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늘 자신을 따라다니는 존재이다. 물론 젊은이들이야 아직 살아갈 날이 구만리인데.. 라고 하면서 죽음을 외면하기 일쑤이지만, 사람의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것이기에 오늘 살아 있다고 해서 내일도 살아 있으란 보장은 없다. 굳이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주변에서는 늘 사람이 죽는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지 중에 죽지 않은 사람도 없고, 죽지 않을 사람도 없다. 인간의 목숨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라, 연장은 가능해도 막지는 못한다.

여기에 한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사카쓰키 시즈토.
그는 언제부터인가 일본 전역을 떠돌면서 사고나 자살등 비명횡사로 죽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고인을 기리는 뜻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 단어가 있다. 명복을 빈다거나 추도를 한다거나 추모를 한다거나, 혹은 극락왕생을 빈다거나 성불하십시오라고 말하거나.
그러나 이 청년은 애도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이 청년은 호상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우연찮게 피치 못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애도(哀悼)란 말은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석해 한다는 뜻이다. 시즈토는 왜 애도란 표현을 쓸까. 다른 말도 있는데... 시즈토는 생전의 고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애도란 표현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고인에 대해 세가지를 질문한다.
고인은 어떤 사람에게 사랑받았는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가, 그리고 어떤 일로 사람들이 고인에게 감사를 표했는가. 이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전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죽음의 경중을 떠나 고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떠나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순수하게 죽음 자체를 슬퍼하는 행위라..
우리는 고인이 생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등을 강조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하기에 애도받고 슬퍼해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러한 우리의 관점을 이 청년은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애도하는 사람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하나는 인간을 불신하는 기자 마키노 고타로. 그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는 남자이다. 기사를 써도 사람들을 자극시킬 기사만을 쓰며, 사람의 죽음을 한낱 기삿거리로 치부한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더 자극적으로 쓸 것일까에 대한 생각만을 하는 사람이다. 마키노는 우연히 시즈토를 만나 그의 뒤를 따라 다닌다. 처음에는 머리가 어떻게 된 녀석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의 사심없는 행위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두번째는 어머니 사카쓰키 준코이다. 그녀는 말기암으로 고통받고 있고, 아들 시즈토가 집으로 돌아와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시즈토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지는데, 아버지,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등의 이야기도 함께 나오는데, 준코는 시즈토가 죽음에 집착하고 애도하는 사람이 되었던 원인에 대해 독자에게 어렴풋한 이해를 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파트에 나오는 어머니의 병의 악화와 더불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시즈토의 여동생 미시오의 이야기는 생과 사는 결코 동전의 양면처럼, 혹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늘 함께 있는 존재란 생각을 하게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동생의 출산. 인간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생을 더욱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세번째는 남편을 죽인 나기 유키코. 그녀는 왜 남편을 죽였고, 남편은 왜 그녀에게 죽여달라고 했는가. 유키코는 남편이 죽었던 자리에서 그를 애도하고 있는 시즈토를 만나게 되고, 시즈토를 따라 다니게 된다. 여전히 자신의 주변을 배회하는 남편의 영혼은 유키코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유키코는 시즈토와 만나 그를 따라다니면서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꺠닫게 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주인공인 시즈토의 시점은 없다. 다만 그의 주변인들을 통해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준다. 그가 애도하는 사람이 된 이유를 시즈토에게서는 직접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주변인들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핑돌았다. 그러나 책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나도 처음엔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시즈토가 묻는 세가지 질문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고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떠올리는 것을 보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다. 신문기사 따위에 실린 고인에 대한 이야기 몇 가지 - 그것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가 아니라 실제 고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 생전에는 정말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사람이었더라도 그들에게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 사랑해줬던 사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비록 죄를 지었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시즈토의 애도는 바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순수하게 슬퍼하고 기억하는 행위.

하지만 조금 불만인 점도 있었다. 시즈토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전국을 떠돌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은 외면했다. 가장 사랑해야 할 가족, 그중에서 어머니는 병이 깊어지는데, 시즈토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다. 나중에 시즈토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키노 역시 마찬가지. 그는 인간 불신이었지만 시즈토를 만나 이런 저런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조금 달라지게 되지만, 결국 아버지는 용서하지 못했다. 가족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은 끝까지 불완전한 존재로 밖에 남을 수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사고나 비명횡사로 죽은 사람은 신문에 실리거나 뉴스거리가 되지만 사람들에게 곧 잊혀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그리고 기억하는 것. 이것이 시즈토가 하는 일이다. 생전에 만나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슬퍼할 수 있을까. 난 솔직히 말해서 이해는 안되었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었음으로 해서 누군가가 기억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죽음이란 일차적으로 육체의 소멸을 뜻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속에 고인이 남아 있는 한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질 때 완전히 그 사람은 소멸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족들은 고인을 기억하겠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처음엔 안되었다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어느새 그 죽음에 대해 잊어버니까. 시즈토는 그것이 안타까웠던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기억을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

내 주변의 친지분들 중에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분은 없다. 천수를 누리시다 가신 분이나 병환으로 돌아가신 분은 있을지 몰라도... 하지만 초등학교 때 친구 하나가 사고로 죽었다. 초등학교때는 제법 친해서 늘 붙어 다녔는데, 중학교부터 다른 학교를 배정받고는 연락이 끊어졌고, 고교시절에 친구로 부터 그 친구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되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고 한다. 그때, 난 울지 않았다. 고교생이었던 내 또래 나이에선 죽음이란 다른 나라 이야기만큼이나 먼 것이었고, 오토바이 사고란 정말 별세계 이야기였으니까. 애도하는 사람을 읽으면서 그 친구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만약 여기에도 시즈토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 아이를 애도해줄까...라고. 그 아이를 기억해줄까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 중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가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가족 혹은 식구라고 한다. 가족이란 혈연과 혼인 관계등으로 한 집안을 이룬 사람들을 의미하며, 식구는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요즘은 식구보다는 가족이란 말을 많이 쓰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예전에는 밥 안굶고 사는 게 제일 큰 목표이다 보니 식구란 말을 많이 썼지만, 요즘은 밥은 다 제대로 먹고 다니는 형편이니 식구보다는 아무래도 정감가는 가족이란 말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여기에 한 가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가족이 아니다.
어머니, 아들 둘, 딸 하나, 손녀 하나로 구성된 이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다른 가족과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정말 이런 가족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막장가족이다.

큰 아들은 전과 5범에 로리콘 변태이고, 둘째 아들은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지만 영화 감독으로 성공도 못하고 마누라는 바람을 펴서 이혼을 했다. 딸은 결혼했다가 바람펴서 소박맞았고, 지금은 물장사를 하고 있는데, 이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남자를 만난다. 손녀는 소녀의 시쳇말로 발랑 까진 날라리.

게다가 더 깊은 사정이 있다. 큰 아들인 오한모(오함마)는 아버지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고, 딸인 미연은 엄마가 바람 펴서 낳아온 자식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오인모가 유일하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를 모두 이은 자식이라 할 수 있다. 자식이 딸랑 셋인데, 형제간에는 양쪽으로 핏줄이 이어진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이다. 세상에 도대체 이런 가족이 있을수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런 사람들이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된다. 오함마야 원래부터 엄마 등골 쪽쪽 빨아 먹으면서 살아온 기생충같은 존재였지만, 대학물 먹었다는 일명 엘리트 오인모는 영화 실패에 마누라와 이혼까지 해서 빈털털리가 되어 엄마의 집으로 들어 온다. 미연은 바람폈다가 소박맞고 갈데가 없어 엄마의 집으로 들어 온다.
하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식들을 받아 들인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고기 못먹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양 고기를 먹인다.

고령화 가족은 늙은 어머니와 독립했다가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온 자식들간의 이야기이며,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오인모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머니란 존재는 각별하다. 물론 부모란 존재는 누구에게나 각별할테지만, 어머니는 더욱더 각별하다. 누가 봐도 손가락질 할 자식들이지만 따스한 마음으로 감싸고, 아낀다. 오인모의 어머니는 핏줄이 연결되지 않는 한모와 함께 살 이유도 없지만 한모를 거두고 제자식처럼 키웠고, 인모나 미연이 어떤 일을 저질렀던 간에 감싸준다. 물론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들은 더이상 의지할 곳도 없고 갈 곳도 없다. 어머니가 아니면 안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인모는 혼자 잘난줄 안다. 형인 오함마를 무시하기 일쑤. 게다가 자신의 죄로 오함마가 감방에 갔다 왔는데도 고맙다거나 미안하단 말 한 번 안했다. 지금은 백수라 동생 미연이나 엄마가 벌어 오는 돈으로 사는 주제에 동생이 하는 장사나 동생의 연애에 대해 말도 많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족의 비밀이랄까, 가족들이 등에 지고 사는 짐의 무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한 집에 살면서 비로소 자신의 가족들이 지고 사는 짐의 무게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면서 자신이 늘 무시해 왔던 가족에 대한 애정도 되살아 난다. 받을 줄만 알았지 베풀 줄 몰랐고, 가족이기에 당연시 여겼던 것들, 그리고 죽어도 자신의 탓은 아니고 남의 탓으로만 돌려왔던 지난 날들. 오인모는 다시 한번 재구성된 가족과의 삶에서 그러한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다.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은 해체와 재탄생을 반복하는 유기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독립하는 과정은 가족의 긍정적 해체이며, 독립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만드는 것은 가족의 재탄생이라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백년 이백년을 사는 존재가 아니기에 늘 이러한 순환이 이어진다. 

오인모의 가족은 한 번 해체되었고, 감춰진 비밀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족들이 모여 다시 부대끼고 하는 동안 재결합되어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가족들은 다시 한번 해체되고 재탄생이란 것으로 환원된다. 즉, 어머니는 미연의 생부와 다시 한 번 결합하고, 오함마는 미용실 여자와 외국으로 떠난다. 미연은 보험회사 직원과 다시 한 번 결혼을 하게 되고, 오인모는 대학시절 후배와 다시 만나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어머니의 사랑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좁은 집에서 복닥거리며 싸우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이들에겐 꼭 필요했다. 그리고 그 거름이 되고 원동력이 된 것은 역시 엄마가 해주신 밥이다. 그것이 가족의 유대감을 다시 살리는 불씨가 되었다. 

이들이 막장가족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이유는 없다. 겉으로 보기엔 그래도, 각자 나름의 사연이 있는 법이고, 이 세상의 모든 가족들은 그들만의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는 게 가족사랄까. 누가 뭐래도 스스로가 가족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가장 소홀히 해왔던 가족.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등을 돌려도 가족만은 늘 그자리에 있다.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엄마가 지어 주신 밥의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 고령화 가족.
가족이기에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단 말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기에 다 알겠지 싶어서 소중하단 말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때를 놓치면 다음엔 그런 말들을 하기 어렵다.
 
이젠 쑥스러워하지 말고, 이런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엄마, 고마워요, 난 세상에서 엄마가 지어주신 밥이 제일 맛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애의 신에게 말하라 - 뉴 루비코믹스 510
타카이도 아케미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난 학원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건 학원물 나름인 듯 하다. 예전엔 어린 녀석들이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집어져서 안보게 되었는데, 잘 고르면 담백하고 산뜻하면서도 풋풋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학원물을 찾아 볼 수 있다. 타카이도 아케미의 연애의 신에게 말하라가 바로 그런 종류가 아닌가 한다. 고교생이란 나이에 꼭 맞는 그런 풋풋함을 가진 학원물이랄까. 학원물을 주로 그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애들 답지 않게 연애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여러 나이대의 작품을 그리는 작가의 작품중에는 정말 학원물답단 생각이 드는 작품이 있다. 

고교생인 류자키와 야토.
류자키는 학교의 아이돌로 불릴 만큼 외모가 출중한데다가, 육상부 부장으로 그 실력을 발휘하고 있고, 야토는 수영부. 류자키는 자신의 어릴적 친구인 쥰페이가 남자와 사귀는 것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이 아니라 친구가 멀어져 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랄까. 그 나이 또래라면 동성애에 혐오감을 보일 수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아마도 류자키는 후자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류자키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고민이 더 있다. 바로 수영에 대한 미련. 그래서 아무도 없는 수영장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랜다. 그러한 류자키의 마음을 아는 듯 류자키에게로 다가오는 야토.
류자키는 야토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과 더불어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사실 이성이 다가오는 것도 일단은 상황을 봐가면서 움츠러들거나 받아들이거나 하는 판에, 동성이 자신에게 다가온다면 더욱더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일 것이다.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이 그걸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할테니.

야토는 류자키에게 재촉도 채근도 하지 않는다. 류자키 역시 야토를 크게 밀어 내지도 않고 서서히 가까워져 간다. 아마도 인연이란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상대가 호감을 보여도 받아들이는 쪽이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연애가 시작되기도 시작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성급함도 없이 담백하고 산뜻하게 관계를 유지해가는 야토와 류자키를 보면서 참으로 고등학생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나이때에는 성적 욕망으로 충만한 나이이지만, 감정을 앞세운 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서투름과 풋풋함이랄까. 난 그런 모습을 보는 게 무척이나 좋다.
어린 녀석들이니까 사랑따위는 모를거야가 아니라, 그 나이대에 맞게 사랑을 하면 되는 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간에 이상한 교사가 등장해서 둘 사이가 한층 더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고, 그게 식상해 보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두 사람은 가까워질 수 밖에 없는 사이이니까 가까워졌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연애란 감정은 정체되어 있고 고여있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니까. 자연스레 그 흐름이 그렇게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부자연스럽지도 않았다.

류자키와 야토, 쥰페이와 코자쿠라 이외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로는 야토의 여동생과 고양이 꼬마가 무척 기억에 남는다. 난 체질적으로 어린아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야토의 동생은 무척이나 귀여웠달까. 게다가 거대 고양이 이름이 꼬마라니. 하는 짓도 귀여워서 무척이나 많이 웃었다.

고교 시절의 첫사랑. 그런 순수하고 풋풋한 감정이 살아 있는 연애의 신에게 말하라는 달콤함이나 애틋함 보다는 산뜻하고 담백한 인상을 많이 주었다. 과하지 않은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에 꼭 맞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사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라부를 보면 그런 생각이 먼저 든다. 물론 마유미짱도 그렇지만, 이라부는 더욱더 그런 느낌을 강하게 준다. 공중 그네에 등장한 이라부, 마유미짱 콤비. 오늘도 그들은 이상한 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주사 한 방을 처방한다.

전작인 공중 그네를 보면서 무척이나 많이 웃었다. 정신과 의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환자보다 더 환자같을 수가 있지? 좋게 봐주면 어린애같은 천진난만함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주사 페티시를 가진 변태!? 그러나 이라부의 진료실을 찾는 사람들은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이 막다른 길에 몰린 상태의 사람들이다.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행사 도우미, 지속발기증으로 고민하는 회사원, 수영에 중독된 한 남자,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에 떠는 고등학생, 강박증에 시달리는 논픽션 작가 등 인 더 풀에 등장하는 환자들의 내력도 제각각, 성별, 연령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자신들의 증상으로 인해 일상에서 큰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누구하나 이해해주지 않는다.

나 역시 이런 저런 고민을 하지만 그것이 일상 생활에 큰 지장을 줄만큼의 고민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남의 일이 아니다 싶은데, 저런 건 누구나 다 가질 수 있는 고민에서 나온 고통인 듯 해서이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지만, 언제든 자신의 자신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아는 행사 도우미는 그것이 피해망상이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미모에 대한 과신이 지났쳤다고 할까. 오히려 나이를 먹으면 미모란 건 더이상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식으로 나타났던 건지도 모른다. 외모지상주의의 현대인들에게는 정말 딱 맞는 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속발기증을 앓고 있는 남자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상대에게 말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그 병이 발생했다. 늘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트러블을 피하는 것이라 믿고, 바람을 펴서 이혼하게 된 아내에게는 쿨하게 대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 이런 저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지속발기증이란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나타난 경우랄까. 하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을 받으면 그것이 육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으니, 좀 색다르지만 이런 일 없으란 법 없지 않을까.

작품의 표제작인 인 더 풀의 경우는 내가 운동 중독같은 걸 안겪어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크게 공감은 안되었다. 다만, 그 중독이 다른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공감이 될른지도 모르겠다. 술이나 담배, 스피드.. 모두 일상에서의 불안함과 초조감에서 나타난 중독현상이 아닐까. 하지만, 중독이란 건 몸에 해가 될수 있으니 스트레스는 적절한 수준에서 풀어주는 게 제일 좋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 중독 현상을 보이는 고교생. 겉으로 보기엔 핸드폰 중독이지만 크게 보자면 누군가 옆에 없다는 것이 불안한 고교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때는 나도 그랬던 적이 있어 무척이나 공감이 갔는데, 나 역시 중학생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휴일만 되면 약속을 잡고, 친구를 만나고.. 그랬던 기억. 지금은 혼자도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지만, 그 당시에는 누군가 옆에 없으면 불안함을 느낄 정도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도 필요한 법이고, 일방적으로 열을 올려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아니란 걸 이젠 잘 안다. 내가 겪어 봤던 일이기에 더욱더 공감이 갔던 프렌즈.

마지막 이야기도 공감이 갔다. 나역시 강박신경증까지는 아니지만 외출을 할 때 전기 제품이나 가스, 혹은 현관문 열쇠 등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가끔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확인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강아지들이 혹시 내 뒤를 따라 나왔다가 길을 잃을까 싶어 다시 올라가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조금 있기는 하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라서 대체로 마음 편하게 외출을 하려고 애를 쓴다.

자신을 밀어 부치는 사람일수록, 마음이 약한 사람일수록 여러 가지에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또한 그것이 신체적 병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두통이나 어깨 결림 등이나 위의 통증같은..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고민을 안고 살고 있고, 그것을 늘 가슴속에 두고 살 수만은 없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더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닐까.

가끔은 나도 이라부 같은 의사를 만나 고민을 털어 놓고 싶다.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처방을 내리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치료를 하는 의사처럼 보이지만, 이라부는 환자의 고통을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의학 용어를 써가면서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의사는 많지만, 이라부같은 의사는 없다. 왠지 마유미짱의 주사 한 방과 이라부의 정신없는 이야기와 행동을 듣고 보다 보면 근심걱정같은 건 싸악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을 읽은 건 2004년. 올해가 2010년이니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6년만에 다시 만난 셈이다. 물론 그 중간에 다른 작품이 출판되긴 했으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못읽다가 요번에 그의 데뷔작인 13번째 인격을 읽게 되었다. 검은 집은 보험사기와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소재로 한 호러 소설이었는데, 그 소설을 통해 처음으로 사이코패스란 말을 접하게 된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윤리적 가치관이 우리와는 크게 다른 사이코패스를 접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13번째 인격은 그런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13번째 인격. 즉 해리성동일성 장애를 가진 한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리성동일성 장애는 쉬운 말로 다중인격장애라고도 한다. 즉, 한 인간에게 두 개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정신의학계 쪽에서는 아직도 이 부분에 대해 논란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과학적 근거로 밝혀내기 힘든 인간의 정신적 부분이기 때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리처드 기어, 에드워드 노튼이 등장한 프라미얼 피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캐릭터가 바로 다중인격자였다. 하지만, 결국은 다중인격을 연기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영화 자체로 무척 충격적이었다.

13번째 인격이란 것은 적어도 13개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말이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중인격자와는 차원자체가 다르다. 작품속의 치히로란 소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사고로 잃고 친척집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1995년 고베 대지진(한신 아와지 대지진)을 겪으면서 엠파스(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사람)인 유카리를 만나게 된다. 유카리는 치히로와 만나면서 그녀의 안에는 적어도 10개 이상의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후 치히로의 상당사였던 학교 교사를 만나면서 치히로를 함께 치료해가기로 한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 남자, 여자 등 모두 13개의 인격을 가진 소녀 치히로. 소녀가 그렇게 많은 인격을 가져야만 했던 이유는 모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외부로부터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있어 부모가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다는 것은 정신이 피폐해질 정도의 충격이었고, 삼촌에게 받은 학대는 치히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다. 

고베 대지진전에 있던 열 두개의 인격과 고베 대지진 후에 나타난 열 세번째 인격.
그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12가지의 인격은 각각 한자 사전에서 의미를 따온 이름들로 각각의 외부 상황에 맞게 그 인격들이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13번째 인격은 이소라라는 이름이며, 그것은 우게쓰 모나가타리에 실린 기비쓰의 가마에 나오는 한 원령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소라라는 인격은 왜 갑자기 등장한 것일까. 여기에서 의문이 시작된다. 다른 인격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자, 악마의 인격으로까지 불리는 이소라. 
유카리는 치히로안에 숨어 있는 이소라라는 인격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 조사를 한다. 그러면서 밝혀지는 이소라의 진실. 

이소라는 이 책의 제목인 열 세번째 인격과 함께 이 작품에서 중의성을 가진 존재라 볼 수 있다. 자세히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에 더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이소라라는 것이 이 작품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작품의 제목 열 세번째 인격의 진짜 의미 역시 마지막 페이지를 보았을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마음은 강하면서도 약하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받는 외부자극이 자신의 한계치를 넘었을 때 정신이 붕괴한다. 작중의 치히로가 바로 그런 인물일 것이다.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일들은 소녀의 인격을 붕괴시켰고, 그렇게 드러난 것이 그녀안의 여러가지 인격이다. 이소라의 경우는 사람에게 받은 불신, 배신감, 절망감, 질투가 물리적 힘을 가지게 된 경우로 이 또한 인간의 정신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기자신을 잃고 악의로 똘똘 뭉치게 된 이소라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데뷔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전개와 더불어 일본 한자가 가지는 중의성, 그리고 일본 고전 이야기, 유체 이탈, 해리성동일성장애(다중인격), 빙의 등 과학적인 소재와 초자연적인 소재가 함께 쓰여 더욱더 흥미진진해진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참고 자료를 조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정신분석과 관련한 부분에 있어서는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 시종일관 즐겁게 읽게 되었다. 비록 유카리와 마나베사이에 흐르는 감정이랄까, 도피 행각 그리고 마나베의 결심은 공감하기 힘든 부분이 조금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꽤나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