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의 여름
미쓰하라 유리 지음, 이수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열여덟의 여름.
제목만 봐서는 청춘소설이나 성장소설처럼 느껴진다. 표지도 나른한 여름 오후의 풍경을 담은 듯 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책 뒷표지를 보면 생각이 좀 달라진다. 총 4편의 단편을 소개한 글에서는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쓰하라 유리. 워낙 적은 작품을 펴내는 작가인데다가 우리나라에서 소개된 책도 이 한 권뿐이라 나도 이제서야 접한 작가이다. 하지만 이 한 작품이 이렇게 깊은 인상을 남길 줄은 이 책을 선택하면서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이 책은 총 네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열여덟의 여름>은 열여덟살의 소년 신야가 강변에서 만난 수수께끼의 여성 구미코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의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신야와 구미코조차도. 첫부분을 읽었을 때는 첫사랑을 하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왠지 분위기가 그랬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목자체도 뭔가 푸릇푸릇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그리워서, 그리운 만큼 너무나도 미웠기 때문에, 누군가를 죽여야지만 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생각했어. 그런데 누구를 죽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 내가 가장 증오하는 그 사람을 죽일까, 그 사람을 독차지하고 있는 부인을 죽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매일같이 돌아가는 행복한 가정인가 뭔가 하는 곳의 중심이 되는 아들을 죽이면 좋을까. 이 나팔꽃 화분은 바로 그걸 결정하기 위한 거야. '어느 쪽으로 할까요'하고 비슷한 거지. 가장 먼저 꽃을 피운 화분이 타깃이 되는 러시안 룰렛." (61p)

하지만, 읽으면서 점점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고, 구미코가 '아빠', '엄마', '그', 그리고 '그녀'라는 이름을 붙인 나팔꽃 화분 네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그런 반면, 안타까움과 애틋함도 함께 느끼게 되었달까. 상대에게 완전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이 신야와 구미코가 만나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 미스터리의 절정이다. 신야의 사랑과 구미코의 사랑, 그리고 두 사람의 접점이 무엇인지 밝혀지면서 클라이막스를 맞게 되는 이 단편은 미쓰하라 유리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내게 예상치 못한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자그마한 기적>은 아내와 사별한 남자 미즈시마와 그의 아들 다로의 이야기이다. 5년전 세상을 떠난 아내, 그리고 남겨진 건 아직 어린 아들 뿐. 아내를 사랑했던만큼 재혼은 생각지도 않았던 미즈미마는 아들의 육아를 위해 장인장모가 있는 오사카로 이사를 한다. 그곳에서 만난 서점 주인 아스카와 미즈시마 부자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잃어 상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또다른 만남을 가지면서 치유되고 재생되어 가는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잃었다는 기억은 큰 상처와 아픔을 남긴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에 대해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아들의 성장담, 그리고 아내와 결혼할 남자을 잃은 남녀의 만남과 새로운 한걸음에 관한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따스해서 참 기분이 좋았달까. 또한 단편답지 않게 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그중 미즈시마가 근무하는 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레미의 이야기 역시 짧지만 무언가 가슴을 따스하게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다.

세번째 작품인 <형의 순정>은 이 작품집 중에 가장 짧고, 가장 유쾌하다. 반백수나 다름없는 허우대만 멀쩡한 연극배우 형과 그런 형을 보면서 자라서 속이 여물대로 여문 동생, 그리고 형이 사랑하게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단편은 유쾌하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일이란 것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랄까. 그리고 가벼운 미스터리도 첨가되어 있어 더욱더 즐거웠다.
 
마지막 작품인 <이노센트 데이즈>는 가장 음울하고 어두웠지만, 반대로 너무나도 안타까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열여덟의 여름>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더 어둡고 더 애틋하며 안타까웠달까. 지금은 성인이 된, 학원의 제자가 가진 과거의 비밀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그 음울함과 어둠은 더 깊어진다. 사람들이 상상하던 것, 마음대로 추측하던 사실 이면에 숨겨져 있던 그 사건의 진실은 수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상처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재혼한 부모들이 가진 비밀을 알게 된 다카시와 후미카. 부모를 증오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은 결국 치유되지 못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이고, 서로를 사랑했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후미카가 다카시에게 가까이 가도 다카시는 후미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다카시의 마음을 막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그후 다카시는 죽음을 맞았고, 후미카는 20살의 밝고 맑음과는 동떨어진 악의만을 남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왜 부모가 저지른 일때문에 그 아이들이 고통받아야 할까. 죄마저도 물려받는 것일까. 담담하게 고백해오는 후미카의 이야기를 들으면 두렵고 오싹하기보다는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를 외면하는 어른,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현재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참혹했다.  

총 네편의 작품이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단편들이 연결되는 것은 꽃이란 모티브. <열여덟의 여름>은 나팔꽃, <자그마한 기적>은 금목서, <형의 순정>은 헬리오트로프, 그리고 <이노센트 데이즈>는 협죽도란 꽃이 등장한다. 꽃이 가진 비밀이랄까. 각각의 꽃이 상징하는 바가 다 다르다. 이런 것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여도 꽤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더욱더 흥미로운 미스터리가 되는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미쓰하라 유리라는 작가에 대해 커다란 흥미와 관심을 갖게 만든 작품,『열여덟의 여름』은 우리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몰랐던 모습이 더 많지 않나 하고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밖에서 보는 가족과 안에서 그 구성원들이 직접 겪는 가족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도, 내심 알고는 있지만, 거듭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매력은 각각의 단편이 내놓은 결말부에 있다. 일그러지고 생채기 났던 삶이 다시금 회복되어감을 암시하고 있기때문이다. 서늘한 미스터리 뒤에 남겨진 따스한 결말이랄까. 이런 점이 정말 매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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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3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샌드힐의 수사슴 시튼 3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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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드디어 시튼 3권이다. 아껴가면서 한권씩 소중하게 읽었건만, 번역서로는 마지막 작품인 샌드힐의 사슴을 앞에 둔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얼른 읽고 싶은 마음과 이것을 읽어 버리면 더이상의 번역서가 없기에 아쉬움이 클 거란 마음이 교차했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에 대한 그림, 그리고 시튼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장한장 섬세한 그림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읽어 나갔다.

샌드힐의 수사슴은 시튼의 청년기의 이야기이다. 20대 초반, 캐나다 매니토바 평원에서 만나게 된 수사슴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3권은 시튼이 자연주의자로서 좀더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지를 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도약하는 사슴 세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슴들은 뮬 사슴이라 불리는 종으로 노새 사슴이라고도 한다. 얼마나 높이 점프를 하는지 - 우스개소리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처럼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3권은 20대 초반 시튼의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에 앞서 시튼이 매니토바 평원으로 가기전까지의 여정도 함께 담고 있다. 이는 시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하다. 1, 2권 역시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시기 이야기에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3권에서는 시튼의 런던에서의 생활에 대한 부분을 볼 수 있다.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의 수학과 그곳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로, 적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고생하던 시튼의 모습이 너무나 잘 보여진다. 특히 자연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결국 환청까지 들리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시튼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할 자연주의자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튼의 형들이 개척 농장을 만들고 있는 매니토바에서 늘 그렇듯 주변을 산책하던 시튼은 사슴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슴이 사라진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시튼에게 있어 커다란 기쁨이요, 행복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눈으로 본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사슴을 자기 손으로 꼭 잡고 싶다는 욕망 또한 가지게 된다.

내가 시튼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한 시튼이지만 이처럼 샌드힐의 수사슴이나 늑대왕 로보를 잡고 싶어한 욕망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의 습성을 파악하고 그들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손에 넣고 싶어하는 욕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것이 시튼의 다른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물론 시튼이 처음부터 샌드힐 스테그를 잡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겠다, 라는 것에서 발전해 보게 되니 잡고 싶어졌다, 라고 발전하게 된 것이랄까. 물론 그 시대 상황에 비춰 생각해야 하니, 이런 시튼의 욕망에 대해 나쁘게만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시튼은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던 중 원주민 차스카와 만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뭔가 굉장히 미묘하고 좀 껄끄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시튼의 철없어 보이는 모습때문이랄까. 공교롭게도 샌드힐 스테그를 같이 추적하던 차스카를 보면 여기는 자신들의 땅이요, 샌드힐 스테그는 자기 사슴이라고 우겨대는 시튼의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원래대로 따지자면, 백인들은 개척민이 아니라 침입자에 불과하고 사슴은 누가 잡느냐에 따라 소유자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슴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차스카와 함께 지낸 며칠은 시튼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날들이었다. 자연을 읽고, 사슴의 족적을 읽는 것 등은 자연과 한없이 가깝게 사는 사람들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스카에게 배운 지혜로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던 시튼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선 사냥길에서 샌드힐 스테그가 거느린 암컷을 사냥하게 된다. 그 장면을 보고 시튼은 큰 충격을 받는다.

시튼은 이날의 행동이 도대체 무엇이었나 생각했다. 샌드힐을 헤집고 돌아다닌 나날. 시튼의 즐거움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사슴의 발자국을 쫓는 즐거움이란 결국 잔혹하게 죽이기 위한 과정이었단 말인가. (208p)

시튼이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면서 얻은 것은 자연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었다. 자신들 인간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자로서 한걸음 더 내딛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는 달리 자신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해 사냥하는 종족이다. 물론 그것은 문명화된 -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더 야만적인 - 인간들의 모습이다. 자연과 더불어 숲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정도로만 사냥을 하고, 육식 동물들은 새끼 초식동물을 사냥함으로써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늙거나 병든 동물을 사냥함으로써 또한 개체수 조절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총을 들고 다니는 인간들은 어떠한가. 요즘은 야생동물을 수입해서 부자들의 유희로 사냥을 즐긴다고 하던가.


시튼 시리즈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자연주의자로서의 삶을 걸었던 시튼조차도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기도 했다. 시튼이 그러했을진대, 범인(凡人)들인 우리가 우리보다 약한 생물을 사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모든 생명은 그것들이 존재하는 자리에 있어야 더욱더 아름답게 마련이다. 아름답게 도약하는 사슴들은 평원에서 뛰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이미 철조망 안에 갖혀 버린, 사람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은 동물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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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1
고아라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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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 서. 와.
내가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
이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말을 하는 사람의 따스한 마음이 이 한 문장에 꽉 들어차 있는 듯한 느낌때문이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온 것에 대해서만 반갑게 맞아들인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 말을 참 좋아한다.

책 표지를 보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한 여학생과 하얀 고양이가 보인다. 둘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딱히 아무런 말이 없어도 자연스럽고, 따스하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달까. 평화로운 모습에 나도 저들 사이에 끼고 싶어 진다.


어서와 1권은 친구의 부탁으로 고양이를 맡아 키우게 된 여대생 솔아와 고양이 홍조,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솔아는 고양이를 우연히 키우게 되어 처음에는 좀 귀찮은 마음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이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걸 느끼게 된다. 그림 속 고양이가 바로 홍조이다. 말똥말똥한 눈망울, 무뚝뚝한 표정, 몽실몽실한 몸, 부드러운 털. 표정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표정을 감추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고양이의 매력이니까.

솔아는 복학생이다. 그래서 그런지 후배들과 같이 듣는 수업이나 과제 수행이 어색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대학은 선후배 관계란 것이 대부분의 관계이다 보니 익숙해질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참 어색하기도 하다. 나 역시 몸이 안좋아서, 또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반년간 휴학을 했다가 복학을 했더니, 후배들과 잘 지내기는 커녕 동기들과도 멀어져버렸다. 그럴때 홍조같은 고양이가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외롭지 않았을까.


따돌린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물에 떨어진 기름같이 겉도는 나를 발견할 때. 누군가 뒤에서 저렇게 꼬옥 안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홍조는 인간으로 변신이 가능한 고양이라 저렇게 안아줄 수 있겠지만, 정말 홍조같은 고양이라면..... 저렇게 솔아가 힘겨워할 때 뒤에서 말없이 꼬옥 안아주는 따스함을 줄 수 있다면.... 비록 상상이지만, 고양이나 개를 키우면서 저런 상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가끔 우리 개들이 사람으로 변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 그래서 난 저렇게 안기는 대신, 우리 개들을 꼭 끌어안고 털에 얼굴을 파묻기도 한다. 왠지 그런 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이라 참 마음에 든 그림이다.

홍조는 특별한 고양이이다. 모든 반려동물들은 자신의 반려인에게 있어 특별한 존재이지만, 홍조의 '특별함'은 많이 다른 '특별함'이다.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하니까. 그것도 키도 크고 잘 생긴 남자로. 이렇다 보니 홍조가 고양이로 있을때는 상관이 없지만, 사람으로 변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아의 친구 알아의 경우 홍조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다.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보이는 모습대로 받아들여 주는 인물이 알아라는 인물이다. 이 장면은 홍조와 알아가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예쁜 그림이라 생각했던 것. 고양이답게 나비를 좋아해 나비를 살며시 잡아서 알아에게 보여 준다. 손안의 나비가 포르르 날아가는 장면... 너무나도 예쁘다.

이외에도 어서와는 대학생들의 다양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군대에 다녀온 복학생, 사랑과 이별을 한 연인, 자취 생활, 학교 과제 수행 등은 내가 학교를 다닐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별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집을 떠나 부모에게 독립을 하면 처음엔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얼마못가 집이 그리워진다. 나도 처음엔 기숙사, 나중에 자취 생활을 했던지라 솔아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같지 않다. 특히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을 가지고 고속버스를 탔던 일은 여전히 내 머릿속 기억 저장소에 특별한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즐겁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너무도 외롭고 힘들었던 대학 시절.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린 시간이지만, 어서와를 보고 있자니, 그때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어서와는 수채화 느낌이 물씬 나는 만화이다. 디테일한 면을 생략하고 슥슥 그린 듯한 그림과 파스텔톤 색조. 그래서 그런지 보는내내 봄날 가로수길을 산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나도 따스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왠지 나도 대학시절 이런 추억이 있었다면, 더 잘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도 홍조같은 고양이가 있었다면 덜 외롭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32p, 45p, 90~91p, 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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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 부엌 이야기 심야식당
호리이 켄이치로 지음, 아베 야로 그림, 강동욱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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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아베 야로의『심야식당』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시간만 흘렀다. 벌써 단행본으로 5권까지 나왔던데... 아, 읽고 싶다, 라고 생각하던 중 눈에 띈 책 한 권. 그것이 바로 이 책인『심야식당 부엌이야기』였다. 심야식당 만화에 나왔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라니, 평소 맛있는 걸 좋아하고, 데이트를 할 때도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맛집을 찾아다니던 나로서는 올레!를 외쳤달까.

심야식당에 나왔던 스무가지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심야식당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들이 심야식당 매니저가 만들어줬으면 하는 음식 네가지, 즉, 총 스물네가지의 음식이 소개되어 있다. 전자의 메뉴들은 저자 호리이 켄이치로의 추억담을 비롯해 일본의 음식문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나면, 나오는 건, 뭐??
그건 바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레시피와 완성된 사진이다.

총 스물 네가지나 되는 요리와 그 레시피라....
일단 목차를 훑어 보면 우리에게 꽤 친숙한 요리 이름이 나온다. 게다가 사용하는 재료는 같아도 요리법이 달라 한국요리와 일본요리가 구분되는 요리도 있다. 표지에 나온 문어모양 비엔나 소세지 볶음은 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만화에도 등장한다. 초등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누구나 만드는 요리인 비엔나 소세지 볶음. 우리나라도 비엔나 소세지가 있지만, 빨간 색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문어 모양에 맞게 빨간 색으로 나오는가 싶어 무척 신기했달까. 게다가 우리나라 도시락 반찬은 사선으로 칼집을 넣어 볶지만, 일본의 비엔나 소세지는 문어 모양. 시도해 보고 싶지만, 갈색 문어는 맛이 없어 보일 것 같아 사진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구운 김, 명란젓 같은 것은 우리 식탁에도 자주 오르는 메뉴중의 하나다. 참기를 발라 소금 살살 뿌려 구어낸 김도 맛있지만, 살짝 구워 기름장에 찍어 먹는 김도 일품이다. 역시 비슷한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구나 싶기도 하지만, 명란젓을 구워먹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엥? 날것으로 먹지 않나?? 난 젓갈류를 좋아해서 젓갈을 즐겨 먹는데, 젓갈을 익혀먹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런게 차이점이려나?

라면같은 경우, 일본의 생라면(라멘)이 아니라 역시 우리나라같은 인스탄트 면이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치킨라면은 우리나라의 삼*라면정도일까? 그외에도 좀 다른 건 어묵을 먹는 법이다. 우리는 보통 어묵과 무우만을 먹는데, 소힘줄(스지)와 달걀을 넣은 어묵이라, 스지가 맛이 기막히기에 이것도 한 번 맛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저녁으로 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역시 어묵이지! 근데, 일본에서는 꽃놀이를 하면서 어묵을 먹는다니, 이것도 문화의 차이인지도. (笑)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일본적인 음식이라 생각했던 네가지의 음식이 바로 위에 있는 것들이다. (물론 이건 내 주관일지도 모르겠지만)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카츠돈, 고양이 맘마, 차밥, 그리고 고기감자볶음이다. 카츠돈은 돈부리의 일종으로 덮밥종류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먹었던 카츠돈이 너무 맛이 없어서 그후론 돈부리에 대해 안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촉촉한 국물이 밴 밥과 돈가스라면 한 번 시도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비빔밥에 익숙한 나로서는 같은 그릇에 있는 것을 비벼먹지 않고, 밥따로 반찬따로 먹는게 영 이상하기만 하다.

고양이맘마는 요리 이름을 보자마자 푸하하하핫하고 웃어버렸다. 고양이는 가츠오부시(가다랑어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가츠오부시를 주는 반려인이 꽤 많다고 알고 있다. 일전에 읽었던 책도 고양이에게 상으로 가츠오부시를 준다는 내용이 있었으니까. 밥 위에 간장 조금, 그리고 가츠오부시 듬뿍. 왠지 이상할 것 같지만, 의외로 입맛에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난 특히나 오코노미야키위에 얹힌 가츠오부시를 격하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차밥과 고기감자볶음은 만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주 접해 왔다. 솔직히 말해 차에 밥을 말아 먹는다고 했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냉수에 밥말아 먹는 거나 비슷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교토에서 차밥을 대접한다는 것에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알고 무척 흥미로웠달까. 고기감자조림은 우리나라 감자조림에 고기를 더한 요리로,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라고 들었는데, 실물을 보니 정말 맛있어 보인다. 일품식으로도 손색이 없달까.


그렇다면 이 책에는 일본적인 요리만이 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No! 비록 일본식으로 개량되긴 했어도 내가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그리고 아주 좋아했던 요리 몇가지가 있어 너무 반가웠다. 사진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포테이토 샐러드, 달걀 샌드위치, 버터라이스, 크로켓이다. 포테이토 샐러드(일명 감자 사라다)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좋아했던 샐러드다. 특히 어릴때 가족 외식으로 자주 갔던 갈비집에서 늘 감자 사라다를 내놓았는데, 갈비보다 그걸 더 많이 먹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지금도 그 집 이름을 기억할 정도이니, 얼마나 좋아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리라.

달걀샌드위치는 정말 간편하면서도 맛있다. 완전히 으깨지 않고 살짝 씹힐 정도로 으깬 감자에 소금간을 하고, 물기를 살짝 짠 오이를 넣고 마요네즈 듬뿍. 감자를 넣으면 더 맛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레시피는 피클을 사용했지만, 개인적인 입맛으로는 피클보다 생오이가 더 좋다. 상큼하니까. (笑)

버터라이스는 지금도 입맛이 없거나 반찬이 만들기 싫을때 즐겨 먹는다. 따끈한 흰쌀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거나, 버터와 강된장을 넣고 비벼 먹으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싹 비워냈다. 김치가 있으면 조금 덜 느끼하지만, 강된장을 넣은 버터라이스는 김치가 따로 필요 없다.

크로켓. 며칠전에도 따끈한 크로켓을 사먹었다. 내가 어릴땐 고로케라 불렀지만. (笑) 금방 튀겨낸 크로켓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서 정말 맛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고로케는 한입 크기로 동그랗게 굴려서 만든 것으로 어린 내가 먹기에 딱 알맞은 크기였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새로운 음식보다는 추억이 있는 음식을 찾게 된다. 화려한 것 보다는 소박한 음식, 정성가득한 음식을 찾게 된다. 엄마 손맛이랄까, 그런 게 그리워지기도 한다. 심야식당에서 내놓는 메뉴들은 바로 그런 음식이랄까. 비록 한국과 일본의 차이, 특히 요리 문화의 차이가 좀 있긴 해도 여기에 나온 음식들을 보며 어린 시절에 먹던 음식을 떠올릴 수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했달까.

이렇게 우리네 주변의 소박한 음식을 가슴 절절히 담아내는 것이 바로 아베 야로 만화의 매력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큰 소리로 주위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지긋이 자기 몸으로 먼저 느낀 뒤에야 전한다. 밀어붙이지 않고, 나 이거 좋아해요, 하고 나직하게 얘기한다. 그래서 이야기들이 도시인의 가슴에 절절히 스며든다. (95p)

본문을 읽다 보면 아베 야로의 만화에 대해 위와 같은 언급을 하고 있다. 소박하지만 가슴을 따스하게 만드는 음식이 바로 아베 야로가 그려내는 심야식당의 메뉴란다. 맛있는 음식이란 바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겉모습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속이 꽉꽉 들어 찬 음식이랄까. 이 책을 보니 아베 야로의『심야식당』이 더욱더 보고 싶어 진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위에서부터 51+19+83+91p, 65+77+109+1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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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님과 나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우타노 쇼고는 요즘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작가중의 한 명으로, 신간 소식이 들리면 바로 구매해서 읽고 있다. 앞서 읽은 작품은『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시체를 사는 남자』였고, 이번에『여왕님과 나』역시 출간되자마자 구입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은 성향이 완전히 달라 깜짝 놀랐지만,『여왕님과 나』역시 만만찮게 독특한 책이었달까. 일단 목차의 소제목부터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왠지 전에 읽었던 사쿠라바 가즈키의『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에 나왔던 소제목처럼 사람을 몹시 기대하게 만들고 궁금하게 만든달까. 이 소제목의 의미는 마지막 문장을 읽음으로써 완벽하게 이해된다.

주인공 신토 카즈마는 올해 44살, 무직에 독신, 그리고 오타쿠이다. 남들은 자신을 보며 히키코모리라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비디오 가게나 편의점에,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아키하바라에 나가는만큼 스스로는 히키코모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자신과 단절된 세계이며, 유일한 말상대는 여동생이라 칭하는 인형 에무뿐이다. (처음 에무가 등장했을 때는 개나 고양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을 더 읽어 보니 구체관절인형 정도로 보인다) 나이 40이 넘어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는 남자라... 왠지 껄끄러운 기분이 든다. 게다가 로리콘(롤리타 컴플렉스)를 가진 남자란 이야기에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뻔 했다. 안그래도 요즘 아동 성추행이나 성폭행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그런 인물을 만난 셈이다. 그나마 신토 카즈마는 아직까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유일하게 그를 잘 봐줄 수 있다는 점일까.

그런 신토 카즈마가 어느 날 외출을 했다가 한 소녀를 만난다. 인형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말투가 거칠기 짝이 없다. 12살의 나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토 카즈마를 가지고 논다는 분위기랄까. 명령하고, 쓰레기, 돼지, 찌질이라 구박하고, 비싼 식사를 대접하게 만든다. 그러나 신토 카즈마는 로리콘답게(?) 그녀의 모든 행동과 말에 행복함을 느낀다. 라이미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에게 휘둘리며 시간을 보내던 중, 라이미의 친구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첫번째로 살해당한 유즈하라 시온은 매춘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두번째로 살해된 소년 나라하 리리카는 아버지의 학대, 어머니의 파칭코 중독으로 인한 무관심에 방치된 소녀였다. 라이미의 친구중 또 한명인 카나리는 자해를 자주 하던 소녀로 그녀 역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된다. 어쩌면 라이미까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신토 카즈마는 직접 이들이 얽힌 사건을 수사하기로 한다. 친구들의 죽음에 의기소침해진 여왕님 라이미는 여느 초등학생과 다름없어지고, 신토 카즈마는 그런 고분고분한 라이미가 사랑스러워 어쩔줄을 모른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선생님이었던 마스다 테루아키는 쇼타콘(소아성애자, 페도필리아)였으며, 그 역시 신토 카즈마가 도착하기전 살해당한다. 그후 어찌된 영문인지 신토 카즈마는 연쇄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에 체포되어 자백을 강요당하기에 이른다.

경찰의 수사를 받으면서도 신토 카즈마는 자신의 여왕님인 라이미를 보호하려 하지만, 궁지에 몰리자 라이미를 증인으로 내세우고자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라이미는 신토 카즈마를 모른다고 딱 잡아 뗀다. 앞에는 절벽, 뒤에는 호랑이랄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을 사람도 아무도 없다. 도대체 누가 그를 함정으로 몰아 넣은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이 위화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거지? 그러다가 첫번째 반전이 드러난다. 소제목과 부합되는 반전이다. 그렇다면 앞에 나온 것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복선이었던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걸 속단하기엔 일렀다. 첫번째 반전은 나중에 나올 반전에 비해 임팩트가 적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책 내용에 끌려가게 된다. 사건의 진행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때문이다.

졸지에 연쇄 살인범이 되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신토 카즈마, 그리고 그를 이용했던 라이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또다른 반전이 찾아온다. 아, 이건 정말 예상도 못했는데...... 라고 감탄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요즘의 일부 아이들은 이렇지 않을까 싶어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어른을 완벽하게 이용하는 영악한 아이, 그게 바로 라이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또 찾아 온다. 중후반부는 정신없이 휘몰아 친다고 할까. 처음엔 신지 카즈마와 라이미의 캐릭터가 너무나도 불쾌했었다.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몸을 휘감는 그런 불쾌한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사건의 진행과 더불어 그런 느낌보다는 작품속에 숨겨진 미스터리 구조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속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미스터리에 흠뻑 빠지게 만들다니, 작가의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달까.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 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당혹감을 느꼈다. 이게 신토 카즈마의 본성이었던 것이다. 그를 지배하던 것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것이었던가. 정말 개선의 여지가 없는 구제불능의 뇌구조를 가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중간중간 신토 카즈마의 본성에 대한 언급이 살짝살짝 나오지만 무시하고 지나치면 이런 당혹스런 결말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아니, 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하더라도 이 결말은 너무나도 마음에 안든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쾌감이랄까, 그런 것이 확실하게 반감되기 때문이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동기가 밝혀지고, 모든 사건의 정황이 밝혀지면 속이 시원한 기분이 들기도 하련만, 오히려 찜찜한 기분만이 남았다. 또한, 이게 현대인들의 진짜 속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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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0-09-2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엄청 읽고 싶었는데 말이죠... 돈이 부족하네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