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
이 책을 처음으로 읽은 건 초등학교때였다. 당시에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축소판을 읽었던지라 요번에 읽었을때는 느낌이 완전히 새로웠다. 사실, 지금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지만, 처음 읽었던 당시 내 나이에는 맞지 않았던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무조건 추리 소설이라면 좋아서 아무런 생각없이 읽었기에 이 소설에 담긴 의미도 파악하기 힘들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폭설로 오도가도 못하게 된 오리엔트 특급열차.
그속에서 일어난 한 건의 살인 사건. 밀실과도 같은 오리엔트 특급 열차 안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범인과 범행 동기는?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늘 범인의 정체와 범행 동기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책 속에 나오는 탐정의 추리를 쫓으면 나름대로 자신만의 추리를 펼치기도 하고, 범인을 추정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경우 함부로 범인을 추정하기가 힘들었다. 용의자는 20명도 안되지만,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훌륭한 알리바이가 갖춰져 있고, 피살자와의 관계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피살자와는 아예 관계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사건 당시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을 탐문하면서 하나씩 진실에 접근해 나간다. 그의 회색의 뇌세포를 사용해서...

추리 소설의 고전들을 다시금 읽다 보면 요즘 추리 소설과는 무척이나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요즘 추리 소설은 사이코패스, 묻지마 살인 등이 판을 치고 있다. 또한 사소한 원한에 의한 사건도 많으며 금전적인 면과 얽혀 있는 사건도 많다. 하지만 고전들에는 죄냐 아니냐를 떠나 범행 동기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바로 그런 추리 소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에르큘 포와로가 마지막 추리를 끝내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던 순간의 놀라움이란! 이건 정말 이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맛볼 수 없는 그런 "어떤 것"이라 생각이 든다. 

물론 마지막에 밝혀진 모든 사실을 보면 애거서 크리스티가 앞서 깔아 두었던 복선이 떠오른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무릎이 탁 쳐졌다. 평소에는 텅텅 비어야 마땅할 오리엔트 특급이 그날 따라 승객으로 꽉 차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문화 사회인 미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에르큘 포와로의 설명은 모든 사건의 진상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오히려 피살자 보다 범인에게 동정의 표를 던지고 싶게 만드는 추리 소설의 고전 오리엔트 특급 살인. 비록 저지른 것은 살인이란 극악무도한 죄일지라도 범인을 용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에르큘 포와로가 제시한 두 가지 해결책.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난 전자를 선택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 문학의숲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끄럽지만, 난 법정 스님의 책은 '무소유' 딱 한 권을 읽어 보았다. 그리고 법정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부랴부랴 법정 스님의 성함이 들어간 책을 구입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는 속인이요 범인일 뿐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더불어 쓴웃음이 지어 졌다. 하지만 계기가 어떻게 되든 간에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란 건 틀림없는 사실인 듯 하다.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제목만 얼핏 봐서는 저자가 법정 스님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이 책은 법정 스님께서 직접 저술하신 책은 아니다. 평소 법정 스님께서 즐겨 읽으셨고, 강의 등에서 언급한 책들을 중심으로 문학의 숲 편집부가 편집한 책이다.
따라서 모든 책의 소개는 문학의 숲 편집부에서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마지막 부분에 법정 스님의 저서나 강연에서 인용된 부분이 첨가되어 있다.

목차에 실린 총 50권의 책.
안타깝게도 내가 읽어 본 책이나 내가 가진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독서 편식주의자라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주로 읽었을 뿐이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서적등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평소의 책읽기 속도보다 몇 배는 느린 속도로 읽었다.
사실 책 한 권으로 50권의 책을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을 들여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물론 내가 평소 책 읽는 속도를 감안한다면 이 책은 20일이 넘는 시간동안 읽어야 하겠지만, 자꾸만 욕심이 생겨 일주일에 걸쳐 읽게 되었다.
 
여기에 실려 있는 책들은 자연주의적인 삶, 진정한 행복과 행복한 삶, 공존 공락 공생의 이야기등 사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과 삶의 질의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검박한 삶이 주는 삶의 충만함, 자연에 대한 경외와 환경 문제, 인간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등에 관한 책들에 관한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현대인들은 늘 더 높은 곳을 지향한다. 높이 올라 갈수록 그 추락할 높이가 까마득해짐을 잊는다. 현대인들은 더욱더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그러나 내가 풍요로워지면 풍요로워 질수록 반대로 궁핍해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는다. 스스로의 행복만을 좇아 살다 보면 주위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잊게 된다. 그리고 자연에서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인간의 소유물인양 착각하면서 산다. 자신의 믿음과 충만을 위한 종교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차별하게 되는 것을 잊고 산다.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종류의 책들을 보면서 스스로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게 된다. 넌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어떤 삶을 추구하고 있는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그 행복을 위해 어떤 것을 희생하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스스로는 알고 있다. 이들 책에서 언급된 이야기가 진실하고, 인류가 앞으로 걸어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과연 지금의 안위와 안락을 포기할 용기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이 책 하나로 삶이 완벽하게 달라지고, 생각이 전환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달라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 있다. 이 책들에 언급된 사람들의 삶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정도는 실천에 옮길 마음을 먹는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제이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 언급된 것처럼, 육류를 소비함으로 해서 생기는 건강상의 이유는 차치하고, 육류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수많은 생명들에 대한 생존의 위협이 사라지고, 사료 곡물량의 증가로 인해 기아로 허덕이는 제 3세계 사람들이 줄어 든다는 걸 생각한다면 육식이 아니라 채식 위주의 식단을 꾸려나가는 것 정도는 내가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 띠지에 소개된 류시화 시인의 추천사에 언급된 내용이 이 책에 소개된 책을이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준다고 생각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커다란 맥은 역시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좋은 책을 가려 읽는 것은 정말 힘들다. 게다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취향의 책만을 읽는 추세이기 때문에 자신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의 책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이렇게 책 한 권으로 좋은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개된 한 권, 한 권을 유심히 살펴 보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선택해서 그 책을 통독하는 즐거움도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각 책에 관한 이야기의 끝에는 작가의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좋은 정보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본문이 끝난 후 가나다 순으로 실려 있는 책 목록은 법정 스님께서 저술하신 다른 책에 언급된 책이나 강연에서 인용된 책들의 목록이 실려 있으니, 또 다른 책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정보라 생각한다. 

한 권의 책에서 수십권의 책을 소개하는 것은 여러 권의 책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 주고, 여러 분야의 책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지만, 그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것을 보여 주기엔 역시 아쉬운 부분이 많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한 후,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체크해서 읽어 보는 것도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은 여기에 수록된 책 중 내가 갖고 있는 월든이나 사막별 여행자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작은 결심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 돌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시다 이라의 소설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첫번째는 성장 소설이었던 4teen이었고, 두번째는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1파운드의 슬픔이었다. 두 작품 다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고, 무척 좋은 인상으로 남아 도쿄 돌도 아무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또한 표지나 제목 자체가 눈길을 잡아 끌 만큼 인상적이었다.

게임 크리에이터와 게임 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여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랑. 왠지 이것만 보면 뭐 그다지 별 것 없는 소설처럼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게임 제작이란 능력 외에는 일상 능력이 거의 상실되고,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사는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설정 자체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게다가 그 여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출한 능력까지 있으니 이야깃 거리는 충분한 셈이다. 또한 연애 이야기에서 늘 양념처럼 첨가되는 삼각 관계, 남자의 우유부단함도 추가되어 있다.

사랑 이야기 외에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창작자의 고뇌나 힘겨움을 보여 주는 점이나, 작은 회사가 대기업에 점차 잠식되어 가는 모습, 처음의 이상이나 꿈을 버리고 자본을 쫓아하게 되는 동료들의 모습등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또한 게임 크리에이터인 MG가 게임 캐릭터의 모델이 된 요리와 함께 도쿄의 밤거리 곳곳을 다니면서 촬영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풍경 묘사는 무척이나 섬세하다.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진짜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된다.. 설정은 이랬던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남자의 마음이 흐지부지해진다. 물론 사랑이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고작 그렇게 흔들리고 마는 것이 진실한 사랑일까. 안정된 사랑과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사랑,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물론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가운데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MG의 모습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또한 MG의 회사를 손에 넣으려는 거대 회사의 움직임이 너무 쉽게 봉쇄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분명 한 장면 한 장면의 묘사는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그들의 사랑은 위험하면서도 격정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뿌리가 얕아 거센 바람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마는 카드로 만든 집처럼 보인다. 게다가 요리를 인형으로 취급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리는 인간이요, 요리를 모델로 만든 게임 캐릭터가 MG가 창조한 인형이란 생각이 든다. 요리 역시 스스로를 MG의 인형이라 말하는데, 작품 전체를 통해 드러난 요리의 성격과는 다소 맞지 않아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작품 속에는 피그말리온 신화가 언급되어 있지만,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와는 비교 불가이다. MG와 요리의 사랑은 피그말리온의 사랑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얄팍하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남자 피그말리온. 그의 사랑은 깊고도 깊어 신까지도 감동시켜 그 조각상을 인간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MG와 요리의 사랑은 기껏 인간인 나조차도 감동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둘의 관계에 대해 실망감을 줄 뿐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밀려오는 허무와 공허.
도쿄 돌은 텅빈 정신의 소유자들의 사랑 이야기일 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마의 심장 애장판
하기오 모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하기오 모토의 토마의 심장을 읽으며 문득 몇 년전에 보았던 한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타케미야 케이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과 나무의 시란 작품이었다. 뭐랄까, 그림체가 비슷하단 그런 느낌이었고, 역시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여러 가지 관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어서 많이 닮은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단지 BL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들의 성장과 사랑을 담고 있는 성장 드라마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토마의 심장 역시도 단순한 BL물이라기 보다는 소년기의 어둠과 절망,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부정 외에도 새로운 희망과 사랑, 그리고 우정을 그린 드라마와 같은 작품이었다. 요즘의 BL물과는 조금 성향이 다른 부분이 있는 타케미야 케이코와 하기오 모토의 작품은 쥬네 계열로 분류된다. 쥬네는 BL이나 야오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전에 나온 남성 동성애물을 포괄하던 개념으로 연재된 잡지의 이름을 따서 쥬네라고 하는데, 음울하고 암울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심리 묘사가 섬세한 작품들이다.

독일의 한 김나지움. 그곳의 소년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로 한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서로에 대해 동경과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거나 상대를 한 사람의 존재로서 사랑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아마도 공학이 아닌 여고나 남고를 다닌 우리들이라면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어른의 사랑보다는 순수하고 깨끗한 열정과도 비슷한 감정이랄까.

주인공 유리는 만사 완벽하고, 친절하며 우수한 학생이지만, 자신의 신앙에 대한 흔들림, 그리고 토마 베르나의 죽음으로 인한 심적 고통, 그리고 토마와 꼭 닮은 전학생 에릭에 대한 극한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은 그의 내부로 향하고 있고, 그것은 그를 계속 상처입히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남유럽인과의 혼혈이란 것때문에 할머니에게 차별과 미움을 받고 있는 등, 그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어둡고 차갑게 닫혀 있다. 

에릭은 유리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토마 베르나와 꼭 닮은 인물로 어머니 마리에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마치 이성에 대한 것인양 집착하고 있다. 순수하고 밝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며, 때로는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심적인 성장을 보인 것이 에릭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인을 받아 들이고, 타인을 포용하며, 사랑이란 것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캐릭터라고 할까.

오스카는 학원장의 친아들이지만 그 사실을 마음속에 묻어 두고 있다. 그러나 학원장에 대한 감정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다. 또한 오스카는 유리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그의 마음이 치유되고 자신에게 열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는 기다릴뿐 적극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오스카는 무척 마음에 든 등장인물 중 하나였지만, 보기보다 우유뷰단하고 소극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 안타까웠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고 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오 모토의 토마의 심장은 동성애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성적 관계에 중점을 두는 야오이나 남성 동성애물을 포괄하는 개념인 BL과는 달리 섬세한 심리 묘사와 드라마같은 스토리 구성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져버리고 날개 잃은 천사, 그리고 학생들중 유일하게 자신만이 유다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누군가에 사랑받을 가치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버린 유리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애틋할 정도이다. 또한 어머니가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어머니를 구속하고 어머니를 의지했다는 걸 어머니의 사후 깨닫게 된 에릭 역시 사랑이란 집착이나 의존이 아니라 상대를 마음 깊이 포용하는 것이란 걸 조금씩 깨닫고 변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예민하며 위태로운 순간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풀어낸 토마의 심장. 유리가 토마가 죽음이란 수단을 취하면서까지 그에게 전해주려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순간, 오싹할 정도로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 반대쪽에 있는 빛은 더욱더 강렬하다.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새로운 빛속으로 걸어들어간 유리. 토마의 심장은 유리의 심장이 되었고, 토마의 날개는 유리의 날개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여행자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요시다 슈이치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로 신간이 나오면 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도시 여행자란 다소 낭만이 깃들여진 제목, 그리고 마치 항공 우편을 받은 듯 한 표지. 표지를 살펴보면서 신초사 요시다 슈이치란 소인을 보면서 두근거림을 느끼고, 발신인에 적혀 있는 주소를 보면서 왠지 정말 요시다 슈이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은 듯 했다.
겉표지를 벗겨 보자 책 목차에 실린 제목들이 때로는 영어로, 때로는 일본어 발음의 영어 표기로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나중에 책을 다 읽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목차에 나온 제목뿐만 아니라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들 역시 표기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 지도와는 다른 지도.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속에는 존재하고 있을 지도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거리와 도시, 혹은 낯익은 곳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추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냥 평범한 길이요 도시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추억이든 좋지 않은 기억이든 그곳을 떠올리게 할 무언가가 과거에 존재했다면 그곳은 더이상 평범한 곳은 아닐거라 생각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남긴 그곳. 그곳엔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누군가의, 혹은 나의 기억과 추억이 켜켜이 쌓여 있으리라.

도시 여행자라는 제목만을 봤을 땐 연작 단편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책 원제는 마지막 단편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였고, 여러 개의 도시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도쿄, 오사카, 그리고 서울 정도의 도시가 언급될 뿐이었다. 그래서 생각과는 조금 다름에 약간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역시 책을 읽으면서 그런 실망감은 비누 거품이 소리없이 사그라들듯 사라졌다.

총 10개의 단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도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르다. 그들중에는 사랑을 시작한 사람도 있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우연히 스쳐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기도 한다. 또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사람도 있고, 하루하루 힘겹고 지난한 삶속에서 신선한 경험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오랜 지기와의 즐거운 만남을 묘사한 단편도 있고, 자신의 현재 삶과 과거를 교차시켜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야기들은 공통점이라곤 눈씻고 찾아 봐도 없어 보이고, 이야기의 결말은 단단하게 맺어져 있지 않고 여백을 남긴다. 다음 이야기는 직접 상상해봐.. 라고 말하듯이. 그래서 그런지 추리 소설처럼 ?인과 범행동기가 명료하게 밝혀지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맹맹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독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가득 안겨준다는 점이 무척이나 즐겁다.

어렴풋하게 상대에 대한 마음을 깨달은 두 사람은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라든지, 여행지에서 스쳐지나간 사람에 대한 기억은 그냥 예쁜 추억으로만 남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물론 이 책의 제목은 도시 여행자이지만, 여행 이야기는 분명 아니다.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 이야기이지만, 그런 평범한 속에 숨어 있는 축복과도 같은 어떤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거리를 지나가고,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지만 보통은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많은 평범한 날들을 보내지만 그 속에서 가끔은 평범치 않은 상황과 마주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것들로 가득한 것이 바로 이 도시 여행자가 주는 느낌이랄까.

물론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 행복으로 똘똘 뭉쳐있어요~~라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방황, 불안, 분노, 망설임등 부정적인 감정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안온함이나 평온함도 존재한다. 그리고 때로는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 작품을 꼽으라면 나날의 봄, 영하 5도, 새벽 2시의 남자, 24 Pieces가 인상에 남는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캔슬된 거리의 안내는 작가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덧붙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을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투영시켜 놓은 느낌이랄까. 작가로서의 고뇌나 창작의 힘겨움등을 조심스레 고백해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시다 슈이치만의 감성과 절제된 표현으로 가득한 도시 여행자.
이 책은 한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마음은 다른 곳을 표류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기억과 추억에 매달려 살아 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