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대화하는 아이 티피
티피 드그레 지음, 백선희 옮김, 실비 드그레, 알랭 드그레 사진 / 이레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자기 주변의 것들과 쉽게 교감을 나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이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물이든간에... 그러나 티피는 그 교감의 정도가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그 능력은 특별하다. 티피는 그것을 자신의 보물이라 생각한다. 남들과는 나눠가지고 싶지 않을 정도의 보물. 만약 나도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티피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티피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티피의 눈으로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난만한 생각과 순수한 생각들은 우리 어른들이 잊고 살아 왔던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아프리카의 나미비아, 보츠와나의 야생동물과의 생활을 비롯해, 그곳에 사는 소수부족인 힘바인 부족과 피그미족과의 생활의 단면도 엿볼수 있으며, 책 후반부에서는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보낸 날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흔히들 아프리카라고 하면 일단 푸른 초원이 펼쳐진 사바나와 그곳에 사는 동물을 먼저 떠올린다. 나 역시 언젠가 아프리카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아프리카를 좋아하고 그곳에 사는 야생동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게 되면 난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티피와 같은 생각, 그리고 티피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난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고, 도시란 곳에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하지만 10살난 티피의 눈으로나마 좀더 순수한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게 되어 너무나도 기뻤다.


티피와 함께 있는 아프리카 코끼리 아부의 모습. 아부는 사실 아프리카 태생은 아니다. 아메리카에서 태어나 서커스단에서 공연을 하던 코끼리이지만, 서커스단 사람과 함께 아프리카로 함께 건너왔다. 영화 배우이기도 했던 아부는 아주 영리한 녀석으로 당시 나이가 서른살이었다고 한다.

아부는 어쩌면 다른 코끼리에 비해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보통 서커스단에서 공연하는 코끼리는 죽을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공연을 할 능력이 안되면 동물원으로 팔려 가지만, 이녀석은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로 돌아왔다.

티피와 아부가 함께 하는 모습은 경이롭다. 티피를 머리위에 태운 아부의 눈이 편안한 듯 슬쩍 감겨있다. 그러나 이는 길들여진 코끼리이기에 가능한 것일뿐. 아프리카의 코끼리들은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해 인간을 피해 다닌다. 이는 코끼리 상아를 얻기 위한 인간들의 사냥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또한 숫코끼리의 경우 발정기가 되면 굉장히 사나워져 인간을 공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의 모습에서는 그런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표범 J&B와 함께 있는 티피의 모습. 티피의 다리에 앞발을 슬쩍 걸고 있는 J&B의 앞발을 자세히 보면 발톱이 드러나 있지 않다. 즉, J&B는 티피에게 장난을 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야생 표범의 경우,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는 맹수다. J&B는 인간에게 길러지고 있지만 언제든 야생성을 드러낼 수 있는 야생동물이다. 하지만 사진만으로 볼 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영양들은 겁이 많기로 하자면 1등 수준이다. 초식동물은 늘 육식동물을 경계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그러한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러한 모습은 정말 티피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을 아름다운 장면이다. 길들여 지지 않은 야생 영양이 이렇게 사람 가까이 오는 일은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비원숭이는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로 떼로 덤비면 표범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티피는 이 비비원숭이와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이 비비원숭이 대장은 티피를 받아들였다.

이외에도 수록된 수십장의 사진에서 티피와 야생동물, 그리고 힘바인족과 피그미족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와의 교감. 언어란 것이 없어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티피가 들려주는 대자연과 인간과 야생 동물의 이야기.
난 이 책을 손에서 내려 놓고 또다시 아프리카를 꿈꾼다.

사진출처 : 본문 中(위에서부터 순서대로 22~23P, 38~39P, 94~95P, 98~99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용돌이 합본판
이토 준지 지음 / 시공사(만화)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토 준지의 작품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누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난 토미에 시리즈와 소용돌이를 먼저 손에 꼽는다. 꽤나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여전히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했기에 요번에 소용돌이 시리즈가 합본판으로 나온 것을 보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와우, 오랜만인데, 다시 두근두근...
배송을 받고 일단 책의 볼륨에 깜짝!
사실 3권 합본이다 보니 600페이지가 넘어 두꺼울 거란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보면 깜짝 놀랄 두께다. 그래서 묵직한 느낌이 들고, 책을 손에 들고 읽는 건 좀 무리였달까.. 아무래도 책이 너무 두껍고 무거우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좋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
조용한 시골마을 쿠로우즈. 그곳에 사는 여고생 고다마 키리에는 마을에 조금씩 이상한 일들이 생겨나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남자 친구 슈이치의 아버지의 소용돌이 무늬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기이한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소용돌이란 소재 하나로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용돌이 무늬가 우리 주변에 이렇게 많았던가, 혹은 소용돌이 형상이 이렇게나 많았던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소용돌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슈이치의 부모님의 기이한 죽음, 전학생 아자미의 슈이치에 대한 집착과 그녀 이마의 소용돌이 무늬로 인한 소멸, 키리에 아버지가 굽는 도자기에 얽힌 비밀 등 소용돌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키리에 주면을 조금씩 잠식해 간다. 또한 키리에 역시 소용돌이의 저주의 영향을 받아 머리카락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리는가 하면, 자신을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학생이 죽은후 무덤에서 나와 그녀를 쫓아 다닌다. 솔직히 말해서 무덤속에서 튀어나오는 시체라,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 달팽이 인간 이야기일 것이다. 으.. 그 그림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조그마한 달팽이는 실제로 보면 정말 귀여운데, 이토 준지가 그려낸 달팽이 인간은 꿈에 볼까 두렵다. 또한 피를 먹고 사는 임부들과 그녀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는 정말 소름끼치는데다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스스로 성장하는 태반들이라.. 어휴, 솔직히 말해서 고개가 설레설레~~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하나의 단편으로 완결되어도 될 만큼 이야기의 짜임새가 탄탄하다. 그러나 이것을 한권으로 묶어주는 건 역시 후반부의 이야기일 것이다. 쿠로우즈 마을에 차례차례 상륙하는 태풍. 그것은 마을을 파괴시키고, 마을을 외부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기묘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마을 역시 기묘하게 변해간다.

전반부와 중반부는 기묘한 공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공포를 안겨 준다.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인간들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게 된다. 한때는 인간이었던 달팽이 인간을 잡아 먹는가 하면, 안전한 연립주택에서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의 몸을 옭아 매기까지 한다. 

결말 부분은 잉카 문명이나 마야 문명처럼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갑자기 사라진 문명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쿠로우즈 마을은 그런 문명의 잔재라고 하기엔 영 아니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은 그것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기묘하나 현실적인 감각과도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이토 준지만의 공포. 소용돌이의 공포는 평범한 곳, 평범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기이한 일이란  것을 전제로 하기에 세상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시광의 공포 영화관 - 무섭고 재미있는 공포영화 재발견
김시광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영화를 좋아한다. 대부분의 장르를 좋아하지만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 세가지만 꼽아 봐라고 누가 묻는다면 난 주저없이 공포영화를 포함시킨다. 그러나 공포 영화를 좋한다고 해서 마니아나 영화광(狂)이란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감독이나 배우, 그리고 각각의 공포 영화가 담고 있는 메세지를 이해한다거나 잘 꿰고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저 즐기는 사람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 영화는 재미있었다 혹은 재미없었다 정도의 평밖에 할 수 없는 정도랄까.

저자도 말했다시피 공포 영화를 좋아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게다가 내 남자 친구들은 공포 영화라면 질겁을 하고 고개를 휘휘 가로저었다. 그래서 난 공포 영화를 혼자 보러 가거나 - 남자 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혼자 비디오로 보거나 하는 쪽이 많았다. 다행인 것은, 여자 친구중에는 공포 영화를 즐기는 친구가 둘 정도 있어서, 너무나도 즐겁게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공포 영화에 대한 호불호라고 하니 문득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당시 직장 동료였던 P양은 공포 영화중 좀비 이야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난 "그럼 새벽의 저주, 당연히 봤겠네?'라고 물었다. 그떄, P양의 대답은 "언니, 제가 이야기한 사람 중에 새벽의 저주를 아는 사람은 언니가 처음이예요.."라고. 당시 서로 어찌나 반갑던지.. 사실 그정도로 공포 영화를 즐기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보기란 힘들다.

내가 공포 영화를 즐기게 된 것은 언제쯤일까. 초등학생때는 사실 공포영화란 것에 대해 잘 몰랐고 기껏해야 티비 드라마인 전설의 고향정도나 봤을까. 그러나 대신 온갖 공포 소설이란 걸 사보고 있던 때가 바로 그때이기도 하다. 물론 어린이 명작 동화나 위인전들도 읽긴 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추리 소설과 공포 소설이란 장르에 푹 빠져서 서점에 자주 들렀던 기억도 난다.

그후, 비디오를 빌려 보게 되면서 다양한 공포영화를 접했고 그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지만, 요즘은 또다시 책 삼매경에 빠져 공포 영화와는 거리를 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란 한번 필받으면 며칠내내 하루종일 공포영화만을 보고, 또 한동안 쉬고 하는 패턴의 반복이랄까.

사람들은 여름이 공포 영화를 보기에 제격인 계절이라고 하지만 내게 있어서 공포 영화의 계절이란 따로 없다. 내 경우엔 겨울에 보는 공포영화가 더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뭐, 사람 나름이겠지만.. 하지만 극장에서는 여름에 맞춰 공포 영화 성수기가 시작되니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보려면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 아쉬움이 크긴 하다.

김시광의 공포 영화관은 공포 영화를 세부적인 장르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일단 큰 범주로 나뉘어진 이야기속의 공포 영화들은 대부분 내가 본 것이기에 더욱더 즐거웠다. 영화란 것은 보통 한번 정도 보는 것으로 그치기에 세부적인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또한 그 속에 담긴 메세지까지 파악하기란 힘든 것도 사실이다. 또한 외국 영화의 경우 자막을 따라가기도 바빠서 디테일한 부분은 놓치기 쉬운데, 그런 점을 잘 집어서 이야기해주고 있달까. 결국, 내가 봤던 공포 영화에 대해 새롭게 복습하고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이야기, 놓쳐버린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달까. 그래서 그런지 가물가물했던 기억을 반추하면서 곱씹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소개된 영화들 중 대부분은 고교 시절에 본 것들이 대부분이라 당시 내 나이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같은 것에 대해서도 좀더 많이 알게 되었다.

본문에 나오는 영화중 엔젤 하트는 고등학교 2학년때 비디오로 봤던 영화이다. 당시 관람불가 등급이었지만, 친구중에 미키 루크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보게 된 영화인데, 그 친구에게 빌려서 집에 가져왔다가 비디오 데크에 걸려서 안나왔던 적이 있다. 새벽에 몰래 봤는데, 비디오는 걸려 있고, 학교는 가야 되고.... 정말 공포의 순간이 따로 없었다. 만약 부모님께서 저 영화에 대해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지금 생각하면 웃긴 추억이지만 당시로는 하루종일 쫄아있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지금은 어른이라 관람불가 등급이 없어, 자유롭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지만 정작 보는 편수는 예전에 비해 너무나도 줄어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서 당시의 추억도 떠올리고, 내가 미처 몰랐던 공포 영화에 대한 지식, 그리고 새롭게 공포 영화를 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이 책 뒷부분에는 본문에 언급된 공포 영화 이외에도 저자가 좋아하는 100편의 공포영화에 대한 짤막한 소개가 나와 있다. 대부분이 오래된 영화라 지금 저런 영화를 구해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포 영화들에 대한 것을 알게 되어 너무 즐거웠다. 특히 저자가 언급한 영화중 캐리와 성스러운 피는 정말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중의 하나다. 특히 성스러운 피에 등장하는 모자(母子)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단순히 무섭다, 공포스럽다, 잔혹하다.. 란 것을 넘어서 공포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감독들의 다양한 시도와 그속에 담으려한 메세지등 단순히 영상을 보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물론 이 책 대부분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담고 있지만, 그런 것 또한 독자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서 읽어 본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스타트 - B애+코믹스 092
히다카 쇼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히다카 쇼코라...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던가.. 그림체가 굉장히 낯익은데 말이지...
라고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
아, 맞다. 코노하라 나리세의 아름다운 것들의 삽화가가 바로 히다카 쇼코였었지.
그러고 보니 정작 이 작가의 단행본은 읽어 본적이 없는 듯하다. 음.. 그렇군.
어쨌거나, 그림체는 굉장히 마음에 든다.
사실 BL물을 보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멋진 캐릭터들이기도 하니까. (제일 중요한 건 스토리지만)

리스타트에는 총 7편의 단편이 실려있지만, 리스타트에서 리버스까지 네작품은 모델 아키와 타다시를 주인공으로 하는 연작이고, 너를 위해서는 모델과 사진작가, 겹쳐지듯이는 어느 여름에 있었던 일, 그리고 마지막 작품인 conctact는 리스타트 시리즈의 번외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리스타트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모델. 그렇다 보니 주인공들은 훤칠한 키에 미모는 기본. 모델계라는 특수한 집단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평범한 사람들과도 결코 다르지 않은 그런 사랑을 이야기한다. 아키가 데뷔할 당시만 해도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모델 타다시와 아키의 입장이 현재 뒤바뀌면서 나타나는 심적 갈등 요소, 모델들의 일과 관련한 이야기등은 매우 흥미롭고, 사실적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모델계라는 가혹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와 현재의 처지가 뒤바뀐다는 일은 일에서는 물론 한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고, 또한 스스로 위축되는 일임에는 당연하다. 게다가 아키는 타다시보다 세살이나 연하이다 보니, 타다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리는 건 뻔한 일이다. 만약 일적으로만 부딪힐 상대라면 자존심 상하는 것 정도로 끝나겠지만, 상대에게 호감을 가진 경우라면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사랑을 하면 자존심이고 뭐고 내버리게 된다지만, 같은 일을 하는 입장에서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 멋져 보이고 싶고, 잘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같은 일이 아니라도 사람은 자신이 호감을 가진 상대에게 잘보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하다) 타다시도 그렇지만 역시 아키도 그렇다. 그러나 타다시의 경우 아키보다 연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강하지 않았을까. 먼저 데뷔한 모델계 선배인데다가 나이도 3살이나 많고, 아키가 데뷔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모델이었으니까.

이런 둘의 심리가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전개되는 것이 바로 리스타트 시리즈. 사실 모델이란 직업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묘사한 건 아니지만,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는 무척 잘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를 위해는 고교생 모델과 사진작가의 이야기인데, 작가의 말대로 모델이라고 하면 사진작가가 빠질수는 없겠지. 사실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찍는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져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모델도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드러내야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은 사진작가의 몫도 되니까. 고교생과 어른이라는 왠지 아슬아슬한 관계를 끈적임없이 산뜻하게 잘 그려낸 작품.

겹쳐지듯이는 이 단행본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다. 사랑을 고백하기도 전에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버렸다면? 실제 난 그런 사례를 경험한 적이 없지만, 그것만큼 아프고 절절한 일이 또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던 차에 그 사람과 꼭 닮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다면? 다시 잃어버리기 전에 붙잡고 싶지 않을까. 어떤 방법을 쓴다 해도 말이다. 

이 단편의 경우 죽은 사람의 형제란 소재를 가져오고 있다. 형을 사랑했지만 그는 죽었고, 몇년 뒤 그의 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이때 그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일까. 단편이라 좀 아쉽긴 하지만, 무척이나 인상에 남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왠지 라이트 노벨같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제목도 그렇지만, 표지 그림이 그런 느낌을 많이 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좀 가벼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 띠지에 나오는 대립되는 두 인물의 모습 또한 현실을 좀 뛰어 넘는 게 아닌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걸. 문장은 짧고 간략하나 분위기 자체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든다. 그것은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가 어둡기 때문이리라. 주인공 나는 소매치기이고, 기자키는 뒷세계의 거물로 보인다. 또한 주인공 <나>가 관계를 가지는 아이와 엄마 역시 사회적인 입장으로 볼 때 밝은 세상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서 사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소매치기 주인공인 '나'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과거와 현재가 엇갈려가면서 진행되는 스토리. 주인공 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하는 소매치기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또한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떄문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했던 일에 대한 중압감이 시종일관 주인공의 뒤를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나>보다는 가끔 등장하는 기자키란 인물에 관심이 많이 갔다. 기자키란 인물의 등장 횟수는 적지만, 그가 한번 나올때 마다 움찔하게 된다. 특히 한 노예의 운명을 쥐락펴락한 귀족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또한 그 이야기는 기자키와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빗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기자키란 인물이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라든지 목적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고, 그가 저지른 듯한 일들만이 간간히 언급되는데, 사실 그러한 것은 책을 읽다 보면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처음으로 기자키에게 의뢰받은 일에 대해서는 상세히 나오긴 하지만. 결국 책의 흐름에서 주인공 나와 기자키의 일대일 관계에 더 관심이 가게끔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단절된 세상속에서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던 주인공인 나는 우연히 한 소년과 그의 엄마를 만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 속박이 되어 버렸다. 기자키가 그 상황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기자키가 주인공 나를 선택한 이유?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 따윈 없다. 그때 그곳에 주인공 '나'가 있었을 뿐이고, 기자키는 그들 대상으로 선택한 것 뿐이다.

기자키의 말대로 그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이 기자키인지, 기자키에 의해 운명이란 걸 잡히는 것이 그의 운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주인공 '나'가 기자키의 손바닥 위에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되고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갑자기 서광이 비칠 일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 역시 자신의 말로가 좋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희망을 걸어 보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그것 또한 기자키가 마련해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것에 신경쓸 사람, 혹은 신경쓰고 싶어할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스스로 사회와 단절된 삶, 단절된 인간 관계속에서 살아 왔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르러 미약한 끈이라도 연결하고자 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수 있을까.
그는 기자키가 만들어 놓은 운명의 덫을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의 운명은 또다시 독자들의 판단이라는 것에 맡겨진 것일까.

덧> 책 제목인 쓰리에 관한 짧은 생각.
원제인 掏摸는 한자어 발음 대로 읽으면 도모. 일본어로 읽으면, すり(스리)
소매치기란 뜻이다.
사실 원제랑 우리말 제목을 보면서 조금 고민했다.
제목은 도대체 뭘 뜻하는 것이지?
소매치기를 뜻하는 스리를 쓰리로 쓴 것일까, 아니면 기자키가 주인공에게 내준 세가지 의뢰를 뜻하는 쓰리(three)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