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수수께끼 -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18인의 특별 추리 단편선 밀리언셀러 클럽 91
도바 료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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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드디어 마지막이로구나. 적색 - 청책 - 흑색의 수수께끼를 지나 백색의 수수께끼를 마지막으로 읽었다. 생각보다 강렬한 작품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일본 작가의 소설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던 수수께끼 시리즈. 그중 세번째로 읽었던 흑색의 수수께끼는 사실 좀 별로였지만, 나머지는 어느 정도 만족을 했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읽은 백색의 수수께끼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심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척 재미있었다는 것. 그리고 독특한 소재를 등장시켜 무척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백색의 수수께끼는 에도 시대의 범죄를 묘사한 시대물 한 편, 공공기관과 그에 관계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 두 편, 그리고 깜짝 반전이랄까, 간단한 서술 트릭의 묘미를 맛보았던 마지막 작품 한 편이 실려 있다. 특히 그저께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물을 읽었던지라 첫번째로 나온 에도 시대물인 사령의 손을 보고 미소가 지어졌다. 와우, 여기에서도 에도 시대물을 만나보는구나, 하고.

사령의 손이라. 제목부터 왠지 으스스하다. 도바 료의 <사령의 손>은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이다. 무사의 셋째 아들인 나미노스케는 가문을 이을 장손이 아니라 그런지 한량처럼 생활한다. 낚시에 푹 빠져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는 낚시로 익사체를 건져낸다. 목에 남은 희미한 손자국. 과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도 시대라고 하면 무사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던 때이기도 하지만, 상인 계층의 급속한 성장이 돋보이기도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도 시마야다라는 가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중심을 관통한다. 동반자살, 죽은 마고에몬의 사령의 등장, 수상한 수험자의 등장, 시마다야의 여주인의 죽음과 가게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수험자 교에이와 그의 처의 실종 등 사건은 점점 커져간다. 오캇피키인 오노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던 나미노스케는 이 모든 사건의 뒤에 한 사람의 욕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죽은 자의 영혼보다 산자의 어두운 마음이 더 무서운 법인지도... 에도 시대의 풍경과 당시 일어났을 법한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과 범인 색출이 무척 흥미로웠던 단편.

<검찰 수사 특별편>의 경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공공 기관과 그 관련 인물들이 등장한다. 일본의 마약 밀수 루트를 추적하는 검사와 사무관을 비롯해 현경의 경찰, 형사, 마약 수사국의 직원들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많은 공공 기관과 사람들이 등장해서 조금 헷갈리기도.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건 같은 공공 기관에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각개전투를 치르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공조 수사는 커녕 서로에게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경찰과 검찰의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일본의 수사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이긴 하지만, 경찰의 부패와 공공 기관 사이의 알력 다툼 등이 흥미롭게 묘사된 단편이랄 수 있겠다. 특히 작가 나카지마 히로유키는 법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전혀 위화감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920을 기다리며>는 공공기관에 속해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무래도 비밀 기관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진짜 일본에 존재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흥미로웠다. 특히 검찰 수사 특별편과 마찬가지로 서로 공조하지 않는 기관들의 모습과 기관 내부에서도 적과 동지가 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남자의 죄책감이 만들어낸 거대한 연극 한 판, 그리고 약간 과정되어 있지 않나라고도 볼 수 있지만, 마치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있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마지막 작품인 <방탕아의 귀감>은 짧지만 허를 찌르는 듯한 반전이 무척이나 유쾌했던 작품이다. 일종의 서술트릭의 재미를 맛보기도 했다고 할까. 이런 트릭은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기 힘들지도. 부패한 경찰과 부패한 병원장의 이야기로 사람의 정신을 딴데로 돌리더니, 결국 이런 반전을 주는구나 싶었던 단편.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들의 미스터리 소설을 모아 놓은 수수께끼 시리즈. 때로는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을 만나 아쉬움도 컸고, 실망도 컸지만, 한국에서 한작품도 번역되어 나오지 않은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또한 한국에서 번역되어 나온 작가들의 작품은 미리 접해봄으로써 향후 책의 선택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비록 오탈자가 적잖이 보여 아쉽기는 해도 책 내용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신선했으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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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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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수시로 변해간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인간들이다. 물론 외형적인 모습은 자주 변하겠지만, 인간의 내면인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시대물을 읽으면서 항상 먼저 드는 생각은 이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별로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다.

총 7편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에도 시대 시타마치를 중심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막부 시대, 사무라이가 전성하던 시대이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당시 신흥 세력으로 부상한 상인들과 서민들에 대한 이야기와 당시 범죄를 수사하던 오캇피키를 등장시켜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유명한 초밥가게 오우미야의 주인 도에베 살인 사건의 범인을 쫓는 <외잎 갈대> 이야기는 아버지와 첨예한 갈등을 하던 딸의 이야기이면서, 어린 시절 주린 배를 부여잡고 살았던 히코지의 첫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오히려 살인 사건 보다는 히코지가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나가 더욱 흥미로웠던 작품인데, '적선하는 것'과 '돕는 것'의 차이에 대한 문장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배웅하는 등롱>은 아가씨의 연애성취를 위해 매일밤 축시에 신사에 가야만 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피고용인의 입장에서는 고용인의 명을 따라야만 했던 시절, 피고용인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했다. 매일밤 그녀를 따라다니는 등롱, 그것에는 따스한 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소녀에게는 팍팍한 삶을 이겨낼 수 있는 위안이 되어주지는 않았을까.

<두고 가 해자>는 당시의 어둠이 칠흑같았던 것에서 기인한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이며,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았기에 요괴의 탓으로 돌리는 일도 많았다. 물론 알고 보면 실제 요괴는 아니지만,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둠보다 더 어두웠기에 그런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잎이 지지않는 모밀잣밤나무>의 경우 그 사연이 무척이나 애틋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저 기억속에서는 자신을 위했던 아버지로 기억하고 싶었던 한 소녀의 마음이 바로 이런 기이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축제음악>의 경우 이 축제음악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깜짝 놀랐던 경우이다. 입으로만 누군가를 늘 죽이는 말을 하는 한 소녀의 사연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던가.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는 말을 가려서 할지어다. 또한 이 단편은 요즘 말로 하면 무차별 공격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츠지기리의 잔혹성까지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당시에도 요즘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보니 정말 세상은 변해도 인간만은 변치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발씻는 저택>은 부유한 상인의 집에 새로 들어온 후처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작은 병으로도 사람이 죽고, 아무일도 아닌 것으로 사람을 죽이던 시대였던만큼 지금보다는 사람의 수명이 훨씬 짧았다. 그렇다 보니 재혼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밥이라도 배불리 얻어먹기 위해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일을 했던 새어머니의 사연은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저지른 일에 대해 약간의 동정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과욕은 금물이라고 했던가. 지나친 욕심이 오히려 화를 불렀구나. 

마지막 작품인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딸을 잃은 애틋한 부모의 마음에 대한 사연을 담고 있는 듯 보이나, 그 속에 숨겨진 서로에 대한 증오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왠지 이 책을 읽다 보면 깜짝 반전에 놀라게 된다. 바로 이 단편도 그런게 아니었을까. 세상은 사랑하면서 살아갈 시간도 모자란데, 이렇듯 서로를 증오하며 사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참 무겁다. 

미미여사의 에도 시대물인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는 후카가와에 전해지는 7대 불가사의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무슨무슨 마을의, 무슨무슨 학교에 전해지는 7대 불가사의 등 이런 기이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이야기는 현대물에도 무척이나 많은 편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그것은 요괴의 장난도 신의 장난도 아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에게서 기원한다. 그러하니 따지고 보면 불가사의한 일이 없는 곳이 없다는 것이 맞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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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 이야기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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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의 소설을 읽어 보면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바로 퓨어계와 다크계가 그것인데, 퓨어계는 애틋하지만 따스하다면, 다크계는 잔혹하고 냉혹하다. 하지만, 늘 똑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그의 후기이다. 머뭇거리며 주저하면서 쓴 듯한 그의 후기를 읽다 보면 이 작품을 쓴 작가가 후기도 쓴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겸손함을 넘어 비하까지 하는 느낌의 글을 보면, 소설의 그 자신만만한 스토리 전개는 어디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난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된듯한 느낌이 든다. 바로 소생이야기를 통해서. 

작가의 홈페이지와 휍 매거진에 올린 일기를 바탕으로 가필하고 수정해서 펴낸 단행본인 소생이야기는 오츠이치의 개인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통 소설가의 경우, 독자의 입장에서 그 소설가의 개인적 삶을 공유하기가 힘든 면이 있다. 수필같은 경우나 공개 일기같은 경우에는 어느 정도 개인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지만, 소설의 경우 작가가 자신을 얼마나 잘 숨기느냐에 따라 작품속에서 작가를 전혀 투영해볼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난 오츠이치를 무척 좋아하고, 그의 작품은 퓨어계이든 다크계이든 다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작품 자체와 그의 후기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이랄까, 위화감은 좀처럼 없어지질 않았지만, 이 책을 통해 오츠이치란 작가에 대해 어느 정도 선까지는 접근했다는 느낌이 든다.

대학생활과 그후 생활을 했던 아이치 편의 이야기, 그후 도쿄에서의 생활과 가나가와로의 이사까지 총 세파트로 나뉘어 씌어진 이 책은 일종의 공개 일기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는 작품으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나 지나간 일에 대한 추억등을 비롯해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과 다른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츠이치의 문체로 씌어져 있다. 바로 소심체로 말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물침대에서 금붕어를 키우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찰, 사치와 고양이, 그리고 중고 소파를 구입했을때 함께 따라온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말 엉뚱하고 기발하달까. 분명 작가의 일상을 담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상은 상상과 망상으로 결합되어 또다른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만약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일기였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기이면서 적당한 거짓말을 덧붙여 일기 형식의 소설이 탄생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17살의 나이에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란 작품으로 천재 작가 소리를 들으면서 데뷔한 오츠이치. 어린 나이의 데뷔도 그랬지만, 세간의 평가인 '천재작가'란 수식어가 어린 작가에게는 뿌듯함도 가져다 주었겠지만, 향후에 나올 그의 책에 대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런 그의 마음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자기 작품에 대한 비하성, 자학성 가득한 발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왠지 그의 마음의 외로움이나 힘겨움을 엿보았다는 느낌이랄까.

소설이 아닌 일기 - 비록 상상과 망상이 결합되어 있지만 -로 만나 본 오츠이치는 색달랐다. 첫번째 작품으로 큰 화제를 몰고 왔기에 그후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기는 하지만, 여전히 난 오츠이치의 팬으로 그의 글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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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1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늑대왕 로보 시튼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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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표지가 나달다달해지도록, 책장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인 시튼 동물기. 지금은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 하나가 바로 늑대왕 로보의 이야기이다. 수십년만에 다시 만난 늑대왕 로보. 가슴이 뛴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동물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파리 그랜드 살롱에서 '잠자는 늑대'란 그림으로 입선한 후 다시 늑대를 그린 작품인 '늑대의 승리'를 출품하지만, 당시 화단을 지배했던 기독교적인 인간중심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파리 미술계는 그의 그림을 낙선시켰다. 특히 윌리엄 브라이너의 "영혼이 깃든 인간을 영혼이 깃들지 않은 야생동물의 희생자로 표현한 것은 신이 아닌 자연이 만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바꿔말하면 이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59p)라는 평가는 당시 파리 화단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렸던 그림인 '늑대의 승리'의 낙선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간 시튼은 뉴멕시코 커펌포의 늑대왕 로보 이야기를 듣고 뉴멕시코로 향한다.  
오랜 기간동안 목장을 습격해 소와 양을 죽여왔던 로보는 늑대가 아닌 악마로까지 여겨지는 존재였다. 독이 든 미끼를 설치해도 덫을 설치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 로보. 시튼은 로보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로보를 꼭 잡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

시튼은 일반적인 독미끼가 아닌 인간의 흔적을 최대한도로 지운 독미끼를 사용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로보는 도대체 어떤 능력이 있기에 이렇듯 인간의 함정을 잘 피해나갈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인간을 능멸하듯 독미끼위에 배설까지 해놓는다. 덫을 놓아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파묻은 덫은 파헤쳐져 있기도 하고, 아무 늑대도 잡히지 않은채 덫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모든 덫을 한군데에 모아 놓고 인간을 조롱하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로보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다시 읽으니 로보는 정말 위대한 늑대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무리의 수는 적지만 무리를 보호하고, 목장에서 인간들 보란듯 사냥을 하면서도 절대 잡히지 않는다. 또한 다른 늑대무리 역시 로보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있는 듯 다른 늑대들 조차도 독미끼나 덫에 희생되지 않았다. 간간이 코요테만 걸려들 뿐.

동물을 좋아해 동물화만을 그렸던 화가인 시튼은 왜 로보와의 싸움에 그토록 치중했을까. 인간의 생각과 논리를 가뿐히 뛰어 넘는 로보에 대한 흥미만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을 경멸하듯하는 로보에 대해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더해졌을까. 아마도 둘다가 아니었을까. 물론 로보가 당시 커럼포 주변의 목장에 큰 피해를 주었다는 건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늑대의 영역에 들어와 늑대의 먹이인 버팔로를 몰살시키고 그곳에 목장을 지은 건 인간이 아니었던가. 늑대는 원래 경계심이 강한 동물이기에 인간 주변을 얼쩡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목장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상태에서 늑대의 먹이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렇다 보니 늑대는 목장에 있는 소나 양을 노릴수 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로보를 원망하지만, 로보 역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인간의 독미끼나 덫에 희생되어 간 다른 늑대를 보면서 인간을 더욱더 경계하게 된 것은 아닐까. 로보의 능력은 악마의 능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로보가 더욱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먹지도 않을 양이나 소를 죽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로보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행위는 인간의 침입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을까.

시튼은 로보와의 대치 상황에서 수없이 갈등한다. 진정 로보를 잡는 것이 옳은 일일까를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나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고, 자신의 지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없애려고만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하지만, 시튼은 로보를 만나고 싶었고, 꼭 잡고 싶었다. 독미끼로도 덫으로도 잡을 수 없었던 로보를 잡을 단 한가지 방법. 그것은 로보의 짝인 블랑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연상태에서의 늑대는 우두머리 수컷과 우두머리 암컷이 다른 늑대를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물론 새끼를 낳는 것도 우두머리 늑대 부부에 한정된다. 그것이 늑대 무리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영리한 로보를 잡기 위해서 블랑카를 먼저 잡아야했다. 블랑카를 잡고, 그 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면서 읽었다. 영리하고 경계심많던 로보가 블랑카를 잃은 후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로보의 블랑카를 향한 애정은 얼마나 컸던가.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무리에게 버림받은 로보, 로보는 물과 음식을 거부한채 자신이 다스리던 골짜기만을 바라보다 굶어 죽었다.

로보, 블랑카를 잃은 너의 고통이 얼마나 힘겨운 것이었는지 잘 알았다. 힘을 잃은 사자, 자유를 빼앗긴 독수리, 짝을 잃은 독수리는 반드시 죽는다고들 하지. 실의와 절망으로 마음이 부서져 버리기 때문에... 정말로 그렇다면.... 로보는... 그와 같은 고통을 한꺼번에 짊어진 꼴이 돼버렸어. (274~275p)

로보를 포획했지만,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로보는 죽었지만 그게 인간의 승리일까. 인간이 무기와 독미끼, 덫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즉 자연상태에서 로보와 감히 대치할 수 있었을까.

그후 로보와 같은 미국 회색늑대는 인간들에 의해 멸종 단계를 밟아갔고, 결국 멸종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코요테같은 동물들이 채워나갔다. 현재는 미국 늑대를 복원하는데 성공했고, 멸종위기까지 갔던 버팔로도 그 수가 많이 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 국한되어 있다. 즉, 언제 다시 멸종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하위에 두고 지배하에 넣으려는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은 과연 어디까지 향하게 될까. 

늑대왕 로보의 이야기는 늑대와 인간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도, 악마같은 늑대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간의 잔혹한 폭력성앞에 죽어간 동물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인간에 대한 투쟁의 이야기라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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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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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소식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늘 평균 이상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이다 보니 늘 기대가 먼저 앞선다. 섬뜩한 제목과 나를 응시하는 듯한 눈이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기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기만 했다.

한 여성의 교통 사고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부분. 그 사고 정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처음부터 조금 긴장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는 자신의 사고, 그리고 그녀의 한맺힌 한 마디의 말...
시작부터 너무 강렬해서 난 금세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한 번 잡은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사고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바텐더 아메무라 신스케는 묘한 손님을 맞게 된다. 아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바에 찾아온 손님. 그 손님과의 대화가 끝나고, 퇴근하는 순간 신스케는 둔기로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해 쓰러진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 신스케는 자신의 일부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1년 전에 발생했던 그 교통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잃어버린 기억에 혼란스러워 하는 신스케는 지인들을 만나면서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그날의 기억만이 사라진 것일까.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1년전 발생한 교통사고의 피해자의 유족이란 걸 알게 된다. 정황을 조사해 보니 자신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는 신스케만을 공격한 것일까.
신스케가 조사를 할수록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신스케에게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때 신스케의 앞에 나타난 루리코란 여자. 신스케는 지금 동거하고 있는 여성이 있지만 금세 루리코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신스케는 그의 앞에 점점 드러나는 진실에 경악하게 된다.

초중반부까지는 몰입도가 높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한숨 섞인 말이 내 입에서 자꾸만 흘러나왔다. 루리코의 정체를 파고 들면서 혹시 정말 그녀는 유령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 띠지에 나와 있는대로 호러 미스터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혼란스러워졌다. 호러물에서 SF물로 바뀌는 듯하다가 결국 영혼의 빙의라는 것으로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에 이거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이 맞아, 라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매사 똑부러지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난감한 이야기라니. 루리코가 '그녀'가 되게 된 것이 빙의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죄책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 억지로 납득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노골적인 성애 묘사는 차치하더라도(사실 난 그것도 별로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그녀가 신스케에게 한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신스케가 사고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라고 생각한다면, 신스케에게 그런 행동을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미나에의 남편 레이지의 자살도 의문스럽고, 형사인 고즈카가 죽은 상황도 납득이 안된다. 게다가 에지마의 죽음도 납득이 안된다. 그녀의 눈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느꼈다면 레이지의 자살이나 에지마의 죽음은 억지로라도 납득할 수 있지만, 그녀가 고즈카를 죽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루리코는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녀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이 책이 단점만이 부각되는 책은 아니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줌으로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을 약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중반부까지의 스토리 몰입도는 높은 편이며, 독특한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도 인정해줄만하다. 하지만 왠지 남의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이 위화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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