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집의 앨리스
가노 도모코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니키 X 아리사 콤비의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1편 나선계단의 앨리스를 보고 난후,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어 그들 콤비가 나오는 무지개집의 앨리스도 선뜻 구매하게 되었다. 탐정이 등장하지만 무섭고 섬뜩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로 구성된 앨리스 시리즈는 어려운 트릭과 잔혹한 범행, 그리고 범인의 동기와 그 범인을 밝혀 나가는 탐정 소설이나 미스터리 물에 비해서는 시시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런 일이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는 사회란 얼마나 무서운 곳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하기에 때로는 이런 일상 미스터리의 재미를 즐겨보는 것도 탐정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선계단의 앨리스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었고, 무지개집의 앨리스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전편인 나선계단의 앨리스의 경우에는 니키가 탐정 사무소를 차리게 된 계기와 아리사와의 만남, 그리고 탐정으로서의 니키의 첫 활약과 아리사의 조수로서의 활약등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아리사의 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약간.

무지개집의 앨리스는 아리사의 개인적인 문제와 더불어 니키의 딸과 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전편에서는 지나가듯 슬쩍 언급된 것에 비해 직접적으로 등장한달까. 특히 아들같은 경우 약혼자까지 등장하게 되니 니키家 사람들 총출동!!의 이미지랄까? (笑) 게다가 요번엔 니키가 원하는 '사건다운 사건'의 조짐도 보였다. 그러나 니키에겐 기대만 부풀려준 불발탄같은 이미지였기는 하지만...

표제작인 무지개집의 앨리스의 경우에는 일본어의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설정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특히 딸기와 무지개, 오후 세시의 간식이 가진 다른 의미를 알면 더 재미있어진다. 젊은 엄마들의 육아 모임에 날아드는 익명의 협박 쪽지. 과연 그 뒤에 숨은 진상은? 범인이 밝혀졌을때 뭐랄까, 약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범인(?)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묘하게 납득이 갔다.

다른 작품으로는 1편에 나왔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일어난 영아 납치 사건의 전모, 고양이 ABC살해 사건, 향기로운 꽃나무 절도 사건등이 있다. 특히 환상의 집의 앨리스와 꿈의 집의 앨리스는 아리사의 생각과 아리사의 결심등을 비롯해 아리사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소녀같은 분위기의 아리사. 그녀 역시 사람이었달까.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환상을 비춰보곤 한다. 즉 저사람은 이러이러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리사는 그런 것이 무척 부담이 된듯하다. 언제나 그사람은 그대로인데,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란 것. 뭐, 나도 사람이다 보니 호감이 가는 사람에겐 그런 환상을 더욱 많이 덧씌어 보았다는 건 인정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언제까지나 어린 꼬마일 수는 없다. 어린 시절엔 가능했던 모든 것, 상상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리사는 앨리스가 조금 자라면 저렇게 될지도 몰라라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인데, 1편에 비해 소악마(?)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다고나 할까? 오히려 순수하기만 한 그런 이미지보다는 소녀같은 감성도 남아 있으면서 약간은 어른스러운 이미지를 함께 가진 아리사의 이미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무지개집의 앨리스 역시 전편인 나선계단의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나 설정들이 언급되어 있으니 그것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록 탐정 니키가 바라는 사건 다운 사건은 없지만, 니키와 아리사가 맡아서 해결하는 사건은 경찰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의뢰인은 아무에게나 상담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그러니 니키가 바라는 사건은 아닐지라도, 이런 사건을 해결해주는 누군가는 꼭 필요한 사건들이랄까? 그게 바로 일상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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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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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번째로 읽었던 건 고양이 요람이었는데, 그것은 고양이 요람(실뜨기)를 하듯 재미로 만들어진 지구를 멸망시켜 버리는 무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학 기술에의 지나친 의존, 그리고 인류를 몰살시킬 위력을 가진 무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의 조금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던 박사, 그는 다만 그 연구를 즐겁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아니면 커트 보네거트의 블랙 유머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것인지는 몰라도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사실 갈라파고스도 마찬가지였다. 읽으면서도 어디서 웃어야 할지에 대해 무척이나 난감했던 것이다. 블랙 유머의 지존이라고까지 여겨지는 커트 보네거트. 하지만 난 줄거리 파악에도 급급했다. 뭐, 하긴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은 워낙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면이 많은데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기 일쑤라 정신없는 건 여전하다. (그래 봤자 아직 두 권째이지만...)

갈라파고스는 갈라파고스 섬 투어를 위해 에콰도르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 중에는 사기꾼도 있고, 퇴직 교사도 있으며, 돈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 과학 기술의 천재 등 특색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화자는 유령이자 100만년동안 인류의 발달 과정을 지켜본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의 배경은 1900년대 말이지만, 모든 것은 유령의 과거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SF 소설에 왠 유령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다지 SF 소설이란 느낌은 안든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 보면, 과학 기술의 발달과 전쟁 등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살아 남은 몇몇 사람이 신인류의 조상이 된다는 설정이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독특한 생태를 유지하고 있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생명들처럼 이들도 인류 멸망 후 100만년이 지나 새로운 인류가 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많은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인류의 탄생에서 현대 인류로 발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초기 발달에서 어느 정도까지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 현생 인류는 급속하게 발달했다. 특히 인류가 자신의 머리를 이용해 다양한 기술을 발달 시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인류를 파멸로 몰아 가는 밑거름이 되었을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도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하면서 자만에 빠져있다. 하지만, 인류의 미래에 과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커트 보네거트식 신인류 탄생 비화, 갈라파고스.
고양이 요람보다는 읽기 수월했지만, 여전히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본질에 다다르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던 책이고, 나중에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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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스킨 샤미센
나오미 히라하라 외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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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네이크스킨 즉, 뱀가죽을 사용한 샤미센이라.. 샤미센은 일본 전통 악기로 중국의 샨시엔이 일본 오키나와(류큐)로 들어와 개량된 것으로 원래는 고양이 가죽을 사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개가죽을 사용하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뱀가죽이든 고양이 가죽이든 개가죽이든 다 고개가 설레설레 내저어진다. 아무리 전통 악기라 해도..

그 소재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제목을 봤을 때 일본 전통 악기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으로 봐서는 일본인과 관련된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작가인 나오미 히라하라는 일본인이지만 재미 일본인이니 그런 점도 작용했을 거란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파티 현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살해된 사람옆에는 부서진 뱀가죽 샤미센이 놓여 있었다. 과연 이 뱀가죽 샤미센과 죽은 자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70대의 노인이자 정원사이며 탐정인 마스 아라이는 이 사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는 커다란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50년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알고 싶지 않았던,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난다.

스네이크스킨 샤미센은 추리 소설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 들였던 나라이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백인들보다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백인 중심의 사회이다.

특히 파커 판사가 아라이에게 했던 이야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리가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디언이든, 캐나다인이든, 남미인이든, 아니면 구리빛 피부에 눈이 갈색인 그 누군가를 말하는 게 아닐세. 미국에서 유서 깊게 내려온 백인들을 의미하는 것이야. 당연히 흑인도 아니지. 우리의 혈족은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에 퍼져 있는 바로 그 혈족이고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미국인인 걸세. 하지만 자네는 아니지. 물론 자네 친구들도 그렇고. 자네 자식이나 손자야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겠군." (417p)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첫발을 대디딘 이민자들. 그들의 후손은 벌써 이민 4세까지 내려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과 핏줄이 이어진 동포를 배신하는 일쯤에는 죄책감을 느낄 여력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한 지배에 길들여져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었던 킨조의 선택.

일본의 전통 악기를 소재로 한 이 추리 소설은 어찌 보면 미국 이민자 사회, 그리고 미국 이민법을 고발하는 소설로도 보인다. 샤미센은 오키나와의 전통악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지였던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 장치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미국계 일본인으로 살아 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처럼도 보인다.

미국 이민자 사회의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미국계 일본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인들, 특히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미국땅을 떠도는 이방인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미국계 일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해도 충분이 납득이 간다. 첫 도입에서 초반부까지는 약간 지루한 면은 있었으나, 중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의 진실, 그속에 깊숙히 숨겨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금세 몰입된다. 비록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이민자들의 실태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백인들의 백인 우월주의가 살아 있는 한.. 그래서 더더욱 현실적이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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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리깡 1
강도하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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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이런 말을 들으면,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도 행복한 연애, 예쁜 사랑을 하고 있을 때 말이지, 불행한 연애, 집착으로 일그러진 사랑을 보면 고개가 휘휘 내저어진다.

사랑을 하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사실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은 연애도 사랑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랑따위 처음부터 안했으면 좋을텐데, 그런 마음이 생기는 사랑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는 건, 좋은 일이 더 많아서 그렇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세브리깡에는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인공 이글은 처음에 봤을 때 나쁜 남자라고만 생각했다. 고교 시절부터 자신을 좋아해온 여자, 군대에 가있을 때도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고 기다려준 여자를 너무 냉정하게 내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각각의 악기도 화음이 어울려야 아름다운 음악이 되듯이 연애나 사랑도 그런게 아닌가 싶다. 이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초연은 이른바 스토커였던 것이다. 이글의 주변을 항시 맴돌며 그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모조리 초연의 공격 대상이 되었고, 이글은 그런 초연을 피해 군대에 갔다. 하지만 도피도 잠시, 제대하자마자 이글의 앞에 나타난 초연은 끊임없이 그를 쫓아 온다. 하지만 초연의 사랑은 사랑일까. 초연의 말에 따르면 '미안하지만 네 행복따윈 관심없어'이다. 즉, 자신과 이글이 서로 사랑을 하든, 아니면 이글이 일방적으로 고통받든 그런 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랑이랄까. 정말 이글은 된통 잘못 걸렸다란 생각밖에 안든다. 나라도 저런 여자에게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이글의 친구 진구. 그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직원 봄비를 좋아한다. 진구는 이혼 경력 한 번. 아내는 바람을 피웠고, 그렇게 그는 이혼했다. 진구가 이혼하게된 사연을 이글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진구의 아픔이 느껴졌다. 사랑했던 사람인데 그녀가 바람을 피운 이유보다는 바람 피운 것 자체에 집착을 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담아냈던 파인더는 그녀의 불륜 현장을 잡는 것으로 변해 버렸다. 진구는 현재 봄비를 좋아하지만, 지난 과거의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을 전하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 봄비가 앉아 일하는 의자를 찍는 진구의 마음. 왠지 너무도 안타깝다. 봄비의 사연은 아직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그녀는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절대 부족하다. 그리고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혁도. 그는 이글의 누나가 사귀던 남자였다. 고시생이었지만, 고시 도전을 그만둔 후, 누나에게 버림받은 남자. 하지만 그는 현실을 보지 않는다. 누나인 정숙이 반지를 되돌려 주지 않았으니 아직 끝난게 아니라고 우기는 남자. 순진한 건지 바보같은 건지.. 아니면 다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건지... 혁도가 정숙이 쓰던 방에서 거울을 보며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무척이나 인상에 많이 남았다. 가슴이 찡해졌던 장면이랄까.

그외에도 세브리깡(여자 주인공)에게 구애하는 남성도 있다. 대근 아저씨라고 했나? 그가 세브리깡에게 들어 달라는 부탁은 확실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그런게 아니었을까. 세브리깡이 아무리 부탁녀라해도 들어줄 수 있는 부탁과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은 분명히 있을텐데....

세브리깡.. 이는 이글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녀는 몇 년전부터 이 동네에서 살고 있으며 누구나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친절녀이기도 하다.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본명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글은 초연을 떼내기 위해 세브리깡과 계약 연애(?)를 하게 된다. 얼핏 보기엔 그런 사이같지만 서로를 의식하는 게 눈에 보인다. 초연때문에 연애의 연자도 시작하지 못한 이글과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살아 가는 여자 세브리깡. 초연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이글과 세브리깡은 진짜 연애를 할 수 있을지, 진구는 봄비에게 고백을 할 수 있을지, 혁도의 기다림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아니, 모든 것이 연애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랑의 여러 유형들. 상처받고 절망하면서도 사랑이란 감정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단지 '사랑'이란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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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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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작.
이 단어를 보면서 먼저 떠올린 것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이었다. 국내 문학상을 받은 책 중에도 난이도가 높아서 읽으면서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때가 종종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금 물고기는 술술 읽힌 편이었다.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 소설의 스토리가 가진 흡인력에, 작가의 필력에 금세 책 내용에 몰입되었다.

황금 물고기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납치된 후 팔려 가게 된 소녀 라일라. 그녀는 납치되는 순간 이제까지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 버렸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녀는 랄라 아스마를 만나 공부를 손녀처럼 키워지고 공부도 하게 되었다. 팔려온 인생치고는 그래도 괜찮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랄라 아스마는 노환으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고 라일라는 랄라 아스마의 아들과 며느리의 집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학대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라일라는 결국 그들곁에서 도망을 쳐나왔다. 이것은 라일라의 끊임없는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라일라는 도망친 후 여관에서 자밀라 아줌마를 비롯한 여섯 공주(아마도 창녀들)과 함께 살아 가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라일라를 돌봐 주거나 라일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늘 그녀를 구속하려하고 자신들 곁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라일라는 한 곳에 머룰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의 투망으로 부터 도망쳤다.

라일라는 밀입국이란 방법으로 파리로 건너가고, 그후엔 다시 이탈리아로, 또다시 미국으로...
그녀는 계속 자신을 덮쳐오는 그물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라일라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라일라가 원하는 것은 구속이나 정체가 아니었다. 그녀의 여행은 자신의 본질, 뿌리,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채, 랄라 아스마가 지어준 라일라라는 이름만을 가진 소녀는 수많은 도시를 거쳐 수많은 사람을 거쳐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라일라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뿌리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라일라의 여정은 늘 고달팠다. 물론 그녀를 도와준 손길도 많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자신들의 손안에 두고자 함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라일라의 여정에서 이젠 그만 정착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도 많았다. 이젠 고생을 안하고도 살 수 있을 정도가 된 것같은데, 왜 라일라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대충 남들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누군지, 나의 뿌리, 나의 근원이 어딘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라일라처럼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서 자신의 근원이 시작되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멈추기 전에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황금 물고기를 읽는 순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섬세한 소설이다. 라일라가 기뻐할 때, 라일라가 절망하고 슬퍼할 때, 그 모든 순간을 늘 라일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일라가 아프리카 인들의 북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맥박치던 순간, 라일라가 노래를 부르고, 라일라가 시몬느에게 배운 춤을 추던 순간이 눈앞에 그려 진다. 그 모든 것은 라일라를 라일라가 시작된 순간으로 끌어당기던 순간이었고, 시작의 표지가 아니었을까. 

라일라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보였다.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어의 힘찬 펄떡임. 라일라는 빛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 그녀를 잡기위한 그물과 올가미를 피해 헤엄치던, 탁류 속에서 빛나는 한 마리의 황금 물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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