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개의 슬픈 이야기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책, 칼데콧 클래식 컬렉션 1
랜돌프 칼데콧 그림 / 도담도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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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책 제목을 보고 상당히 망설여졌다.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이 등장하는 책들을 즐겨 읽기는 하지만, 제목부터 벌써 가슴이 아파오는 책을 읽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해서 늘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만을 읽을 수는 없다. 어차피 세상의 반은 슬픈 일로 차 있으니 말이다.

버림받은 개의 슬픈 이야기


이슬링턴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정하고 착해서 다른 사람 돕기를 꺼리지 않았고, 신앙심도 깊었다. 그는 어느 날 길을 나섰다가 한 마리의 개를 만난다. 집도 없고 주인도 없는 개였던지라, 그는 그 개를 집으로 데리고와 정성스럽게 보살폈다.


하지만 그 개는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주변의 모든 것을 질투했고, 결국 질투심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결국 남자를 물어 버린 후 버림을 받게 되었고, 그 개는 또다시 떠돌이 개가 되어 거리거리를 헤매고 다녔고, 결국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버렸다.

줄거리는 무척 간략하지만, 무척이나 마음 아픈 이야기이다. 기댈 곳 없던 처지의 개가 좋은 사람을 만나 한때는 행복했지만, 결국 질투와 시기 때문에 미쳐버렸다는 것은 그 개가 그 남자를 얼마나 좋아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그 개가 처음부터 그와 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혼자 지냈던 일이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고, 그것이 결국 남자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단지 사랑을 갈구하는 정도의 이야기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개가 그리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껏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개였기에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이 이야기는 이야기식으로 구성된 시로 원작자는 올리버 골드스미스라는 극작자이다. 이 시에 랜돌프 칼데콧이 그림을 그려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그림은 두 종류로 펜선으로만 그려진 그림과 채색까지 된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펜선으로만 그려진 그림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고, 채색된 그림은 선명한 색감 덕분에 더욱 생동감 있어 보인다. 또한 슬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너무 생생해서 웃음이 나오려는 건 간신히 참기도 했다.

목장의 아가씨


한 남자가 신붓감을 구하러 길을 나섰다. 길을 가던 중 어여쁜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그 아가씨와 정담을 나눈다.


아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청년은 아가씨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결혼은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 그랬더니, 이 아가씨 ""누가 해 달라고 했나요, 나리!"라고 쏘아 붙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혼 상대의 재력을 가늠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아가씨의 말이 참 재미있다.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지도 않고 재산만으로 신붓감을 고르는 청년을 비웃어주기 때문이다. 영국의 민요를 바탕으로 그려진 이 작품 역시 그림이 무척이나 생동감있고 아름답다. 특히 아가씨가 일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 풍경, 동물에 대한 묘사는 무척이나 섬세하다. 또한 글로 표현되지 않은 상황들은 그림으로 추측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하달까.

버림받은 개의 슬픈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은 두 편이다. 두 편의 작품의 내용이 전혀 관계도 없는 데다가 상반되는 감정을 가져 왔다. 뭐랄까, 읽고 나서 굉장히 미묘한 느낌이 들었달까. 하지만 두 작품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그림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 세세한 표현,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생생하다. 클래식한 그림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칼데콧 상으로 유명한 랜돌프 칼데콧. 이제껏 칼데콧 상을 수상한 작품을 몇 가지 읽어 보긴 했지만, 랜돌프 칼데콧의 그림은 처음이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칼데콧 상이란 게 만들어진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하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8~19p, 24~25p, 44~45p, 5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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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판 조류도감 사가판 도감 시리즈
모로호시 다이지로 글 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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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좋아한다면 제괴지이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분명 읽었을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로 시작했고, 그 후에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제괴지이는 중국의 신화나 고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요괴 이야기라면,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는 현대판 요괴 이야기로 독특한 유머 코드와 상상 이상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하다 보니 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신작 사가판 조류도감이 출판된 것을 봤을 때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사가판이라. 한글로 적어 놓으니 굉장히 낯설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보니 사가판(私家版)이란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여 한정된 부수를 자가(自家) 출판하고 유지(有志)들과 나누어 가지는 책이란 뜻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사가판의 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정된 부수의 자가출판 작품을 이렇게 번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책 표지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까마귀나 참새, 백조를 비롯해 하르퓌이아와 천사의 모습까지 나온다. 제목엔 분명 조류도감이라 씌어 있기는 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류도감과는 거리가 있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재미란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책을 펼치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새들이 그려진 컬러 페이지가 보인다. 총 23종의 새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새들 뿐만 아니라 신화나 상상속의 새를 비롯해 작가 창작의 새도 그려져 있다. 이 새들에 대해서는 책 뒷편에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새를 파는 사람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폐허와 같은 미래의 지하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이미 인류에게 잊혀진 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분별한 유전자조작으로 이미 우리가 알던 생물들은 변종이 되어 사라진 세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 남자가 데리고 온 새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생물인지를 아는 사람은 정확히 없다. 이 단편은 우리의 현실이 가져올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 현재 세계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을 비롯해 동물의 복제 실험 등 인간의 가져야 할 능력을 상회하는 기술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정말 이렇게 변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탐정 슬리퍼는 6개의 작품 중 가장 코믹한 작품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새의 정체에 대한 설명을 보고 웃음이 빵빵 터지기도 했다. 정말 이런 게 있단 말이지?? 명탐정 슬리퍼가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듯한 사건 해결을 보여 주는 작품.  

붕의 추락은 붕이라는 상상속의 새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북명이라는 북쪽 바다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때가 되어 변화하는 것이 붕이라는 새이다. 얼마나 큰 새인지 그 길이만 수천리가 된다고 하는데, 붕이 제대로 날지 못해 추락하게 되어 자연에 재앙이 찾아온다. 새들은 선녀인 여와를 찾아가 재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와가 하늘의 구멍을 메워 재앙을 멈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은 붕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재앙이 생기자 마치 사람처럼 파벌로 나뉘어 권력을 쟁취하려는 새들이 생겨나는데, 이는 인간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또한 모든 생명이 창조된 후 여와에 의해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라기 보다는 지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

탑을 나는 새는 평행우주론과 맞닿아 있는 듯한 작품이다. 거대한 탑은 우리가 사는 곳, 신의 광구는 태양, 허공은 우주. 하지만 거대한 탑은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존재하며 다른 탑에는 어떤 생명이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거대한 탑은 길이를 알 수 없는 나선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도착한 거대한 탑의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우주론을 내세운다. 탑의 바깥쪽에 존재하는 새들은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생물로 배척되기까지 한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 역시 인간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호무치와케는 고대 일본의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즈모와 야마토의 대립, 토착신앙과 전래신앙의 대립등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역사는 어느 시대나 비슷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마지막 작품인 새를 보았다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일한 현대물이기도 하고, 약간의 공포스러움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과 상상의 적절한 조화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하면 될까? 낡은 급수탑과 그 근처에서 보이는 거대한 새의 비밀. 이 작품은 문득 스즈키 코지의 검은 물 밑에서라는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급수탑이란 것이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소년들의 상상과 그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사연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듯.

이렇게 살펴보니 6편의 작품 중 어느 하나도 시대나 나오는 새가 겹치는 작품이 없다. 게다가 어느 작품 하나라도 제외하고 싶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도 탄탄하다. 똑같은 걸 봐도 다르게 보는 사람이 꼭 있다더니,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바로 그런 작가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다른 해석을 내렸으니 말이다. 그의 다른 작품인 사가판 어류도감 역시 상당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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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고양이 나츠 1
OOTAKE Tomo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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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고양이라..
도대체 어떤 고양이가 하드보일드 고양이일까.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궁금증이 마구마구 솟아 올랐다. 하드보일드라면 혹시 고양이 탐정일까, 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건 아니고. (笑) 어쨌거나, 하드보일드 하다는 데 팍팍 끌렸다. 게다가 표지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의 표정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의 포스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책 띠지의 걍... 사지 그래. 란 문구와『귀여움 제로』고양이 만화란 문구에도 웃음이 빵빵 터졌다. 나츠,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샛노란 색깔의 귀여움이 묻어나는 표지 색깔과는 달리 엄청난 포스를 풍기는 고양이들의 표정이 가득한 표지를 넘기면 컬러 일러스트 만화가 나온다. 나츠의 등장과 나츠의 요상한 행동. 처음부터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 정말 이런 고양이가 존재하기는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컬러 일러스트로 구성된 만화는 단 몇 페이지로 끝난다. 이는 도입부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하다) 본문은 4컷 만화로 구성되어 있다. 4컷 만화이다 보니 각각의 4컷 만화위에 소제목이 달려 있지만, 가끔은 4컷 만화가 아닌 8컷 만화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소제목이 각각 달린 것에는 변함이 없다. 구성은 이 정도로 언급하고...

등장인물과 등장묘들은 한 페이지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하드보일드한 삶을 추구하는 사나이 나츠, 어릴 때 부모 형제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는 아기 냥이 꼬맹이, 나츠가 눌러 살고 있는 다나카의 집 주변에서 보스 행세를 하는 얼룩냥이, 그리고 방랑벽이 있지만 길치라서 매일매일 미아가 되는 펠튼 율리어로즈(일명 푸상), 그리고 백수한량의 포스를 내뿜는 늙은 고양이 영감등이 주된 등장 고양이이다. 이외에도(이외에도?? 사람은 이외??) 지금 나츠가 살고 있는 방의 주인인 다나카와 그의 친구 오오이타, 원래 나츠의 반려인인 토네 아줌마와 그의 아들 소년 이노우에, 꼬맹이를 너무 좋아해서 따라다니는 여대생 루리코까지 등장하는 캐릭터는 꽤 많은 편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주로 다나카와 오오이타, 그리고 나츠와 꼬맹이, 푸상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읽을 때는 나츠가 원래 다나카네 집에서 사는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컬러 일러스트 만화를 잘 읽고 넘어가야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어쨌거나, 식객임에 분명하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나카의 집에 살게 된 나츠와 인간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꼬맹이와의 일상은 웃음이 빵빵 터지게 만든다. 하드보일드한 삶을 추구하는 나츠이지만 의외로 다정하고 속이 깊다. 뭐, 때로는 만사 귀찮다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또한 종종 등장하는 푸상의 캐릭터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길을 잃고 미아가 된 주제에 어찌나 당당하신지... 또한 나츠가 본가(?)로 돌아가게 된 후에 나오는 잉꼬 삐짱과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 나오는 길냥이 영감의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다. 가끔은 영감과 꼬맹이의 길냥이 생활이 무척이나 안타깝기도 하지만.또한 인간 다나카와 오오이타, 소년 이노우에, 토네 아줌마도 독특한 캐릭터임에는 분명하다. 인기없는 동아리인 스티커부의 회장인 다나카와 오오이타의 학교 생활이며, 고양이와의 생활은 웃음이 터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처음에 읽었을 때는 글씨도 너무 작고, 가끔은 이야기가 잘 연결되지 않아 뭐, 이래? 라고 화를 버럭낼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두번째 읽으니 진짜 재미있었다. 역시 제대로 읽는 게 중요하달까. (내 경우에는 두 번쨰 읽는 것이 제대로 읽는 것. 역시 만화는 일단은 두 번 읽는 게 진리다!) 사나이 나츠의 고양이로서의 생활은 하드보일드 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또한 귀여움 제로 고양이 만화란 문구에 괜시리 지레짐작을 할 필요도 없다. 여타의 고양이 만화와는 또다른 귀여움이 빵빵 터지니까. 인간이 보는 고양이와 고양이가 보는 인간, 두 가지 이야기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그리고 화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캐릭터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

본가로 돌아간 나츠. 그리고 상당 기간동안 나츠와 함께 생활했던 다나카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어 갈까. 그리고 여전히 사람을 믿지 못하는 꼬맹이는 어떻게 성장할지, 푸상은 길치를 극복할 수 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사나이 나츠, 2권에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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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별 레미나 이토 준지 스페셜 호러 5
이토 준지 글.그림 / 시공사(만화)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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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의 작품은 항상 독자를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할 정도의 독특한 소재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여타의 공포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점이기 때문이다. 이토 준지가 아니고서야 이런 이야기를 만들 다른 누군가가 있을까, 할 정도로 말이다. 지옥별 레미나는 언뜻 보기에 SF물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요번에는 SF가 가미된 공포물일까? 아니면?

인류 최후의 마녀사냥 - 지옥별 레미나

표제작이자 이 단행본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지옥별 레미나는 웜홀에서 출현한 미지의 혹성 레미나와 지구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 발견자인 오오구로 박사는 혹성의 이름을 자신의 딸의 이름을 따 레미나라 명명한다. 새로운 혹성의 발견은 지구인들에게 큰 이슈가 되었고, 같은 이름을 가진 박사의 딸 레미나도 세간의 큰 관심을 받아 연예인으로 데뷔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혹성 레미나가 지구를 향해 곧장 돌진해 오면서 태양계의 행성들을 하나하나 집어 삼키자 지구인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레미나의 발견자인 오오구로 박사와 레미나를 이 모든 일의 책임자로 몰아가기 시작한다. 이른바 현대판 마녀 사냥이자, 인류 최후의 마녀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지옥별 레미나는 전작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흘러간다. 물론 혹성 레미나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이토 준지표 만화가 맞구나 싶어도, 오히려 그로테스크한 소재들의 난무가 아닌 궁지에 몰린 인간과 그들의 인간성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떠받들어지던 오오구로 박사 부녀를 인류의 공공의 적으로 몰고, 희생양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은 씁쓸하기 그지 없다. 아니, 점점 더 광기에 휩싸여 가는 인간들의 모습은 블랙 코미디나 다름 없었다. 특히 지구 중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전부 날아올라 레미나를 쫓아오는 모습에선 푸흡하고 웃음까지 터져버렸다. 정말이지, 볼만하군, 하는 소리도 중얼거리면서... 물론 그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인간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 넘기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동경과 사랑이 애증으로, 공포가 광기로 바뀌어 가면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나만 살겠다고 레미나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최후, 그리고 마지막 결론부까지 이토 준지만의 괴기스러움은 다른 이야기에 비해 적은 편이기는 하나, 인간이란 생명체에 대해 초점을 맞춘 이야기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고 할 수 있다.

봉제 시체 - 억만톨이

억만톨이는 히키코모리와 관련된 만화이다. 짧지만 굉장히 강렬한 단편의 하나였는데, 특히 봉제 시체가 나오는 부분에서 역시 이토 준지 답다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500명이란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봉제시체로 만든 건 도대체 누구지?

이토 준지의 괴기스러움만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괴함과 기묘함을 넘어 인간 본성에 초점을 맞춰 이 책을 읽는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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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줄게 - 뉴 루비코믹스 958
마키 에비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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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마주보며 앉아 있는 남자 둘, 그리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든 고양이.
이 책은 표지를 보고 골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간은 변색된 듯한 사진같은 느낌이 주는 광경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다고나 할까. 이 속에는 그들만의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왠지 너무나도 따스할 것 같은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두 주인공을 살펴 보자. 표지 왼쪽에 앉아 있는 인물은 시라카와 렌. 다원의 주인으로 전직 야쿠자 집안의 후계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만의 세상인 다원이란 공간에 고립되어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세심하고 따스한 면이 돋보이는 캐릭터이다. 오른쪽의 이이누마 료이치는 애인의 배신으로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있다 렌이 운영하는 다원에 더부살이로 살게 된다. 처음엔 료이치란 캐릭터에 별 매력을 못느꼈으나 점점 더 괜찮다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완전 찌질이였음.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좋으면 찌질이처럼 보인달까. 그래도 좀 호들갑스러운 면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외에 렌의 보디가드 역할을 자처하는 리츠는 과묵하지만 든든하고 멋진 인물이다.

애인에게 배신당하고 빚을 떠안고 도망자처럼 살던 료이치는 무심한 듯 보여도 따스한 렌의 매력에 매료되어 간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렌의 무한매력에 빠져들어가고 있달까.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 뒤에 숨겨진 과거는 처참했다. (실은 본문에서는 과거지사는 스치듯 다루고 있지만) 과거의 짐을 짊어지고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남자인 렌과 자신의 과거에서 도망쳐 현재를 살고 미래를 준비하는 료이치의 코드가 처음부터 잘 맞을 수는 없지만, 둘 사이에선 큰 트러블이 없다. 오히려 밋밋할 정도로 차분하게 진행되지만, 그게 또 이 만화의 재미라 할 수 있다.

전직 야쿠자 출신이란 이유로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전직 형사에게 감시당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떠나지 못하는 렌이 마음의 문을 열 상대는 어쩌면 료이치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료이치가 자신을 배신한 애인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게 만드는 걸 도와줄 수 있는 건 렌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게 인연이 아닐까? 비록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 왔지만, 앞으로 같은 세상에서 같은 곳을 보고 살아갈 수는 있다. 이 둘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비록 나중에 렌을 되돌려 받으러 온 토우키의 활약(?)이 좀 미진하긴 했지만, 거기서 토우키가 날뛰었다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망쳐졌을지도 모르겠다. 료이치와 렌의 선택도, 리츠의 선택도, 토우키의 선택도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작화도 임팩트 있는 사건이 줄줄이 터지는 이야기도 없지만, 오히려 이런 차분한 분위기가 참 좋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잘 어울릴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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