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편지의 기술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연애 편지라.. 왠지 그 이름만으로도 설렌다. 하지만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난 연애 편지를 써 본 기억이 있던가.... 중고교 시절엔 몇 통을 받아 본 기억은 있으나 연애 편지를 보내 본 기억은 거의 없다. 대학 시절엔 연애 편지보다는 좋은 책에 몇 구절 마음을 담아 상대에게 보낸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휴대 전화 문자나 이메일을 통해 용건을 전하는 시대이다 보니 손으로 쓴 편지는 거의 기억이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한창 청춘을 구가하던 그 시절엔 그래도 손으로 쓴 편지가 많았다. 고작 십 몇년의 세월이 편지 문화를 확 바꾸어 놓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쓰레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연애 편지란 것의 속성이란 어떠한가. 쓰는 사람도 부끄러워지고, 받아서 읽는 사람도 부끄러워지는게 연애 편지다. 막상 좋아하는 상대에게 고백하기 위해 편지를 쓰다 보면 피치 못하게 닭살 돋는 단어들이 들어가게 마련이니까. 뭐 따지고 보면 대놓고 사랑한다, 좋아한다... 라고 고백하기 보다는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조금 덜 부끄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에 겐지이야기를 읽으면서 와카란 것에 흠뻑 빠졌다. 상대에게 직접 말을 하지 않고 시의 형식을 빌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글인 와카. 그 속에 담긴 의미들은 직접적이지 않아 더욱더 아름다웠다. 요즘 사람들은 대놓고 고백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본인 입장에선 그걸 아주 부끄러워해서 피하고만 싶은 입장이지만, 그래도 편지는 조금은 덜 부끄럽단 생각이 든다. 상대의 반응을 직접 보지 않아도 되는 잇점도 있으니 말이다.  

연애편지의 기술. 이 책은 편지 형식의 책이다. 편지 형식으로 씌어진 책은 츠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두 사람이 주고 받는 형식으로 씌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모리미 도미히코의 연애편지의 기술은 모리타 이치로라는 대학원생이 친구, 선배, 여동생등에 보내는 답장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수의 음험한 조종으로 노토 반도에 해파리 연구를 하러 오게 된 모리타 이치로는 그곳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서신왕래 무사수행을 결심한다. 그건 사람들과의 편지 교류를 통해 연애편지의 기술을 획득하고, 더 나아가 연애편지 대필사업 벤처기업을 세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담은 것이었다.


모리타 이치로가 편지를 보내는 대상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사랑에 빠져 연애 상담을 해오는 친구, 자신을 괴롭히던 선배, 과외 제자인 초등학생, 여동생, 그리고 작가 모리미 도미히코에까지... 재미있는 것은 편지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의 인격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명의 사람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런 면이 있다. 상대와의 관게가 어떤가에 따라서 조금씩 태도를 달리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것은 상대를 기만하기 위한 행위라고 보기 보다는, 친분관계에 따른 예의로 받아 들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하지만 서신왕래 무사수행을 입으로 부르짖으면서도, 친구의 사랑이 차곡차곡 결실을 맺어가자 질투가 나 절교를 선언하고, 앞에 있으면 무서운 선배지만 근처에 없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태도로 까부는(?) 모리타의 모습이 어린애같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대는 정말로 '수행'을 하고 있는겐가... 라고 묻고 싶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우리나라와는 달리 편지 제일 밑에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이름을 함께 쓰는 형식에서 보이는 기발한 표현은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들었다. 본문에 나오는 표현들도 모리미 도미히코의 청산유수같은 어휘 구사 능력을 확실히 보여주지만, 역시 마지막의 두 줄이 실로 촌철살인의 표현이었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은 늘 기대를 하게 만들고, 그 기대를 만족시켜준다. 대학생들의 망상 폭주 청춘 구가 소설, 배꼽잡게 만든 너구리 요괴 이야기, 일본의 기온마츠리 전야제인 요이야마를 배경으로 한 작품, 그리고 전혀 다른 작가가 쓴 작품처럼 보이는 기담인 여우 이야기까지 그의 작품은 모두 각각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결합된 매직 리얼리즘의 기법을 이 책에선 볼 수 없었지만, 서간체라는 독특한 형식이 그 아쉬움을 달래준다. 대신 그의 고풍스러운 문체와 톡톡 튀는 어휘구사력은 변함없으니 너무나도 즐겁다.

비록, 서신왕래 무사수행을 성공적으로 끝내지는 못한 모리타 이치로지만, 연애 편지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는 깨달은 바가 있는 듯 하다. 그의 사랑이 이루어질지 이루어지지 않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에게 화이팅을 보내고 싶다. 사랑을 할 때는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잘 구별해야 한다. 비록 모리타가 아직까지는 나설 때를 잡지 못해 방황하는 마음을 보내지 못한 편지로 대신했지만, 다이몬지 산에서 빨간 풍선을 날리는 날에는 꼭 고백에 성공하기를 바라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가끔 유명인들이 "이 책 한 권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라든지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된 책"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을 듣게 된다. 사실 책이란 것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지 않던 오래전부터 책이란 것이 인간에게 지식을 전해주고, 역사를 기록해오는 수단으로, 또한 인간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으로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역시 책은 인간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책은 마음의 양식라 한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는 요즘 현실에서는 그 말이 정답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위험한 책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본서를 읽기 전에 위험한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잠시 상상해 봤다. 반유대주의, 독일민족주의를 설파했던 히틀러의 자서전 '마인 캄프(Mein Kampf, 나의 투쟁)'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기에 위험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수없이 위험한 책들은 존재하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책은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위험한 책이란 단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선동하고, 체제를 전복을 꾀하고, 국가의 이념에 반하는 그런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런던에 있는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인 '나'는 동료 교수 블루마의 사후에 배달된 조셉 콘래드의『새도 라인』을 보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영국 런던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를 거쳐 라 팔로마까지, 애서가로 유명했던 브라우마의 행적을 좇아 가는데, 그 여정에서 그는 여러 명의 애서가, 장서가, 서적 수집가 등을 만난다.

그는 브라우어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 브라우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사들이고, 결국 자신이 지낼 공간마저도 책에 내줬던 브라우어. 그는 그 나름대로 서적 목록을 정리하기도 하는 등 책에 대한 커다란 애착을 보이며, 때로는 책으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침대에 뉘여 놓는듯, 보통 사람이 보기에 해괴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던 그가 장서 목록이 불타 버린 후 책을 모두 싣고 라 팔로마의 바닷가에서 책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나'가 그곳에 도착했을때는 브라우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책으로 만든 집은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는 아마도 블루마가 원하는 조셉 콘래드의 책을 찾기 위해 집을 부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나도 책을 좋아하고 모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중에서 두 번이상 읽은 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이 대부분이고, 책장은 포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또 책을 사들이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에게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선은 긋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 서가가 도서관같은 시스템을 갖춘다거나 - 내가 소장한 책으로는 서가라는 표현도 부끄럽다 -  훌륭한 서재를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일테지만, 그것이 한계치를 넘는다면 그때는 사람이 책을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소장하는 형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본말전도라고 할까, 주객전도라고 할까. 이 책에 나오는 브라우어는 책에 주도권을 내어준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책으로 만든 집을 파괴함으로써 그 속박과 주박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책의 표현대로 새도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이 책은 책을 소장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책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애정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람의 정신적 자유를 속박하는 것들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가 묻은 채 배송된 책 한 권. 그 책이 가진 미스터리를 좇아 가는 가벼운 추리 소설 느낌의 <위험한 책>은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책은 책장에 꽂혀있는 상태로 행복감을 느끼게 될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책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한다면, 내 책들은 무척이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문에 나온대로 책은 구매하는 것 보다 처분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래서 한 번 읽은 채로 방치되는 책들이 수없이 쌓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무척이나 고민중이다. 내 책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가야할 곳을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 책꽂이에 고이 꽂아 놓는 것이 옳은 일인지....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것은 분영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과 애착이 자신의 정신적 자유와 의지를 옭아매는 덫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개숲 호텔 2
시노하라 치에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안개숲 호텔 2권 역시 1권과 마찬가지로 3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블랙 무어는 쇼와 20년대에 일어 났던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도피, 그리고 그 여인의 죽음. 그리고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키도는 오랫동안 자신의 마음에 감춰 두었던 진실을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가족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던 한 청년과 부잣집 따님의 만남은 정말 오래된 소재이기는 하지만, 그 결말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달까. 재생과 치유, 용서와 화해의 코드가 담긴 단편이 바로 블랙 무어였다.

펜트하우스의 투숙객은 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한 청년과 유명 작가를 찾아 헤매는 한 출판사 여성의 이야기이다. 과연 그 소설가는 이곳 안개숲 호텔에 숙박하고 있는 것일까. 가족의 비밀과 미스터리, 그리고 거기에 더해져 안개숲 호텔의 비밀도 살짝 드러난다.

설원의 러브레터는 제목이 무척이나 로맨틱하달까. 내용은 그렇게 보이기도 그렇게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고향을 등지고 떠나 연예계에 진출해서 성공을 거둔 한 여인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 사람들은 고향을 버려도 어쩌면 고향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타향살이의 고단함과 외로움에 지칠때면 사람들은 늘 고향을 생각한다. 향수란 코드가 이 작품의 코드랄까.

누구에게나 보이지는 않는 그 곳, 누구나 찾아 가는 것이 허락되지 못한 그곳, 안개숲 호텔.
그곳은 호텔이 받아들이는 자들만 출입이 가능한 곳.
그곳에서는 오늘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남겨두고 떠난다.
환상과 현실이 혼합된 그곳에서는 오늘 또 어떤 투숙객이 찾아오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손 없는 고양이 치비타의 기적 - 치비타와 유쾌한 친구들
네코키치 글.사진, 강현정 옮김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에 모 티비 프로그램에서 선천적 장애로 앞다리 두 개가 아예 없이 태어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아예 걸을 수가 없었던 녀석은 턱을 땅에 대고 몸을 밀면서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석은 바퀴가 달린 의족을 갖게 되고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었다. 또 한녀석은 뒷다리가 마비된 치와와. 그녀석 역시 바퀴달린 의족으로 마음껏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번은 한쪽 앞뒤 다리를 모두 교통사고로 잃은 그레이 하운드가 두다리만으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난 고양이가 의족을 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비록 다리 하나가 없더라도 세발로 다니는 녀석을 봤을지라도. 양손 없는 고양이 치비타는 양쪽 앞발이 없다. 그대신 지금은 의족을 하고 걸어 다니기도 하고, 높은 곳으로 뛰어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치비타는 왜 앞발이 없으며, 의족을 하게 된 것일까.

책의 저자인 네코키치는 어느 겨울날 밖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미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기에 한 녀석 정도면 더 키울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문을 열었더니, 세상에나 네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그곳에 있었다. 그 중 한녀석이 치비타이다. 녀석들은 저자의 집에서 무럭무럭 자랐지만 두녀석은 집을 나가고, 기존의 고양이 모모와 치비타 그리고 그의 형제 마군만이 남게 되었다. 평소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치비타는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후 1년, 다시 치비타가 실종되었다. 집 근처를 뒤지며 치비타를 찾던 중 마군이 우는 것을 보게 된 저자가 마군에게로 가보니 치비타가 그곳에 있었다. 덫에 걸린 듯 양앞발이 심하게 다친 치비타. 수의사는 '안락사' 아니면 '어깨까지의 절단'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하지만 반려인인 네코키치는 치비타의 다리에서 기능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살린 후 절단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퇴원후 필요한 치비타의 의족을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고양이 의족을 제작하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그녀의 지인이 치비타의 의족을 제작, 치비타의 의족 생활이 시작되었다.



치비타는 일단 수술후 의족을 착용하기 전까지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칼라대신 쿠션으로 만든 칼라를 씌워 최대한 치비타가 편안하도록 배려해준 점이 눈에 띈다. 또한 몸을 잘 가눌수 없는 치비타를 위해 푹신한 이불을 깔아주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사실 고양이는 섬세하고 민감한 동물이라 몸에 옷을 걸치는 것도 싫어할 정도이다. 그런데 의족이라니..... 그러나 저자와 저자의 지인은 최대한 치비타의 몸에 맞게 의족을 제작했고, 의족을 지탱시켜줄 옷을 만들었다. 그것은 강아지 옷을 사서 그옷에 팔을 붙이고, 강아지 양말을 신겨 의족이 빠지지 않도록 했다. 물론 처음엔 여러가지 실패를 거쳤지만, 점점 기술이 늘어 치비타에게 잘 맞는 의족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치비타의 의족은 여섯번의 개량을 거쳤다. 어깨에 걸치는 형태도 있고, 이렇게 발만 끼워 옷에 고정하는 의족도 있다. 치비타가 최대한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쓴 점이 눈에 많이 띈다.



의족을 벗은 치비타의 모습을 보면 정확히 어디를 절단해야만 했는지가 잘 보인다. 사람으로 치면 손목 바로 위를 절단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경우 손이 없으면 살아가는 데 무척 불편하긴 하겠지만 걷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사지를 모두 이용해 걸어야 하는 동물의 경우 앞발이 없는 것은 곧 걷지 못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양이들은 늘 발톱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습성이 있다. 캣타워에 기대 발톱을 가는 시늉을 하는 왼쪽 모습과 스크래쳐에 발을 올려 놓은 치비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안스럽다. 다른 고양이들이 스크래쳐를 열심히 북북 긁는 모습을 볼 때의 치비타의 마음은 어떨까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슴아프다.



바깥 바람을 즐기고 있는 치비타의 모습. 치비타는 바닥에 누워 더위를 쫓기도 하고, 산책을 즐기기도 한다. 누가 양앞발이 없는 고양이가 걸어 다닐 수 있을거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아장아장 걷는 치비타의 모습이 너무도 대견하다. 반려인 역시 치비타가 첫걸음을 뗐을 때, 마치 자신의 아기가 첫걸음마를 할 때 엄마들이 느끼는 기쁨을 느끼지 않았을까.  



간식을 조르는 치비타의 모습. 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녀석이라 반려인이 간식 주는 걸 주저하자 못마땅해 하는 듯한 표정을 보인다. 사실 이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웃음이 푸흡하고 터져버릴 정도였다. 우리 고양이도 치비타와 똑같은 무늬의 고양이인데다가 수시로 저런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은 치비타가 식사를 하는 장면인데, 보통 고양이는 앉아서 밥을 먹지만, 치비타의 경우 앉을 수가 없어 처음에는 저렇게 밥을 먹였다고 한다.



치비타는 앞다리에 큰 힘을 줄수가 없기 때문에 뒷다리 근육이 발달해서 저렇게 펭귄같은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왠지 차렷!하고 누가 구령이라도 붙인 듯하다. 사람이 보기엔 불편해 보여도 치비타의 경우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왼쪽 사진은 치비타와 치비타의 형제인 마군의 사진. 마군은 치비타를 무척 아끼고 잘 돌봐주지만, 처음으로 치비타가 의족을 했을 때는 낯설어 했다고 한다. 반려인의 사랑도 치비타를 재활하는 데 큰 역할을 했겠지만 역시 형제인 마군의 역할도 그에 결코 뒤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른쪽은 저자가 키우는 고양이 5마리중 네마리의 사진. (모모는 창고에...)

치비타는 지금 산책도 즐기고, 높은 곳에 뛰어 오를 수도 있을 정도로 의족에 잘 적응을 해가고 있다. 반려인의 헌신적 간호와 사랑, 치비타가 꼭 회복될 것이란 믿음, 그리고 작고 여린 치비타의 몸 안에 깃든 강인한 생명력이 치비타가 평범한 고양이처럼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치비타의 기적은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니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반려인의 헌신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우리 주위에는 사고로 인해 다친 동물을 유기하는 사례가 많이 나온다. 특히 펫샵에서 구입한 가격보다 치료비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동물도 많다. 혹은 금세 포기하고 안락사를 원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물론 치료비 뿐만 아니라 동물을 간호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노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녀석을 쉽게 포기해 버리고, 심지어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반려동물을 많이 키우는 요즘,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생명의 귀중함을 다시금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순서대로 : 36P, 158P, 111 + 71P, 173 + 67P, 88 + 148P, 127 + 49P, 125P, 102 + 175P)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우민네 2010-04-2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즈야 포토리뷰 당선 축하해..ㅎㅎㅎ
넘넘 멋진 서평이네..^^

스즈야 2010-04-26 21:22   좋아요 0 | URL
언니. 고마워요.... ^^ 언니랑 나란히 당선되서 넘 좋아요..
담에도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요..
 
모기나라에 간 코끼리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진일상 옮김 / 솔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토 파실린나의 책은 요번이 네번째이다. 그동안 읽은 책은 <토끼와 함께한 그해>, <목 매달린 여우의 숲>, 그리고 <기발한 자살 여행>이었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와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은 아름다운 핀란드의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살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기발한 자살 여행은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역시 작가만의 풍자와 유머가 결합된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었다.

모기나라에 간 코끼리는 역시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내가 읽었던 그의 전작과는 달리 코끼리 에밀리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묘사한 책으로, 핀란드의 한 서커스단에서 태어난 코끼리 에밀리아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유럽 연합의 동물을 이용한 공연 금지라는 법때문에 엄마 코끼리와 헤어지게 된 에밀리아. 에밀리아는 사육사인 루치아와 함께 동물 공연이 금지되지 않은 러시아로 떠난다.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곳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지내게 된 에밀리아와 루치아. 그러나 그녀들의 여정은 쉽지 많은 않다. 왜나하면, 코끼리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게 되며, 또한 하루에 먹는 양과 배설물의 양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에밀리아를 돌보는 데는 체력도 필요하지만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 들게 되는 것이다.

루치아는 에밀리아를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아프리카로 돌려 보내기엔 무리수가 많이 따랐다. 계속 자라나는 에밀리아가 너무 부담이 된 나머지, 에밀리아를 도살할 결심도 잠깐 하는 루치아이지만, 결국 그 결심을 되돌리게 되고, 다시 핀란드로 돌아 간다. 에밀리아와 루치아는 계속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한걸음씩 에밀리아의 진짜 고향으로 다가가게 된다.

표지 그림을 보면 에밀리아의 여정을 볼 수 있다. 서커스 코끼리로 살던 때, 농장에서 지내던 때,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여행했을 때, 차에 실려 운반되었을 때, 그리고 배를 타고 꿈에도 그리던 아프리카로.....

어찌보면 코끼리 에밀리아와 사람인 루치아의 로드 무비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그녀들은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다시 핀란드에서 아프리카로... 수없이 많은 마을을 지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다행인 것은 무척이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 고생, 몸 고생을 덜하게 된 것이랄까. 금전적인 도움에서 에밀리아가 머무를 장소 제공까지, 핀란드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마음이 넓고 착한 사람들만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책 도입부에 나오는 유럽 연합의 동물을 이용한 공연 금지 조항으로 인해 수많은 코끼리가 도살되거나 다른 나라로 팔려 가는 모습에선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원래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건 인간인데, 인간의 필요성이나 인간의 선택으로 인해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동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또한 대책없는 동물 보호가들의 서투른 태도는 쓴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물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념이 있겠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자기들 식으로 판단하는 건 웃기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리고 루치아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로 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루치아의 고생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때론 위험한 일도 겪고, 때로는 아픈 현실도 마주해야 했지만, 그들은 결코 멈추지도 좌절하지도 않았다.

에밀리아와 사람들 간의 따뜻한 우정, 그리고 에밀리아와 루치아의 모험은 시종일관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르토 파실린나만의 유머 감각은 이 책의 재미를 더해 주었다. 유럽에서 태어나 엄마와 헤어지고 퇴출되어 죽음을 맞아야만 했던 상황에 직면했던 에밀리아의 행복 찾기 여행.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시 행복은 스스로 걸어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 딱 맞는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발걸음으로 찾아 냈을 때 가장 가치있는 것이며,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