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抱天) 1막
유승진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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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꾸눈 점쟁이 이시경? 음, 우리나라에 그런 점쟁이가 있었나, 라는 궁금증을 느끼며 책을 펼쳤다. 여는 마당의 점쟁에 대한 설명을 지나 서막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대동여지도하면 떠오르는 김정호가 이시경의 예언서를 발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후에는 흥선대원군,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에피소드까지 등장한다. 이 모든 것은 이시경이 예언했던 것이었다?

본문은 이시경과 그의 딸 초희가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겪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천기를 읽을 뿐 아니라 사람의 관상까지도 잘 살피는 점쟁이 이시경. 그의 뒤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조선조의 유명 인물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다. 율곡 이이와의 친분하며, 토정 이지함의 제자란 것 하며... 읽다 보면 이시경이란 인물이 실존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 사이에 이시경을 끼워 넣은 자리가 전혀 어색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다가,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가 별전으로 섞여 있어 첨엔 좀 헷갈렸지만 두번을 읽으니 이야기의 흐름이 완전히 이해되었다. (난 역시 두 번을 읽어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오성 이항복과 율곡 이이의 에피소드라던가, 고종 시절의 백운학에 관한 에피소드, 임진왜란 시 선조가 피난을 가던 이야기등은 실제 이야기이다.

기존의 역사적 사실에 상상의 인물인 이시경을 넣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자의 글솜씨는 가히 감탄할 만하다. 특히 임진왜란을 예감하고 율곡 이이가 선조의 피난길을 밝혀줄 방책을 마련하였다는 화석정 이야기에서는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구석구석 등장하니 이시경을 실존인물이라고 착각할 수 밖에 없었달까.

또한 이 책은 이시경과 민초들의 이야기도 많이 다루고 있는데, 특히 호환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호환, 마마보다 더 두려운... 뭐 이런 표현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멸종되기 전까지는 호랑이가 인간의 가장 큰 천적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중 이시경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인물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이시경의 딸 초희. 어린 녀석이 어찌나 잔망스러운지. 초희가 등장할 때마다 웃음이 터졌다. 특히나 부록처럼 수록된 이시경 선생의 육아 난봉가 부분에서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역사 만화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역사적 사실에 적당히 허구를 섞어 무척 유쾌하고도 재미있는 만화가 탄생되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읽었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금세 이시경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고나 할까. 또한 어휘 중에는 지금 우리가 쓰지 않는 용어들이 상당히 많다. 지역 방언도 나오지만 고어들이 많이 쓰였다고 할까. 그것 또한 이 책의 큰 재미라 할 수 있겠다.

점쟁이는 하늘의 기운을 읽고, 사람의 관상을 보지만 스스로의 운명은 읽지 못하는 존재라 한다. 어쩌면 전생의 업으로 인한 공양하는 삶이란 것이 점쟁이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시경의 앞날은 어찌 될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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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 아시하라 히나코 컬렉션 1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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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내 첫느낌은 아, 너무 예쁜 커플이다, 란 것. 파스텔톤의 배경에 서로 기대어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도 평온해 보였달까. 게다가 자세히 살펴 보면 남자가 여자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걸려고 하고 있다. 책의 원제는 ユビキリ. 우리말로 하면 손가락 걸기다. 약속의 증표로 손가락을 거는 것, 바로 그것이 ユビキリ.

이 책에는 총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약속, 뻐꾸기의 딸, 60days가 바로 그것.
첫번째 수록된 작품이자 표제작인 약속은 15살의 사사키 아사코와 혼조 카즈시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아침 뉴스로 자살을 시도한 여중생의 이야기가 흘러 나온다. 아사코는 그 뉴스를 보고서 학교 옥상에서 문득 자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린다.

사실 아사코와 아사코의 부모와의 관계는 소원한 편이다. 보통의 사춘기 청소년들을 가진 부모 자식 사이가 그러하듯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아사코 앞에 나타난 것은 혼조 카즈시란 소년으로 아사코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 알고 보니 아사코는 저녁을 혼자 먹기 싫을 때마다 카즈시가 일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 그걸 몰랐을 뿐. 둘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지만, 아사코는 혼조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부모와의 갈등, 청소년 자살이란 문제가 이 작품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꽤나 높다. 청소년기란 방황하기 쉬운 나이다. 미래는 막막하기만 하고, 자신을 구속하는 것은 많다. 그렇다 보니, 죽음으로 해방을 맞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비록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나를 옥죄는 기분이 들지만, 그 시절은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지을 날도 올 것이다.

뻐꾸기의 딸은 읽으면서 좀 당황스러웠던 단편이다. 같은 여자아이들에게 늘 따돌림을 받는 이부키는 소위 문제아다. 그녀의 문제란 사랑에 너무나도 쉽게 빠진다는 것. 그렇다 보니 다른 여학생들과 마찰이 생기기 일쑤다. 그런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은 친구 나오로 그녀가 무슨 일을 하든 따스하게 그녀를 바라봐 주는 유일한 친구이다.

이부키는 어느날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문제는 유부남이란 것. 하지만 이부키에게 있어 사랑의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그녀를 걱정하는 나오와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 싶어 하는 이부키. 과연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제목인 뻐꾸기의 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부키의 지금 엄마는 진짜 엄마가 아니다. 진짜 엄마는 이부키를 낳은 후 사라져 버렸고, 그후 새엄마가 이부키를 키워왔던 것. 그렇다 보니 이부키는 사랑에 대해 약간은 잘못된 시각을 가지면서 성장한 듯 하다. 하지만 성장과정이 그렇다고 그녀가 하는 사랑 자체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조금은 황당했지만, 그래서 더욱 그녀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달까.

마지막 작품인 60days는 전학을 60일 앞둔 마도카라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평소 다른 아이들과 거리를 두며 학교 생활을 했던 마도카는 전학이란 말에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리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마도카의 담임은 그런 마도카를 운동회 준비위원으로 일하게 한다. 처음에는 그 모든 것이 어색했던 마도카였지만, 치에라는 소녀를 만나면서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되는데...

세 작품중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녀를 만나며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어떤 세계였던지를 깨닫고, 아이들과 함께 운동회 준비를 하면서 학교 생활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마도카의 이야기는 끝으로 가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리고 풋풋한 첫사랑의 이야기까지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달까.

세편의 작품은 각자의 문제로 방황하던 세 소녀의 성장담이자 풋풋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할 세계이자 한번 지나면 다시 오지 못할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은 따스하면서도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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となりのトトロ (德間アニメ繪本) (大型本)
宮崎 駿 / 德間書店 / 198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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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토토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통통한 몸집에 동그란 눈이 무척이나 귀여운 토토로는 한눈에 척 봐도 무척이나 선할 것 같은 캐릭터이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본문을 펼치면 애니메이션에 나온 주옥같은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일부 내용은 축약되어 있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를 이해하는데에는 문제가 없다.


책을 펼치면 등장 캐릭터들을 설명해 놓은 페이지를 볼 수 있다. 왼쪽편은 토토로와 그 친구들, 그리고 오른쪽에는 쿠사카베 가족과 칸타와 칸타의 할머니가 있다. 사실 이 책을 보기 전에는 사츠키와 메이의 성이 쿠사카베인줄도 몰랐다. 사츠키와 메이의 이름이 모두 5월을 뜻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또한 토토로의 나이가 1300살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애니메이션 내용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토토로의 나이에 대해서는 안나온다. 왜냐면 토토로는 사람의 말을 못하니까. 어쨌거나 책을 통해서 이렇게 토토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득템이랄까. (笑)


사츠키와 메이는 아빠를 따라 시골로 이사를 온다. 나중에 퇴원할 엄마의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마을에서는 귀신집이라 불리지만 사츠키와 메이는 이 집이 꼭 마음에 든다. 집안을 돌아다니다 2층 다락에서 만난 것은 바로 사람이 없는 집에서 산다는 스스리와타리였다. 벽의 틈에 손가락을 쑥 넣는 순간 스스리와타리가 튀어나오는 모습에 놀란 메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언니 사츠키는 학교에 가고, 아빠는 일. 혼자 남은 메이는 마당에서 놀다가 난생 처음 보는 '무언가'를 따라갔다가 녹나무 안에서 자고 있는 토토로를 만난다. 잠을 자다 메이를 보고 눈을 게슴츠레 뜬 토토로. 토토로를 보다가 토토로와 함께 잠든 메이의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


사츠키는 메이가 만났다는 토토로를 너무나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사츠키도 토토로와 만나게 되었다. 비오는 날 아빠를 마중하기위해 나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토토로. 사츠키는 비를 쫄딱 맞고 서있는 토토로에서 아빠의 우산을 건넨다.

난 이 비오는 날의 장면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산 위로 빗방울이 도도도도하고 떨어지자 토토로가 발을 굴러 나무잎에 맺힌 빗방울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게 하면서 즐거워하는 장면. 아... 그 장면은 볼 때마다 유쾌한 웃음이 나온다.


아빠가 탄 버스는 오지 않고, 대신 고양이 버스가 도착했다. 다리가 열두개, 눈에는 불을 켠 고양이 버스. 고양이의 씨익 웃는 얼굴이 유쾌해 보인다. 토토로가 이 버스를 타고 가는 걸 보면서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폭신폭신 고양이 버스에 타고 싶다구!!


우산을 빌려줬던 댓가로 토토로에게 받은 씨앗을 심은 밤. 토토로 일행이 나타나 그 씨앗을 틔우고 커다란 나무로 만든다. 그후 나는 팽이를 타고 마을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토토로와 메이, 사츠키. 우산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토토로는 어디나 우산을 들고 다닌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소리를 왁~~하고 지르는 장면.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음악도 정말 좋았던 기억이 안다. 이후 나무위에 앉아 오카리나를 불기도 하고. 정말 토토로와 함께라면 불가능한 일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기로 한 엄마가 감기로 인해 병원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 소식에 엄마를 보고 싶다며 메이는 칭얼거리고, 결국 사츠키는 메이와 다투게 된다. 사츠키도 엄마가 보고 싶지만 엄마가 건강한게 더 중요한 걸. 하지만 아직 어린 메이가 그걸 이해하긴 무리였다. 메이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옥수수를 들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으로 향하지만 결국 미아가 되고 만다. 토토로의 도움을 받아 고양이 버스를 타고 메이를 찾아낸 사츠키. 어리둥절한 메이의 모습과 고양이버스에게 감사 표현을 하는 사츠키의 모습이 무척이나 대조적이라 재미있는 장면이다. 그래도 메이를 찾던 과정은 울컥하고 눈물이 날 뻔 했다구. 볼 때 마다 그러지만.


고양이 버스는 메이와 사츠키를 엄마가 계신 병원으로 데려다 준다. 다행히 엄마는 감기였을 뿐, 걱정할 상태는 아니었다. 엄마는 곧 메이와 사츠키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웃집 토토로는 가족이야기와 더불어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토토로와 고양이 버스. 어쩌면 지금은 어른이 된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는 우연히 토토로와 만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잊고 사는 것 뿐. 따스한 가족애와 자매들의 우애, 그리고 정령과 같은 존재인 토토로와의 만남과 모험은 언제 읽어도 즐겁다.

또한 작화 부분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가 없는데, 자연의 모습은 무척이나 섬세할 뿐 아니라, 아이들의 행동하는 모습도 정말 현실 속 모습 그대로다. 특히 메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은 진짜 아이들이 내려오는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토토로라는 상상속의 존재와 인간이라는 현실의 존재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 준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2~3p, 18p,38~39p, 52~53p, 58p, 70~71p, 99p,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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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정 2010-10-1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토토로!
책으로도 나왔군요^^

스즈야 2010-10-19 11:3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여러 판본으로 나와 있어요. 애니메이션 내용을 고대로 담은 3권짜리도 있고, 완전 소설화한 것도 있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토토로랍니다. 그래서 토토로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죠.
 
홍길동전.전우치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7
김현양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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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은 딱딱해. 재미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편견이다.
그리고 고문이라고 하면 시험 공부, 골치 아파, 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 배우던 고문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위한 책읽기는 고문 아닌 고문이었으니까. 글의 주제가 뭔지, 그 단어가 비유하는 게 뭔지 등등을 달달 외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문학동네에서 고전문학이 새로 편찬되어 나왔을 때 흥미가 가기도 했지만, 손이 쉽사리 나가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나온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먼저 골랐는데, 바로 이 책이 그것이다.

서자로 태어나 왕이 된 남자, 홍길동

홍길동전을 안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홍길동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책이긴 했는데, 그림이 아니라 인형을 사용한 사진으로 구성된 책이었던 기억이 나지만 워낙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어린이용이다 보니 내용이 홍길동의 영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 완역 홍길동전을 본 것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때때로 생소한 홍길동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홍길동전을 떠올리면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신분계급사회에 맞선 남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의적 등. 물론 이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완역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생각하던 홍길동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일단 홍길동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내가 아는 홍길동전의 내용과 달랐다.

서자로 태어나 호부호형도 허락되지 않았고, 과거 시험 응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데다가 아비의 첩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홍길동은 세상에 대해 일종의 울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의 곁을 떠나 도적떼의 수령이 되고, 도술을 이용해 해인사에 침입해 재물을 몽땅 훔쳐 오기도 하고, 임금을 희롱하기도 하며,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나라에서 그런 홍길동을 그냥 놔둘리가 없다. 형인 인형은 자신의 가문과 나라를 위해 홍길동을 잡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홍길동은 도술을 이용해 오히려 왕을 농락한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병조판서 지위를 손에 넣고, 호부호형을 허락받은 홍길동은 조선을 떠나 제도로 향하고 결국 율도국을 공격해 율도국의 왕이 된다. 그후 신선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홍길동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루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던 욕망, 벼슬을 하고 싶었던 욕망은 서자로서는 이룰 수 없던 꿈이었으니까. 게다가 한 나라의 왕이 되기까지 한다. 당시 조선의 신분제도아래에서는 입밖에도 낼 수 없던 꿈을, 홍길동은 당시 서자들을 대신해서 이룬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서출들의 로망을 담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도술로 세상을 희롱한 남자, 전우치

전우치전은 얼마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내가 전우치전을 읽은 것은 요번이 처음이다. 영화도 보지 않았으니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읽었는데, 홍길동전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할까. 여우에게서 빼앗은 호정과 천서로 갖은 도술을 익힌 전우치의 모험담이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캐릭터 역시 홍길동보다 더 장난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가 도술을 이용해서 양반을 농락하고, 임금을 희롱하고, 중들을 골탕먹이는 장면을 보면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도술도 어찌나 다양한 것을 사용하는지...

전우치전은 홍길동전과 비슷한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전우치의 캐릭터나 전우치가 벌이는 일들은 오히려 홍길동보다 더 유쾌하고 재미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홍길동전의 결말부와는 달리 전우치는 결국 서화담과의 도술 겨루기에서 패한 후 스스로 인간 세상을 등진다는 것이다. 홍길동이 자신이 반항해왔던 계급 사회의 제일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과는 결말부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좀더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우치쪽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도술이란 것을 사용하여 자신이 살던 사회에 대항했던 두 남자 홍길동과 전우치의 이야기는 무척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국형 판타지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요즘 판타지와는 달리 전개가 무척 빠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즉, 쓸데없는 이야기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이 책 뒷부분에는 원본 홍길동전과 원본 전우치전이 실려 있다. 번역본과 원본이 한 권에 동시에 실려 있으니 번역본을 먼저 읽고 원본을 읽으면 원본의 내용이 쉽게 이해된다. 아마 원본만 있었더라면 눈이 어질어질해서 얼른 덮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번역본과 원본을 함께 보니 더욱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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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2 소설 포토북
김성연 지음, 홍정은.홍미란 극본 / 맛있는책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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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그림 속에 갇힌 구미호의 봉인을 풀게 된 차대웅은 구미호와 100일간의 계약연애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섭고 두려웠던 구미호였건만 점점 구미호에게 마음이 끌리는 대웅은 스스로에게 당황한다. 비록 사람과 다른 존재이지만 순수하고 천진난만하며 솔직하고 꾸밈없는 미호의 마음에 반했던걸까.
 
드라마를 소설로 만든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2권은 미호에게 차츰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고 싶은 대웅과 여전히 변함없이 대웅에게 사랑의 화살을 날리는 미호에게 닥친 위기 상황으로 시작한다. 악플 혜인은 여전히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캠코더에 찍힌 수상한 영상. 혜인은 미호를 병원으로 데려와 검사를 받게 하려고 하지만 미호는 그곳을 탈출해 버린다. 결국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되는 미호는 혜인의 입을 막기 위해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한다.

한편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미호. 그러나 이 사실은 아직 대웅이에겐 비밀이다. 동주선생이 마련해준 신분증과 여권, 대학졸업증명서, 그리고 돈이 가득 든 통장은 나중에 미호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박선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체험해보는 인간 세상. 미호는 색다른 체험에 즐거워 하며 나중에 완전한 인간이 되어 대웅과 행복하게 살아갈 날을 꿈꾼다.

대웅이 없으면 안 돼. 나는 대웅이가 좋아서 옆에 있는 거지, 필요해서 같이 있는 거 아냐. 인간이 되고 싶은 제일 큰 이유도 대웅이야. (36p)

하지만, 혜인의 못된 짓으로 여우구슬이 다치게 되고, 그 결과 미호는 대웅을 공격하게 되는데... 자신의 그런 모습에 당황한 미호는 스스로 살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 나간다. 100일이 지나면 대웅이의 곁을 떠나려고 결심한 것이다.

너는 다른 여자를 좋아하진 않지만 나를 좋아할 수는 없고 고기를 줄 수는 있지만 마음을 줄 순 없지? (117p)
 
서로 어색한 나날을 보내는 미호와 대웅. 대웅은 동주가 마련해준 신분증과 여타의 서류를 보고 미호를 찾아 나서는데... 미호가 없어진다, 미호가 내 곁을 떠난다. 그 생각만으로 미칠 것만 같아진 대웅은 미호와 함께 가기로 했던 그곳에서 미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제 불행끝, 행복시작? 하지만 미호도 대웅도 모르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100일이 지나면 누군가 하나가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대웅에게서 여우구슬을 되찾지 못하면 미호가 죽게 될 것이고, 미호에게 구슬을 돌려주면 대웅이 죽게 될 거란 것. 미호는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이 사라지는 한이 있어도 대웅을 지킬 결심을 하는데...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사람과 요괴. 요괴와 사람. 서로 다른 존재가 사랑을 할 때, 늘 희생되는 건 사람이 아닌 존재 쪽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해피 엔딩이 아닌 새드 엔딩으로 끝이난다. (가끔은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에서도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정말 두 사람에게는 방법이 없는 걸까. 드라마 시청을 했고, 책도 다 읽은 상태라 지금에야 결말을 다 알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이렇게나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데 함께 할 수 없다니. 미호와 대웅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욱씬거렸다. 인간인 대웅이 철딱서니 없고, 찌질한 녀석에서 진짜 사랑이 무언지 배워가는 남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이나 기특했다. 누군가 혼자만 살아 남는다는 건 의미가 없다. 옛날 이야기였다면 구미호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와하하하핫 하고 웃다가, 때로는 코끝이 시려지고 가슴이 짠하기도 하고, 동주 선생의 길달에 대한 사랑과 미련에 대해 안쓰러워하기도 하고, 악플 혜인을 보면서 밉다 밉다 그러기도 하고...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진지함과 코믹함이 잘 섞여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런 이야기가 탄생했다.

또한 구미호라는 캐릭터가 일반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캐릭터와 완전히 차별화 되었다는 것도 이 이야기의 재미라 할 수 있다. 보통 여자 주인공은 악역인 다른 여자에게 시달리고, 상대 남자의 오해를 사는 등, 온갖 시련을 다 겪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여기에 나오는 구미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을 굽힐 줄 알되 비굴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그래서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 마지막에는 드라마의 엔딩에 이어지는 또다른 엔딩이 있다. 읽다가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어쩌면 이 일로 인해 동주 선생도 행복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달까. 사실 드라마 엔딩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시종일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구미호와 차대웅의 알콩달콩 러브 스토리. 앞으로 아주 특별한 커플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이 둘처럼 오래 기억될 커플을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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