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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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헤르타 뮐러가 2009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아니었다면 내가 헤르타 뮐러의 이름을 알게 되고,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헤르타 뮐러의 노벨상 수상은 작가 자신 뿐만 아니라 여러 독자들에게도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헤르타 뮐러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
전무하다.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란 것을 빼고는...

그래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샘플북을 펼쳐 보았다. 샘플북에는 저지대에 수록된 조사(弔詞)와 숨그네에 수록된 손수건과 쥐가 실려있었다. 그외에도 헤르타 뮐러의 삶과 작품, 그녀에 대한 인터뷰,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등이 수록되어 있어 헤르타 뮐러에 대해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고 이 저지대를 읽었다면 난 거의 대부분의 것을 이해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지대는 루마니아에 사는 독일인 - 바나트 슈바벤 농부들 -들의 삶과 당시 사회주의 국가였던 루마니아 사회와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은유와 비유등으로 감춰져 있어 헤르타 뮐러에 대한 것을 아무것도 몰랐다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역시 소설같은 문학 작품은 작가의 사적인 모든 부분을 담아내지는 않더라도 작가의 경험과 생각 등이 고스란히 표현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파악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헤르타 뮐러는 우리에게 무척 낯선 작가이며, 특히 루마니아에 사는 소수의 독일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생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본서는 중편 저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바나트 슈바벤 농부들의 이야기와 국영 농장의 흉작을 그린 마을 연대기를 비롯 의견, 잉게, 불치만씨 등 당시 독일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소설 두 가지로 구별된다.

루마니아의 시골인 바나트 슈바벤에 살고 있는 소수의 독일인들. 그들은 옹색할 정도로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루마니아 사회 안에서 이방인과 같은 그들의 삶은 척박하기 그지 없다. 이 소설은 여러 계절을 거쳐가면서 그들의 일상을 비롯해 종교 생활, 장례 문화 등 소녀의 시선으로 묘사되고 있다. 문장들은 짤막짤막하고 때로는 몸서리 쳐질 정도로 세세하게 그들의 삶의 고단함을 그리면서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서정시를 보는 듯 하면서도 그 줄기는 척박하고 불행하며 고된 삶을 보여준다. 때로는 시적인 묘사에 정신이 팔리기도 하지만, 그 흐름속의 이야기는 정확하게 그려진다. 즉,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분명히 표현되고 있다.
시적인 비유나 은유를 주로 쓰는 작품의 경우 줄거리나 전체적인 흐름이 모호하게 변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시적인 은유와 비유속에서 그 중심을 관통하는 바나트 슈바벤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도 가혹해서 더욱 선명하게 그려질 정도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고, 술을 많이 마셨고 폭력적이었다. 어머니는 늘 바지런히 일하면서도 사람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고, 소녀에게 때로는 손찌검을 하곤 했다. 할머니는 버려진 냄비를 주워다가 제라늄을 키웠고, 할아버지는 늘 망치질을 한다. 제일 처음 수록된 조사를 읽으면 이 소녀의 가정은 바나트 슈바벤 마을에 있어서도 물과 기름같았던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헤르타 뮐러의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으며,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의 수용소에 끌려 갔다가 생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자기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소수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달픔, 옹색하다할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삶... 그러나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의견, 잉게, 불치만씨, 검은 공원, 일하는 날 등은 당시 사회주의 체제와 독재 정권 아래 힘겨워하던 당시 사회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특히 의견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체제 아래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하는 날은 헤르타 뮐러가 겪어야 했던 - 루마니아 비밀 경찰의 회유와 압력 등- 당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이 거꾸로 가는 일하는 날. 당시 그녀가 느꼈던 감정이 바로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두가지 색을 가진 작품들을 보면서, 하나는 소녀의 입장에서 하나는 어른의 입장에서 묘사되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린 소녀의 눈에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활 중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행복한 삶의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사회 비판 성향의 작품을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아픔과 절망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에 굴복하지 않았던 강인함이 느껴진다.

고난과 아픔과 절망은 사람을 추락시키기도 하고 더욱 강인하게 만들기도 한다. 비록 힘겨운 나날들을 살아 온 작가이지만, 작가는 그 모든 것을 글쓰기란 것으로 승화시켰다.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강인함의 표현이며, 그녀가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삶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음울한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해낼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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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즈야 2010-08-06 11:57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저야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

2010-08-09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즈야 2010-08-09 15: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시고, 늘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10-08-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즈야 2010-08-17 20:29   좋아요 0 | URL
메일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
 
판타스틱 일본백서 - 일본어가 보이는
임승진.모토야마 다카코 지음 / 와이즈(에듀스크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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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꼭 거치게 되는 과정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공부하는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문화나 사회에 관한 것등 궁금해지는 것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일본어에 관한 것만을 공부하기에도 바빠서 그런 것은 차후의 문제였지만 조금씩 배우게 되면서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을 조금씩 접하게 되었고, 결국은 일본이란 나라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 역사라든가 그런 것을 배우는 것보다는 좀더 간단하지만 확실한 즐거움이 있는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바로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판타스틱 일본백서는 일단 세 부분의 파트로 나뉘어지는데, 교육 · 문화 · 사회편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이라.. 난 일반인이고 학교 과정은 다 마쳤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그건 별 문제가 안된다. 나역시 일반인이며 벌써 학교 과정은 모두 수료한 나이이지만 이 교육 파트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학제를 비롯해 학교 활동등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유학생을 위한 정보도 있고, 일본의 독특한 학교 문화에 대한 것들도 나와 있다. 일본 드라마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일본 드라마나 만화는 학원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하기에 그런 학원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와는 다른 일본의 학교 문화에 대해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진은 일본의 고등학교에 있는 독특한 풍습인데, 바로 졸업식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졸업식날 좋아하는 남학생(동기든 선배든 상관없음)에게 교복의 두번째 단추를 달라고 한다. 그건 바로 좋아한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인데, 상대가 두번째 버튼을 떼서 준다면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될듯 하다. 나도 두번째 버튼에 관한 건 만화에서 처음 봤다. 제목도 그것이었는데, 처음엔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만화를 읽다가 알게 된 내용이다. 아마도 이런 내용은 다른 책에서는 보기 힘든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식의 차이나 칼라 교복(가쿠란)만 적용되지 블레이저 타입은 두번째 버튼을 주기 힘들지 않을까나? (笑)

문화편에서는 성년의 날, 하나비와 유카타, 결혼식, 마츠리 등 일본 특유의 풍습이나 문화와 더불어 애니메이션 강국인 일본의 모습을 역력하게 보여주는 기사도 있다. 또한 일본 전통의 예능인인 게이샤와 마이코등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다. 



일본의 전통 예능인 게이샤의 모습이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과 붉은 색으로 강조한 눈매와 입술은 인형처럼 보인다. 게이샤는 유녀와는 다르며, 춤과 노래, 연주뿐만 아니라 화술에도 강하며, 정치 경제 문화쪽으로도 박식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유녀와 또 다른 점은 유녀의 경우 오비의 리본을 앞쪽으로 매지만 게이샤의 경우 리본이 뒷쪽으로 간다고 한다.



마이코는 게이샤 견습생이다. 처음에 사진을 봤을 때 왜 이렇게 오비를 치렁치렁하게 늘어 뜨렸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 뒷모습으로 게이샤와 마이코가 구분된다. 마이코는 저렇게 오비를 길게 늘어뜨린다고 하니 이제부터는 게이샤와 마이코를 헷갈려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역시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 이건 원피스에 나오는 메리고잉호. 실제로 이렇게 만들어져 사람들이 승선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오다이바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걸 보면 일본이 새삼 대단해 보인다. 일본 방송국은 수도 없이 많고, 수도 없이 많은 편수의 애니메이션이 분기별로 방송되는 걸 보면 역시 애니메이션 강국이라할 수 밖에...



이 장면은 일본 마츠리의 한 장면이다. 일본은 굉장히 현대적인 나라이지만 이런 전통을 잘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감탄스럽다. 게다가 모두 이 마츠리를 즐기고, 이를 보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까지 찾아온다니 부럽기 그지 없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어서 가히 천재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새로운 조어가 속속 만들어진다. 오토멘(乙男)의 경우는 가타카나만 봤을땐 차를 가진 남자를 뜻하나 했는데, 한자를 보고 뒤집어지게 웃어 버렸다. 보통 일본에서 소녀를 오토메라고 하는데, 그 한자는 乙女이기 때문이다. 즉, 오토멘이란 소녀 취향을 가진, 다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가진 남자를 뜻하는 말이란다. 이케멘이나 초식남, 육식남에 대해선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토멘이라... 이렇게 새로운 단어를 낚시하는 재미도 충분하다. 또한 건어물녀나 로리 스타일등 재미있는 단어들도 많으니 체크는 필수!

판타스틱 일본백서는 사진도 무척 많이 실려 있지만, 사진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박스를 따로 만들었다. 물론 사진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거나 하나의 소재를 설명할때도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쓰기 때문에 공부가 된다. 하지만!
밑을 보시오.(↓)



이렇게 빨간색 고양이가 웃고 있는 타이틀을 보면 마츠리나 공휴일등을 비롯해 일본 신사, 온천지등 일본에서 즐길만한 것이나 일본 특유의 것들을 소개해 두었다. 사실 이런 것만 쏙쏙 골라 읽어도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렇게 파란 박스로 처리된 부분은 일본 생활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외에도 여행할 때 필요한 숙박지, 주택관련 어휘, 결혼 관련 어휘등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골라서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본문에 나온 따끈한 표현들, 일본어 한자 읽기, 일본 상식 퀴즈 등 일본어 어휘책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표현과 문제들이 나온다. 전부 본문에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본문을 잘 읽으면 공부하는 재미도 쑥쑥 올라갈 건 분명하다.
특히 따끈한 표현들은 정중체가 아니라 반말체나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말들도 나오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일본어 어휘집처럼 어려운 단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고, 본문에는 수록된 한자에는 후리가나가 달려 있으니 히라가나를 읽을 줄만 안다면 이 책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건, 역시 일본어 발음을 우리나라 발음으로 표기해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어의 발음은 우리나라 발음에는 없는 것이 많다. 그것을 최대한 일본어 발음에 가깝게 만든다 할지라도 한국식 발음을 익히다 보면 결국 발음이 이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부분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일본어를 아예 모르는 독자를 위해 그렇게 써 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납득이 가긴 한다.

나도 몇 년째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지만 시험대비용 어휘집을 볼 때마다 솔직히 한숨이 나왔다. 물론 해야 하는 것이지만 재미있게 볼 책도 필요했던 것이었다. 판타스틱 일본백서는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다. 특히 한국과는 색다른 사회 문화 구조를 가진 일본에 대해 조금더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이 책은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일본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에 목말랐던 나같은 독자에게는 단비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새롭고 흥미롭고 판타스틱한 일본 이야기 속으로 고고씽~~~

사진출처 : 본문 中(78p, 182p, 185p, 120p, 151p, 274p, 156-246p, 342-180-132p, 227-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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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몇 년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우키요에를 접하게 되었다. 무척 특이하다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때는 바로 우키요에 대해 알아볼 생각을 못한 채 관심만 가지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을 검색하다가 우키요에에 대한 책을 두 권 발견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다른 한권은 우키요에와 에도 시대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일단은 우키요에와 우키요에가 발달하게 된 에도 시대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그 책을 읽었다. 도판이 많기는 했지만, 크기가 작은 편이라 조금 아쉬웠지만, 이 책은 도판의 크기가 무척 큰지라 우키요에를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난 하이쿠의 경우 일본의 단가 중의 한 장르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그 방면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고 봐도 된다. 다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등에 잠깐씩 하이쿠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장들이 등장해 무척 궁금했던 건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시조라든지 현대시들도 어려워하는 나에게 일본의 하이쿠란 건 어쩌면 좀 피하고 싶은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하이쿠 외에는 와카란 것을 알고 있다. 와카는 겐지이야기에 무척이나 많이 등장했는데, 자신들의 마음을 말로 전하기 보다는 글로써 그것도 비유와 은유가 가득한 글에 담아 상대에게 보내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해석이 없으면 무슨 내용인지 모를 지경이라 역시 난 이런 시를 닮은 것과는 인연이 없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을 보면 하이쿠와 우키요에에 대해 간략한 설명이 나온다. 그러나 간략하다곤 해도 하이쿠와 우키요에에 대한 기본 지식은 충분히 습득할 수 있을 만한 양이며, 설명도 너무 어렵지 않아서 개요 정도를 파악하기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이상의 정보는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므로. 

그후 목차를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나뉘어져 하이쿠와 그 하이쿠의 내용에 최대한 근접해 있는 우키요에가 실려 있다. 또한 하이쿠를 끊어 읽는 방법은 앞부분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다가, 한자와 우리말 해석(그리고 일본어의 우리말 발음)까지 실려 있어 일본어를 모르더라도 하이쿠를 읽고 감상하는 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나같은 경우엔 일본어를 공부하는 중이라 한자 옆에 후리가나가 달려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리고 역시 최고는 하이쿠 한 수와 더불어 우키요에가 함께 실려 있는 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하이쿠만 봐서는 의미 파악이 모호할 수 있을 수도 있겠으나 우키요에가 있음으로 해서 하이쿠가 의미하는 바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우키요에를 보면서 나름의 상상과 해석을 덧붙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또한 하이쿠 옆에 따로 해석을 달지 않아 독자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점도 무척이나 좋았다. 



잇사의 시와 더불어 함께 소개된 그림은 구와가타 게이사이의 <앵하유연도(櫻下遊宴圖)> 이다. 벚나무 아래에서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꽃그늘 아래에선 모든 긴장도 경계도 풀고 즐겁게 꽃놀이에 열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부손의 하이쿠와 야마모토 고이츠의 < 제비붓꽃에 오리 그림>이다. 여름이면 붓꽃. 그리고 오리가 살짝 뛰어 오른 모습이 경쾌하기 그지 없다. 



가을이라고 하면 역시 사슴과 단풍을 빼놓을 수 없다. 부채의 앞뒷면에 그려진 사슴과 단풍. 난 이것을 보면서 화투의 풍을 떠올렸다. 화투에 표현된 것도 4계절을 뜻하는 것이라니, 아마도 이런 우키요에서서 따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림은 사카이 호이츠의 <녹풍도(鹿楓圖)>이다.



겨울하면 역시 눈이다. 눈이 오는 길을 연인 두 사람이 우산을 받치고 걷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스러워 보인다. 그림은 스즈키 하루노부의 <눈속에 우산을 함께 슨 연인들(雪中相合傘)>이다. 사진에는 없지만 이 페이지에는 바쇼의 하이쿠가 함께 실려 있는데,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건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이 작품은 역시 겨울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눈속의 늙은 호랑이>란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무섭다기 보다는 웃음이 먼저 풋하고 났는데, 우리나라의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무척이나 친근한 느낌이었다. 눈속을 겅중겅중 뛰는 호랑이의 모습, 눈이 오는 게 신이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발이 시려서 그런 것일까.... 

이외에도 이 책에는 수많은 하이쿠와 더불어 우키요에가 실려있다. 특히 우키요에의 도판은 300점에 가까울 정도로 많다. 그 속에는 풍경화, 인물화를 비롯해 초충도, 화조도 등도 있고, 우키요에하면 떠오르는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도 수를 셀 수 없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간결하지만 각 계절의 정취를 담뿍 담고 있는 하이쿠와 일본 에도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우키요에와 당시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각 계절을 풍성하게 표현해놓은 우키요에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또한 각각의 하이쿠와 어우러지는 우키요에를 보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덧입혀 보는 것도 또하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극히 일본적인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것은 일본의 문화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보고라고 생각한다.

사진 출처 : 본문 中 (46P, 118P, 232~233P, 249P, 26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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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라바 - 전장의 포화 속에서 승리보다 값진 사랑을 보여준 강아지 라바 이야기
제이 코펠만.멜린다 로스 지음, 정미나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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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도 다섯마리를 키우고 있으며, 개에 관한 책이 나오면 바로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안녕, 라바 역시 책 표지에 강아지 그림이 있어 책에 관한 기본 정보 없이 바로 구매했었다.

안녕, 라바는 2004년 이라크 전쟁때 한 미 해병 장교가 만난 강아지 이름이고, 그 장교가 미국에 데려가려고 애를 썼던 바로 그 녀석이다. 난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해 실제로 그 참혹함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전쟁터의 모습은 이루말 할 수 없이 참혹했으니, 실제 그 일을 겪었던 사람들에게는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난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이요, 미국이 불경기에 빠질 때마다 국민들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는 획책이요, 전쟁으로 인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하는 군수 사업을 위한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따라서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였던 미국에 대한 시선은 당연히 곱지 않지만, 따지고 보면 그곳에 파병된 병사들은 일종의 피해자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결국 죄를 지은 건 책상 머리에 앉아 모든 걸 획책한 윗선들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이 코펠만이 이라크 군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좀 못마땅한 구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뭐, 따지고 보면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하는 전쟁통에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이라크 병사들을 모질게 대했던 것도 이해가 가지만....

그런 미군들에게 잠시 전쟁의 아수라장과 참혹함, 그리고 죽음이란 걸 잊게 해준 존재가 바로 강아지 라바이다. 겨우 2달도 안된 녀석은 빈집에서 발견되었고, 그후 라바 독스 부대원들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하지만 전쟁중에는 군견외에는 어떤 동물도 용납하지 못하게 만든 1-A 란 군법이 있어 라바를 살리기 위한 것은 부대내에서도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당시 이라크 전쟁에서는 민간인이나 저항군의 자폭 테러도 있었지만, 동물을 이용한 폭탄 테러도 빈번했다고 알려져있다. 당나귀나 소, 개, 고양이까지 이용했다니, 정말 전쟁 중에 동물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 일까지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앞이 캄캄했다. 게다가 미군 부대 역시 군법때문에 음식을 찾아 막사로 들어온 개나 고양이를 사살하거나 연못에 익사시키는 등의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전쟁을 일으킨 건 인간인데, 동물의 희생도 이루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라바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사살당하거나 버려져 유기견으로 시체를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라바는 운이 좋았다. 운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라바는 제이 코펠만 중령을 만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다 큰 녀석으로 무척이나 행복하게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만끽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 운이 좋았던 건 라바뿐이었을까? 난 이라크에서 라바를 만난 사람들 모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는 참혹한 전쟁터. 그곳에서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살아 남는다는 건 정말이지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을 사람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고 반드시 척살해야 하는 대상으로 봐야하는 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한 환경에서 잠시나마 전쟁의 참혹함과 적과 아군이라는 것을 잊고 지내게 해줄 수 있는 것. 그건 라바같은 동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동물들, 특히 개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겐 그 몇 배의 사랑을 돌려준다, 아무런 사심없이. 그들의 순박하고 맑은 눈동자와 세차게 흔드는 꼬리를 보면서 마음이 스스르 풀어지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리라.

라바는 전쟁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고, 자신을 만난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해주었다. 비록 라바와 같이 구조된 동물들은 그 전쟁에서 죽어간 동물의 숫자에 비하면 그야말로 극소수일지는 몰라도, 라바가 상징하는 바는 크다고 보여진다.

더이상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동물도 존재하지 않기를..
그리고 남은 라바의 생이 늘 행복과 충만함으로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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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소설 음양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김종덕 해설 / 손안의책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몇 년전 우연히 일본 영화 음양사를 보게 되었다. 그후로부터 음양사는 내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 처음엔 음양사란 단지 요괴나 마물을 퇴치하는 퇴마사정도로만 생각했지만, 실제 음양사는 그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일을 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영화 음양사 외에도 애니메이션 소년 음양사나 결계사, 그리고 교코쿠 나츠히코의 교코쿠도 시리즈를 보고 읽으면서 조금씩 음양사에 대해 이해해나가기 시작했다고 할까. 하지만 소년 음양사와 결계사의 경우 음양사의 다른 일인 점술, 풍수지리를 본다는 것보다는 주술이나 환술을 사용하고 시키가미를 부려 요괴를 퇴치하는 일을 주로 하는 것으로 보였다. 소년 음양사의 경우 아베노 세이메이의 손자가 등장했고, 결계사는 현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라 음양사들이 외는 주문인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陣列在前)이나 결, 해를 외치며 결계를 만들고 요괴를 퇴치하는 주문만을 주로 보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음양사라고 하면 퇴마가 제일 중요한 임무인줄로만 알았지만, 교코쿠도 시리즈를 읽으면서 아, 음양사란 단지 퇴마만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음양사는 헤이안 교 시대의 최고의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의 이야기이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어머니는 백여우 요괴였던 구즈노하로 알려져 있고, 아버지는 인간이라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아베노 세이메이의 음양사로서의 능력은 가히 인간을 뛰어넘는 수준이라 한다. 그러나 그는그러한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령을 퇴치하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원념을 풀어주는 것을 우선으로 한 음양사이기도 하다.

헤이안 교 시대. 서기 900년대라고 하면 너무나도 아득한 시대라 감히 지금은 짐작조차 하기 어렵지만, 밤은 지금과는 달리 정말 새까만 어둠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따라서 어둠속에 무언가 숨어 산다는 것도 어렴풋이 납득이 간다. 지금은 밤이나 낮이나 환하지만 초롱불 정도로 어둠을 밝히던 그 시대에는 정말 달빛이 환한 보름이 아닌 그뭄에는 거의 어둠뿐이었으리라. 따라서 인간 가까이에서 머물며 그 어둠에 숨어 살던 존재도 분명히 있었을 것 같다.

음양사에는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국의 땅에 와 죽음을 맞게 된 사나이가 원령이 되었다던가, 수달 요괴가 자신의 가족이 몰살당한 후 그 원한을 갚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던가, 한 남자를 사랑했지만 자신을 잊어버린 남자를 원망하여 죽은 후에 그 남자를 찾아가는 여인의 원령등 여기에 등장하는 원령들이나 생령, 사령, 또는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요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능력중 시키가미같이 주술로 부리는 것의 등장도 매우 흥미로웠지만, 역시 두꺼비에 나온 방위 바꾸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사실 십자로(교차로)는 귀신이 다니는 길이라고 한다. 그래서 십자로에서 귀신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많다. 사실 방위 바꾸기란 건 이 책에서 처음으로 접한 것이라 무척 신기했다. 이계로 가기 위한 방법중의 하나라니... 그때 등장한 것이 백귀야행이기도 하다.

또 하나더 언급하고 싶은 건 마지막 단편인 시라비구니 이야기이다. 일본에서는 인어의 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인간이 된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이 벌써 아베노 세이메이가 생존했던 때에도 있었던 이야기라니... 너무도 놀라웠다. 도대체 일본에서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불사의 몸이 된다는 이야기는 언제부터 존재해 온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할 정도이다.

아베노 세이메이는 분명 최고의 음양사이자 인간의 능력을 상회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었으나 원령의 퇴치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본서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원령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려다가 죽임을 당한 경우가 많다. 물론 아베노 세이메이가 죽음을 두려워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여우 요괴의 아들이었기에 그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량이 생겨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는 사람을 멀리 하고, 혼자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삶을 택했으나 미나모토노 히로마사와는 절친한 관계였다. 그래서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세이메이는 은근슬쩍 히로마사를 놀리는 게 아닌 가 싶은 생각도 들 정도였다. 게다가 히로마사가 들고 오는 요상한 이야기를 확인하게 위해 길을 나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면 웃음이 풋하고 나올 정도이다.

원령들도 등장하고 요괴도 등장하지만 무섭다기 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우리는 귀신이라고 생각하면 무조건 두려워하고 물리치려 하며, 그들이 성불하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도 않으려 하지만, 아베노 세이메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원념을 풀어주어 성불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음양사로서 최상의 능력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다음 권에서는 또 어떤 원령이 등장해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줄지, 그리고 세이메이는 그들의 원념을 어떻게 풀어줄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또한 세이메이와 마시히로의 만담같은 대화 역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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