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모든 것 1
나카무라 아스미코 지음, 손희정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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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카무라 아스미코라는 작가가 참 마음에 든다. 평범한 소재도 특유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건 정말 특별한 재능이니까. <동급생, 졸업생> 시리즈를 읽으며, <당신을 위해서라면 어디까지라도>를 읽으면서 푸하하핫하고 웃다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공감을 했다. 하지만 <J의 모든 것>의 전일담인 <장밋빛 두 뺨의 기억>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가진 또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작품들도 주인공들이 겪는 고민, 시련등이 나오긴 하지만, 모든 것은 유머러스함으로 상당히 커버가 되어 무거움과 가벼움의 적정한 균형을 맞추었다면 <장밋빛 두 뺨의 기억>이나 <J의 모든 것>은 상당히 무겁고 암울하다. 도대체 이들의 고통의 시간이 끝날 날이 올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J의 모든 것은 1980년, J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자이지만 여자로 살아가는 J. 그의 과거는 남들과 사뭇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마릴린 먼로를 좋아했던 J는 마릴린 먼로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티가 나는 나이임에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소년 J는 결국 양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어머니에게 들키고, 어머니는 양아버지를 총으로 죽인다. 그후 고아원에서 몇년을 지내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살았던 J는 카렌즈버그 학교의 이사장에게 입양된다.

그후 J는 폴과 같은 방을 쓰게 되고, 딱딱하기만 한 폴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폴은 눈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여장을 하고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을 하던 J는 뭇 남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폴은 J의 학교 생활을 돌봐 주지만 그가 탐탁치는 않은 눈치다. 하지만 J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결국 폴은 J의 구애를 받아들이는데...

폴과 모건의 사이는 여전히 데면데면한 상태이고, 폴은 J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모의 말때문에 다시 J를 멀리하려 한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폴의 냉담한 반응에 J는 다시 상처를 받고 뉴욕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여전히 시장인 아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건, 세상 모든 것과 담을 쌓은 듯이 사는 폴,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J. 그들의 시선은 간간히 마주치지만 결국 다시 엇갈리는 듯 하다.

J의 모든 것에서 느낌이 가장 많이 달라진 캐릭터는 역시 폴이다. 언제나 냉랭했던 그의 표정이 J의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에 달라지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갑자기 달라져서 깜짝 놀랐다고나 할까. 얼굴을 붉히는 폴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런 폴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는 한다. 부모의 사연을 가슴 속 깊은 곳에 봉인하고 차가운 눈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온 폴에게 있어서 J의 등장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을까. 또한 아버지와 사사건건 맞서는 모건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까. 여전히 폴에게 미련이 남은 듯한 모건의 마음, 그런 모건의 마음일랑 신경쓰기도 싫다는 폴. 그리고 그걸 눈치채고 있는 J.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시련은 당분간 계속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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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길고양이 행복한 길고양이 1
종이우산 글.사진 / 북폴리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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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을 훑어 보다 발견한 책. 행복한 길고양이.
우리네 길고양이들의 삶은 척박하기만 한 것처럼 보이는데, 행복한 길고양이들이라...
약간의 의문과 커다란 호기심을 안고 책을 구매했다.


샛노란 색의 표지가 무척이나 상큼하다. 책 띠지를 보면 앞에는 화초 사이의 아기 고양이가, 뒷쪽에는 찹쌀떡(고양이 발)을 곱게 쌓아둔 사진이 보인다. 아기 고양이의 눈은 살짝 놀란듯 경계하는 듯 보이고, 찹쌀떡 두개는 앙증맞기만 하다.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길래 이렇게 사이가 좋은 걸까. 책표지만 봐도 행복함이 물밀듯 밀려들어 온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나는 이렇게 사진으로 행복해지는데, 과연 이 책에 나오는 고양이들도 행복할까.


길고양이와 들꽃
관심 가지기 전엔 잘 보이지 않는 것들.
(14p)

책을 읽다가 이 페이지를 펼친 순간, 난 머리에 뭔가를 맞은듯 멍해졌다.
아, 그렇구나.
난 길고양이들을 볼 때 '안타깝다'란 생각 하나만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 그저 쓰레기 봉투를 뜯고,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이나 로드킬로 비참하게 생애를 끝낸 모습만 봐왔기 때문에 난 그들의 다른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구나, 하는 생각.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지켜봤다면 그들의 소소한 행복도 엿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


풀숲에 앉아 나른한듯 하늘을 향해 머리를 들고 있는 삼색고양이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
난 이 공기와 이 햇살만으로도 행복한데, 넌 그렇지 않니? 라고 묻는 듯 하다.


페이지를 넘기다 푸흡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 얼마나 절묘한 사진인가.
세상에서 가장 긴 고양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 사진을 보면서 웃음이 마구 터져나왔다. 고등어무늬가 똑같은 걸 보니 형제가 아닐까 싶다.


고양이 파수대 결성!
키 작은 나무 사이로 두 녀석이 이렇게 망을 본다. 그러나 둘 다 졸고 있었다나?
옆을 보니 이번엔 좀 더 많은 녀석들이 망을 보고 있다. 설마 여기가 집단 화장실은 아니겠지?


고양이 굽기.
따스한 햇살이 내려쪼이는 시멘트길 위에서 몸을 지지고 있는 삼청동 소심이와 오디.
어째 두 녀석이 하는 행동이 똑같다. 살짝 들어준 뒷발마저도.
이런 따사로움에도 감사할 줄 알고, 행복을 느끼는 듯한 모습이 우리 인간들에게 사소한 행복의 깨우침을 주지는 않을까. 

이 책에는 작가가 만난 고양이들이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작가와 친분이 있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다. 길고양이였다가 집고양이가 된 아이도 있고,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고 있는 아이도 있다. 모든 아이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중에서 고른 것이 밑의 아이들이다.


종로 3가 길고양이 방에서 사는 아이들의 모습. 빈 창고하나에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자세히 보면 고양이들이 몸을 내밀고 있는 깨진 유리창에 꼼꼼하게 발라져 있는 청테이프가 보인다. 고양이들이 드나들다 다치지 말라고 붙인 배려다. 이 아이들을 돌보는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이웃들의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묵묵히 그것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주변에서도 그렇게 싫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로는 반려동물의 권익을 위해 큰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묵묵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봉정암에는 귀넷 고양이란 암컷 고양이가 살았다. 어릴때 산짐승에게 물려 귀가 찢어진 녀석은 스님이 데려오신 선예라는 수컷 고양이와 부부의 연을 맺었고, 이쁜 새끼 고양이도 낳았다. 녀석들을 좋은 곳에 입양시키자고 스님과 의논했건만, 갑자기 그날부터 귀넷 고양이와그 새끼들이 모두 사라졌단다. 녀석들을 발견한 곳은 근처의 한 가정집. 귀넷 고양이는 자기 새끼들을 입양시킨다는 이야기를 알아 듣고 몸을 피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못알아 듣는다고 하지만, 그건 사람의 생각일 뿐. 동물들은 사람의 말을 다 알아 듣는다.


키라라는 원래 집고양이였다가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려졌다고 한다. 그후 키라라는 그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산다고 한다. 작은 녀석들은 키라라의 새끼들.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았던 키라라. 키라라의 새끼들 역시 사람을 잘 따른다고 한다. 키라라 덕분에 동네 사람들은 무척이나 행복해졌다고 한다. 작은 고양이의 힘!


언뜻 보면 하품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울고 있는 모습이다. 해피라는 암컷 고양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이 수컷 고양이는 해피의 죽음이후 저렇게 담벼락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우리는 동물들이 죽음을 이해하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이들도 누군가의 부재에 대해서 무척이나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 존재란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영산홍 속에서 미소짓는 고양이.
비록 이 순간이 찰나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찰나의 행복을 만끽하는듯한 표정.
만약 사진을 찍는 사람이 무심코 지나쳐버렸다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고양이의 행복한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관심이 가져온 행복한 순간.

때로는 세상사에 무심한 듯 하고, 때로는 세상에 달관한 듯도 하지만, 때로는 무척이나 현실적인 녀석들. 사실 고양이의 매력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죽하면 십묘십색(十猫十色)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고양이들은 개성이 강한 동물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곁에서 때로는 숭배를 받고, 때로는 처절하게 매도당하며 살아왔던 존재들인 고양이. 요즘은 우리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고양이에 대한 속설도 많이 사라져 고양이들을 보는 시각이 좀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 눈에는 언짢은 존재로 비친다. 특히 길고양이들을 보는 시각은 여전히 차갑다. 사람을 보면 피하기 일쑤고, 쓰레기봉투를 뜯고, 발정기에는 소름끼치는 울음을 운다며 싫어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고양이란 동물의 한 부분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나 역시 길고양이의 삶은 힘들기만 할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길고양이들은 늘 불안해 하면서 사람을 피해다니고, 쓰레기 봉투를 뜯으며 근근히 먹고 살아갔더랬다. 하지만 그들이 비록 길위에서 힘겨운 삶을 영위한다고 해서 늘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시각에서만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닐까.

고양이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고양이들을 해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고양이의 가장 큰 천적인 것이다. 고양이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고 일부러 쓰레기 봉투를 뜯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괴롭히려고 발정기 때 일부러 소리 높여 우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양이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턱대고 그들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그들에게 사랑을 줄수는 없어도, 편견으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책표지, 14~15p, 22~23p, 26p, 44~45p, 158~159p, 110~111p, 84~85p, 115p, 175p, 288~2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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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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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석 작가는 얼마전 <울기엔 좀 애매한>이란 작품으로 관심을 갖게 된 작가다. 열정은 가득하나 가난하기에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살고 있는 10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무척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내가 이 아이들에게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그 노력은 보답받을 수 있을 거야, 라는 말 따윈 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도 우리에겐 사치가 되어 버린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습지생태보고서는 어떨까. 사실 제목만 보고는 환경관련 만화인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이야기였다. 반지하, 여름이면 장마가 지면 물난리가 나는 곳. 1년내내 햇볕 한 번 들지 않아 습한 탓에 곰팡이가 피고, 자동차 매연에 몸살을 앓는 곳. 제목의 습지는 그런 반지하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또한 넓게 보자면 우울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표현하고 있기도 했다.

대학생인 최군, 재호, 정군, 몽찬은 네명이서 좁은 반지하 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그들의 삶은 결코 넉넉하지않다. 그런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만화이다. 하지만 읽는 내내 불편했다. 대한민국에서 사는 가난하고 연줄없는 이들의 삶을 거짓없이 보여주고 촌철살인의 문장하나로 뒤집어지게 웃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난한 이들의 바닥없는 자존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하위종이란 표현같은 것을 쓰지만, 자존심은 누구보다 강하다. 특히 최군의 경우, 그런 자존심을 대책없는 비뚤어짐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그에게 동정이 가기 보다는 얼른 현실에 눈뜨라 하고 싶었다.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지독하게 현실적이지 못하달까.

그래서 그런지 난 대학생들의 지지리궁상 스토리에서 좀 비껴난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우는 주전자 이야기나, 군팔 이야기 같은 것, 그리고 자신의 자식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아는 눈뜬 봉사 우리네 엄마들 이야기 같은 것에 훨씬 더 많이 웃었다. 어쩌면 저런 비유를 생각해냈을까, 어쩌면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 만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역시 사슴 녹용이다. 커다란 눈망울이 귀여운 녀석이긴 하지만 나올 때마다 정말 재수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만을 한다. 뭐, 사람 가슴에 대못을 박는달까. 때로는 사람은 착각도 하고 싶고, 거짓으로나마 위안받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 꿈은 틀렸으니 얼른 깨셔, 라고 하는 듯 하다. 따지고 보면 녀석의 말이 틀린 것은 없다. 그래서 반박하기 힘들기도 하다.하지만 그런 녹용이가 늘 세상을 잘 살아 내는 것은 아니다. 온갖 얌체짓을 하는 그도 바에서나 교통사고로 인한 합의금을 받아낼 때는 '참 서투시네요'란 말을 들으니 말이다. 결국 바보같을 정도로 정직하게 구는 대학생들과 별다른 것 없는 취급을 받게 되니, 작가는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정직'과 '선함'이 이길 수 있다고. 그런 식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다. 그래서 가난한 것을 웃기게 만드는 것을 보고 그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이 생태습지보고서의 모든 것에 공감하기엔 좀 애매하고, 그저 웃기만 하기엔 좀 씁쓸한 만화처럼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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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사전 - 소년들을 위한 모험과 놀이의 모든 것
홀거 루만 지음, 이동준 옮김, 게하르트 슈뢰더 그림 / 조선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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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사전. 책 제목부터 흥미를 자극한다.
도대체 장난사전 속에는 어떤 내용들이 가득 들어 있기에 장난사전이란 제목이 붙은 것일까?

아이들, 특히 남자아이들의 장난이라면 도대체 어떤 것이 있을까.
난 여자인데다가 어른이라 남자 아이들의 장난이라면 쉽게 떠오르는 게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당시를 생각하면 남자 아이들의 장난이라면 고무줄 끊기 정도랄까. 혹시 독일 여자아이들도 고무줄 놀이를 하고, 독일 남자아이들은 고무줄 끊기를 할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해보며 책을 펼쳤다.

일단 목차를 살펴 보니, 장난이란 것에만 초점을 맞춘 책은 아닌듯 하다. 짓궂은 장난에 관한 것은 그렇게 많이 눈에 띄지 않고, 오히려 그 또래 남자 아이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종의 놀이 사전, 모험 가이드 북이라고 보면 더 좋을 듯 하다. 혹시 친구들을 골탕먹일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쳐든 아이라면 조금은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오히려 유익한 내용이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재미있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난편에서 눈에 띄는 건 역시 유령 소리 내기. 말린 완두콩과 물만 있으면 가능한 장난이다. 장난을 칠 수 있는 방법과 더불어 이 장난의 과학적 원리도 알려 준다. 또한 종이대포 놀이 역시 장난 치는 법과 과학적 원리를 알려주니 장난이 장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초 과학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하늘 쳐다보기나 끈적이는 이물질, 물벼락 소동은 장난을 치는 상대에 따라 큰 불쾌감을 줄 수도 있는 내용이니 마구잡이로 따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대신 깨진 거울로 보이게 하는 장난은 웃고 넘길 수 있을 수 있는 장난이 아닐까 싶다.

실험편의 물로 언덕 만들기, 컵 붙이기는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과학적 원리를 깨치게 해준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을 이용하여 즐거운 놀이도 하고, 과학의 원리도 알아보는 재미있는 실험이라 물로 언덕 만들기 같은 경우에는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술편은 기대에 좀 못미쳤다. 요즘 아이들이 저 정도에 속을까, 하는 노파심이랄까. 하긴 요즘은 아이들도 쉽게 조작하는 마술도구가 나오다 보니 요즘 아이들은 이런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것 중 꽤 괜찮다고 생각한 것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 종이 위에 집짓기는 문득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흔히 하던 땅뺏기 놀이가 떠올랐다. 땅뺏기 놀이는 재미는 있지만 비가 오면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었는데, 종이 위에서 집짓기를 하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든 할 수 있는 놀이라 꽤 마음에 든다. 이와 비슷한 것이 배 침몰 시키기 놀이로 이 역시 종위를 이용하는 것이라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놀 수 있다.

야외에서의 놀이는 역시 도구를 이용한 것이 많다는 것이 특징. 특히 남자 아이들을 위한 놀이책이라 그런지 공으로 하는 놀이가 많았다. 이외에도 숨바꼭질의 업그레이드 판인 속임수써서 숨바꼭질하기도 무척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인 듯하다. 평범한 숨바꼭질을 가라~~!, 랄까.

제일 머리를 많이 써야할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말로 놀이를 하는 것. 뻐꾸기 알 찾아내기는 나이 어린 아이들에게 잘 맞을 것 같고, 여행가방 꾸리기는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에게도 잘 맞을 놀이처럼 보인다. 또한 우리들이 즐겨하던 스무고개와 비슷한 내가 누군지 알아맞히기는 어른이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그외에도 주사위나 카드를 이용하는 게임, 연이나 종이 비행기 만들기 등도 있고, 비밀 글씨를 써보거나 수화로 이야기 하기 등의 어른이 봐도 꽤 흥미로울 듯한 놀이 방법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비밀 글씨 쓰기는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비밀 글씨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모험편과 요리편은 요즘 캠핑을 즐기는 아이들이 많아져서 특히 더 흥미로워할 듯 하다. 지도를 읽는 법, 솔방울로 날씨를 예측하는 법, 간단한 텐트 만드는 법 등은 남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모험이란 것과 잘 맞아 떨어진다. 또한 요리 역시 간단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요리에 서투른 아이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장난과 놀이, 그리고 모험을 할 수 있는 정보가 가득한 장난사전은 굳이 남자아이들에게만 국한될 책이 아니라 놀이와 모험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나, 어른들에게도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줄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게임이나 컴퓨터만 들여다 보며 혼자 놀기를 즐기는 요줌 아이들, 이 책을 통해 친구와 함께 어울려 놀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고, 집밖에서의 활동적인 놀이를 통해 더욱 건강한 아이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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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문기담 - 추리편 김내성 걸작 시리즈
김내성 지음 / 페이퍼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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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장르문학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일본 장르문학을 가장 많이 읽었고 그다음으로 영미 장르문학을 읽었다. 우리나라도 장르문학 붐이 일어 요즘은 꽤 많은 장르문학 작품을 만날 수 있지만, 여전히 일본이나 영미쪽에 밀린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올 여름 난 김내성의 백사도란 작품을 만났다. 처음에는 이름도 생소하여 반신반의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난 짜릿한 흥분감을 맛보았다. 아, 과연 이 작품이 우리나라 작가가 쓴 게 맞는가, 그리고 이 작품이 1930년대에 씌어진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기괴한 환상, 기묘한 이야기, 매혹적인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난 또다른 김내성의 작품에 눈을 돌렸고, 그게 바로 이 연문기담이다. 백사도가 기담 · 번안편이라면 연문기담은 추리편이다. 에도가와 란포의 제자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김내성의 추리 소설! 연문기담은 총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가상범인은 중편 정도의 분량이고 나머지 네 편은 단편 분량이다.

러브 레터의 비밀 - 연문기담

연문기담은 아주 짧지만 무척이나 유쾌하다. 미스터리라고 하면 보통은 살인사건같은 강력범죄사건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연문기담은 그런 것과는 좀 다른 미스터리라고 할까. 시인 백장주와 바이올리니스트 윤세훈의 편지 공방전과 그 편지에 담긴 숨겨진 사실이 무척이나 유쾌했다. 백장주는 그당시에는 보기 힘든 당찬 신여성으로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누구라도 마지막에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될 단편.

살인사건의 해답을 현상모집 합니다 - 타원형의 거울

실제 일어난 사건이나 미결로 남은 사건. 그 사건의 해답을 <괴인>이란 잡지에서 현상공모하게 된다. 당시 용의자였던 유시영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한을 풀기 위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당시 사건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사건의 용의자였던 남자가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이 제일 흥미로웠던 작품.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로맨티스트 탐정 유불란 - 가상범인

김내성이 탄생시킨 명탐정 유불란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유불란은 모리스 르블랑의 오마주로 보면 된다. 유불란이 사랑하는 여인이 남편을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힌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유불란은 당시 상황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게 된다. 출연자는 당시 범행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그 중에 범인이 있다고 확신하는 유불란은 공연을 통해 범인을 검거하려 하는데...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사건 당일의 정황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한다는 발상에 정말 감탄했던 작품이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가히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의 유불란의 로맨티스트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매우 즐거운 점 중의 하나였다. 중편 정도의 길이가 되는 만큼 사건은 쉽게 끝나지 않고, 그 사건 뒤에 감춰진 거대한 비밀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정말 멍하게 그냥 읽다가는 뒷통수 맞고 더 멍해질 작품. 수록된 작품중 결말에서 가장 놀랐던 작품이다. 그리고 한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목격자는 듣고 있었다 - 벌처기

평범했던 아내가 갑자기 유명 화가가 되었다. 평범한 교사인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자 범행을 계획하는데... 알리바이까지 만들었건만, 남편은 곧 범인으로 붙잡히고 만다. 그의 계획이 실패한 이유는?
짧지만 그 반전이 무척 재미있었던 작품. 알리바이 조작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어!!!

비밀리에 아내를 살해하려 했던 이유를 알게 되고 나서 무척이나 안타까웠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이지만 말이다.

신출귀몰한 도둑, 그림자 - 비밀의 문  

이 작품은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3차 세계대전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던 당시 세계 각국은 신병기 개발에 앞다투어 나서고 있었다. 강세훈 박사는 살인광선 연구자로서 유명한 박사였는데, 박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훔치겠다고 괴도 그림자가 예고장을 보내온 것이었다. 박사는 자신의 딸에게 구혼중인 세 명의 남자와 함께 살인광선 설계도를 지키기로 한다. 그러나 정작 사라진 것은 딸이었다!?

더이상 내용을 쓰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내용은 말하지 못하지만, 결론부터 내자면 아주 깜찍한(?) 미스터리였다고나 할까. 물론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긴 하지만 무척 유쾌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과학자라는 사람은 자신의 가족보다 자신의 연구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다고. 강박사는 이 사건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으려나?

다섯편의 작품 중 두 편은 유쾌하고 통쾌했으며, 세 편은 좀 묵직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문기담이나 비밀의 문은 결말부를 웃으면서 읽을 수 있었지만 나머지 세 편인 타원형의 거울, 가상범인, 벌처기는 사건 자체가 살인 사건일 뿐만 아니라 결말부 역시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특한 상황 전개나 서술 방식, 절묘한 트릭과 허를 찌르는 반전은 역시 김내성이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특히 살인사건의 해답을 현상 공모한다는 것이나 살인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어 범인을 검거한다는 전개는 정말 독특해서 절로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비록 요즘 등장하는 장르 소설처럼 과학의 힘을 빌린 트릭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은 없지만,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임수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요즘 장르소설과 비교하는 우는 범하지 말란 소리다. 이 작품들이 발표되었을 당시를 생각하면, 이 소설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도 펄쩍 뛸 만큼 놀라지 않았을까? 김내성의 다른 작품인 마인은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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