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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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김진규 작가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란 제목과 내용 소개를 보면서 무척이나 궁금해했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해를 넘기고 결국 올해 나온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이란 작품을 선택했다. 처음엔 저승차사?? 라고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내가 알기론 저승사자인데, 뭔가 좀 다른가 싶은 생각도 생각도 들고.... 읽어 보니 색다른 역사 판타지라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배경은 조선 영조 임금 시대. 이렇게 보면 혹시 역사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지만, 역사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대물이며, 판타지 성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영조가 등장해도 그저 그려러니 하고 납득하고 보는 게 책 몰입도를 높여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배경 정도로 이해해도 무관할듯 하다. 물론 시대상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에 오히려 시대적인 감각을 덧붙이기 위해 영조를 등장시키고,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내리기 위해 영조가 등장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즉 영조는 중심인물이 아니란 뜻)

이야기는 수습 저승차사가 된 화율, 연홍, 수강, 염색장 채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진행된다. 화율이 인간이었을 때의 이름인 우재와 징신의 이야기는 금지된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고, 그리고 수습 차사가 된 후에도 징신을 잊지 못해 징신을 찾아다니는 화율의 이야기와 화율의 실수로 시력을 잃게된 연홍의 이야기, 그의 정혼자이자 영조의 노여움을 사 혀를 잘리게 된 수강의 이야기, 전생을 기억하며 환생하는 채관의 이야기는 좀 복잡한 설정이군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세 이야기의 틀이 잡혀갔다. 물론 전생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좀 헷갈리기는 했지만...

일단 화율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이었을때 화율은 우재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버려지고 징신의 어머니에게 길러져 징신과 형제처럼 자랐지만, 어느새 둘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만다. 사랑을 느낀 상대가 사내였으니,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땠을까. 결국 죽임을 당하고 저승에서 차사가 된 화율은 징신을 찾아 헤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징신은 어디에 있는 건지.. 징신을 찾다 실수로 화율은 연홍의 시력을 잃게 만드는 실수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화율은 자신과 징신의 전생을 알게 되고, 저승에서 같이 수습 차사로 지낸 징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등의 충격으로 더이상의 진심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결국 마지막 선택을 내린다.

연홍은 양갓집 규수로 곱게 자라 수강의 배필로 일찌감치 짝지워졌으나, 영조시대의 정쟁 문제로 인해 집안의 남자들은 몰살당하고, 어머니와 연홍은 관비가 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림병으로 급사하고 연홍은 눈을 잃게 된다. 연홍은 수강을 찾아가지만 그 동안 겁탈을 당해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 그런 연홍을 잘 보살펴 준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연홍을 겁탈한 사람의 아우인 검송이었다.

수강은 연홍의 집안 문제에 얽혀 혀가 잘리고 염색장 채관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매일매일 연홍을 생각하지만 결국 연홍이 자신앞에 그런 처지가 되어 나타나자 외면하게 된다. 결국 수강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유학의 사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염색장 채관과 연홍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의 자신의 아내였던 연홍은 자신을 거부하고 아이를 유산시켜 버린다. 그후 채관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을 거듭하게 되고, 연홍은 자신이 놓아버린 자식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승과 이승에 걸쳐있는 몸으로 살게 된다.

이렇듯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간다. 특히 연홍을 되찾기 위해 환생을 거듭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채관을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결국 이번 생에서도 그들은 연결되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부부의 연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우재(화율)과 징신도 마찬가지. 서로를 연모하나 끝끝내 이어지지 못할 인연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연이란 것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인연.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때를 못맞춘 것이 아니라, 결국 인연은 거기까지였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연홍과 먼옛날 죽은 아이의 인연만이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을 뿐.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도 안타깝고 애틋했다. 특히 화율이 같은 저승차사가 된 징신을 알아 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징신은 아무말 없이 영면으로 들어가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어쩌면 징신만이 우재를 알아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또하나 재미있는 것은 상제의 존재이다. 모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자, 진실이자 거짓인 존재. 상제와 차사들의 대화, 상제와 화율의 대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절대적인 권능이라 생각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단박에 부숴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

첫 장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여성 작가답게 쫀득쫀득한 비유나 수식어, 수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등은 평소 간결하고 날 것같은 느낌의 글을 읽어오던 나를 조금 당황시키기도 했다. 또한 작가의 시선이 화율, 연홍, 수강, 염색장 채관으로 옮겨가면서 바뀌어가는 통에 처음엔 좀 헷갈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이 윤회를 거듭하던 인물이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누군지 헷갈릴뻔 했으나, 나중에 한번에 설명이 좌악하고 이루어져 난감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장들이 너무 나폴나폴 날아다니는 통에 집중이 좀 안된것도 사실이다. 감수성 예민한 독자라면 아름다운 문장들에 영화같은 장면을 상상했겠지만, 평소 간결하고 똑부러지는 느낌의 미스터리같은 장르 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는 책에 몰입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다는 게 단점일까.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비롭고 사랑스러웠으며, 때로는 안타깝고 측은하기도 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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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귀신아! 벚꽃
임인스 지음 / 보리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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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웹툰의 단행본화가 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예전 직장 생활할 때는 비는 시간에 몰래 몰래 웹툰을 보곤 했는데, 이젠 다양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까. 사실 요즘엔 웹툰은 거의 보지 않다 보니 이렇게 단행본이 되어 나와야 보는 일이 더 많다. 이 만화도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서평을 쓸수나 있었을까? 속으로 은근히 다행이라 되뇌고 있는 1人. (笑)

책 제목을 보면 '귀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나야 원래 공포물같은 걸 좋아하는데다가, 이렇게 더운 여름이다 보니 당연히 이런 소재에 눈이 간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이라 많이 다른 내용 전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저 귀신이라는 소재를 빌어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3 + 1명으로 압축된다. 어린 시절부터 귀신을 보는 아이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면서 자란 봉팔, 사고로 죽었지만 미련으로 이승을 떠도는 현지, 그리고 봉팔의 첫사랑이자 봉팔의 앞에서 자살하고만 혜림. 또하나는 사람은 아니고 귀신인지 뭔지 하는 존재로 혜림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와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 몽마(혹은 인큐버스)(일지도...).

사실 남들과 다른 존재란 것은 불편한 일이다. 특히 귀신을 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아주 감당하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스스로 혼자가 되어 고립되고 싶은 봉팔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상 봉팔은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런 봉팔에서 손을 내민 건 혜림이란 학원 친구. 늘 밝고 명랑하고 인기많은 혜림은 봉팔에게 다가오지만, 혜림에게는 무서운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고, 그와 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듯 보여도 실제로 혜림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산 자의 영역의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봉팔과 혜림은 비슷한 점도 있어 보이지만, 속성은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봉팔은 죽은 자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산 자들의 영역에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혜림은 산 자들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죽은 자들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봉팔의 사연만 알고 혜림의 사연을 몰랐을 때는 난 혜림의 편이었다. 늘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유치하며,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왕따시킨다는 생각을 하는 봉팔을 보며, 뭐 이런 거만한 녀석이 다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혜림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을때 그걸 외면해 버렸다.

결국 혜림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여전히 지박령이 되어 그곳에 머무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상대를 원망하면서. 현지는 비록 혜림의 사고에 휘말려 죽게 되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원망을 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죽었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텐데도 말이다. 오히려 특별한 아이였던 봉팔이나 혜림보다 평범한 현지쪽이 귀신이 되어서도 더 건전한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까?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 시절은 누구나 힘들다. 그리고 그 힘겨움의 무게는 그 상황은 모두 다를지도 모른다. 또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보며 넌 절대로 날 이해못할 것이란 것이다. 물론 사람들끼리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지라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지라도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상처하나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흉터자국 하나 없는 인간은 없다. 살면서 절망에 몸부림쳐보지 않은 인간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에 따라서 그 뒤가 달라진다. 

죽음은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상처입었다고 당장 죽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비 온뒤 땅이 굳듯 마음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혜림은 자신이 좋아하는 벚꽃처럼 한순간에 피고 한순간에 져버렸다. 물론 혜림의 마음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동정은 안간다. 오히려 죽은 뒤에도 남은 자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혜림이 그저 측은할 뿐이었다.

작화나 스토리가 약간은 서툴다는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이 고교생의 심리를 더욱 잘 잡아낸 것처럼 보인다. 싸우자 귀신아!의 다음 이야기도 나와있던데, 그건 또 어떤 이야기인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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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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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드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설만 해도 50여권이상에 달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워낙 다작 작가이다 보니 신간 읽기에도 바빠서 데뷔작은 읽을 엄두도 못냈지만, 그의 추리 소설의 시작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원물중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은 동급생으로 남녀공학에서 벌어진 참극을 남녀 학생이 풀어가는 이야기였다. 방과후 역시 학원물, 그러나 이번엔 여고가 배경이다.

여고를 배경으로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어른과 아이라는 대립적인 입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몰이해가 빚어낸 참극. 과연 그 속에 숨은 진실은??

지역에서 명문으로 불리는 세이카 여고에서 수학 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을 맡고 있는 마에시마는 어느날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듯한 공격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학생지도교사 무라하시가 남자 탈의실안에서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현장은 완전한 밀실.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를 살해했을까.

범인은 무라하시와 연인관계라 여겨진 동료 여교사 아소, 무라하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요코, 양궁부 주장 게이, 그리고 두뇌 명석한 미소녀 검도부 주장 마사미 등 용의자가 차례차례 등장하지만 모두에게 알리바이가 있다. 게다가 여자 탈의실은 잠겨져 있었고, 남자 탈의실에는 버팀목이 있어 완전한 밀실이었는데, 범인은 어떻게 그 밀실을 빠져나가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학교 축제 기간이 다가오고 학교는 축제 준비 분위기로 들썩인다. 그리고 학교 운동회 당일, 또 하나의 사건의 발생한다. 이번엔 체육교사 다케이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다. 과연 무라하시 사건과 이 사건의 연결 고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과연 범인과 범인의 트릭, 그리고 범인의 동기는 무엇일까.

학교라는 폐쇄적인 집단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범인은 대부분 학교 관계자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중 범인이??? 이 소설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은 밀실 트릭일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밀실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밀실 트릭이 나올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완벽에 가까울수록 멋진 밀실 트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완벽한 밀실트릭이 페이크였다니!! 여기에서 완전히 충격을 먹고 멍~~해져버린 나. 이것은 범인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출 또하나의 위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동기 또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나의 여고 시절이 언제였더라.... 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이러한 동기가 사람을 죽이고 싶게 만드는구나 하는 마음에 섬뜩해졌다. 하지만 억지로 그 시절을 되돌려보자면 어른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경우가 있고, 또한 어른들이 보이엔 별것 아닌 일에도 신경을 쓸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며, 낙엽 굴러가는 모습에도 꺄르르르하고 웃음을 터뜨릴만큼 감성이 예민하기도 한 시기가 바로 여고 시절인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198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전이나 되지만, 이렇게 여학생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잘 표현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다. 그것도 남성 작가가 말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에 나오는 여학생들 역시 요즘 아이들 못지 않게 무섭고 당돌하다. 25년전에 씌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대와 비교해 봐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정도다.

특히 게이의 이 말이 인상에 깊게 남았는데, 여고생들의 마음을 딱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모르시는군요. 사람을 쉽게 죽일수 있는 약이 있으면 저라도 가지고 싶을 거예요. 그게 언제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자기가 쓰게 될지도 모르고. 저희는 그런 세대예요." (416p)

의외의 범인과 의외의 동기, 그리고 치밀한 범죄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웃음이 픽하고 나와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에시마의 아내 유미코에 대해서 처음부터 의심을 했던 나였지만 왠지 사족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난 유미코가 학교 선생과 불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유미코가 등장하는 부분에 복선으로 깔려 있는 문장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학교 선생은 아니지만 불륜은 맞았달까. (왠지 어디서 본 설정인데.... 아무래도 모 작가가 다른 책에서 이 설정을 가져다 쓴 모양이다) 어쨌거나 여고생들의 이야기와 그 아이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하던 차에 유미코의 불륜 사실과 마에시마에 대한 공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결말 부분은 아무리 봐도 괜한 덧붙임이란 생각이 든다. 음. 데뷔작이니까 많은 걸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보면 납득이 좀 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전개에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그리고 선생과 학생의 대립, 어른과 아이의 갈등, 그리고 여고생과 학교라는 폐쇄적인 집단내에서의 암묵적인 동의, 여고생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절묘한 트릭, 동기는 데뷔작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오히려 뒤에 나온 작품중에 이것보다 못한 작품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랄까.

방과후는 글 잘쓰는 작가는 데뷔작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든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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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체 게바라 평전
시드 제이콥슨 외 지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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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을 읽은 것은 5~6년전쯤이었다. 평전이라는 장르때문인지 읽으면서도 꽤 어려웠다는 생각을 했었다. 며칠내내 체 게바라 평전에 매달려 있었고, 결국 다 읽을 수 있긴 했지만, 그를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2010년, 나는 다시 체 게바라를 만났다. 이번에는 두껍고 어려운 평전이 아니라 그래픽 노블이란 소재로...

체 게바라. 본명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르헨티나 출생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의 밑에서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수많은 책을 탐독했으나,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한 그가 바뀌게 된 것은 1952년 알베르토 그라나다와 함께 남아메리카 지역 6,400KM를 여행하게 되면서였다.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낀 남아메리카의 사정은 그의 정치의식을 자각하게 만들게 충분했다. 물론 2년전의 모터 자전거로 아르헨티나를 일주했던 일에서도 영향을 받았지만... 그때 그는 남아메리카의 가난과 정치적 불안, 그리고 미국 제국주의의 횡포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체 게바라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광범위한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그가 정치적 각성을 한 후 쿠바 혁명, 아르헨티나 혁명, 콩고 혁명, 그리고 볼리비아 혁명에서 숨을 거둘때까지의 행적을 보여준다. 하지만 적은 분량의 페이지수로 그의 일생의 대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적인 행적보다는 그가 이루고자했던 혁명 쪽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큰 장점은 체 게바라가 왜 혁명에 몸을 던지게 되었는지,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신념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통일을 꿈꾸게 만든 남아메리카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와 호세 데 산마르틴의 일화(사진 왼쪽 위)를 비롯해 당시 남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사정, 그리고 냉전시대와 비동맹국에 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특히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는 식민지 지배, 군사 독재 정권, 서구 열강의 개입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풍부한 자연자원에 대한 권한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손아귀에 넘어가 원주민들의 삶은 뿌리깊은 가난과 차별에 시달렸다.  

게다가 동서 진영이 갈려 냉전시대로 접어 들면서 공산권국가와 비공산권 국가가 나뉘어지게 되어 피델카스트로와 함께 이룬 쿠바 혁명후에도 소련의 개입이 있거나 미국의 개입이 있는 등 쿠바의 정치상황은 어렵기만 했다. 더불어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생겨나는 등 정치적 혼란은 계속 되었다. 또한 피델 카스트로 역시 처음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공산주의가 아니라고 선언하지만, 결국 미국에 등을 돌리고 소련의 공산권 진영에 합류하게 된다. (자세한 것은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이렇듯 이 책은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자세히 언급함으로서 왜 체 게바라가 그러한 신념을 갖고 혁명에 몰두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이해를 도와준다. 만약 이러한 설명들이 없었더라면 아르헨티나인인 체 게바라가 왜 쿠바 혁명에 가담하고, 아프리카의 콩고 혁명에 가담하고, 결국 볼리비아 혁명에서 사망하게 되는지 이유를 알수 없었으리라.  

체 게바라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평전을 읽으면서 어렵다, 어렵다 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읽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체 게바라의 신념과 혁명 의지가 어디에서 생겨났고, 그 결과 그가 어떠한 길을 걸어갔는지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진 독자의 이해를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그의 개인적인 삶이란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거의 없어 아쉽긴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체 게바라와 그가 이루고자 했던 혁명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평전이나 체 게바라에 대한 다른 책을 읽을 때 충분한 사전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체 게바라를 아직 못만나본 사람들, 그리고 궁금하긴 했지만 어떤 책을 먼저 접해야할지 몰랐던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 체 게바라 -

사진 출처 : 본문 中(위에서부터 차례대로 12P, 83+22+42+67P,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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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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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의 정신나간 정신과 의사 이라부 시리즈 제 3탄, 면장선거.
공중그네와 인 더 풀의 바보인지 천재인지 구별 안가는, 소 뒷발로 쥐 잡듯 수많은 우연으로 사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이번엔 어떤 사고를 칠까? 면장선거라는 제목을 보아하니 이젠 정치판에 뛰어드셨나??? 이런저런 궁금증을 안고 책을 펼쳤다. 역시 네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구나.

첫번째 단편인 구단주는 일본 최고의 신문사 대표이자 인기 구단의 구단주 다나베 미쓰오의 이야기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여전히 현직에서 미련을 놓지 못하는 다나베 미쓰오는 요즘 들어 부쩍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둠, 카메라 플래시등에 패닉 현상을 일으키는 등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에 끙끙대고 있다.

우연히 이라부의 진료실을 찾았다가 엄청 큰 주사 한 방 맞고, 이라부의 거침없는 말에 움찔하기도 한다. 현직에 대한 미련뿐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갖게 된 심정을 이라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곧 이라부의 말에 말려들어가는 다나베 미쓰오는 이라부의 말대로 말타기 전법으로 언론사 기자들을 뚫고 나가는가 하면, 폐쇄된 공간에서의 패닉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이라부의 컨버터블 카로 시내를 질주한다.

현명한 자는 물러설 때를 아는 법. 요즘 젊은이들은... 하며 혀를 끌끌차며 끝끝내 자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으려 했던 것이 자신의 욕심임을 알게된 다나베 미쓰오는 현직에서 물러나고 가상의 장례까지 치른다.

두번째 안퐁맨은 IT기업의 젊은 총수의 이야기이다. 안포 다카아키는 젊은 나이에 아이디어 하나로 일본에서 손에 꼽는 성공한 젊은이가 되지만 언제부터인가 히라가나를 쓰지 못하게 된다. 철저하게 합리성만 추구하다 보니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법을 잊어버리게 된 것. 이라부는 그에게 약년성 알츠하이머 진단을 내리고, 처방으로는 유치원 아이들과 히라가나 놀이를 하게 한다. (내가 보기엔 이라부가 그 놀이를 하고 싶었던 것임에는 분명하다) 이렇듯 엉뚱한 처방을 내리기 일쑤지만, 그게 잘 먹혀들어간다. (이런 걸 보면 능력이라 해야할지, 운이라고 해야할지...)

카리스마 직업은 40대에 전성기를 맞은 한 여배우의 이야기이다. 여배우란 직업은 대중들 앞에서 아름답게 보여야 할 직업이다. 그렇다 보니 남들앞에선 허세를 부리고 뒤에서 죽자고 젊어지도록 노력하는 기라키 가오루의 생활은 처절하다. 특히 조금이라도 과식하면 미친듯이 운동을 해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데, 늙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는 여배우들은 어찌 보면 참 안타깝다. 그러나 이 단편에 대해서는 딱히 좋은 느낌은 없다. 요즘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도 많은데 말이지...

표제작인 면장선거는 뭐랄까. 이라부의 태도도 그렇고, 고작 면장 선거에 미친듯이 달려드는 섬주민들에 대해서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되고, 정당한 승부를 위해 마을의 전통놀이를 부활시킨다는 점에서는 조금 가슴이 찡했다고나 할까.

역자의 글을 보니 앞의 세편은 실제 인물을 패러디한 작품이라고 한다. 역자의 글이 없었더라면 모르고 지나갈뻔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랄까. 뭐, 몰라도 그러려니 하고 읽어도 무방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일본인이 아닌 이상은 이렇게 패러디한 인물이 누군지 알길이 없기에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공중그네, 인 더 풀을 지나 면장선거까지.
이라부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었다. 물론 이라부 자신이 즐긴 것도 수두룩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전혀 변함없는 이라부에 질리기도 했다. (다른 식으로 생각하면 이라부가 변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하지만 순진함이란 걸 넘어 7살 꼬맹이 수준도 안되는 이라부의 행동이 면장선거에서는 극에 달한 것 같다. 뇌물 수수, 마더 컴플렉스, 식탐 대마왕 등등등. 그렇다 보니 이라부에게 있던 정이 다 떨어진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영 별로였다. (2편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나마 이라부의 조수인 간호사 마유미의 다른 모습을 봐서 좀 덜 식상했달까. 그러나 마유미도 신비주의로 남아 있는 게 더 나을뻔 했다. 여전히 웃기긴 하지만 씁쓸함이 더 많이 느껴진 면장선거. 만약 다시 이라부가 나온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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