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어 - 뉴 루비코믹스 770
야마시타 토모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는 지금껏 읽었던 야마시타 토모코의 작품 중 젤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작품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 단편집에는 총 4편이 실려 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달라 더욱더 즐겁게 읽었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는 우연히 고백했다가 그 사랑이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거절당할 걸 알면서도, 아니 오히려 거절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한 남자, 미나리. 그는 이제껏 제대로 된 연애도 해보지 못했고, 연애를 한다손 쳐도 상처를 받아 진지한 관계가 되는 것을 꺼려왔다. 그러나 노말인 신카와가 의외로 미나리의 고백을 순순히 받아 들인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건 미나리. 미나리는 신카와의 적극적인 대시에 움츠러 들지만, 신카와는 꿋꿋하다.

보통 게이였던 남자쪽이 적극성을 가지고 노말인 남자를 그쪽 세계로 끌어들이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엔 노말이라 생각한 남자쪽이 더 적극적이다. 색다른 전개 방식에 오호라, 이거 흥미로운데... 라는 생각이 이 단편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녔다.

이 둘을 보면서, 고백에서 시작해 연애를 시작하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면서 덩달아 내 마음도 이 둘처럼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뭐랄까, 난 보통 BL물을 보면서도 주인공에게 반한다거나, 그들의 사랑을 동경해 본 적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둘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연애가 하고 싶어졌다. 그만큼 순수하고 알콩달콩 귀엽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래서 서로 좋아하게 되면 같이 있고 싶고, 만지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진다. 그러한 과정을 코믹한 요소를 섞어 달콤하게 잘 표현했다. 특히나, 미나리의 감정적 변화가 눈에 많이 눈에 띈다. 불안해하지만 그래서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사랑하고 싶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들.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공개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언젠가는 헤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아픈 기억이 언젠가 생겨날지도 모르겠지만, 사랑이란 건 원래 그런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헤어짐이 아파 사랑을 못한다면 그건 바보다. 사랑은 함께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 어차피.

두번째 작품인 <RE : hello>는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고생인 조카의 눈으로 본 삼촌의 이야기인데, 애절한 느낌이 강한 단편이었다.

식기도 두 벌씩, 핸드폰도 두 개, 삼촌이 피는 담배와 그 누군가가 피웠을 담배.
삼촌의 집엔 모든 것이 두 개씩이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삼촌은 어차피 택배일거야라고 하면서도 급하게 뛰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의 낡은 핸드폰속에서 발견한 건, 차마 보내지 못한 문자들.. 그건 벌써 4년분이나 쌓여 있었다.

굉장히 애절한 단편이었는데, 미송신된 문자를 보고 나도 조카와 함께 울컥했다.. 조카는 엉엉 울었지만, 난 가슴이 아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이제는 더이상 오지 않을 사람을 여전히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한 남자. 그의 시간을 공유할 누군가가 얼른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February messanger>는 두 번째 단편을 읽고, 한껏 감정이 고조되어 있던 나를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게 만들었다. 서로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사리 고백하지 못하는 친구 사이의 이야기인데, 어찌나 귀엽던지... 읽는 내내 큭큭댔다.

특히나, 산타 모자를 쓰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봉변당하는 순간, 나타는 친구..
헬멧을 내밀고 얼른 타라고 했는데....
밑의 그림을 보니 자전거?!
어찌나 웃었는지 배가 아플정도였다. 정말이지 귀엽고 발랄한 단편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Spank Swank!>는 게이이지만 취향은 노말인 남자와 헤테로 섹슈얼이지만 취향은 M인 남자의 이야기이다. 서로 자신의 성벽이나 취향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두 사람이야기인데, 코믹하면서도 세상의 편견때문에 상처받았던 남자의 이야기이다. 은근히 웃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네 편 모두, 소재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두근거림을 주는 작품도 있었고, 애절한 작품도 있다. 귀엽고 발랄하면서 웃음 폭탄을 안겨주기도 했고, 은근한 웃음을 준 작품도 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없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야마시타 토모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좋아할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우와 토종 씨의 행방불명 - 우리가 알아야 할 생물 종 다양성 이야기
박경화 지음, 박순구 그림 / 양철북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시골에서 자랐다거나, 집이 농사를 짓는 건 아니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시골에 사셨기때문에 어린 시절 시골에 자주 놀러 갔다. 봄이면 제비가 찾아와 처마에 둥지를 짓고, 여름이면 개굴개굴하는 개구리 소리에 귀청이 따가울 정도였다. 논둑을 지나다 보면 첨벙하고 개구리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고, 논에는 개구리밥이 동동 떠다녔다. 아이들과 어울려 내 손바닥만한 참개구리를 잡기도 하고, 올챙이가 꼬물거리면 그걸 한참동안이나 구경했다. 가끔은 커다란 두꺼비와 마주칠 때도 있었고, 무당 개구리가 보이면 독이 오른다고 멀찍이 피하기도 했다. 마을을 지나는 개울물에는 우렁이가 살았고, 가끔은 분홍색 우렁이 알도 발견했다.

간식은 과자가 아니었다.여름이 되면 통통하게 살오른 옥수수를 쪄먹고, 감자를 쪄먹고, 수박 한덩이를 사기 위해 옆마을로 할머니와 함께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하우스보다는 노지 수박이 월등하게 많았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어가는 벼사이로 메뚜기가 떼로 뛰어 다녀 음료수 병을 손에 쥐고 논메뚜기를 잡았던 기억도 난다. 그 메뚜기는 반찬이 되었지만.....

그러나 요즘 시골에 가면 조용하다. 봄이면 찾아 왔던 제비도 어느샌가 오지를 않게 되었고, 여름에 귀청이 따갑게 울어 대던 개구리는 흔적조차 없다. 두꺼비도 우렁이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처음 보는 새들이 늘어 났다. 아마도 기후가 변하면서 남쪽 지방 새들이 점차 북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소를 먹이기 위해 꼴을 베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가을이 되면 갈비라고 하여 마른 소나무잎을 긁어 모으던 것도 이젠 다 추억속의 일이 되었다.

사람이 손으로 하던 일은 기계가 대체하고 있고, 논둑에 무성하게 자라던 다양한 풀들은 일찌감치 제초기에 베어지고, 그후엔 제초제가 뿌려져 노랗게 말라 버린 모습밖에 안보인다. 집집마다 쌓아뒀던 거름더미는 이제 더이상 보이지 않고, 수북하게 쌓인 비료 포대가 그 풍경을 대신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분명 편리해진 것은 많겠지만 잃어버린 게 더 많다. 여우와 토종씨의 행방불명은 인간의 과학기술의 발달과 문명의 이기로 인해 우리가 잃어버렸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으며, 앞으로 잃어버릴 것들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어려운 단어는 없다. 비록 나오더라도 이야기가 끝나면 노란색 박스에 따로 담아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니 걱정할 것이 없다. 

얼마전부터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반도의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 문제는 심각할 정도라 실제로도 우리가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4계절이 있던 우리 나라는 언제부터인가 봄과 가을이 극도로 짧아졌다. 여름에는 기온이 치솟고 겨울에는 3한 4온이 없어져 버렸다. 산이며 들에 살던 곤충이며 동물들의 자취는 점점 사라지고, 바다는 막혀 썩어 들어가고 사구는 파괴되었고, 물에 살던 물고기며 수생식물들이 오폐수에 죽어 간다.
거름을 주던 논밭에는 어느 샌가 독한 농약이며 비료가 아니면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바로 이 책은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토종 동식물, 토착 동식물이 점점 사라지고 외래종이 판치는 지금, 우리의 토종 동식물과 토착 동식물을 되살리고 멸종의 위기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이용하고 버리는 것들이 우리의 땅을 죽이고 있다. 좀더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농약과 비료가 땅의 숨구멍을 막는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펄프를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밀림은 베어지고 또 베어져 오랑우탄은 멸종위기에 처했고, 지구의 허파 아마존은 온갖 개발로 해마다 그 면적이 줄어 간다. 중국의 작은 도시에는 전자 제품 폐기물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고, 환경이 파괴되어 간다. 이대로 간다면 온 지구는 쓰레기로 뒤덮이고 깨끗한 땅, 깨끗한 물은 찾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편리하게 했지만, 반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켜갔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들이 이렇게 지구를 죽여가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친다. 지구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자연은 인간이 이용하도록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들, 식물들, 곤충 들 같은 수많은 생명체들은 인간에 짓밟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을 비롯해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멸종되어 사라진 생명체들의 영향은 한 두 세대내에서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모두 인간의 착각일 뿐인지도 모른다.

동물이 지나다니는 길에는 흔적조차 남지 않지만, 인간이 지나가는 곳에는 꼭 그 흔적이 남는다. 동물이 사는 곳에서는 늘 적절하게 그 균형이 유지되지만 일단 인간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균형은 삽시간에 깨지고 황폐화된다. 동물의 사냥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키지만 인간의 사냥은 다양한 생물종들을 멸종시킨다. 지구는 어느 한 종의 우세로 균형이 유지되는 곳이 아니다. 모든 생물종들이 조화롭게 살아갈 때야말로 지구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다.

아직 우리 인간들에게 기회는 남아 있다. 지금도 자연 보호를 위한 노력과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힘이 모아져야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국가적으로 할 수있는 일의 규모는 다르지만 그 목적은 같아야 한다. 우리의 과오를 깨닫지 못하고 이대로 간다면 인류의 미래에 남은 건 파멸뿐이다. 동식물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인간도 살 수 없다. 자연계에서 도태되어 멸종되는 것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진화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인해 다양한 생물종들이 멸종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지구의 미래는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을 잊어 버린다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 자손들에게 어떤 지구를 보여 줘야 할까. 거대하게 성장한 도시의 하늘을 뒤덮은 시커먼 매연 구름, 시커멓게 썩은 강과 바다, 더이상 새들이 지저귀지 않는 숲을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맑고 푸른 하늘과 공기, 물고기가 여유롭게 노닐고 수초가 하늘거리는 강과 바다, 새들이 지저귀고 야생 동물들이 뛰노는 푸른 숲을 보여줄 것인가. 그 대답은 명확하다. 그리고 그 노력은 지구의 환경과 공존 공생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인 올빼미 사내. 사실 올요미모노 상이란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들어 본 상의 이름이다. 일본에는 정말이지 다양한 상이 존재하는군.. 이란 생각도 잠시. 나는 금세 책속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총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된 도시전설 세피아.
도시전설은 우리말로 하자면 도시괴담정도가 되려나? 문득 내가 어린아이였던 시절 유행했던 괴담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지금 기억하는 것 중에 제일 오래된 기억은 역시 홍콩할매귀신 이야기랄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그때 싸구려 잡지에도 그런 이야기가 실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괴담류를 취급했던 잡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에는 꽤나 무서워서 혼자 다니는 걸 되도록 피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피아란 색감.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색감이 바로 세피아다. 왠지 오래되어 바랜듯한 느낌이랄까. 흑백사진의 선명함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을 줘서 무척 좋아하는 색감인데, 세피아란 낡은 것이란 이미지를 준다. 도시전설도 그런 것이겠지. 한때 유행하고 기억속에 남은 어떤 것. 그래서 이 두 단어가 잘 어울려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단편인 올빼미 사내는 스스로 도시전설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이다. 도시전설을 만들어내고, 유포한 후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올빼미 사내가 되어 버린 남자. 그는 사람들이 그 괴담을 진실로 믿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러 다닌다. 어찌보면 흘려 들어 버릴만한 것이 도시괴담이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면 공포가 된다. 1인칭 시점으로 편지글로 구성된 올빼미 사내. 그의 고백은 섬뜩하며 광기에 사로잡혀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괴담이나 전설은 그자체로만 존재해야지 현실이 되면 진짜 공포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반전이 압권. 그것을 본 후 난 한번더 이 단편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하나로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제의 공원은 섬뜩하면서도 슬펐던 느낌이 강했다. 매일매일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어느 날. 운명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고, 그것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것을 피하고자 하면 더욱더 큰 아픔과 슬픔이 기다릴 뿐. 이 단편 역시 마지막의 반전에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깊은 슬픔이 느껴졌달까. 공포와 슬픔, 잘 어울리기 힘든 소재이지만 멋지게 어우러져있던 단편.

아이스맨은 마츠리란 공간과 갓파라는 다소 환상적인 소재가 등장하지만, 그 이면은 섬뜩할 정도였다. 원래 갓파는 우리나라 도깨비처럼 사람들에게 장난치길 좋아하지만, 해는 끼치지 않는다. 그런 갓파의 이미지, 마츠리의 시끌벅적한 풍경 속에서 동떨어진 섬뜩함이 이 단편의 주요 내용이랄까. 그 갓파의 정체와 주인공이 오랜 시간이 지난후 다시 만난 갓파의 정체. 그리고 주인공의 선택이 아주 섬뜩했다.

사자연은 죽은 자에 대한 집착이랄까. 그러한 것이 전반적인 내용이다. 원래 죽은 자에 대해서는 환상을 갖기 쉽다. 죽은 자는 산자들에 의해 미화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 화가가 한 여성과 인터뷰를 하는 형식이지만, 그녀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들의 과거에 얽힌 이야기. 그것은 커다란 비극을 낳았다. 이 단편 역시 반전에 주목.

마지막 수록작품인 월석은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랄까. 사람들은 누구나 상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세련되었지만 섬뜩하며, 애틋한 슬픔과 아픔이 느껴지지만 엄청난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도시전설 세피아. 어느 것 하나 빼놓고 싶지 않을 만큼 모두 섬뜩함과 강렬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던 책으로 기억될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돈나 레온 지음, 황근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돈나 레온의 데뷔작이자 귀도 브루네티 형사 시리즈 제 1편인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제목만 봐도 이게 음악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란 느낌이 팍팍 온다.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오페라로 '춘희'라고도 불리운다. 실제로 작품의 피해자는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중 독극물 중독에 의한 사체로 발견된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실제 작가가 베네치아에서 20여년이 넘게 살고 있기에 그 정경 묘사가 무척이나 섬세하다. 또한 끔찍한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피해자를 두고 그 피해자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가는 작품이기에 미스터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인성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형사와 용의자들과의 대화, 피해자의 숨겨진 과거와 비밀 추적, 주변인들과의 탐방 수사등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작품 전체를 바라볼 때 고전 미스터리 소설이나 추리 소설의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 이는 사건의 결말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오히려 피해자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동정심이 유발된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마에스트로 벨라우어.
그는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되었다. 그는 왜 죽게 되었으며, 하필이면 오페라 공연중에 죽게 된 것일까.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받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게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살아가며, 또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 충동으로 바뀌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추리 소설의 법칙에 따른 용의자를 구분해 보면 제 1순위는 역시 마에스트로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순위는 마에스트로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소프라노 가수, 그리고 3순위는 그의 과거와 연결된 오페라 가수이다. 이들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비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지켜진다. 하지만 타살이나 의심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 사람들의 경우,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치부가 밝혀지기도 한다. 마에스트로 벨라우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만약 천수를 누리고 죽었더라면 그의 떳떳치 못한 과거가 세상에 알려졌을까. 그는 다만 뛰어난 지휘자로서만 기억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죽음 뒤에는 감춰진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 브루네티는 벨라우어의 현재에서 과거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가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감추고 있었던 추악한 면면을 보게 된다. 동성애에 대한 극도의 혐오, 자신과 공연하는 가수들에게 받아온 성상납, 롤리타 컴플렉스 등 그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어쩌면 이건 이런 예술 방면의 세계가 가진 추악함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 그리고 음악의 향기가 감추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마에스트로 벨라루어의 죽음을 둘러싼 그 비밀은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으로 향해 가면서 조금씩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책의 원제가 가진 의미를 알게 되었다.
결말이 생각과는 달라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결말이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주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 추리 소설의 맛을 잘 살린 부분이 많았기에 결말보다는 그 전개 과정이 더 흥미로웠던 소설이었기에...
그리고 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친 브루네티의 성격 역시 모나지 않고 튀지 않아 좋았다고 할까.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탐정의 그늘에 가리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성격으로 묘사된 것이 많기에 이런 차분하고 가정적인 형사의 캐릭터도 썩 마음에 들었다.

기존 추리 소설이 가지는 반전이나 특성화된 캐릭터는 없지만, 깔끔한 구성과 내용 전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또다른 작품인 사라진 수녀에 거는 나의 기대도 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은교는 표지부터 매력적이다. 마치 한폭의 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 띠지를 벗겨 쭈욱 펼쳐 놓고 한참을 바라 보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어둠 속에서 관능적인 보랏빛의 꽃을 피운 나무, 조용히 풀을 뜬는 당나귀, 두터운 커튼을 열어 젖히는 한 처녀의 뒷모습과 그녀에게 비쳐드는 햇살과 눈부신 봄의 풍경과 커튼 뒷쪽에서 그녀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한 남자.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노인의 모습까지...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왠지 이 그림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노시인의 마음이 그려낸 풍경이 아닐까 하는....

책의 구성은 변호사 Q, 시인의 노트, 서지우의 일기라는 큰 제목 아래 부제가 붙어 각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변호사 Q의 이야기의 경우 이적요 시인의 사후 1주기에 그가 남긴 노트를 열어 보면서 시작된다. 즉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시인의 노트는 서지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그와 서지우 그리고 은교란 여학생 사이에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기술되며, 시인의 노트인만큼 이적요 시인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서지우의 일기도 마찬가지로 서지우의 입장에서 씌어진 1인칭 시점이며, 이적요 시인과 그가 겪었던 일에 대한 이적요 시인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은교가 1인칭으로 나오는 부분은 없지만, 그녀는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본문 속에 나오는 인물 중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이적요 시인, 서지우, 은교 그리고 시인의 아들인 얼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니셜로 표기되어 있어, 그들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으며, 얼은 거의 등장하지 많으므로 이 이야기는 이적요 시인, 서지우, 그리고 은교만의 이야기란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미 그들 중 두 사람은 고인(故人)되어 버렸다. 남은 것은 그들이 남긴 노트와 일기, 그리고 그 일의 중심에 있던 은교란 소녀뿐이었다.

17세의 은교, 69세의 노시인 이적요, 37세의 서지우.
이적요와 서지우는 사제 관계로 이적요는 성공한 시인이고, 서지우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평소 깐깐하며 속내를 쉬이 비치지 않는 이적요를 수발하고 공양했던 서지우와 이적요의 사이에 묘한 균열이 온 것은 은교란 소녀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노인은 소녀를 사랑했다. 우린 흔히들 사랑에는 나이도 없고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이럴 경우 대부분 노인네가 노망이 났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띠가 한바뀌만 돌아도 도둑놈 심보라고 하는데, 50여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소녀를 사랑한다니....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있다. 바로 그런게 사랑이 아니던가.

이적요 시인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하나가 있다. 우연한 관계속에서 태어난 아들 얼. 그뿐이었다. 노시인이 평생 사랑한 것은 자기자신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신의 죽음 뒤 자신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들게끔 계획되어 있었다. 어차피 당뇨와 합병증으로 무너져가던 육체였으니 미련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은교란 소녀가 바꿔 버렸다.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갈망의 맛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또한 질투와 가슴 아픔이란 것도..

노시인의 눈빛은 언제나 은교를 향했다. 그녀와 말을 나누는 것, 그녀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은 일상의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단지 추태와 노망이라 생각한 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지우였다. 이적요의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 알려진 서지우. 그 역시 은교를 못내 가지고 싶어 했다. 왜? 도대체 왜?

서지우가 은교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난 궁금했다. 정말 사랑스러워서일까, 아니면 늘 그림자처럼 스승의 뒤를 좇아 왔기에 그랬던 걸까. 서지우는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의명분을 가슴에 새기지만, 결국 그는 스승을 닮고 싶었던 것 뿐이고, 스승을 이기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는 스승의 눈빛은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하며. 시들어 버린 육체는 자신의 것에 비할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스승을 웃음거리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서지우. 내가 보기에 제일 추악한 인간은 바로 그다. 그가 보기엔 이적요 시인이 은교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겠지만, 은교의 입장에서는? 은교의 입장에서는 서지우 역시 아버지뻘이나 되는 남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스승의 뒤를 좇기도 바쁜,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서지우의 일기를 읽으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더러운 욕망의 눈빛으로 은교를 바라보던 건 누구인가. 바로 그대가 아닌가. 스승을 지키겠다는 것은 거창한 대의명분일 뿐, 너는 스승을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를 은교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라 생각한 거만하고 오만한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 특히 술집의 F를 시켜 이적요 시인에게 행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노시인에게 가혹함을 던져 주었다. 게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에게 반기를 들었다. 스승을 좋아하면서도 사랑하면서도 스승의 관심이 은교에게 기울어지는 것을 못견뎌한 것일까. 그래서 은교를 유린하려 했던 것인가.

문득 서지우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한담을 나누다가 이성계는 무학대사가 돼지로 보인다고 하고,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부처로 보인다는 일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이 달리 보이는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 일화는 서지우가 어떤 감정을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마음이 추악함으로 덮였기에 그가 보는 것은 추한 것들 뿐이었다고....

사실 시인의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만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이기때문에 정작 당사자인 은교의 마음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만으로 자신의 사랑을 주장했고, 상대를 바라 보았으며, 은교를 대했다. 결국 은교의 마음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였다. 물론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긴 하지만 확정적인 것은 역시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은교가 통곡하며 뱉어낸 이야기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오누이가 고개를 넘어 가다 갑작스런 비에 옷이 젖어 누이의 속살이 드러나 오빠가 누이에게 욕정을 느끼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달래나 보지"라고 울면서 따라서 자살을 했던 그 누이의 모습에 은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사람은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일까.
아마도 죽을때까지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늙는다는 것은 육체의 퇴행 현상을 이른다. 하지만 마음은 늙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껏 노인들의 사랑이란 감정은 무시하는 사회속에서 살아 왔다. 그 반증이 바로 서지우란 인물이다. 자신도 늙어 가고 있고, 또 언젠가는 시인의 나이가 되리라. 또한 시인도 은교였을 나이가 있고, 서지우였을 나이를 지나온 존재다. 이는 시인의 노트 호텔 캘리포니아 편에서 잘 드러난다.

평생 사랑이란 걸 모르고 살았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한 노인이 처음으로 사랑을 했다. 그것은 정녕 기뻐해야할 일이 아닐까. 그 사람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고, 가슴의 심장이 맥박치는 인간이었다는 반증이기에... 하지만 질투와 시기로 눈먼 남자에게 그것은 욕망의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소설은 시인이 주인공인 소설답게 시와 소설의 일부, 애틋한 노래 가사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소설의 묘미를 더해 준다. 한편 극적인 행간 띄움은 거대한 한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만 처연한 단어들과 문장 구사력은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적요 시인의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이 드러날 때는 그러한 단어들이 더욱더 처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태양 은교를 사랑한 달 시인 이적요.
그리고 그 달을 너무나도 사랑해 그를 닮고 싶어 몸부림치던 남자 서지우.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과 욕망, 질투와 집착, 애증으로 뒤섞여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이적요 시인은 일생 단 한 번 꽃을 피운채 죽어 버리는 대나무같은 사람이었다.
비록 세간에 알려진 것은 그의 마음에 숨어 들어 있던 것과 배치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대나무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꼿꼿함과 정열은 그의 심장을 바로 찌르고 그의 몸을 온전히 태워버렸다.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지금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은교같은 나이였다면 이적요 시인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20대에도 이적요 시인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중반을 바라 보는 나이, 서지우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가는 나이에 일을 수 있어 감사하다. 비록 서지우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지만, 난 노시인의 사랑과 열정과 갈망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의 마지막에 남은 열정과 열망을 다 태우고 떠날 수 있던 사람이라 부럽기도 하다. 아직 난 그렇게 마음을 다 태워버릴수도 있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