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웨어 매니아 - 뉴 루비코믹스 616
타마키 렌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타마키 렌의 작품 성향이 이랬나?
뭐, 사실 작품 성향을 운운할 정도로 많이 접한 작가는 아니지만, 가장 인상에 남았던 화염의 사막을 볼 때는 이런 느낌이 별로 없었는데... 이거 참 난감하군.

속옷 매니아..란 설정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는데, 캐릭터들이 전부 바보들이랄까.
수들이 데레데레 캐릭이라면 공들은 최소 강공이길 원했는데, 공도 데레데레 캐릭터였다.
덩달아 나도 데레데레~~~
게다가 밑도 끝도 없이 본편 진행이라 스토리가 별게 없었단 느낌도 많이 든다.

언더웨어에 관한 건 두 가지 단편으로 하나는 브리프 + 트렁크의 조합이였고, 나머지 하나는..
뚜둥~~~
바로바로바로 훈도시!!!
난 사실 훈도시라고 하면 스모 선수가 먼저 떠오르고, 눈을 둘 곳을 찾기 힘들어진다는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눈으로 직접 볼 기회는 없겠지만, 화면상으로 보기에도 참 민망하긴 마찬가지이다. 일전에 딱 한 번 다른 만화에서 훈도시 차림의 엉덩이에 시선이 가긴 했지만( 게다가 참 이쁜 엉덩이라고까지 감탄한 적도 있었지만) 역시 훈도시는 그 자체만으로 부끄러워진다고나 할까.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뭐, 훈도시가 럭키 아이템이라고 하니 말릴 수는 없는 노릇일테고...(笑)

이 단편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남자들도 속옷에 대해 여러가지로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 있구나 하는 것. 여자들은 원래 속옷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남자들은 편한 걸 위주로 찾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하여간 개인적으로는 브리프보다는 트렁크 타입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삼각은 민망하다구..(수영복도 그렇고)

가볍고 발랄하긴 하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고 할까. 뭐, 이 만화의 유머 코드와 내 코드가 잘 안맞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취향의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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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금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등장 인물 중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시간을 가리키는 명확한 개념도 없었다. 그리고 왜 이 주인공이 그런 처지에 몰리게 되었는지에 대해 납득 또한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C나라로 파견된 직원이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전염병 검사를 받고 잠시 격리 조치된 후 풀려 나지만, 그가 일할 회사에서는 열흘 정도를 더 쉬라고만 한다. 그는 배정받은 숙소에 가지만 복도에 놔둔 트렁크도 잃어 버린 후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도착한 곳은 C나라의 Y시의 제 4구.
그곳은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원래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진 도시이지만 전염병의 확산으로 온 도시는 쓰레기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패닉 상태가 되어 가게를 습격하고 전염병이 옮을까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거의 피한다.

애시당초 그는 왜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전염병이 발생하게 되면 파견이란 것 자체가 백지화되는 게 아닐까. 게다가 그는 C나라의 언어도 기초 수준으로밖에 습득하지 못한 상태이다. 유일한 접촉 상대인 몰이란 사람과의 연락 두절. 그리고 트렁크를 잃어버린 후 그는 기존의 자신과 연결되었던 것이 하나둘씩 끊어져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또한 모국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전처가 살해당했다는 소식. 그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재와 빨강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암울하다. 한 남자가 서서히 밑이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없는 고독에 삼켜지는 걸 보아야 했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 등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곁에서 살면서 안정을 얻는다. 그런 속성을 가진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낯설어지면 불안에 떨게 되고 초조해짐을 느낀다.

게다가 남자는 아내살해 용의자가 되었다. 낯선 나라, 낯선 땅, 낯선 언어. 게다가 그와 과거를 연결했던 물건은 C나라에 오자마자 잃어버렸다. 그를 둘러싼 환경이 이제까지의 것과는 이질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알 수 없는 전염병까지 유행을 한다.

남자는 도망을 치고 부랑자 신세가 된다. 쓰레기를 뒤지고 공원에서 잠을 자고 하는 등 이제까지의 삶은 없다. 노숙자끼리의 세력 다툼, 그리고 질병에의 노출. 그곳에서 인간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해하기까지 한다.

살해된 아내. 전염병의 창궐.
왠지 어울릴 법하지 않은 두 가지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적으로 같은 것을 도출해 낸다.
주인공인 남자를 고립시켰다는 것.

그러나 전염병은 늘 그러하듯 인간을 몰살시키기엔 약했다. 페스트, 스페인 독감, 홍콩 독감, 한타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 사스, 조류 독감, 신종 인플루엔자 등으로 끊임없이 인간을 위협하는 전염병 바이러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살아 남았다. 마치 완전히 박멸하기란 불가능한 쥐떼처럼. 그리고 지구 자체가 멸망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살아 남을 것이다.
부랑자가 되어 쓰레기를 뒤지고 살던 그가 맨홀밑에서 살아가다가 다시 세상속으로 나온 것 처럼.

그는 커다란 시스템 속의 한 부품으로 살다가 교체되었고, 버려졌다가 다시 재활용되었다.
우리 인간은 모두 그런 존재가 아닐까. 인간위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부품으로 언제나 교체될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무명씨같은 존재.
주인공의 이름은 없다. 등장하는 인물중 유진과 몰은 이름이 있긴 하지만 유진은 세상의 수많은 유진 중의 하나일 뿐이고, 몰 역시 세상의 수많은 몰 중의 하나일 뿐.

재와 빨강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나 이사카 코타로의 <모던 타임스>를 문득문득 떠올리게 했다. 인간은 사회속에 살지만 결국은 고독한 존재이며, 커다란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란 서글픈 현실. 난 이 책을 통해 보고 싶지 않았던 진실,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을 확인해 버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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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팬케이크 - 뉴 루비코믹스 449
키노시타 케이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갓 구워낸 따끈한 팬케이크에 신선한 버터를 올리고, 달콤한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려 입안에 넣는다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키노시타 케이코의 허니 팬케이크는 바로 그런 맛을 가진 작품이다. 총 5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달하면서도 풋풋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직업도 나이도 성격도 모두 다른 그들의 사랑 속으로~~~

허니 팬케이크는 파티쉐 치하루 X 연예인 토우고의 커플링. 처음엔 유명 배우인줄도 모르고 토우고를 줍게(?)된 치하루는 자신이 만든 케이크와 빵을 맛있게 먹어 주는 토우고가 귀엽기만 하다. 가사일 불능인 토우고는 대신 <기분좋은 일>을 치하루에게 건의하는데!?

키노시타 케이코의 만화는 그다지 많이 보지 않았지만 본편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으로 본 듯 하다. 게다가 진도가 상당히 빠르다!? 깜짝 놀랐네.. 그치만 토우고가 너무너무 귀여워서 징그럽다기 보다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달까. 보통 연하공은 츤데레 캐릭터나 밀어붙이기 캐릭터가 많은데 요번엔 독특하게도 응석받이 연하공이었다. 신선해, 신선해~~

사랑을 위하여는 10년지기 친구 커플링. 만화가 미나미와 회사원 미야사카. 둘은 우정을 10년 넘게 지속해온 사이이지만 미야사카는 미나미에게 남모를 연심을 품고 있었다. 우연한 오해를 계기로 자신의 마음을 전해버린 미야사카.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는 따끈따끈한 단편.

사랑은 장밋빛은 5개의 단편중 유일한 학원물. 학교 선후배 사이인 키이지마와 오자와. 학원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요런 분위기의 학원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고교생답게 서툴고 수줍은 풋풋함이 가득해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던 단편이었다.

건방진 남자의 교육법은 리맨물. 사장 아들과 평직원이란 커플링인데, 독특하게도 평직원이 츤데레 캐릭터!? 오호라, 요거 신선해, 신선해... 그러나 알고 보니 꼬리 9개 감춘 여우캐릭이었다나 뭐래나~~~

10년지기 친구 커플링을 제외하고는 죄다 연하공. 요즘 연하공이 나오는 만화에 맛을 들인지라 너무 즐겁게 읽었다. 게다가, 연하공 특유의 밀어붙이기나 츤츤 캐릭이 아니라 바보공들!? 그래서 더 귀여웠던 단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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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2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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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야 2010-03-17 20:54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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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오초지 2
오요카와 나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월야오초지 2권은 치즈루의 할머니 시즈루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상화산화(常花散華)를 비롯해 치즈루의 어릴 적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1권보다는 다소 작품의 길이가 좀 긴 편이며 내용도 애틋했다.

상화산화(常花散華)는 8년전 무사에게 살해된 할머니 시즈루의 과거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어릴적 미래를 약속했던 남자를 기다리가 결국 결혼하게 된 할머니 시즈루. 그를 기다리게 했던 토쿠노신은 왜 시즈루를 데리러 오지 못했을까. 그리고 시코와 와카바에게까지 영향을 준 어린 영혼은 도대체 누구였을까가 주된 내용이다.

더불어 치즈루의 동생 아키라의 친구 타다시와 그의 누나 카츠라도 등장하는데, 이둘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소년 타다시는 늘 남자들에게 구애를 받고 있지만, 타다시 입장에서 불편할 따름. 그러한 타다시의 일과 더불어 나타나게 된 시코의 마음에 깃들고 와카바의 겉모습을 빼앗은 소년의 영혼.

오래전부터 일본에서는 남색 풍습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메이지 시대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또한 그것을 감추는 것이 없었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단이든 가리지 않았던 듯 하다.

시즈루와 토쿠노신의 사연은 무척이나 애틋하고 애달팠다. 특히 무가의 자제로 아버지의 손에 의해 팔려갔던 토쿠노신의 분노는 무사의 자긍심과 자존심, 그리고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잃어버린 것에 의한 것이었다.

소꿉친구는 요괴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 남자는 바로 치즈루의 소꿉친구였던 것이다. 보통 요괴와 인간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지만 둘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이인듯 아이까지 생겼다. 요괴인줄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 남자와 요괴이지만 인간 남자를 사랑한 여인. 그들의 사랑은 넘을 수 없는 벽따위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게 한다.

첫사랑 괴담은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그림체가 약간 달라서 살짝 놀랐다. 와타세 유우의 그림체와 약간 닮은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첫사랑 괴담 역시 요괴가 등장하는데,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스즈카라는 요괴이다.

남자 주인공은 어머니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유녀기호(요즘말로 하면 로리콘)에 빠진 사람이었다. 스즈카가 요괴인줄 알면서도 사랑해 버린 그와 처음엔 먹이로 생각했다가 남자의 진심에 그를 떠나 버린 요괴. 가끔 사랑이란 묘한 기적을 낳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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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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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속물(俗物)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면 "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신경을 쓰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즉, 교양머리 없이 돈만 밝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 우리가 "저 사람 속물이야"라고 하는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욕하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요즘같은 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안밝히면 무엇을 밝히리오.
속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아픈 현실과, 따지고 들면 세상에는 속물이 아닌 사람은 없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이 바로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속물들은 비록 속물일 망정 밉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속물 캐릭터 중 누구 하나는 빼닮아 있을 테니까. 스스로를 한 마리의 고고학 학처럼 생각하며 '난 세속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네' 하고 착각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혹은 정말 세속과 거리가 먼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어느 정도 속물 근성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린, 명, 지은은 대학 동기로 사회 복지과 학생이다. 처음에 사회복지과란 설정을 봤을 때 웃음이 터져버렸다. 물론 난 사회복지과는 아주 좋은 학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이 여학생들은 속물근성으로 똘똘 뭉친 삼인방이라 사회복지과와의 갭이 크게 느껴졌던 것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일부러 세 여학생의 과를 사회복지과로 설정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기린은 가난한 축에 든다. 오래된 아파트에 사는 건 둘째치고, SKY를 나온 아버지는 백수, 언니는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연명하다가 도피처로 TV를 선택했다. 오직 어머니만이 집안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기린의 아버지는 곧 죽어도 자존심은 있어서 아무 일이나 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가부장적인 사람이라 늘 큰 소리를 떵떵 친다. 기린의 언니 토란은 속물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한 마리 고고한 학이 되지도 못한 채 꿈나라로 숨어 버렸다. 기린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도 무시한 채 부자 친구들인 명과 지은을 따라 다니고 있고, 남자 친구는 미래의 보험으로 든 의대학생이다. 하지만 역시 의대생, 볼품 없이 생긴 외모를 커버하기 위해 그는 의대생인 걸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역시 속물과이다.

명은 부잣집 따님으로 졸업후 유학갈 예정이지만, 원래 부자들이 더 짜다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늘 더치 페이. 게다가 그녀의 집안은 얼른 돌아가셨으면 하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친지들끼리 물밑 작업이 한창이다. 지은은 유통기한 6개월의 남자 친구들에게 받은 전리품이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고 있다.

20대 초반의 그녀들은 아주 당당하게 속물적 생활을 한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그녀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외모, 학벌, 경제적 능력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으니 한 살이라도 더 어릴때 손에 넣을 건 손에 넣어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그녀들의 욕망만을 탓할 것인가.

거룩한 속물은 20대 여대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속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돈타령을 안하면 무슨 타령을 하겠는가. 돈이 있어야 사는데 돈이 없는 게 죄가 되는데, 돈타령을 안하려야 안할 수 있겠는가.

문득 기린이 방송국 선배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다 결정되어 있을 것 같다는 말... 씁쓸해진다. 나 역시 기린과 같은 나이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어선 지금도 난 골대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골을 넣을 골대를 찾아 헤매는 서글픈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집안과 백수 아버지, 도피자 언니, 혼자서 돈을 버는 어머니. 기린은 가난을 싫어했다. 물론 기린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이란 언제나 위를 본다. 자신보다 더 잘나고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마련이다. 수입 생수병에 정수기물을 받아서 들고 다니고, 과외를 해서 번 돈은 모조리 명과 지은과 다니는 사치스런 생활에 다 써버리고, 의대생 남자 친구를 장래 보험처럼 생각했던 기린. 조금 일찍 사회 생활을 시작했던 기린은 사회는 더욱더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게다가 명과 지은과의 우정은 우정이란 이름을 뒤집어쓴 얄팍한 관계에 불과했다는 것도. 기린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깨닫게 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깨달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와 유기적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가지만 자기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란 걸.

사회는 만만치 않다. 거기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제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다. 하지만 무인도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인간은 사회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그렇다 보니 속물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세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문득 이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너희 중 죄가 없는 자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물론 그 이야기와 이 소설의 내용이 똑같지는 않지만 난 이렇게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너희중 스스로를 속물이라 생각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비난하라고.
우리는 속물로 가득한 사회, 속물을 양성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속물로 늘 가득할 것이고, 우리는 언제든 속물 근성을 내보이면서 살 것이다.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은 속물을 찬양하는 소설도 속물이 되라고 권하는 소설도 아니다. 다만 속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이 사회, 그리고 이러한 사회에서 속속 속물로 전향하는 그리고 속물로 키워지는 우리들의 모습을 서글프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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