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하늘 - 러쉬노벨 로맨스 256
아이다 사키 지음, 나라 치하루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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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S시리즈의 완결편인 <최후의 하늘>을 읽게 되었다. 시바 마사키와 무네치카 케이고가 등장했던 에스 1~4, 야스미와 히노, 나기와 카가야의 이야기를 그린 디코이 시리즈에 잠깐씩 등장했던 시즈노카 히데유키. 사실 S 시리즈를 읽는 내내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정말 적은 분량밖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토록 큰 인상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겉으로 보기엔 착실히 승진을 하고 있고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듯 보여도, 그 속에는 깊은 슬픔과 아픔,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야만 했던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결혼한지 2년만에 조폭항쟁으로 인해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동시에 잃었고,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자신의 부하 야스미는 기억을 잃었다가 결국 자신의 S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처남인 시바 역시 자신의 S였던 야쿠자 무네치카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설계했으니, 시즈노카 옆에 있는 사람들은 차례차례 그를 떠나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미 불혹의 나이에 가까운 시즈노카를 보면서(최후의 하늘에서는 41살이 되었다), 이 사람만큼은 정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후의 하늘에서는 시즈노카가 주인공이란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기대를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다. 왠지 시바 마사키와 비슷한 분위기의 에나미 후미히코가 등장해 시즈노카가 흔들리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했는데, 이거 영...  물론 뒤늦게 자신의 성벽을 알게 되어 동성애에 눈뜨는 인물이 많은 BL계에서, 주인공이지만 스트레이트를 유지하는 주인공은 처음인 듯 하다.

S나 디코이는 첩보 작전이랄까, 경찰의 비밀 작전 수행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최후의 하늘은 인간 시즈노카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공안이 담당하는 작전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니요, 그들이 수행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만, 긴박감은 사실 전편들에 비해서는 덜하다. 물론 전편에서 S공작에 관한 것을 충분히 맛봤기에 아쉬움은 덜했고, 오히려 시즈노카란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겉으로 보기엔 냉정하고, 일에 있어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자신의 친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모습을 보면서, 또 살아 있었으면 저 나이또래쯤 될텐데 싶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큰 아픔을 삼켜야 했을까. 정말 에나미가 아니면 좋은 여자하고라도(BL에서는 금기일지라도)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나만이 가지고 있었을까.    

아이다 사키의 라이트 노벨, 특히 경찰과 관련된 노벨을 읽으면 무척이나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실제 일본 경찰 조직도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경찰 조직도를 다 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사실적 묘사가 여타의 노벨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조직이 아니라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조직에 대한 묘사라든지, 중국이나 러시아의 비밀 조직과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은(물론 픽션이겠지만) 정말 그러한 조직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만큼 상세하고 세세하다. 픽션이지만 정말이지 않을까 하게 만드는 아이다 사키의 필력은 놀랍기만 하다.

비록 결말은 독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더라도, 그동안 이어져 온 S 시리즈의 이야기들은 독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멋진 남자들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와 그들을 묶고 있었던 비밀들, 그리고 실제 수사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경찰과 S의 이야기는 쉬이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이렇게 완결이 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지만, 또다시 독자를 매료시킬 아이다 사키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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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L소설 거의 읽지 않지만 아이다사키씨의 S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어요. 그때 읽으면서 시노즈카의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책으로 있을 줄이야~.~
 
나선계단의 앨리스
가노 도모코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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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앨리스가 들어가 있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구매한 나선 계단의 앨리스. 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앨리스란 단어만 들어가면 묘하게 흥분된다고 할까, 기대된다고 할까. 그런 기분이다.
나선계단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동화도 판타지물도 아니다. 그러나 이게 또 영 상관없지도 않다.

총 7개의 연작 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회사를 조기 퇴직하고 탐정 사무소를 차린 니키 준페이와 갑자기 나타나 니키의 조수가 된 미소녀 아리사가 의뢰받은 사건을 해결하는 코지 미스터리이다. 코지 미스터리답게 사건의 내용은 그다지 무겁지도 않고, 여타 추리 소설처럼 트릭이 복잡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 그런 의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시할까? 전혀 아니다.

아리사의 출현에서 첫의뢰 해결을 담고 있는 나선계단의 앨리스는 죽은 남편과 세 번 이혼하고 네 번 결혼한 한 미망인의 이야기이다. 이 미망인의 의뢰는 남편이 숨긴 금고열쇠를 찾아 달라는 것. 마치 게임처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한 부부의 이야기와 그 주인공인 미망인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트의 여왕'에 빗대어진다.

뒤창의 앨리스는 자신이 외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잡아달라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틀림없이 외도는 하지 않는데 뭔가 수상하다? 허세를 부리는 남편과 아무것도 몰랐던 부인. 이 부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트럼프 정원사들'에게 빗대어진다.

안뜰의 앨리스는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개 사쿠라를 찾아 달라는 의뢰. 마치 온실속의 화초처럼 지켜져온 노부인은 하얀 여왕님. 세상물정은 아무것도 모른채 남편의 사랑과 보호 아래에서 마치 마법과도 같은 세상에서 살아온 노부인은 세상의 무게는 하나도 겪어 보지 못한 듯하다.

지하실의 앨리스는 왠지 괴담같기도 했는데, 결국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일 지하실에 걸려오는 전화. 그러나 그 전화가 놓인 공간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 괴전화의 정체는 도대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도마뱀 빌'에 빗대어진 인물.

꼭대기층의 앨리스는 애틋한 부부사랑을 느낄수 있는 단편이었다. 일주일에 한 두번 부인이 남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엔 아주 나쁜 부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납득하게 되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얀 기사'

아이 방의 앨리스는 한 산부인과에서 들어온 의뢰. 그것도 신생아를 돌봐달라는 의뢰!? 여기에 등장한느 건 아기 돼지. 산부인과는 신생아를 돌보는 곳인데, 왜 굳이 의뢰를 했을까. 상처받은 산모와 그녀를 지켜주기 위한 의사 선생님의 사랑.

앨리스가 없는 방은 앨리스 실종 사건? 혹은 앨리스 유괴 사건?
아니지, 여기선 아리스지. 아리스가 사라졌다. 도대체 아리스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아리스에 얽힌 비밀과 아리스가 사라진 이유가 밝혀진다.

총 7편의 단편은 니키 준페이가 늘 바라는 거창한 사건도 숨겨진 비밀이 가득한 사건도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각각의 사람들의 사정이 담겨져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미스터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성격을 빗댄 등장 인물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던 나선 계단의 앨리스. 2편인 무지개 방의 앨리스도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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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 - 일본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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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 문학은 아직 많이 접해 보지 못했지만, 현대 문학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현대 사회와 근대 사회의 차이점이 크기도 하겠지만, 사고 방식 자체가 현대인들과는 좀 다르달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긴 메이지 유신 자체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있어 큰 사건이었을 것이고, 그후로부터 급속이 진행된 근대화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큰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책 목차를 보면서 내가 아는 작가가 누가 있을까하고 세어 보니 나쓰메 소세키, 타니자키 준이치로, 시마자키 토손 그리고 카와바타 야스나리 정도였다. 그중에 직접 책을 읽어 본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유일하다.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경우 그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설국을 영화로 봤고, 타니자키 준이치로는 슌킨쇼에 대해 줄거리만 파악하고 있는 정도이다. 시마자키 토손의 경우 우연한 기회에 이름을 접하게 되었을 뿐 실제 작품은 잘 모른다.
 
일본 근대에 대한 배경 지식도 희박하고, 여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접하지 못한지라 걱정이 많이 되었다. 시대가 다르면 이해의 폭이 확실히 좁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껏 접해본 작가들이 아쿠카타와 류노스케나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 사소설 경향이 강해서 작가의 생애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만 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법.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느린 속도로 책을 읽어 나갔다. 또한 하나의 단편이 끝날 때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라 연달아 읽기 어려웠던 점도 있긴 하다. 

쿠니키다 돗뽀의 대나무 쪽문은 당시 사회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빈부의 격차라고 할까. 물론 현대 사회도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근대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격차가 컸다. 대나무 쪽문으로 겨우 이어졌던 빈자와 부자의 가느다란 연결점. 그건 대나무 쪽문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의 경우에는 처음엔 괴담처럼 보였는데, 똑같은 현상도 받아 들이는 사람의 사고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위장병을 앓았던 나쓰메 소세키는 말년에 접어 들어 투병을 계속했었고, 그러한 자신의 경험이 들어간 소설을 많이 쓰기도 했다. 왠지 병원이나 병이란 소재가 들어가면 나쓰메 소세키와 겹쳐보이는 건 나만일까.

시가 나오야의 오오츠 준키치는 당시에도 남아 있던 계급 제도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인데, 지금은 계급 제도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돈 자체가 계급을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현대 사회도 근대 사회와 별반 다른 게 없다 느껴졌다.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역시 당시 극심했던 빈부의 격차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한 행동은 어찌 보면 순진하고 어찌 보면 이상주의자처럼 보였다. 뼛속 깊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부유하게 자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은 작가가 머릿말에 밝혀 놓았듯이 사소설이다. 가족과의 어긋난 관계,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과 그걸 몰라주는 사회에 대한 원망, 뭐든 저질러 놓고 수습은 나몰라라 하는 비뚤어진 근성 등 읽는 내내 한숨이 저절로 나왔던 작품이다. 이런 사람은 현대에도 많지.. 뭐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안타까웠던 건 역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가족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시마자키 토손의 클 준비는 부녀가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손에서 자란 딸이 커가면서 느끼는 위화감과 괴리감이랄까. 그것이 무척이나 잘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는 딸을 인형으로 키웠지만 결국 언젠가는 품을 떠날 존재. 그것은 성장이란 것으로 넘어야 할 고비일지도 모르겠다.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은 현대 소설이라 해도 믿고 싶을 정도였다. 일종의 법정 소설이랄까, 피의자가 자신의 죄를 담담히 고백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쟁의 상처로 인한 비뚤어진 인격 형성이 나은 비극이랄까. 그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녀가 저지른 범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임에는 분명하나 그래도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건,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쟁의 피해자였을 뿐이니까.

전반적으로 당시 사회상을 담고 있는 이 단편 소설들은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그 재미를 더해준다. 옛날 이야기라고 하면 고루할 것만 같지만, 근대 소설들은 현대 소설과 확실히 다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특히 현대에 비해 더 억압받으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일본 현대 소설은 정말 많지만, 근대 소설은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접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아마도 인기가 없다거나 안팔린다는 이유에서 이겠지만, 좋은 작품이 그대로 묻히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건 무척이나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창비에서 나온 세계 문학중 같은 동양권인 중국 소설이나 쉬이 접하지 못했던 폴란드나 스페인 문학도 여건이 되면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 소설 모음집에서 날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건 일본어 발음의 표기였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책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표기 방식이 어색했다. 마치 몇 십년전 책을 읽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위화감이 많이 드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실제 일본어를 5년 가까이 공부해오고 있는 나는 외국어 발음을 우리나라 발음으로 정확히 옮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요즘 추세에 맞는 발음 표기를 써줬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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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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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해외 여행은 커녕 국내 여행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겐 여행기만큼 좋은 대체물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은 비행기나 배를 타지 않으면 정말 다른 나라로는 갈 수도 없다. 물론 섬나라인 경우는 모두 그렇겠지만, 우리 나라는 아시아 대륙에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분단이라는 이유때문에 육로로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너무 안타깝다.

이 책은 빌 브라이슨의 유럽 여행기이다. 유럽이라고 하면 낭만과 동경의 대상이다. 유럽의 경우 무척 다양한 나라가 존재하는 대륙이고 육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버스나 기차등으로도 여행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에 가려면 비행기로도 10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차나 기차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장점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유럽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척이나 많을 것이다. 그땐 유레일 패스를 끊는거야..라고 하면서 혼자 히죽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은 가볍고,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밖에...

그러나!!
빌 브라이슨의 책은 사진 하나 없다. 이럴수가! 보통 여행기라고 하면 다녀온 곳의 사진은 당연히 들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책은 처음부터 사진이라곤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이다. 하지만, 사진이 없으면 어떠하리. 사진이야 인터넷으로 실컷 구경하면 되는 거다. 대신 빌 브라이슨의 지극히 솔직한 여행기는 시종일관 독자를 즐겁게 만든다.

보통 여행기를 보면 완전 환상적으로만 써놓은 것이 많다. 물론 해외 여행이란 것 자체가 일반인의 환상이며 상상을 자극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집 떠나면 X고생이란 말도 있듯이 여행이 늘 안락함과 편안함 그리고 즐거운 추억만을 주는 건 아니다. 환상적인 여행을 하고 싶으면 역시 사진을 보면서 상상하려면 되려나?(笑)

북유럽 국가인 노르웨이에서 시작해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로마,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동서양 문물이 만난다는 터키까지...
정말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저리 가라라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는 빌 브라이슨의 행동력에 먼저 놀랐다. 게다가 자유여행이다. 보통 해외 여행이라고 하면 깃발 든 가이드를 놓칠새라 정작 봐야 할 것은 곁눈으로 흘낏 쳐다보고 하루에도 몇 군데씩 쇼핑 센터에 들러서 쇼핑을 해야했던 그런 여행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말도 안통하는 나라를 혈혈단신으로 자유여행이라, 부러움을 넘어서 경외의 대상이다, 나에겐. 사실 난 해외 여행을 그다지 많이 해본 경험은 없지만, 죄다 가이드와 함께 다녔던 기억밖에 없다. 그런 내게 있어 빌 브라이슨의 여행은 그 자체로 존경스럽다고나 할까.

말도 안 통하고, 가끔은 버스나 기차 시간에 겨우 맞춰서 도착하고, 여행자 수표를 도난당하고, 기껏 찾아 갔더니 호텔은 만원이고.... 역시 자유 여행은 그에 따른 댓가도 큰 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한다. 특히 그 자체로 낭만과 결부되는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대한 묘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 곳이었단 말이지... 또한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이야기만 써놓은 것이 아니라, 직접 구석구석 돌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랄까. 하긴, 난 가이드와 다니면서 깨끗하고 음식 맛있고, 풍경 좋은 데만 다녀서 실제로 그 나라의 아주 일부만 보고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여행이란, 그 나라에 다녀왔다고 할 정도라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아닌 실체를 경험해야 진정한 여행이란 생각이 든다.

까칠하면서도 솔직하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면서도 객관적인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 그의 여행기에는 직접 보고, 경험하고. 뼈저리게 느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함이 있다. 사진 한 장 없어도,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 보면 그가 다녔던 곳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하다. 물론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야겠지만, 그의 이야기 속에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사진으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존재한다. 또한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이 여행을 한 곳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사는 곳을 떠나 미지의 영역을 탐험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대범함도 필요한 일이니까.

온갖 미사여구로 들어 찬, 무조건 좋다고만 쓴 여행기에 질린 사람들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읽으면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신나게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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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나시키 가호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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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고루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난 기담이라면 그 배경이 조금은 옛날이라야 그 맛이 더욱더 살아 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낮이고 밤이고 환한 도시에도 도시 괴담이란 게 존재하긴 하지만, 역시 기담이나 괴담은 어스름한 달빛 아래, 삐걱대는 계단소리 뒤에 풍성한 자연 속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는 약 100년전, 그러니까 일본의 연호로 따지자면 메이지 시대쯤이려나. 전기가 상용화되지 않은 시대이니, 그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화자인 와타누키 세이시로는 프리라이터로 죽은 대학 친구인 고도의 집에서 집지기 일을 맡게 된다. 그때부터 생겨나는 기묘한 일들.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이렇게 계절을 따라 흘러가면서 진행된다. 작품 내 소제목들은 각각 계절을 상징하는 식물들을 따와서 지어졌는데, 기담과 꽃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가져다 주었다.

매일매일 쓰다듬어 주니 자신에게 연심을 품은 배롱나무, 도코노마에 걸린 족자에서 튀어 나온 죽은 친구인 고도, 어느 날부터 눌러 살게 된 개 고로 등 등장하는 건 평범한 사람뿐 만이 아니다. 갓파라든지 여우 요괴, 너구리 요괴, 에비스의 형상을 한 수달 요괴, 벚꽃 요괴, 대나무 요괴 등 요괴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게다가 일본의 신화에 근거한 신들도 등장하니 이 소설속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닌 이세계(異世界)의 존재들이 더 많이 등장하는 듯 싶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평범치만은 않다. 와타누키는 족자에서 죽은 친구가 나와도 놀라지 않고, 옆집 아주머니는 갓파라든지 수달 요괴나 벚꽃 요괴등에 대해 들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게다가 너구리 요괴는 스님으로까지 변신을 하는데, 그 당사자인 스님은 너털웃음을 지을 뿐이다. 또한 고로 또한 평범한 개가 아니라 요괴들의 중개자로서 활약을 하고, 와타누키가 이세계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역할도 하니 입이 떡 벌어질 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신기했던 건 와타누키를 비롯해 옆집 아주머니, 스님, 그리고 후배인 야마우치는 와타누키기 만났거나 겪은 요괴나 신비한 일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들인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라면 헛것을 봤겠지라고 치부할테지만, 그때 사람들은 조금더 융통성이 있었나 할 정도로 이세계의 존재를 쉬이 받아 들인다. 아마도 자연과 가깝게 살아서 그러한 것들이 당연히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문명과 진보가 조금씩 인간 세상을 장악하면서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와 함께 존재해 왔던 것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안보려고 애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간들이 삶의 영역을 확장하면서 더이상 그들은 인간 가까이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분명 어딘가 깊고 깊은 산 속이나, 인간의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선 그들이 여전히 존재할까.

사계절의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인간과 함께 존재해왔던 존재들의 이야기는 무섭고 괴이쩍다기 보다는 다정하고 따스하다. 특히 죽은 인간의 혼을 싣고 오는 너구리 요괴 이야기는 요괴에 대한 이미지를 깡그리 날려 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옛날 요괴들은 인간과 가까이 살면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을지언정 인간을 해하는 존재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에게 인간이 가장 큰 천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선 또한 흥미로운 점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고도의 죽음과 관련한 것인데 고도는 호수에서 배를 타고 가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일본 이야기에서는 물은 이계와 연결되는 곳이란 이미지가 많은데, 역시 고도가 사라진 호수 역시 그런 역할을 한 듯하다. 이계의 음식은 함부로 받아 먹으면 안된다는 설정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본 듯 하다.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설정이랄까. 여기에서는 포도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눈을 감으면 사계절 풍경이 바뀌어 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 하다. 그 속에선 너구리 요괴도 여우 요괴도 에비스를 담은 수달 요괴도 갓파도 사람과 더불어 평안히 공존하고 있다. 비록 가끔 사람에게 장난을 치긴해도 직접 해는 가하지 않는 요괴들...  이제는 이렇게 이야기 속에서밖에 만날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아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우리가 눈치채 주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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