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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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남녀가 한집에 산다면? 이상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다.
하지만, 다섯명의 남녀가 한집에 산다면? 무슨 사연이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게 된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남녀 둘이서 한집에 서는 건 동거고 여러명이 함께 사는 것은 공동생활이라니.
물론 나 역시 마음 잘 맞는 친구들과 한 집에 사는 걸 꿈꿔보긴 했지만, 그건 동성 친구들의 경우이고 이성과 함께 산다는 건 역시 고개가 저어진다. 물론 동성 친구들과도 한 집에서 산다는 건 매일매일 수련을 통한 득도의 시간을 보내야 하지만, 이성과 함께 산다면 상대에게 마음이 기울지 않도록 방어막을 단단히 쳐야 순조로운 공동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순조로운 공동 생활을 하는 다섯명의 남녀가 나온다. 나이는 18살에서 28살까지.
여자 둘, 남자 셋. 하는 일도 모두 다르고 가치관이나 사고방식도 다 다른 그들이 어떻게 한 집에서 그렇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서로간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사생활에 대해 일체 간섭을 하지 않으며, 상대에게 적당한 관심만 갖고,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으면 되니까.

스기모토 요스케는 21살의 대학생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요즘 대학생들처럼 생각없고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친한 선배의 여자친구를 좋아해서 그녀와 묘한 관계가 되기까지 한다. 

오코우치 고토미는 직장 생활을 때려치고, 무작정 상경한 아가씨로, 현재 잘 나가는 배우 마루야마 도모히코와 연애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직에 연애중이라 해도 진짜 연인으로 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필요이상의 만남은 없다. 게다가 혼자서 목을 메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루야마에게 열중하지만, 그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의외로 담백하게 행동하는 수수께끼의 여자다.

소우마 미라이는 잡화점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24세의 여성이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하기를 꿈꾼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일러스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라이는 술을 좋아하고 늘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 오기도 한다. 게다가 영화의 강간 장면만 모아 놓은 비디오를 남몰래 보기도 하는 조금은 독특한 아가씨랄까.  

고쿠보 사토루는 18세의 제일 어린 나이로 일명 밤일에 종사하는 녀석이다. 다섯명의 동거인중 제일 나중에 들어온 녀석으로 가장 험난하게 세상살이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이기도 하다. 마약도 하고, 몸도 파는 그야 말로 막나가는 아이랄까. 게다가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기벽도 있다.

이하라 나오키는 28세로 다섯명의 동거인중 나이가 제일 많다. 인디영화 기획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헤어진 애인과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인물로, 다섯명의 등장인물 중 가장 근면하고 성실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비밀이 하나 있다.

이 책은 다섯명의 인물들의 각각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다섯명의 인물 모두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조연이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다 보니 자신이 보는 자기자신과 타인의 눈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다르다. 뭐, 트러블 없이 살려고 하다 보면 자신을 더욱 감추고, 상대가 원하는 이미지로 살아햐 하니까 그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것을 까발려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들 적당히 상대에게 맞춰주고 살 뿐. 어쩌면 우정이나 사랑같은 감정들도 그런 것을 기반으로 생성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자아가 좀 덜 발달한 어린아이 시절일지도 모르겠다. 자아가 발전하고 타인을 의식할수록 자신을 숨기는 게 사람들 아닐까. 사회의 규범에 맞춰 살아야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자신을 숨기고 살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함께 살고 함께 생활해도 완전한 타인인 그들. 그중에서 누구하나 빠져도 아쉬울 게 없다. 이런 인간관계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스로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방법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얼굴에 분장을 하고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행진하는 가장행렬처럼 이들은 적당한 거리와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사는 철저한 타인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게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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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개와 서울고양이 1
황숙지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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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개라고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까. 쫓기는 고양이와 고양이를 쫓는 개가 먼저 떠오를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나쁜 사이를 의미하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도 있지만, 실제로 원숭이와 개가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니 - 우리 나라에서는 - 우리는 사이가 안좋은 사람들을 일컬어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고 하기도 한다. 시골개와 서울고양이에 나오는 만세(개, 시베리안 허스키)와 나빈(고양이, 터키쉬 앙고라) 역시 첫만남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만세는 경상도 시골 출신 K가 키우는 개로 시골출신답게 순박하고 소심하지만 식탐 대마왕이고, 나빈은 서울출신답게 깍쟁이에다가 럭셔리한 것을 좋아하는 앙큼한 고양이이다. 이렇게 종도 다르고 성격도 완전 다른 두 녀석이 만났을때의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사실 고양이란 녀석들은 같은 고양이라 해도 처음엔 경계하는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개와는 다르달까. 하지만 만세는 아직 자견(강아지)인데다가 성격이 좋아 나빈에게 곧 푹 빠지고 말지만, 나빈은 사사건건 만세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이 단행본에는 총 세편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첫번째는 만세와 나빈의 만남, 두번째는 나빈의 시골 생활, 세번째는 된장녀가 데리고 온 초럭셔리 라이벌의 등장이랄까? 일단 만세와 나빈의 만남편 에피소드를 보면 개와 고양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실 난 시골 출신과 서울 출신의 차이라고 보기는 싫다. 물론 나빈이 인터넷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만세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긴 하지만, 그건 말투의 차이일뿐 나머지는 개와 고양이의 차이점이다.

나빈이 입장에서는 갑자기 온 만세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음이 분명하고, 거기에다 나빈이 밥을 뺏아 먹지를 않나, 나빈에게 친한척을 하지 않나, 고양이인 나빈이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거슬릴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빈이가 깍쟁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란 것.
하지만, 이 둘 사이가 급선회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되니... 그건 만세가 병에 걸린 것. 파보 장염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사망할지도 모르기에 나빈의 마음은 미안함으로 풀어지게 되지만... 파보 장염이 아닌 만세의 진짜 병명은!?



한순간이라도 만세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졸이던 나빈은 슬그머니 만세옆에 눕기까지 하는데.... 사진 왼쪽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다. 아고, 이뻐라를 연발했던 장면중의 하나인데, 실제로 저런 모습을 보면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둘 다 꼭 껴안아 주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거의 100%의 확률)

오른쪽 그림은 나빈이 잠시 시골에 내려갔을때 만난 억세란 고양이가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얼굴에 상처자국이 있는 고양이로 만세가 사는 동네의 킹왕짱을 먹고 있는 서열 1위의 고양이다. 이런 억세가 나빈에게 반해서 사랑을 고백해 오는데...... 만세는 나빈이를 지켜야할 일념에 몸부림치지만, 농장에서 서열 꼴찌의 만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없다.



그 순간 나빈이의 외침이!!!!
이 장면에서 완전히 빵하고 터져 버렸다. 나빈이는 중성화 수술을 한 숫컷 고양이였구나. 앞에서도 만세가 나빈이를 가스나 가스나라고 부르고, 나빈 역시 숙녀의 엉덩이란 표현을 쓰길래 영락없이 암코양인줄 알았더니.. 이거 완전 대 반전!
월트 디즈니의 고양이 마리가 푱퐁 날아다니는 그림과 뒤에 서있는 억세의 표정. 어찌나 웃었던지....
이건 나빈이가 너무 예뻐서 생긴 오해가 아닐까?

이렇듯 시골 순례까지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만세와 나빈.
그러나 이들의 시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빈의 반려인 C의 사촌 크리스티나가 미국에서 놀러오면서 데리고온 라이벌인 아프간하운드 메리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근데 이거이거.. 크리스티나는 완전 된장녀.. C도 참 안타까운 어린 시절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게다가 메리는 암컷이란 말이다. 당연히 나빈이 입장에서는 이런 모습이 눈꼴시겠지....
결국, 나빈은 가출을 단행하고 마는데.....



이 책에서 내가 무척 예쁜 장면으로 꼽은 이 장면은 가출한 나빈을 만세가 데리고 오는 장면이다. 한순간 메리에게 한눈을 팔긴 했지만, 그래도 만세는 일편단심 나빈이라나?
순진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만세와 꼬리와 얼굴을 바짝 치켜들고 도도하게 걷는 나빈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고양이의 도도함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랄까.

사실 이 책에는 개와 고양이의 이야기만이 나오지는 않는다.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동물 이야기 + 인간들의 로맨스 이야기랄까? 나야 뭐, 원래부터 로맨스보다는 동물 이야기가 더 좋아서 나빈이와 만세를 비롯한 다른 등장 동물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이 갔지만, C와 K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게다가 시골 어르신들의 오해란.... 푸하하하하핫..... 둘다 아직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갈 뿐 고백조차 못했지만, 왠지 앞으로 나갈수록 둘의 사이도 진전될 듯!?

시골에서 자란 개와 도시에서 자란 고양이. 둘의 아웅다웅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쭈욱~~~
그리고 C와 K의 이야기도 앞으로도 쭈욱~~~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56P+83P, 103P, 139P, 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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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루의 일상
히구치 니치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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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동물 만화 대세는 단연코 고양이 만화가 아닌가 싶다. 내가 읽었거나 모으고 있는 만화도 고양이 만화가 대부분이다. 그러하기에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없어 난 늘 아쉬워했다. 고양이도 너무 좋아하지만, 개도 난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던 차에 눈에 띈 이 한 권의 책!
바로 코하루의 일상이다.

표지만 봐도 딱 느낌이 온다. 오호라, 이 녀석은 퍼그로구나. 그것도 사정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녀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그라고 하면 모 사금융 광고와 영화 맨 인 블랙을 통해 잘 알려진 견종이다. 쭈글쭈글하고 납작 눌린 얼굴과 통통한 몸매, 그리고 작은 귀와 짧은 털을 가진 퍼그는 일반적인 반려동물과는 좀 동떨어진 존재이다. 하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퍼그란 종을 골랐고, 코하루란 이름을 붙이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에서 코하루를 만나 함께 살아가는 건 건달 오빠지만, 실제로 히구치 니치호는 여성이다. 음.. 그렇게 따지면, 작가가 남성으로 바뀌어 등장하는 것이라 보면 될까? (笑)


코하루는 검정색 퍼그다. 코하루의 진짜 오빠인 다른 퍼그는 일찌감치 입양되었고, 코하루만 남았다. 강아지지만 워낙 강력한 포스에 사람들이 입양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사실 건달 오빠는 생긴것만 불량스럽지 강아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엔 치와와를 입양하고 싶어하지만, 코하루와 만나고서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다른 강아지들은 코노스케를 전부 무서워하지만 코하루만 코노스케와 맞짱 뜰 포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코하루와 코노스케의 첫대면 장면을 보면 다분히 코하루의 얼굴이 엽기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그림들을 보라. 코하루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녀석인지. 비오는 날의 산책을 위해 비옷을 입은 코하루, 벚꽃 놀이를 즐기는 코하루, 여름 물놀이를 즐기는 코하루, 장난감으로 놀자고 조르는 코하루.. 등등등...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코하루의 사랑스러움에 꺄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러나 가끔은 아래쪽 오른쪽 사진처럼 엽기적인 표정을 지을때도 있다. 이때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집착으로 코노스케에게 대드는 모습이다. (그래도 내 눈엔 너무너무 귀엽기만 하다)


코노스케와 코하루가 보내는 나날들. 이 둘의 모습을 보면 코노스케가 코하루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볼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산책을 해야하는 코하루를 위해 코노스케가 준비한 비옷을 보라... 사실 웃음이 빵빵 터지기도 했지만, 얼마나 다급하면 급조한 비옷을 입힐 생각도 할까. 비록 재활용 쓰레기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와닿는 장면은 하츠모데(새해 첫참배) 일화가 아닐까. 에마(소원을 적는 나무판)에 적힌 코하루의 건강이란 소원은 코노스케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는 듯 하다. 나 역시 매년 우리 강아지들의 건강을 기원하니까. (노령견이 많아서... 마음이 좀 아프다)


계절편 이외에는 감동편이 있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 목이 메이고, 가슴이 아팠다. 길잃은 강아지를 돌보게 된 코노스케. 처음엔 코하루는 이 녀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어느덧 마음을 열게 된다. 그후 종종 겐을 보러 놀러 가지만, 겐은 이사를 하고 만다. 겐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물 짓는 코하루.

다행스럽게도 겐과 다시 재회를 하지만...
그 뒤에는 더욱 더 큰 슬픔이 기다린다.


겐은 벌써 17살이나 된 노령견이었던 것. 겐의 건강 악화, 그리고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넌 겐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정말 감동적이었던 건 이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등을 맞대고 있는 코하루의 모습을 보면서 겐의 반려인은 겐을 잃은 슬픈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은 순간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늘 방정맞고 난리법석에 수선떠는 코하루였지만, 이렇듯 따스하게 사람의 마음을 감싸 안아 준다. 물론 일상의 그러한 모습도 사람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전해주지만 말이다.

이 코하루의 일상은 건달 오빠와 코하루와의 만남으로부터 여러 계절을 거치면서 코하루와 보내는 나날들을 앨범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각각의 에피소드는 짧지만 강력하다.
난 장담한다. 이 책을 보고 10초내에 웃음이 빵빵 터질거란 걸..
그리고 그 웃음은 거의 마지막까지 지속되다가 결국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게 만드리란 걸 말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9P, 18+20+33 +39+59+34P, 16+81P, 103P, 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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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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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내 책장의 한칸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으로 채워 놓았을 정도다. 이제껏 읽었던 소설은 추리 소설이 대부분. 그러나 이번에 집어든 괴소 소설은 블랙 유머 소설이다. 블랙 유머는 우울하거나 무서운 내용을 익살스러운 요소와 결합한 희극(喜劇)이란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쉽게 생각하면 세상을 비틀고 꼬집으면서 웃겨 주는 장르라 보면 될 것 같다.

괴소 소설에는 총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울적 전차와 하얀 들판 마을 VS 검은 언덕 마을은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차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속마음이 드러나는 글들을 보면서 사정없이 웃었다.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기 자신의 아이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아이라 착각하는 젊은 엄마 등 비좁은 전차안에서 오고가는 수많은 생각들. 하지만 진짜 빵 터진 것은 마지막 반전이 아니었을까?

하얀 들판 마을 VS 검은 언덕 마을은 버블 경제와 집단 이기주의인 님비현상을 재미있게 접목시킨 단편이다. 님비현상의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를지는 몰라도, 이 단편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의 집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혹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시체도 숨길수 있고, 시체도 다른 마을에 버릴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왠지 울적한 기분이 드는 건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였달까. 

할머니 골수팬의 경우, 연예인의 팬을 자청하는 건 아이돌을 좋아하는 젊은 사람들 뿐 만이 아니라 중장년층을 넘어 노년층도 지독한 팬이 될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연금 생활의 가난한 재산을 톡톡 털어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할머니. 늙은 사람이 주책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늙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면 묘하게 납득이 간다. 

고집불통 아버지의 경우에는 남아선호 사상을 가진 아버지와 그 밑에서 자라난 아들, 딸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을 아들에게 투영시키려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차별속에 자란 딸, 그리고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면서 자란 아들의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마지막 반전이 통쾌했다. 과연 아버지는 아들의 편지에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는 작품은 초너구리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과학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나오는 초너구리 이론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론이랄까? 날아다니는 너구리는 못봤지만 날아다니는 ****는 있었다. 푸하하하하핫.

어느 할아버지 무덤에 향을이란 작품은 노인의 삶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젊음을 되찾게 된다면, 젊었을 때 해보지 못한 일들을 다 이루어 보고 싶을 것이다. 두달간의 짧은 나날, 그리고 그 후에 느껴지는 자괴감. 죽은 후 자신을 기억해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듯.

마지막 작품은 인간 세상을 가장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부터 주변 인물이 모두 동물로 보이기 시작한 하지메. 인간의 본성이 동물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여우같은 여자, 늑대같은 남자, 소같은 사람, 너구리같은 인간 등 일상에서 속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동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척이나 공감이 갔던 작품. 근데 하지메의 정체는 고질라였어???? 

웃다가, 웃다가, 웃다가, 결국 씁쓸해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랄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미스터리 장르도 잘 쓰지만, 이런 블랙 유머 소설도 잘 쓰는군 이라고 감탄을 했다. 문득 호시 신이치나 츠츠이 야스타카의 쇼트쇼트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앞의 두 사람은 SF적 요소를 곁들인 블랙 유머였다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괴소소설은 일상적 요소가 많은 블랙 유머였달까. 나머지 두 작품인 독소 소설과 흑소 소설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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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의 수수께끼 -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90
나루미 쇼 외 지음, 유찬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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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청색의 수수께끼에 이어 세번째로 읽은 흑색의 수수께끼. 앞의 작품집들에 어느 정도 만족한 나였기에 흑색의 수수께끼도 많이 기대를 했다. 다른 책에 비해 분량이 적어서 좀 아쉽다라는 생각도 했지만, 어쩔수 없지란 생각과 함께 책을 펼쳤다.

그런데, 이게 뭐야..  첫 작품인 나루미 쇼의 화남(花男)을 보면서 이거 영 찜찜한데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제목의 의미조차도 확실히 잘 모르겠다,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미스터리라고 하는데, 도대체 뭘보고 미스터리라고 여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벼운 일상 미스터리라도 좋은데, 미스터리적인 면을 보여달란 말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달까. 

연상의 아내, 자신과 피가 이어지지 않은 아들, 유산한 아이, 그리고 바람피우는 남자. 그냥 평범한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납득할만도 하지만, 끝까지 이 작품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기억속의 수액 냄새는 도대체 뭐람??

저벅저벅은 우리에게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로 잘 알려진 노자와 히사시의 작품이다. 소녀 시절 당한 성추행의 기억을 안고 사는 여자 가즈코. 처음에는 재판장에서 누군가에게 증언하는 모습인가 싶었는데, 이야기의 진행 상황을 보니 고백을 받는 쪽은 독자인듯 싶다. 

어린 날의 상처로 남성과의 관계에서 움츠러들고 마는 가즈코의 고백. 그 고백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읽으면서 대충 짐작했던 내용이 나와서 음.. 그렇군 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뒷통수를 얻어 맞은 듯한 반전의 충격이! 이 작품집에 수록된 네편의 단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단편이었다. 

세번째 작품인 목소리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란 상처를 간직하고 사는 청년 다이치가 수수께끼의 중년 남자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각기 다른 아버지의 추억을 공유하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버지의 유품인 낚시대에 숨겨진 비밀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제목이 왜 목소리인지는 납득 불가. (설명이 부족하다고나 할까?)

마지막 작품인 가을날 바이올린의 한숨은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명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을 등장시키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1922년에 6주간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외의 것은 모두 픽션이라 보면 된다. 

케이스는 그대로이지만 안에 들어있던 바이올린만 바꿔치기 당했다. 과연 누가 아인슈타인의 바이올린을 훔쳤을까? 그리고 범인들의 대담한 범행뒤에 숨겨진 웃지못할 진실은??
쇼와시대를 배경으로 당시 풍경을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은 신선한 재미를 주었지만, 그외의 것에서는 그다지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난 시대물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왠지 붕뜬 느낌이었달까? 

이제껏 읽은 ~색의 수수께끼 시리즈 중 제일 실망한 것이 바로 흑색의 수수께끼이다. 미스터리같지도 않고, 또 미스터리라고 해도 납득도 잘 안가고, 재미도 없는 작품들이 모여있었다고 할까. (노자와 히사시의 작품만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나온 책을 보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도 실려 있던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 빠졌는지도 의문... (왜 일까?) 마지막으로 읽을 백색의 수수께끼는 날 배신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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