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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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 소설이라고 하면 보통 고교생들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다. 아이와 어른과의 묘한 경계에 서있은 아이들의 방황과 아픔, 상실과 재생등을 다룬 이야기들. 바로 얼마 전에 읽었던 작품 역시 여고생이 주인공인 성장 소설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열세살, 중학교 2학년 학생이다. 아직은 부모품에서 응석을 부릴 나이이며, 사랑을 한껏 받으며 성장해야 할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모두 궁지에 몰려 있다. 이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 중의 하나인 오니시 아오이는 엄마와 양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뱃사람이던 양아버지는 다리를 다친 후 집에서 술만 마시며, 한편으로는 아오이의 엄마와 아오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다. 

엄마는 혼자서 생활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에 아오이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다. 게다가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찾고 싶어 하기도 한다. 따라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싶어하는 아오이는 엄마와의 거리를 느끼며 엄마와 자신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어 버렸다는 것을 안다. 또한 양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일 뿐 아니라 폭력을 행사하고, 아오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훔치기까지 하지만, 아오이는 어른인 양아버지에게 대들 힘이 없다. 반항을 해도 완력에서 그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오이지만, 학교에서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 메이커로 살아간다. 가정사의 아픔을 반대로 표출해내고 있는 아오이. 그런 아오이와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다나카 소타는 아오이의 게임 친구이며,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관계 역시 다나카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묘하게 틀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따돌림이란 것으로 되돌아왔다.
이런 아오이에게 다가 온 소녀는 마을 유지의 손녀 미야노시타 시즈카란 소녀였다. 학교에서의 모습과 전혀 다른 사복 차림의 시즈카. 어느새 둘은 조금씩 친해지게 된다.  

양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어머니에 대한 불신으로 마음이 가득찬 아오이. 아오이는 결국, 넘지말아야할 선을 넘어 버리게 되고, 시즈카와 그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데...

과연 이 아이들이 나쁜 아이들인 것일까. 물론 이들이 저지른 짓만을 놓고 보자면 나쁜 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그 아이들 주변의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깊고 어두운 비밀을 공유할 친구도 없는 이들에게 남겨진 선택은 극단적인 것 밖에 없었다. 아오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 놓고 싶어 하지만, 번번히 그것은 가로 막힌다. 어른들에 의해서.
이렇듯 주변이 가족, 친구들로 가득한데도 불구하고 소녀들은 외롭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을 건 자신들뿐이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는 거야. 동굴 밖에 곰이 있듯이. 아이들 세계 밖에는 어른이 있어. 숨죽이지 않으면 들키고 말거야." (177p)

책 후반부에 이르러 시즈카는 과연 어떤 아이인가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시즈카가 하는 이야기중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어려서 어른들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아오이의 한계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순수한 나이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던 것 아닐까? 거짓으로 똘똘 뭉친 어른의 연기를 아직 열세살 소녀가 간파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통을 받고, 절망에 허덕여도 손을 내밀 곳이 없다. 기댈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녀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스스로 '처리'하는 것 뿐. 하지만 그것이 소녀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이들은 그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본문에 언급되는 '스파르타의 여우'에 나오는 소년처럼 인내와 비밀이 동거하는 죄때문에.

사춘기 소녀의 미묘한 감성과 어른들과의 미묘한 관계를 잘 묘사해낸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연약하지만 강인한, 아프고 잔혹하지만 너무나도 가슴 아픈, 열세살 소녀들의 잔혹한 성장통.
과연 이 소녀들은 인내와 비밀이 동거하는 죄를 내려놓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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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토의 여행자
다니구치 지로 지음, 홍구희 옮김 / 샘터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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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와의 인연은 개를 기르다를 읽으면서 부터이다. 꽤 오래된 만화이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고, 그후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를 검색하다 보니 너무도 괜찮은 작품이 많아 보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먼저 집어든 것은 바로 이 책인 동토의 여행자.
푸른 하늘과 눈 덮인 산, 사냥꾼인 듯한 한 남자의 모습과 강인한 눈빛의 개 한마리. 표지부터 무척이나 강렬하다.

이 책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대부분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송화루는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이질감은 있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작품으로 생각하면 그걸로 된 것이겠지?

일단 표제작이자 첫작품인 동토의 여행자는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을 등장시킨다. 실제로 잭 런던이 알래스카에서 겪은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단편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과 백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깨진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혹독한 환경을 탓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경외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들과 사금에 눈이 멀어 알래스카에 들어온 백인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을 단순히 이용한다기 보다는 그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주 오랜 옛날 우리 인간들은 모두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얀 황야는 잭 런던의 하얀 이빨 제 1장을 재구성한 만화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원제를 우리말로 발음한 화이트 팽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와 있고, 늑대개 화이트 팽이란 제목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이다. 영화는 소설의 3부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나도 이 에피소드는 처음으로 접한다) 북극의 황야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차례차례 썰매개들은 이리에게 잡혀 먹히고, 헨리만이 살아 남는다. 혹독한 날씨와 엄습해 오는 공포.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 하얀 황야는 자연에 남겨진 인간은 그자체로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존재기이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으로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마타기들과 마타기 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왠지 우리나라의 호랑이 사냥꾼들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늙고 노련한 곰에게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과 반려인에 대한 충성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마타기 개. 자연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혹독하고 가혹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다른 생명을 주는 존재인지도...  마지막 장면이 정말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가이요세섬은 우리 조부모 세대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에 맡겨진 도시 소년과 고아가 된 후 그 집에 맡겨진 섬 소녀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너무나도 순박한 두 아이의 모습에, 그리고 그 아이들이 품고 있었던 상실의 아픔이 자연속에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도 따뜻했던 작품.

앞서 말했듯 이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송화루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 자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듯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송화루.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도시 괴담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더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살아가지만 본질적으로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랄까.

바다로 돌아가다는 동토의 여행자에 실린 작품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가장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바다에 사는 생물중 가장 거대한 포유류인 고래. 하지만 그들의 삶은 비밀스럽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죽음과 고래 무덤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아주 오랜 옛날 인간과 고래의 관계와 더불어, 죽음이란 것이 두려운 것만은 아닌, 다음을 위한 깊은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올드 딕과의 우정, 그리고 올드 딕의 죽음. 삶을 소중히 여기는 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삶이 다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래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자연과 인간.
사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오만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이용할 수 있을 때 뿐이란 것을 모르는 듯하다. 자연의 가혹한 법칙은 너무나도 혹독해서 감히 인간으로서는 맞설수는 없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수록 인간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자연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순간 인간을 몰살시킬수도 있는 자연. 인간은 늘 자연에 속해 있는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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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지나의 다리 이정애 컬렉션 1
이정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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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애라고 하면 난 열왕대전기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 만화 잡지에 연재되는 걸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완결을 본 기억이 없었다. 당시 내 경우 만화를 볼 때는 단행본보다 잡지에 연재되는 걸 주로 읽었던지라 완결을 못 본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단행본으로 봤으면 되었을텐데...) 어쨌거나, 그후로는 만화에 손을 거의 대지 않고 지냈던지라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요번에 작가의 단편들이 복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반가웠다. 사실 쿠스모토 마키의 만화를 보면서 아, 우리나라의 이정애 작가랑 그림체가 비슷하게 느껴진다..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이젠 진짜 이정애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하다.

이정애 컬렉션 1에는 표제작 키 큰 지나의 다리 외에 두 편의 단편이 더 수록되어 있다. 키 큰 지나의 다리. 사실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지라 내용이 가물가물했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역시란 생각이다. 샴쌍둥이로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림받고, 그후 수술로 형과 분리가 되면서 지나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지나가 잃은 건 다리만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일부이자 자신의 전부이기도 했던 형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지나에게 없어진 다리 한 쪽은 마음의 구멍이자 그의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의 곁에 있는 한은 동생 채은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는 칼을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지나를 철저하게 파멸시키고 싶어 하는 한. 그런 한의 마음은 애증으로 가득했다. 한은 에블린에게 지나를 증오한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 한의 마음이었을까.

한과 지나. 둘을 보면서 이 둘은 정말 멀리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비뚤어진 마음을 비뚤어진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지나. 그는 한을 외롭게 만들어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고, 그건 지나만의 지독한 사랑 방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식으로밖에 숨을 쉴수 밖에 없는 지나를 보면서 미운 감정보다는 애처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 저지른 일들이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깊은 증오, 깊은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 깊고 깊은 슬픔.
현실적으로는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나머지 작품인 성홍열과 사랑하기 좋은 날은 판타지 성향에 가까운 작품이다. 
성홍열은 다크 판타지를 차용한 미쉴라의 성장이야기로 보여진다. 성홍열을 앓고 난 후 미쉴라는 그저 보통의 아이로 돌아가 버렸으니까. 아주 어린 시절과의 결별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겪어가는 과정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

사랑하기 좋은 날은 귀신이 나오긴 하지만 오히려 유쾌하다. 근데, 아신태자가 정말 귀신일까?
혹시 아신태자가 있는 캠프 주변이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그런 지점이 아니었을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잠시. BL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줄 스토리에 흐뭇한 미소도~~

꽤나 오래전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물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약간 옛날 느낌이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요즘 나온 만화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역시 좋은 작품은 시간을 뛰어 넘는달까. 이정애 컬렉션 2권인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도 얼른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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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라도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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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과 그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동급생 시리즈를 읽고 나카무라 아스미코만의 독특한 매력에 푹 빠진 내가 이 책을 보자마자 구매하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배송받고나서 표지를 본 순간, "악! 표지가 왜 이렇게 촌스러~~!!"라고...중얼거렸다. 만화책 단행본에서 컬러 일러스트를 볼 수 있는 건 표지와 본문 첫 장의 컬러 일러스트 정도이기 때문에 표지에 기대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동급생과 졸업생 시리즈 같은 경우 은은한 수채화같은 느낌이 너무나도 예뻤는데, 이 책은 원색과 보색의 대비가 너무 강해서 깜짝 놀랐다.

어쨌거나 표지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 단행본에는 표제작 외 3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표제작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라도>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형사 타카치호 타쿠미와 핸섬한 얼굴에 깍듯해 보이지만 능글맞은 범인 나나미 요이치의 이야기.

1년을 따라다니다 겨우 외딴 섬에서 나나미를 체포하게 된 타카치호. 그러나 정작 붙잡힌 나나미는 느긋하기만 하다. 타카치호에게 이런 풍경을 보여 주고 싶었다느니 등등등의 작업 멘트를 날려 주면서 타카치호를 유혹하는데, 타카치호는 까칠하게 굴면서도 나나미의 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나나미에게 키스를 당하고, 삐리리~한 지경까지 되는데도 이상하게 타카치호의 저항은 너무도 적었다. 이게 왠일? 밑도 끝도 없이 본편부터야? 라고 생각했는데, 뒷장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나미의 청산유수같은 말솜씨와 그에 맞서는 타카치호의 대응은 어찌나 유쾌하고 사랑스럽던지. 형사와 범인 사이란 것을 몰랐더라면 티격태격하는 연인처럼 보였을 정도. 나나미는 정말 뺀찔뺀질하게 구는 캐릭터인데, 정말 밉지 않은 뺀질이랄까? 진지하게 읽다가 폭소가 터지고, 또 진지한 모드로 나가다가 폭소가 터지고. 적당한 순간마다 터지는 유머코드에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특히나 온천에서의 목욕 장면에서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범인과 형사라는 것. 츤츤거리는 타카치호에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해오는 나나미. 그러나 타카치호의 입장이란 게 그의 고백을 받아들이기는 난처한 일일 뿐. 그러니 자신을 좋아하냐는 나나미의 말에 타카치호는 대답을 망설이게 되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 후에 벌어질 일도 당연하달까?

그후 반년. 다시 재회하게 된 두 사람. 또다시 상황은 반년전의 상황과 똑같아졌다. 이제 배경이 되는 건 섬이냐 산이냐의 차이점뿐? 여전히 까칠하게 톡톡 쏴붙이는 타카치호와 여전히 유들유들 뺀질뺀질한 나나미. 그러나 그 순간 타카치호의 입에서 터져나온 이야기가 나나미를 크게 흔들어 놓는다. 사실 이 장면에선 나나미뿐만 아니라, 나 역시 심장이 덜컥했다고나 할까. 와우, 잘했어, 타카치호! (나머지 이야기는 직접 확인하시길~~)

두번째 수록작품인 매지컬 집사는 쇼트쇼트라고 해도 될만큼 짧지만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집사란 단어가! 참고로, 난 집사를 참 좋아한다.. (쿨뷰티면 더 좋고!) 어쨌거나 집사와 행주 영업사원 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단편에서 역시 제일 압권은 집사 츠루하미. 특히 주인님 이야기가 나오면서 뒤로 쓰러지는 츠루하미의 모습에 미친듯이 웃었다는 거~~

논논 시리즈는 학원물. 동급생 시리즈도 학원물이었지만 너무나도 즐겁게 읽어서 은근히 많은 기대를 하고 봤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보답받았다!!!!! (유후~~)

너무나도 절친한 야마다와 이시마루. 그러나 어느 날부터 둘 사이에 미묘한 스파크가! 보통 bl물에 등장하는 아그들에 비해 너무나도 순진하고 순수한 녀석들. 양호실에서 둘의 모습을 보면서 아구, 귀여워라를 연발했을 정도. 그러면서도 할 거 다하는 녀석들. 물론 역사가 이루어진 건 사회과 준비실이었지만!

주인공들은 고교생답게, 고교생다운 풋풋함이 잘 살아 있었으며, 그 나이 또래의 귀여움과 순수함이 너무나도 잘 살아 있었다. 게다가 이 단편 역시 적절한 순간에 등장하는 유머 코드로 읽는 내내 정말 즐거웠다.

마지막 단편인 나락은 어디는 표제작의 번외편. 그러나 시대는 헤이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고 딱히 역사물은 아니고 패러디 시대물이라고나 할까? 헤이안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는 둘의 모습도 즐거웠지만, 역시 제일 크게 빵~~하고 터진 것은 아씨의 비밀이었다나 뭐라나~~

언뜻 보기엔 그림을 대충 쓱쓱 그린 것 처럼 보이지만, 디테일한 부분이 생략되었다고 해서 나쁠건 없다. 오히려 등장 인물들의 표정이나 감정이 더 많이 살아 있다. 예쁜 작화 취향의 독자들은 이런 그림 별론데 싶을지는 몰라도 난 이런 그림체도 참 마음에 든다. 만화체임에도 불구하고 눈의 표정이 너무나도 잘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각각 다른 연령대, 직업의 커플을 등장시켜 지루할 틈없이 이야기가 진행되며. 특히나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코드는 최고라 생각한다. 주인공들의 캐릭터 역시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들이라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이 간다. 동급생 시리즈도 너무 좋았지만, 이 작품 역시 별 다섯개를 주는 것에 아까움이 없을 정도다.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이 더 많이 번역되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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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여인 - Mystery Best 2
윌리엄 아이리시 지음, 최운권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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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계 3대 추리소설의 하나로 손꼽히는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앨러리 퀸의 <Y의 비극>은 읽었었지만 <환상의 여인>은 읽어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생때부터 추리소설 광팬이라 추리 소설들의 고전들을 대부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왜 빠진거지? 뭐, 이미 지나간 일은 과거로 묻어 두자구.

이런 생각으로 펼쳐든 이 책은 아내 살해 혐의를 받고 사형을 확정받은 한 남자와 그 남자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배우자 살해란 설정을 보면 해리슨 포드가 출연한 영화 <도망자>나 애슐리 주드가 출연한 <더블 크라임>이란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물론 영화의 경우, 범인으로 몰린 이들이 직접 사건을 해결하려 나서지만, 환상의 여인같은 경우 주변인들이 그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다르다. 어쨌거나 아내든 남편이든 둘 중 하나가 살해당하면 제일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는 건 남겨진 배우자 쪽이다. 그래서 환상의 여인에 나오는 스코트 핸더슨 역시 아내 살해 용의자로 구속되고 재판 끝에 사형 판결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날 저녁 처음 만난 한 여인과 함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녀를 처음 만난 술집의 바텐더도, 같이 식사했던 레스토랑의 지배인이나 보이도, 그들을 태웠던 택시 기사도, 오케스트라의 드럼 연주자도 모두 남자만을 기억할 뿐, 여자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남자 혼자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스코트 핸더슨의 이야기는 꾸며낸 것일까? 꾸며낸 이야기라 가정한다면 그가 내세우는 그의 알리바이는 너무도 허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줄기차게 한 여인과 있었다고 진술한다. 사형까지는 150여일. 과연 그동안 그의 무죄를 밝혀낼 수 있을까?
단 10분 상간의 알리바이. 그것이 그를 무죄로 만들수도 있고, 그를 유죄로 만들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누구이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사형 150일 전이란 소제목으로 시작해 날짜는 점점 사형 집행일에 다가가고, 그의 무죄를 입증할 여인도, 그와 여인을 목격했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친구와 그가 사랑하는 여인은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지만, 그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사실은 손에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 윤곽이 보일라 치면 그건 또 그들의 손아귀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버리는 것이다.

목격자 중의 하나였던 술집의 바텐더는 교통사고로 죽고, 극장앞에서 동냥질을 하던 장님은 계단에서 굴러 목이 부러져 죽는다. 또한 오케스트라의 드럼 연주자는 공포에 시달린 나머지 자살까지 하게 된다.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차례차례 죽어가고, 스코트 핸더슨의 사형 집행일은 하루하루 다가온다. 

정말이지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도대체 스코트 핸더슨이 그날 함께 있던 여인은 누구였기에 이렇듯 손에 잡힐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것일까. 정말 그녀는 실재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스코트 핸더슨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인가. 솔직히 목격자들이 하나같이 그 여인의 존재를 부정할 때는 스코트 핸더슨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사건의 범인과 그 여인을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범인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너무나도 어려웠다. 정말 등잔밑이 어둡다라고 하는 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끝까지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환상의 여인. 어찌보면 사건 자체는 치정극에 얽힌 단순한 사건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범인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또한 그 범행과 관련된 사실을 은폐하는 방법은 요즘 추리 소설의 설정보다 더 탄탄하다는 생각을 하게끔 하게 만들었다.
또한 요즘은 과학 수사가 발달해 다양한 각도로 수사를 하고 진실을 가려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당시의 사람들의 끈질긴 탐문과 추적으로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집요하고도 끈질긴 진실에 대한 추적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탄탄한 스토리와 치밀한 구성.
이 책을 읽어 보면 이 책이 왜 세계 3대 추리 소설에 손꼽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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