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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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 제목이 알파벳의 첫글자인 A로만 적혀져 있는 것에, 24명의 집단 자살이란 문구에 혹해 호기심에 구입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한국 소설을 기피해 오다시피 한 내게 있어 하성란 작가는 처음 접하는 작가다. 10년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이라니,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내가 한국 소설을 얼마나 오랫동안 읽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얼추 대학무렵부터였으니... 십년도 넘었다.  

표지 그림을 보면 반은 벌거 벗은 여성들이 이리저리 엉켜있고, 중간중간 태아의 모습도 보인다.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인듯 한데, 뭔가 모를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들의 표정이 묘하게 웃는 듯 하기도 하고, 묘하게 슬퍼 보이기도 한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진행되고, 시점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때로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 화자인 여성이 앓고 있는 코르사코프 증후군의 한 증상인 작화증(作話症)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것은 아무런 귀띔없이 이루어지며, 중심 인물도 이사람에서 저사람으로 옮겨가는 등 처음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금세 난 스토리 자체에 빠져들게 되었다.  

소설속의 화자는 '신신양회'라 불리던 시멘트 공장에서 태어난 한 여성이다. 그 여성의 어머니는 '신신양회'를 총괄하던 '어머니'와 함께 살던 여성이었다. 일명 사교집단의 교주로로 보일 수 있는 어머니와 그의 곁에 있던 총 7명의 여성들은 각각 아비 없는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영문에서인지 어머니를 비롯해 엄마들, 삼촌을 포함한 24명이 자살하고 만다. 그후, '신신양회'는 폐쇄되고 만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오래전에 폐쇄된 '신신양회'를 다시 부활시키고자 한다. 그러는 와중에 그곳에서 일어났던 24명의 자의에 의한 타살 사건에 대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중심 인물이었던 어머니는 과연 누구였으며, 아이들의 엄마는 도대체 어떤 인물들인가. 어머니는 어떻게 '신신양회'를 만들었으며, 엄마들과 어머니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또한 엄마들은 왜 아버지 없는 자식들을 낳아 키우게 된 것일까. 

소설은 수없이 많은 의문을 던진다. 그녀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이유와 그녀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이고, 그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24명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진실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책은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이유라거나 그들이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등, 그 과정에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서서히 드러나는 어머니와 엄마들의 과거. 그리고 그들의 남겨진 자식들이 선택한 삶이 교차되면서 그려진다.

일부 엄마들의 사연이 나오면서 역시 그런 이유였군, 하는 마뜩찮은 납득도 있긴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들이 만들고자 한 그들만의 세상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자에 의지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자신들만의 힘으로 아이를 키우고자 했던 열망은 현대의 결혼제도나 남성 중심의 사회와도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그 꿈은 무너져내렸고,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선대들의 오류와 그걸 답습하는 후대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그녀들은 그녀들이 원하고 이루고자 했던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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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의 눈 2
미치오 슈스케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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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평화롭고 조용해 보이는 시로토우게 마을. 그러나 그곳에서는 몇년전 부터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벌써 네명의 실종 사건이 일어났지만, 무사히 돌아온 아이는 없었다. 돌아온 아이가 있긴 했지만, 유체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고, 몸은 여전히 찾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시로토우게 마을 주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 속의 인물들의 의문의 자살, 그 사진에 찍혀 있던 등의 눈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작가 미치오와 심령현상을 탐구하는 마키비, 그리고 그의 조수인 키타미는 시로토우게 마을 주변에서 일어난 심령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시로토우게 마을로 향한다. 미치오는 폭포 근처에서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마키비는 유괴범으로 몰리는 등 그들 주변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아키요시장에서 예전 시로토우게 마을에서 있었던 '신(神) 죽이기' 사건. 그것은 마을의 역병에 분노한 마을 사람들이 수행자들을 텐구로 몰아 학살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의 영혼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복수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미치오 일행은 그곳에서 또 한사람의 자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귀신을 본다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 한편, 처음 실종 살해된 소년의 할아버지 누카자와씨에게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에 대해 이야기하자 누카자와 씨는 고비라사라는 말을 하며 두려워하는데.... 

2권은 시로토우에 마을의 피로 얼룩진 역사를 드러내며 미스터리를 한층 더 강화하는 분위기이다. 게다가 누카자와 노인이 중얼거린 고비라사라는 말과 관련된 여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혼을 볼 수 있는 아이, 영감이 뛰어난 마키비의 조수 키타미 등 등장 인물도 범상치 않은데다가,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도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 뿐이다. 도대체 아이들의 의문의 실종과 자살자들의 접점은 무엇이고, 이 모든 사건뒤에 감춰져 있는 거대한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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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피는가 1 - 코믹 라르고 Comic Largo
히다카 쇼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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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카 쇼코의 신간 소식에 무척 반가운 마음이다. 워낙 그림도 좋고 스토리도 좋은 작가라 일단 믿고 구입. 제목도 참 예쁘지만, 표지 일러스트에 나온 청년도 참 미청년이로구나~~ 무표정한 얼굴, 눈동자마저 슬며시 돌려버린 새침한 표정. (일러스트를 보고 가슴이 뛰면 어쩌냔 말이다, 주책맞게스리.,...)

『꽃은 피는가』는 38살의 샐러리맨 사쿠라이와 19살의 대학생이자 사촌들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인 요우(요우이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쿠라이는 광고 기획사에서 제법 잘나갔던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는 일중독자에다 연애만 하면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지하철 역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요우와 사쿠라이의 인연은 끊어질 듯 하면서도 묘하게 이어진다. 처음엔 요우와의 만남, 두번째에는 요우의 사촌인 쇼타와 타케(타케오)와 만나면서 사쿠라이는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세상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요우의 첫인상은 건방지고 무뚝뚝했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쌓아올린 방어벽이었을 뿐, 실제로는 상처받기 쉬운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보면 요우와 사쿠라이는 묘하게 닮아있다. 다른 점이라면 사쿠라이가 좀 흥분을 잘하는데다가 덜렁대는 면이 있고, 요우는 지나칠 정도로 침착하고 말이 없으며, 때론 사쿠라이보다 더 어른스럽게 굴기도 하지만, 때때로 마음을 슬쩍 엿보이기도 한다는 것. 사쿠라이에게 돌아가라고 종용하거나 하면서도 다음부터는 대문으로 오라고 한다거나, 그림에만 관심이 있느냐, 라는 등의 말은 묘한 여운을 남긴달까.

사쿠라이의 광고 기획사 샐러리맨으로서의 일과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도 잘 그려내지만, 히다카 쇼코는 등장 인물들의 직업적인 면에서도 무척 섬세하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한때는 촉망받은 광고 기획자였다가 지금은 한물간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행동력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또한 요우는 미대 재학중으로 유화를 그리는데, 요우의 그림 그리는 모습도 무척이나 잘 표현되어 있어 그것 또한 또하나의 즐거움이었달까.

처음엔 불편하게 여겼던 감정, 가까워지고 싶지만 누군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이 쓰이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던가. 게다가 사쿠라이보다 거의 스무살은 어린데다가 같은 남자. 사쿠라이로서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미리 방어벽을 쌓으려 했던게 아닐까. 그 방어벽에 금이 가는 순간의 사쿠라이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뒷편에는 요우가 마음을 닫고 살게 된 계기와 요우와 쇼타, 타케가 한 집에서 살게 된 사연이 나와 있다. 어린 마음에 각각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야 했던 요우와 쇼타를 보는 타케의 마음도 무척이나 애잔했달까.  

히다카 쇼코의 작품은 초기작부터 그림도, 스토리도 무척 괜찮았고 마음에 깊이 남았었다. 요번에 나온 신간인『꽃은 피는가』는 그림도 스토리도 한층 더 무르익었다는 생각이다. 원래 사람의 심리묘사를 잘 포착해낸 작품을 그려낸 작가이지만, 요번엔 더욱더 그렇다고 할까. 읽으면서 감탄을 거듭했던게 바로 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싹을 틔운 꽃씨.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될까. 2권이 너무나도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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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 샤통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 뜨로띠 뜨로따
디안 바르바라 지음, 류재화 옮김 / 토마토하우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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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담장위에서 턱시도 냥이가 귀엽게 한 발을 내딛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꺄아~~하고 소리를 지를뻔 했다. 워낙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고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책을 자주 보는데, 정말 이렇게 사실적인 고양이 그림은 드물었던 것 같다. 보통 동화책의 특성도 있다 보니 사실적이기 보다는 약간은 과장되거나 생략되어 그려지는 게 보통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수염 하나하나까지 섬세했달까.


책 표지를 열면 바구니 안에 앉아있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가 보인다. 바로 요 녀석이 풍 사통이란 녀석으로 시골의 한 농장에 살고 있다. 턱시도 무늬에 꼬리끝에는 하얀 포인트, 아쿠아블루빛의 눈동자를 가진 풍 샤통의 눈은 초롱초롱 호기심으로 빛난다.


큰 사진에서도 보았듯이 풍 샤통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다. 바구니안에 있는 풍 샤통을 꺼내면 왼쪽 사진과 같이 된다. 오른쪽을 보면 화살표가 그려진 쪽에 풍 샤통이 직접 책을 통해 움직인다는 걸 알수 있다. 이걸 보면서 혼자 환성을 지르고 싶었다. 아흑.. 정말 움직일 수 있어.... 처음에는 풍 샤통을 반대편으로 집어 넣었지만, 그렇게 하니까 머리가 반대쪽으로가서 머리부터 집어 넣었더니 그림에 꼭 맞았다.


풍 사통이 머리를 쏙 내미는 장면. 이렇게 풍 샤통은 마당에서 집안으로, 뒷마당으로 다니면서 동물 친구들을 만난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뭔가 하얀 물체가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한 풍 샤통은 다른 동물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듣는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강한 동물이라 풍 샤통은 그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궁금한 게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닭은 거만을 떨며 잘난체를 하고, 암소는 농담이나 하며, 돼지는 밥을 못먹어서 화만 낸다. 그러나 개는 친절하게 풍 샤통에게 자신이 잘 지켜보겠다고 약속을 한다. 마음을 푹 놓은 풍 샤통은 한가롭게 낮잠을 즐기고, 눈을 뜨니 해가 질 무렵이 되었다. 어머나, 깜빡 잊고 있었네. 그러나, 그 순간 풍 샤통은 자신이 찾아 헤매던 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과연 그건 뭘까~~요?


이 책은 풍 샤통이 농장 구석구석을 다니는 장면이나 풍 샤통이 직접 다음 장소에 나타나게 해 놓은 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다. 게다가 삽화가 정말 선명하고 섬세해서 그림을 보는 재미도 빠뜨릴 수 없다. 평화로운 농장의 풍경이며, 등장하는 동물들의 모습도 실제의 모습을 보는 듯 섬세하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난 동화책을 읽으면 늘 교훈이 뭘까를 먼저 고민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이 책의 교훈은 이걸거야, 아니 저걸까?? 하면 머리를 쥐어짜며 교훈을 생각하곤 했다. 학교 교육의 문제를 꼬집고자 함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6년, 중고교 합쳐서 6년간 이 작품의 주제는? 이라던가, 이 작품의 교훈은? 이라던가 하는 주입식 교육에 물들어 교훈만을 찾으려 바락바락 애를 썼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 용으로 나오는 작품들이 분명 교훈을 일러주고 있지만, 그에 앞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먼저 생각하고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면에서 보자면『풍 사통은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까?』는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진 책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니 머리 쥐어뜯으며 교훈을 고민할 시간에 풍 샤통이 지나간 길을 따라 만난 동물들과의 이야기를 보면서 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을 때는 풍 샤퉁이 지나간 길이 어떤 곳인지를 보고, 동물들과 나눈 대화가 어떤 것인지 읽으며 즐거워했다. 풍 샤통이 찾으려고 했던 게 어떤 것인지, 풍 사통의 호기심이 어떤 일을 만들었는지 풍 샤통과 함께 농장길을 따라 걷다 보면 누구나 절로 마음이 즐거워질 거라 생각한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책날개, 1p+3p, 4p, 10~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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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생쥐 - 2010년 칼데콧 상 수상작 별천지 제리 핑크니
제리 핑크니 글.그림, 윤한구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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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고 난 두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틀림없이 여성작가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제리 핑크니가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의성어정도만 씌어 있을 뿐 동화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엔 글을 몰라도 그림만으로 여러가지 상상을 했는데, 한글을 깨치고 부터는 글에 집중하는 독서 습관을 가진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어른이 되면서 그림이 없는 책을 주로 읽다 보니 동화책을 읽어도 자연히 그림보다는 글에 집중을 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걸까?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의 내용과 같다. 어느날 낮잠을 자는 사자를 깨워버린 생쥐. 사자는 처음에 혼을 내주려고 하나, 생쥐의 말을 듣고 생쥐를 무사히 돌려 보낸다. 그후 사자는 인간이 설치한 덫에 걸리게 되고, 생쥐는 사자가 걸린 그물을 끊어 사자를 구해준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림으로 내용이 더 풍성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건 나뿐일까.


아프리카의 사바나. 그곳에는 맹수들의 왕 사자와 생쥐처럼 연약한 동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생쥐는 자신을 노리는 새를 피해 도망을 치다가 낮잠자는 사자를 깨우고 만다. 잠을 자다가 깨버린 사자는 처음엔 생쥐를 혼내주려고 하지만 생쥐는 목숨을 살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문득, 어른이 된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사자가 생쥐를 놓아준 이유는 한입거리도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 요런 못된 심보를 가진 어른이 되었다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생쥐는 사자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사자가 생쥐를 보내줬을까. 다른 그림을 찬찬히 살펴 보면 생쥐에게는 아직 어린 새끼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어미 잃은 녀석들은 아마도 무사히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생쥐는 자신의 어린 새끼들을 봐서라도 목숨을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사자 역시 아비이기에 생쥐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생쥐를 무사히 보내줬을거야. 만약 내가 없다면 어린 사자들역시 이 위험한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후 사자는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다가 인간들이 놓은 덫에 걸리고 만다. 사자도 놀랐지만, 원숭이도 새도 모두 놀라서 어쩔줄을 모른다. 이 그림을 보면서 사자의 표정을 얼마나 잘 포착했는지 감탄을 거듭했다. 정말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다.

사자는 발버둥 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절체절명의 때, 누군가 사자를 도와주진 않을까? 하지만 옆에 있는 건 원숭이와 새밖에 없어 구해줄 동물이 없다.


사자의 절박한 울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건 사자가 전에 목숨을 살려준 생쥐였다. 생쥐는 이로 열심히 그물을 갉는다. 작은 이빨로 열심히 열심히 밧줄을 갉아 결국 사자가 그물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준다. 그물안에 있는 사자는 왠지 못미더운 표정이지만, 생쥐는 '사자님, 제가 구해드릴게요, 걱정마세요'라고 소근거리는 것 같다. 그물에서 풀려난 사자와 생쥐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구해줘서 고마워', '뭘요, 사자님이 절 먼저 구해주셨잖아요?'라고 대화하는 듯한 둘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책의 내용이 다끝났다 싶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정말 가슴 뭉클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생쥐 가족을 등에 태운 숫사자와 숫사자의 아내인 듯한 암사자와 새끼 사자가 나란히 걸어 가고 있는 모습은 비록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동물들이라도 진심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구조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힘센 동물이 늘 이기는 것도 아니요, 약한 동물이 늘 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돕고 도울 수 있는 관계이며, 진정한 우정을 나눌수도 있는 관계인 것이다, 랄까.

『사자와 생쥐』를 보면서 간만에 글이 없는 책의 즐거움을 새록새록 깨닫게 되었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내용, 그림뿐이니까 사자와 생쥐간에 오가는 대화를 상상하게 되고, 그림뿐이니까 그림을 더욱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림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무척이나 행복해진다.

그림 출처 : 책 본문 中 ( 본문에는 페이지 표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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