 희롱당하고 쓸쓸하게 죽어갔던 여인. 지금이나 옛날이나 못난 남성때문에 상처름 받고 죽어간 여인들을 보면 바보같단 생각도 들고 안타깝기도 하다. 

총 9편의 단편은 모두 다른 작가에 의해 씌어졌다. 그러하기에 각 작품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다. 섬뜩하고 오싹한 단편도 있고, 슬며시 웃음이 지어지는 단편도 있다. 대부분의 단편은 사랑과 집착, 그리고 복수에 관한 내용이며, 사람들이 죽으면서 남기는 집착과 미련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작품이 대다수였다. 서양의 공포물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혹 가다가 이렇게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는 어디에도 비할데 없이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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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오초지 1
오요카와 나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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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요괴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만약 그 작품에 인간과 요괴가 다 등장한다면(물론 대부분의 만화가 인간과 요괴가 함께 등장하지만) 요괴쪽을 더 좋아하게 되어 버린다. 그리고 늘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요괴를 보면서 가슴아파하기도 한다.

월야오초지. 처음엔 월야 오초지라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월야오 초지라고 읽는 게 맞는 것이었다. 월야오(月夜烏)란 달빛을 받으며 우는 까마귀 혹은 밤나들이를 나온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척이나 낭만적으로 들리는 단어다.

월야오초지의 주인공은 치즈루라는 아가씨로 시대는 메이지 시대이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라고 하면 막부 통치가 막을 내리고 근대화 물결을 탈 때이다. 여전히 구시대적 관습이 남아 있어 근대 물결과 충돌을 일으키던 시기이도 하고 또한 막부 통치가 막을 내림으로서 무사들이 갈 곳을 잃은 때이기도 하다. 또한 화족이 몰락하고 상인 계층이 부유층으로 떠올랐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혼란스럽던 시기가 메이지 초기였다.

그렇다 보니 월야오초지는 그러한 시대적 배경을 잘 담아 내고 있다. 1권에서는 치즈루와 요괴인 시코, 와카바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과 관련한 기억과 더불어 시코와 와카바를 기억해 내는 치즈루. 할머니의 죽음은 에도시대를 끝으로 몰락한 무사의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일명 츠지기리(辻切り) 사건(옛날 무사가 칼을 시험하가너 검술을 닦기 위해 밤길에 숨었다가 행인을 베던 일)과 관련한 사건이 제 1사건이다. (제 1사건은 치즈루가 있는 곳엔 늘 사건 사고가 뒤따르기 때문에 본인이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귀부인은 몰락한 귀족 가문과 신흥 부유 세력인 상인 집안의 정략 결혼과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두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꿈의 흔적은 우에노 전쟁때 죽은 무사가 30년동안 아내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였다. 우에노 공원에는 쇼기타이 전사자의 묘가 있는데 쇼기타이는 막부 통치가 막을 내린 후 남겨진 무사들의 마지막 저항이기도 했다.

해후의 때는 시코와 와카바에게 요괴의 모습을 만들어준 화가의 환생인 슈지의 이야기와 더불어 당시 남성들의 행동으로 고통받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린 비극이다. 그당시만 해도 여전히 일본도 본처 외에 첩실을 여럿 두기도 한 모양이다.

월야오초지는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 초기의 다양한 사건과 요괴 이야기를 결합시켜 무척이나 흥미로운 작품이다. 처음엔 조금 시시하다고 생각했지만 읽으면서 차츰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또한 작품의 주인공인 치즈루는 신여성으로 당차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즉, 순정만화에 주로 등장하는 그런 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아직 시코와 와카바의 캐릭터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매력적인 요괴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이들 앞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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