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고르기 동화는 내 친구 59
채인선 지음, 김은주 그림 / 논장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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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이런 생각 한 번 안해 본 사람이 있을까?
울 아빠가 좀더 부자였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을 텐데.
울 아빠가 좀더 잘 생겼으면 좋겠어. 그럼 친구들한테 많이많이 자랑할텐데.
울 아빠가 좀더 나랑 잘 놀아줬으면 좋겠어, 아빠랑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등등등...
내가 어릴때도 물론 그랬겠지만, 요즘 아이들도 역시 그런가 보다. (아니, 어쩌면 요즘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할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능력, 외모, 재력,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이니까)

하지만, 지금의 내 아빠를 내 손으로 골랐다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거다.
나도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으니까.

엄마랑 아빠가 결혼해서 생긴 자식이 나인데, 어떻게 내가 아빠를 골랐지?
엄마랑 아빠는 여러 사람중에 고르고 골라서 서로 결혼을 했으니 그건 수긍이 가는데, 엄마 아빠가 만나서 생긴 내가 어떻게 아빠를 고를수 있지?

이 책은 아주 재미있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몽글몽글 구름으로 가득한 다른 세상.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때가 되면 아빠를 고르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구름나그네란 이름을 가진 주인공 소년은 아빠를 얼른 만나고 싶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떤 아빠를 만나고 싶을지 아직 결정을 못한 것이다.

그러나 구름나그네의 친구들인 물렁뼈, 두꺼비, 놀보, 바리톤은 이미 자신이 원하는 아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고, 구름나그네보다 아빠를 먼저 골라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 아빠를 만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도대체 어떤 아빠를 선택해야할지 고민에 빠진 구름나그네는 보모 선녀님을 따라가서 아빠 후보들을 만나보게 된다. 

첫번째 후보는 부자인 아빠. 그러나 부자 아빠는 돈만 있으면 모든 다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들을 원하는 이유가 유산을 더 받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후보는 잘생긴 아빠. 그러나 잘생긴 아빠는 겉모습만 잘생겼지, 속마음은 비뚤어진 사람이었다. 자화자찬하는 잘생긴 아빠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 받을 아이가 필요해서 였다.
세번째 후보는 공부를 좋아하는 아빠. 벌써부터 태어날 아이에 대한 교육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찬 아빠이다.
네번째 후보는 술주정뱅이 아빠. 만사를 술로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네번째 후보까지를 보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보인다. 사람이 아니라 돈을 믿고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남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든지, 멋진 외모만으로 인생을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세번째 아빠의 경우, 우리 아이들이 처한 교육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릴 때부터 영어 유치원, 영어 학원으로도 모자라 무슨 학원이다, 무슨 학원이다 하는 지나친 교육열을 보여준달까. 네번째 아빠는 술에 의존하는 것에다가 술만 먹으면 뭐든 가능할 줄 아는 무책임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역시 수도 없이 많다.

휴지통에 버려진 아빠 부적격자들의 파일. 그속에도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캥거루족, 게임중독자,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사람등 다양한 인물들이 보여진다. 특히 요즘은 경기 악화로 아이낳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부부만의 풍족한 생활을 위해 아이낳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이를테면 딩크족).
 
구름나그네가 고른 마지막 아빠 후보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아빠였지만, 사실 그건 아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아직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었을 뿐. 왠지 아빠를 고를 준비가 아직 안되었다고 생각하는 구름나그네와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아빠 후보는 너무나도 닮아있다. 이게 바로 천생연분.

우리는 때로 다른 집 부모님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다른 집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을 비교도 한다. 게다가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속담처럼 다른 집 부모님은 우리집 부모님보다 더 좋은 점이 많다고도 생각을 한다. 내 가족이기에 단점도 더 많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말이다. 즉, 다른 집 부모님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는 것과는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다. 우리 가족에게 없는 것을 찾아내고 비교하기 보다는 우리 가족에게만 있는 것을 찾아내는 건 어떨까?

사람들에 있어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나는 내 가족에 대해 투덜거려도 괜찮지만, 남이 우리 가족을 욕하는 건 절대로 못참는다는 것이다. 그건 뒤집어서 말하면, 우리 가족에 대한 불만도 좀 있을수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가족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아빠가(혹은 엄마가) 싫어, 날 왜 낳았어? 나도 내가 고를 수 있었다면 다른 집에서 태어났을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엄마 아빠가 날 고른게 아니라 내가 엄마 아빠를 골라 태어났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데에만 그런 능력을 이용하지 말고, 내 가족의 새로운 장점을 발견하는데, 그러한 능력을 쓰면 어떨까.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선택해 놓고도 나중에는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점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가족이기에 소소한 단점이 보일 뿐,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은게 내 가족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아빠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진 아이도, 아빠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도, 그리고 지금 아빠인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싶은데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읽어도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가족, 나의 가족은 내가 원해서 만난 사람들이란 걸 잊지 말자. 비록 다른 세상에서 선택해서 지금은 기억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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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시간 - 뉴 루비코믹스 305
히다카 쇼코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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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리스타트를 봤을때는 그림도 예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 묘사도 잘 되어 스토리도 참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한 시간은 뭔가 확실히 부족한 느낌.....
이라고 생각했었다. 처음 한 번 봤을 때는.
하지만 두번째 읽었을 때는 느낌이 사뭇달랐다. 어설픈 건 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들이 가진 성격이었달까. (笑) 즉, 캐릭터 설정을 사랑에 어설픈 사람들로 해놓은 느낌이랄까. 

첫번째 단편인 감정 사인은 학원물이다. 전교 1, 2위를 다투는 미카미와 시부야. 미카미는 시부야에 대한 감정에 어쩔줄 몰라하고, 시부야는 그런 미카미를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한, 귀염성 없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10대들은 사랑의 열병에 휩쓸리기도 쉬운 나이이지만, 반대로 쉽게 상처받기도 한다. 미카미는 딱 10대 소년 느낌인데 - 수줍어 하고, 풋풋하고 - 시부야는 왠지 뺀질거린다고나 할까,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력을 가진 녀석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그런 느낌을 주는 녀석이었다. 이 녀석은 크면 참 기대될 것 같은 캐릭터!? (잘 크면 도S 타입이 될 게야~~) (笑) 

부족한 시간과 STAY는 앞에 나온 단편에 등장하는 미카미 X 시부야 커플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 타니가와에 관한 이야기. 사실 어른이라고 해서 사랑에 능숙하란 법은 없다. 즉, 어른이 되어도 사랑이란 감정에 있어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란 것. 스스로는 사랑에 익숙하고 능숙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타입이 타니가와같은 타입이라고 할까.

사랑이 언제 시작되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그 감정이 사랑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많다. 게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타인을 들었다 놨다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요우스케에 있어서 타니가와는 아마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타니가와만의 잘못일까. 말없이 사라져버린 요우스케 역시 용기가 부족한 것을 아니었을까. 두사람에게 부족했던 것은 배려와 용기였달까?

복잡하고 간단함은 리맨물. 니시노와 카도와키는 직장 선후배 사이지만, 사실 이전에 한 번 만난적이 있는 사이이다. 그런데 니시노는 이상하게도 카도카와를 못살게 구는 것 처럼 보인다. 왜?? 니시노는 전형적인 츤데레 캐릭터라고나 할까. 아니,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지 못한 캐릭터란 말이 맞을 듯 하다. 물론 이전의 일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꽁무니를 빼고만 있다면 될 것도 안된다는 말. 뭐, 다행이도 카도와키쪽에서 확 끌어 당기긴 했지만... 니시노에게 부족한 건 솔직함.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는 소꿉친구의 이야기. 에이지는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렇다고 나쁜 말이 아니라 그저 흐름에 순응하는 그런 성격이랄까. 그에 반해 케이고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순수하고, 어린애같은 구석이 있는 성격. 정반대의 성격이지만 오랜 친구사이, 그리고 서로를 좋아하지만 서로 원하는 게 다르다. 늘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왔던 에이지와 자신의 선택을 밀어붙였던 케이고가 선택할 미래는? 

원거리 연애는 고위 경찰 간부와 검사의 사랑이야기. 안경뒤에 늘 표정을 감추는 세오의 캐릭터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표정은 감추지만, 감정표현에 있어서는 감추지 않는달까. 오히려 그런 점이 귀여운 캐릭터. 무뚝뚝한 얼굴로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하는 게 진짜 귀여웠다니까. 그에 반해 토오루는 좀 안달쟁이랄까. 물론 서로의 일의 존중하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보이지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서 좀 자제할 줄도 알아야지, 암만. 그래야 오래가는 법이지~~~ 평생을 함께 하려면, 참을성과 근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히다카 쇼코는 장편 한 권, 단편 한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장편, 단편 모두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부족한 시간의 경우, 처음에 슬렁슬렁 읽었을 때와는 달리 두번째 읽었을때 훨씬 좋았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처음부터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학원물이 등장해서 색안경을 끼고 봤을지도..

사랑을 하다 보면 원하는 것도 많아지고, 참을 수 없는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사랑을 오래지키려면 감수해야할 것도 많은 법이다.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사랑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고 사랑이 지켜지지는 않는다. 또,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상대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족한 시간에 실린 단편들은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잘 짚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상황마다 사랑에 있어 각각 다른 부족한 부분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 것도 무척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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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기억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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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환자들의 임종을 예견하는 고양이에 대한 에세이를 읽었다. 그 고양이가 있는 곳은 노인환자 전문 요양원으로 치매에 걸린 노인환자들의 이야기가 많았다. 치매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의사와 환자의 가족 입장에서 묘사한 글들을 보며, 환자 자신도 그렇겠지만, 가족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내일의 기억은 약년성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은 50대 가장의 입장에서 이야기되는 소설이다. 언급했던 에세이는 의사와 환자의 가족이라는 다소 객관적인 입장이었으나, 내일의 기억은 환자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주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외부적인 요소보다는 환자가 겪는 내부적인 갈등, 어려움, 번민, 고통,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최대한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치매와 알츠하이머가 똑같은 병인줄 알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고 한다. 증상은 비슷하지만, 치매는 뇌혈관의 문제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주로 노인들에게 발병하지만, 알츠하이머는 뇌세포가 죽어가면서 생기는 것으로 연령에 제한이 없으며, 유전 가능성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50대에 들어선 광고회사 부장 사에키씨. 그는 최근 들어 두통과 불면에 시달리고 있다. 과중한 업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클라이언트. 그러나 회사에 나가는 시간이 제일 편안하다고 느낄만큼 일에 열심이다. 가족은 외동딸 하나. 그리고 곧 결혼 예정이다. 평범하기만 했던 그에게 이상징후가 찾아온 것은 그저 과로와 업무적 스트레스라고만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결과, 약년성 알츠하이머라는 선고가 내려진다.

이제 50대라면 아직 살 날도 해야할 일도 많은 나이이다.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알츠하이머 진단이라니. 사에키씨는 처음엔 부정을 하고, 분노하지만, 결국 수용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회사에는 알리고 싶지 않아 모든 걸 메모하고, 잊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병은 조금씩 그의 기억을 갉아 먹어 들어 간다.

최근의 일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없어지고, 길을 헤매기도 하고, 아내가 약속이 있다고 나간다고 하면 혹시 외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생긴다. 하지만 그와 그의 아내는 그를 지키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잊지 않도록 메모하고, 또 메모하고, 알츠하이머에 좋다는 생선 요리며, 호박 요리를 먹고, 발아 현미차를 마시는 등 끊임없이 병과 싸워간다. 

딸의 결혼과 출산까지 회사에 남기 위해 애쓰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 그는 요양원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한다. 가족들에게 최대한 폐를 덜 끼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이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전구의 필라멘트가 툭하고 끊어지듯 툭툭 끊어져가는 기억들.
사에키씨의 병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빨리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딸의 얼굴도 사진을 보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고, 사위의 이름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점점더 그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사에키씨는 자신의 병을 받아들인 순간부터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보통 발병해서 5년, 길어야 7년정도에 사망까지 이르게 되는 병. 그러나 절망하고 힘겨워할 시간은 없다. 어떻게 해서든 남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에키씨의 기억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으로 끝난다. 아내의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하고, 이름을 묻는 장면. 가슴이 시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병, 그리고 기억의 소멸과 더불어 인격까지 변해 겉모습은 똑같지만, 속알맹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리는 병. 이 소설은 이 병이 가져오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고통이나 절망, 슬픔 보다는 병을 극복하려 애쓰고, 남겨진 시간을 사랑으로 채우려는 한 남자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물론, 사에키씨가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하지만, 그래도 의지마저 꺾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 묘사는 세세하고 치밀해서 사에키씨란 사람이 이 글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또한 광고제작회사에서 일했던 자신의 경력을 살려 만들어낸 주인공 광고 제작 회사 부장과 그들이 하는 일들은 이 책의 현실감을 더욱 살려준다. 

이제껏 읽었던 오기와라 히로시의 책중에는 배꼽 잡게 만드는 유머코드를 가미한 책도 있었고, 기담류의 책도 있었다. 그때도 감탄했었지만, 이 책까지 읽은 지금, 작가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달까.

이 책은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든다기 보다는, 한 남자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사에키상의 모습이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담담하게 그에게 절대 찾아 오지 않을 미래를 준비하던 그의 모습은 쉬이 잊힐 것 같지 않다.

우리는 현실에서 아등바등 살다 보니, 자신의 기억속에 남겨진 것들이 얼마나 따사로운 것들이었는지, 아름다웠던 것들인지 잊고 살기 쉽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면? 그제서야 후회를 하는 게 바로 우리들 인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현재 우리에게 내린 행복에 감사하고,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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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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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책 제목만으로는 대체 어떤 내용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뒷표지의 책 소개 글을 읽어 보니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성장 소설인듯 하다. 성장 소설을 좋아해서 이제껏 여러 권의 성장 소설을 읽어 왔는데,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이런저런 기대를 하며 난 책을 펼쳤다.

서울시 한남동에 위치한 모스크 주변의 빈민촌. 그곳에는 다양한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고아 출신의 소년 '나'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터키인 하산 아저씨에게 입양된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이런저런 고아원을 떠돌던 '나'. 그곳에서 나는 사람들의 가식과 차별을 경험했고, 원래 세상은 그런거지라는 시니컬한 감정을 가진 아이로 성장한다.
 
주인공 '나'는 부모가 누군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진짜 이름이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주변 상황을 눈치를 챘을 나이에는 이미 고아원에 있었으니까. 온몸이 상처투성이지만, 그런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그저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 흉터투성이였다. 하산 아저씨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터키인으로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사람의 살점을 먹고 생존하게 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모스크 주변의 동네에서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는 그리스 내전당시 자신의 친척인줄 모르고 가족을 몰살시킨 커다란 상처를 안고 있고, 충남 식당 아줌마는 남편의 학대로 인해 아이마저 버리고 떠나와야 했던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말더듬는 유정은 가난과 가정 붕괴란 아픔을, 맹랑한 녀석은 동화속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가 결국은 생에 있어 모든 즐거움을 포기한 듯한 "죽을 건데, 뭘"이란 말을 반복한다. 주정뱅이 열쇠장이는 늘 분홍 코끼리 이야기를 하고, 대머리 아저씨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을 자신의 기억인양 자신의 머릿속 빈자리를 채운다. 싸전 김씨의 셋째딸은 지긋지긋한 동네를 벗어 나고 싶어 하지만, 왠일인지 늘 자신이 사는 마을로 끌려오게 되거나 되돌아 오게 된다. 

등장 인물을 살펴보다 보면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바로 무슬림인 하산 아저씨가 돼지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운영한다는 사실이다. 무슬림에게는 금지된 돼지고기. 게다가 코란을 전부 외우고, 매일매일 기도도 빠뜨리지 않고, 무슬림들의 휴일인 금요일에 쉬고, 금식기간도 지키면서 모스크에는 발길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 남긴 상처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물론 빈민촌이다 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경우 쇠고기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것이니 돼지고기를 파는 걸 수도 있겠지만, 이는 종교적인 교의와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딱히 그런 이유라고만은 단정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점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쓴 소설인가 하는 것이다. 처음엔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나'는 전쟁 고아가 아니었나 싶었지만, 충남 식당 아줌마가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어린아이였다고 하는 말을 봐서는 '나'는 전쟁 고아는 아닌듯 하다. 게다가 '나'의 정확한 나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하산 아저씨와 똑같은 흉터 - 총상으로 인한 - 가 있다는 문장이 나오면서 도대체 시대가 어느 시대야?라고 하는 의문이 자꾸만 생겨난다. 한남동 모스크가 1976년에 세워졌으니 아무래도 '나'는 전쟁고아는 아닌듯 싶다. 뭐, 하산 아저씨도 야스모 아저씨도 이미 할아버지 나이대에 들어가니 한국전쟁후 몇십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즉, 전쟁의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바로 엊그제의 일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빈곤한 삶. 수십년 전 전쟁의 상흔.
그러나 이 책은 우울하지만은 않다. 묵직한 소재를 끌어 왔지만, 시니컬한 '나'의 말은 수시로 웃음을 던져 준다. 왠지 이 녀석을 맹랑한 녀석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그런 시니컬한 말, 그리고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는 이야기들의 이면에는 아픔과 상처가 겹겹이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하산 아저씨의 이야기, 충남 식당 아줌마의 이야기 속에는 고단한 삶에서 얻어진 삶의 진리가 숨어 있다. 하산 아저씨는 말수가 많지는 않지만, 가슴 속으로 깊숙히 파고드는 이야기를 한다. 이런게 진정한 삶의 철학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또한 충남 식당 아줌마의 언뜻 보기엔 거칠지만, 그속에는 따스함이 묻어 난다. 특히 금일 휴업이라 써붙여 놓고도,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밥을 대접하기도 하는 모습에서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을 보았다고나 할까.

외국인이라고 차별당하거나 무시당하고, 가난해서 무시당하지만, 이들의 삶이 팍팍하지만은 않다. 돈이 많은 사람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듯이, 가난하다고 해서 늘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낡아빠진 트럭에 몸을 싣고 시골로 가서 돼지를 잡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그후 라마단 기간을 거치면서 하산 아저씨의 건강은 급속도로 악화된다. 자신의 수명이 다할떄가 되어서야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는 하산 아저씨. 그런 모습에 코끝이 찡해져 왔다.
대부분의 이런 경우, 신파로 흐르기 일쑤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먹먹한 감동만이 밀려들어 왔다.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해요...... 사랑한다구요."
나는 내 몸속으로 의붓아버지의 피가 흘러 들어온 걸 느꼈다. 뜨거웠다. 인간의 모든 기억들이 이처럼 단순하고 정직하게 이어진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훗날 내 자식들에게 나의 피가 아닌 의붓아버지의 피를 물려주리라. 병실 구석에 섰던 이맘이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 그날 나는 이 세계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236P)

세상에 대해 "원래 세상은 그런거야"란 시니컬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던 상처투성이의 소년. 그 소년은 이제 그 상처를 극복하고 감싸안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감싸 안을만큼 넒고 뜨거운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 뜨거운 가슴을 자신의 아이에게도 전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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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트 - 뉴 루비코믹스 942
아마노 카이 지음, 코노하라 나리세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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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코노하라 나리세의 노벨을 원작으로 한다기에 기대했더니, 이게 뭐야!!
이제껏 읽은 노벨중 대부분은 만족했는데, 이건 영 아니다. 물론 원작의 설정을 차용해서 만화화한 것이지만, 이건 영 아니올시다랄까.

친구였던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해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 양성판정을 받은 하츠시바 코헤이.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남자 이누이 타케노리. 원래 이성애자인 하츠시바는 그 일로 인해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 되었고, 또한 HIV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절망하고 고통받는다는 설정은 이해한다. 또한 HIV 바이러스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봉사 경력이 있는 이누이가 하츠시바를 누구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감싸준다는 설정도 납득이 된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하츠시바 자신이다. 이누이에 대한 행동은 아무리 봐도 이누이의 마음을 시험대에 올려 놓고 시험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엄청난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해 자격지심도 가질 수 있고, 또한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공포를 가질 수도 있지만, 이건 뭐 떼를 쓰는 아이처럼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면 밀어내고, 약간 멀어진다 싶으면 불안해서 발을 동동구르고 진짜 떠날까봐 안절부절. 자신이 이누이에게 폐를 끼친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거나 남거에 대한 판단은 이누이에게 미루려고 한다. 그러다가 정말 이누이가 떠나면 그때는 자살이라도 할거냐? 다른 사람의 다정함, 호의에만 기댈줄 아는 이기적인 남자가 바로 하츠시바다.

자신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그런데도 사랑한다고 하고, 기다린다는 이누이도 바보같긴 하지만, 역시 난 하츠시바같은 캐릭터가 너무 싫다. 하츠시바가 내뱉은 말은 "사랑해줘, 사랑해줘, 더 사랑해줘, 나만 사랑해줘!!"라고 하는 것으로만 보인다.

이누이는 그런 이기적이고 못되먹은 인간을 버리고 차라리 시이나나 만나지.. 뭐,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되면 아픈 사람 버린 못된 인간이 되니 그것도 좀 그렇긴 하겠다.

어쨌거나, 영 재수없는 캐릭터때문에 입맛만 버렸다.
아흑..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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